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정연숙
난해하고 충격적인 영상으로 매 작품마다 전세계를 놀라게 하는 매튜 바니의 〈크레매스터 사이클〉 연작이 최근 완결되었다. 파리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전시를 계기로 조각과 영상 언어가 결합된 총 다섯 편의 〈크레매스터 사이클〉을 살펴본다. 신화적 인물과 생존했던 역사적 인물, 자전적인 경험을 뛰어난 상상력으로 엮어내는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매튜 바니의 〈크레매스터 사이클(Crema-ster Cycle)〉(2002.10.10∼2003.1.5)은 본래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이 2001년을 염두에 두고 기획해 온 전시였지만, 미국의 9.11사태와 구겐하임 미술관의 내부 사정으로 인해 연기되다가, 10월에 파리의 시립미술관에서 먼저 개최되었다. 시네마와 조각적 언어를 연금술적으로 결합하는 매튜 바니는 1994년 〈크레매스터 4〉를 처음 제작하였으며, 그 후에는 〈크레매스터〉 1, 5, 2번 순서로 내용과 시각적 일관성을 무시한 채 자유자재로 제작하다가 올해 〈크레매스터 3〉을 마지막으로 총 8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를 모두 선보인다.
통상적인 영상작품과 달리 매튜 바니의 작품은 수많은 드로잉과 조각품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그 외 사진이나 여러 매체를 종합적으로 이용하고 있으나, 〈크레매스터〉 시리즈는 작가의 말대로 조각과 시네마라는 두 시각영역의 언어를 실험적으로 결합시키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고등학교 시절 미식 축구 선수였던 매튜 바니는 〈크레매스터 사이클〉 제작을 위해 생물학적 메커니즘에 관심을 갖고, 체온이나 공포심, 놀라움 등을 비롯한 감각의 변화와 같은 외부 자극과 관련하여, 고환의 상하운동을 조절하는 크레매스터 근육(cremaster muscle)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또 그는 태아의 생식기가 형성되기 직전 상태인 임신 직후부터 약 6주까지의 기간 동안 보여 주는 태아의 성적 불확정 생물학적 양상을 바셀린 등의 질료를 사용한 조각적 프로세스를 통해서 작품에 형상화한다. 그리하여 크레매스터라는 단어는 남성 생식기를 상승시키고 억제하는 근육을 뜻하며, 이러한 근육의 변화를 통해서 생식기가 무정형의 형태로 변하여 정체성 또는 성향이 변하게 된다.
그는 크레매스터 근육을 남성의 욕망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각 에피소드에 따라서 이 기본 개념은 생물학적으로 반응하거나 직설적으로 상징적으로 모호하게 반응하게 되며, 내러티브와 그 구조를 설정하기 위한 틀일 뿐, 생물학적 체계를 정의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총 다섯 편의 사이클에서 크레매스터 근육은 남성과 여성의 욕망 외에도 미국의 정치·사회적 인물 상징 등과 조합하여, 다층적인 의미와 상징을 띠면서 자전적 내용 및 그리스 신화, 작가가 구축한 또 다른 은밀한 세계와 광범위하게 섞여 있다.
작가의 자전적인 일기는 작품 읽기에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보통 진부한 내용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하지만 매튜 바니의 크레매스터 사이클에는 미국의 실존 인물 외에도 자전적인 내용이 각 사이클에 여기저기 삽입되어 있다. 매튜 바니 자신이 사티로스, 마술사, 수양, 미국의 유명한 마술사 해리 후디니(Harry Houdini), 또 살인자로 1970년대 미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게리 길모어(Gray Gilmore)로 등장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모두 작가가 살았던 장소나 경험과 결합된다.
매튜 바니는 196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으며, 6세에 가족을 따라 아이다호로 이사를 갔으나 곧 부모가 이혼한다. 그는 아버지와 계속 아이다호에서 살면서 고등학교 시절에는 미식 축구팀에 가담한다. 뉴욕에 살던 어머니를 간혹 방문하면서 조각과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고, 1991년 예일대학을 졸업하면서 센세이션과 거부감을 함께 일으키며 뉴욕 미술계에 입문한다. 이러한 자전적 내용은 산발적으로 〈크레매스터 사이클〉에 도입되지만, 복잡한 내러티브를 통해서 일관되고 직설적이거나 논리적인 줄거리를 거부한다. 그리하여 각 사이클 내용은 그 나름대로 장소와 특정 내용을 띠고 진행되지만, 사이클 전체가 내용과 영상, 형태 면에서 깔끔하게 조합되지 않고, 퍼즐식으로 여기저기 결합된다. 사이클이 진행되는 장소도 다양하게 아일 오브 맨(the Isle of Man), 유타주의 본빌 솔트 플래츠(the Bonneville Salt Flats),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 맨해튼의 크라이슬러빌딩이 선정되며, 연대기적으로 1870년대 해리 후디니로부터 1970년대 게리 길모어에 걸쳐지며, 문화적인 배경과 건축물도 필요와 에피소드에 따라 개별적으로 선정되어 아르 데코적인 1930년대의 빌딩, 바로크 양식의 오페라극장 등이 혼성적으로 뒤얽힌 복잡한 양상을 띤다.
다섯 편의 장편 영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동시에 미술관에 설치된 조각품들은 일종의 무대 소품처럼 영화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연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매튜 바니는 〈크레매스터 사이클〉 이전 작품이었던 〈트랜스 섹슈얼리스(Trans Sex-ualis)〉에서도 바셀린으로 캐스트된 조각품을 포함하였다. 그는 바셀린이나 왁스, 플라스틱 레진과 같은 유연성 있는 재료를 선호하면서도 이러한 매체가 낳는 형태(form)와 무형(informe)의 조형성이나 조화와 긴장 관계를 이용하는데, 이는 〈크레매스터 3〉에 등장하는 바셀린으로 제작된 술집 바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1970년대의 프로세스 미술이나 신디 셔먼의 퍼포머티브한 작품 등에서 영향을 받았다.
다섯 편의 연작 시네마는 작가의 말대로 내러티브에서 나타나는 줄거리도 중요하지만, 실은 시네마 자체를 조각이라는 장르로 인정하면서 주변 설치작품의 일부로 작용한다. 그리하여 5개 사이클의 영상물을 직접 보는 것 못지않게 그 주변을 에워싼 조각품들이 각 사이클의 분위기, 특정 장소를 연상시키고, 그 벽을 에워싼 각 사이클의 문장은 각 장소가 갖는 성격이나 소세계의 깃발처럼 다른 세계와 구별하게 만든다. 이러한 각 사이클은 이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유연한 전시공간 형태와 건축물, 또 작가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카펫과 푹신푹신한 전시장의 복도와 설치품에만 포커스를 맞춘 균일한 불빛을 통해서 작품의 전체적 조화를 일구어 사이클 전체가 어느 한 시점에서 출발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5개의 사이클이 계속 유기적으로 순환되는 시작과 끝이 없는 고리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다. 4편에서 시작하여 3편으로 끝나는 그의 사이클도 생물체의 유기적 관계를 설정하듯이 사실은 시작과 끝을 거부하는 윤회적인 서술방식이다.
〈크레매스터 사이클〉 전체의 형태나 내용을 각각 살펴보기 이전에 총 다섯 편의 작품을 형식적으로, 내용 면에서 모두 연결하는 유일한 고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매튜 바니가 다른 작가와 다른 점은 자신이 여러 인물로 분장하고 가장하여 충격적으로 혹은 선정적으로 보이게 한 사진작품 때문이라기보다는, 사라져 버린 신화와 서사시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과 조각 설치 작품과 이를 미적으로 풀어내는 창작능력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더불어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괴물인지, 악마인지 모를 정의할 수 없는 혼성적인 인물 선정과 이를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을 떠난 일종의 무정형의 성이라는 새로운 성을 일구어낸 점이다. 그의 작품이 흥미로운 점은 1990년대의 많은 작가가 몰두했듯이 섹스(성)와 젠더라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물론 그의 작품이 1990년대의 몸에 대한 담론과 관계되지만), 이러한 질문과 이러한 젠더와 성을 둘러싼 신체의 결정적 형태를 거부하는 듯한 작품 태도에 있으며, 그에게 젠더와 성이라는 문제는 작품의 재료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이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구별되는 요소로는 여러 형태, 혹은 타입의 젠더가 등장한다는 점과 나아가 공상과학 소설 같은 내용과 더불어 할리우드 영상 이미지와 독립 영화적인 요소, 그리고 미식 축구 선수로서의 남성 근육, 생체적인 욕망과 변형 등을 둘러싼 자전적인 경험, 정신분석학적인 복잡한 패러다임과 일종의 멜로드라마적인 사랑이야기를 신화적인 인물과 생존했던 미국인들을 혼합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매튜 바니의 〈크레매스터 사이클〉은 대학 졸업 이후 작업했던 작품들의 총 완결작품으로 1992년 카셀 도큐멘타의 지하실 주차장을 무대로 영상화되고, 또 동일 장소에서 전시되었던 〈Otto-shaft〉는 5개의 유기적인 사이클과 직결되는 비디오 설치품으로서 후디니를 등장시켰다. 그 후 매튜 바니는 1993년 〈Drawing Restraint 7〉을 제작해 아폴론적인 세계와 디오니소스적인 세계를 나란히 그렸다. 특히 그리스 신화의 아르카디안적인 세계와 자신이 직접 등장하는 사티로스라는 인물과, 또 디오니소스적인 끝없는 욕망과 광란하는 본능의 분출 등을 주제로 신화에 대한 복귀와 바커스 축제를 연상시키는 무대로 구조와 어떤 신체적 정의나 체계 등이 부재하여, 이것이 바로 생식기 형성 이전의 세계라는 가상적인 공간을 창조한다.
〈크레매스터 1〉(1995)은 매튜 바니가 태어난 아이다호주 보이시의 미식축구 경기장을 무대로 일어나며, 경기장 위로는 타이어 회사인 굿이어(Goodyear)사의 대형 풍선 두 대가 둥둥 떠있다. 미식 축구 경기장에서 일어나는 행동이나 움직임은 이 두 공중 풍선에서 일어나는 내용과 동일하다. 각 풍선은 1930년대 스타일의 유니폼을 입은 스튜어디스의 모습으로, 이들은 흰 천과 포도-한 대는 적포도, 다른 한 대는 청포도-로 둘러싸인 중앙 테이블을 에워싸고 있다. 그 테이블의 중앙에는 바셀린으로 뒤덮인 여성 생식기를 상징하는 조각품이 있으며, 하얀 천으로 둘러싸인 벽 안은 〈크레매스터 1〉의 굿이어라는 여주인공이 생성되는 곳이다. 창백한 이 여자가 포도를 집기 위해서 테이블 위로 구멍을 내고 포도가 천천히 테이블 안의 작은 공간으로 떨어지면서, 갑자기 발가락 사이로 뿔이 생성되고, 포도 알이 몸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신발의 뿔에서 나온다. 그러는 사이에 미식 축구 경기장에서는 1930년대의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듯한 노랫 소리와 무용동작이 계속된다. 보통 2∼5편의 〈크레매스터 사이클〉이 남성의 신체 변형과 욕망의 양상을 보여 준다면 1편은 유일하게 여성 신체의 변형을 보여 주며, 일종의 바비 인형 같은 무용수들이 축구장을 뒤덮고 있는 장면이다.
〈크레매스터 2〉(1999)는 1980년대 퓰리처상을 수상한 노먼 메일러(Norman Mailer)의 〈사형집행인의 노래〉에 기초를 둔 에피소드다. 1977년에 사형당한 게리 길모어는 미국이 사형제도를 재실행한 이래 처음으로 처형당한 인물로, 사형제도에 저항하지 않고 처형당한 길모어의 정치적·도의적·순교적 일생을 상징하는 동시에 미국 사회의 소외감과 개인의 외로운 감성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길모어의 극악무도한 살인 일기는 그가 남긴 자료에 근거해 메일러를 통해서 거듭 다뤄졌다.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와 유타와 캐나다 로키 산맥을 주무대로 하는 이 에피소드는 메일러 본인이 직접 후디니 역할을 하고 나타나며 매튜 바니 자신이 길모어 역할을 하여, 실제로 있었던 살인행각을 카메라 조작을 통해서 보여 주며 주유소를 폭파한다. 회의가 일어나는 벌집 모양의 방은 길모어가 거주했던 유타주(흔히 유타주를 Beehive state라고 함)와 그의 종교이기도 했던 모르몬 교도를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공간이며, 길모어로 분장한 매튜 바니가 〈크레매스터 사이클〉 모두에 등장하는 바셀린으로 뒤덮인 끈적끈적한 방에서 천천히 움직이면서 동작을 변형시키는 장면을 보여 준다.
하나의 고리로 이어진 다섯개의 에피소드
〈크레매스터 3〉(2002)은 뉴욕시의 크라이슬러빌딩을 무대로 하며, 사라토가 경마장을 그 무대로 하는데, 특히 후자의 장면에는 이미 죽어버린 말이 초현실적인 자연을 무대로 질주하고 있다. 또 구겐하임미술관에서는 리처드 세라가 뜨거운 바셀린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디자인한 회전식 건축물에 뒤엎어 버리는데, 이 장면은 1960년대에 세라가 퍼붓던 금속조각품을 연상시키며, 죽어버린 말들은 다시 2편의 길모어의 살인적 행위와 연결되기도 한다. 올해 만들어진 3편은 1, 2편과 4, 5편을 중심적으로 묶어 주는 동시에 크라이슬러빌딩을 1930년대 제일 고층 빌딩으로 짓고자 했던 건물주와 건축가, 그를 둘러싼 경쟁상대들의 음모에 초점을 맞추면서 중간중간 차를 박거나 말들이 치어 죽는 폭력적인 장면을 그린다.
〈크래매스터 4〉는 1994년에 제작된 첫 에피소드로, 신화와 마술적인 무대장치와 무한한 꿈과 제례적 의식을 비롯한 소우주적 세계를 보여 주는 장면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크레매스터〉일 것이다. 매튜 바니는 타락한 악마나 루시퍼, 혹은 빨간 머리의 사티로스의 상징체로, 즉 러프턴 캔디딧(Loughton Candidate)이라는 인물로 등장하고, 영국식 양장을 입고, 머리 부분에는 뿔 흔적처럼 구멍이 두 개 만들어져 있으며, 영화가 시작되면서 두 개의 뿔이 천천히 여러 개로 나뉘어 자라난다. 두 명의 다른 인물은 모터 사이클 팀과 매튜 바니를 둘러싼 분신격인 세 명의 수행자로 진행된다. 특히 빨간 인물과 사티로스는 매튜 바니의 초기 작품인 〈Drawing Restraint 7〉에서 이미 등장했던 인물의 변형작이다.
마지막으로 〈크레매스터 5〉(1997)는 우르술라 안드레스(Ursula Andress)와 매튜 바니가 등장하는데, 비극적인 사랑, 상심과 이별을 노래한다. 세포의 분리와 이동을 연상시키는 은유적 형태와 누에고치 형태의 비행풍선을 타고 굿이어가 등장했던 1편의 은혜스러운 생성의 신비와는 거리가 먼, 어둡고 비극적인 서사의 한 장면을 보여 준다. 특히 〈크레매스터 5〉는 헝가리어로 구사되는 바로크 오페라로, 음악적 영감을 위해서 바톡이나 터키와 헝가리 민속음악도 함께 연구하였고, 이 장면을 위해서 조나단 벨퍼가 작곡했다. 1930년대의 마를렌 디트리히(Marlene Dietrich)을 연상시키는 우르술라 안드레스가 부르는 음조는 〈일리아드〉의 슬프면서도 장례식의 음률을 연상시키는 서사적 느낌을 전달한다. 한편 후디니의 또 다른 분신체로 등장하는 마술사 역의 매튜 바니는 안드레스가 연기하는 체인의 여왕(the Queen of Chain)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1873년에 지어진 헝가리의 주립 오페라극장은 1년 후에 태어난 해리 후디니를, 즉 다음 편으로 제작된 〈크레메스터 2〉를 예시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스의 비극처럼 5막으로 구성된 5편은 검은 베일에 가려진 여왕의 음율과 팬터마임을 하는 듯한 매튜 바니의 상응된 병치는 아리아의 슬픈 곡조를 더욱 멜로드라마 식으로 자극한다.
언뜻 보기에 퇴폐적이고 악의적이며 반항적인 작가적 충동을 일구어 내는 매튜 바니의 상상력과 신화와 역사에 대한 일종의 복귀를 탐색하면서, 매튜 바니와 조르쥬 바타이유의 세계관을 지속적으로 비교하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바타이유의 에로티시즘적 세계와 비의적, 신비적 세계, 제물 바치기나 신화의 복귀, 죽어버린 신화에 대한 갈망을 주제로 피, 육체적 사랑이나 폭력, 디오니소스적인 격렬한 충동을 숭배하는 듯한 매튜 바니의 세계는 어쩌면 정체성의 정치적인 게임을 종식시키는 새로운 실험을 향한 함성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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