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노을이 아름답다. 거기엔 신비로운 구름들과 새들과, 비행기들이 지나간다.
동쪽으로 가는 비행기들,이륙하는 저 시니피에의 폭팔이 내 폐부까지
검게 그을은 적이 있었다.
그때, 교통은 길 위의 무엇이 아니라, 거기를 향한 모든 거의 무엇이었다.
모짜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219번 Rondeau,
그 다른 누구도 아닌 Arthur Grumiaux의 바이올린
저 스무해전쯤의 어머니가 있던 충남 부여의 적막한 법단.
항상 나를 떠났던 어머니 곁에서, 하루하루의 다시 떠남을 두려워하며
미치도록 반복하여 듣던 그 소나타.
노을이 아름다운 까닭은 모짜르트 때문만은 아니다.
이제는 더이상 기의 안으로 비행기들을 폭파시키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열망하는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노을이 더 이상 죽음에 대한 비유가 아니기 때문이 아니다.
눈동자들아, 이제는 새들을 따라가지 말자. 움직임들아, 나약한 자멸의 거울들아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밤 눈, 길 발자국조차 때로 보이지 않는 두려움들아
오늘은 라인강으로 나가, 내 고향 그 강처럼 여전히, 말없이 흐르는 강 곁에 서서
저 멀리 나무들과 구름들을 바라보며,
때로는 배들도 올 것이며, 때로는 노랫소리가 들리겠지만,
그 모든 것을 보거나, 그 모든 것을 보지 않는 채
나는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새길 것이다.
만들것이 아니라, 흘러내릴 것이다.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것이다.
보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보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
사진이 아니라, 차라리 삶이 될 것이며, 삶이 아니라, 차라리 우주가 될 것이다.
저 바이올린이 가고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이며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대체 추상과 우주가 무엇일까.
사랑에 빠질 때마다, 그 사랑이 이전과는 다른 것이라 늘상 믿어왔지만
여전히 그렇다. 여전히 다른 것이 있으니,
그것은 키스보다도, 약속보다도, 고백보다도 먼저 이뤄져버린,
사랑에 대한 믿음이다.
그것은 전시보다도, 현상보다도, 촬영보다도 먼저 이뤄져버린,
사진에 대한 믿음이다.
*기형도의 빈 집
2003년 6월23일 독일 쾰른에서, Psyvenus
++++++++++++++++++++++++++++++++++++++++++++++++++++++++++++++++++++++++++++++++++++++++++++++
여백이 많은 글
지독하게 더웠고 오늘은 바람이 분다
마지막 사진 셀렉트를 마쳤고, 전시공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 새들이 가끔씩 지저귀고 구름이 때론 흐리다. 세 장의 사진을 전시하게 되며 30일부터 시작되는 이 전시가, 그러니까 내 최초의 전시다. 이 최초의 전시에서 동원되는 카메라가 어떤 방황에도 불구하고,라이카도 아닌 대형카메라도 아닌 내 최초의 카메라, 니콘 F3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사진속에서는 집시들이 보이고, 강이 흐르고 집을 짓고 있고
어떤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있고 어떤 독일 늙은이는 나를 바라보고 있고
깃발들이, 유럽의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고, 구름이 그 특유의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하늘에 떠 있고 저 강으론 배가 들어오고 있으며 오,
새 한마리가 독일전화국앞에 조용히, 무서울정도로 지독한 적요로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다 .
그 사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 사진들이 어떤 미학을 견지하고, 담보하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내 삶이 그렇게 말하여지고 있다는 것 뿐이다.
그렇게 말하여짐을 통해 내 삶이, 막연하게 나마 표상화 되어진다는 것 뿐이다.
몇 시간후에는 파리로 떠난다.
밤 버스를 타고 새벽에 거기에 도착하게 된다.
우리는
별들인가가, 가로등인가가, 그 창 밖을 끊임없이 무엇인가, 가치있는 장으로
꾸밀 것이고
나는, 불가능한 시도의 환상적 연상보다도,
이 믿을 수 없이 편안한 행복의 조건들을 영원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시도의 환상적 연상을 통해,
그 밤을 파리로 잇게 될 것이다.
파리, 누군가들은 그 도시가 아름답다고 하지만
그들의 말로, 그 아름다움을 파괴되어 버렸다.
축복을 바란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축복을 바란다.
나는 사랑만을 이룬 것이 아니다.
2003.7.18
++++++++++++++++++++++++++++++++++++++++++++++++++++++++++++++++++++++++++++++++++++++++++++++
경마장 가는 길
며칠동안 베를린에 머물렀으며 그토록이나 경멸하는 도시를 이토록이나 다시 찾게 되는 이유를
하늘을 날고 있을 때, 스스로에게 물었다. 파국적인 날들이란, 끝내 파국의 계보로부터 화해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일까.
거기에서 잘못 끼워진 레고평판을 어떤 정합성아래 규명하기 위하여 나는 그 곳으로 가는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답을 잃어버렸다. 이념들을 포기하자, 거기에서는 하늘의 이루말할 수 없음이
반영되었다. 이데올로기가 반성되자, 거기에서는 각 영토들이 은폐해 온 바람들이 거칠게 불어들기 시작했다. 사진들을 몇 장 찍었고, 거기에서는 내공도, 집중도, 거짓도 없이 오로지 찍혀내어졌을 뿐이었다. 나는 흔히, 저들이 말하는 사진.의 모양에 대하여 심각하게 지루함을 느낀다.
전시는 그야말로 배움의 선물셋트였다. 특별한 바램이 없었으므로, 그 무반응들이 가히 유감으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내가 내어놓는 사진들이 세계를 구성하는 풍경의 일부가 된다는 이 당연하고도 심오한 이치는 아마도 오랫동안 나를 설레이게 하는 큰 중심화두가 될 것이다. 세 장이 사진들이 보여졌었으며 그 사진을 둘러싼 모든 주변은 거의 모든 것이 실수투성이였다. 하지만 나는 그 실수들이 실패가 되는 과정이 재미있었으며 그것을 실패로 영합하는 모든 기류에 저항하고픈 의지를 느꼈다.
참으로 많은 친구들이 변질되고 있으며 옂혀지는 페이지로 자신의 이름들을 정리해가기 시작한다.
나는 묻는다, 참으로 젊은 날이란 그럴듯한 변장외투를 철 마다 갈아입는 한심한 축제기에 불과한 것일까, 글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변질이란, 죽음을 의미한다고 언제부터인가 믿게 되었다. 걸친 외투를 나는 증오하지 않는다.
다시 끊임없이 대낮의 장식장들을 헤메는 그 타고난 가벼움들을 경멸할 뿐이다.
굿 바이. 언젠가부터 점점 인사하는 여유를 잃기 시작했다.
부질없기 때문이다.
요즘엔 구름이 많다. 그리고 가끔씩 비가 온다.
거리엔 낙엽들이 벌써 수북하지만, 기록한다. 그것은 가을의 표적이 아니다.
비정상적이었던 올 독일의 여름더위가 태워, 떨어뜨려 놓은 그 비정상적인 낙엽들의 거리를 걸으며
나는, 내가 잃은 아니 잃었다고 생각하는 레고의 기초평판을 찾는 일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물었다.
당의 고위간부들이 줄줄이 거주했던 karl -max Alle를 지나 구 동 베를린,
네오나치의 거점으로 이름난 marzahn에 이르렀을 때
나는 진실로 나의 나약함을, 괴로워하기도 했다.
돌아온 쾰른은 참으로 가증스러우리만치 평안했다.
하지만 그 평안이, 진실로 이제부터의 과제임을 나는 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는 들이신 호흡을 내뱉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는
조금 바보같이, 떨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