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은
<디워>나 디빠에 대해 이야기한 글이 아닙니다. 나는 <디워>라는 영화를 굳이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평소에
아동용(가족용) 오락영화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 그 영화가 사회적 화제가 되었다고 해서 굳이 그 영화의 예술성을 논하고 심지어 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을 논하는 건 싱거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디빠의 행태에 대해선 대부분의 비판적 의견에 ‘당연히’ 동의합니다. 알다시피,
한국 네티즌의 행태에 대해 이미 오래 전부터 누구보다 비판적인 생각을 피력해왔습니다.
타인의 취향은 <디워>나 디빠가 아니라 <디워>나 디빠에 냉소와 혐오를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 한국 지식인들과 그들의
고장난 지성에 대해 쓴 글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디빠의 행태에 그토록 냉소와 혐오를 보인 지식인들은 왜 붉은악마엔 그렇지 않았을까요?
디빠와 붉은악마는 다르지 않습니다. 집단주의, 애국주의, 인터넷 기반, 폭력적 태도 등등 골격과 멘탈리티는 거의 같고 굳이 비교하자면 붉은악마가
좀 더 심각했습니다. 궁금하다면, 2002년 월드컵 때 ‘붉은악마를 부추기지 말라’라는 성명을 냈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과 그들의 홈피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알아보기 바랍니다.
그런데 왜 지식인들의 태도는 그리 달랐을까요? 붉은악마에게 공감과 찬사를 바쳤던 그들은 왜 디빠엔 그토록 냉소와 혐오를 보인 걸까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월드컵엔 지식인들도 함께 흥분했지만 <디워>엔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월드컵은 그들의
취향에 부응했지만 <디워>는 그들의 고급한 취향을 거슬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지성은 월드컵에선 작동을 멈추었고
<디워>에선 매우 활발하게 작동한 겁니다. 제 취향을 거스를 때만 작동되는 지성, 우습지 않습니까? 나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한
겁니다.
지식인들은 대중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대중을 비난해선 안 됩니다. 대중이 비난받을 만한 상태에 있는 책임이 바로
지식인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인들의 지성과 실천이 모자랐기 때문에 대중이 그 지경인데 그 경과에 대한 성찰은 없이 대중의 상태만 똑 떼어
내어 비난하는 건 무책임하고 염치없는 일입니다. 한국의 교육시스템에서 보통의 사람들이 국가주의에 대해 애국주의에 대해 파시즘에 대해 제대로 배울
기회가 있습니까? 바로 지식인들이 할 일입니다. 카페나 술집에 모여앉아 ‘천박하고 어리석은’ 대중과 자신들을 구별짓기나 하는 게, 앞장 서
대중을 비난하는 사람을 ‘용기있는 지식인’이라 말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게 지식인의 일이 아닙니다.
다들 애국주의, 애국주의 하는데 그 애국주의의 정체가 뭘까요? 돈입니다. 황빠나 디빠나 그 애국주의의 내용은 ‘돈’입니다. 진실이고
예술이고 간에 돈이 되니까 황우석이 자랑스럽고 심형래가 자랑스럽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치관이 우리 사회를 장악하게 만든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바로 지식인들입니다. 개혁과 진보도 구분 못한 채 10여년 동안 우리 사회를 신자유주의에 찢겨 발겨지게 한 사람들이, 그래서 대중들이
진보고 정의고 인간적 위엄이고 다 팽개치고 돈귀신에 들려 이명박에게 몰려가게 만든 사람들이, 그러고도 모자라서 다시 비판적 지지 이야기나 하는
사람들이 대체 누굴 냉소하고 혐오한단 말입니까?
나는 한국의 지식인들이 제 고장 난 지성에 대해 생각하기 바랍니다. 지성이 작동하려는 바로 그 순간, 지성이 작동을 멈추었던 순간을
되새겨보길 바랍니다. 부끄러움을 느끼고 좀 더 겸손해지길 바랍니다. 그래서 냉소와 혐오가 아니라 애정과 연민으로 현실을 바라볼 수 있길
바랍니다. 오죽하면, 대체 얼마나 삶이 보잘것없었으면 고작 월드컵이나 <디워> 따위에서나 제 나라에 대한 사랑과 자부를 느꼈겠는지,
대체 얼마나 짓밟히고 캄캄했으면 이명박 같은 사람에게나 희망을 걸겠는지 고민하면서 말입니다.
(강의와 술자리에서 한, 타인의 취향에 대한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