토론- 사진과 권력
발표: 박신의, 이영준, 정주하 / 청중참석; 오형근, 전용석
1. 왜 러시아 아방가르드인가?
박찬경(이하 사회) 먼저 박신의씨 발제에 대해 질의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질문이 중복될 수 있어 여러 질문을 한꺼번에 받고 박신의 씨께서 그에 대한 답변을 하는 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이영준(이하 이)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로드첸코의 명성이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이고, ‘탈프레임’의 전략으로 브레히트적인 모델을 오늘날에도 여전히 화두로 삼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회 로드첸코의 생산주의 미학이 서구 아방가르드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계승되어 왔는지 설명이 되면 국내의 실천과 관련한 접근이 쉬울 것 같습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벤야민의「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 반영된 것처럼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생산주의 미학이 여전히 계승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진을 포함한 대중문화가 전면적으로 자본화되는 시기에 벤야민적 전략은 비판되어야 하고 오히려 아도르노처럼 깊이 있는 고급예술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는 경향이 있는데 그와 관련한 박 선생님의 견해를 밝혀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엽적인 질문일지 모르겠으나, 발제 중에 마가리타 텁신을 참고하시면서 ‘탈프레임Deframing’이라는 용어를 인용하셨는데, 이것은 들뢰즈가『영화Cinema』에서 주인공의 배경 공간이 무한하게 열려 있다는 측면에서 사용한 것으로 압니다만, 그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그런 의미로라면, 탈프레임을 말 그대로 탈원근법적이라고 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또 한가지는, 로드첸코가 스냅 사진의 미학에 대해 얘기했다고 하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군요.
정주하(이하 정) 로드첸코가 1930년을 기점으로 자신의 작업을 포기하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받아들이면서 러시아 구성주의에 대한 포기선언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궁극적으로 그가 살아남았다는 겁니다. 이는 1928년 후반부터 1930년 초반까지 치열하게 옥토버 그룹 활동을 한 그의 신념에 배리된다고 생각되는데 서구유럽 작가와 별 연계는 없었더라도 서구 유럽의 작업을 알고 있었을 그가 아방가르드 활동을 포기하는 것을 그의 예술관에 비춰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요?
박신의(이하 박) 제가 1920년대 러시아 아방가르드,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도 생산주의 예술에 주목했던 것은 이로부터 주어졌던 많은 쟁점과 논의가 특별히 한국에서의 동시대적 요구와 맞닿아 있다는 데 있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80년대는 그야말로 근대화 이래 처음으로, 그리고 본격적으로 문화운동을 실천해냈던 시절이었습니다. 다른 한편 이 시기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대중 시각문화의 팽창을 통해 기존의 폐쇄적인 예술 개념과 예술가의 활동 방식, 예술 작품의 존재 방식에 대한 반성을 주도하였던 시기였다고 보고, 여기서 예술을 문화생산이라는 지점으로 옮겨간 20년대 아방가르드의 논의에서 많은 것이 시사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20년대 아방가르드가 문화에 개입해 가면서 예술 개념을 넓혀갔다는 점입니다. 이때 유럽의 상황은 사진이 대중문화의 중심세력이 되어 있었고 이미 포토 몽타주도 예술에서가 아니라 광고에서 먼저 발명되어 나왔어요. 예술가들이 광고 등의 대중문화 차원에서 사진의 위력을 발견하고 사진에 눈을 돌리게 된 상황이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 20년대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예술로서의 사진을 봤다기보다 이미지의 문화현실을 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사진을 통한 문화생산이 단지 스트레이트 사진만이 아니라 출판사진 디자인(타이포포토), 포스터 작업, 광고 등에 이르는 분야에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미학적인 질을 높이는 작업을 하게된 것이지요. 그 곳에서는 이미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경계나 위계적 질서가 무의미해졌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진이 갖는 복제와 대량보급이라는 매체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문화생산의 실질적인 의미가 가능해졌다고 하겠지요.
기본적으로 사진이 매체적 특성을 갖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것의 정치적 힘을 새롭게 갱신하자는 벤야민의 논거나, 고급예술로서의 질을 주장하는 아도르노의 논거가 서로 상충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사진 외에도 기술매체 발달에 따른 이미지 생산의 현실은 더욱더 고도화된 전문인의 손과 머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며, 또 이를 자본의 논리로부터 거리를 두면서 새로운 문화적, 예술적 질을 강화하는 것으로 전화시킨다고 할 때, 이미 예술가의 역할과 그가 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전의 것과 다를 뿐 아니라 더욱더 진보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지요. 만일 이 시대에 ‘생산자로서의 예술가’라는 20년대의 개념을 주장한다고 할 때, 그것이 단순히 반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은 당대의 문화적 현실 속에서 가늠되고 해석되어야 하며, 동시에 문화적 힘을 갖는 이미지 생산의 주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저로서는 사진에 부과된 좁은 의미의 ‘예술’ 개념을 거부하는 것만이 아니라, 문화생산이라는 차원에서 결합시킬 수 있는 넓은 의미에서의 ‘예술’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를 좀더 고민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브레히트적인 전략이 오늘날에도 유효한지를 물으셨는데, 여기서는 흔히 리얼리즘 논쟁에서 언급되던 브레히트·루카치 논쟁을 재연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사진에 대한 하나의 접근 방식으로써 응용, 제시한 것입니다. 사진에서 브레히트적인 전략을 말한다면, 사진에 관객이 생각하고 판단할 공간을 남긴다는 것으로 풀어 말할 수 있겠습니다. 대개 사진이 하나의 완결된 정보나 이미지로 인식되지만, 그럴 경우 관객은 그 정보에 대해 수동적일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그 정보의 내용을 더욱 열려진 것으로 제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그 적용은 가능하리라 봅니다.
아방가르드가 실패했다는 사실은 논의의 핵심이 아니라고 봅니다. 아방가르드는 그 속성상 대체로 사회적 격변기에 많은 가치관의 혼란과 전복이라는 문화상황과 함께 출현하게 마련이지요. 그 점이 바로 아방가르드가 하나의 ‘양식’이 아니라 ‘정신’이자 ‘태도’로 혹은 ‘세계관’으로까지 볼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동시에 아방가르드가 강하게 표명한 것이 예술의 제도화에 대한 거부인데, 이 때문에 아방가르드는 운명적으로 단명할 수밖에 없죠. 저는 아방가르드는 ‘제도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중요한 것은 그것에 대한 역사적 해석과 자리매김일 것이며, 또 동시대적인 의미를 얼마나 풍부하게 건져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로드첸코가 30년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편승하면서 제도적으로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논의의 중심이 된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그가 당대의 시대적 요구 속에서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가 중요하고, 아방가르드 시기를 벗어난 로드첸코의 활동에 대해서는 다른 역사적 평가가 있어야겠죠.
그리고 ‘Defram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들뢰즈의 시각과 함께 ‘탈프레임화(decadrage)’이라는 영화 기법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들뢰즈는 자신의 저서 [영화1 ; 운동-이미지]에서 보니체르가 1978년 사용한 ‘탈프레임화’, 즉 사선적 원근법이나 역설적인 각도와 동일하지 않고 이미지의 또 다른 차원을 지시하는 비정상적인 시점을 지칭하는 개념을 인용하면서 드레이어의 영화 <잔다르크의 수난>에서 사용된 커팅 프레임을 설명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스크린 가장자리에 의해 잘려진 얼굴을 통해 절연된 공간에서 화면 밖의 보이지 않는 이미지를 읽을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사진과 회화의 관계를 토대로 기존의 회화적 체계가 갖는 보수적 시각에 대한 반성으로도 응용한 것이기도 합니다. 원근법과 관련하여 저로서는 프레임은 완결된 하나의 전체를 보는 체계로 정의한 것이고 탈프레임은 완결된 체계가 아닌 연장되고 개방된 체계로 이해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진에서 완전한 탈원근법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어요. 가능 여부가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는가가 중요하겠죠.
그리고 문헌에는 로드첸코가 기계나 노동 장면을 여러 장의 사진으로 연속해서 찍었다는 사실이 나옵니다. 한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파편화된 이미지로 찍어 그것을 총합한다는 맥락으로 연작사진 개념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정 박신의 씨는 로드첸코의 <도로 포장: 레닌그라디스코 고속도로>가 탈프레임화되어 단편을 통해 더 많은 전체를 연상시킨다고 하셨고 샤이케트의 <증기롤러>는 닫힌 프레임으로 느껴진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로드첸코의 사진을 원근법이 갖는 권력적인 시각의 극복으로, 즉 탈프레임화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지요. 사진가의 입장에서는 로드첸코의 사진이 대상을 클로즈업시켜 특별한 감정을 야기시키는 효과를 주는 것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거든요.
이 샤이케트의 사진은 로드첸코의 사진보다 우리 눈에 길들여져 있죠. 로드첸코의 사진이 원근법을 근본적으로 파괴했다기보다 원근법에 대한 안티테제로 나왔다는 거죠. 형식상의 구성의 문제가 아니라, 샤이케트의 사진에서는 사회주의 이념에서 말하는 전진하는 노동자나 역사의 진보를 상징하는 서사가 원근법적인 조망을 적극적으로 구사해서 효과적으로 구성되었어요. 로드첸코의 사진에도, 그것이 사진인 한에서 당연히 원근법이 작용되지만 기존의 의미의 탈락을 보여줍니다.
사회 당시 러시아 모더니즘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하는 것은 시각적 혁명과 사회적 혁명을 그대로 일치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한 예술과 생산의 일반적인 조건입니다. 사회주의 혁명은 인쇄매체나 영상매체 등을 장악할 수 있는 제도적인 수단들을 마련하고 있었어요. 박신의씨께서는 생산과 예술이 결합해 예술의 영역이 확장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계승해야 될 점이 있다고 하셨는데, 문제는 실제로 러시아 생산주의와 바우하우스 실패 이후에 어떤 분야에서도 생산과 예술이 결합한 성공적인 사례가 극히 적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로드첸코에 대한 관심은 ‘고급예술’에서 더 많이 거론되고 있는 형편이고, 미국의 경우 로드첸코를 다시 거론함으로써 고급예술 제도에 대한 안티테제랄까 하는 것으로 비판적인 개입영역을 넓혀가려 했다고 짐작됩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자면, 러시아 생산주의란 특정한 시기와 조건에서 가능했던 실패한 운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생산과 예술의 결합 내지는 예술가가 대중문화로 확장해 나간다는 것은 아이디얼한 그림일지는 몰라도, 그리 현실적인 관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작가로서 정주하씨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 로드첸코의 시각혁명은 전통적인 시각과 개념을 깨기 위한 것인데 그 자신도 그런 신념을 유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실패했지요.
사회 오히려 로드첸코의 후예들은 팝 아트나 최근의 설치 미술에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의 설치미술이 눈요기와 규모에 의지한다면, 생산주의 논의를 끌어들임으로써 설치미술의 근간을 다시 반성해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죠. 박신의씨가 참조하신, 크리스틴 로더는 러시아 구성주의의 실패 요인을 공업적인 생산과 실제로 결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보는데, 그것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생산주의를 현재화해 새로운 전략을 강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입니다.
박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의해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억압되었고 수적으로도 당시 작가의 10%에도 못 미치는데 생산물이 굉장히 많아요. 왜냐하면 매체의 생산력에 대한 개념과 언어의 경제성 원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것이 대중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죠.
그리고 박찬경씨 지적에 대해서,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타틀린의 인터내셔널 기념비에 대한 발상이 당시의 열악한 경제조건 때문에 실현되지 못한 채 하나의 구상으로 끝나버렸지만, 그 구상이 기계적 공정과 만나지 못했다고 해서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죠. 오히려 그와 같은 개념의 착안이 문화생산과 관련해 현재에도 유효하다고 봐요. 예를 들면 사진가들이 하나의 프로젝트 차원에서 문화적, 사회적 주제를 가지고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이 가능하다거나─저는 여기서 지난해 가을에 있었던 <도시와 영상-의식주>전에 출품했던 ‘성남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산업체계와 거리를 두면서 대량생산의 논리를 여러 문화적 맥락에 응용, 개입해 가는 작업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사회 러시아에서 실패하고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생산주의는 미국 자본주의에 의해 심각하게 왜곡된 사실이 엄연합니다. 결국 상품광고 디자인이나 시카고를 중심으로한 미국식 ‘예술사진’의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생산주의의 특정한 면면들은 복제미학을 핵심으로 하는 팝아트나, 현실공간을 중요시하는 설치미술의 미학으로 연결되어 있는 점을 주목해봐야 한다는 것을 자꾸 강조하는 것입니다.
박 사진을 문화적 생산이라는 지점으로 놓고 본다는 점에서 러시아 구성주의의 현재적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또 사진과 예술의 관계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예술에 대한 이해가 회화적 수준에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그 준거틀을 비평적 차원에서 사용했던 겁니다. 미국의 30년대 사회적 사실주의는 당시의 공황 극복이라는 사회적 요구 때문에 아방가르드적 스펙트럼을 충족했다고 하기는 어렵죠. 매체에 대한 인식도 벽화작업과 같은 로우 테크(low-tech)에 더 많은 의미를 두었고, 사진에서는 다큐멘터리에 집중되었던 것이지요. 이와는 달리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생산력을 높이는 차원에서 예술의 개념과 조건을 파악했다는 점에서 그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닐 수 있었다고 봅니다. 게다가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그 당시 사진이나 영화 등의 매체가 갖는 동시대적 설득력과 권력을 간파한 점에서 새로운 정치적 힘을 획득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금도 사진을 매체와의 관계 속에서 예술에 무게를 싣지 않고 문화에 무게를 싣는다는 측면에서 아방가르드 정신을 되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정 1917년 혁명이 끝나고 레닌이 인민 계몽위원회를 만들면서 루나 차르스키를 중심으로 인민을 계몽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예술의 복합적인 기능을 이용했습니다. 그렇다면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국가의 통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하나의 대외적인 전술로 이용당한 것은 아닌지 혹은 사회주의를 태동시키는 힘 안에서 이루어졌던 것은 아닌지요. 그들의 시각적 혁명성이나 부르주아 생산양식에 대한 거부를 당시 매체에 대한 인식에서 온 독자적인 판단으로 볼 수 있을지요?
박 루나 차르스키는 서방세계의 체험이 풍부하고 미래파와 큐비즘 등의 새로운 서구 아방가르드를 체험한 작가들을 많이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인민 문화교육부의 조형예술과에 받아들인 사람들 대개가 미래파와 큐비즘을 이해한 유학파들이었지요. 따라서 국가의 통제가 미치기 전의 운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전체 소비에트 예술가중 소수였고 레닌도 기하학적 추상으로 사회적 이념을 담는다는 것을 이해 못한 상황에서, 생산력을 높이는 측면에서 허용이 되었던 특별한 경우죠.
2. 미술가들의 사진과 사진가의 사진
오형근(이하 오) 이영준 씨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평론가로서 현대 사진에 있어 재현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 재현(再現·representation)은 한자로는 다시 나타나다, 즉 미리 존재하는 것을 다시 나타내는 모방의 의미이고 영어로도 다시금 보여준다는 개념으로 기존에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쓰는 재현은 ‘보여주기’라는 뜻으로 표상에 가깝습니다. 미리 존재하는 것을 다시 보여 준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사진 자체를 보여 주는 것이죠.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얼굴을 찍어 보여주면 그의 얼굴 자체를 보는 것은 분명히 아니죠. 찍은 사진 자체를 보는 건데 그런 사진이 구성되는 과정을 다 포함하는 얘깁니다.
그것이 단순한 반영이 아닌 이유는 그런 하나의 이미지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1/125초라는 짧은 순간에 사진 찍는 습관이나 사진 찍는 시선이 굉장히 오랜 시간 축적된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경험을 담아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진의 코드나 습관은 사진 자체에서 생겨났다기보다는 사진 이전의 회화의 역사에서 형성된 습관에 의한 측면이 하나 있죠. 그리고 그것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작용을 한다는 것이죠. 사람 얼굴을 카메라로 찍어 보여줬을 때 절대로 사람 얼굴이 그대로 나타나는 게 아니죠. 사물 하나를 눈에 보이는 것처럼 똑같이 찍기는 어렵습니다. 그걸 제대로 찍기 위한 과정들은 사물을 그대로 반영하는 과정이라기보다 사진이라고 알고 있는 문화적인 결정체를 형성하는 복합적인 가공의 과정입니다. 그런 가공 과정이 하나 있어요.
또 하나는 시각화, 즉 가시화입니다. 그냥 사진을 찍는다고 가시화되는 것은 아니고 이제까지 알려진 영역과 알려져 있지 않은 영역이 무엇인가, 우리 사회와 문화 속에서 이제까지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지고 있는 측면과 많이 보여지지 않은 측면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관련됩니다. 기존에 언어화되어 있지 않은 영역, 우리가 배워온 것에 의해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을 말하는 거죠.
1930년대 미국의 다큐멘터리 사진의 중요한 의미는 사진가들이 그 당시의 미국에서 숨겨져 있던 영역, 즉 사회적인 모순들이 중첩되어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장소를 찾은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남부 농촌으로 들어갔고 흑인 소작농들을 찍었던 것인데 그것은 바로 사회적으로 가려져 있던 영역들을 가시화하는 거죠. 그런데 가시화라는 행위를 흔히 인간적인 쪽으로 연결시키려고 해요. 예로 다큐멘터리 사진은 온정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찍었다고 하는 긍정적인 면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의 가시화되어 있지 않은 영역을 가시화하기 위해 밤거리에 불을 밝히듯이 하나의 관찰과 감시의 수단으로 쓰인 거죠. 골목이 범죄의 온상이 되지 않게 비가시적인 영역을 가시화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즉 사진의 재현은 문화와 사회의 지형 속에서 비가시화된 영역을 가시화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반드시 사진으로 가시화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음악이든 어떤 문화의 형태든 사람들에게 보여지기 위해서는 가시화되는 장이 필요하고 사진에만 국한하자면 요즘 같은 자본주의 소비 사회에서는 그런 사진들이 팔리기 위한 사진 시장이 필요하죠. 예술가들도 예술 작품을 수용하는 전시 공간이 필요해요. ‘재현’이라는 말 속에는 그런 사회적인 공간의 창출 그리고 그런 공간을 채울 수 있는 계속적인 문화적인 생산물의 생산이 다 결합된 의미가 공존합니다.
오 이 사진적 재현의 특성은 무엇보다 현장성입니다. 그러나 그 현장성은 사진에 본질적으로 자연스럽게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니고 사진적 재현이 내세우는 특수성으로 볼 수도 있는, 그리고 사진적 재현의 장점 혹은 단점이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특성입니다. 그리고 미술적인 재현과 구분되는 지점은 사진적 재현이 사물과 곧바로 맞닿아 있다는 점입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렌즈로 그 사물에서 나오는 빛을 기록하는 것인데 그럴 때 셔터를 누르는 손은 필요하지만 빛을 일일히 통제할 필요는 없죠. 그런 사물과 딱 맞닿아 있는 현장성, 카메라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고 하는 카메라의 현존성에 대한 확증, 거기서 또 파생되는 객관성이라든가 진실성이 미술적인 재현과 구분되는 지점입니다. 그러나 물론 사진의 객관성이나 현장성도 다 자명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고 항상 그것을 지지해줄 만한 담론의 지지를 받아야죠.
오 미술가들이 재현을 위해 쓰는 사진의 용도는 사진의 서사에 치우치고 비평과 관련해서는 기호에 치중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서사와 기호가 앞에서 말씀하신 가시성을 판단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사진가는 빛이나 색은 물론 사진의 크기에 따른 디테일의 변화, 즉 입자나 톤의 재현을 통해서도 서사나 기호를 읽기도 합니다. 더욱이 이전에 보았던 유사 이미지의 선입관을 통해서도 서사와 기호를 읽거든요. 일례로 지하철에서 조는 사람들을 찍은 박찬경 씨의 사진을 미술가들은 사회적인 현상으로 보고 서사적인 내용 읽기에만 치중해요. 그 안에 담긴 또 다른 사진적인 서사 그러니까 실제의 지하철이 사진으로 옮겨져서 만들어지는 조명이나 그에 따른 색의 변화가 주는 이야기 그리고 인화의 단계에서 만들어지는 입자나 톤 그리고 질감의 이야기는 생략됩니다. 사진 안에서 생성된 읽기의 통로들이 무시된다는 거죠. 때문에 저는 매체의 경계가 없어지는 이 마당에도 사진만은 확실하게 미술과 경계를 짓는 편이 오히려 좋다는 게 저의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유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리된 동안 생성된 사진적인 통로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것이 완전히 무시되고 미술의 통로로 읽힐 수는 없죠. 저는 재현보다는 재현을 읽는 통로를 짚어보고 싶어요.
이 미술가들이 사진을 차용하는 경우의 문제는 사진을 찍는다는 게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더해 사진을 알아본다는 게 무엇인가, 사진을 전시한다는 게 무엇인가 그리고 사진에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가 부정적인 의미가 있는가 하는 역사적인 다이내믹한 차이의 형성이라는 복합적인 문제들을 간과하고 그 중에 아주 일부분인 서사만 차용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회 좀전의 오형근 씨의 말씀은 소위 장인적으로 우수한 사진, 수공예품으로서의 완벽함을 보여주는 사진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건지요?
오 전문적인 틀로 보면 아무래도 치우치는 면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것으로 미술 속의 사진을 보면 그 사진 읽기가 사뭇 다르다는 거죠. 미술가와 사진가가 다르고 평론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왠지 미술가나 미술 이론가에게서는 사진이 뭉뚱그려지는 느낌이에요. 종종 사진의 원론적인 경험이 무시되고 현학적인 담론으로 들어가 정작 사진은 없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사실 저의 생각으로는 사진은 기술이나 선경험 그리고 선입관이 무척 강도 높게 작용하는 매체거든요.
정 문제는 사진을 바라보는 입장에 사진 내적인 담론이 전혀 배제되어 말만 무성해질 우려가 있다는 거죠.
이 사진 내적인 담론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담론이 추상화되고 협소화되면서 때에 따라서는 사진의 자율적인 미적 형식으로만 읽히는 게 문제죠.
사회 이영준씨가 강조한 것처럼 사진이 어떻게 미학적 대상으로 담론화 되는가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티모시 오 설리반의 지질학적인 조사를 위한 사진도 미학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미술관에 전시되면서 예술 작품으로 공인이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한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진이 사용되는 장들이 무수한 갈래로 교차하는 것입니다. 그런 문맥을 얘기하지 않고서는 기존의 예술 사진의 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역으로 회화에 대한 사진의 콤플렉스만을 기계처럼 되풀이하는 것이 됩니다. 사진의 특성을 강조하는 것이 예술제도의 위계를 오히려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사진의 의미를 거꾸로 보는 결과입니다.
정 다른 장르와 교차할 때 사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다시금 의미를 갖게 됩니다. 문제는 사진 내적인 담론이 사진의 본질적인 힘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사진에는 나름대로 복합적인 토대가 있어요. 사진이라는 장르 내의 역사성에 대한 이해, 예컨대 사진의 기초적인 기능이랄까 하는 데 대한 이해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오형근 씨께서 작가 입장에서 평론가들이 너무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언어로 본다는 지적을 해주셨는데 제 생각에는 사진의 정체성과 연관된 말씀이신 것 같아요. 정주하 씨는 사진이라고 하는 물질적인 실체를 다루는 입장에서 말씀하셨는데 저는 사진에는 정체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의 수행성(performativity)도 그런 뜻이예요. 사진은 여러 맥락들이 만나는 그 순간에 있는 것이지 작가가 어떤 재료로 만드는 그 순간에서부터 나오는 것은 절대 아니죠. 사진의 정체성은 맥락의 문제이지 물질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 맥락의 문제는 곧 사진읽기의 통로가 무엇인가라는 것인데, 읽기의 통로를 작가가 제한할 권리는 없지만 제시해볼 수는 있지요. 예를 들면 플래쉬는 완전한 저널리즘 사진의 경우 정보의 전달을 위해 쓰였어요. 물론 기념 사진에 있어서도 그렇지요. 하지만 이제는 단순한 정보의 전달을 벗어나 새로운 인공광으로 날카로운 질감과 색을 만들고 더불어서 또 다른 서사와 기호의 통로를 사진가들에게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미술가들은 무작정 플래쉬를 사용해요. 단순히 어두우니까 사용하는 도구일 뿐이지요. 그렇게 미술가들이 사진을 도구화하는 데에는 이의가 없지만 문제는 그 정도의 역할로 ‘읽기’를 제한한다는 점이지요.
정 지적인 소통을 간과하기 위해 사진의 기계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 재현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질 때 나타나는 문제점들, 즉 이것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와 어떻게 읽혀지고 있는가 사이의 갈등이죠.
사회 사진이 무반성적으로 쓰인다고 해서 반대로 아카데미즘이 강조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대개의 미술가들의 경우 사진 안의 다양한 코드에 대한 전문적인 관심과 반성 없이 단순한 지시어로서의 사진적 진실을 보여주는 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반대로 물질로서의 사진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로 귀결된다면 문제는 차라리 제기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군요.
정 문제는 기계성뿐만 아니라 사진을 찍을 때의 높이, 거리, 카메라의 속성 등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눈은 자동적으로 초점을 맞추는데 사진으로 보는 세상은 초점을 어떻게 맞추는가에 따라 다른 감을 느끼게 하는 기계적 속성이 있어요. 기계적 속성이 다시, 보는 감성적인 것과 밀접하기 때문에 사진하는 행위는 복사가 아닌데 미술가들은 대상의 정보만을 전달하려 한다는 거죠. 어디서 본 듯한 것에 개념을 부여해 전달하는 복사기의 의미로 사진의 제반 것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이의예요. 흔히 손쉽다고만 생각되는 기계적 속성을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합니다.
사회 오형근씨와 정주하씨는 사진가의 입장에서 대체로 미술가들이 사진을 막쓰고 있다는 비판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인화지의 질료적인 속성보다는 문화생산으로서의 사진 이미지의 넓고도 복합적인 의미를 탐구하고, 또 예술의 경계나 권력을 문제시하는 사진가의 작업들은 얼마나 있는가 하는 질문도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정 문화를 생산하는 입장의 층이 좁죠. 신디 셔먼, 낸 골딘, 데이빗 암스트롱 같은 작가들이 거론된 것도 80년대 중반 이후인데 우리에게는 사진 담론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부터 얘기해야죠. 사진의 내적인 구조를 깊이 있게 논의해 보는 게 중요합니다.
박 기본적으로 현대 미술에서의 사진의 사용은 사진을 직접 찍는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기존하는 사진을 차용하면서 주어졌지요. 예술가들이 50, 60년대에 사진을 바라본 것은 점차적으로 세력을 확보해 가는 대중문화 속에서의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사진의 기술적인 측면이 아니라 일상의 시각 문화 속에서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중요성을, 그리고 그 소통의 힘을 간파한 것이었고, 이로써 사진을 지배담론의 맥락 속에서 읽어냈다는 점이며, 또 그 자체로 화인아트라는 기존의 예술 개념을 반성하는 계기로 받아들였던 것이지요. 최근에 사진이 미술관에 전시되는 경우가 훨씬 빈번해졌는데, 사진의 기술적 완성도 때문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빚어내는 문화담론적 측면이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를테면 프랑스 파리에 소재하는 까르티에 미술관에서 <밤으로>라는 기획전에 출품된 낸 골딘의 멀티 슬라이드 작업이나, 쥬드폼므 미술관에서의 제프 월 개인전에서도 사진은 문화적 컨텍스트에 개입해 가고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비쳐졌다는 것이지요. 사진에서 일종의 기술주의적 페티시즘이 있다고 보며, 그러나 사진에서의 진정한 예술적 힘이라는 것은 곧 당대의 문화적 담론을 만들어 가는 지점에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3. 사진과 진리
사회 다음은 이영준 씨께 앞서와 같은 방식으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영준 씨의 시각이 다소 회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술관을 비롯한 제도에 의해 작품이 길들여진다는 견해는 그 자체로는 옳지만, 지나치게 제도결정론적인 시각으로 발전된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또 사진적 재현의 구조 전체가 문제이고, 그러므로 당연히 사진의 진실이나 다큐멘터리의 가치에 대해서도 비판적인데, 그것은 일면적인 것이 아닙니까? 더구나 사진의 기록적인 가치는 최근의 진리냉소주의적 경향에 의해 너무 쉽게 재단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정 발제문을 통해 이 선생님의 견해를 크게 두 가지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는 제도 속에 편재된 사진계에 대한 충고이고 둘째는 예술로 사진이 서기 위해 가져야 하는 사진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대부분 동의하면서도 우리의 문화적 기반에 비추면 거리감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사진이 무엇인가, 사진이 예술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으며 그 유의미성으로부터 사진의 정체성은 어떻게 찾아야 되는가를 말씀하시면서 ‘작동’과 ‘수행’을 말씀하셨는데 그에 대한 보충설명을 해주시죠.
박 저는 이영준씨께서 사진이 예술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따져보자고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로 예술이란 개념은 시대마다 다르게 주어졌고,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열려진 예술 개념을 추구하고 실천하느냐에 있을 것입니다. 만일 사진이 예술로서 이야기된다면, 그것은 곧 뮤지엄 컨텍스트 속에서가 아니라 대량생산의 공정을 받아들인 시각문화의 컨텍스트에 있을 것이라 보는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더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지양해야 할 좁은 의미의 ‘예술사진’을 주장하기 위해서라도, 궁극적으로는 넓은 의미의 예술 개념을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그렇습니다.
이 박찬경 씨의 질문부터 답을 하겠습니다. 제가 제도라고 한 것은 미술관만이 아닙니다. 개념도 제도이고 사진이라는 말 자체가 하나의 제도죠. 마치 우리가 학교에서 일정한 절차에 따라 교육을 받듯이 미술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뒤따르는 개념들이 있고 논의들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틀이 있는데 그것도 제도죠. 그런 전반적인 걸 제도라고 한 겁니다. 예를 들면 원근법도 ‘보는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보는 제도’로서 문제삼는 것이죠. 어려운 점은 이렇게 전거와 자료를 모아 분석을 한 다음의 일입니다. 그것은 사고와 실천이 통합되어야 하는 부분, 즉 이론과 실천의 통합이기도 한 그 부분에 있어서 양자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회의적인 인상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렇더라도 제도 결정론적인 입장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떤 작품이 미술관에 들어가 규율적인 권력, 미학적 코드가 부여될 때 그런 규율이 어느 정도 의미를 통제하는 작용을 하지만 텍스트의 의미가 규율에 의해 모두 규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그것이 음모이건 비평가의 권위 있는 말이건 한 줄의 신문기사이건 간에 텍스트의 의미 중의 일부분만을 다룰 수 있을 뿐입니다. 물론 일부분이라 할지라도 공공의 영역으로 나오면 전체인 것처럼 확대되긴 하지만 그런 제도 속에 통용되는 의미들은 일률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도의 권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사진을 통해 대상을 인식한다는 게 무엇인가, 거기서 시선의 문제는 무엇인가, 주체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하는 식의 개입의 방식을 통해 모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미술관이라는 제도에 문제가 있으면 미술관을 부정하고 길거리에서 전시를 하자는 것은 아니고 그것이 제도이건 한 개인이건 권력이 있는 곳에는 저항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저항의 형태도 가시화된 것뿐만 아니라 소극적인 저항에서부터 나름대로 의미의 체계를 세워 기존의 헤게모니화 되어 있는 의미체계를 대치시키는 데에 이르기까지 그 층위와 가능성은 많다고 생각됩니다.
저의 사진적인 진리에 대한 반문은 사진이 조작된 것이고 왜곡이고 거짓이라는 게 아니고 사진이 진리로 통용되는 근거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회화처럼 작가가 손으로 만진 흔적들이 보이는 장르와 달리 사진은 가공의 과정들이 비가시화되기 때문에 또 사진이 진리로 통용되는 그 순간에 개입되어 있는 여러 담론이나 작용들이 비가시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자연스러운 진리의 체계로 보이게 된다는 점을 문제삼은 것이죠. 다큐멘터리 사진의 경우는 제가 ‘재현’이 비가시화 되어 있는 사회적인 영역들에 빛을 비춰 가시화 시킨다고 했는데 예를 들어 뉴딜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역할도 그런 문제들을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시키고 위기의 성격을 규정하는 거죠. 있지도 않은 위기를 만들어 조장한다는 게 아니고 위기를 규정하고 사람들한테 설득력 있게 사진이라는 객관적인 자료로 제시함으로써 공감하게 하는 그 힘이 사진의 객관성, 진실성에 있다는 것이고 그 근거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미혹의 체계를 개념적으로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작동’은 어떤 장면을 찍어 보여줄 때 그것이 특정한 실천의 영역에서 자료가 되기도 한다는 비교적 단순한 차원에서 사진이 하나의 기능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다음에 ‘수행’은 사실은 기호학과 연관되지요. 기호학에서는 텍스트 안에 어떻게 의미가 생기는가를 탐구합니다. 의미는 텍스트 안에 자명하게 들어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기호를 교환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따라서 ‘수행’은 교환행위를 말합니다. 사진에 있어서 교환행위란 단순히 사진을 옮겨 놓는 차원이 아니고 여러 차원에서 변형, 확대시키는 복합적인 과정들이 따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회 사진의 구조에서 사진의 객관성보다는 그것이 특정한 맥락에서 어떻게 의미화 되는가가 중요하고, 많은 경우 결정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진에 반쪽일지라도 실제로 객관성은 존재하는 것이고, 콘텍스트가 텍스트에 의존하는 측면도 있는데 그런 측면이 너무 간과되는 것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기호학 전체를 버려야한다는 결론인데…
이 그런데 사진의 객관성은 맥락에 의해 지지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것이 아무리 자명한 현장의 사건을 찍은 것이라 할 지라도 그 현장이 무엇인지, 나아가서 이것이 현장성이라고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사진 외부의 여러 체계들 소위 푸코가 진리의 체계라고 말한 그런 복합적인 체계 없이는 사진의 객관성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객관성이 없다는 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객관성은 맥락화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특정한 문맥에 개입하는 한에서 객관성이 의미를 갖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객관성이라는 말 자체는 단독으로 성립되지 않습니다. 객관성이라는 말을 할 때에는 객관적인 것에 맞서는 주체를 상정하는 것인데 주체란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에 몸 속에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언어와 사회적인 방식을 배우면서 형성됩니다.
아울러 박신의 씨께서 사진을 통해 어떻게 예술이 가능한가 하는 질문을 하셨는데 사진을 통해 개입하는 한에서 가능할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평론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진들은 기존에 예술 사진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영역들에 있습니다.
정 그런 말씀에서 제가 괴리감을 느끼는 이유는 한국적인 사진의 특수성에 대한 풍부한 논의가 뒤따르지 못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 한국에서 사진이 형성되어온 지형과 서구에서 사진이 형성되어 온 지형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들이 부각되어야 할 것 같아요. 사진은 기술뿐만 아니라 패러다임도 전부 서구에서 들여온 것이죠.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 나름대로 실천하는 사진의 방식이 있는데 그런 것들은 외국의 패러다임에 대한 변형, 대체, 모방의 다양한 차원들이 있을 수 있겠죠. 거기서 한 가지 중요한 차원은 그런 논의가 늘 한국에서의 현대성이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재정의로 확대되어 왔고 작가성이라는 개념도 그런 측면에서 강조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모더니즘의 세례라 할 수 있습니다.
사회 그와 관련해서 사진의 ‘수행성’을 개개의 사진 자체나 제도는 비어있는 것이고 그것을 계속 다른 방식으로 채우는 거라고 이해한다면 사진의 본질에 대한 정의는 모두 본질주의로 취급됩니다. 예를 들어 중요한 사진적 사건들, 예를 들면 근래 연일 금강산 사진이 신문에 실리는데 그 사진에 대한 비평이 전혀 개발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완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고 서구에서도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평가나 이론가들이고 작가는 많지 않아요. 그런 비어 있는 영역들을 작가로서의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일단 충분히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고 작가로서의 실천에 국한되지 않는 새로운 ‘사진활동’이 필요합니다.
이 더 궁극적으로는, 작가라는 개념의 토대가 되어 왔던 근대적 사고방식, 주체, 창작에 대한 토대를 검토해야지요. 결국 그것도 제도의 문제로 생각되는데 작가라는 제도를 다른 제도로 치환해보자는 거죠. 주지하다시피 롤랑 바르뜨는「저자의 죽음」에서 저자를 텍스트 의미의 유일무이한 의미의 원천으로서가 아니고 텍스트 의미를 스크립트 하는 사람으로 대치했습니다. 이는 제가 발표한 글에서 재현의 뒤에 원본이 없다고 한 것과 관련됩니다. 사진의 근거가 작가 외부에 있다는 것은 창작의 의미가 많이 탈색되어 저자 외부의 여러 이미지 텍스트의 조합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거죠.
셰리 레빈의 경우 워커 에반스의 작품을 그대로 모사한 극단적인 예죠. 그러나 그것이 또 하나의 독특하고 독창적인 행위로 남아있기 때문에 그것이 설사 하나의 추상적인 개념이라 하더라도 말 그대로 저자가 ‘죽은’ 예로 볼 수는 없습니다.
정 그렇게 기호적으로만 분석한다면 좋다, 나쁘다의 경계도 사라지고 작가가 만들지 않은 그 이외의 사진들로만 스크립트 한다는 건데… 셰리 레빈의 경우 개념이 철저하게 사진 안에 묻어 작가성이 살아 있어요. 현대 기호학이 그걸 뒷받침하고 있는 한에는 작가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누구의 작품이라는 게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셰리 레빈의 경우는 작가성이 작가의 사진성은 아니더라도 작가 자체에 대한 해석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예죠.
사회 셰리 레빈의 작업은 전통적인 의미의 작가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미술사에 등록되며 그러한 현대미술의 게임은 일종의 원칙처럼 지켜집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저자의 죽음’은 양의적인 것이고, 여러가지 상징게임의 하나일 뿐입니다. 작가성의 사멸 자체가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이 예술의 핵심은 기존의 개념들을 숭배하고 떠받들고 무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잘 노는 데에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고 그걸 독창성이라고 불러도 좋고 그걸 잘하는 사람을 작가라고 불러도 좋은 거겠죠. 다만 그 전제는 개입의 영역들을 인식하고 또 그런 개념적인 틀을 알고서 재미있게 하는 거죠. 앞에서 정 선생님께서 이런 이론적인 논의가 거리감을 준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러나 이런 이슈들에 대한 생각 없이 재미있게 작업하긴 어렵습니다. 이런 논의는 재미있게 하기 위한 토대로 주어지는 거죠.
이 경우에 논다는 것은 ‘쎄게’ 노는 걸 얘기하는 거죠. 가령 도박을 하는 사람도 분명히 책임감을 느끼잖아요. 머리에 무거운 돌을 떠 안고 낑낑 매는 식의 책임감이 아니고 이리저리 조작하고 다룰 수 있는 차원을 말합니다.
전용석 그렇다면 다른 걸로 그런 걸 적극적으로 하실 수 있을 텐데 왜 사진을 하시는지요? 사진과 같이 명령적인 형식보다는, 퍼포먼스나 보다 표현적인 전략을 택하는 것이 ‘잘 노는데’ 훨씬 강력한 수단이 되지 않을까요?
이 저는 사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주하씨 말씀과 관련해 말씀드리면 예술 사진이 재미없어 사회적인 영역을 끌어들이는 게 아닙니다. 예술의 문제 전반은 감각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 감각은 말초적이고 주관적인 게 아니고 사회화·문화화 되어 있는 한에서의 감각을 얘기하는 거죠. 또한 범죄 사진이나 주민등록증 사진이 다루는 영역들이 예술 사진 외부에 존재하는 별개의 영역이어서 사회적인 영역이고 그래서 그것이 여기 들어오는 것이 부차적인 개입이라는 뜻에서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진들에 구현되어 있는 감각 조작의 정도 그리고 감각 조작의 방식들이 예술 사진이 색, 톤, 형태의 문제를 첨예하게 다루는 데 비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이 예술로서의 사진과 연계를 갖는다는 것이지 사회적인 영역을 끌어들여야만 사진에 대한 논의가 풍부해진다는 것은 아니죠.
정 그런데 예술 사진 속에도 사회성은 반드시 들어 있어요. 풍경을 다루든 인물을 다루든 대상이 갖고 있는 사회적 맥락이나 인간과의 관계를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 거죠. 문제는 이영준 씨는 양쪽의 힘 중에 어느 한 쪽을 선택하고 계신다는 거예요. 예술로서의 사진에 대한 제 입장은 모더니즘적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세상 바라보기를 하는 거죠. 눈으로 보는 것과 카메라로 보는 게 다를 텐데 자율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매체로 자유롭게 대상을 판단하고 해석하는 것들을 재현하는 게 사진을 하는 제 입장입니다.
사회 세미나에 참여해주신 선생님들과 청중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세미나는 여러 가지로 장애가 많은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미술가와 사진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진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시도였고, 전제가 되는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포럼A’ 에서는, 이러한 세미나를 토대로 가능하면 매년 사진의 주요 이슈를 다루는 토론의 장을 만들어 갈 계획입니다. 장시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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