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이해 못할 만큼, 갑자기 여러 전시들이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있다. 약간은 정신이 맑거나, 머리가 멍해진 경우가 그러한데....지금은 어떤 케이슨지 모르겠다. 네오룩과 포테이토로 도배를 한 전시정보이고, 다볼 확률은 거의 없지만, 첫/두번짼 어케서든지 봐얄텐데....쯔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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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와 도시화
2003 제1회 아시아의 지금展
2003_0926 ▶ 2003_1019

He Sen_캔버스에 혼합재료_2003_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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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926_금요일_05:00pm
한국_권오상_박경훈_박영균_배영환_송필_이강우_이인철_정영훈_조습_천성명_황혜신
노동미술(김미혜_박은태_성효숙_노동영상패‘씨’_김재석)
입김(곽은숙_김명진_류준화_우신희_윤희수_정정엽_제미란_하인선)
Flying City(김기수_옥정호_유석규_장종관_전용석)
Mixrice(임흥순_장효정_전용석_조지은)
중국_Qing Qing_Li Wei_He Sen_Miao Xiao Chun_Liu Wei
베트남_Do Hoang Tuong_Nguyen Thi Chau Giang_Bui Cong Khanh
일본_Nobuyuki Ohura_Yoshiko Shimada_Izuru Mizutani
인도네시아_Tita_Kus Widananto_Nindityo
태국_Vasan Sitthiket_Kritsana Chaikitwattna_Jirapat Tasanasomboon_Therdkiat Wangwatcharakul
총기획자_이태호
중국 큐레이터_장쟈우위
인도네시아 큐레이터_아궁 쿠르니아완
주최_한국문화예술진흥원_사단법인 민족미술인협회
후원_문화관광부_사단법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마로니에미술관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0번지
Tel. 02_760_4605
『아시아의 지금 Seoul-Asia Art Now』을 열면서 ● 아시아 각국은 지난 수세기 동안 나날이 확산되는 ‘서세동점(西勢東占)’의 추세 속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아시아의 각 국가와 민족은 대체로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구 열강국들에 의해서 ‘근대화’의 길에 들어섰다. 따라서 아시아에 있어 ‘근대화’는 ‘서구화’와 병행되었고, 그것이 진행되는 동안 수 천년을 이어온 전통은 방기됐으며 그 맥은 분절됐다. 아시아에 있어 ‘근대화’는 또한 갑작스럽게 진행된 ‘산업화’의 다른 이름이었다.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파헤쳐진 땅 위에는 낯선 도시와 공장과 도로가 건설되었다. 새로운 도시와 생산품과 도로는 사람들에게 과거와 전혀 다른 삶의 형태를 요구했다. 오늘날에도 아시아 각 국은 여전히 거역할 수 없는 ‘세계화’와 ‘근대화’와 ‘도시화’를 향한 길 위에 있다.

황혜신_저녁_합성수지에 채색, 혼합 재료_170×140×37cm_2002_한국

천성명_합성수지와 혼합재료_2003_한국
한편, 20세기에 들어 아시아 각국들은 서구 열강의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때로는 ‘독립’이 이름뿐일 경우도 있었지만, 이들 나라들은 ‘독립국’으로서 자주적으로 정부를 만들었다. 스스로 자신들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현실을 재편하고 미래를 개척하기 시작했으며, 이와 함께 그동안의 식민지 체험과 격변의 역사 속에서 잊혀진 제 얼굴과 목소리를 찾아나서고 있다. 이제 아시아 각국은 강제된 ‘서구식 근대화’의 세월 속에서 방치돼 있던 문화의 소중함을 깨달으면서 그것을 현재의 삶과 미래의 꿈에 접목시키고자 하고 있다.

배영환_아름다운 강산_비디오 영상 설치_2002_한국

Nguyen Thi Chau Giang_캔버스에 혼합재료_2003_베트남

송필_외치다_합성수지, 쇠가죽_105×98×70cm_2002_한국
이에 우리는 이러한 아시아 각국의 문화적 현재의 위상을 아우르는,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인에 의한 미술제를 열고자 한다. 우리는 이 전시회를 통해 아시아의 미술인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환경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으며, 그 곳에서의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시각언어로 담아내고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이강우_문화풍경 시선 그리고 개념적 색채에 관하여_시바크롬 프린트_각 250×70cm_2000_한국

Nindityo_혼합재료_가변크기 설치_2003_인도네시아

Li Wei_컬러인화_2003_중국
미술제 『아시아의 지금』은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세계 문화 속에서 그동안 가려지고 감춰졌던 아시아인의 미술적 역량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넓히기 위해 기획되었다. 본 미술제는 ‘아시아성 Asianity’의 발현과 추구를 통해 아시아인으로서 정체성을 찾으며, 나아가 세계 문화의 다양성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 미술제 『아시아의 지금』은 어디까지나 아시아인들의 오늘의 삶과 꿈을 반영하는 미술마당이다. 아시아인들의 작품들이 한 곳에 모여, 서로 보고 보여주며 의견을 나누는 소통의 장이자 축제의 마당을 지향한다. ● 미술제 『아시아의 지금』은 대한민국 서울에서 1년에 한차례 열린다. 미술제는 아시아 각국에서 제작된 미술작품 전시를 주행사로 한다. 본 미술제는 이와 더불어 심포지엄과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아시아의 미술과 시각문화 전반, 그리고 그것과 관련한 역사적·정치적·사회적 ·미학적 연구 및 비교·토론을 병행한다.

권오상_미술이 가지는 절대적 권위와 숭배에 관한 280장의 진술서_혼합재료_240x140x50cm_1999_한국

정영훈_혼합재료_2003_한국

박경훈_메이드 인 유에스에이_캔버스에 혼합재료_2003_한국
2003년 제1회 『아시아의 지금』의 주제는 ‘근대화와 도시화 / Modernization & Urbanization’로 정한다. 이 주제는 아시아 각국의 역사와 현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사회적·정신적 현상을 압축하고 있다. 이 주제는 아시아의 지난 발자취이자 오늘의 얼굴이며 내일의 꿈을 포함하고 있다. 이 주제를 다루고 있는 다양한 모습의 미술품과 그 활동을 통해 우리는 현재 아시아 각국이 처한 문화적 위치를 확인하고, 그 미학적 특질을 개발하며, 그 예술과 문화의 세계화를 통해 인류 전체의 문화적 자산이 되고자 한다. ■ 이태호
● 2003년 제1회 『아시아의 지금』展과 관련하여 각국의 현실과 시각문화를 분석, 비교, 전망하는 심포지움(2003년 9월 27일 예정)과 워크샵(9월/10월 중순 각1회)이 있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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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Design, NO Style: Droog Design
네델란드 드록 디자인展
2003_0926 ▶ 2003_1019

Tejo Remy_Chest of drawers 'you can't lay down your memories'_wood, birch plywood_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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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925_목요일_05:00pm_한가람디자인미술관 로비
초청강연회_2003_0926_금요일_01:00pm~04:00pm_예술의전당 문화사랑방
워크샵_2003_0925_목요일_10:00am~04:00pm_한가람디자인미술관 세미나실
주최_예술의전당 / 주관_한가람디자인미술관
후원_문화관광부_네덜란드대사관_Droog Design_Utrecht Centraal Museum
협찬_P&O Nedlloyd_투두(주)_월간 디자인네트_까사미아_한국디자인산업연구센터(KDRI)
개관시간_11:00am~08:00pm(매표마감 07:00pm)_평일, 주말 동일
관람료_일반 2,000원 / 학생 1,000원 / 단체(20명이상) 50%할인
담당_김상규_김유진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서울 서초구 서초동 700
Tel. 02_580_1539
드록 디자인Droog Design ● 드록 디자인은 오늘의 대중적 디자인 경향과는 다소 상이한 조형적 해석과 표현으로 대중에 소개되고 있다. 특히 기존 사물의 근본적인 존재가치와 사물과 인간관계 속의 디자인 정신을 강조한 이러한 시도는 디자인 전문분야 뿐 아니라 보편적 수용자에까지도 시대적으로, 지역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적잖은 반감을 야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1993년 암스테르담의 한 대중적 클럽에서 소개된 이들의 첫 전시회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리 긴 기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활동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어느새 드록 디자인의 모든 활동들이 문화적 운동movement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아 가는 건 아닐까? 이번 전시는 이러한 의문들에서 시작되었고, 디자인의 새로운 해석과 개념적 접근으로 주목받고 있는 네덜란드의 디자인 그룹, 드록 디자인의 디자인 정신mentality과 활동들activities이 현대 디자인에 있어서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에 주목하려한다.

Tejo Remy_Rag chair_textile, wood, steel_1991

Peter van der jagt_Doorbell 'Bottoms up'_crystal glass, stainless steel_1994
NO Design, NO Style ● 드록 디자인은 디자인을 하지 않는다. 기존의 양식을 거부한다. 단지 사물을 냉철히 바라 볼 뿐이다. 우리 주변의 사물들이 디자인이라는 굴레 아래 그 본질을 잃어 가고 있음을 그들은 지적한다. 어쩌면 디자인의 본질을 둘러싼 화려하고 유혹적인 겉포장에 가려져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사물과의 관계를 드록은 되찾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라고 외치고 있다. 또 오늘날 디자인이 좇고 있는 새로움이란, 종국에는 우리 주변 사물의 본질을 되찾는 행위로 역류할 지도 모른다. 1993년 창립 이래 10년을 맞이하고 있는 드록 디자인은 이제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10년간의 과거를 새롭게 되돌아 볼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이즈음에 그들의 10년간의 프로젝트와 컬렉션을 한자리에 모은 한국전시는 그만큼 의미가 크다. 한국에 소개되는 드록 디자인이 다소 생소하게 다가올지도 모르지만, 디자인의 본질 주변에서 다소는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우리 디자인의 현 주소를 인식하고 있다면, 드록 디자인 전시에서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는 분명 우리에게 인간과 사물, 그리고 디자인 본질에 대한 근본적 의미를 되돌아볼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창립 초기의 컬렉션에서부터 최근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약 80여 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Koings&Bey_Double-Chair_existing furniture and PVC coating on elastic fibre_1997
PROJECT Review 1993-2003 ● 드라이 테크 Dry Tech 1995+1997_1995년, 이들은 현대의 진보된 기술로 새로운 조형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는 ‘Dry Tech'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이 프로젝트는 드록 디자인의 첫 번째 프로젝트로서, 이전 이들의 작품들이 자연적 소재와 보편적 산업 재료를 사용하였던 것과는 달리 진보된 합성재료advanced synthetic material를 선택하게 된다. 이러한 선택은 결과적으론 플라스틱과 사물의 관계, 그리고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재료의 선택과 그 사용에 관한 의미 있는 메시지로 남게 된다. ● 로젠탈 Rosenthal 1996_ 로젠탈은 그 전통과 함께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는 독일의 유명한 자기회사이다. 1996년 드록 디자인은 로젠탈로부터 실험적 제품의 개념 개발과 제작을 의뢰 받는다. 이들은 재료와 그 가공의 한계성에 있어서 자기로써의 잠재성, 즉 새로운 사용성과 기능을 확인하고 성공적인 제품들을 만들어 낸다.

Gijs Bakker _Teapot 'Knitted Maria'_porcelain, glazed_1997

Jagt, Visser, Kwakkel_Functional tiles 'Tv'_1997

Jurgen Bey_Treetrunk bench_wood. bronze_1999
드라이 베싱 Dry Bathing 1997_ 1997년, 욕실용 제품을 위한 실용적 아이디어와 개념으로 ‘드라이 베싱'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 프로젝트 역시 재료의 한계와 새로운 이용 가능성에 대한 탐구로 볼 수 있다. 특히 욕실이라는 공간에서의 장식, 그리고 장식으로 인한 호화스러움을 기존의 사고를 달리한다. ● 필연적 장식 The inevitable Ornament 1998_ 1998년, 드록 디자인은 그간 컬렉션된 작품들을 정리하게 되면서 장식에 관한 개념정의를 재차 분명히 한다. 이 프로젝트에서 장식은 기술과 인간에 의하는 종속적 개념으로, 또 이러한 장식은 정당하고도 본질적임을 강조한다. ● 쿨레르 로컬 Couleur Locale for Oranienbaum 1999_ 초기의 독창적이고 실험적 개념과는 다소 상이한 지역 문화 활성을 위한 프로젝트였다. 1999년 4월, ‘지역의 색채(Couleur Locale)’라는 이름으로 밀라노에서 소개된 이 프로젝트에서는 ‘오라닌바움(Oranienbaum)’이라는 쇠퇴해 가는 17세기의 성(城)과 주변의 지역 환경을 신선하고 풍부한 자연 공간으로 복구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Jurgen Bey_Leiv's 'Red Line'_window installation_1999

Peter van der Jagt_Do Break_porcelain, rubber, silicone_2000
리바이스 스토어 Levi's Store 1999_ 리바이스의 신제품인 청바지(Levi's Red Line)의 상품 홍보 및 매장 디스플레이를 위한 디자인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베이J. Bey는 모호한 인디고(indigo:청바지와 같은 bule 계통 색)에 관한 남다른 디자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Droog Design의 디자이너로써, 유동적이고도 신비한 쇼윈도우(shop windows by glass liquid crystal screens)를 제안한다. ● 플레이 하우스 Play House 1999_ 2인조 더치 디자인 그룹, 트라스 앤 그루송Traast & Gruson이 드록디자인에 의뢰되어 디자인한 설치물이다. 이 설치물은 덴마크의 음향관련 제조업체인 방&올루프슨Bang&Olufsen의 이태리 밀란에서의 기업홍보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제작되었다. ● 두 크리에이트 Do Create 2000_ 디자인 사고의 획기적 전환을 가져온 사용자 경험중심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1999년부터 시작된 ‘Do' 프로젝트는 제품이 사용자의 개별적 욕구를 어떻게 맞추어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적이고도 경험적인 접근이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보여지는 제안들은 개별 사용자만의 경험을 존중하여 개개의 상황에 따른 ’행함doing‘의 디자인을 제안하고 있다. ● Me, Myself and You 2001_ 2001년 드록 디자인은 인간관계 개선을 의도한 'Me, Myself and You'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프로젝트는 이웃과 이웃, 그리고 자아를 가진 유기적 인간으로서 인간적 관계의 회복 및 개선을 의도하고자 했다.

Next Architecture_Share Fence_prototype_2001

Hector Serrano_hotel droog_Clothes hanger lamps_2002
시스템 올마이티 System Almighty 2001_ 시스템 올마이티 프로젝트는 디지털 미디어와 기술의 발달이 현대 예술과 건축, 그리고 디자인에 어떠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올 것인가에 주목한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그 해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에서 열린 ‘010101 Art in Technological Times'라는 전시에 참가하게 된다. ● 호텔 드록 Hotel droog 2002_ 드록 디자인의 초점은 공간에 있지 않았다. 또한 호텔 자체를 디자인하려는 의도도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단지 더욱 편하고, 보다 독특하고 새로운 경험을 관람객들에게 만들어주는데 있었다. 누추한 별 하나짜리 호텔에서 방문객들은 소중한 경험을 얻어갔다. ● 당신의 선택 Your Choice 2003_ 작년 2003 이태리 국제가구 박람회(4월)에 참가한 드록 디자인의 주제는 ‘당신의 선택Your Choice'이었다. Your Choice는 박람회에 방문한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질문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사물(제품 혹은 서비스)을 선택함에 있어서는 그 사물이 지닌 잠재 가능성에 대한 탐구가 선행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Ted Noten_100 Different pieces of a Mercedes Benz_steel, lacquer, various sizes_2003
전시의 구성 ● INTRODUCTION_ 드록 디자인에 대한 소개와 함께 창립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다룬다. 창립이후 10여 년간의 활동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다. 그리고 현대 디자인에 있어 드록디자인의 의미와 한국 전시의 기획의도를 소개한다. ● SECTION I / 드록 디자인 컬렉션 1993-1998_ 창립자인 레니 라마커스Renny Ramakers와 헤이스 바케르Gijs Baker는 사물에 대한 독특한 해석과 표현하는 디자이너의 작품들을 컬렉션 해왔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의 이들의 컬렉션에 포함된 작품들을 소개한다. ● SECTION II / 프로젝트 Review_ 1995년 드록 디자인은 매년 정해진 주제에 따라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다. 프로젝트의 결과물들은 매년 이태리 밀라노에서 열리는 국제가구박람회Salone de Mobile에 소개되고 있다. 최근 프로젝트 「당신의 선택Your Choice 2003」에 이르기까지 드록 디자인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들을 소개한다. ■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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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본다
안재홍 조각展
2003_0926 ▶ 2003_1005

안재홍_나를본다_구리선_가변크기,설치_2003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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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926_금요일_05:00pm
갤러리사간
서울 종로구 소격동 55번지
Tel. 02_736_1447
안재홍이 만든 몸들 ● 얇고 가는 구리선이 무수하게 엉켜 체적을 이루고 자잘한 선들이 모여 부피를 만들며 볼륨과 입체감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곤 그것이 사람이 되었다. 짚으로 만든 인형 혹은 실뭉치로 채운 상을 떠올려 본다. 표피를 벗겨낸 청동선을 사용하고 있는 작가는 그것을 뭉치로 만들고 이를 다시 굵은 청동선으로 엮어내는 방법론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했듯이 섬세한 인공섬유처럼 실선의 모양을 하고 있는 동선들은 육체의 피질을 제거한 신경조직이나 미세혈관을 연상케 한다. 철골로 용접된 기초 모형의 틀 위를 동선뭉치로 겹겹이 덮고, 씌운 다음 인체를 결박하듯 묶어 지탱하는 두꺼운 철사의 조형성을 통해 폭력과 억압의 의미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가 하면 시간이 흐르면서 피어난 청동의 부식현상(동선들을 암모니아수로 습기를 먹여 밀봉해 두면 그런 효과가 나온다)은 흡사 부패한 인체를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우연히 고물상에서 뭉쳐져 나뒹구는 구리선을 발견한 작가는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그 구리선이 자신과 동일시되기도 하고 자신의 속살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느낌, 마치 자신의 초상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어 그 재료를 선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안재홍_나를 본다_구리선_등신대_2003

안재홍_나를 본다_구리선_등신대_2003
화성 봉담 근처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에서 만난 다소 기이한 이 물질의 다발은 흡사 바위에 잔뜩 낀 이끼나 벽에 무섭게 매달린 담쟁이 넝쿨처럼 그렇게 번져 나가거나 부풀어오르면서 자연스레 인간의 몸을 떠올려 준다. 녹이 슨 동선이 자아내는 진한 청록의 색감과 자잘한 선들로 빼곡이 채워진 인체는 기이한 흥미를 던져준다. 아울러 특정한 성의 표식이 지워진 이 중성적인 인간형들은 벽에 걸려있거나 바닥에 웅크리고 있다. 바위나 돌이 돼버린 인간, 모든 음성을 지우고 오로지 침묵으로만 굳어버린 사람, 감정을 억누른 채 부동으로 존재하는 이 몸들은 다분히 연극적인 상황설정을 만들어준다. 전시장은 따라서 한편의 극이 전개되는 특별한 무대가 되고 이 '몸'들은 저마다의 배역을 맡고 있어 보인다. ● 안재홍은 자신의 분신 같은 이 몸들을 공간에 부려놓으면서 결국 자신의 몸, 모든 것을 함축하고 저장하고 기억하고 있는 그 몸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 동안 작가는 언제나 인체로 이야기를 풀어왔다. 그러니까 그녀의 작업은 언제나 인체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저런 모습으로 묶여 있는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는 매개가 됨과 동시에 무엇보다도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내부에 있는 모든 것들을 드러내고 자기 안에서 꿈틀대고 있는 힘, 의지를 보이고 싶어한다. 아니 자신의 작업이 그냥 사람이고자 하는 것이다.

안재홍_꿈꾸는 몸_구리선_317×150×15cm_2003
다소 비장하고 더러 엄숙하고 무겁게 자리한 이 인간의 형상은 다분히 실존적인 뉘앙스를 함축하고 있어 보인다. 고뇌에 찬 몸짓이거나 속박과 굴레를 머금은 인간의 보편적인 운명에 대한 부드럽지만 예민한 시선이 감촉이 긷든 조각으로 다가온다. 한편으로는 그런 것들이 다소 상식적으로 눈을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그러한 상투형의 인상을 벗어나 다시 그 조각들을 본다면 꽁꽁 묶인 체 웅크리고 있거나 묶여서 밑을 내다보는 인간 군상들보다는 벽의 피부에 걸쳐있는, 단절과 생략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인체들이 좀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것들은 일종의 부조이자 동시에 벽의 표면에 그려진 그림의 일종이다. 커다란 벽면에 힘찬 드로잉을 하듯 작가는 동선으로 그림(부조)을 그렸다. 무척이나 회화적인 충동을 감지하게 하는 그런 작업이다. 그래서 조각 작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커다란 회화, 벽화로 다가온다. 가는 동선다발을 물감 삼아, 전시장 벽면을 화폭으로 삼고 그 위에 인간의 몸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 선으로 이루어진 이 부조(회화)는 덩어리로 존재하는, 특정한 3차원적 공간을 물리적으로 점유하는 조각의 관행에서 슬쩍 빠져 나와 평면에 기생하면서 납작한 평면이면서도 동시에 일정한 높이를 지닌 입체로서의 삶을 횡단한다. 또한 주변 벽면(환경)을 자신의 영역으로 빨아들이면서 분리시키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흰 벽면을 실존의 공간으로 삼아 무언의 몸짓을 펼쳐 보인다.

안재홍_꿈꾸는 몸_구리선_317×150×15cm_2003
안재홍이 만든 몸은 구체적인 표정이나 특별한 몸짓 이전의 본능적인 살덩어리, 피와 혈관과 수분으로 뭉쳐진, 살과 뼈가 합쳐진 그런 몸으로 다가온다. 마치 살 껍질을 죄다 벗겨내 드러난 살의 안쪽 같다. 조각이 결국 몸의 외형만을 재현할 수밖에 없다면 이 작가는 그 안쪽, 깊이를 지닌 그 내부를 들여다보고자 염원하는데 그것은 다소 절박하다. 인간의 몸이란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텅 빈 공간 같다. 한 개인의 감정과 사유가 분명 거주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그저 장기들로 가득 채워진 고무봉지 같은 것이 몸이기도 하다. 동물성으로서의 몸이 고상하고 숭고한 정신의 거처라는 아이러니는 화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이라면, 부정할 수 없다면 그 두 개의 영역을 함께 인정하는 선에서 살아갈 것이다. 미술은 그 두 개의 영역에서 언제나 정신의 우월성을 강조해왔지만 최근에는 몸 자체를 억압하지 않고 솔직하게 들여다보고자 한다. 몸의 재현이 동시대 미술의 화두가 되었음을 떠올려 보라.
안재홍은 인간의 안쪽을 표현하고자 한다. 자기의 내부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무척 어렵고 지난한 일이다. 과연 미술은 인간의 그 내부를 재현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인간은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들을 길어 올려 시각의 영역아래 두고자 했다. 미술이 정신의 표현이고 내면을 투영하는 적절한 수단이라고 여겨왔다. 아마도 그것은 눈으로 볼 수 없고 보여줄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시각화의 욕망에 지배되어 왔다. ● 우리의 눈은 인간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는 없다. 우리가 내부를 보기 위해서는 절개를 해야 한다. 그러니 절개한 몸에는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은 없다. 그저 동물성으로서의 몸뿐이다. 안재홍의 조각은 일종의 절개와 단면의 조각인 셈이다. 외면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그 안쪽을 다시 보게 하는 것이다. 장기로 흘러 넘치는 안의 육체를 은유화 하는 동선들은 그것을 넘어서 인간 내부의 복잡 미묘한 심리와 정신의 예민한 가닥들 또한 효과적으로 재현한다. 피상적인 외피의 창백한 재현보다 적나라한 내부를 응시하게 하는 것이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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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서울 유토피아를 꿈꾸다.
정윤기_오은숙_박은경 사진展
2003_0924 ▶ 2003_1007

박은경_파라다이스_컬러인화_100×100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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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924_수요일_06:00pm
갤러리 룩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 인덕빌딩 3층
Tel. 02_720_8488
유토피아, 말할 것도 없이 무지하게 좋은 세상을 말함이며 영원히 있을 것 같지 않은 그 무엇이다. 여기 세 명의 신진 작가들은 서울을 들여다보며 유토피아를 생각한다. 아니 꿈꾸고 싶어한다. ●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들은 서울이라는 괴물스런 도시의 한쪽을 들여다보는 그들의 눈길 넘어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꿈을 어슷하게 썰어 보여주려고 한다.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며 고민해야 하는 젊은이들로서의 또 하나의 표정이다. 그리고 이 시대를 말하는 표현자로서 바른 길을 모색해 가려는 노력이다. ● 서민주택 옥상 한쪽 구석에 아무렇게나, 그러나 이 도시 사람들의 삶의 표정들이 잔뜩 묻어있는 간이 화단들..., 동네 한 귀퉁이 짜투리 땅이나 담벼락 밑 적당히 가난한 화분들, 푸성귀들을 오히려 정겹게 보아 가는 오은숙의 눈길... ● 거대 도시 서울의 시민의 발 노릇을 하는 지하철 통로에는 플라스틱 재료로 만들어진 가짜 화단이 얄궂게도 진짜인양 형광등 푸른빛 아래 펼쳐져 있다. 박은경은 그러한 가짜풍경을 유심히 보며 조금쯤 억울해져 파라다이스를 꿈꾼다. ● 또한, 정윤기는 한강변 광나루 일대의 유일하다는 생태 보존지구에 주목한다. 온통 시멘트로 든든하게 메우고 정리된 강변 풍경에서 기적적으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아 거대 도시의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광나루 보존구역을 매우 냉정한 눈길로 화면을 수집해간다. ● 온통 시멘트로 뒤덮혀 숨이 막힐 것만 같은 서울이라는 도시.., 그 속에서 질척거리는 삶과 그 끈끈한 현실의 풍경들... ● 이 시대, 새로운 혜택과 풍요의 뒷전에는 엄연한 삶의 냄새들과 소리들이 있다. 그것을 이들은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는 통로라 생각하고 싶어 한다. 현대화는 근대적 사회제도의 발전과 함께 안락한 삶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산업경제의 논리마져 넘어 정보화와 무제한적으로 세계화라는 새로운 국면을 무차별로, 펼쳐 보인다. 바로 이쯤에서 이 시대의 개인의 감성의 변화는 어떤 것이어야 하며 작가는 어떤 담론의 생산을 이루어 시대에 대응해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 거대한 제도와 거대한 물질적 환경은 또한 어떻게 개인의 삶과 관계하는지도 우리들의 고민인 것이다. 생산력의 확장과 거기서 약속되었던 부와 행복은 인간을 반복적인 삶의 규율에 예속시킨다. ● 그리고, 가공할만한 환경파괴와 함께 개인의 자율성과 행복에의 성취를 왜곡시켜 간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이 세 사람의 작가들은 이쯤에서 다시 한번 이 시대의 거대 풍경 서울에서, 작지만, 분명히 존재할 수도 있을 유토피아의 꿈에 대한 그들의 생각의 끈을 진지하게 잡아가려는 것이다. ● 적어도 이 시대의 삶이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될, 그리고 어느 한켠에 남아있는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이들의 애정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시작하려는 것이다. 어딘가 분명히 있을...,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 우리들의 환상조차도 유토피아를 말해보고 싶은 것이다. ● 사진은 “있는”것을 찍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들의 소박한 “있음”에 대한 신뢰를 통해 또 다른 유토피아를 꿈꾸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 김장섭

박은경_파라다이스_컬러인화_100×100cm_2003
최근 몇년동안 서점가에서 꾸준히 스테디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책들중에는 스콧니어링의 자서전과 틱 낫한 스님의 책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들의 내용을 거칠게 살펴보면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대도시 삶의 형태를 부정하고 환경보존, 녹색 공동체 건설, 자연친화 등의 주제를 담고 있다. ● 이러한 책이 지속적으로 팔리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 이 도시를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직장에 매어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 대다수 소시민들 중 이런 도시탈출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 서울인구 네명 중 한명, 하루 500여만명이 이용하는 지하철. 서울시민들은 출근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지하철에 오르고 고단한 하루를 지하철 의자에 앉아 졸면서 마감한다. ● 이렇게 많은 시민들의 발이 되고 있는 지하철역에는 다양한 형태의 인공정원이 설치되어 있다. 그 곳에는 물레방아가 있고, 나비가 날고,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다. 그곳은 무릉도원이고,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이다. ● 그러나, 이 파라다이스는 삭막한 도시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시민들처럼 실제 꽃과 나무들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화학염료로 염색되어 있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으며, 지하철 푸른 조명 아래 놓여 있다. 일상에 얽매어 근근하게 살아가는 출퇴근 시민들에게 이러한 인공 인공정원은 슬픈 위로가 된다. ■ 박은경

오은숙_시시에게-화분이 놓인 자리_컬리인화_12×16″_2003

오은숙_시시에게-화분이 놓인 자리_컬리인화_12×16″_2003
빽빽한 건물과 탁한 공기, 어지럽게 만드는 소음 그리고 정신없이 쫓기는 사람들. 서울, 도시의 모습이다. ●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휴가철이면 산과 바다를 찾는다. 푸른 산과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은 도시 사람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준다. 이렇게 자연은 사람들의 위로가 되어준다. ● 서울, 주택가에 생활도구가 어지럽게 널려진 집 주변과 옥상 모퉁이에 사람들은 자연을 옮겨놓고 싶은 듯, 화분이나 텃밭에 꽃과 채소를 가꾸고 돌본다. 집 주변에 어지럽게 놓여진 생활도구와 어울려진 화분과 텃밭을 보면서 바쁘게 사는 도시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그리움과 스스로의 치유의 모습을 본다. ■ 오은숙

정윤기_한강 2003_흑백인화, 유리액자_10×24″_2003

정윤기_한강 2003_흑백인화, 유리액자_10×24″_2003
한강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현대의 상징적 장소가 되었다. 현재의 한강은 옛 모습 그대로의 한강이 아닌, 현대적으로 바뀌어진 대표적 장소이다. ● 한강 전지역은 아스팔트화 되었으며, 유일하게 광나루 지구 보호구역만이 유일하게 원형의 모습 그대로 유지되어있다. 그리고 그곳을 경계로 아스팔트 운동장과, 수영장, 그 주변을 순환하는 산책로가 있다. ● 잘 가꾸어진 시민 공원과 유람선은 서울 시민들의 휴식처로서 자리 잡았으며, 넓게 트여진 다리와 도로, 그리고 녹지 보호 지대가 어우러진 시민들을 위한 장소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 개발과 보호 그리고 조화 속에서 변화하고 있는 한강에서 자신에게 이로울 것으로 여겨지는 환경으로 바꾸어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 정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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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The China' #8
▣ 전시장소 : 한미갤러리 (송파구 방이동 45 한미타워 20층 Tel: (02) 418-1315)
▣ 전시일시 : 2003년 9월 20일(토) ~ 11월 1일(토)
▣ 전시오프닝 : 2003년 9월20일(토) 오후 5시
<뮤지움 프로젝트>로 잘 알려진 김아타의 <프로젝트 차이나>전이 9월 20일부터 11월 1일까지 한미 갤러리 초대로 열린다.
<프로젝트 차이나>는 <뮤지움 프로젝트>(1995-2002)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브로드캐스팅>(2003- )의 과도기적 단계에 있는 작업으로 치밀한 계획 하에 진행되어지는 작가의 작업 진행 단계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한다.
<뮤지움 프로젝트>과는 달리, 인체대신 마네킹이 등장하고, 아크릴 상자가 아닌 광대한 대륙 중국의 지리정치학적, 문화적 이슈를 담고 있는 명소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프로젝트 차이나>는 중국을 정체성 소 멸의 현장으로 파악하고 있다. 물성을 강조한 <뮤지움 프로젝트>에서 소멸의 현장을 담은 <브로드캐스팅>과의 사 이에 서 있는 <프로젝트 차이나>는 존재와 소멸로의 전이를 겪으면서 진화하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작가는 이 번 한미 갤러리 전시에 이어, 내년에 뉴욕 ICP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와 국립 호주미술관에서 2회의 개인전이 잡혀져 있다.
- 한미갤러리
| 전시서문 |
奎谷 김홍희 (쌈지스페이스 관장, 홍익대 겸임교수)
현대사진은 르포르타주와 예술 사이에서 이중 정체성을 담보하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사진의 이중적 본성으로부터 유래한다. 사진은 한편으로 다큐멘터리, 리얼리즘의 속성을 포함함으로써 르포르타주라는 사진의 일차적 기능을 수행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수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어왔다. 예컨대 사진은 비자연적 색채인 흑백 이미지로 연필이나 목탄 드로잉과 같이 생래적으로 예술적 추상성을 획득하거나, 인간의 눈을 대치하는 제2의 시각, 즉 카메라 앵글로 대안적 비전을 제시하였다. 사진의 이러한 이중적 본성에 입각하여 작가들은 회화적 재현을 능가하는 동시에 그것과 차별화되는 사진 특유의 리얼리즘 양식을 구축하거나 리얼리즘 자체를 거부하는 추상양식을 실험함으로써 사진과 미술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시켜 왔다.
20세기 초의 아방가르드 작가들에 이어, 전후의 현대 미술가들은 다양한 기술 개발과 사진의 속성을 파헤치는 극단적인 매체 실험으로 새로운 미학적 요소를 발생시켰다. 1970년대에는 동시대 개념미술의 맥락에서 사진의 기록적 속성을 강화하는 한편 그것을 텍스트나 책의 형태로 재코드화 했다. 다큐멘터리 모델에 기초한 만큼 작은 포맷으로 만족하였던 70년대와는 달리, 80년대 이후에는 고전 사진의 미학적, 양식적 한계를 벗어나려는 욕구로 대형 스케일의 사진이 시도되기 시작했다. 사진이 예술로 기능하고 예술로 경험되기 위한 한 가지 방안으로 사이즈를 확대시킨 것이다. 요컨대 1980년대 이후 사진은 르포르타주 미학에 의해 차단되었던 사진의 제2, 제3의 속성을 발굴하여 고전사진, 정통사진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초점 맞추어졌다. 사진 적 리얼리즘, 다큐멘터리의 유효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양식과 방법을 창안함으로써 사진의 미학적, 개념적 확장을 도모한 것이다. 제프 월, 안드레아스 걸스키의 예에서 제시되듯이, 르포르타주와 예술의 경계에서 매체적 유희를 수행하며 각자 고유한 작품세계를 일궈내고 있는 현대 많은 사진작가들의 작품 경향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차이나>시리즈를 발표하는 이번 전시회의 주인공 김아타 역시 르포르타주와 예술 사이에서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다. 초기의 인물사진, <세계-내-존재>와 같은 특수 풍경 사진이 다큐멘터리 쪽에 가깝다면, 1990년 이후의 <해체>시리즈, <뮤지엄>프로젝트, <차이나>시리즈, 현재 진행 중인 <브로드캐스팅> 프로젝트 등은 대형 스케일이나 주제와 양식 면에서 예술적 극단으로 기운다는 것이다. 예술적 극단에 서있다 할지라도 그의 사진은 결코 다큐멘터리와 리얼리즘 요소를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미지와 배경을 “디폼”(deform)하고 “리폼”(reform)하는 연출을 시도하고, 특히 <뮤지엄> 프로젝트 이후에는 이전의 흑백 대신에 강렬한 원색 칼라 사진으로 리얼리즘을 강조한다. 또한 스트레이트 사진을 선호하고 대형 카메라의 사용을 고집하는 작가의 태도 역시 리얼리즘에 대한 그의 집착을 엿보게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는 사실적 리얼리티와 사진 적 리얼리티를 구분한다. “나는 사진이 진실을 말하거나 진실을 잘 대변해준다고 믿지 않는다.”라는 그의 언급을 통해 사진의 이중적 본성 또는 정체성에 대한 그의 통찰력을 감지하게 된다.
이번 출품작 <차이나>시리즈(2002)는 그의 대표작 <뮤지엄>프로젝트(1995-2002)와 미공개 프로젝트 <브로드캐스팅>(2003-) 사이의 과도기 작품이다. 대하시리즈로 구성된 <뮤지엄> 프로젝트는 일부 야외 사이트 작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실내 스튜디오나 상가, 로비 등 도시적 파운드 스페이스에서 촬영하고, 유리상자, 아크릴 십자가, 파라핀 불상 등 오브제를 직접 제작, 사용함으로써 연출 성격을 강하게 풍기는 작업이었다. 반면에 <차이나>와 <브로드캐스팅>은 야외 로케 촬영에 의존, 전자에서는 천안문, 자금성, 만리장성 등 중국의 명소를, 후자에서는 국회의사당, DMZ 등 특정장소를 사이트로 사용하고 있으며, 제작된 소품이나 배역된 인물보다는 사이트의 풍경과 현지 인물을 대상화한다. 그러나 <차이나>의 일부 작품은 황제황후상으로 구성되는데, 서태후 등 자금성의 엽서 사진을 촬영해서 그 이미지 위에 마네킹의 흰 얼굴을 부착한 후 다시 사진을 찍은 작품이 그것이다. 또한 만리장성 등의 풍경이미지 한편에 천으로 만든 을씨년스러운 입상을 세워놓고 있는 사진도 있다. 순전히 사이트만을 촬영한 <브로드케스팅>과 다르게, 이러한 소도구를 사용, 아직까지 <뮤지엄>의 잔재를 보이는 <차이나>에서 그 과도기적 성격을 간파할 수 있다.
또한 담론 적이고 철학적인 <뮤지엄>에 비하면, 특정사이트를 대상화한 <차이나>와 <브로드캐스팅>에서는 그러한 사변과 텍스트적 성격이 약화된 듯이 보인다. 그것은 사이트 자체의 풍경적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노출이라는 특수 기법의 도입으로 부각된 조형적, 양식적 측면에 기인하는 듯 하다. 작가는 <차이나>의 일부 작품과 <브로드캐스팅>의 전 작품에 이러한 장노출 기법을 전격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는데, <차이나>의 경우 3-10분간 노출 촬영한 만리장성 이미지를 보면 전경이 뭉개진 것처럼 흐릿하게 보인다. 원경의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아 이미지가 선명하지만, 근경 인물들은 가시적 움직임으로 인해 이미지가 흐려지는 것이다. <브로드캐스팅>에서는 거의 물리적 프로세스를 벗어날 정도로 이러한 장노출을 몇 시간으로 확장한다. 현장의 실상황을 중계하는 사설 방송국의 프로듀서가 되어 그는 국회의사당 회의 장면, 대통령 취임식, DMZ, 다비식 등을 2-8시간씩 촬영하는 것이다. 결국 동적인 장면은 사라지고 정지하고 있는 것만 남게 되는데, 결과는 뭉개진 화면의 카오스이다. <뮤지엄>의 세팅, 소도구, 선명한 칼라, 특히 전시용 유리박스가 사물의 물성을 강조하고 존재에 가치를 부여하는 개념적, 물리적 장치였다면, <브로드캐스팅>의 장노출 화면은 영원을 의심하며 기억의 사라짐과 리얼리티의 소멸에 의미를 부여하는 미학적 역할을 수행한다.
결국 <뮤지엄>에서 <브로드캐스팅>으로의 이전은 실존, 신체, 정체성 등, 내면의 문제에서 사회, 외부 세계로의 이동을 함의한다. 사회, 정치, 종교적 이데올로기의 현장인 국회, 임진각, 성당 등을 중계함으로써 그는 개체로부터 사회, 개인 심리로부터 집단심리로 관심의 이전을 표명한다. 이러한 가정은 내면세계, 소외의 메타포로 사용된 <뮤지엄>의 유리상자가 후자에서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 사실로 뒷받침된다. 리얼리티를 소멸시키는 장노출, 그것은 유리 상자를 탈 물질화시킴으로써 내면적 억압으로부터 놓여나게 하는 해방의 기제가 아닐까. 나아가 작가는 박제된 뮤지엄과 생생한 생중계의 대비를 통해 결정성으로부터 비결정성, 죽음으로부터 삶으로의 진행 또는 역행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작가는 르포르타주와 예술이라는 사진의 이중 정체성을 유추사키 듯, 생과 사, 존재와 소멸, 가시와 미시의 양극단을 왕래하는 작업 행로를 통해 서구적 이분법을 초월하는 음/양의 순환 고리를 엮어내는 것이다.
그러면 <뮤지엄>에서 <브로드캐스팅>에 이르는 진행 과정에서 시기적, 양식적, 개념적으로 과도기에 해당되는 <차이나>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의미는 무엇인가. 왜 갑자기 중국인가. 동양사상에 대한 그의 각별한 관심에 비추어볼 때 가장 중국적인 곳을 장소를 사이트로 로케 촬영하는 것이 일면 당연하게 여겨진다. 또한 동아시아의 지리정치학적 이슈와 함께 중국이 중요 화두로 등장하고 현시점에서 볼 때에도 중국을 모티프로 삼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대화두를 그는 왜 과도기적으로 접근하는 것일까. 중국 이슈가 그러한 과도기적 행보에 어떻게 관계되는 것일까.
그는 <뮤지엄> 시리즈 당시 <차이나>를 촬영할 계획이었으나 시기를 놓쳐 차후 독자적 시리즈로 제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뮤지엄>프로젝트가 퇴조할 즈음 밀린 숙제를 하듯, 반드시 하고 넘어가야만 했던 “암초 같은” <차이나>가 그에게 “정체성의 해소책”으로 다가온 것이다. 중화가 무화를 의미하기라도 하듯이, 그는 중국을 개체, 개인성의 무화지대, 또는 정체성 소멸의 현장으로 파악하는 듯하다. <차이나> 없이는 <브로드캐스팅>이 나오기 어려웠다는 작가의 진술이 암시하듯이, 존재의 상실, 기억의 해체, 정체성의 무화로 인도하는 <브로드캐스팅>에 이르는 초입에 중국이라는 문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김아타의 작업 행로에서 일종의 갭, 틈처럼 보이는 <차이나>, 과도기적으로 등장하는 <차이나>의 의미는 바로 그것의 과도기적 역할에 있다. 부차적, 보충적으로 작용하면서 주작업(ergon)을 보완시키는 ‘퍼레어건’(parergon)으로서 <차이나>는 <브로드캐스팅>의 프롤로그이자 <뮤지엄>과 <브로드캐스팅>을 연결하는 가교이다. 고전 조각의 주름진 옷자락, 건축의 열주, 그림의 틀과 같이, 비본질적이고 2차적인 요소이지만 그것으로 완성을 이루어내는 가외의 어떤 것, 결함을 보충하는 특수한 어떤 것, 과도기적으로 필수불가결한 어떤 것이 바로 <차이나> 시리즈이다. 결국 <차이나>는 <뮤지엄>과 <브로드캐스팅>의 사이 길에서 생과 사, 존재와 소멸의 순환 사이클을 촉진, 완성시키는 ‘퍼레어건’으로서 르포르타주와 예술 사이에서 한 층의 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Project 'The China' #14

Project 'The China' #17
| 작가약력 |
Atta Kim
창원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영은미술관 경안레지던시입주작가
2002 "25회 상파울로비엔날레" 한국관대표. 브라질
2002 "Phaidon Press" -Blink- 세계100대 사진가. 런던
2002 "1회 하남국제포토페스티벌" 국제사진가상 수상.
2001 "Aperture" 165 특집. 뉴욕
1997 사진예술사 "올해의 작가"상 수상.
| Solo Exhibitions |
2001 "Museum Project" Society for Contemporary Photography,
Kansas, USA
외 12회 개인전
| Group Exhibitions |
2002 "25th Bienal de Sao Paulo", SaoPaulo, Brazil
"2002 Asia Photo Bienale", Seoul, Korea
"Site+Sight" Singapore Arts Festival, Singapore
"Red Light" Australian Center for Photography, Sydney, Australia
"Asia Comments" Danish Center for Culture & Development, Copenhagen, Denmark
"Body Scape" Rodin Gallery, Seoul, Korea
"Translated Acts" Carrilo Gill Museum, Mexico City, Mexico
2001 "Translated Acts" Queens Museum of Art, New York, USA
"Translated Acts" Haus der Kulturen der Welt, Berlin, Germany
"Awakening" Australian Center for Photography, Sydney, Australia
"Artspectrum-2001" Ho-Am Art Gallery, Seoul, Korea
"Digital Dreams, Analogue Desires", Art Center of the Korean Art & Culture, Seoul, Korea
"Image from the Land of Morning Calm" 6th International FotoFestival, Herten, Germany
"2001 Photo Festival" Gana Art Center, Seoul, Korea
2000 "Houston FotoFest" Williams Tower Gallery, Houston, USA
"Odense Foto Triennale Festival of Light" Odense, Denmark
"After Time" Howart Gallery, Seoul, Korea
| Publication |
2002 Museum Project A&A Publishing Co., Korea
1994 Poems Jipyuong Publishing Co., Korea
1990 Father View Point Publishing Co., Korea
1987 Psychopath Sunyoung Publishing Co., Korea
| Collection |
Museum of Fine Arts, Houston, USA
The Museet For Fotokunst, Odense, Denmark
Society for Contemporary Photography, Kansas, USA
L.A. County Museum of Art, Los Angeles, USA
JGS Foundation, New York, USA
EARLLU Gallery, Singapore
Houston FOTOFEST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Gwachon, Korea
Sonje Museum of Contemporary Art, Seoul, Korea
Seoul Art Center, Seoul, Korea
Samsung Museum of Modern Art, Seoul, Korea
Art Museum of Kyoungnam Province, Changwon, Korea
Daelim Contemporary Art Museum,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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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소 : 사진쟁이 1019
▣ 전시일시 : 2003년 9월 17일(수) ~ 30일(화)
| 작가서문 |
끝없는 여정의 반복
매일 집을 나서면 다시 집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그 과정
그것에서부터 시작된 반복된 생활이 사진으로 표현된 것
한 번 찍은 필름 위에 한 번 더 찍기
중복 촬영
기록된 시간 위에 다시 중첩되는 생활처럼 시간 중첩하기
그렇게 사진적인 시간을 찾아가기
과거로부터의 현재, 현재로부터의 과거.
그런 사진으로 일상의 시간 찾아가기. 그런 시간 싸움에서 과거와 현재의 역사적 해석. 한국과 일본의 그 상처 많은 시간에 대해 해석하기 위해 내가 살고 있던 오사카에서 중첩된 이미지들. 오사카라는 사회 속에 내재되어 있던 부와 빈에 대한 일상의 흔적 혹은 궤적을 한국인 최광호가 그들을 바라보며 서로의 무관한 상황을 나의 시간 속으로, 사진 속으로 중첩시켜 놓은 작업.
그런 이미지로부터 역사적 시간 찾아내기.
그런 느낌을 생각한 그 시작의 발상이 이 무삭제전이다.
끝없는 인생의 반복된 생활을 편집되지 않은 사진으로 고민한 시간 여정인 것이다.
(이번 전시는 사진작가 최광호가 겹쳐 찍은 필름 한 롤을 편집하지 않은 채, 취사선택의 과정없이 그 순간의 여정을 그대로 표현해 놓은 작업들이다. 필름 한 롤 한 롤 속에 담긴 시간의 여정과 고민을 빠짐없이 그대로 사진 종이 위에 옮겨다 놓은 최광호의 시간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전시이다. 그래서 무삭제이다.)
| 전시작품중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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