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붕대로 두 눈이 가리워진 채 현재라는시간의 벌판을 걸어서 가고 있다. 그는 자신이 실제로 체험하고 있는 것들을 그저 어렴풋이 느끼고 추측할 뿐이다. 나중에 가서 비로소 그의 눈에서 붕대가 풀어지고, 그리하여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을 때, 그는 그가 실제로 체험한 것의 내용과, 체험한 것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밀란 쿤데라 단편-아무도 웃지 않으리중에서>
글자 그대로 우리가 무언가를 믿게 되면, 우리는 결국 그 믿음 때문에 끝내는 불합리성에 도달하게 되지. 어떤 특정한 정책의 진정한 신봉자라면 그 정책의 궤변 뿐 아니라, 그 궤변 뒤에 숨어 있는 실제적인 목표에 주목하지. 정치적인 구호와 궤변은 결국은 우리더러 믿으라고 존재하는게 아니야. 오히려 그것들은 공동의 협의된 구실로 이용되는 거야. 그것들을 말 그대로 믿는 바보들은 조만간 그것들의 모순을 발견하고, 봉기를 꾀하기 시작하다가 마침내는 굴육적으로 이단자나 배신자로 종말을 고하게 되는 거야. 아니, 지나친 믿음은 결코 좋은 결실을 가져다 주지 않아. 이것은 정치적 또는 종교적 체제에 해당하는 말일 뿐이 아니야.
나는 가롯 유다를 생각했다. 어느 명민한 작가에 따르면,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것은 다름 아니라 그가 예수를 절대적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예수가 모든 유대인들에게 그의 신성한 힘을 보여주게 되리라는 그 기적을 유다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다는 마침내 예수에게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서 그를 형리들에게 넘겼던 것이며, 한마디로 그가 예수를 배반한 것은 예수의 승리를 재촉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이다.
<밀란 쿤데라 단편-영원한 그리움의 황금사과 중에서)
바로 거기에 대해서는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어떤 이유가 있다면, 사람들은 그 이유를 먼저 찾아내고 나의 행동을 예견할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바로 그 점에 우리에게 허용된 마지막 자투리의 자유가 있는 겁니다. 우리는 바로 그 한 조각의 자유를 향해 꿋꿋이 노력해야 합니다. 철의 법칙이 판을 치는 이 세상에 인간적 무질서의 조그만 부분이 남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친애하는 동료 여러분, 자유 만세!
<밀란 쿤데라 단편-사랑의 심포지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