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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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8-09-07 13:46:40, Hit : 986)
전시 9.7



Instant Landscape

김남표展 / KIMNAMPYO / 金南杓 / painting

2008_0903 ▶ 2008_0917 / 월요일 휴관



김남표_INSTANT LANDSCAPE76_캔버스에 숯, 인조털에 스크래칭_193×259cm_2008




초대일시_2008_0903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인_GALLERY IHN
서울 종로구 팔판동 141번지
Tel. +82.2.732.4677~8
www.galleryihn.com






갤러리 인은 오는 3일부터 17일까지 김남표의 개인전을 개최한다.『인스턴트 랜드스케이프』란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자연의 풍경과 일상사물의 형상들이 결합된 형태로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는 김남표의 근작들을 선보인다.




김남표_INSTANT LANDSCAPE 3_인조털에 스크래칭_91×116.8cm_2006



김남표_INSTANT LANDSCAPE 50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07


인스턴트는 본래 과거와 미래 사이를 잇는 '지금'이라는 지극히 짧은 시간적 규정을 갖는 말이다. 그렇지만 현실사회에서 인스턴트는 인간이 짧은 순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한번 쓰고 버리는 일시적인 상품 앞에 붙어 부정적 의미로 통용된다. 하지만 김남표는 오히려 대상의 인식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 우리의 지각을 더욱 열리게 하는 능력에 관심을 가진다. 대상을 한번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은 언제든지 여러 번 보는 상황과는 다르게 우리의 감각을 더욱 집중력 있게 만든다는 일종의 긍정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김남표_INSTANT LANDSCAPE 60_캔버스에 숯, 인조털에 스크래칭_162×130cm_2008



김남표_INSTANT LANDSCAPE 74_캔버스에 숯, 인조털에 스크래칭_227×181cm_2008


최초의 작품은 인조털을 이용한 작업인데 결이 서거나 뉘였을 때 톤의 변화를 응용, 시각화 시켜 풍경을 그려 낸다. 털은 빗어내면 이미지는 금방 사라져 버리며 게다가 검은 털로 뭉쳐있기에 결의 흐름을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그 풍경을 볼 수 없다. 작가는 그렇게 이미지의 순간에 집중한다. 털 작업이 표현의 일시적 순간에 대한 탐구였다면 이번 파스텔 회화는 화면에 등장하는 개체에 반응하며 작가의 순간적인 발상에 의한 결과물이다. 여기에도 인조털을 화면에 직접 붙이는데 털은 작가의 작업의 모태가 되는 오브제로 촉각적 물체를 시각화 시켜 사물의 우연적 착시효과를 노린다. 예를 들어 어떤 털은 침팬지의 몸이 되기도 하고 얼룩말의 갈기가 되기도 한다. 말의 꼬리가 하나의 붓으로 탄생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순간의 우연적 발상은 각각의 개체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핵심적인 역할로 작용한다. ● 첫 등장물이 결정되면 이후 연결되는 상황은 작가 대상의 공간과 위치 흐름을 고려해 연상되는 개체 중 하나를 선택해 엮어 낸다. 그 흐름은 자연스럽지만 전체 상황은 3차원을 넘어선다. 얼룩말이 마시고 있는 물은 폭포수가 되어 찻잔에서 떨어지고 그 밑으로는 모래사장이 펼쳐져 파도치는 해변으로 묘사된다. 여기서 서로 다른 개체는 사물의 느낌과 형태가 갖는 유사성과 인접성으로 묘하게 연결된다. 이렇게 한줄기로 시작되는 화면구성은 작가의 즉발적인 의도에 의해 현실과 초현실의 상황이 서로 교차하여 공간과 시간을 넘나든다.




Instant Landscape展_2008


순간 연상 작용을 통해 탄생한 인스턴트 풍경은 하나의 회화로 우리 앞에 펼쳐진다. 이는 작가의 발상에 의해 소비되는 순간이 작품으로 남겨지며 우리가 화면을 바라보는 시점. 즉,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그 접점 순간이 일시적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현재로 설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현실사회의 인스턴트와 김남표식 인스턴트의 차이점이다. ■ 갤러리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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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WRAP

강현선展 / KANGHYUNSEON / 姜泫先 / photography.installation

2008_0904 ▶ 2008_0921 / 월요일 휴관



강현선_UNWRAP_디지털 프린트_가변크기_2008




초대일시_2008_0904_목요일_06:00pm

책임기획_조주현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브레인 팩토리_BRAIN FACTORY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82.2.725.9520
www.brainfactory.org






판도라의 상자, 그 속에 남겨진 ‘욕망’ ● 강현선은 특정 공간이나 사물이 보는 각도에 따라 원근법 상 왜곡을 일으키며 독특한 시각적 경험을 수반하는 설치작업을 선보여 왔다. 2005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매체부문 우수상을 받았을 때 강현선은 이미 자신을 모델로 전시장의 천정과 바닥, 그리고 3면에 가득 들어 찬 초대형 인물을 시트지로 제작한 공간 설치 작업을 선보인 바, 자신의 존재를 당당히 미술계에 알렸다. 당시 작업 속 그녀의 모습은 얼굴 반쪽을 살짝 무릎 사이에 파묻은 채, 조심스러움과 수줍음이 어린 한 쪽 눈으로 관객을 향해 어딘가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 호기심 깃든 한 쪽 눈빛은 그야말로 도발적이고 수수께끼와 같은 것이었기에 수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냈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태껏- 그 후로 3년은 실로 영아티스트가 득세한 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전모를 드러내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간 강현선은 자신이 순수미술 대학원 과정을 공부했던 영국에 다시 돌아가 소닉 아트를 전공한 후, 더욱 다양한 매체로 전환된 사운드 영상 설치작업을 발표하며 궁극적인 리얼리티를 탐색하는 작가 자신의 시선을 꾸준히 드러내고 있었다. 매번 몸을 웅크린 채 한 쪽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거나, 장막 뒤에서 조심스레 지켜보는 타자의 시선처럼 관객을 응시해 온 강현선에게 이번 브레인 팩토리 전시는 국내에서 처음 갖는 개인전이다. 이제는 보다 직설적으로 자신의 시선을 드러내며 움츠렸던 눈동자는 보다 편안하게 관객을 응시하나, 아직은 스포트라이트가 부담스러운 듯 한손으로 빛을 가리고 세상을 들여다보는 모습이다. 그러고 보니 그는 참 당찬 듯, 겸손한 작가이다.




강현선_UNWRAP_디지털 프린트_가변크기_2008


입구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외부에서 바라볼 때 전시 공간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는 브레인 팩토리의 공간 특수성을 절묘하게 살린 이번 전시는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마주하는 건물 파사드 뒤편으로 거대한 크기의 인물사진이 관객과 대응하고 있다. 전시장 전면에서 우선 포착되는 광경은 불안하게 정지된 이차원의 건물 파사드가 끝없이 수평으로 확장되고 그 뒤로는 초대형 크기로 확대된 한 여성의 얼굴이 밖을 내다보며 고정되어 있지만, 이내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이 모든 전경들은 한 순간에 일그러지거나 분절되고 왜곡되어 개별적인 이미지들로 드러나고 만다. 건축 투시도에서 왜상(Anamorphosis)의 변형처럼 투시도적 뒤틀림(distortion)의 형태로 제작된 기하학적 건물의 파사드는 일반적인 원근법상의 이미지와 달리 관찰자로 하여금 적절한 위치에 서서 일정한 시점으로 시선을 고정케 한다. 잠시 정지되었던 시점으로부터 벗어난 관객은 곧 일그러진 투시도적 공간 안으로 들어서 자신을 응시하던 여성의 얼굴 속, 그러니까 건물 파사드 뒤에 자리한 입방체 속으로 진입하게 된다. 미술평론가 반이정은 이 공간을 ‘기하학적 선물상자’에 비유한 바 있는데, 이번 브레인 팩토리 전시는 갤러리 자체가 선물상자가 되어 관객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거대한 선물상자 포장을 온 몸으로 풀어버리는 일련의 해포 행위가 시작되는 것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관람객들로 하여금 그 상자 속을 걸으며 공간을 탐색하는 과정을 통해 거대하게 확대된 자신의 신체, 얼굴의 일부분을 탐닉할 수 있는 다소 언캐니(uncanny)하고 신비스러운 체험을 선사한다.




강현선_UNWRAP_디지털 프린트_가변크기_2008



강현선_UNWRAP_디지털 프린트_가변크기_2008


그녀가 호감형의 앳된 얼굴을 가져서일까 살짝 비껴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초대형의 여성 얼굴 이미지는 경복궁 뒤편 고적한 분위기의 통의동 거리를 지나는 대중의 발길을 붙잡기에 충분히 자극적이다. 사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도시의 전광판 또는 배너의 광고를 통해 이러한 대형 인물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무의식적 경험을 익숙하게 해왔다. 광고 속 모델들의 그래머로우스한 이미지와 상품의 대한 환상이 더부러져 자신도 모르게 몰입되는 현상은 볼거리와 이미지가 넘쳐나는 오늘날 자본주의를 사는 도시인들의 욕망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강현선은 건물의 파사드를 뚫고 자신의 신체보다 훨씬 거대한 여성의 얼굴 속에 머물며 그녀의 입술 라인과 눈동자, 속눈썹의 생김새 하나하나를 관음증적 시선으로 더듬어 가던 관객에게 또 한번의 반전을 일으킨다. 입구 쪽 전면으로부터의 공간에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입체적 글자들을 발견하게 함으로써 타자의 시선, 즉 자신에게 향하는 또 다른 시선을 인식하여 자신의 관음증적 쾌락을 불편하게 여기는 심리적인 시선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 때 상자 안에 숨겨져 있던 비밀의 단서가 마술처럼 드러나듯, ‘DESIRE'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대상을 향해 수직으로 선 채 관객의 눈앞에 펼쳐진다. 관객은 이 욕망이라는 단어를 잡기 위해 자신의 위치를 고정시키지만 곧 형체는 해체되고 의미를 감추어 버린다. 마치 제우스로부터 받은 상자를 열어 온갖 재앙들이 세상 밖으로 날아가 버리고 황급히 뚜껑을 닫은 탓에 간신히 “욕망”만이 남아 있는 판도라의 상자 속에 갇힌 기분으로, 관객은 더 이상 발길을 뗄 수가 없다.




강현선_UNWRAP_디지털 프린트_가변크기_2008


작가는 바로 주체의 시선과 대상의 응시가 만나는 접점에 “욕망”을 숨겨놓았던 것이다. 1506년 알브레히트 뒤러가 언급했던 이러한 비밀의 시점(secret perspective)-왜곡된 이미지를 바라 잡아 정상으로 보이게 하는 시점-은 역사적으로 예술가들이 종교적 진리를 말하거나 정치적 풍자를 하기 위한 기법으로 사용하곤 했다. 또한 옛 중국 회화에서도 발견되는데, ‘비밀의 시점’으로만 볼 수 있는 에로틱한 이미지를 숨겨 놓기 위해 이 기법을 활용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왜상은 알아보기 힘든 형체 속에 참모습을 감춘다. 이 때 왜상이란 중심에서 벗어난 위치에서 바라볼 때만 드러나는 광학적 기법으로, 라깡(Jacques Lacan)의 시선에 대한 이론에서 예를 들고 있는 것은 1553년 한스 홀바인이 그린 「대사들(The Ambassadors)」이다. 그는 두 인물 앞에 비스듬히 놓여 녹아 흘러내리는 듯한 기이한 물체에 주목한다. 액자 오른쪽 모서리 부분에서 비스듬히 보았을 때에야 해골로 드러나는 그것은, 평면 시각으로는 절대 볼 수가 없다. 그 해골은 공간과 욕망이 개입되었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이로써 라캉은 데카르트 철학에서부터 르네상스 이후의 서양 미술 전반에 걸쳐 일반화된 하나의 고정된 시점에 대한 집착에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관습적으로 작품의 정면 시점에 서게 되는 관객으로서는 인식할 수 없는 ‘부재하는 장’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며, 자신의 욕망과 지식을 넘어선 또 다른 위치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전경을 통해 분절된 이미지들 각각이 서로 다른 시점과 공간 속에 실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강현선의 설치작업은 라캉이 설명하고 있는 현상 세계와 같이 한 공간 안에 다수의 시점을 내포하고 있으며, 데카르트가 전제하듯 단 하나의 고정된 시점에 제한되는 것이 아님을 체험케 하고 있다. 또한 이처럼 겹겹이 드러나고 반전되는 수직적 응시구조 속에서 대상은 우리의 포착으로부터 항상 미끄러져 도망가는데, 이들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진동하고 분산되는 라캉의 시선에 대한 개념을 시각화한 것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구도를 가진 제4의 공간에서 대화를 시도한다.




강현선_UNWRAP_디지털 프린트_가변크기_2008



강현선_UNWRAP_디지털 프린트_가변크기_2008


전통적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의해 처음 발견된 왜상(anamorphosis)은 15, 16세기 예술가들 사이에 한창 유행했던 기법이다. 그러나 늘 진지하게 사용되지만은 않았던 이 왜상 기법은 후대에는 서민층의 가벼운 오락으로 전락해 주로 시각적 조크로 사용되더니, 언제부터인가 사회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러한 왜상이 디지털 시대를 맞아 시각매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이미지의 편집이나 변형, 조작으로 다의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특성들로 인해 건축 및 시각예술분야에서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전 세계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업 경향 중 원근법과 빛의 효과를 이용한 광학적 착시효과에 집중하여 공간의 매트릭스를 시각과 몸의 행위로 체험케 하는 작업 형태를 쉽게 볼 수 있다. 시대적 내러티브를 전제로 시각적 스펙터클을 창출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러한 작업 형태는 한편으로 테마파크식의 착시놀이를 연상시키는 한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점은 작가 강현선에게 지속적으로 주어질 숙제가 될 것이다. 중요한 점은 예술 디지털 시대에 부활한 이러한 르네상스적 화법이 기존의 문화 권력에 대한 대안적인 구조로 역할하기 위해 작가 스스로 자극적인 시각 유희에 빠지기보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시대적 현상을 직시하고 자신만의 동시대미술 언어로서 진지하게 풀어내는 태도일 것이다. 지금까지 작가 강현선이 보여준 대로 말이다. ■ 조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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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 jing-ting Bu dong

박능생展 / PARKNUNGSAENG / 朴能生 / painting

2008_0905 ▶ 2008_0918



박능생_북경도_목판_60×100cm×5_2008_부분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71029g | 박능생 수묵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905_금요일_06:00pm

국제교환입주 귀국보고展

작가와의 대화_2008_0916_화요일_10:00am

관람시간 / 10:00am~06:00pm





창동미술창작스튜디오
The National Art Studio, Changdong
서울 도봉구 창동 601-107번지
Tel. +82.2.995.0995
www.artstudio.or.kr






풍무박직. 단목정원 ● 박능생 회화의 제재는 넓게 자연산수와 도시풍경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법으로 단단한 붓 [다양한 나뭇가지, 나뭇가지를 섬세하게 깎아서 만든] 을 이용하여 두꺼운 한국의 전통지 위에 잠묵기법을 사용한다.




박능생_뻬이징 풍경_디지털 프린트_2008


그가 표현하는 산수에는, 자연, 산, 물, 풀, 나무에서 얻은 풍성한 현상을 담아내고 있으며, 도로, 행인, 산거, 사람들이 그림 안에서 서로 어우러지며 돋보이고 있다. 그림은 산의 형태에 따라 높고 낮은 형상을 취하고 있으며, 언덕 골짜기 등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산길이 구불구불 이어진 자연절경구도를 이루고 있다. 그림 안에 울창한 나무들의 기백이 보여 진다. 더부룩한 터치를 사용하며, 점과 획이 밀도를 이루고 있으며, 대자연의 웅대함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단정과 장엄, 평온, 먼 곳의 정취. 그의 도시풍경에는 대부분 전경, 야경, 그림 속에서 높은 건물들이 서로 잇따라 들쑥날쑥한 기복을 보이며, 도로가 교차하고, 차들이 쉴 세 없이 왕래하며, 불빛이 깜빡거리는 것은 가옥이나 차량의 흐름 같아 보인다. 그림 안에서 먹과 색이 한 덩어리의 솜처럼 혼연이 연결되어 있으며, 하얀색의 등광이 드문드문 살아 움직이는 모양을 이룬다. 그의 그림 안에서 전체 도시의 현상은 빽빽하고, 넓고, 차분하며, 심원한 기상으로 보여 진다.




박능생_도시사람들(황산)_화선지에 수묵, 홍묵_193×132cm×2_2008


박능생의 그림은 수묵을 주요로 하는 언어형식이라고 여겨진다, 그는 수묵으로써 형체구조를 표현범주 내에서 적절히 제어하고 있으며, 수묵이 가지고 있는 기운과 물상의 기운을 적절하게 융합하여 함께 보여주며, 수묵표현의 자유로움뿐만 아니라, 더욱 신중하게 대상의 형태구조를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수묵언어 방식은 표현주제의 순환과 변화를 매우 잘 나타내고 있다. 그 위에 그의 얼마간의 민감한 시각형식에 의해서 대상의 감수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화면 안에서 현대적인 시각 형식감을 부여하고 있다.




박능생_드로잉(군상)_먹지_32×21cm_2008


박능생은 최근에 자주 중국을 방문하면서 사생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는 중국의 산천풍경, 북경의 도시풍경, 북경주위의 명승고적. 중국의 산천 시내풍경 등을 그리고 난 뒤, 또 다시 한국에 돌아가 한국의 산천도시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이와 같은 반복은 이미 4년 남짓 해오고 있다. 이러한 비교 중에, 그의 관찰은 두국가의 많은 측면에서의 변화와 같지 않음을 헤아리고 있다. 그의 두 나라의 비교에는, 많은 세부적인 부분, 자연의 경물에서부터 도시의 변천, 인간생활의 많은 측면을 직접 보고 상호간의 변화와 차이를 직접 관찰하고 있다.




박능생_드로잉(군상)_먹지_32×21cm_2008


그는 그의 작품에서 세부적인 사항을 중요시 하고 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가라안치고 자신의 미세한 변화를 관찰한다. 그의 그림은 이러한 이유로 독특한 시점을 구비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세부적인 변천을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자기 자신의 점진적인 변화를 자기 힘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고요한 생명의 기상이 충만하며, 그림 안에서 정신의 기백과 역량이 나타나게 된다. ■ 마량수




박능생_잊혀진 마을(십도)_화선지에 수묵, 토분_193×132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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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 and Wish to Become a Yong, Tale of Love

박소빈展 / PARKSOBIN / painting

2008_0906 ▶ 2008_0923



박소빈_이 몸 大龍이 되어 당신 가시는 길 영원히 밝혀드립니다(부석사설화-의상을 사모한 선묘이야기)
종이에 연필, 채색_150×420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박소빈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906_토요일_03:00pm

죽어서 용이 되고자 하는 바람, 사랑의 설화展

관람시간 / 09:00am~07:00pm





티스페이스_T-SPACE
서울 강남구 논현동 175-4번지 톰보이 1층
Tel. +82.2.3475.6448
www.tspace.co.kr






『Death and Wish to Become a Yong, Tale of Love (죽어서 용이 되고자 하는 바람, 사랑의 설화)』_설화에 바탕을 둔 환상의 세계 ● 박소빈의 작업실에 들어섰을 때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한 쪽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작업대의 바닥에 수북이 쌓여있는 연필의 밥 때문이었다. 바닥에는 도화용 연필을 깎을 때 생긴 나무의 잔재가 쌓여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림을 그리면서 발생한 지우개의 똥과 뒤엉켜 회색빛을 이루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필통에 질서정연하게 꽂혀있는 잘 깎아진 도화용 연필들. 그것들은 박소빈이 아주 프로페셔널한 작가라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증명해주고 있었으며, 또한 작업량에 있어서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정열적인 작가라는 것을 증명해 주기에 충분했다. ● 박소빈은 데뷔 초기부터 지금까지 영원한 사랑, 꿈, 용을 테마로 일관되게 작업을 해 온 작가다. 그래서 용은 이제 그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박소빈하면 용, 용하면 박소빈을 떠올릴 만큼, 용은 이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돼 버렸다. 그림을 그려본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조형언어를 구축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세상의 그 어떤 작가와도 다른, 자기만의 개성적인 스타일을 구축한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생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한 작가는 작가로서의 세속적인 성공 여부를 떠나 일단은 화단의 관심을 끌게 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박소빈은 일차적 관문을 통과한 작가다. 소처럼 묵묵히 한 발 한 발 내디뎌 온 지난날의 노력이 그를 개성이 뚜렷한 작가로 화단에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15년에 이르는 화단 경력은 이제 그를 중견작가로 성장시켰다. 미술계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견으로서 보다 확고한 입지를 위해 더욱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위치에 도달한 것이다.




박소빈_사랑의 여신_종이에 연필, 브론즈채색_150×150cm_2008



박소빈_영원한 사랑_종이에 연필, 브론즈채색_80.3×100cm_2008


이번에 갖게 된 개인전은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새로운 세계의 발견과 보다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발판이 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도 이의 중요성을 인식한 듯, 설화에 바탕을 둔 대작을 제작하기 위해 혼신을 힘을 다해 무더운 여름 한 철 자신을 소진시켰다. 그것이 바로 이번에 발표하게 될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에 얽힌 전설”에 관한 대작들이다.




◁박소빈_하늘사랑_종이에 연필, 브론즈채색_220×150cm_2008
▷박소빈_꿈꾸는_종이에 연필_230×150cm_2008


박소빈의 용과 여인을 소재로 한 그림은 사랑이 주테마다. 이것은 매우 일관된 것이다. 그는 이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어왔다. 그것은 작은 도랑이 냇물을 이루고, 냇물은 다시 강이 되듯이, 천천히 그 외연을 확장하면서 서서히 움직여 왔다. 그는 주제를 숙성시킴과 동시에 내용과 형식면에서도 변화를 추구해 왔다. 매체 면에서도 역시 변화가 있었다. 그러니까 박소빈의 용 그림은 신작을 소개할 때마다 새로운 변화가 있었던 셈이다. ● 첫째, 내용에서의 변화를 보자. 이 천 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박소빈은 용과 여인의 사랑을 다루면서 정신보다는 육체적 관능이 더 두드러진 작품을 제작했다. 이는 비록 그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육체보다는 정신을 중시한다고 해도 나타난 결과가 그랬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으랴. 내가 보기에 이 무렵의 그림은 작품이 풍기는 환상적이며 성적인 분위기가 이미 그의 독자적인 화풍을 드러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연필 드로잉을 중심으로 한 밑 작업에 약간의 담채가 얹어지는 특유의 화풍은 검은 연필 색에서 오는 무거운 분위기로 인하여 세기말 적인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박소빈이 영상과 판화에 손을 댄 것은 드로잉 작업이 지닌 평면과 단일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영상의 4차원적인 움직임과 판화의 복수적 효과를 얻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러한 일련의 시도를 잠시 접고 다시 드로잉을 중심으로 한 평면작품을 다시 선보인다. 집중적으로 드로잉에 천착하여 설화에 기초한 하나의 테마를 대형작품에 녹여낸 것이다.




박소빈_선묘무릉도원-선묘武陵桃源_종이에 연필, 브론즈채색_150×420cm_2008



박소빈_사랑합니다_종이에 연필_150×440cm_2008


박소빈의 이번 대형 작품들은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와 중국의 처녀인 선묘낭자에 얽힌 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화엄종을 들여온 의상대사(625-702)는 일찍이 원효대사와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669년 중국의 등주 해안에 도착, 한 신도의 집에 머물렀는데 거기서 선묘라는 아름다운 처녀를 만나게 된다. 처녀는 처음 본 의상에게 연정을 느끼고 사랑을 고백하나 의상은 이를 물리치고 장안에 있는 종남산에 가서 지엄삼장 스님 밑에서 화엄경을 배웠다. 귀국할 때 의상은 등주의 신도 집을 다시 찾았는데, 마침 처녀가 집을 비워 만날 수 없었다. 나중에 처녀가 이를 알았을 때 이미 배는 포구를 떠나고 있었다. 그래서 처녀는 준비한 옷을 던지며 기도하길, “이 몸이 큰 용으로 변하여 저 배의 선체와 노를 지키는 날개가 되어 대사님이 무사히 본국에 돌아가 법을 전할 수 있게 하리라”하며 웃옷을 벗어 던지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 박소빈의 대형 그림은 이 설화를 바탕으로 구성한 것이다. 그러니까 전체적인 내용은 육체적인 쾌락보다는 용이 된 선묘낭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정신적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그는 이 점에 대해 무척이나 고심했던 것 같다. 이 부분은 특히 그의 작품이 선정적인 의미로 읽힐 수 있는 것이기에 무척 중요한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설화의 장면을 삽입하는 등, 화면 구성에 있어서도 각별히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인다. 박소빈의 이번 대작은 더욱 추상화된 선묘가 돋보인다. 장면의 묘사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의 창출에 더욱 심혈을 기울인 느낌이다. 무수히 반복된 필의 겹침을 통해 구체적인 형태들이 드러나고 그런 형태들은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파묻힌 듯 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의식이 작품 속에 빨려 들어갈 때 나타나는 균형 감각의 상실이 위험한 것인데, 그는 작품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설화의 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한 느낌이 든다. ● 용과 여인이 나누는 사랑의 이야기, 그 가슴 절절한 설화를 현재화하는데 있어서 박소빈은 드로잉을 바탕으로 유채를 곁들여 형상화하고 있다. 연필을 사용해 마치 집중포화를 하듯이 전체와 부분을 다 같이 고려하면서 드라마틱한 화면을 창출하고 있는 박소빈의 작품은 이제 보다 대형화된 화면을 통해 관객과 만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 윤진섭




박소빈_비금도-사랑의 전설_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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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꽃 시리즈_Dreaming flowers

서지영展 / SEOJIYOUNG / 徐芝瑛 / photography

2008_0910 ▶ 2008_0923 / 일요일 휴관



서지영_꿈꾸는 꽃 시리즈-레넌큘러스_한지에 반 다이크 브라운 프린트_65×60cm_2008




초대일시_2008_0910_수요일_06:00pm

작가와의 대화_2008_0916_화요일_10:00am

관람시간 / 월~목요일_10:00am~07:00pm / 금~토요일_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아트비트갤러리_ARTBIT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6번지 성보빌딩 301호
Tel. +82.2.722.8749
www.artbit.kr






얼핏 보면 오늘은 무미건조하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다. 그러나 한 걸음 멈춰서 긴 호흡으로 바라보는 일상은 늘 새로움과 신비로움 그 자체이다. 이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는 디지털은 탈 공간적이니, 탈 시간적이니, 하는 무수히 많은 숫자 데이터에 의해 조작되고, 활용되는 특별한 편리함을 갖고 있지만, 우리의 삶은 풍요롭기는 커녕 삶에 찌들려 기계처럼 움직이는 노예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뭐든지 빠르게 초월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파괴적 속도의 이 시대에 나는 심미적인 브레이크를 걸고 싶다.




서지영_꿈꾸는 꽃 시리즈-양귀비#2_한지에 반 다이크 브라운 프린트_80×60cm_2008



서지영_꿈꾸는 꽃 시리즈-후로쿠마_한지에 반 다이크 브라운 프린트_65×60cm_2008



서지영_꿈꾸는 꽃 시리즈-수련_한지에 반 다이크 브라운 프린트_70×60cm_2008



서지영_꿈꾸는 꽃 시리즈-리시안_한지에 반 다이크 브라운 프린트_65×60cm_2008



서지영_꿈꾸는 꽃 시리즈-장녹수_한지에 반 다이크 브라운 프린트_65×60cm_2008


나의 f256 핀홀의 사각형 프레임은 시간의 저장고이다. 주 오브제인 꽃은 자연광에 의한 시간의 곰삭힘에 맡김으로 꽃 나름의 시간성(3일~ 6일)을 갖게 된다. 자신의 시간에 따라 숨쉬고, 피고, 지고, 마르고... 소박하고 자연적인, 어떤 풍요로운 양감과 살아 움직이는 생명감을 잘 삵은 빛으로 형상화 시키고자 한다. 감미롭고 느릿한 선율이 흐르는 꽃의 달콤한 노래를 들으며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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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_Margins

김진展 / KIMJIN / 金璡 / painting

2008_0911 ▶ 2008_1101 / 일요일 휴관



김진_Untitled0816_리넨에 유채_200×200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진 홈페이지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911_목요일_06:30pm

관람시간 / 수~금_02:00pm~06:00pm / 토_12:00pm~04:00pm / 일요일 휴관




MIKI WICK KIM Contemporary Art
Binzstrasse 23 3rd Floor, 8045 Zürich, Switzerland
Tel. +41.44.451.4040
WWW.MIKIWICKKIM.COM






김진 회화 ● 김진의 회화를 처음 대하면서 우리는 그의 그림 속의 인물이, 그리고 그 인물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에 대해, 그리고 어지럽거나 가지런히 놓여 진 사물들에 대해 ‘이 인물은 누구일까?’, ‘이곳은 어디일까?’, ‘이 사물들은 왜 여기에 놓여있을까?’ 라는 질문들로 혼란스러워진다. 그리곤 그 인물이나 사물들은 존재 이유를 상실한 채 우연히 한 장소에 놓여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의 그림에 항상 등장하는 인물은 어지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물들의 가장 자리에 길을 잃은 나그네처럼 서 있는 것이다. 그 인물은 꿈과 현실, 또는 실제 존재하는 세계와 상상의 세계의 경계에서 자신의 존재가 감추어지길 바라면서 혹은 자신의 존재를 알아채어주길 바라면서 보는 이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또한 이 인물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질서에도 혹은 무질서에도 동화될 수 없는 한 고독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김진_Untitled0817_리넨에 유채_200×200cm_2008



김진_Untitled0818_리넨에 유채_200×200cm_2008


사르트르 소설 ‘구토’의 주인공인 로캉탱은 어느 날 문득 바닷가의 조약돌을 주우면서 구토를 느낀다. 그 후 자신이 대하는 모든 사물에서 느끼는 구토의 이유를 찾던 그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물들은 전혀 존재 이유를 가지지 않고 단지 사실상 우연히 거기에 존재한다는 것, 즉 하나의 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자신조차도 세상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내던져진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당혹스러워하고 그것은 반복적인 구토를 통해 드러난다. 즉, 로캉탱은 그 사물들이 존재 하는 이유,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난생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할 때에 자신의 이성과 감성을 지배하는 그 낯설음으로 인해 구토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로캉탱이 경험한 것과 같은 이 낯설음과 당혹스러움을 우리는 김진의 회화를 접하면서 직접 경험하게 된다. ● 김진의 회화는 인류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고민에 앞서 인간이 우리 자신들에게 묻는 ‘나란 존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이러한 질문들은 때로는 어둑어둑한 실내를 가득 채운 책들,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화병, 정원의 한구석을 차지한 오두막, 쏟아질 듯 한 초록의 나뭇잎들과 같은 회화적 언어들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거기에는 어김없이 캔버스 속으로 흐물흐물 거리며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우리들의 모습이 투영되고 있다.




김진_Untitled0819_리넨에 유채_200×200cm_2008



김진_Untitled0820_리넨에 유채_90×90cm_2008


한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작업을 하다가 영국으로 유학을 온 작가는 영국이라는 낯선 세계에서 힘들게 적응하면서 간혹 그 사회 속에 동화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마치 거울 속의 고독한 인간 존재를 들여다보듯이 인식하게 되었고, 이방인으로서의 그 안에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고 경계에 머무는 인간의 모습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이러한 고민들은 이번 전시 제목『Margins (경계)』이 내포하듯,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의 경계에서 인간의 실존의 문제를 질문하는 작업들로 나타나고 있다. 2007년 런던 첼시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마친 그는 이미 올해 초 런던의 스테이블스 갤러리(Stables Gallery)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이번 스위스의 미키윅킴 갤러리 (Miki Wick Kim Contemporary Art) 개인전을 통해 유럽에서 먼저 활발하게 그의 작품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 최선희




김진_Untitled0821_리넨에 유채_90×90cm_2008



김진_Untitled0823_리넨에 유채_90×90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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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女.子

전현숙展 / JEONHYUNSOOK / 錢炫淑 / painting

2008_0903 ▶ 2008_0912



전현숙_꽃들아! 춤을 추어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4cm_2008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30am~06:30pm




갤러리 라이트_gallery LIGHT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7번지 2, 3층
Tel. +82.02.725.0040






행복을 꿈꾸는 여자... ●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을 꿈꾼다. 동서고금을 통해 인류의 가장 큰 화두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남녀상열지사인 사랑일 것이다.




전현숙_女 +子 = 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4cm_2008


“얼음 위에 댓잎 자리 만들어서 / 님과 내가 얼어 죽을망정. / 얼음 위에 댓잎 자리 만들어서 / 님과 내가 얼어 죽을망정. / 정 나눈 오늘 밤 더디 새오시라 더디 새오시라. / 뒤척뒤척 외로운 침상에서 / 어찌 잠이 오리오.” 고려가요인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의 서두부분이다. 전현숙의 그림에는 이런 애틋한 사랑의 감성이 잘 드러난다. 최근 그녀의 그림은 색채나 화면구성에 두드러진 변화가 보인다. 한결 편안하고 밝아졌다. 공간 배치도 여유로움에 활력소가 느껴진다. 장미 빛 인생을 노래한 에디뜨 삐아프의 달콤한 음률이 물 흐르듯 느껴진다. 어둡고 음습했던 색채와 거칠었던 선은 환상적인 파스텔조의 색채와 간결하고 유려한 선으로 변했다. 이미 많은 어려움을 겪고 지나온 작가의 이제 막 꽃피는 일생이 다가선다. 곳곳에서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의 장면이 등장하지만 전혀 외설스럽지 않고 오히려 유쾌하다. 그것은 위트와 유머가 그림 곳곳에서 숨어 반짝이기 때문이다.




전현숙_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춤을 추는 거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3cm_2008


세 차례의 개인전에서 보여주었던 인간의 심성과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은 이미 그녀만의 딱 부러진 이미지로 우리에게 깊이 각인되어있다. 그녀의 그림은 한편의 소설을 읽거나 연극을 보는 느낌이다. 그것은 유치원 아이조차 키득거리며 좋아하는 순진무구한 동화이다. 등장한 인물이나 사물들은 적절한 역할이 있고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통해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드러낸다. 발끝이나 손끝을 유심히 살펴보자, 농염하지 않은 우리의 춘화 같은 은은한 사랑 향기가 배어나온다. 그것들은 때론 장난스럽기까지 하다. ● 그림 속 조그만 손거울이나 안경에도 숨어 있는 이야기들... 세세하게 그려낸 작가의 풍류와 이상이다. 가족 같은 애완견인 7살짜리 퍼그 세풍은 감초같이 중요한 시점에 등장한다. 의인화된 세풍은 항상 경직될 수도 있는 “그 여자와 그 남자” 두 사람의 관계에 윤활유 같은 존재이다. 세풍은 주인의 사랑을 질투도 하고 견제도 한다. 그의 장난스러운 모양새와 시선은 그녀의 숨겨진 마음인 셈이다. 작가에 의하면 “세풍은 등짐 같은 존재라고 한다. 세상에 태어나 자신이 꼭 해야 할 일들... 책임져야 할 일상의 약속들 같은 존재”라고 한다. 불안한 듯 느껴지는 가느다란 은색 외줄은 많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인생은 외줄타기라고 하지 않는가... 돌이킬 수도 없고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는 진행형이다. 그 외줄에 몸을 맡긴 작가의 인물들은 불안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때론 피할 수 없는 세상의 많은 일들과의 운명적 만남을 생각게 한다. 그녀의 조형적 이미지로 차용되어진 은줄은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이며 헤쳐 나가야 할 무거운 삶의 여정인 셈이다. ● 그림 속 그녀의 인물들은 항상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감상자는 이내 소의 왕방울 같은 눈동자와 피할 수 없는 눈인사를 하고 그 흡인력에 빠져 잠시 허둥거린다. 작가는 그렇듯 감상자와 소통하고 싶어 한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현재의 우리를 보게 한다. 즉 화면의 인물은 자신의 모습이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40대 중년여성의 단면인 셈이다. 배는 쳐져 불룩 나오고 얼굴에는 주름이 생겨나기 시작해 보톡스를 맞고서라도 젊어지고 싶고 예뻐지고 싶은 여자의 심정들이 나타난다. 그것들에는 생활에 무료함을 느끼기 시작한 중년여성의 고민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그녀는 적절한 변신을 통해 감상자에게 대리만족이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전현숙_아직까지 그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30.3cm_2008



전현숙_好. 好. 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4cm_2008


그녀는 보통 에스키트를 하지 않고 바로 그린다. 오랫동안 천착된 그녀만의 솔직한 일상사는 굳이 밑그림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은 더욱 진실하다. 40대부터 작가는 모란꽃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모란은 어렵게 생을 살아온 그녀가 꿈꾸는 삶인 셈으로 부귀와 행복을 상징하는 작가의 마음인 것이다. 그녀의 작품에는 민화 속에서 나타나는 물상들이 종종 보인다. 배에 가득 실어진 물건들... 그것은 그녀가 소유하고픈 자신만의 방이다. “즐거운 여정”이라고 느껴지는 조각배에는 한 멋진 신사가 타고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악기나 카세트가 있다. 커피, 양은냄비, 우산, 붓 등 작가가 꼭 필요한 것들이 빠지지 않고 실려 있다. 족히 몇 년을 유람해도 싫을 것 같지 않은 사랑하는 사람과 떠나는 오랜 여행이 즐거운 마음으로 그려지고 있다. 우리는 그녀의 그림 속에서 금방이라도 먼 길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전현숙_가슴앓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97cm_2008


그녀의 새로운 작품세계를 예고하는 작품 한 점이 있다. 피노키오의 등장이다. 피노키오가 누구인가? 사람이 되고픈 인형이다. 그녀는 아들에게 젖을 먹여 본적이 없다고 했다. 이제 중년의 고개에 들어선 작가의 자식에 대한 소중한 사랑이 이 그림에 배여 있다. 아들은 항상 철부지 소년으로 보인다고 한다. 인간이 되고픈 피노키오를 지켜보는 제페토 할아버지처럼 그녀도 아들을 걱정한다. 앞으로 작가는 피노키오와의 사랑을 화면에 키워갈 계획이라고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소중한 사랑이 그녀의 고백으로 이제 우리에게 다가설 것 같다. 꽃을 든 남자, 주사위를 든 남자, 그 여자... 행복한 여자에 이어 또 다시 시작될 피노키오와의 끈끈한 사랑이 기다려진다. 일상 속에서 흔히 망각하고 쉽게 잊고 지나가는 가족의 정이 기대된다. 전현숙의 한층 성숙된 세상에 대한 응시가 우리의 삶에도 활짝 핀 모란꽃으로 피어나길 바래본다. ■ 한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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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분_不可分

이민호展 / LEEMINHO / 李敏浩 / photography

서울 / 2008_0917 ▶ 2008_0923
공주 / 2008_0926 ▶ 2008_0930



이민호_불가분(不可分)_디지털 프린트_100×100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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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초대일시_2008_0920_토요일_03:00pm
공주 / 초대일시_2008_0927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_서울_10:00am~07:00pm / 공주_10:00am~06:00pm




갤러리 나우_GALLERY NOW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3번지 성지빌딩 3층
Tel. +82.2.725.2930
www.gallery-now.com



공주문화원_KONGJU CULTURAL CENTER
충남 공주시 반죽동 184-2번지
Tel. +82.41.852.9005
www.culturegj.or.kr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푸른 저 달빛은 호숫가에 지는데 / 멀리 떠난 그 님의 소식 꿈같이 아득하여라 / 차가운 밤이슬 맞으며 / 갈대밭에 홀로 앉아 옛사랑 부를 때 / 내 곁엔 희미한 그림자, 사랑의 그림자여…" ●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노래 기억나세요? 멕시코 출신의 ‘로스 트레스 디아만테스(Los Tres Diamantes)’라는 3인조 트리오가 불러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곡인데요, 원래는 만월(滿月)이라는 뜻의 노래 제목 Luna Llena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시적인 제목이 붙여진 곡이였죠. ● ‘그림자’는 실체와 함께 존재하면서도 때론 실체를 떠나 독자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묘한 여운을 남겨 줍니다. 그래서 이 곡의 가사에서도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그림자‘를 기억하려 애쓰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구체적인 사랑보다 그 사랑으로 인해 드리워진 감정의 흔적들, 추억들, 아픔들... 그 추상적 감정의 언저리들이 오히려 사랑이라는 실체 보다 더 사랑다웠기 때문일까요?




이민호_불가분(不可分)_디지털 프린트_100×100cm_2007



이민호_불가분(不可分)_디지털 프린트_100×100cm_2007


분명 실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그림자가 어째서 실체보다 더 오래 그리고 더 깊이 우리들 기억 속에 살아남아 있는 걸까요? 그건 아마도 세상엔 눈을 떠야 보이는 것 보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들 속에 더 오묘한 삶의 본질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 ● 이민호 선생님을 알고 지낸지가 10년을 훌쩍 넘긴 지 오랩니다. 카메라 안에 세상을 담는 일은 어찌 보면 눈을 감고 세상을 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는 시작할 수 없는, 한 쪽이라도 감아야 시작되는 사랑처럼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세상을 향한 희미해 보이는 옛사랑의 그림자들이 묻어나 있습니다. ● 실체보다 단순해 보이고, 실체보다 강해 보이진 않지만, 실체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 그림자... 상세한 무늬와 굴곡도 그림자 속에서는 무의미해집니다. 최대한 단순하고 최대한 모든 걸 포용한 그 넉넉함은 오히려 더 많은 걸 말해주고 더 깊은 걸 드러내 보여 주니까요.




이민호_불가분(不可分)_디지털 프린트_100×100cm_2007



이민호_불가분(不可分)_디지털 프린트_100×100cm_2007


그래서 작품들은 그 자체로서 진실의 흔적을 따라 다니며 그 흔적이 남긴 발자취, 즉 그림자를 렌즈 안에 담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 분의 작품들을 오래도록 살아 숨 쉬게 하는 비결입니다. 이민호 선생님의 카메라 앞에 모델로 서 보는 걸 저는 무척 즐깁니다. 왜냐하면, 눈을 크게 뜨고 보이는 나를 담아내기보다, 눈을 지긋이 감고 내 안에 드리워진 본질의 그림자를 담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 앞서 언급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노래와 동명의 시가 한 편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 그 시의 한 부분이 자꾸만 입가에 맴돕니다. 왜냐면, 그 시의 구절이 바로 혼신의 힘을 다해 기울여온 카메라 작업의 그림자를 가장 잘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이 전시회가 그 출발점이 될 것 같아 기쁘고 또 기쁩니다. 기왕이면 그림자가 끝도 없이 길게 길게 뻗어날 수 있기를 마음 깊이 기원해 봅니다. ●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 이충무





이민호_불가분(不可分)_디지털 프린트_100×100cm_2007


사진과 말, 글 로서 소통하던 세상이 쉰 살이 되어서야 그 모두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사진에 대한 애착도 강해 졌고, 사진이 곧 내 몸이라는 것도 알았다. ● 어느 분야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기 분야에 정신없이 몰두 하다가 어느 날 문득, 그 일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게 되고, 그리고 현재 있는 그대로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 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 이듯, 이 세상 것 무엇 하나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니 사물과 그림자 또한 어찌 나눌 수가 있겠는가? ● 不可分 (불가분) / 不可分 (불가분) /不可分 (불가분) ● 나는 그림자, 그림자는 나 ● 아름다움, 사랑, 오랜 기다림 등으로 가슴 뭉클해지는 순간, 느린 걸음으로 나 그대를 請(청) 한다. ■ 이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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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송은미술대상

대상 권준호

2008_0917 ▶ 2008_0923



권준호_달의 자전거_구리동선, 냉동기계 일체_70×180×11cm_2008




시상식_2008_0917_수요일_04:00pm

심사위원
예선 심사위원_김성원_김진엽_박종갑_이은주_이태호_정용도_코디최
본선 심사위원_김노암_김민성_박일호_유철하_임대근_코디최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1층
Tel. +82.2.736.1020
www.ganaartgallery.com






제8회 송은미술대상전 개최 - 대상 권준호 ● 송은문화재단(유상덕 이사장)은 9월 17일부터 23일까지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제8회『송은미술대상』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입체 부문으로 대상을 수상한 권준호(36) 작가의「달의 자전거」를 비롯한 9점의 수상작들과 함께 입선작을 포함, 총 34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수상작가 9명에 대한 시상식은 전시 개막일인 9월 17일 오후 4시에 열린다.




김영훈_Tell me the truth_동판화(Mezzotint), 종이_116.5×216cm_2008



이승현_Masterpiece Virus_장지에 홍먹_193×130cm_2008



이원철_Circle of Being_C 프린트_120×180cm_2008


수상내역 (가나다순) ● 대상(1명)_권준호(입체) / 우수상(3명)_김영훈(평면_판화), 이승현(평면_한국화), 이원철(평면_사진) / 장려상(5명)_김정선(평면_양화), 윤정미(평면_사진), 이재훈(평면_한국화), 임선이(평면_사진), 한성필(평면_사진) / 입선(25명)_김건희(평면_양화) 外 24명




김정선_숨겨진 불안_리넨에 유채_130.3×193.9cm_2008



윤정미_핑크 프로젝트-서우와 서우의 핑크색 물건들 2_라이트젯 프린트(edition 1/5)_122×122cm_2008


『송은미술대상』展은 젊은 작가들에게 공정한 지원기회를 제공하려는 취지로 지난 2001년 시작된 이래 매년 개최되어 왔다. 상금은 대상 1명에게 2,000만원, 우수상 3명에게 각 1000만원 그리고 장려상 5명에게 각 500백만원씩 지급된다. 한국 국적으로, 최근 3년 이내에 개인전 한 번 이상 개최한 젊은 작가라면 누구나 응모할 수 있으며, 작품출품료는 없다. 내년도 공모전(제9회 송은미술대상전) 접수는 오는 12월 1~3일간이다. ■ (재)송은문화재단




이재훈_UNMONUMENT-이것이 현실입니까_프레스코(석회, 장지, 먹, 목탄)_180×140cm_2008



임선이_記述하는 風景_디지털 프린트_123×180cm_2008


심사평 ● 송은문화재단에서 주최해온 『송은미술대상』展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1990년대 미술계의 침체기, 정확히는 미술시장의 불황과 위축이 원인이자 결과로 작용하여 위축되었던 한국미술계가 2000년 밀레니엄을 전후로 하여 아시아 현대미술문화의 발전과 확산과 더불어 약동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에 따라서 많은 젊은 미술인들과 미술계 취업 지망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또한 이들을 위한 다양한 미술기관과 인프라가 확대되었다. 내게도 그렇지만 2000년대 중반은 아마도 젊은 미술인들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미술계의 양적 질적 팽창으로 전통적인 공모전 형태의 인프라 또한 여전히 활성화되고 있다. ● 2008년『송은미술대상』展에 출품된 작가들과 작품들의 면모는 앞서 언급한 우리 미술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본선에 올라온 작품들은 어느 특정 경향이나 양식으로는 묶을 수 없을 만큼 참으로 다채로운 형식실험과 주제들을 보여주었다. 작가 자신들이 가진 작품 주제와 방향에 대해 주저했다거나 망설인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으며, 매우 진지하게 느껴지는 태도 또한 보여, 현재 우리 미술계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과거 이리저리 특정 경향과 유행에 경도되어 휩쓸려 다녔던 모습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여기서 오늘날 한국의 젊은 현대 미술가들은 과거 선배 세대들에 비해 세계 현대미술의 흐름에 대한 판단과 국제적인 감각이 민감해졌다는 것과, 어떤 외부의 권위와 압박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독립적인 창작 세계를 견지해 나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한국미술계의 미래에 대한 고무적인 분위기와 함께 90년대 후반까지도 세계 미술계의 흐름과 달리 국내 미술계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했던 현대사진의 비약적인 위상의 변화도 느꼈다. 물론 이처럼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과 함께 향상된 인프라의 안정 등의 기반이 마련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드러내지 않고 한국 미술계를 위해 애써온 송은문화재단과 같은 많은 단체와 개인들의 비전 있는 기여가 지속되어 왔을 것이다.




한성필_Melting_크로모제닉 프린트_162×122cm_2008


대상을 수상한 권준호의 작품은 내 개인적으로도 출품작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다.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컨셉이 형식의 완결성으로 더욱 돋보였다. 작가의 정체성 문제를 다룬 그의 작업을 보면서 한국의 정치, 경제, 예술 등 전반적인 사회상이 처한, 명백한 보수도 치열한 진보도 없이 그 사이를 모호하게 오고가는 상황이 떠올랐다. 한국의 현대미술 상황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현대미술에서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라는 것이 정상적(?)인 미술사의 맥락 안에서 자신의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미적 특수성 또는 특이성을 찾는 노력을 하는 것이라 볼 때, 이번 『송은미술대상』展의 대상을 수상한 권준호 작가의 작품이 이러한 경험을 환기시켰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작가는 강한 희열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외 수상한 다른 작가들과 비록 수상권에는 들지 못하였으나 창작의 집중력을 보여준 많은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우리는 이와 같은 성질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 끝으로 『송은미술대상』展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미적 지향과 취미에 대해 나 스스로 긴장하며 경계하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동시에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우리 미술계에 횡횡하던 현대미술의 위기설 - 구체적으로는 한국화의 위기설, 비평의 위기설, 공예의 위기설, 미술시장의 위기설 등 수많은 ~ 위기설 - 을 떠올렸는데, 이제는 새롭게 미술시장의 활성화의 부작용으로 부각되는 미디어아트 또는 관습적이지 않은 실험예술들, 정치적 예술들의 위기설이 다만 설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러저런 복잡한 심경으로 송은미술대상은 물론 미술계를 생성해가는 주체들인 수많은 개인, 기관, 제도, 시장, 담론이 촘촘하게 유기적 관계의 끈을 놓지 않길, 지치지 않고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 김노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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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al Light

안세권_에라스무스 쉬뢰터

2008_0917 ▶ 2008_1008 / 월요일 휴관



에라스무스 쉬뢰터_Bunker 45_C 프린트_120×150cm_1999




초대일시_2008_0917_수요일_06:00pm

한국_독일 사진작가 2인展

협찬_라 뷰티 코어 La Beauty Core

관람시간 / 11:00am ~ 07:00pm / 월요일 휴관





유앤씨 갤러리_UNC GALLERY
서울 종로구 사간동 126-1번지
Tel. +82.2.733.2798
www.uncgallery.com






『Dual Light』의 1000자 이야기_'Atlantis 아틀란티스' ● 사라진 유토피아 아틀란티스. 플라톤에 의해 처음 설명되어지고 있는 문명의 이상향으로 당시로부터 이미 9000년전 하늘을 나는 기구가 있었고 현대의 전차와 비슷한 병기들이 있었으며, 전기를 만들어 썼다고 전해진다. 아직도 수많은 탐험가들은 아틀란티스 문명의 흔적을 찾아 수천 마일을 여행하고, 아틀란티스 대륙과 문명에 관한 전설은 수 천년 동안이나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 찬란한 고도의 문명을 이룬 이들은 결국 부패의 길과 세계정복을 위한 전쟁을 벌이다 신들의 노여움을 사 하룻밤 사이에 대륙이 물에 가라앉아 버렸다 한다. 주어진(the given/datum) 상태의 완벽한 자연환경을 상징하는 파라다이스(Paradise) 에덴의 동산에선 인간이 쫓겨나지만,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the made/factum) 완벽한 인공적 환경인 아틀란티스(Atlantis)는 이렇듯 하루아침에 비약적으로 몰락한다. '몰락'과 '발전'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동전의 양면과 같이 이렇게 스스로 야누스적인 동거를 해왔는지 모른다. 만들어진 인공적 환경을 피사체로 선택한 작가 에라스무스 쉬뢰터(Erasmus Schroeter)와 안세권은 같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건넨다. ● 한 사람은 인간문화의 전쟁사를 담고 있는 버려진 벙커를 통해 거시적으로, 다른 한 사람은 각 인간들의 일상적인 삶과 생활이 담긴 도시 속 건물과 건축물을 통해 미시적으로… 역사에서 사라지거나 버려져 더 이상 현재의식에 회부되지 않는 과거는 종종 신화가 되어버리고, 마취 중 각성을 꾀하는 버그(Bug)처럼 내장과 배설물이 보여지며 해부된 또는 해체된 도시는 문득 현재의 가상성(Simulation)을 환기시킨다. 이들에게 빛은 시간의 운반자이며 속도의 단위이다.




에라스무스 쉬뢰터_Bunker 26_C 프린트_120×150cm_1992


에라스무스 쉬뢰터는 빛의 연출로 만들어진 표현주의적 색채를 통해 전쟁의 유물인 버려진 콘크리트벙커(Bunker)에 생명을 부여함과 동시에 그 놓여진 공간을 삭제함으로써 장소성을 상실(placelessness) 한다. 안세권은 일상의 찬란하고 강렬한 빛에서 벗어나 아직 어둠을 인식시키는 서서히 밝아오는 미세한 빛 속에서 비로서 한 생명체로서의 건축물을 발견하기도 때로는 또 과거와 미래가 함께 공존하는 현재를 찾아내기도 한다. ● 쉬뢰터의 벙커 그리고 안세권의 청계천과 월곡동은 이렇듯 우리가 만들어놓은(the made) 공간과 장소의 진정성(Authentizitaet)과 가상성(Simulation)을 동시에 그럴듯하게 보여준다. ● 랠프(Edward Resph)에 의하면 ‘광범위한 공간들은 인간의 시간적, 인지적 경험들을 통해 의미부여가 되면 그 공간은 장소감을 형성’한다. 그래서 장소의 정체성(identity of place)과 관련된 장소의 진정성(authenticity)은 진정성을 상실한 무장소성(placelessness)과 대립된 구조를 이룬다. ● 하지만 더 이상 생산 패러다임이 아닌 유통과 커뮤니케이션의 즉 소통의 패러다임으로 구성된 전자매체 디지털 복제시대인 현대사회는 특정 장소에 ‘존재하는’ 개인이 아닌 특정장소를 ‘설계하고 기획하는’ 개인과 동시에 광범위한 환경적, 사회적 힘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의 한 부문으로 ‘기획된’ 우리의 생활세계엔 어쩌면 이미 장소의 진정성(authenticity)과 무장소성(placelessness)의 질적 구별은 무의미한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는 '무장소성의 경관' 속에서 렐프 시절보다 훨씬 덜 불편함을 느낀다. 또한 무장소성 그 자체도 스스로 진화한다. 주어진 하천이 아닌 만들어진 조선시대 인공하천 청계천은 필요에 의해 물길이 아닌 자동차길이 되었다가 다시 물길로 복구되었지만 예전의 기능과 의미는 상실한지 오래이다. 아니 2005년 청계천은 예전 조선시대의 기능과 의미를 필요치 않는다. ●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완벽한 인공환경 아틀란티스의 몰락은 어쩌면 다른 형태의 삶을 기획하는 인간에게 전혀 새로운 모형이 필요해서 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유토피아(Utopia)가 아무데도 없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그 어디든 있는 장소가 되듯, 진정성(Authentizitaet)과 가상성(Simulation)의 공존을 가능케 한 쉬뢰터의 벙커와 안세권의 월곡 그리고 청계천은 그래서 극히 현실적인 동시에 상당히 낭만적이다. ■ 배이하




에라스무스 쉬뢰터_Bunker 5_C 프린트_120×150cm_1990


파열된 풍경의 빛-에라스무스 슈뢰터와 안세권의 사진 ● 독일 라이프치히 출신의 사진작가 에라스무스 슈뢰터(Erasmus Schroter)와 대한민국 서울의 사진작가 안세권이 서울의 UNC 갤러리에서 공동 전시를 갖는다. 출신과 작업의 배경이 전혀 다른 이 두 작가를 묶는 연결 고리가 무엇일까? 그 답은 물론 이들의 작품에서 찾아야할 텐데, 구체적으로 우리가 에라스무스와 안세권의 사진들을 함께 놓고, 상관성을 고려하면서 주목해 볼 지점은 어디일까? 내가 이 글에서 논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질문이고, 그에 대한 비평적 해석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이에 대한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에라스무스와 안세권이 각자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부터 보는 것이, 이전에 이 두 작가의 작품을 전혀 접한 적 없는 감상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에라스무스 쉬뢰터_Bunker 53_C 프린트_120×150cm_1995


1. 해안의 벙커 ● 1956년 생(生) 에라스무스는 통독 이전 동독의 라이프치히에서 나고 자랐고, 거기서 사진을 공부했다. 그리고 독일이 통일되기 이전인 1985년에 서독 함부르크로 이주했다. 이러한 작가 이력이 그의 작품을 보는 데 중요한 이유는, 에라스무스의 주요 사진들이 독일 현대 정치사가 남긴 ‘역사적 파편들’을 피사체로 담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는 독일민주공화국(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 DDR, German Democratice Republic; GDR)의 엄격하게 통제된 사회에서 성장했고, 이 사회적-경험적 배경이 그로 하여금 과거 군사용 방어 시설이 빚어내는 오늘의 풍경에 주목하도록 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에라스무스의 사진은, 독일 나치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웨이 북부부터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에까지 이르는 해안에 군사적 목적으로 설치한 벙커와 방어 시설 체제를 찍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일명 ‘벙커 사진’이 현장을 건조하고 중립적으로 기록한 ‘도큐먼트’일 것이라고 속단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가시적으로 그 사진들은 전후(戰後) 유럽의 해안가에 방치돼 있는 벙커들을, 마치 무대 위에 가설된 세트 풍경처럼, 매우 인위적이고 과장된 ‘미적 사물’로 변형시켜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가 무너져 가는 군용 건축물의 폭력적 위용을, 무대의 조각용 돌덩어리(monolith)가 뿜어내는 스펙터클로 변형하는 데 동원한 핵심 장치는 ‘인공조명’이다. 피사체 외부에서 덧붙여진, 선정적일 정도로 핑크와 보라색 톤을 발하는 이 조명이 에라스무스의 사진 속에서, 바닷물에 반쯤 잠겨 있는 벙커를 석양 아래 드라마틱하게 침몰해가는 함선처럼 보이게 한다. 또 눈이 시릴 정도로 깊은 푸른색과 노란색의 조명이, 수풀들 속에서 흉물스러운 외벽을 드러내며 육중하게 버티고 있는 벙커를 고대 밀림의 아즈텍(Aztec) 신전처럼 보이도록 작용하는 것이다. ●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들의 충돌 내지는 두 요소들의 모순을 발견한다. 그것은 에라스무스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국가 체제 아래 성장하고 예술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리얼리즘’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는 달리 말해서, 그의 카메라가 대면하고 있는 대상, 즉 벙커 따위의 군용 시설과 주변 공간이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문맥을 함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라스무스는 그 문맥을 즉자적이고 비판적으로 작품에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작가는 그 논쟁적인 피사체를 지극히 은유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하면서 일견 자기 사진에 대한 어떤 사회학적이고 정치학적인 담론으로부터도 한발 비켜서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에라스무스 쉬뢰터_Bunker 60_C 프린트_120×150cm_2004


미술 전문가들에게 ‘벙커 사진’ 하면, 곧장 떠오르는 이름이 ‘폴 비릴리오(Paul Virilio)’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도시계획 전문가, 문화이론가로 유명한 그가 1991년 『벙커의 고고학 Bunker archeologie』이라는 연구서를 통해 자신이 현지조사(field study) 과정에서 찍은 다수의 벙커 사진들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비릴리오의 사진들은 2차 세계대전 동안 유럽 전역에 은밀히, 또는 전략적으로 드러내 놓고 설치된 벙커들을, 사진 찍는 이의 어떤 주관적 개입도 없이, 말하자면 즉물적으로 포착한 흑백 사진이다. 이러한 비릴리오의 연구자적 태도와 사진 형식적 측면이 감상자인 우리로 하여금 그 사진들을 ‘고고학’이라는 학문적 방향에서 읽도록 유도한다. ● 그런데 굳이 비교하자면, 에라스무스의 벙커 사진들은 비릴리오의 벙커 사진과 비슷한 방향에서 시작하지만 정반대 방향의 이미지로 귀착된다. 이를테면 에라스무스의 그 사진들은 적극적으로 ‘벙커’라는 역사적 현장의 건축물에 개입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는 달리 그 정치적으로 민감한 구조물과 공간의 외피를 감각적인 이미지로 변질시키고, 있는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현재 상황을 인공 빛으로 가장하여 연출한 결과 도출된 이미지인 것이다. 비유컨대 마치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방랑자」그림에 펼쳐진 숭고한 바다풍경처럼 에라스무스의 벙커 사진 이미지는 극적이고 스펙터클할 뿐, 그 벙커 풍경에 얽혀 있는 독일 1930-40년대 역사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충돌 내지는 모순은 아마도 작가가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누릴 수 없었던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유발된 것이 아닐까? 혹은 반대로 과도하게 의식해야만 했던 이데올로기적 주제에 대한 강압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했기 때문에, 이 독일의 사진가는 ‘벙커들의 해안’에 중립적인 의미의 시선으로 접근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안세권_서울 뉴타운 풍경, 월곡동 사라지는 빛_C 프린트_180×230cm_2007


2. 뉴타운의 콘크리트 더미 ● 이번에 에라스무스와 공동 전시를 여는 안세권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집중적으로 서울의 재개발 현장을 찍고 있는 사진작가이다. 서울시는 2000년대부터 대표적으로 청계천 복원공사를 비롯하여 성북구 월곡동, 이문동 등 서울의 낙후된 지역들을 대상으로 ‘뉴타운’ 운운하며 도시 재개발 사업에 착수했다. 따라서 그런 현장을 카메라로 포착한 안세권의 사진 작업의 시간대는 얼추, 서울 재개발 사업의 시간대와 같이 흐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새마을 운동’을 캐치프레이즈로 펼친, 한국 근대화를 위한 토건 중심의 개발이 한시적 효과를 다해 바야흐로 ‘재개발’에 들어간 21세기 초 서울의 이행적 시간을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안세권이 2003년 7월 당시 청계천 복원공사 초기 단계에 찍은 사진과 복원공사가 끝난 후 시민들이 ‘루미나리에 축제’를 즐기고 있는 2007년 겨울의 청계천 사진을 비교해 보라. 거기 두 장의 사진에는 ‘개발에서 재개발’로 옮아간 서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현상돼 있다. 전자의 사진에서, 청계천을 뒤덮고 있던 콘크리트 가설물들은 1950년 6.25 전쟁의 폐허처럼 헐벗고 폭력적으로 일그러져 있다. 반면 후자의 청계천은 공상과학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미래 도시처럼 휘황찬란하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안세권의 이 두 사진을 함께, 교차해서 보면서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을 새삼 읽을 필요가 있다. 즉 ‘복원’을 명분으로 2000년대 파헤친 청계천의 공사장 모습이 1958년 9월 ‘도시 미화’를 명분 삼아 자연 하천을 시멘트로 복개한 ‘개발 시대’의 억압적 상처를 드러낸다면, 복원 이후 청계천은 21세기 글로벌 이슈인 ‘친환경’의 이름으로 그 과거를 은폐하고 가장하면서 ‘재개발 시대’의 논리가 상연하는 환등상(Phantasmagoria)이라고.




안세권_서울 뉴타운 풍경, 월곡동 사라지는 빛_C 프린트_180×230cm_2006


흥미로운 점은, 안세권의 최근 청계천 사진에서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환등상이 비판적으로 조명되기보다는 지극히 아름다운 스펙터클로 부상한다는 사실이다. 그럴 수 있었던 기제는 바로 작가가 사진 촬영 이후 컴퓨터를 이용해 행한 후속 작업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포토샵’과 같은 디지털 이미지 변용 프로그램을 통해 서울 재개발 현장의 빛을 인위적으로 재조정한 덕분인 것이다. 인공하천 청계천의 물은 황금색 비단처럼 부드럽게 흐르고, 루미나리에 축제를 위해 가설된 전구들은 타지마할 궁전의 보석들처럼 오색찬란한 빛을 발한다. 그 뒤로 광화문 거리의 글로벌 기업체 빌딩 숲에 내걸린 네온사인이 어둠 속에 둥둥 떠다닌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가상이 아니라 물질적으로 실재하는 것들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안세권은 그 물질적 육체들에 디지털 색조를 조금 덧입혔을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함으로써 이 작가는 말하자면 ‘21세기 글로벌 경제대국’을 꿈꾸면서 물질의 양적 팽창에만 골몰하는 이곳의 허구적이거나 환영적인 풍경을 현상해낼 수 있었다. 현실세계의 환등상적 속성을 드러내기 위해 오히려 자기 작품에 환등상적 색채를 덧붙이기. 이런 안세권의 방법론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사진을 그저 ‘아름답고 스펙터클한 사물’로 한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해 보인다. 특히 이 청계천 복원 이후 사진이, 안세권의 다른 사진들, 예를 들어 청계천 복원 이전 공사장 사진이나 서울의 재개발 현장을 찍은 다른 사진들과 유리된 채 단독으로 보일 경우 그 위험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사회적, 역사적 문맥을 비판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시각적 만족을 위해서만 개별 작품이 제시될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일련의 사진 작업들이 맥락을 구성하면서 전시되는 것. 이것이 우선 안세권의 사진이 오도(誤導) 수용되는 위험을 피하는 길이 아닐까?




안세권_서울, 뉴타운 풍경, 월곡동 파노라마_C 프린트_60×300cm_2006


3. 초현실의 풍경, 파열된 시간 ● 자, 이제 우리가 위에서 논한 에라스무스의 사진과 안세권의 사진을 묶는 연결고리 또는 그들이 함께 전시할 예술적 계기에 대해 답해보자. 사실 이 두 작가가 공동 전시를 해야 할 필연적 계기는 없어 보인다. 요즈음 일상적으로 세계 곳곳에서 행해지는 수많은 기획전이 그렇듯이, 이 전시 또한 관객으로부터 호응을 얻을 만한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는 데 큰 의의를 뒀을 수도 있다. 특히 에라스무스와 안세권은 ‘사진 예술’이라는 장르 속에서 활동하고, 그들의 작품은 모티브 면에서 ‘사회-역사적 풍경’을 다룬다는 사실만으로도 공동 전시는 충분히 성립 가능하다.




안세권_서울, 청계 Scape_C 프린트_127×160cm_2006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피상적 관점과 독해를 넘어 적극적으로 이 둘의 작품에서 매개지점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왜냐하면 애초 두 작가의 의도가 그랬든 그렇지 않든 이들의 사진은 자신이 성장하고 현재 삶을 영위하고 있는 곳의 역사적 지층 및 현실 표면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에라스무스가 유럽의 근현대사를 ‘군사 시설’을 축으로 더듬는다면, 안세권은 한국의 가까운 과거와 오늘을 ‘재개발 현장’을 중심으로 훑는다. 전자의 사진에서 드라마틱하고 스펙터클한 빛이 과거 나치의 잔재, 즉 군용 구조물을 신화적 무대로 변형한다면, 후자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변조한 빛은 한국 1960-2000년대까지를 관통하면서 ‘개발-재개발의 명암’을 가늠한다. 그 두 작가의 작품을 통해 보는 현실 풍경은 초현실적으로 빛나는데, 이때의 ‘초현실’이 20세기 초반 유럽 초현실주의자들이 주창한 ‘이성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자동성의 세계’나 ‘무의식의 자유로운 유희를 통해 본 세계’가 아님은 자명하다. 그와는 매우 다르게, 에라스무스나 안세권의 사진에서 우리가 감지하는 ‘초현실적 면모’는 과거로부터 극적으로 불거진 사물의 이상한 장관(spectacle)이다. 또 과거와 현재가 연속성을 이루지 못하고 순간순간이 파열되기 때문에 도처에 흩어져 있는 역사적 잔여물들의 낯섦이다. 우리는 아마도 전시에서 이 두 작가의 초현실적 사진들을 보며, 그 이미지들의 스펙터클에 감탄할 것이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상이나 공간이 생경하게 보이는 데 흥미로워할 것이다. 그것으로 이 두 작가가 함께 전시하는 명분은 충분하지만, 덧붙이자면 관객인 우리가 그 사진들에서 어떤 현실의 문맥을 비판적으로 사유해 보는 것. 이 글의 필자는 이 마지막 관객의 과제가 더 명분 있어 보인다. ■ 강수미




안세권_청계천에서 본 서울의 빛_C 프린트_125×270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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