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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3-06-02 02:15:22, Hit : 521)
[기사] 일시

아래의 글은 월간미술에 실린, 작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있었던 <레이첼 화이트리드 전 : 일시적 공간들>에 대한 기사입니다.     국제에서 작업들을 보고 근래 없었던 감동을 먹은 기억으로^^, 다시 올립니다.      화이트리드에 대한 다른 게시물은...숙박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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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젊은 작가 그룹 yBa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인 화이트리드는 물체의 내부를 떠내는 주조 개념의 미니멀리즘 조각으로 영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음각으로 나타나는 조형물은 인간이 아닌 물체의 시각에서 보여지는 낯선 형태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초등학교 산수시간에 0보다 작은 수, 즉 음수의 개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학년에 이르러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음수·네거티브라는 것은 바로 곱셈·나눗셈·분수·백분율 등의 대수학 개념에서 한 걸음 진행된 수학의 사상체계로 읽히고 있음을 뜻할 것이다. 괄호 안의 큰 수를 아무리 더하거나 곱해도 괄호 밖에 마이너스 사인이 붙을 경우에 그 숫자는 네거티브의 양(量)으로서, 실수(實數)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양이며 개념인 것이다. 영국의 조각가인 레이첼 화이트리드의 작품은 이러한 네거티브의 세계, 실존하지 않는 양에 관한 조각이다.

화이트리드의 조각들은 대부분 그릇·욕조·가구·실내·건물 등 겉과 속이 구별되는 구조물의 내부공간에다 석고나 시멘트 등을 채워 넣은 후 껍데기를 뜯어냄으로써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공간을 형상화한 작업들이다. 말하자면, 그녀의 작업은 물체와 물체(겉) 사이의 허공(속)을 물질화하는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물을 입체로 다시 재현하는 조각의 개념에 정면으로 맞선다고 볼 수 있다. 그녀의 초기 작품인 〈무제(토르소)〉는 그녀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가장 기초적인 작품이다. 〈무제(토르소)〉는 고무로 만들어진 물베개 속에 석고를 부어 넣고 석고가 굳은 후에 물베개를 벗겨 내어 물베개의 내부 공간을 석고로 떠낸 형태다. 엄밀히 말하면 그녀의 작품은  

조각(sculpt)이 아닌 주조(cast)의 개념인 것이다.

토니 스미스 등 1960∼1970년대 미니멀리즘 조각가들의 기하학적 대형 작품들과도 비슷해 보이는 그녀의 작업은 몇 가지 점에서 이전 시대의 조각들과 근본적 차이를 드러낸다. 첫째, 미니멀 조각의 대전제인 사물성(objecthood), 즉 조각품이 자신의 물체의 본질에 대하여만 이야기하는 특징은 화이트리드가 물체가 아닌 물체간의 공간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그녀의 작품은 물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체의 부재’라는 현실을 부각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그 형상에서 미니멀 조각들이 은유를 사용, 서술적인 제목을 갖는 경우에도 그 형상은 어디까지나 기하학적 추상을 기본으로 하는 데 비하여, 화이트리드의 조각들은 건물 내부라는 매우 구체적인 대상을 충실히 재현하는 원초적인 미메시스 작업에 기원을 둔다는 점이다. 특히 석고나 시멘트로 떠낸 실내 공간의 조각에는 계단의 나뭇결이나 벽지의 꽃무늬 자국마저 기록되어 마치 죽은 사람의 데스마스크(death mask)를 뜨는 듯이 그 표면을 세밀하게 재현한다. 이런 점에서 1960년대의 완전한 추상 조각들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찾아볼 수 있다.

화이트리드는 이러한 독창적인 제작방식을 자신의 유년 시절의 경험에서 유래한다고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커다란 옷장 속에 숨어 들어가 안에서 문을 닫고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며 무엇인가를 기다리던 경험은 아무라도 한번쯤은 겪어 본 일일 것이다. 그녀는 〈옷장〉이라는 1988년의 작품을 시초로 이러한 임의의 구조에 갇힌 내부 공간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로 화이트리드는 1997년 〈센세이션전〉에서 각기 형태가 다른 100개의 의자 밑의 공간을 형체화한 〈무제(100개의 공간들)〉 등을 비롯해 욕조 내부, 급기야는 런던의 도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집의 내부를 모조리 시멘트로 뜨는 등 건축물과 그 내부공간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1990년대 말에 나타나 yBa(young British artists)라는 일종의 현상으로까지 발전한 영국의 젊은 작가그룹들과 종종 같이 분류되는 화이트리드는 소박하고 수수한 생김새와는 다르게 경력이 무척 화려하다. 1987년 런던의 슬레이드 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영국 터너 프라이즈와 베니스비엔날레 작품상 수상, 그 후 세계적인 건축가들과 겨룬 빈 시립 홀로코스트 기념관 제작 초대전에서 우승, 빈 시가지에 기념관을 세웠으며 런던의 대표적 광장인 트라팔가 광장에도 최근 기념물을 설치하였다. 그녀는 도발적인 기상으로 유명한 yBa 중에서도 국제적으로 그 역량을 인정받은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구겐하임을 위해 제작된 2개의 대작 〈무제(아파트)〉와 〈무제(지하실)〉는 화이트리드가 런던에서 새로 작업실 겸 주거로 구입한 주택의 내부를 특수 플라스틱으로 뜬 작품이다. 이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저소득층을 위해 획일적인 디자인으로 대량 건축된 건물 중 하나로 한때는 유대교 예배당으로 사용되다가 그 후에 섬유공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따라서 그녀가 이 건물을 처음 구입했을 때 유리창에는 유대인의 상징인 별 모양이 새겨져 있었으며, 섬유 공장에서 제작되었던 천 쪼가리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고 한다. 화이트리드는 이렇게 건물이 지닌 역사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투입하지는 않지만, 실제 작업에 들어가기 전 장기간에 걸쳐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듯 건물의 원래 모습을 사진으로 자세히 기록한다고 한다. 그녀의 이러한 자세는 단순히 실내공간을 떠내는, 어떻게 보면 무미 건조하기까지 한 단순 작업을 그 건물에서 생활하던 거주자들의 자취와 건축물의 기억과 흔적을 흡수하여 재현하려는, 예술가로서의 개념적 작업으로 전환시킨다.

구겐하임의 전시공간으로 들어가면 집 안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커다란 하얀 건축물 표면에 도장처럼 반대로 새겨진 창문의 틀, 문과 손잡이의 흔적 그리고 벽의 조명 스위치 자국까지 실제와 같은 크기로, 그러나 실제와는 반대 방향으로 부조되어 있다. 섬세한 세부의 힌트들은 자칫 눈앞에 있는 덩어리가 사실은 실내 공간을 재현한 허공의 가시화라는 사실조차 잊게 한다. 튀어나온 창틀은 실제로 건물 안에서 볼 때는 벽에서 바깥으로 돌출된 내부공간이었으며, 거꾸로 올라가는 계단은 계단을 올라서는 사람이 지나갈 공간의 재현인 것이다. 즉 우리가 보고있는 흰색의 거대한 기하학적 덩어리는 허공의 조형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집의 형상을 갖지만 실제로 들어갈 수는 없는, 다시 말해 건축물이지만 아무 것도 담을 수 없는 화이트리드의 조각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unheimlich’, 즉‘집’ 혹은 ‘익숙한’을 뜻하는 ‘heimlich’의 반대 개념인 ‘낯선’, 또는 ‘집과 다른’이라는 상태를 상기시킨다. 화이트리드의 구조물들은 집 내부 모양과 끝없이 가까운 형태를 띠면서도 실제로는 그와 정반대 형상, 즉 집 안에 담긴 공간만을 구체화해서 긴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변환시킨 작품들이다. 그녀의 실은 허이며 허는 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관람자는 그녀의 작품 앞에서 이 시야를 막으며 가로막아선 큰 덩어리는 실제의 양이 아닌 음의 부호를 단 허공의 양임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한다. 위로 향해 거꾸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에 선 관람자는 말하자면 계단 위치에 선 것이다. 다시 말해 관람자에게는 건물(벽·계단·문) 자체가 가졌을 시각이 부여되는 것이다.

화이트리드는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만든 모든 건축물 내부의 작품은 관찰에 관한 것이다. 그것을 관람객들이 수수께끼처럼 신기하게 쳐다보며 ‘우리가 사는 곳이 저런 공간 속이구나. 우리가 저 공간 안에서 움직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할 때 그들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작품 의도는 무엇보다 인체가 거주하는 건축물 내부의 공간과 그 속에서 인체의 움직임이라는 매우 기본적인 행위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서 기인함을 알 수 있다.

이 전시는 2001년 10월부터 독일 베를린의 구겐하임에서 전시되다가 이듬해 3월에 뉴욕으로 건너왔다. 이 두 작품은 독일의 구겐하임 분관의 의뢰를 받아 제작되었으나 화이트리드가 구겐하임이라는 이름을 듣고 떠올린 곳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뉴욕의 구겐하임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뉴욕 구겐하임에서 전시한 여느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어떻게 하면 그 자체가 뛰어난 건축 작품이며 독특한 전시공간인 뉴욕 구겐하임 건물과 조화로운 작품을 만들 것인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러한 고민을 주어진 특수한 미술관 건물 내부에 자신의 건축물을 들여놓는 것으로 해결한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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