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 화랑가의 여름은 사진의 계절이다. 세계 사진 유행을 본뜬 기획전, 중견들의 개인전 등 굵직한 사진전시만 7~8개나 된다. 서구 사진시장의 초강세를 업고 2~3년 전부터 시장가능성을 두드려본 탐색전이 정점에 이른 것일까. 사실 현대미술 대안으로 사진이 주목받는다는 판박힌 진단은 시장층 얇고 전문기획자가 거의 없는 한국에선 공허한 명분에 불과하다. 사진전이 집중된 7월이 전시 비수기이자 대관비가 가장 싼 시점이란 사실은 미술 기득권층의 거부감 혹은 무관심을 반증한다. 해외에서 폭등하는 사진장르 몸값을 국내도 틔워보자는 유행 전시보다 자기만의 시선 간직한젊은 작가, 색다른 앵글로 지난 시대를 붙잡았던 미발굴 작가들의 작업이 훨씬 살갑다.
젊은작가 치열함 돋보여
사진잔치를 즐기는 첫번째 열쇠는 소걸음하듯 자기 영상을 다듬는 젊은 작가들의 작업과 만나는 일이다. 20일까지 인사아트센터(02-736-1020)에서 열리고 있는 이강우 김윤호씨의 제1회 다음작가상 수상 기념 초대전은 획일적 키치가 판치는 우리 일상의 시각문화를 신도시 외곽풍경과 인공꽃, 마네킹 등의 기물을 통해 주무르고 있다. 팍팍한 도시일상을 담았던 이씨가 섬뜩한 헝겊꽃이나 중성적인 마네킹에 영문이 결합된 사물사진으로 변신을 시도한 것이나, 신도시, 피서지의 획일적인 상가풍경이나 광고전단지 등을 원근감 없는 권태의 풍경으로 묘사한 김윤호씨의 작업은 사이비 도시풍경의 물신성, 허구성을 까발린다.
김명철등 숨은 대가 ‘햇볕’
두번째는 해방 뒤 우리 사진사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22일까지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과 역사적 기억’전은 연령대를 초월한 25명의 작가가 내놓은 170여 점의 작품을 해방 뒤 집단, 개인의 역사적 기억 차원에서 정리한다. 무엇보다 사진단체와 거리를 두었던 김명철, 박영무 등 숨은 지역대가들의 발굴이 눈에 확 띈다. 50~60년대 인천에서 활동한 김명철의 바랜 사진들은 눈높이보다 훨씬 밑으로 초점을 맞춰 출근길 직장인들의 하반신을 찍거나 두가지 사진틀에 자전거 출근자의 모습을 색다르게 포착한 영화적 구도가 특이하다. 60년대 얼음 싣고 서대문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는 리어카꾼의 구부정한 자태를 포착한 박영무의 작업은 우리 등에 짐지워진 근대화의 뒤안길을 압축적으로 포착한, 이번 전시의 압권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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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우씨의 모조꽃 사진(왼쪽) 강릉관노 가면극의 등장인물을 소재로 한 구본창씨의 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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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열쇠는 자기변화의 전범이 되는 국내외 중견작가의 작업들이다. 31일까지 서울 통인동 대림미술관(02-720-0667)에서 열리는 독일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특별전은 사진의 인물 등을 베껴 그린 뒤 다시 사진으로 찍어 재현개념의 의미를 캐묻는 논리게임적인 사진들을 보여준다. 한미갤러리(02-418-1315)의 구본창 사진전(8월2일까지)은 풍속·연희적 의미가 거세된 전통탈의 초현실적 풍경을 통해 중견작가의 심상치않은 의식변신이 엿보인다.
몸값 오른 서구흐름 진단
마지막 초점은 으레 해외유행을 덧씌우기 마련인 화랑 기획전. 가나아트센터(02-720-1020)의 ‘3회 사진·영상페스티벌’(8월31일까지)은 올해 데지레 돌롱, 피터 가필드 등 12개국의 소장 작가 20여 명이 사회적, 형식적 한계를 뛰어넘는 파격적 이미지 작업들을, 박영덕 화랑의 ‘공공정보’전(8월12일까지·02-544-8481~2)은 서구흐름에 민감한 작가들 중심으로 8명이 서울의 야경이나 재개발 지구, 환락공간 등 다양한 이면을 연출 혹은 즉물적 사진으로 소개하고 있다. 유난히 화려한 올 여름 사진전잔치에서 무엇이 사진동네의 몫으로 남을까. 시장일까, 담론일까, 아니면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인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