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zab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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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된 문장중 가운데 부분은.....김훈이 한겨례에서 나오게 된 개략적인 정황을 적어놓은 글입니다. "늙음은 낡음이다." 란 말을 남기고 사표를 던졌다고 하는데, 몇 가지의 단서만으로 추론하긴 어렵습니다만.....현재에대한 아주 작은 좌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능하면 읽어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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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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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랭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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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여기서 나도 모르게 간과해버리는 일 중의 하나는 자벨님 개인 게시판이라는 것. 왠 난 자꾸 이 사실을 잊어버리는 거죠? 참 미칠노릇입니다.
개인 기록으로서의 의미라면 무슨 토를 달겠습니까? 하도 오래전 기사를 끌어다 놨기에 '모두 보자'의 의민줄 알고 '난 그가 싫어'라고 아이 같은 투정을 한거지요. 조르바와 같은 의미입니다. 일전에 어떤 야무진 여자는 연애 하고픈 상대로 박노자와 김훈을 나란히 놓았던데 참 재미있었습니다.. 또 일전에 금호에서 우리시대 문인들 초상이 전시 될적에도 난 김훈 앞에서는 고개를 외로 꼬고 다녔드랬습니다. 지극히 사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이라 자세히 풀진 못하지만 아무리 명문가여도 결코 좋아지지가 않는 사람. 그런거예요. 링크 시켜 놓은 글 읽어보질 못해서 미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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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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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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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이 한겨레를 나왔더랬군요. 결국, 그리 되었군요. 이회창을 찍었다니
조금 놀랍습니다. 지금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제 애마인 낡은 사이클에 저도 풍륜이란 이름을 붙이고 한창 타고 다닐 적이 있었죠. 또오, 원고
청탁 때문에 전화를 넣었을 때 가슴 한 쪽이 몰래몰래 두근거렸다는.
어린아이같은 내면은 글을 읽지 않아도 능히 짐작가는 부분이었습니다.
깊은 통찰력과 제멋대로인 어린애 하나, 그 불균형이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 아닐까.. 균형감각이 있는 사람들은 예술을 할 게 아니라 도를 닦아야 할 듯. 홍세화와 김훈을 나란히 놓고 보는 건 좀 부당하다 싶네요.
홍세화는 문장보다는 태도에서 감명받게 되더군요. 어느 대학에서 강연
을 마치고 난 다음 자기가 썼던 칠판을 깨끗이 지우고 갔더라는 일화가
기억이 납니다. 음.. 연애까지는 안 바라고 노무라 만사이랑 함 자봤음.
-_-;;; (그루피들 심정이 십분 이해가 된다니깐) 아님, 크리스찬 베일이라도.. 쿨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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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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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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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그러고 보니 남자 그루피가 있었단 말은...들어본 적이 없군요.
제가 베이비 복스 공식홈페이지 회원이기도 합니다만.
그리고 참....저도 나스타샤 킨스키랑 함 그러고 싶은 생각이 아직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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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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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베일치곤...살벌하게 나왔군요...^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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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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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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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옷! 얼핏 보곤 요즘 한창 광고 때리고 있는 '라스트 사무라이'의
톰 크루즈인 줄 알았어염. 서얼마 저런 꼬라지로 4대 배트맨을 하겠다
는 건 아니겠죠? 제가 좋아하는 베일은 아메리칸 사이코나 이퀼리
브리엄에 나오는 얍샵해 뵈는 ^^; 이미지 인데.. 여튼, 캄사~
흠.. 나스타샤라.. 클래시컬하시군요. ^^
저두 뽀오~ 너스..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그루피도 있다는.
지미 헨드릭스가 가장 대물이었댑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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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의 극단적 그루피, 신시아 플래스터 캐스터>
1960년대 미국의 유명 뮤지션 중에서 가장 페니스가 크고 긴 사람은? 지미 헨드릭스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권위 있는 기구에서 뮤지션들의 바지를 내리고 줄자를 갖다 댔을 리는 없으니 공식 통계는 없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특별하고 유명한 그루피(groupie)인 신시아 플래스터 캐스터(Cynthia Plaster Caster)가 직접 측정한 20여명의 아티스트 중에서는 지미 헨드릭스의 남근이 단연 최대 규모였던 것은 분명하다.
신시아 플래스터 캐스터(본명 신시아 알브리튼)는 치과용 반죽을 직접 발라 록 스타들의 페니스 상을 제작한 것으로 유명해져서 1960년대 록 문화와 그루피 현상과 성 혁명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홈페이지의 회고에 따르면 그녀는 음탕한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와 지독하게 보수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난 수줍고 굼뜬 소녀였다. 고등학교 때 치어리더 오디션에 참가했다가 비웃음을 샀던 참담한 기억을 갖고 있기도 했다. 1966년 19세의 그녀가 미술 대학에 다니던 시절, 교수는 무엇인가 딱딱한 것의 상을 떠오라고 숙제를 내면서 그녀의 운명은 달라진다. 기발한 착상을 하게 된 그녀는 공연을 위해 시카고를 방문한 ‘폴 리비어 앤 더 레이더스’를 쫓아가 페니스 상을 떠볼 수 없겠냐고 문의했지만 실패했다. 대신 리드 싱어인 마크 린제이와 ‘첫섹스’를 하게 된다. 신시아는 그 순간 ‘시카고의 플래스터 캐스터’가 탄생했다고 회고한다.
신시아가 홈페이지와 살롱(Salon)과의 인터뷰에서 설명하는 것에 따르면 지미 헨드릭스의 페니스 헌팅에 성공한 날의 정황은 이랬다.
1968년 2월 시카고의 한 호텔 앞에 모여 있던 수많은 그루피들을 밀쳐내고 신시아는 친구 한 명과 함께 지미 헨드릭스의 방으로 들어섰다. 스타의 페니스 상을 뜨고 싶은데 혹시 괜찮겠냐는 질문에 지미 헨드릭스는 "Yeah!"라고 외치면서 흔쾌히 포즈를 취했다. 신시아의 친구는 입으로 록 스타의 페니스가 발기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자극했으며 신시아는 알지네이트라는 치과용 반죽을 바르기 시작했다. 문제는 신시아가 윤활제를 충분히 바르지 않아서 거푸집에 음모가 들러붙었던 것이다. 신시아와 친구는 15분 이상 음모를 한 올 한 올 때내야 했고 지미 헨드릭스는 고통스러웠겠지만 인내심을 갖고 잘 참아 냈다. 이 일 때문에 그날 밤 공연을 늦게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지미 헨드릭스의 페니스 상은 길이가 5와 7/8인치로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신시아가 수집한 페니스 상 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현재 1500달러 우리 돈으로는 약 17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신시아 플래스터의 기행은 곧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다. 미디어는 그루피 현상의 극단적 사례로 그녀를 조명했다. 한편 페니스 캐스팅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했다는 프랭크 자파는 그녀의 물질적 후원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1977년 ‘키스’가 발표한 ‘플래스터 캐스터’라는 노래의 주인공도 바로 신시아이다.
5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그녀는 세상의 관심 대상이다. 1999년에는 페니스 상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으며 2001년에는 자신의 생을 다룬 '플래스터 캐스터'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도 제작되었다. 한편 2000년부터는 캐스팅을 여성화하기 시작했다. 록 밴드 L7의 수지 가드너를 시작으로 해서 여성 록스타의 가슴 정점을 캐스팅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티스트이자 컬렉터라고 자임하는 신시아 플래스터 캐스터는 역사상 가장 창의적이고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록 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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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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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ab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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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역시 전 록하곤 안 맞나 봅니다.
아무리 유명한 로커가 되었다고 해도......비교될까 두려워서라도 캐스트 못 할 것같은데.....-_-a
5와 7/8인치면....한 십오센티 되는가요. 음음음.
흑인이 이정도라면...뭐.... =3=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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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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