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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측면에서 김규항씨의 견해를 그닥 달가워만은 하지 않는 편이지만, 종교에 대한 그의 입장은 꽤 좋게 보는 쪽이다.
'성스런 짓'으로서의 종교가 행하는 여러가지 폭압이나 비윤리적인 기제들을 짚어내는 것으로도 괜찮지만, 무엇보다 종교가 '하늘의 뜻'만이 아니라 그와 마찬가지로 '땅위의 일'이라는 것을 밝혀내는데에 일정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혁명가로서의 예수는 아마도, 종교와 사회를 아우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잖을까.
"혁명의 숙제는 어떻게 하면 ‘시스템과 인간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혁명은 아름다울 것입니다. 예수는 바로 그 문제에 결정적인 통찰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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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삶
"예수의 위대함이 뭐라 생각하십니까?"
"흔히 사랑이나 용서를 말하지만 사랑이나 용서를 말하지 않은 현인이나 성인은 없습니다.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 한 것을 말하지만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은 적지 않습니다. 비정규 노동자, 소수자 운동 하는 활동가들이 다 그런 분들입니다. 그러니 그런 위대함은 예수만의 위대함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예수의 삶이 보이는 독특한 지점, 정치적 혁명가가 아니었는데 정치적 혁명가로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에서 예수의 위대함을 발견합니다. 근대 사회와 현실사회주의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혁명이라는 것 자체에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회의는 실은 ‘혁명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대한 회의’여야 합니다. 우리는 혁명이 아닌 것, 혹은 혁명의 일부에 불과한 것을 혁명이라 믿었고 그런 믿음에 대한 실망과 좌절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비굴하게도 그걸 혁명 자체에 대한 회의로 돌려버립니다. 우리가 할 일은 혁명을 회의하는 게 아니라 그런 역사적 경험을 통해 얻은 반성과 통찰을 혁명에 부어 넣는 것입니다. 그래서 혁명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혁명에서 나타난 문제는 ‘시스템과 인간의 모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을 변혁하자니 인간에 소홀해지고 인간을 챙기자니 시스템을 변혁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두 가지를 절충하거나 한쪽을 배제하면 죽도 밥도 아니게 되어버립니다. 결국 혁명의 숙제는 어떻게 하면 ‘시스템과 인간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혁명은 아름다울 것입니다. 예수는 바로 그 문제에 결정적인 통찰을 줍니다. 2천년 전 팔레스타인의 한 초라한 사내가 말입니다. 우리는 그 삶을 위대하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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