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에이 에서 펐습니다. 안규철씨에 대해 알고 있던 건아니지만...이미지를 생산하는 사람에 입장에서 생각해 볼만한 대목도 많습니다. 물론...약간의 불의한 혐의도 있는 것같긴하지만..서도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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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0년대에 당신은 '현실과 발언'의 동인으로 활동했습니다. '현발'시기의 작업을 스스로 어떻게 평가합니까?
--제가 현발에 회원으로 참여한 것은 85년 무렵입니다. 이 시기는 80년대 전반에 이 그룹이 보여주었던 에너지와 결집력이 이미 눈에 띄게 약화된 시기로, 아마 선배회원들 중 일부에서 저나 박불똥씨 같은 후배세대 작가들을 받아들여서 다시한번 그룹을 활성화해보려는 의도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별로 도움이 안됐지요. 저는 회원으로서 한차례의 전시회를 했는데, 그것이 현발의 마지막 전시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87년에 한국을 떠났으니까, 사실 제가 거기서 어떤 역할을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저의 작업은 주로 시사적인 소재를, 석고나 지점토로 만든 소규모의 인물상과 그들이 처해 있는 주변상황으로 표현한 소형조각들이었습니다. 다 합쳐서 20점이 채 안되는 이 작품들은 그 발상에서부터 재료, 작업방식 등에서 의식적으로 당시 조각계의 관습 바깥에서 이루어진 작업들입니다. 철저하게 아마추어화가적인 작업태도를 앞세우면서, 조각적인 조형 보다는 구체적인 이야기의 서술을 우선시했다든가, 진지하고 심오한 조형적 체험이 아니라 일상적인 체험을 과장과 반전에 근거하는 희화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다든가, 아파트 주부들의 취미활동에 쓰이던 지점토라는 재료를 사용했던 점들이 그런 요소들이지요. 당시 조각은 점점 더 대형화, 물량화하고, 재료의 물질성이 강조되는 추세에 있었는데, 이 작업들은 조각에서 재료의 무게와 노동의 비중을 최소화하고, 그 빈 자리에 일상생활에서 건져낸 이야기를 채워넣으려 했던 점에서, 그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거창하고 엄숙한 조각의 틀을 벗어나서 사소한 일상의 풍경들 속에 80년대 사람들의 의식에 드리워져 있던 정치적, 사회적 그늘을 담아냈다거나 하는 의미 말이지요.
나중에-유학을 가 있으면서- 그 작품들이 지나치게 시사적인 소재에 매달렸다든가, 기존의 조각에 대해 비아냥거리고 있을 뿐이지 그것을 넘어설 대안이 되지는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작품들은 입체로 만들어진 일종의 시사적 일러스트레이션들이었고, 좀 거창하게 말하면 세계를 일러스트레이트하는 방식, 설명하는 방식으로부터 세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저의 관심이 옮겨가면서 이 시기의 작업들로부터 거리를 취하게 되는 것이지요.
2. 당신은 미술대학 조소과에서 '전통적인' 조각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미 80년대부터 당신 작업은 돌이나 쇠와 같은 전통적인 조각의 재료들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동시에 자연이나 인체와의 유사성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달리 말해 한국미술 또는 조각에서 작품의 물량이나 물질성, 규모 등에 의존하는 경향의 진정한 특징은 '일반적 휴머니즘'을 감정이입의 양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당신의 작업은 이와는 달리 인간주의적인 서술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항상 기계나 물건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사물들을 인간사에 비유하는 것입니까?
--돌이켜 보면 저는 인체든 사물이든 대상을 묘사하는 능력에 관한 한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서 '잘 그린다'는 말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옮기는 데 능숙하다는 말인데, 저는 어려서부터 이 말을 많이 들으면서 자랐고, 그런 자신감이 미술대학 진학을 결심하는데 중요한 동기의 하나로 작용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대학에서 저는 그러한 관찰력(눈)과 묘사력(손)이 중시되는, 입체적인 대상물을 잘 그리고 잘 만드는, 기술의 차원과 감성적인 '느낌'이 강조되는 미술교육을 받았는데, 미술에 대한 경험의 폭이 넓어질수록 그러한 묘사의 기술이 미술의 한 특별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닿게 되면서 상당한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남들보다 손재주가 좀 더 있고 그 재주를 더 세련되게 다듬는 정도만으로 될 수 있는 것을 예술가라고 하고 그런 예술을 위해 매진하기에는 뭔가 엄청난 것이 결핍되어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고와 상상, 세계에 대한 통찰, 이런 부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미술에 관계를 맺고 있느냐는 의심이 생긴 것이죠. 이러한 회의는 졸업후에 제가 남들과 달리 엉뚱하게도 미술잡지 기자가 된다거나, 그러면서 여러 해 동안 작업을 중단하고 지낸다거나, 기껏 준비해간 프랑스에서 불쑥 독일로 옮겨간다거나 했던 이력에 영향을 끼쳤던 것 같습니다. 또한 제가 80년대에 소형조각을 만들 때 미술대학에서 훈련받은 전문적이고 세련된 인물표현방법들을 배제하고 소박하고 만화적인 표현을 택하거나 아마추어들의 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독일로 가서 저는 결국 외부의 자연적인 대상물을 묘사하는 대신에, 인공적인 대상물 자체를 직접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비일상적인 방식으로 조합하고 변조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럴 경우에 일루전이니, 작가의 테크닉이니, 개성적인 터치니, 미적 취향이니 하는 요소들은 배제되고 아주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사물'이 만들어집니다. 엄밀히 말해서 제 작품들 속에 있는 것은 도상과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작품 속의 망치는 망치의 도상이 아니라 실제로 손등을 내리칠 수도 있는 망치이고 옷은 옷의 그림이 아니라 실제로 입을 수 있는 옷입니다. 제가 이처럼 일루전에 의한 자연물의 도상을 만들지 않으려 하는 것이 어쩌면 도상을 금하는 유태교나 이슬람교에서의 입장들에 연결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런 종교와 관련있다는 말이 아니라, 그림에 대한 저의 태도가 그런 요소를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도상을 만들고 그 시각적인 도상의 마력적인 힘으로 관객의 영혼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도상 없이, 또는 도상의 힘을 최소화해서 이야기로써 머리 속에 그림이 떠오르도록 하려는 방식 말입니다. 선문답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제가 만드는 작품들은 그것이 보여주는 형태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관객의 머리 속에 떠오를 어떤 그림을 위한 사다리 같은 것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럴 때 재료가 돌이냐 금속이냐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3. 당신의 작품은 언제부터인가(아마도 박모씨와의 좌담회 이후로) '개념적인 미술'로 이해되어왔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용어가 영미의 개념미술과는 매우 다르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서구적인 의미로 본다면 오히려 당신의 작업은 전통적인 조각에 가까울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개념적인 예술'로 통하는 것은, 당신의 작업이 작품의 소위 '비물질화'와는 무관하지만 언어적인 이야기를 극적으로(구체적으로는 우화나 만화, 때로는 다이아그램의 형식으로) 구성하는 데 관심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없는 미술'이 지배적인 국내미술 사정을 감안하면 유용한 관점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 작업에 대한 이러한 모자씌우기가 적절한 것이라고 보는지요?
-- 우리나라에서 '개념미술'과 '개념적'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양상을 보면 종종 그것이 어떤 미술사적 양식을 지칭하기 이전에 특정한 성격의 미술에 대한 은연중의 거부감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개 그림으로는 신통치 않은데 말이 많은, 재주는 없는데 머리만 잘 굴리는, 원래는 미술이라고 불러주기가 싫은데 어쩔 수 없어서 미술로 불러주는,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이제는 서구미술사에서도 흘러간 유행이 되어버린' 어떤 미술 경향과 유사해 보이는 모든 종류의 미술에 대한 통칭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는 것입니다. 가치중립적인 용어가 아니라, 에이즈나 알콜릭 같은 일종의 질환의 뉘앙스를 갖는다는 것이죠.
여기서 역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설정하고 있는 미술의 개념에서 결핍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요소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념'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감각'이나 '기술'과 같이 인간이 어떤 활동을 할 때 당연히 개입되는, 생각하고 분석하고 비교하고 유추하고 조직하는 인간의 능력이 구체적으로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우리나라 미술이 이런 요소를 불필요한 요소, 오히려 미술에 방해가 되는 요소로 배제해온 것이 우리 미술의 한계입니다. 이런 요소를 인정할 때 미술의 자율적 영역이 '말 잘하는' 이론가들에게 침범 당하고 축소된다는 피해의식 말이죠. 그것이 감각만능주의, 느낌지상주의와 같은 미술의 심각한 저능화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창조적 상상력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우연과 직관에 온몸을 맡기고 '감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자세로만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작업을 하면서 한편으로 글도 쓰는 것, 기자라는 경력을 가졌던 것,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막연히 '철학'이란 말을 먼저 떠올리는 독일이란 나라에서 7,8년 살다왔던 것 등의 외적인 요인들이 이런 평판에 한몫했을 것이고, 작품에 있어서 감각적인 쾌감과 자극을 가급적 배제함으로써 볼꺼리가 극히 제한적으로 제공된다는 점이 작용했을 겁니다. 저는 저의 작업에 그런 꼬리표가 따라 다니는 것은, 다름아니라 우리 미술이 특별히 반개념적이고 특별히 비개념적임을 말해주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4.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당신의 작업은 문자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작업은 '말'하고, 때로는 '말 그대로(literal)'입니다. 말하기와 작업하기, 또는 메시지와 사물의 관계는 그래도 여전히 수수께끼 같습니다. 사물로, 또는 사물을 통해서 말하는 것이 좋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신에게 물건들이 살아있어야 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말로 하면 다 되는 이야기를 왜 사물로 해야 하느냐는 질문, 또는 왜 하필이면 그 말 못하는 사물을 통해서 말을 하려 하느냐는 질문이겠지요. 이 질문은 그러나 제게는 너무나 답답한 우문 같습니다. 밥과 물만 있으면 살 수 있는데 왜 반찬이 필요한가, 말만 하면 되는데 왜 시가 있어야 하느냐는 질문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지요. 저는 언어라는 도구를 가지고 제 작업과정들이 정교하고 투명하게 통제되기를 바라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언어와 개념이 제가 만든 결과물을 완벽하게 다 덮을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만들어진 결과물로서의 작품에는 말이나 메시지, 만든 사람의 발상이나 계획 같은 것들과는 다른 무수한 요소들이 개입됩니다. 제작에 투입된 시간, 손의 노동, 재료의 저항, 나와 재료의 타협, 내 앞에 독립적인 사물로서 실재하는 물체의 무게와 존재감, 그리고 그 표면의 바로 뒤에 놓여있는 저편의 세계, 그 심연과 비밀... 이런 것들 말이지요. 이런 요소들을 말로 대체하거나 완전하게 배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럴 수 있다면 또 어째서 그래야만 될까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 형태를 설계하고 재료를 세심하게 다루는 일, 죽은 나무가 자라게 하고(무명예술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 중에서 화분의자), 식탁보 속에서 수놓은 금붕어가 헤엄치게 하는 일(먼곳의 물)이 주는 희열은 제 작업의 근본적인 동력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저는 재료를 붙들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재료 속에서의 시간낭비는 제 작업을 이끌어가는 또하나의 바퀴입니다. 아이디어 만으로 작품이 끝날 수 있다, 끝나야 한다고 믿었던 개념미술가들과 제가 이 지점에서 구별된다고 생각합니다.
5. 당신은 비교적 글을 많이 쓰는 작가입니다. '글쓰기'가 당신 작업의 일부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기 때문에, 당신에게 글쓰기와 작업하기는 서로 독립적인 것 같습니다. 글쓰기와 작업하기를 동시에 하면서 느끼는 문제들은 어떤 것입니까?
--저는 양손잡이입니다. 연필을 깎거나 돈을 셀 때 왼손을 쓰고, 왼손으로 젓가락질도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양손잡이라고 해서 남보다 두배로 일을 하거나 동시에 두 손에 일을 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좀 편리한 경우가 있을 뿐이지요. 비유를 하자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는 것도 그런 관계가 아닐까 함니다. 저는 그림도 그렸지만 책읽기와 글쓰기도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직업도 글쓰는 직업을 얻게 되었던 것 같고 거기서 다시 저널리즘적인 글쓰기 훈련을 하게 된 것이지요. 독일에 있으면서는 독일어로 작품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관계로, 처음에 독일어가 서툴렀을 때 작품 드로잉이나 구상단계에서 한 작품에 대한 생각들을 그때그때 독일어로 기록하는 버릇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그 버릇은 더 이상 독일어 작문이 필요없어진 뒤까지도 이어져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게서는 글쓰기와 작업하기는 서로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이런 드로잉들에서 그림과 그 옆에 씌여진 글들은 왼손과 오른손처럼 서로 보완적인 기능을 합니다. 한 아이디어에 대해서 도상적 정보와 문자적 정보를 함께 기록하고, 머리 속에 떠오른 하나의 대상을 형태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다시 그 개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저에게는 손해가 되기보다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습관이 제가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거기서 얻어진 느낌을 언어화하고 토론을 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를테면 원고청탁을 받아서 쥐어짜내듯이 글을 쓰는 것은, 당연히 조각작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별개의 일이지요.
6. 미술대학이란 것은 꼭 필요한 것입니까?
--물론 없어도 되겠지요. 작가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생겨먹은 것,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타고나는 것이라면, 작가를 만드는 기관이라는 것이 따로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는 논리는 성립이 안되지요. 사숙(私塾)이나 심지어 독학으로 훌륭한 작가가 되는 예도 많으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미술대학의 기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우선 미술의 과거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미술가들과 양식의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서 미술이 하나의 예술로서 성립하는 근본적인 조건들을 제시해 줍니다. 이런 기준점들이 없다면 우리는 대다수가 자족적인 예술행위에 빠져있게 되거나, 각자가 고립된 개인으로 원점에서부터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기능은, 미술대학이 학생과 교수들의 다양한 관심과 경험들이 한데 모여서 부딪치고 갈등하고 서로를 자극하면서 기성 미술의 틀을 쇄신해갈 새로운 관점과 에너지를 생성해내는 용광로와 같은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현재에 비추어 미래를 만들어내기 위한 한 장소로 고립된 개인들을 불러모으고 그들의 대화를 촉진하는 기능 말이지요. 그럴 수 있어야만 미술대학은 존립의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미술대학들이 보통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7. 당신의 경우 작가와 교육자는 어떤 차원에서건 분리되어야 합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셉 보이스 같은 사람을 보면 스스로 탁월한 작가이면서 또 수많은 작가를 키워낸 교육자였습니다. 그 사람이 뒤셀도르프 미술학교에서 가르친 것은 미술가에게 필요한 기능과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삶과 세계를 대하는 한 예술가의 태도를 자신의 실천 속에서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주었고 바로 그 교실에서 오늘날 독일 미술을 이끌어가는 많은 작가들이 나왔습니다. 작가와 교육자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아마도 작가/교수가 자신이 속한 어떤 시대적 양식의 한계에 어쩔 수 없이 묶이면서 그것을 제자들에게 전수하려는 데서 오는 문제점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미술의 양식은 끝없이 변화하고 미술에 동원되는 지식 또한 계속 늘어납니다. 그것은 덧없는 흐름 속에 있고, 누가 가르쳐서 전수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할 것이니까요. 학생에게 교수가 자신에게 익숙한 어떤 양식이나 사조, 스타일을 가르치는 것처럼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먹이를 입에 넣어줄 것이 아니라 먹이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가르쳐져야 할 것은 기존의 모든 권위를 의심하고 고정관념을 뒤집는 창의적인 시각과, 모든 것을 거는 작가로서의 태도이고, 예술가라고 하는 총체적인 '인간'입니다. 그것이 미술대학 교수가 작가가 되려는 학생들 앞에 제시해야 할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보다 나은 작가, 자신을 넘어서는 제자를 키우는 것이 미술학교 교수의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자기 자신이 우선 작가가 아니고서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8. 당신은 표절시비의 대상이 되어 작가로서의 힘을 소모한 적이 있습니다. 표절시비의 문제는 항상 표절이냐 아니냐 하는 사실판단의 문제라기 보다는 표절시비 자체의 효과에 있는 것 같습니다. 말그대로의 표절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은연중에 '독일풍'의 작업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효과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자신의 작업이 '독일풍'이라고 생각합니까? '독일풍이다, 아니다'하는 말들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민을 간 한국출신의 시인들 중에는 몇십년이 지나고도 모국어로만 시를 쓰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자신의 독자를 계속해서 한국인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분들이 그곳에서 쓴 시들을 묶어서 한국에서 시집을 내는 경우, 전혀 정체성의 문제가 제기될 소지가 없을 겁니다. 오히려 그 꿋꿋함에 사람들은 더많이 감동하게 될 지도 모르지요. 언어를 재료로 하는 예술에서 모국어의 비중은 절대적입니다. 미술은 이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유학을 가있는 동안 저는 독일사람들을 관객으로 상정한 작품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게 되면서 역사적 문화적 경험이 다른 그들에게 계속해서 모국어로 한국적 상황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공부를 하러 유학을 가서 줄곧 한국말만 하면서 나의 껍질 속에 들어앉아 있을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제가 만들어서 발표하는 작품들이 독일인 관객들에게 보여진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말하자면 독일어로 작품을 하게 되었던 것으로 비유해볼 수 있겠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발표한 작품들 대부분이 그 작품들이니 당연히 그런 이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겠지요. 그 분위기를 독일풍이라고 한다면 저는 전혀 부인할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여행자가 아니라 장기체류자로서 제 삶의 중심을 다른 곳으로 옮겨놓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서 그곳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정체성과 관련지어 평가하려 드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왜 외국서 살았느냐고 비난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죠.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미국에서 귀국한 작가들에 비해 독일에서 작업해온 작가들에게서 우리나라 관객들이 민감하게 이질적인 냄새를 구별해낸다는 것이고, 이런 작가들의 수가 상대적으로 소수이고 낯설기 때문에 더 많이 의심하고 경계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는 것이지요.
9. 한국풍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작업을 하면서 발견하는 '한국적 상황'이 어떤 것인지 답해줄 수 있겠습니까?
--저는 한국성을 어떤 고정된 개념에 묶으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냉소적입니다. 백자항아리가, 그 일그러진 넉넉함이 한국적이라는 식의 주장과, 의식적으로 우리 자신을 그 틀에 끼워넣으려는 시도들에 대단히 부정적입니다. 일그러진 항아리가 한국적이라면 삼풍의 붕괴도 한국적인데, 우리가 이제 그런 식의 한국성을 더이상 감당할 수 없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경제 구조조정이 결국 무엇입니까? 보편타당한 범세계적인 가치질서를 다시 세운다는 얘기 아닙니까? 한국성 문제는 그 바탕 위에서 다시 고려되어야 할 문제일 겁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제가 늘 하는 말이, 겸제 정선이 자신의 실경산수가 한국적이고 한국회화의 전통이 되리라는 것을 의식해서 그런 산수화를 그렸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선 그 시대를 철저하게 열린 눈으로 보았고, 권위에 얽매이지 않은 그 새로운 시각으로부터 결과적으로 실경산수화라는 시대양식이 나왔고, 그것이 나중에 당대를 이끈 전통으로 평가되었을 뿐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미리 규정하려 들지 맙시다. 자신의 발걸음이 지금 '전통' 속에 놓여있을지 아닐지를 지금 걱정하지 맙시다.
물론 제가 작업을 하면서 순간순간에 '이런 점은 참 독특하구나' 하면서 제 속에 있는 어떤 특이한 관성 같은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외국에 있을 때에도 같은 한국출신 작가들에게서 확연하게 느껴지는 독특한 기운을 느낀 적도 물론 있고, 제가 다닌 독일학교에 있던 비유럽권의 조각가 한 분은 그런 우리 작가들의 특징을 '모순된 상황에 대한 매우 강박적인 집착'이라는 말로 짚어내었던 적도 있었습니다만, 우리가 그것을 확정짓고 의식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한국성은 타자를 위한 한국성, 남에게 보이고 미술사로 정리되기 위한 거짓정체성으로 전락할 위험에 노출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각자 그것을 마음 속에 어렴풋이 품고만 지내십시다. 그렇기만 하다면 제게서 독일 냄새가 나든 외계인 냄새가 나든 그게 무슨 문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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