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rles Freger,Water-polo
No.1,2000,C-Print, mounted on
aluminum,59x45cm
 Claus
Goedicke,XI-10,2003,C-print,
diasec,180x144cm
 Jane & Louise Wilson,Safe
Light, Divided Ballroom,2003,C-type print on aluminum in
perspex,180x180x2cm
 Sharon Core,Candy Counter
1969,2005,C-print,120.7x91.8cm
 Gotz Diergarten,o.T. Gouville
65,2004,c-print
diasec,50x50cm
전시장소:갤러리 H (02-3449-5295)
전시기간:2006-03-21 ~ 2006-04-03
전시서문
The World’s 10 most
Remarkable Contemporary Photographers 세계가 주목하는 10인의 현대사진작가
사진을 회화의
연장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처음 사진이 발명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곧 회화가 사라질 것이라 예견했었다. 그러나 회화와 사진은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며 평행선을 걷기 시작했고 서로를 통해서 발전해왔다. 사진은 이렇게 회화를 침범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진만이 갖고 있는
개성과 성격을 살리려 주력해왔으며 최근에는 사진과 회화는 서로의 경계선을 넘어 두 가지가 접목된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갤러리 H가 소개하는
10명의 사진 작가들은 현재 최고의 주가를 누리고 있으며 독특한 사진기법과 주제로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작가들이다. 사무실이나 교실, 그
속의 사물들을 작은 미니어처로 만들어 그 광경을 찍는 사진가 토마스 디맨드(Thomas Demand)와 자연과 건축물(문명의 상징)이 공존하는
풍경을 분석적으로 사진에 담은 한스 크리스티안 쉰크(Hans-Christian Schink)등의 독일 작가들은 보는 것을 그대로 전달해 주는
의미에서의 사진보다는 공간과 사물, 인물, 풍경, 페인팅과 같은 다양한 주제들로 그 안에서의 서로가 심리적이고 철학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하였다.
토마스 디맨드(Thomas Demand), 괴츠 디어가튼(Götz Diergarten), 그리고
클라우스 괴디케(Claus Goedicke)는 서독의 대표적인 미술대학인 뒤셀도르프 미술 아카데미(Düsseldorf Kunst
Akademie))에서 사진을 수학한 전형적인 독일 작가들로서 독일 사진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온 베허 부부(Bernd and Hilla
Becher)의 영향을 받은 세대이기도 하다. 라이프치히에서 교육 받은 한스 크리스티안 쉰크까지 합쳐 이들 4명의 작가들의 작품 속에는 인물이
배제되고 부동적인 사물들이 주를 이루어 독일 특유의 건조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에 반해, 프랑스의 젊은 작가 찰스 프레거(Charles
Freger)는 워터폴로 선수들과 같이 어떠한 공통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시리즈의 형태로 보여준다. 그는 단체집단 속의 동일성과 그
속에서 절대 무시될 수 없는 개개인의 특징을 오히려 단순한 배경과 무표정의 사람들에게서 포착한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그리스 출신의 작가 소피아
페트라이즈(Sophia Petrides)와 런던의 대표적인 미술대학인 골드스미스(Goldsmiths College)에서 미술을 공부한 쌍둥이
자매 제인 윌슨과 루이스 윌슨(Jane & Louise Wilson)은 공간의 건축적, 심리적 측면을 작품에 담으려 노력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루이스 자매가 건물과 주위환경의 관계에 더 주위를 기울인 반면 페트라이즈는 인간의 심리와 조형미에 초점을 맞춘다.
그
외에도 버려진 공간이나, 인적 없는 방, 신체 일부, 여러 사물 등을 모호한 윤곽의 흑백 사진으로 담는 벨기에 출신의 사진작가 더크
브레크만(Dirk Braeckman)과 초콜렛 시럽과 같은 특이한 재료를 사용한 그림을 사진 촬영하여 재생을 반복하는 작가 빅 뮤니즈(Vik
Muniz), 그리고 웨인 티보(Wayne Thiebaud)의 작품을 그대로 모방한 샤론 코어(Sharon Core)가 소개된다. 미국 작가인
샤론 코어는 웨인 티보 작품 속의 빵과 케이크 등을 그대로 구워서 그의 작품과 완벽히 같은 배경 속에 집어넣고 그 광경을 사진에 찍었다. 이런
식으로 사진의 현실감과 페인팅의 환상 또는 이상을 접목시키며 그녀는 자신이 티보의 작품을 접했을 때 느꼈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리고 미래 가능성이 큰 10명의 작가들을 한자리에 모은 이번 전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사진을 대하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 줄 것이다. 사진을 ‘완벽한 회화’가 아닌 하나의 독립된 예술 장르, 또는 표현 방식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사진이 발달해온 역사와 사진만의 매력을 더 깊게 그리고 자유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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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ster
이승애 드로잉 설치展
2006_0322 ▶ 2006_0409

이승애_애적슨3호 "기억세포를 쫓다"_종이에 연필과 파스텔_135×450cm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두아트 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0322_수요일_05:00pm
두아트 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5번지
Tel. 02_738_2522
www.doart.co.kr
이승애는 몬스터 캐릭터들을 만들어낸다. 공상 과학영화 속에 등장하는 에일리언 같기도 하
고 신화 속에나 나올 법한 고대 동물 같기도 한 몬스터들은 이승애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순
수 창작 캐릭터들이다. 각각의 몬스터는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탄생부터 에
너지원, 역할과 운명 등 캐릭터에 얽힌 스토리를 갖고 있다. 탄생비화부터 절대적 운명에 이
르기까지의 구체적인 스토리는 각각의 몬스터에게 생명을 부여하며 그들이 인간세상에서,
또는 저 먼 우주에서 실재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승애는 커다란 종이에 연필
을 주로 하여 색연필과 파스텔로 부분적인 색을 입혀 섬세한 드로잉을 해나가는데, 몬스터
캐릭터들 각각에 매치되는 스토리 보드들을 나란히 배치해 놓음으로써 관람자들은 마치 이
야기책을 읽듯 작품을 글과 함께 감상하게 된다. ● 두아트 갤러리에서 선보일 몬스터는 ‘애
적슨(Ae Juck Son, 哀 敵Son)’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한가지 종류의 몬스터이다. 애적
슨이라는 이름은 ‘슬플 애(哀)’와 ‘대적할 적(敵)’이 합쳐져 ‘인간 몸 안의 세포 속에서 슬픔영
역의 신경을 자극하고 조절한다’는 애적슨의 임무에 맞추어 만들어진 것인데, 이승애는 잭슨
, 타이슨처럼 미국식 이름에 종종 사용되는 ‘-son’을 뒤에 붙임으로써 좀 더 구체적이고 이
름다운 이름을 만들어주려 했다고 한다. 애적슨은 인간의 몸 속 세포 안 고통지역에서 슬픔
의 영역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는데, 인간이 느끼는 슬픔의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듯 그 슬픔
의 종류에 따라 애적슨은 각기 다른 모습을 지닌다. 이번 전시에는 9가지 다른 모습을 가진
애적슨들이 등장하며, 구체적으로는 8가지의 애적슨들과 전체 애적슨을 다스리는 교주역할
을 하는 교주 애적슨을 포함하여 총 9가지이다. 이는 곧 9가지 슬픔의 애적슨이라 풀이될 수
있는데, 인간이 느끼는 슬픔의 강도가 그 원인에 따라 높고 낮음이 있듯 애적슨의 민감지수
도 높낮이가 있다.

이승애_애적슨8호 "신경카락에 에너지 집중시키다"_종이에 연필과 파스텔_80×120cm_2006
한줄기의 바람이 불어온다. / 슬픔지역의 신경카락이 날려 내 얼굴을 간지럽힌다. / 짙은 향
기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 이제 그만 이 세포에서의 유치한 장난을 끝내고 싶다. / 하지만,
이 무모한 나의 에너지는 끝이 나질 않는다. / 감정선들에게 아무리 목소리 높여 애원해봐도
아무 소용이 없다. / 그럴 법도 하다. / 나는 이미 고통지역, 더 정확히 말하면 통증선에 버려
진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 오늘따라 소리도 낼 수 없다. / 이 세포안의 공기가 점점 찐득찐
득 해지고, 난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는 데도 온몸의 힘을 모아야 한다. / 가까스로 고개를 숙
이고 세포의 고통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 이 생명체의 기억에서 조차 나의 존재가 감
정이 아닌 통증의 일종이라는 걸 알아채버린다면,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외로워 질 것 같다.
-애적슨 1호 중에서...

이승애_애적슨3호&7호_종이에 연필과 파스텔_80×160cm_2006
이번 전시는 패널작업들을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설치의 형태를 띄는 드로잉 인스톨레이션
전시가 될 것이다. 이승애의 모든 드로잉 작업들은 스토리 보드와 함께 나란히 놓임으로써
관람자들은 애적슨의 기본적인 운명과 임무 뿐 아니라 각각의 애적슨들이 지니는 사연을 세
세히 읽어나가게 되며, 결국 이 전시는 하나의 애적슨 그림책을 이루게 된다. 슬픔을 불러 일
으켜 통증을 유발하게 할 뿐 인간이 느끼는 감정 자체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기에 항상 감정
지역을 선망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외로워 하는 애적슨은 이승애가 창조해 낸 픽션이지만
섬세한 필선으로 그려진 드로잉들과 고독함이 깃든 시적인 글들은 애적슨이 마치 실제 우리
몸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사실감있게 다가온다. 이번 전시는 무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그림
솜씨와 글 솜씨까지 갖춘 신진작가 이승애가 만들어낸 몬스터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두아트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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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y resemblance
김일용 조각展
2006_0323 ▶ 2006_0402

김일용_body resemblance_석고_27×40×15cm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31014c | 김일용 조각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0323_목요일_06:00pm
갤러리 스케이프
서울 마포구 서교동 400-10 MJ 빌딩 3층
Tel. 02_3143_4675
www.skape.co.kr
추위 속에서도 봄의 기색과 향기가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봄기운이 느껴지는 이때, 저희 공
간에서 김 일 용 작가의 전시를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인체의 형태가 만드는 새로운 조형적
인 형태와 또 다른 존재에 대한 의미,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를 느끼시기 바라며 보다 큰 감동
과 세계를 엿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전시에 많은 에너지를 보여주신 김 일 용 작가께 감사를
전하며 이번 전시를 통해 여러분과의 또 하나의 관계의 시작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손경애

김일용_body resemblance_합성수지_100×50×12cm_2006

김일용_body resemblance_합성수지_95×50×20cm_2006
Against ● “검투사들의 종족은 죽지 않았습니다. 모든 예술
가가 바로 검투사들입니다. 예술가는 자기의 고통으로 대중을 즐겁게 해줍니다.(G. 플로베
르, 에르네스트 페도에게 보낸 편지, 1859년 10월)”. 작가 김일용은 여러해 동안 표
현하거나 노출한 것들과 모호하게 비밀에 붙여 놓은 것들이 어울린 자기 특유의 분위기를 연
출하였다. 독특한 신체예찬과 에로티시즘을 공공연히 늘어놓았고, 일견 그의 세계는 넘쳐흘
러 주체 못하는 생명의 활력과 사랑의 힘을 유희한 것으로 보였다. 현대판 포틀래치로 느껴
지는 무차별적 신체의 사랑과 형상의 몰입이 그의 작품들의 중심을 이루었다. 90년대 중반
이후 작가가 집중하고 있는 신체의 문제, 인간의 문제, 종국에는 존재 혹은 실존의 문제를 일
련의 캐스팅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이 작가의 생활의 전부를 이루었다. 근래에는 신체의 부분
부분을 쪼개고 분할하여 놓거나 그 분할된 신체들을 다시 재조립해 놓기도 하여, 마치 조각
으로 빚어내는 입체파의 오래된 미학을 보는 듯했다. 사실 김일용은 과거의 고전들과 미의
전통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돌아보면 작가의 작업은 대단히 보수적인 미학, 모더니스
트의 조각세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의
작품들은 마치 모더니즘의 퇴조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두로 나타나는 새로운 미의식과 세계
인식을 형상하는 예로 소개되기 하였다. 이 모순된 이율배반의 미적 모듈이 공존하고 투쟁하
고 하는 것이 김일용의 조각세계를 이룬다. 이 신체 이미지들의 저항과 충돌과 불편한 조립
또는 병치가 이번 전시에서도 특징적이다. 한 작가의 마음속에서 투쟁하는 모더니스트와 포
스트모더니스트의 동거가 느껴진다.

김일용_body resemblance_합성수지_90×60×10cm_2006

김일용_body resemblance_합성수지_115×45×7cm_2006
불가능한 ● 한 작가의 마음 깊은 곳에는 분명 여러 가지 가치와 취미가 격돌하며
화합하는 영원한 운동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창작과정 중에 특정 방향으로 표현의 극단을 치
닫거나 광폭한 열정을 풀어 놓을 때 우리는 평범한 심미의 경계를 벗어난 날카로운 감정과
이지理智의 불가능한 만남에 도달하곤 한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사랑(에로스)의 신화에서
부터 배워온 생生의 신비이다. 운명의 불가해이다. 우리에게 신화로 남아있는 수많은 예술의
기적들이 사실 한 작가의 일생을 이루는 무수한 섬세한 경로와 얽힘의 총체적인 모습이 아니
라 의도적이건 혹은 우연에 의한 것이건 전체가 아니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공공연
한 비밀이다. 요컨데 우리는 결코 한 작가의 모습 전체를 볼 수 없다는 얘기다. 빛과 이미지
의 명암이 한 작가의 정신과 표현의 과정, 작품세계에도 공존한다. 우리는 한번에 하나씩 볼
수 있을 뿐이다. 운명적으로 예술계는 또는 예술심리의 이해는 불완전하다. 어떤 완전주의자
도 어떤 비범한 이도 완전한 이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 불가능한 세계와 대결하면 우리
모두는 패배자일 뿐이다. 그러나 이 패배자의 길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김일용_body resemblance_합성수지_75×52×17cm_2006

김일용_body resemblance_합성수지_78×55×12cm_2006

김일용_body resemblance_합성수지_165×70×12cm_2006

김일용_body resemblance_합성수지_170×60×15cm_2006
다시 신체로 ● 인간은 자신의 형상(Form)대로 만들어낸 사물들과 의미들을 이해
하고 세계를 확장한다. 그러나 결코 인간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현대는 이러한 인간인
식의 한계를 신체를 통해 이해한다. 신체는 세계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수많은 미술가들이
인간과 세계의 이해를 완성하기 전에도 이미 신체를 통해 알 수 없는 황홀경과 신비를 체험
하고 자의식을 쇠처럼 단단히 담금질 했다. 신체는 최초의 언어이고 최초의 세계이다. 조각
가들의 무의식에 침전해 있는 사랑과 질투의 힘과 저항이 바로 이 최초의 세계, 신체를 향하
고 신체를 삼키고 토해낸다. 이 영원반복의 법칙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매 순간 눈부신 광
채를 뿜어낸다. 신체는 이런 실재(Reality)의 빛을 품고 있는 것이다.

김일용_body resemblance_석고_40×70×27cm_2006

김일용_body resemblance_석고_40×70×27cm_2006

김일용_body resemblance_합성수지_20×100×50cm_2006
메타포중의 메타포 ● 한편 신체는 모든 메타포들중의 메타포이기도하다. 이 신체
의 메타포를 중심으로 무수한 메타포들의 열림과 닫힘이 조형론과 심미론으로 옷을 갈아 입
고 세계의 한 면을 잠시 엿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거기에는 정확한 이론의 감각뿐
아니라 타고난 혹은 과거로부터 배운 신비한 감각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 탁월한 도구들
도 결코 완결된 의미의 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본래 메타포인 것이다. 타고난
감각과 정교한 이론의 더듬이도 결국에는 완전성의 주위에서 진동하는 일정한 운동이거나
그림자이고 그것이 곳 열려있는 개념으로서의 메타포이고, 이렇게 열려진 것들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는 기구한 운명의 세계가 아닐까.

김일용_body resemblance_석고_가변설치_1995~2006
틈, 카니발 혹은 포틀래치 ● “종종 시인은 오직 자신의 파멸
을 위해서만 단어들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며, 오물이 삶에서 배척받듯이 사회로부터 철저히
배척받는 운명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저속하고 피상적인 욕구들에 만족하는 삶을 사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조르쥬 바타이유, 저주의 몫) 김일용의 신체들이 날을 세
우고 결투하는 곳이 바로 이 세계의 한 부분에서 벌어지는 사태이다.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
하고 끝없이 덮쳐 오는 세상살이의 파도를 거스르고 거슬러 간다. 어떻게 가르고 녹이고 붙
이고 그것은 그저 이 과정을 완성해가는 조각가의 노동일뿐이다. 그러나 그 노동은 분명 신
체의 메타포로 다가갈 수 있는 세계의 문을 잠시 열어볼 수 있다. 이 예술노동은 회색의 마른
먼지들로 이루어진 현실의 요구도 단호히 거부한다. 그 요구를 둘러싼 권력의 향연을 걷어차
버린다. 세계를 엮어내기를 반복하는 김일용의 캐스팅이미지, 그 신체들의 그림자들이 뿜어
내는 역설적인 빛의 축제를 벌인다. 점점 세상이 좁아지고 인간이 산술算術이 되고 정신은
투명하게 관통되어 설계되고 조직되는 미디어의 천국에서 일종의 우울의 카니발을 열고 빈
틈을 만드는 것이 예술가들의 몫이 된 듯하다. 참담한 그림자놀이의 광대가 왕관을 쓰는 것
이다. 삶이라는 이상한 죽음의 덧을 놓고 또 죽음의 이상한 빛을 향하는 기이한 의지과 욕망
이 이 틈을 점점 넓혀나간다. 회색빛 삶의 회전을 팽개치고 광휘의 죽음의 에로틱을 향하는
운동이 포틀래치를 정치경제학에서 미학으로 옮겨놓는다. 김일용의 신체들이 거대한 포틀래
치를 열어놓는 것도 이 일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 김노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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