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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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7-12-21 11:21:49, Hit : 600)
[전시]12.21



눈밭의 비겁자

이소정 회화展

2007_1220 ▶ 2008_0120



이소정_늠름한 탄생_한지에 수묵_194×130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금호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금호미술관 영아티스트 기획展




금호미술관 1층 전시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Tel. 02_720_5114
www.kumhomuseum.com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 이소정은 수묵을 이용해서 자율적으로 전개되는 유기적인 형태의 이미지들을 그려왔다. 그 경계가 불분명하게 증식되는 유기적인 형상들은 보통 하나의 덩어리가 되는데, 마치 가임기 여성의 신체와 유사한 듯한 인체와 같은 형상들을 하고 있다.




이소정_검(劍)_한지에 수묵_194×130cm_2007


이러한 유기적인 덩어리들은 몇 가지 은유를 함축하고 있다. 우선 유기적으로 연결 되어 증식되는 이미지들은 스스로가 새로운 이미지를 그려가는 듯한데, 이는 작가가 출산과 자궁에 의미들을 도출해낸 것이다. 엄마의 자궁으로부터 나온 여성은 다시 그 누군가의 자궁이 되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이러한 생명 탄생의 연속성은 작가가 이미지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그리는 행위와 연결된다.




이소정_미풍_한지에 수묵_194×130cm_2007


그리고 그림에 등장하는 ‘가위’는 가장 중요한 은유이다. 이소정의 그림에서 유일하게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구체적인 형상으로 표현되는 것이 바로 이 ‘가위’이다. 작가의 그림마다 다양한 크기로 등장하는, ‘가위’는 작가에 있어서 독립 혹은 거세 혹은 자해 등의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우선 이 ‘가위’는 출산과 자궁의 맥락에서는 출산용 가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종종 등장하는 거울, 주사바늘, 뜨개바늘과 같이 자학적인 의미 그 자체이기도 하다. 또한 이 ‘가위’는 비밀과 발설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거세욕구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소정_찬란한 시기_한지에 수묵_130×388cm_2007



이소정_무법자_한지에 수묵_194×130cm_2007


이소정의 이러한 이미지들은 ‘자동발생학적’ 그림으로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 작가는 그리는 행위의 주체자로서 자신과 이미지에 제한적인 방법을 가한다. 이전까지 작업에서는 작가는 어느 시점부터 자동발생학적인 그림 그리기를 멈추고 외곽을 디자인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작업들은 모두 같은 시작점의 공통된 패턴 위에서 이미지들이 확장되었다. 이를 통해서 그리기의 시작과 끝에서, 작가는 그리는 행위에서 있어서 행위의 주체자로서 위치를 달리하며, 자동발생학적인 그리기 페인팅의 편리함이 좀 더 배체된 형태의 그리기를 시도했다. ■ 금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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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GORILLE

권오인 개인展

2007_1221 ▶ 2008_0104



권오인_Allegorille-가족_폴리에스테르에 채색_45×50×30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대안공간 미끌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1221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_1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미끌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0-17번지 우남빌딩 2F
Tel. 02_325_6504
www.miccle.com






프랑스의 니스 지역에서 활동하는 권오인 작가의 개인전이 대안공간 미끌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그리스어 '알레고리Allegoria'와 '고릴라Gorilla'의 합성어인 알레고릴Allegorille이다. 본래 알레고리라는 용어는 이중적 의미를 가진 이야기 유형을 지칭하는 것으로, 표면적인 의미 배후에 숨겨진 이면의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 중의적 이야기 구조를 지닌 작품들 속에서 주로 활용된다. 특히 알레고리는 우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데, 인간이 벌레로 변신함으로써 자기실체를 은폐하는 카프카의 『변신』이나 러시아 역사의 독재정치에 대한 풍자적 알레고리 구조를 보여주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등이 잘 알려진 예이다.




권오인_Allegorille-테러리스트_폴리에스테르, 장난감_110×100×90cm_2007



권오인_Allegorille-전쟁만세_레진 폴리에스테르_35×50×176cm(좌), 40×50×85cm(우)_2004

권오인은 자신의 작품 속에서 일차적으로는 고릴라라는 캐릭터를 전면에 드러내어 그들의 상을 다양한 형식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이차적으로 인간 세계를 빗대어 말하는 이중 구조를 내포한다. 권오인은 니스에서 열린 「Allegorille 2007」 서문을 통해 "나는 지금 이 순간에 보여지는 인간의 모습들을 고릴라라는 매개를 통하여 표현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제3자의 위치에 서도록 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슈퍼 히어로, 스모, 테러, 자유의 여신상 등의 작품을 통해 영장(靈長)류의 가장 우두머리 격인 인간상을 고릴라라는 다소 우둔하고 야만적으로 보이는 유인원의 상으로 대체함으로써, 첨단과학 문명사회를 일구어 놓은 인간 세계의 부조리를 비꼬고 풍자한다.




권오인_Allegorille-street_혼합재료_75×55×40cm_2006



권오인_Allegorille-당신은 신을 믿습니까?_폴리에스테르, 브론즈_85×65cm(위),35×35×45cm(아래)_2007

그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고릴라 테러리스트, 고릴라 군인, 고릴라 정치가, 고릴라 부처, 고릴라 예수, 고릴라 여신, 고릴라 노숙자 등 인간이 숭배하고, 인간이 동경해마지 않는, 혹은 인간이 격리, 배제시키고자 하는 다양한 상징과 인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털 없이 검은 얼굴에, 펑퍼짐한 납작코, 커다란 콧구멍에 치솟은 눈썹으로 흥분하면 뒷발로 서서 이빨을 드러내고 가슴을 두드리며 펑펑하는 소리를 내는 유인원의 가장 큰 종인 고릴라가 십자가를 지고, 테러를 자행하며, 양복을 차려 입고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단지 상이 바뀐 것뿐이지만 이들의 행동들이 우습기 짝이 없다. 첨단과학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현대 인류의 삶이란 문명시대 이전보다 무엇이 나아진 걸까?




권오인_Allegorille-슈퍼히어로(슈퍼맨)_폴리에스테르_40×90×178cm_2007_좌
권오인_Allegorille-슈퍼히어로(원더우먼)_폴리에스테르_28×70×173cm_2007_우



권오인_Allegorille-스모_폴리에스테르, 흙, 고양이허브_80×80×45cm_2007

유인원 중 가장 정갈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인간의 유전체 분석 결과, 침팬지 종과 단지 1.2%가 다를 뿐인 털 없는 유인원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간발의 차이로 생명체 사상 가장 고등한 영장류를 이룬 인간은 가장 말다운 말을 하고, 가장 높은 수준의 지적 능력을 지니며, 복잡한 도구를 활용하고, 창의력을 겸비하게 되었지만, 고도의 문명이 던져준 온갖 악습과 사회적 환난은 마땅히 반성하고 비판해야 할 대목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권오인의 『Allegorille』展을 통해 작가가 펼쳐놓은 고릴라 무리들을 바라보며 표면적으로는 이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통해 시각적 즐거움과 유쾌함을 느끼되, 고릴라의 모습 속에 숨겨진 악덕과 위선으로 얼룩진 문명 사회의 거울로서의 인간 세계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유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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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_Spectrum

책임기획_윤진이


2007_1221 ▶ 2007_1231



변지훈_바람_나무_인터액티브 설치_컴퓨터 프로젝션_2007
2007대전시립미술관 설치전경 사진_ⓒ최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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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221_금요일_05:30pm

관람시간_10:30am∼06:30pm

참여작가 / 변지훈_Adad Hannah_이환권_김영욱_신수진_지효섭
진행 / 장우인_최낙영_최소원_한정희_이희경
주최 / 현대미술연구회





노암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02_720_2235
www.noamgallery.com

세컨드 라이프
온라인 3D가상세계
secondlife.com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의 달콤한 러브홀릭, DA_Spectrum ● 디지털과 통신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 그래서 유치원 아이도 인터넷을 하고 할머니도 핸드폰으로 화상 통화를 하는 시대가 열렸다. 이제 캠코더나 디지털 카메라로 동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은 더 이상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을 재현하는 U.C.C.(user created contents)가 늘어나면서 "누구나 예술가"(Everyone is artist)가 정말로 실현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처럼 모두가 디지털 기술에 매혹되고 열광하는 한편 우리는 또한 아날로그적인 것에 대한 깊은 갈망과 향수를 느끼고 있다. 산을 오르고 고향을 꿈꾸며, D.I.Y.(do it yourself) 가구를 제작하고 십자수를 놓는다. 이런 디지털과 아날로그 모두를 향한 우리의 이중적인 욕망이 예술가들에게서도 발견된다. ● 『DA_Spectrum 다 스펙트럼』전은 바로 미술의 지형에서 “디지털과 아날로그적 욕망이 교차”하는 측면을 조명하고 있다. 여기서 DA는 Digital과 Analog라는 단어의 이니셜들로, “많을 다”(多)를 의미하기도 하며, 스펙트럼은 이 두 충동이 빚어내는 다양한 양상들을 담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참여작가들의 작품은 디지털 기술이 제작과정이나 감상에서 개입하는 정도가 모두 다르다. ● 현대미술작가 6인의 전시와 아울러 본 전시가 개막되는 12월 21일(금) 오후 1시 30분부터는 이론가 · 큐레이터 · 참여 작가와 관람객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심포지엄이 개최된다. “디지털과 오늘날의 미술”이라는 주제로 최신 A.L.(artificial life) 아트는 물론 디지털 아트의 현주소 및 가상현실게임 공간인 “세컨드 라이프”(Secondlife.com)에서의 예술감상의 형태 등에 관해 심화된 논의를 할 예정이다. 게다가 『DA_Spectrum 다 스펙트럼』전은 노암갤러리라는 오프라인 공간뿐 아니라 미국의 린든랩사가 2003년에 런칭한 “세컨드 라이프”에서의 온라인 전시를 겸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크리스마스는 세컨드 라이프에서 디돌프(Digital+Rudolph)와 함께 Cyber loveholic에 빠져볼 수 있을 것이다. ■ 윤진이

변지훈-디지털 시대의 서정성 ● 디지털과 아날로그라는 양극을 두고 본다면 일군의 디지털 아티스트들은 첨단 과학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공학자를 겸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붓과 캔버스 대신 복잡한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나 하드웨어와 씨름하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이들 중 아무도 놀라운 최신 기술의 제시가 곧 예술이 된다고는 보지 않는다. 바야흐로 차가운 기술은 뜨거운 예술가의 손을 거쳐 새로운 연금술로 탈바꿈되는 중이다. 변지훈의 「나무-바람」은 부산 해운대의 시원한 겨울바람이 서울의 노암갤러리로 불어오게 만들 것이다. 단순히 바람만을 담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을 디지털 신호로 바꿔서 우리로 하여금 서울의 갤러리에서 흔들리는 나무를 보게 해 줄 것이다. 나무의 일렁임을 보면서 우리는 그 순간 부산에서 불고 있는 차가운 바닷바람의 상쾌함을 가슴 깊숙이 느낄 수 있게 된다.




애다드 한나 Adad Hannah_Embrace (Boy Alone)_2채널 비디오설치_00:05:07_2007



애다드 한나 Adad Hannah_Embrace (Girl Alone)_2채널 비디오설치_00:05:07_2007

애다드 한나-타자를 포옹하는 방법 한 가지 ● 이런 차가운 기술의 따뜻한 변용은 애다드 한나(Adad Hannah)의 「포옹 Embrace」에서도 드러난다.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 만날 수 없는 두 연인이 빔 프로젝트의 투사를 통해 스크린 상에서 따뜻한 포옹을 하고 있다. 멀리 유학을 간 자녀와 캠 홀더를 통해 매일 화상 통화를 하고 먼 이국의 사람과 인터넷 채팅을 하듯 기술의 발전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불가능한 만남을 실현시키고 있다. 이들처럼 디지털 기술 자체로 서정적인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이 있는 한편, 어떤 이들은 작업의 일부분에서만 디지털 기술을 수용하고 있다.




이환권_오늘은 공부하기 싫어 I Don't Won't Study Today_섬유강화플라스틱과 나무_100×72×110cm_2007

이환권-늘어진 조각의 의미이환권은 조각가지만 끌과 돌을 다루지 않는다. 그는 가상의 공간에 위치한 디지털 이미지를 3차원의 실물로 만들어 낸다. 먼저 사진을 찍고 그 이미지를 컴퓨터상에서 입체화하여 길게 늘리거나 짧게 압축한다. 그 다음 변형된 그 형상대로 F.R.P.(fiber reinforced plastic)로 떠내면 작업이 완성된다. 아마 신소재인 섬유강화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그의 작품들은 돌이나 쇠보다 가볍고 마모되지 않아 동해물이 마르고 닳을 때까지 그대로 보존될 것이다. 우리는 길을 가다가 혹은 전시장의 한 귀퉁이에서 기이하게 늘어난 혹은 납작하게 줄어든 인간 형상을 보면서, 이들 조각상들이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아 먼 후손들에게 우리의 오늘을 생생하게 전해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영욱_Ghost in the Shell 06_종이에 먹_160x132cm_2006_좌
김영욱_Ghost in the Shell 06_컬러프린트_160x132cm_2006_우

김영욱-기술과 신체, 물리적으로 충돌하기 ● 같은 맥락에서 김영욱도 동양화를 그리는 작가지만 그의 관심은 온통 디지털에 쏠려 있다. 그는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형상들을 사이버 상에서 만들어 내고 복제한다. 그리고 그것을 프린트하여 그 위에 화선지를 대고 먹 선을 긋는다. 오랜 기간 단련된 그의 필묵은 기계처럼 일정하고 매끄럽게 가상의 형상을 모사해 내어 부주의한 관람자라면 그것이 한지에 그린 수묵화임을 모르고 지나칠 것이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도 잠시 여운을 두고 그 이미지를 지켜본다면 작가의 놀라운 아날로그적 끈기, 필묵의 숙달이나 한지와 먹의 스밈에서 작가의 유쾌한 트릭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신수진_Bursting_혼합재료_150x170cm_2007

신수진-숨은 그림 찾기, 거듭 쓴 양피지 위에서 ● 이들과 다른 한 축에는 여전히 아날로그적 작업을 하는 있는 작가들이 위치한다. 판화 작가인 신수진에게 디지털 기술은 그리 달가워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초기의 사진술이 회화의 영역을 위협했듯 디지털의 복제와 인쇄 능력은 판화의 복제 능력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은 어떠한 이미지도 무한정 원하는 수만큼 복제해 낼 뿐 아니라 그에 더하여 원하는 형태대로 무궁무진한 변형도 가능하게 해 준다. 영화 「반지의 제왕」이나 「트랜스포머」의 C.G.R.(computer graphic rendering) 기술은 디지털 이미지의 무한한 가능성을 이미 선보인 바 있다. 그런데 잘 알려져 있듯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이미지 복제와 대중화에 기여하며 번영을 누려온 판화에게 이러한 디지털 기술로의 환경 변화는 새로운 돌파구를 요청하고 있다. 그래서 신수진은 판은 남기고 복제성은 버리는 길을 택한다. 즉 판화는 여러 판본을 찍어 낸다는 판화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그녀는 뒤집는다. 그녀는 한 장의 화선지가 닳도록 판을 여러 번 겹쳐 찍어 내어 하나의 유일무이한 작품만을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에서 우리는 쌀알이나 꽃잎 같은 기본 형태들이 무한히 반복되어 생성되는 전혀 새로운 형상을 접하게 된다.




지효섭_Quee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5x145cm_2006

지효섭-인연(因緣), 아날로그적 충동 ● 이런 아날로그를 향한 욕망의 가장 끝 편에 디지털 기술에 대한 열풍이 아직 미치지 않은 지효섭 작가가 있다. 그는 디지털 기술과 자신은 인연이 없다며 붓과 안료만을 고수한다. 그의 매체들은 스스로 흘러내리고 뭉치며 일련의 우연적인 형상들을 만들어 낸다. 안료의 집적은 때로는 고양이 같이 보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피 흘리는 여왕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은 모두 그렇게 보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이 그려낸 허상일 뿐 작가가 의도한 바가 아님은 분명하다. 때문에 우리가 신수진이나 지효섭의 그림에서 무언가를 본다면 이는 구름이나 벽지의 얼룩을 보고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고 상상하는 행위와 유사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들 작품을 도구로 저마다의 상상의 세계를 펼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 심포지엄 일정
시간 2007년 12월 21일 (금) 01:30pm∼05:00pm
장소 노암갤러리
주제 디지털 기술과 오늘날의 미술
사회 김진엽
발표자
정수경_윤진이_신수진_유원준_이재준
문의 현대미술연구회_노암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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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Bytes

2007_1218 ▶ 2007_1229



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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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218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_10:00am∼06:00pm / 일요일, 공휴일 휴관


함성호_김소연_이원_송승환_김민정
이준규_심보선_김태동_이용한_연왕모





신한갤러리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2-12번지
신한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02_722_8493
www.shinhanmuseum.co.kr






『80Bytes』는 두 가지 질문을 탐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첫째는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는 엄밀하게 말하면 글쓰기의 '몸'에 대해 생각해 보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글쓰기의 '몸'이란 글이 쓰여져 전달되고 유통되는 곳을 말합니다. 과거 글쓰기의 '몸'이 펜과 종이였다면, 지금의 '몸'에는 모니터와 휴대폰이 추가되었을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애틋함이 이십 년이나 삼십 년 전의 애틋함보다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메일로 연애편지를 써서 머뭇거리며 보내기 버튼을 눌러 보고, 밤늦게 휴대폰을 손에 움켜쥐고 문자를 기다려 본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말입니다. 이 시대의 사랑은 메일과 문자를 통해 빛의 속도로 달려 상대방에게 도착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의 밤하늘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백만 개의 사랑과 욕망, 미움과 분노가 애틋하게 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함성호

『80Bytes』프로젝트에서 우리가 보기 원하는 것은 그런 종류의 새로운 애틋함과 함께, 글이 현란하게 공중제비를 돌면서 '몸'을 바꾸는 모습입니다. 그 과정에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유지되는지, 어떤 아름다움이 생겨나고 어떤 매혹을 가져오는지를 알고 싶은 겁니다. '시'를 그 실험의 매체로 선택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형식의 시집을 자신이 쓰는 시의 몸으로 삼는 시인 스물 두 명이 5행 8열의 그리드, 즉 핸드폰 문자메시지의 공간에 시를 썼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프로젝트의 인터넷 사이트(www.80bytes.com)에 전송하였습니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핸드폰으로 문자-시를 올릴 수 있게 해서 시인들의 문자-시가 일반인들이 지은 것들과 섞여서 함께 놓여지도록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문자-시를 가지고 디자이너가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송승환



김소연

타이포그래피 작업은 문자를 직접적으로 바꾸어내는 작업입니다. 모든 문자는 단순한 의미의 그릇이 아니라 시각성과 그에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매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다양한 의미와 복잡한 정치성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타이포그래피는 문자를 직접적으로 변형시켜 그 의미를 해석하고 추가하고 지워나가면서 극대화하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그 타이포그래피는 다시 포스터와 대형 평면 작업으로 만들어지면서 물성을 부여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80Bytes』프로젝트에서 시인들이 만들어낸 문자-시는 공중제비를 돌면서 현란하게 그 ‘몸’을 바꾸게 됩니다. 핸드폰의 액정에서 모니터의 화면으로, 다시 타이포그래피가 되어 옵셋 인쇄물과 화이버 베이스의 평면 작업으로 말입니다. 이 작업은 거리에 부착되고, 갤러리에 전시됩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책이 아닌 다른 곳에, 다른 방식으로 시가 보여지고 유통되는 방식이 생겨난다면 그것은 어떤 것이 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내포합니다.




김민정



이준규



심보선

두 번째는 실제로 작업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방식에 대해서 던지는 질문입니다. 『80Bytes』 프로젝트는 참여자들에게 매우 강력한 제약을 요구합니다. 시인들은 5행 8열이라는 형식의 제약을, 타이포그래피 작업자는 시인들이 만들어낸 문자-시를 가지고 작업해야 한다는 내용의 제약을 받습니다. 시인들의 제약은 핸드폰이라는 기계에 의한 것이고, 타이포그래피 작업자는 프로젝트의 프로세싱에 의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단체전에서처럼 자신이 마음껏 형식과 내용을 결정하여 ‘자유롭게’ 작업한 결과물을 내보일 수는 없습니다. 각각의 위치에서 작업자가 쏘아 올린 결과물은 정해진 궤도를 따라 운항하게 되는 것입니다. ● 그것은 이 글을 쓰고 있는 프로젝트 기획자가 지금의 사회에서 작업자가 지닐 수 있는 자유란 기실 어항 속에 있는 물고기의 자유와 비슷한 수준의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고기는 어항 안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방향을 선회하면서 헤엄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항 밖으로 나갈 수 없고 물 없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자유는 얄팍합니다. 작가들은 자유롭게 소재를 선택하고 창작하지만, 그 작업이 유통되고 평가받고 판매되고 소비되는 방식에 개입할 수 없기 때문에 종종 무력합니다.




김태동



이용한

‘예술은 예술이기 때문에 자유로워야 한다’는 식의 레토릭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제약은 국가 권력과 자본 권력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것에 투쟁해야 한다는 말은 당위적으로 옳습니다. 하지만 가끔 이것은 예술이 진정으로 자유로웠던 시공간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은연중 은폐하기도 하고, 상업적인 매스 미디어가 제시하는 ‘자유로운 낭만주의 보헤미안 예술가’ 상과 때로는 야합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필연적으로 공허한 울림의 언어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작업자들에게 자본과 국가 권력이 아닌, 다른 종류의 제약이 숨쉬기 어려울 만큼 강하게 가해졌을 때 어떤 정도의 반발력과 창조성이 생겨나는지 궁금하였고, 이것을 아는 것이 더욱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연왕모

이것은 『80Bytes』프로젝트의 세 번째 전시입니다. 아마도 내년 여름, 출판과 함께 마지막 전시가 열릴 것입니다. 홈페이지는 프로젝트 소식을 담고 동시대인들의 문자-시를 수집하며 계속 항해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운항과 성과를 지켜보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김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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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神의 얼굴

김순임 개인展

2007_1221 ▶ 2008_0105 / 1월 1일 휴관



김순임_Cotton drawing 11-Lee, Ok-Lan_광목, 솜_430×430cm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담 다음 카페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1221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_월~토요일 10:00am~06:00pm / 일요일 10:00am~05:00pm

갤러리 담 2007년 신진작가 기획공모 당선展





갤러리 담
서울 종로구 안국동 7-1번지
Tel. 02_738_2745
cafe.daum.net/gallerydam






알려지지 않은 神의 얼굴 ● 사람은 나면서부터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난다. 어떤 이는 기억하고 어떤 이는 잊으며..내 마음을 만져서, 내 기억의 한 부분을 만들어, 나의 한 모습을 만든 그 사람들을 나는 알려지지 않은, 나만의 神이라 말하고 싶다.




김순임_The People 16-Kim, Hi-chan_광목, 면, 실, 한지, 바늘_230×75×65cm_2006



김순임_The People 16-Kim, Hi-chan_광목, 면, 실, 한지, 바늘_230×75×65cm_2006_부분


권력을 가진 권위적인 신의 모습이 아닌 우리 삶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부드러운 재료들로, 가족을 입히고 덥히는 어머니들의 방식인 바느질과 펠팅으로 표현한다.




김순임_Cotton drawing 10-Kim, Gi-whan_광목, 솜_90×70×30cm_2007_부분


재현된 사람들의 얼굴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나는 나의 성장과정에서 또는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작업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다른 누군가를 닮아 있어서 보는 이들로 그들의 누군가를 연상시킨다. 다시 말해 나에게 기억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어떤 이가 되어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얼굴들이다.




김순임_The Face 4-로렌_머리노울_20×25×18cm_2007



김순임_The Face 5-현서_머리노울_18x20x17cm_2007


이번 전시에서 광목에 목화 솜을 넣어 바느질하여 드로잉 하듯 표현한 '사람' 시리즈 및 'Cotton drawing' 시리즈와 자연색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가공하지 않은 울wool을 펠팅하여 바느질 한 'The Face'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이다.




김순임_The People 17-the genius boy_알파카울_90×50×30cm_2007_부분


어린 시절 목화 솜이불 호청을 갈던 날의 기억을 만든 솜과 광목, 추운 외국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기억을 만들어준 양털을 재료로, 내 어머니와 할머니의 방식, 그래서 작업하고 있는 내내 나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바느질의 방식으로 가족이나 여행 중 만난 사람, 꿈속에서 만난 사람 등을 표현하였다. 최대한 재료가 가진 촉각적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인공적 색을 배제하고 자연 그대로의 재료의 색을 그대로 보여주었으며, 재료의 선택이나 표현된 방식은 각 개인의 캐릭터와 무관하지 않다. ■ 김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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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uvelles Frontières_새로운 경계

Touraventure S.A , au capital de 10.469.844 euros-Rcs B 331089 474 Licence N LI 093 05

염중호 사진展

2007_1220 ▶ 2008_0126



염중호_당신은 우리의 영웅_람다 프린트_10.16×10.16cm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앤제이 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1220_목요일_06:00pm





원앤제이 갤러리 ONE AND J. GALLERY
서울 종로구 가회동 130-1번지
Tel. 02_745_1644
www.oneandj.com






"자신의 궁극의 사진을 위해 조용히 움직여 가는 사진예술가처럼 내게도 그런 장면들을 다 붙잡아둘 수 있는 머릿속의 카메라, 광기의 카메라가 한 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건 그대로 하나의 서사시가 될 것이다."_잭 케루악, 「로버트 프랭크와 플로리다 가는 길」 1958, 김우룡 역

이미지, 베일, 브리콜라쥬 ● 사진가는 세계를 어떻게 보는가? 카메라를 통해서? 아니다. 사진가는 먼저 맨눈으로 세계를 본다. 그 다음에 카메라를 들고 파인더를 통해 세계를 본다. 본 다음에는 물론 찰칵, 셔터를 누른다. 또 한 번 누를 수도 있지만 어쨌든 한 장의 사진이 찍힌다. 염중호도 마찬가지다. 그는 그가 본 것을 사진으로 찍고 골라서 전시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 염중호가 본 세계는 지리적으로 한국에서 유럽까지 이른다. 거리는 멀고, 면적은 넓지만 사진 상으로는 거의 차이가 없다. 염중호의 사진들은 특별히 공간의 다름과 문화적 차이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사진들은 유렵이나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들을 슬쩍 피해간다.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의 사진들은 장소를 지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은 유럽처럼 보이고, 유럽은 한국의 일부 같다. ● 물론 그런 까닭에는 형식적인 일관성 혹은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대형 사진들이 보여주는 엄격하고 꽉 짜인 구도와 불필요할 정도의 디테일 묘사를 피해 그의 사진들은 걷거나 달아난다. 염중호 자신도 그러면서 셔터를 누른 것 같다. 그리고 누른 셔터로 잡은 사물들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한다.




염중호_당신의 바캉스 2 _람다 프린트_10.16×10.16cm_2006


염중호의 사진은 서로 다른 대륙의 문화와 지리적인 차이들을 감춘다. 사실은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구지 감추려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풍경, 두 대상들을 서로 닮는다. 아니 닮게 만들었다. 물론 닮게 만드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그의 사진들은 사물들의 처지와 상태, 궁극적으로 그것을 본 자신의 시각에 대해 말한다. 그는 변두리에 있다. 세계의 변두리에서 카메라를 들고 본다. 그 변두리의 우연한 구성물들을 거의 무심하게 들여다본다. 스치듯이, 마치 자신이 거기에 없었다는 듯이 바라본다. ● 시적인 분위기 때문에-그 시적 분위기는 색채와 사진의 밝기 때문에 오는데-그의 사진은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빅터 버긴이 말하듯 “한 장의 사진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면 갈등이 생긴다. 처음 볼 때는 즐거움을 주던 이미지가 시간이 갈수록 점차 그 아래에 숨어 있는 것이 보고 싶어지는 베일로 변한다.” ● 염중호의 사진도 그렇다. 그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사진 내부에 새겨진 상처들이 보인다. 그 상처들은 밑동만 남기고 베어진 나무나, 뿌리째 뽑힌 나무, 혹은 풀밭에서 썩어 가는 과일들처럼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사진의 대다수는 문자 그대로 베일이 된다. 흰 바탕 위의 전기 콘센트, 로봇 같은 쓰레기 차, 거대한 콘돔 같은 쓰레기 봉지, 벽에 걸린 스노클 장비 등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이 일종의 베일이다. 그 베일은 사물들, 그 사물들을 드러내고 있는 사진의 표면 너머 도대체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사진의 표면 너머 물론 우리는 현실이, 사진 이미지를 만들어 낸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을 뭐라고 부르던 우리는 희미한 고통을 느낀다. 현실과 시스템을 어떻게 해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고통은 사물을 통해 드러나는 근원적인 것이어서 지속적으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불편한 이미지들 때문에 우리의 시선은 가볍게 흔들린 채로 다음 사진으로, 다음 사진으로 넘어간다. 넘어가면서 사진의 파편성 때문에 부서진 이미지들이 자기네들끼리 접합되는 것을 깨닫는다.




염중호_5월은 푸르구나_람다 프린트_10.16×10.16cm_2007


빅터 버긴은 또 말한다. “사진이 오래 보지 못하도록 배치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아는 만큼 흘끗흘끗 보고 지나가는 식으로 사진들을 대한다.( 어느 국립미술관 직원이 관람객들의 뒤를 따라가며 한 작품을 보고 있는 시간을 스톱워치로 쟀더니, 표준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의 길이와 동일하게 평균 10초였다)”● 그 10초의 시간 동안 우리는 사진을 보고, 사진과 사진 사이를 이어 서사적 구조를 만들려고 한다. 물론 염중호의 사진은 어떤 확실한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단편적이고, 그 단편적인 것들은 반복 된다. 반복되면서 차이를 만든다. 차이와 반복이 되풀이되면서 사진과 사진의 경계가 지워진다. 데리다 식으로 말하면 지속적으로 이미지 사이에서 결코 끝이 보이지 않는 차연 이 이루어진다. ● 그래서 그의 사진들은 세계를 설명해주거나 지시하지 않고 막막하게 만든다. 염중호는 마치 세계를 어떻게 읽어야할지 모르는 것처럼 그는 카메라 뒤에 서있다. 이것이 계산된 관광객 적 시선과 결합해 무심한 태도를 낳는다. 당연히 이것은 전략이다. 전략적 무심함, 우연히 마주친 것을 그냥 찍은 것 같은 구성 방식은 사진이란 무엇이었던가, 무엇인가를 되묻게 만든다.




염중호_사랑의 풍선_람다 프린트_10.16×10.16cm_2007


레비스트로스를 빌자면 사진은 구체의 과학인 원주민들의 사고와 닮았다. 그는 구체의 과학이 신화적 사고라고 말한다. 그리고 신화적 사고는 표상image에 묶인 채 지각percept과 개념 concept의 중간에 자리 잡고 있어 우리에게는 표상으로 밖에 나타나지 않지만, 일반화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그 나름으로는 과학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을 따른다면 사진은 이미지이므로 지각과 개념의 사이에 있고 신화적 사고의 일부이다. 지각과 개념 사이의 지점은 추상화 이전의 상태이다. 그러므로 사진은 구체적이다. ● 당연히 구체성은 오래 전부터 지적 되어온 사진의 특성이다. 때로 그것은 사진의 디테일이라든가 표현 방식의 문제로 이야기 되지만, 사실 사진의 구체성은 사물과의 유사성이나 형식적인 묘사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지엽적인 것들이며 오히려 중요한 것은 사물과 대상에 접근하는 방식, 즉 시선의 문제이다. 레비스트로스 식으로 말하면 사진의 구체성은 사진가의 시선, 무엇이 기록할 만한- 바라보고 다시 생각할 만한 가치를 갖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마치 세계 각 지역의 원주민들이 식물에 관해 더 없이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식물을 맛보고, 냄새 맡고, 관찰하는 것과 닮았다. 염중호는 그 원주민들처럼 카메라를 들고 주목받지 않는 구체성을 대륙을 건너가서 관찰한다. 그 결과는 구체성의 과학처럼 범주들로 묶인다. 물론 그 범주는 과학의 그것이 아니다. 그 범주들은 브리콜라쥬bricolage적이다.




염중호_일편단심_람다 프린트_10.16×10.16cm_2007


다 알다시피 브리콜라쥬는 정확한 계획과 엄밀한 제작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주위에서 얻을 수 있는 물건과, 이미 주어진 도구를 이용해 손쉬운 방법으로 무엇인가를 만든다. 그리고 애초의 사물들을 변형 시켜 새로운 범주로 집어넣어 버린다. 염중호의 사진도 그렇다. 그가 찍어 이미지로 만든 대상들은 지역, 시간을 가로질러 범주화 된다. 그 범주를 도대체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이었을까? ● 사진은 세계에 대한 환유metonymy이다. 염중호는 사소한 사물들이 이뤄낸 의도하지 않은 브리콜라쥬들을 빌어 세계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염중호의 사진은 이중적인 브리콜라쥬이다. 일차적으로 우연히 브리콜라쥬 된 세계를 다시 동일한 태도로 이미지화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과정에서 효과 또한 증폭된다.




염중호_자신과의 싸움_람다 프린트_10.16×10.16cm_2006


염중호가 사진 찍은 세계는 무질서하고, 우연에 가득 차 있다. 주차된 자동차 아래 잡초가 자라고, 광장에서는 권투 경기가 쇼처럼 벌어지고, 은장도는 번쩍이며 절반으로 잘린 배에 꽂혀 있다. 그리고 앞에서 말해 듯 이 브리콜라쥬, 환유를 생산한 세계는 말이 없다. 베일을 쓴 세계는 아무리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도 벗겨지지 않는다. 단지 그 베일이 아주 짧게 흔들리는 것을 기록할 수 있을 뿐이다. ● 누군가 이렇게 말했었다. "과학은 무질서를 견디지 못한다. 그것이 인문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마찬가지이다. 과학자들은 불확실성이나 좌절은 참고 견딘다. 왜냐하면 달리 어찌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고 견디지 못하며 또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무질서이다. 이 무질서를 없애려는 노력은 생명의 기원과 함께 저차원에서 무의식적으로 시작되었다."고. ● 하지만 사진은 과학이 아니므로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지 않는다. 프레임 속의 이미지들이 아무리 형식적으로 정돈 되어 있더라도 그것은 질서가 아니다. 그 질서는 이미지의 형식일 뿐 세계의 질서가 아닌 것이다. 물론 전시장에 걸리더라도 그 결과는 같다. 시각적 위생처리가 잘 이루어진 흰 벽 위에 줄맞춰 걸린 사진들은 단지 줄을 잘 맞춘 이미지들일 뿐 세계의 질서가 아닌 것이다.




염중호_죽음의 사각링_람다 프린트_10.16×10.16cm_2006


염중호의 작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서서, 혹은 걸으면서 무질서가 만들어 낸 우연, 그 우연의 배후를 본다. 그는 아마 그것을 즐겼을 것이다. 사진 속에 희미하게 그 파편들을 담아내기 위해서. 아니다. 사진가는 카메라를 들고 단지 이미지들에 반응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읽을까, 어떤 반응과 해석을 할 것인가를 관객에게 떠넘긴다. 보고 해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초가 됐건, 10초가 됐건 상관하지 않는다. 사진가는 카메라를 들고 구체적인 세계의 파편을 순간적으로 기록할 뿐인 것이다. ■ 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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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ers

전민수 개인展

2007_1219 ▶ 2007_1225



전민수_Flowers_람다 프린트_101.6×76.2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전민수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1219_수요일_05: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02_734_1333
www.ganaartgallery.com






꽃과 남자들 ● 전민수의 사진이미지를 보면서 이정재가 열연하였던 ‘젊은 남자’라는 영화와 미소년 미소녀들의 아기자기한 이야기로 범벅되었던 ‘꽃보다 남자’라는 일본 드라마가 떠올랐다. 스토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제목은 매번 인상적이었던 드라마였다. 카미오 요코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 여자보다 더 예쁜 남자들이 펼치는 사랑의 방정식이 뭇 소년소녀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였다는데. 물론 내게 그 드라마가 기억에 남은 것은 그 제목이 주었던 오늘날 변화된 남성상에 대한 탁월한 표현 때문이었다. ● 이번 작품들은 꽃과 남자의 교묘한 결합을 보여준다. 새로운 인간형 또는 제 3의 성性으로 변태變態 또는 진화해 가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듯하다. 그의 사진 이미지는 현대 예술의 복잡한 미적 지형도나 사회와 문화의 알레고리와 같은 것을 찾기보다는 사실 간명하게도 꽃과 남성이라는 매우 오래된 존재 또는 관념과 상징들이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관념들은 CG와 아날로그 이미지의 조합을 통해 기술적으로 구현된다.




전민수_Flowers_람다 프린트_101.6×76.2cm_2007


더 나아가면 그의 사진 이미지들에는 일반적으로 게이Gay, 퀴어Queer, 캠프Camp의 감성들이 어울려 있다. 이는 즐겁고 유쾌한, 기쁨으로 가득하며 행복한 느낌들의 복합물이다. 이러한 느낌은 기묘하면서도 불편한 감정들로 복잡하게 얽히면서 동성애적이며 호모 섹슈얼리티의 취향을 드러낸다. 나긋나긋한 예쁜 남자들의 몸이 젊음과 아름다움을 뽐내며 과장된 시각이미지의 향연을 벌인다. 동시에 50~60년대 반문화의 기호들로 가득하기도 하다. ● 그렇게 전민수의 이번 작품들은 예쁘고 부드러우며 작은 여성형용사들로 버무려진 살갑게 다가오는 남성의 이미지들로 구성되었다. 물론 세대가 빈번하게 바뀌고 세상이 아주 좁고 가까워지면서 성정체성과 타자/소수자를 둘러싼 우리의 인식도 바뀌어가고 있지만 예쁜 남성을 둘러싼 문화적 기호들은 유교적 전통이 강한 한국에서 여성성을 표상하는 남성은 변화된 문화현상으로 자연스럽게 수용하기란 쉽지 않다. 불편하다. 여기서 작가는 매우 천연덕스럽게 자신이 수집한 취향을 밀고 나간다.




전민수_Flowers_람다 프린트_101.6×76.2cm_2007


전민수의 이러한 태도는 사실 현대미술계에서 널리 유포되어 있는 오래된 전통이기도 하다. 20세기 초 다다이스트들과 초현실주의자들이 탐닉하였던 복장도착과 같은 동성애 문화와 많은 미술가들이 탐구하였던 미세한 감정의 문제들 새로운 에로티시즘의 영역에 집중함으로써 통해 과거 문화와 사회를 구조하였던 전통적인 것들을 해체하는 활동까지도 연결해 볼 수 있다. 최근의 예를 들면 매튜 바니(Mathew Barney)가 크리메스터Cremaster 씨리즈에서 연출하였던 신화와 몽환의 세계가 재현하는 기괴한 감각들과 기호들의 역전과 해체, 피에르&쥘(Pierre et Gilles)의 사진 이미지들이 주었던 충격들을 떠올릴 수 있다. 그들의 독특한 에로티시즘과 게이문화의 암시들과 현실과 판타지가 삼투하는 이상향의 이미지들은 전민수의 이번 사진 이미지들과 매우 분명한 친족관계를 보여준다.




전민수_Flowers_람다 프린트_101.6×76.2cm_2007


더 나아가면 식물과 인간의 결합을 통해 유기체적 세계관과 아주 오래전 인류의 조상들이 믿었던 애니미즘을 떠올리기도 한다. 과장하자면 우리는 전민수의 사진이미지를 떠나서 우리 앞에 펼쳐지는 현대 사진의 스펙터클한 모험과 파노라마는 오늘날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시각이미지의 감상과 해석의 지평을 무한히 확장시켰다.




전민수_Flowers_람다 프린트_101.6×76.2cm_2007


다른 한편 전민수의 사진 이미지는 매우 노골적으로 광고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는데, 향수와 화장품, 패션과 같은 기호품들의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러한 광고이미지의 효과는 현대사진이 더 이상 예술사진과 광고사진을 구별할 수 없다는 것과 더 이상 그러한 구별이 무의미하다는 의식적 무의식적 전략으로 읽을 수도 있다. 동시에 광고이미지들은 마치 신체를 화려하게 채색하는 화장化粧과 문신처럼 현대문화와 일상의 현실로부터 분리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 김노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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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xidermied Images

최지연 개인展

2007_1214 ▶ 2007_1223



최지연_MTIP_Experiment Conduct_I&II_불투명 유리에 프린트, LED 라이팅
120×180cm(30×30cm×24EA)_2007_부분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덕원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1214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_10:00am ~ 06:00pm




덕원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02_723_7771
www.dukwongallery.com






인식하지 못한 풍경 ● 우리는 살아가면서 공간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공간이며, 우리들은 그 안에서 존재한다. 인간은 특정한 공간에 살면서도 그 공간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인지하며 살아가진 못한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익숙한 곳에서 느끼는 감정과 낯선 곳에서의 감정은 매우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나에게 익숙하고 내가 생활하는 공간, 내가 자주 다니던 길도 악몽을 꾸고 갑자기 잠에서 깨었을 때라든지, 평소에 한 방향으로만 이용하던 길을 반대로 걸어왔다든지 어떠한 특별한 상황에서는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는 인간은 눈을 통해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지만 이는 완벽하지 않고 경험을 통해서 저장된 정보 중에서도 특정한 정보만을 저장하고 기억하기 때문에 그 인지능력이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실제의 공간을 경험을 통해서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 정보를 토대로 자신만의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인식하여 공간을 인지하는 지도 모른다.




최지연_MTIP_Experiment Conduct_I&II_불투명 유리에 프린트, LED 라이팅
120×180cm(30×30cm×24EA)_2007

최지연은 이전의 작업인 '밤 사진' 시리즈에서 정신적인 흔적이 남아있는 공간을 찍으면서 서서히 공간과 인물간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며 인물이 있는 공간을 주제로 작업을 하였다. 작가는 자신의 친구들이나 주변사람들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삶의 바탕이 되는 장소에서 촬영을 하였다.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은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인물과의 관계를 잘 드러내준다. 자주 걷는 거리, 자주 가는 카페와 식당, 일하는 직장 공간,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등 익숙한 공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인물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배경인 공간과 어울리게 되면서 인물 자체의 성격이나 성향, 심리적인 상태가 잘 표출되어, 하나의 심리적, 물질적 풍경을 이룬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공간은 내가 되고 내가 공간이 되어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최지연_MTIP_SE_35_불투명 유리에 프린트, CCFL 라이팅_80×80cm_2007

이번 작업에서는 또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작가와는 아무런 친분도 없는 인물들과 작가도 등장인물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완벽하게 낯선 공간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다. 촬영의 방법은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러나 이전의 작업에서와는 다른 느낌의 작업이 나타난다.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움직이지 않는 마리오네트처럼 긴장을 풀고 아무것도 안 하는 채로 등장한다. 인물과 공간의 관계는 묘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공간은 마치 무대의 배경과도 같이 대상인 인물 사이에 어색하게 존재한다. 분명 우리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공간이었겠지만, 최지연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공간은 뭔가 어색하고, 원근법에 맞지 않고,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이상한 공간으로 나타난다. 등장인물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어색한 포즈를 취하고 있으며, 이전의 작업에서도 보여주었듯이 어두운 밤에 장시간 노출에 의한 사람들의 미세한 흔들림에 의해서 나타나는 인물의 표현은 인물의 심리적인 상태의 흔적들을 보여준다. 촬영을 하는 동안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이질적인 공간에서의 초반의 어색함에서 차차 주변 환경의 적응해 나가는 모습으로 흔적들이 나타난다. 이렇게 촬영을 하면서 경험된 기억들은 특별한 기억으로 그 공간을 인식할 것이고 이제는 낯설지 않은 공간으로 남을 것이고 자신만의 심리적인 공간인식에 대한 흔적을 남기게 된다.




최지연_MTIP_GJ_17_불투명 유리에 프린트, CCFL 라이팅_80×80cm_2007

이렇게 찍힌 사진들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심리적인 공간인식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찍혀진 사진을 유리판에 담아낸다. 마치 실험을 하고 유리 시험관이나 플라스크에 실험체를 담듯이 말이다. 또한 실험실에서 쓰는 분류 용어를 차용해 작품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다. 단순히 유리판에 담아내는 것 말고도 작가는 독립적인 두 개의 이미지에서 24개의 불 특정한 부분을 따내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이들은 서로 이미지들이 뒤섞여 새로운 이미지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 등장하는 대상물 중 하나인 아야후아스카(Ayahuasca)라는 나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나무는 아마존 지역에서 원주민들이 차로 만들어서 먹는 재료인데, 환각 성분이 강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상상하던 종교적인 환각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로 인해 그들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간격이 좁아지고 그 애매모호한 경계에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면서 많은 시각적인 정보를 받아들이고 사는 현대인도 이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최지연_OVTIP_KIL_27_불투명 유리에 프린트, CCFL 라이팅_85×60cm_2007

결국 작가는 모델인 인물들을 움직이지 않고 잡아두는 야간의 긴 노출을 통해 촬영하여 낮의 일상적인 공간 속에서 드러나 보이지 않는 인간들의 심리적 상황들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인물포즈와 장소의 모호하고 어색한 것들은 공간에 인식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으로 충만해진다. 또한 이러한 특정한 부분을 복잡하게 섞거나 아야후아스카와 같은 이미지를 넣음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에 대한 것을 경험으로만 모든 것을 객관화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으며,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던 공간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의 모호함과 경험에 의한 기억의 불확실성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주변을 새로운 눈으로 돌아보게 한다. ■ 신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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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Entendre

신예선 개인展

2007_1215 ▶ 2007_1230



신예선_caca_까까-똥_세라믹 접시, 크리스탈_30×30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쿤스트라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1215_토요일_06:00pm




갤러리 쿤스트라움
서울 종로구 팔판동 61-1번지
Tel. 02_730_2884
kunstraum.co.kr






쿤스트라움에서는 신예선 개인전을 개최한다. 작가 신예선은 2004년 첫 번째 개인전 'imaginary forest', 2006년 두 번째 개인전‘transplant’에 이어 세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설치전경

‘double entendre’ 는 이중의 의미를 가지거나 두 가지로 해석되는 말이다. 신예선의 작업에서는 이전 전시들에 이어 이번 전시에서도 상반된 아이디어의 공존과 갈등 상황들에 대하여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작가 개인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과 구체적인 내러티브를 포함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회상 속에서의 욕구들과 그것에 대한 반감과 순수성이 작가 개인의 내면적 고민들이다. 이것이 물적 갈등 양상이라면 내면에 잠재하는 이중적 잣대 혹은 개인성을 가장한 불안한 고독감에 대한 내러티브는 심리적 갈등 양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예선_EAT ME_나를 먹어요_유리, 레이스, 실리콘, 콧수염_25×25×20cm_2007



신예선_appetite_식욕_세라믹 접시,플라스틱 눈_35×35×7cm_2007



신예선_appleⅠ_사과Ⅰ_플라스틱 눈_100×100cm_2007

이번 전시 작가의 작품에서는 접시에 작은 점처럼 붙어 있는 수 없이 반복되는 눈알들을 볼 수 있다. 이 플라스틱 눈들은 사과형태로 때를 지어 모여 있기도 한다. 이 작업들에서 관객과 작품들과의 거리감은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다소의 거리감에서는 작은 놓여진 검은 점들의 소용돌이가 착시효과를 만들어 내는가 하면 근간에서의 오브제들은 다분히 텍스트들을 내포한다. 많은 ‘눈’들 안에서 가장 본능적이라 할 수 있는 끊임없는 식욕과의 연관관계를 찾아보려하고 있다. 이런 관점은 언어적 유희를 통해서도 표현되고 있는데, ‘caca’ ‘까까-똥’이나 ‘돈’‘돈’에서 보여지듯 이것은 언어적 이중성인 동시에 그릇에 화려하게 붙어 있는 크리스탈의 의미가 터부시되어지는 단어들과 작용하며 시각적 이중성을 동시에 표현하기도 한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정 이미지에 대한 고정관념은 늘 존재한다. 접시돌리기의 이미지는 작가에겐 지극히 불안하고 고립된 상황에 대한 설정으로 받아들여진다. 텐트의 개인공간에서 뻗어나가는 불안정한 접시들과 공기를 담은 공들의 행렬은 개인성과 고독감에 대한 불안한 균형감각을 이야기한다.




설치전경



신예선_klein's head_클라인 머리_천, 유리눈_가변크기_2007

그의 이번 작업에 좀 더 다가서기 위해 공간에 대한 무게감 혹은 가벼움, 공간에 대한 드로잉, 오브제와 오브제 사이에 존재하는 에너지에 대해 경험한다면 작업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커질 것이다. ■ 갤러리 쿤스트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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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황세진 개인展

2007_1226 ▶ 2008_0101



황세진_you_아트프린트_160×110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황세진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1226_수요일_05: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3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02_734_1333
www.ganaartgallery.com






시스템에 저항하는 자_YOU ● 철학자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는 그의 대표저서『감시와 처벌』에서 근대 이후 이성 중심 사회의 규율과 통념을 일탈하는 비이성(타자)에 대한 ‘감시’와 ‘처벌’의 구조를 병원과 감옥의 시스템을 통해 분석했다. 이는 과거 왕권통치의 권력 유지를 위한 구조가 사법 제도에 의한 정교한 시스템으로 모양이 변했을 뿐, ‘감시와 처벌’의 주체인 권력과의 밀착은 변하지 않았음을 설파한 것인데, 타자에 대한 독단적 편견과 박해의 구조를 파헤친 철인(哲人)의 놀라운 통찰력이었다.




황세진_you_아트프린트_60×60cm_2007



황세진_you_아트프린트_60×60cm_2007


영화감독 워쇼 스키 형제는 1999년 작 『매트릭스(Matrix)』를 통해 가상 미래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컴퓨터가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을 제어하고 처벌하는 세기말적 공포를 놀라운 상상력으로 재현해냈다. 앞에서 예를 든 철학자와 영화감독은 전혀 공통점이 없는 인물들이지만 일상의 표피적 구조 너머, 과거에 존재했고 현재, 혹은 미래에 등장할 보이지 않는 권력 구조의 실체를 놀라운 통찰력과 상상력으로 파악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황세진_you_아트프린트_60×60cm_2007


이번 개인전 《YOU》는 2005년 개인전 ‘감시와 처벌’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업이며, 개별자로서 ‘타자’의 모습에 좀 더 집중되어있다. YOU는 지칭자의 위치에 따라 주객의 위치가 변화되는 단어이다. 거울 속의 너를 가리키는 나는 거울 속의 내가 지칭하는 네가 된다. 세상의 구조는 거울 경계 위에 존재하는 수많은 너(나)로 조직되어 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감시와 규율의 핵심 조직인 가정, 학교, 군대 등을 이루고 있는 수동적 타자이자, 권력의 유지를 위해 감시와 처벌을 수행하는 능동적 주체이기도 하다. 푸코는 ‘자신이 탐구한 구조에 대한 모든 논의의 중심에는 인간의 육체가 있으며, 이 육체야말로 권력의 시발점임과 동시에 저항의 시발점’이라고 말한다. 이는 육체가 권력의 명령을 실행하고, 또한 그 명령을 거부하는 저항을 함께 지닌 물리적 실체임을 언급한 것이다. 작가가 선택한 미니어처 인물은 바로 이러한 양면성의 육체를 지닌 수많은 너의 존재를 상징한다.




황세진_you_아트프린트_36.5cm×110cm_2007


이번 출품작들 중 가장 큰 크기의 〈you〉연작은 두개의 사진 이미지로 상하가 나뉜다. 위쪽의 거대한 두상과 이를 칭칭 동여맨 밧줄, 아랫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군인과 남자의 형상들은 보이지 않는 구조의 시스템에 의해 옭좨 이고, 딱딱한 껍질을 뒤집어 쓴 각질 화된 존재들이다. 그의 전작에서 감시자와 처벌자로 나뉘던 역할의 구분은 모두 사라졌다. 감시와 처벌을 자행하던 군인 형상들은 의기양양한 포즈와 달리, 자신도 모르게 미라같이 굳어버린 육체를 지닌 좀비의 모습이다. 이들 역시 구조의 시스템 유지를 위해 고안된 권력의 하수인에 다름 아니며, 개별자로서 조직의 순응 논리에 의해 각화되는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다.




황세진_you_아트프린트_180×110cm_2007


영원히 죽지 못할 저주를 지닌 굳은 육체들은 영혼이 꺼져버린 해골 같이 혐오스러운 얼굴을 지니고 있다. 세 폭 연작을 포함한 작품 속 얼굴들은 불쾌와 공포를 유발할 정도로 관객을 응시한다. 실제 1센티 내외의 인물 두상이 거대하게 확대될 때 인식되는 세밀한 디테일은 가느다란 실을 밧줄로 얇은 철사를 철근의 굵기로 변화시킨다. 확대된 세부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구조의 억압 시스템을 현실의 속박으로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이렇게 회복 불능의 ‘경화(硬化)’된 개별자들의 모습은 사회 시스템의 구조적 질서와 체제 유지를 위해 순응을 강요당하고 영혼을 빼앗긴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이며, 바로 보이지 않게 숨겨진 ‘너’의 실체이다. 〈you〉 연작은 꿈에라도 마주치기 싫은 존재의 혐오스러운 형상이 보이지 않는 구조의 틀 속에 갇힌 ‘나’의 모습이라는 자각과 환기를 유도한다.




황세진_you_아트프린트_36.5cm×180cm_2007


가공된 이미지와 정보의 통제를 통해 정교하게 구조화 된 시스템의 미세한 틈을 파고드는 작가들은 ‘예술이라는 포장술로 위장’한 채 고착화된 규칙과 질서에 딴죽을 걸고 저항하며, 새로운 사고의 확장을 유도하는 소수자에 속한다. 이들은 시스템에의 순응을 비판하고, 개별자의 가치가 꿈틀거리는 존재의 살아있는 유연성을 지키기 위해 투신한다. 이들은 또한 현실의 구조가 끊임없는 모사와 복제를 통해 유지되는 가상의 허구임을 알리며 시스템을 위협하는 해커의 역할을 담당한다. 가상 시스템의 추적과 위협, 제거의 공포는 시스템으로부터의 자각과 탈출이라는 자족적 만족감으로 인해 극복된다. 안타깝게도 이상적 ‘저항자’에 대한 이러한 '허망한 상상’은 광기와도 같은 예술적 저항까지 경제 가치로 침 바르고 삼켜버리는 울트라 메가톤 시스템 앞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예술이 시장 자본의 하위에 위치한 시점 즉, 데미언 허스트 식의 신랄함도 고가의 예술상품으로 포장되어 자본의 ‘막대사탕’이 되어버리는 현실 앞에서 끝까지 ‘깨어있으라!’는 선동은 의례적 종교행사의 구태(舊態)한 구호처럼 들릴 뿐이다. 결국 작가들은 구조에 저항하는 몸짓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이를 받아들이는 미술과 자본의 구조에 의해 인정받아야 하는 깊은 딜레마의 늪에 빠지게 되어있다. 하지만, 경계 위에 선 자의 작은 몸짓이 시각 이미지로 탄생하고 구조의 시스템에 흡수되고 고착되기 바로 전, 그 탄생의 순간이 지닌 따끈하고 긴장된 순간을 포착하는 것, 이는 ‘시스템에 저항하는 자'와 이를 ’인식하는 자‘만이 발견할 수 있는 작은 깨달음과 희열의 순간이다. ■ 이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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