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약간은....지겨울런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낸시랭에 대한 마지막 게시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순간까지 가봤어요. 아빠는 죽고, 엄마는 암에 걸리고, 집안은 망하고, 친척들은 모른 척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티스트로 성공하고 싶고…."
역시, 삶의 전략이 있는 사람은 분명한 굴곡을 가지고 있다. 단지 역경을 견뎌낸 정도가 아니라, 엿같음을 마주하고서 도망가지 않으며 그 엿으로부터 진정의 배움을 얻어낸다는 것. 바람은 온몸으로 맞아야한다. 삶에서 견지해야할 태도는 단 하나.
등을 보이지 말 것.
.
.
.
++++++++++++++++++++++++++++++++++++++++++++++++++++++++++++++++++++++++++++++++++

issue
낸시 랭의 애교 연구
낸시 랭은 남자를 유혹하는 기술로서가 아니라 아티스트로서 인생을 살아가는 도구로 애교를 활용했고, 미술적인 재능은 그 여분의 것이었다.
피처 에디터/ 김경숙
낸시 랭을 만나기 전까지 여자의 애교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타고난 기질이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고, 기껏 해봐야 남자를 유혹하는 가장 난이도 낮은 기술에 해당하기 때문에 별로 배울 필요도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낸시 랭이라는 희한한 아티스트를 알게된 후 애교가 성숙한 여자의 사회적 무기로써 진지하게 검토해 필요가 있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 충격을 받고 말았다.
누구든지 나와 마찬 가지로 낸시 랭과의 첫 만남을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동전을 주우려고 허리를 구부리면 틀림없이 팬티가 보일 거라 짐작되는 초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마릴린 먼로 걸음걸이로 다가와 부담스러울 정도로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티스트 낸시 랭이예요.”
난 그때까지 미술계에서 처음부터 자신을 대놓고 아티스트라고 소개하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일본 여고생처럼 발랄하게 차려 입은 여성 작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내 경우 그나마 누군가 ‘애교의 여왕’이라고 소개시켜 줬기 때문에 덜 당황했지만, 그래도 만나자마자 ‘얘기 많이 들었다’며 느닷없이 팔짱을 끼고 걸을 땐 어색해서 식은땀이 났다. 그래도 왠지 싫지는 않았다. 낸시가 내 팔을 쥐고 가볍게 흔들며 “언니,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하는데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도 ‘나 좀 예뻐해 달라’고 연신 꼬리를 흔드는 우리 강아지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남자들이 낸시의 애교 앞에서 해벌쭉 늘어진다는 사실을 술집에 가서 알았다. 일단 술집에서라면 누구든 낸시가 직접 제조한 폭탄주를 마셔야 한다. 그리고 술을 마시는 동안 남자든 여자든 ‘낸시의 애교 퍼레이드’에서 시선을 놓을 수 없었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건배 구호로 “큐리(Cutely), 섹시(Sexy), 키리(kitty), 낸시(Nancy)!”를 외치게 한 후 자신은 구호가 끝나면 교태스러운 고양이 소리로 화답했다. “야~옹~.”
그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뭐 저런 게 있나.” 싶었다. 일반적으로는 여자들이 몹시 재수 없어 하는 타입인 것이다. 그런데 그 과장된 애교가 그녀의 솔직함과 천진함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술자리에서 누군가 “내 생일날이 하필 4.19.”라고 하자, 낸시는 “4.19가 무슨 날이야?.”하고 묻고는, “생일이면 나이트클럽에 가서 파티를 하자.”며 사람들을 졸랐다. 어느 대학에 출강까지 한다는 아티스트가 어떻게 저렇게까지 대책없이 무식하고, 어떻게 저토록 친진하게 자기 무지를 폭로할 수 있을까 싶었다. 게다가 그 자리에는 아트스트도 있었고 평론가도 있었고 기자도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무조건 언니, 아빠라 부르며 어린애처럼 따르고 조르고 떼를 썼다.
냉소적 제스처는 현대 작가의 기본 사양이다. 그런데 낸시는 ‘시니컬’ 하기는커녕 지나칠 정도로 애교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낸시의 애교 앞에서는 아티스트, 평론가 할 것 없이 모두들 속수무책이었다. 그녀는 일단 음주가무에 무척 능했고 자신의 섹시한 이미지를 천진하게 자랑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즐거움을 줬다. 그러니 나중에 집에서 가서 하는 욕이라면 모를까 모두들 술자리에서는 낸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랄까,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조금씩 아담과 이브가 벌거벗고 뛰어 놀며 서로를 유혹하는 에덴 동산에 대한 동경이 있는데, 낸시와 함께 있으면 속절없이 요원하게 보이는 그런 파라다이스가 잠시나마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
더욱더 놀라운 건 낸시는 애교와 섹스 어필이라는 음지의 무기를 대낮의 술집 밖으로도 끌어내고 심지어 전시장 안으로도 가져간다는 사실이다. 지난 2003년에는 초대받지도 않은 주제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가서 빅토리아 시크릿 란제리를 입고 섹시한 퍼포먼스로 펼치더니 요즘은 작업의 애교술이 날로 진화하고 있다. 한 달 전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비키니를 입고 베이비오일을 바른 후 노래방 도우미로 변신하더니, 지난 주에는 홍대 바에서 ‘걸스카웃’이라는 정체 불명의 예쁜 날라리 소녀 그룹과 손잡고 ‘섹시 뱀파이어 나이트’라는 깜짝 퍼포먼스를 벌였다.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요즘 낸시 랭의 섹시하고 애교스러운 퍼포먼스가 지리멸렬한 한국 미술계에 신선한 각성제가 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아무리 깎아내려도 낸시는 자신이 좋아하는 섹시한 옷을 입고 타인에게 보여줌으로써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것을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스물일곱살 여자애다. 하지만 그 원초적 욕구를 전시장 안으로 가져갔다는 점에선 결코 만만치가 않다. 일단 대중문화 영역의 ‘천박한 아름다움'에 머물러 있던 ‘육체적 관능미'를 전시장 안으로 가져갔다는 것만으로 이미 절반의 성공이다. 거기다 그녀의 섹시한 퍼포먼스가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남몰래 충족하는 관음증에만 익숙한 점잖고 교양 있는 부류들을 당황하게 하고, 위선과 가식을 싫어하던 부류들에겐 즐거움을 줬다면 아티스트로 대단히 훌륭한 거다. 또한 삶과 예술과 일치한다는 점에는 그 존재 자체가 팝 아트적인 예술 작품인 것이다.
낸시는 남자를 유혹하는 기술로서가 아니라 아티스트로서 인생을 살아가는 도구로 애교를 활용했고 미술적인 재능은 그 여분의 것이었다. “외동딸이었거든요. 게다가 필리핀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그때 이미 개방적인 아이가 됐고 그 이후 청담동의 나이트 라이프에 익숙해지면서 아주 사교적인 아이가 됐죠. 그런데 내가 내숭 잘 떨고 밀고 당기는 잔머리 잘 쓰는 내 또래 여자애들을 체질상 흉내조차 낼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게다가 걔들의 목표는 결혼이었지만 나는 훌륭한 아티스트였거든요. 그래서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계산하지 말고 그냥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보여주자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어요. 내 또래는 재수없다 했겠지만 언니 오빠들이 그런 나를 사심없는 좋아하니까 점점 더 어린 아이가 된 것 같기도 하구요.”
물론 게 중에는 낸시 랭의 에너지를 아주 재수없어 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나한테 호감 있는 사람들만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구요. 시간은 부족하고 인생은 흘러가고 있잖아요. 자기한테 피해를 안 줬는데도 나를 욕하는 건 그들이 다 못나서 그런 거예요. 게다가 내 앞에서 욕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뒤에서 욕하는 사람들은 다 ‘Fuck You'고요.”
사실 자기집 안방과 청담동의 밤문화에서 익힌 애교술이 낸시의 인생 철학이 될 수 있었던 건 ‘추락의 쓴맛’을 알고 난 후부터였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순간까지 가봤어요. 아빠는 죽고, 엄마는 암에 걸리고, 집안은 망하고, 친척들은 모른 척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티스트로 성공하고 싶고…. 거기까지 가니까 세상이 너무 투명하게 보이더라요. 그래 더 이상 숨길 것도 없다, 싶었죠. 게다가 그때 마침 하느님이라는 가장 든든한 ‘빽’을 갖게 됐는데, 내 모든 애교와 재능은 하느님에게 바치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자 언제 어디서나 당당할 수 있었던 거예요.”
낸시의 목표는 애교로 세상을 날로 먹는 거다. 낸시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미소로 말했다. “사람들한테 영향을 미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부와 명성을 다 얻고 싶어요.” 세상이 그리 만만할 리 없지만, 낸시의 순진무구한 ‘애교’ 앞에서는 모든 게 속수무책처럼 보였다.
까미유 클로델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개똥’을 포장해서 보냈다. 나는 낸시를 보며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개똥을 보내기 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애교를 선물하는 게 낫다는 걸 배웠다. 낸시는 고맙게도 그 디테일한 기술까지 알려줬다.
“언니, 애교의 핵심은 선방이예요. 난 니가 좋아, 하고 먼저 표현하는 거라구요. 물론 항상 진심이어야 하고 아이처럼 보다 천진해져야 돼요. 그리고 나서 강아지처럼 먼저 꼬리를 치는 거예요. 그리고 어떨 땐 내가 아주 예쁜 고양이라고 생각하세요. 크림색의 에메랄드 빛이 도는 아주 탐스러운 고양이…. 그리고 소리 내세요. 야~옹~.”
BAZAAR 2004년 7월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