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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5-12-09 05:59:00, Hit : 411)
[기사]비글의 기원 혹은 삶의 연원
다시 도마에 오른 진화론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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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있어 몇안되는 진실 중 하나는.
진정의 고민은 언제나 선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 괴념들이 오버로 점철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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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기원에 대한 인식 바꿔놓은 다윈의 업적 창조론 강조하는 종교계에 위협으로 인식돼

Evolution of a Scientist

1831년 12월 어느 날 밤, 영국 해군함 비글호는 남미 연안의 해도 작성 임무를 띠고 영국의 플리머스항을 출발했다. 그러나 그 항해는 곧바로 21세기로 이어졌다. 승무원 중에는 22세의 아마추어 박물학자 찰스 다윈이 있었다. 부유한 시골의사의 아들인 다윈의 주임무는 붙임성 없고 침울한 성격인 선장 로버트 피츠로이의 말동무가 되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 5년 동안, 그 작은 배(전장 27.4m에 폭 7.3m)는 아르헨티나 연안을 오르내리고, 험난한 마젤란 해협을 통과해 태평양으로 항해한 뒤 호주와 케이프타운을 거쳐 고국으로 돌아왔다.

항해 끝 무렵 비글호는 외딴 섬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5주간을 보냈다. 대형 육지거북과 흑도마뱀, 아주 다양한 피리새류들의 서식처였다. 이곳에서 다윈은 4반세기 뒤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에서 서술할 진화론의 개념 중 일부를 체계화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출간된 그날부터 오늘날까지 줄곧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의 반열에 들었다. 20세기의 지적 역사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혁명적 사상가들 중 두 명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카를 마르크스는 오늘날 빛을 잃었다.

나머지 한 명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현대 사상의 정전에 받아들여졌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그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다윈 한 사람만이 완전히 이해되지도 않았고, 여전히 도발적이며, 심지어 어떤 사람들에게는 위협적인 존재로 남아있다(미국의 보수파 전도사 팻 로버트슨은 최근 펜실베이니아주 도버의 시민들에게 고등학교 생물학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에서 다윈의 편을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분노를 초래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과연 하나님이 그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분노할까?

11월 19일 뉴욕의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서 개막된 매력적인 새 전시회로 인해 비록 의도하지 않더라도 이 같은 물음이 불가피하게 제기됐다. 이곳에는 다윈이 열광적으로 수집한 딱정벌레들, 집요하게 연구한 화석과 양치류, 그리고 밀워키 카운티 동물원에서 부화시키기는 하지만 그가 맨 등에 올라타고 다녔던 종과 똑같은 종류의 살아있는 갈라파고스 거북 두 마리가 전시돼 있다. 다윈이 일생 동안 간직했던 소장품들도 전시됐다. 소형 단발 권총과 확대경·돌 망치, 그리고 항해 시작 전 성직자가 되려고 공부한 사실을 일깨워주는 유물로 그와 함께 전 세계를 누빈 성서가 있다. 실제로 항해에 반대한 부친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윈은 “성직자로서 나의 인격에 두고 두고 불명예스러운 일”이라고 시작되는 부친의 반대 이유를 모두 열거했다.

그로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전시회는 보스턴·시카고·토론토에서 순회전을 가진 뒤 다윈 탄생 200주년이 되는 2009년 런던에서 막을 내릴 예정이다. 전시회 개막과 때맞춰 우연히도 두 권의 다윈 선집과 베스트 셀러 작가 존 단턴이 쓴 소설 ‘다윈의 음모’(The Darwin Conspiracy)가 출간됐다. 이 소설은 자신의 경쟁자를 화산으로 보낸 뒤, 그의 학설을 도용해 유명해지는 모사꾼으로 다윈을 묘사해 역사를 왜곡한다. 영국 당국은 10파운드 지폐에 새겨진 초상화 가운데 그와 마찬가지로 수염 기른 빅토리아 시대의 영웅 찰스 디킨스를 다윈으로 바꿀 예정이다. 미국 자연사 박물관 고생물학 학예연구관 나일스 엘드리지는 “다윈의 학설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조차도 그 인물에 대해서는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부분적으로 다윈의 매력은 진화론이나 자연선택론이 아니라 ‘다윈주의’(Darwinism)에 반대해 싸운다는 그의 비판자들 때문에 생겨난다. “다윈주의는 ‘마오쩌둥(毛澤東)주의’처럼 진화론을 일종의 종교같이 보이게 하려는 수사적 기교”라고 하버드대 생물학자로 최근 발간된 다윈 선집 두 권 중 한 권의 편집자인 E O 윌슨이 말했다(나머지 한 권은 DNA 공동 발견자인 제임스 D 왓슨이 편집했지만 두 선집 모두 같은 책 4권을 실었다). 윌슨은 “과학자들은 이를 다윈주의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다윈이라는 인물은 실제로 매력적이다. 그의 삶 자체가 도덕적 확신에서 근대성 체험을 규정짓는 존재의 불확실성을 향해 나아간 고통스러운 여정을 잘 보여주었다. 다윈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모험 중 하나를 감행한 활기찬 야외 활동가였다. 그러나 그 뒤로는 두 번 다시 영국을 떠나지 않았다. 항해에서 돌아온 뒤 몇 년간 런던에서 살다가 친사촌 에마와 결혼한 뒤 시골집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여생 40년 동안 저술과 연구를 하며 자녀 열 명을 키웠다. 자녀들에게 특히 헌신적이었다. 엘드리지 학예관은 전시회와 함께 발간한 책 ‘다윈: 생명의 나무 발견’(Darwin: Discovering the Tree of Life)에서 ‘종의 기원’에 나오는 학설이 1830년대 다윈의 공책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간하지 않고 있다가 1859년 자기보다 젊은 과학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유사한 이론을 정립했다는 소문을 듣고는 마침내 발표했다. 말년 내내 다윈은 장(腸)곤란증과 심장 두근거림에 시달리면서 한 번에 한두 시간 이상 일할 수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의 병에 대해 두 가지 설이 있다. 남미에서 감염된 기생충 때문이라는 설과, 엘드리지가 믿는 대로 자기의 지적 여정이 자신과 세상을 어디로 이끌 지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는 설이다. 아내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그 여정의 종착점은 분명히 지옥으로 여겨진 듯했다. 천국을 가기로 결심한 에마는 서로 영원히 헤어져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통받았다.

다윈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잘 알고 있었다. 일찍이 1844년 한 친구에게 보낸 유명한 편지에서 진화론 발표가 ‘살인을 고백하는 일’과 같은 행위라고 적었다. 성서 속에서 진리를 찾는 데 익숙한 사회에 다윈은 진화론 개념을 제시했다. 생명체의 계보가 창세기에 쓰여 있듯 불변의 형체로 갑자기 나타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고, 분화하며, 시간이 흐르면 소멸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설에 따르면 현재 존재하는 생명체 대부분은 하나의 종, 기껏해야 몇 개의 원형 종(이 점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하지 않았으며 현재의 생물학자들도 아는 게 없다)에서 유래됐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이 주장도 그 자체로는 완전히 새로운 이론이 아니었다. 다윈의 친조부로 박식한 학자였던 에라스무스 다윈은 그 수십 년 전에 이와 약간 다르지만 매우 근접한 이론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 이론에 확실한 증거를 가장 먼저 찾아낸 사람은 찰스 다윈이었다. 당시 지질학자들은 지구의 나이가 수백만 년(오늘날 우리는 지구의 나이가 약 45억 년에 이른다는 사실을 안다)에 달한다고 결론내렸다. 그 점이 다윈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 이전에는 성서를 토대로 한 어셔 대주교의 계산에 따라 지구가 기원전 4004년에 창조됐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그 지구 나이로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온갖 종류의 딱정벌레, 아니면 다윈이 직접 수집한 딱정벌레 종류조차도 설명할 연대적 범위를 제공할 수 없었다. 아울러 다윈은 공책과 표본을 가득 담은 가방들을 영국으로 가져갔다. 아르헨티나에서 그는 사냥감으로 즐겨 잡았던 일반 아르마딜로와 닮은 멸종된 갑주 포유동물인 글립토돈트의 뼈대 화석을 발굴했다. 아르마딜로는 양은 얼마 안 되지만 “껍질째 구우면 아주 훌륭한 요리가 된다”고 그는 썼다. 반면 글립토돈트는 크기가 하마만 했다. 두 종이 한곳에서 발견된 게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아직 생존하는 작은 종이 멸종한 큰 종에서 유래된 것인가?

그러나 가장 중요한 발견은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나왔다. 그 제도에서 960㎞ 떨어진 남미에서 발견된 동물들과 뚜렷한 유사점을 가진 종들이 그곳에 서식하고 있었다(물론 서로 다른 점도 있었고 섬들 사이에도 작은 차이가 있었다). 다윈의 생각에 육지에서 건너온 종들이 제도를 지배한 뒤 서로 다른 경로로 분화된 게 분명했다. 그는 거북의 등딱지를 보고 어느 섬에서 태어난 거북인지 구분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전지전능한 신이 각 섬에 사는 거북들에게 서로 다른 등딱지를 친히 만들어 주었다는 말인가?

다윈의 더 위대하고 독창적인 업적은 설득력 있는 진화 논리를 제시한 점이다. 자연의 모든 분야에서 신의 손길을 보라는 가르침을 받은 세상을 향해 다윈은 완전히 다른 창조의 힘을 제시했다. 그 힘은 명령을 내리지 않고 도덕적으로 중립인 과정이었다. 다윈은 그 힘을 자연선택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적자생존’이라고 불렀다. 그 용어는 다윈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사회경제적 경쟁의 뜻을 포함하게 됐다. 그러나 다윈은 토머스 맬서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맬서스는 포식자·질병, 그리고 한정된 식량 공급이, 그렇지 않았으면 무제한으로 늘어날 인구에 제약을 가한다고 주장했다.

동물들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친다. 다윈은 평균적으로 볼 때 승자가 패자들에 대해 약간의 강점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추론했다. 특히 다윈의 결정적인 통찰력은 우연히 주위 환경에 더 잘 적응하게 된 유기체(달리는 속도가 좀 더 빠른 늑대나 사슴)가 생존 가능성이 더 높으며, 그 특징들을 다음 세대에 넘겨줄 확률이 더 높다는 판단이었다(현대 용어로 표현하면 ‘유전자’를 물려준다고 하겠지만 다윈은 유전론이 이해되기 훨씬 전에 이 이론을 제시했다). 물론 이것은 상대를 제압하면 끝나는 일차원적 경쟁처럼 단순하지 않다. 만약 기후가 변하면 더 두터운 털가죽이 승리를 안겨주는 강점이 될 수 있다. 어떤 종들에게는 지적 능력이 유용한 특징이 됐다. 진화는 많은 이런 사소한 변화들이 쌓여서 이뤄지며, 완전히 새로운 종의 출현으로 막을 내린다. “자연의 투쟁, 기아와 죽음에서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목표, 다시 말해 좀 더 높은 단계의 고등동물이 출현하게 된다”고 다윈은 썼다.

다윈의 학설에는 더 큰 문제의 소지도 있었다. 다윈의 위대한 저서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됐다고 믿어지는 종(인간)에 대한 부분은 다음과 같은 모호한 문장 하나뿐이다. “인간과 인간 역사의 기원에 대해 많은 빛이 드리워질 것이다.” 더 자세한 설명은 12년 뒤 발표된 ‘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n)에 나온다. 유인원을 통해 인간을 동물의 왕국에 사는 다른 종과 명시적으로 연결지은 책이다. “비록 스스로의 노력을 통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생명체 세계의 가장 꼭대기에 오르게 된 데 대해 인간은 어느 정도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지 모른다”라고 다윈은 적었다. 그렇게 인간의 자부심에 약간의 선심을 쓰고는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결론을 내렸다. “인간은 모든 고상한 자질들에도 불구하고… 지울 수 없는 천박한 기원의 낙인을 여전히 몸에 지니고 있다.”

따라서 1860년(영국 성공회 주교 새뮤얼 윌버포스와 다윈의 옹호자인 토머스 헉슬리가 옥스퍼드에서 대논쟁을 벌인 해) 당시에도 많은 사람은 다윈이 단순히 6일간의 창조에 관한 성서 내용만 거스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당시 영국의 많은 식자층은 그 성서 내용을 기꺼이 비유적 의미로 받아들이려 했다). 논리적으로 따져볼 때 다윈의 생각은 신을 믿는 모든 종교는 아니라 하더라도 기독교의 기반 자체를 손상하는 듯했다. 기원으로 올라가면 수백만 년 전의 단세포에서 시작되고, 무수한 소멸과 분화를 거쳐온 모든 생명계가 정말 성서에 나오는 창조 대목의 서곡이며 배경이라는 말인가? 초기 유인원 종에서 작은 변화들을 거치며 쭉 이어져 내려온 호모 사피엔스(현 인류)는 과연 어느 시점에 영혼을 갖게 된 것일까? 다윈의 열렬한 옹호자이며 종교를 믿지 않는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론이 “지적으로 충만한 무신론자가 되는 일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글로 유명하다.

다윈은 일생 동안 믿음의 문제와 씨름했지만 결국은 자신을 ‘불가지론자’라 불렀다. 그러나 다윈은 잘 알려졌으면서도 다른 노선을 통해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프린스턴대에서 ‘우리 시대의 다윈’이라는 과목을 가르치는 환경역사학자 윌리엄 호워스는 다윈이 기독교에 대해 회의하게 된 시점을 노예 소유 기독교인(이들 중 일부는 성서를 근거로 노예 소유를 정당화했음이 분명하다)을 보았을 때라고 주장했다. 열렬한 노예 폐지론자였던 다윈은 이들에 대해 크게 분노했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다윈은 악의 존재 문제를 다룬 신의론(神意論)이 못마땅했다.

자비롭고 전지전능한 신이 자신이 창조한 세상에 어떻게 이토록 많은 고통을 허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기독교인들은 인간이 겪는 고통은 인간을 고상하게 만들고 ‘도덕을 고양시켜 주는’ 촉진제라고 주장한다는 사실을 다윈도 인정했다. 그러나 딱정벌레·개구리·뱀, 그리고 도덕과는 무관한 수많은 잡식동물을 속속들이 알게 되면서 다윈은 이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게 됐다. 신은 ‘수백만 마리의 하등동물이 거의 쉼없이 겪어온 고통’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말인가? 어쨌든 다윈의 생각은 1851년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그해 다윈의 사랑스러운 맏딸 애니가 열 살의 나이로 죽었다(결핵으로 추정된다). 그를 더욱 어두운 절망의 길로 인도한 고통스러운 사건이었다.

다윈이 임종 때 다시 하나님을 믿고 자신이 평생 한 일에 대해 회개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그의 가족들은 이를 한사코 부인했다. 그러나 다윈은 바늘구멍 같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문을 통과해 1882년 명예롭게 그곳에 안장됐다.
따라서 오늘날까지도 기독교 근본주의를 믿는 사람들이 다윈과 다윈의 업적을 의심한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구의 80%가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는 미국에서 진화론을 믿는 사람이 절반도 안 된다는 사실 또한 당연한 일이다. 일부 신자들은 과학과 종교의 영역을 구분함으로써 불가능한 일을 해내려 했다. “과학의 적절한 역할은 물질 세계에 대해 자연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일”이라고 생물학자로 인간지놈프로젝트(HGP) 소장이며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인 프랜시스 콜린스는 말했다. “과학은 ‘도대체 왜 우리는 지금 이곳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아무런 대답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철학과 신학의 역할이다.”

진화론과 종교적 불가지론에 대해 많은 글을 남긴 고(故) 스티븐 제이 굴드도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도킨스가 쉼없이 목격한 대로 종교 쪽에서는 진화론의 주장과 상충돼 보이는 특별한 형이상학적 주장들을 내놓고 있다. 이 주장들을 다루려면 성서 해석상 약간의 기술이 필요하다. 콜로라도 주립대의 철학자로 ‘유전자, 창세기, 그리고 하나님’(Genes, Genesis and God)의 저자인 홈스 롤스턴 3세에 따르면 모든 동식물이 똑같은 기본 질서에서 출현했다는 과학적인 설명을 시적으로 표현한 게 성서의 창조 이야기라는 것이 주류 기독교 신학교들에서 고수하는 주된 시각이다.

이 해석에 의하면 신은 자신의 피조물들에게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자율권을 부여한다. 롤스턴은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한 뒤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고 이르셨다는 창세기 1장 11절을 예로 들었다. “우주 대폭발 때 우주가 제대로 만들어지도록 해줄 훌륭한 건축가가 필요했다”고 롤스턴은 말했다. “하지만 성서의 설명은 피조물들이 이런 능력을 풍부하게 갖춘 지구에 태어나도록 하나님이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콜린스는 영혼을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인간의 독특한 감각인 도덕률과 동일시한다. “따라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이 도덕률이 인간이란 종으로 진입한 순간을 묘사했다고 해석될 수 있다”고 콜린스는 말했다. “이것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두뇌 발단이 어느 수준에 도달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도덕률 자체는 순전히 생물학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다윈 전시회는 현재 진행 중인 ‘다윈 때리기’가 시작되기 전인 2002년에 구상됐다.

그러나 그 뒤 3년 사이 박물관 관리들은 논란 부분(특히 자연선택의 대안으로 부상한 ‘지적 설계론’)에 전시물을 크게 할애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지적 설계론은 많은 상호의존적인 기관들로 구성된 복잡한 생물학적 기관(예를 들면 눈)의 출현 배경에는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고 주장한다. 옹호론자들은 이 이론이 학계에서 받아들여지도록 분투했지만 압도적인 수의 생물학자들은 이를 의미 없는 개념으로 무시한다. 콜린스는 전시회에 제공되는 비디오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 과학에서 여러분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는 틀림없이 신의 분야라는 게 지적 설계론의 주장이다. 역사적으로 이런 주장은 설득력을 크게 얻지 못했다. 만약 우리의 눈이 어떻게 진화해 생겨났는지 과학이 설명하게 된다면 신의 자리는 어디인가? 나는 과학이 이 일을 해낼 것으로 믿는다….”
신의 자리는 어디인가? 코페르니쿠스가 신을 향해 매일 태양을 하늘 위로 솟아오르게 하는 임무를 수행할 필요가 더 이상 없다고 선언한 이후 지난 500년간 새로운 과학 이론이 나올 때마다 바로 그런 슬픈 합창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교회는 결국 태양계의 실제 원리를 받아들였다. 다윈은 ‘종의 기원’의 감동적인 결론 부분에서 바로 그 점을 거론했다.

어쩌면 의도적이었을지 모른다. “생명에 대한 이런 생각에는 심원한 뜻이 담겨 있다… 지구가 중력이라는 고정된 법칙에 따라 도는 동안 시초에 그토록 단순하던 것에서부터 이토록 아름답고, 이토록 훌륭한 형태로 쉼없이 진화돼왔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다윈은 그물·권총·확대경들로도 신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마찬가지로 성서도 다윈이 발견한 피리새들 사이의 유전적 관계에 관해 아무런 설명도 제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종류의 지식을 모두 탐구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어쩌면 지구가 몇 바퀴 더 공전한 뒤 이 두 가지 지식 모두를 평화롭게 추구할 길을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ANNE UNDERWOOD and WILLIAM LEE AD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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