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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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8-08-31 14:53:16, Hit : 944)
[re] 전시 8.31



신현국 개인전 `피안의 흔적`




갤러리성보(02-730-8478)
2008-08-20 ~ 2008-08-26

우리들의 삶의 현장은 해가 거듭될수록 각박하고 이중성을 띄며 비교론적 가치관 속에서 허덕인다. 한 때 이념분쟁시대가 그러했듯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우익과 좌익 등 운명론적 치부를 드러냈고, 오늘날에도 그것은 이어져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양대 구조로 양분되어 사회구조는 더욱더 경직되어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결국 인구과잉, 산업화 등 현실적 문제에 직면해서 도시인구의 집중으로 주거환경의 확장을 위해 재개발이라는 전제로 점차 슬럼화 되어가는 저소득층인 빈민촌은 소위‘달동네’라는 지역으로 낙인 찍혀 돌보아지지 않고 방치되거나, 도시 외곽지대로 이전하기 위해 그린벨트는 파괴 또는 훼손되어 아파트 단지로 변화하면서 주거환경은 이중적 구조로 변하게 되었다.

신현국의 피안의 흔적(Traces of the other side)은 현실적으로 처해있는 우리의사회적 환경 속에서 저소득층이며 재개발지역에 묶여져 있는 저소득자의 속박과, 서러움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현장을 다큐멘터리 형식의 사실성, 역사성, 현실에 의한 단순한 기록적 목적에 국한되지 않고 자신의 창작적 욕구와 현실의 산적된 갖가지 문제점들을 하나의 문화적 기록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한 시점의 사진인 것이다. 이러한 시점의 사진이라고 해서 단순히 보이는 것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현실이 갖고 있는 갖가지 문제점들을 직설적이 아닌 은유적 시각으로 내포시키고 있어 사진의 언어적 역할을 함축한다.

신현국의 사진은 비관적이고 비판적인 사진으로 시작해서 낙관적인 시각으로 끝맺음된다.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내포하면서 자기기술적인 창작사진이고 한국의 현실 문제를 르뽀하는 르포르타주 사진이기도 하다. 새로운 뉴 다큐멘터리의 시각으로 가는 길목에 서있는 패기 넘치는 사진이다.

글 / 홍순태(사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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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개인전 `The light as a metaphor : 은유로서의 빛`


게이트갤러리(02-3673-1006)
2008-09-02 ~ 2008-09-20

지난 3월에 개관한 게이트 갤러리에서는 한국의 숨은 작가를 발굴하여 육성하려는 의도로 시작되었다. 그 일환의 하나로 참신하고 깊이 있는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개인전을 기획하고 있다. 이번 기획전시인 이혜진 개인전은 20대 후반의 작가가 자신의 모습을 외부의 사물에 투영하여 은유적 시각으로 사진 안에 담아낸다. 개인적인 시선으로 담아낸 그의 사진들은 한국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의 생각과 이상들을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글 / 게이트갤러리

Light series - the light as a metaphor`는 나의 내밀한 기억의 여정에의 과정으로 내게 일어나는 사건들의 원인, 혹은 그것들의 `처음`으로 다가가는 작업이다. 눈부신 빛과 여름밤 라일락의 향기, 흘러간 유행가의 노랫소리, 누군가와의 악수에서 느껴진 손의 온기.. 그러한 것들에 대한 기억. 이것은 또한 순간 사라져 버리는 것들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결코 시간을 소유할 수 도 되돌릴 수 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다만 기억하는 것. 기억이라는 무한반복의 레코더로 환기시키는 것. 나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러한 이미지들을 수집해 나갔다. 연상되는 사건들과 장면들을 조합해 나가면서 우연히 찍혀진 사진들이 필연적 의미를 갖게 되는 방식, 어쩌면 이것이 `Light series - the light as a metaphor`에서의 나의 의미 찾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글 / 이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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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휴가

이젠展 / E-ZEN / photography

2008_0903 ▶ 2008_0916



이젠_날지못합니다울지못합니다기다릴수는있습니다_검 프린트_26×40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61024e | 이혜진 사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903_수요일_06:00pm

갤러리 룩스 기획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화요일 10:00am~12:00pm / 주말_11:00am~07:00pm





갤러리 룩스_GALLERY LUX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82.2.720.8488
www.gallerylux.net






풍경과 텍스트 혹은 그 사이 어딘가에 ● 오래 전 대학시절, 그것이 특별한 사랑 때문이든 막연한 불안 때문이든, 그 어떤 마음의 우울이 있었을 때, 느닷없이 여행을 떠나곤 했었다. 혼자,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그러나 그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서. 아직 자가용 문화가 아니어서 대중교통들이 길을 이어주던 그 여행은 늘 많이 걷는 일이었고 그렇게 혼자 걷는 도중에서 만나는 건 흐르는 풍경들뿐이었다. 그리고 혼자 그렇게 여러 날을 걷다가 돌아와서 가방을 풀면 땀 젖어 구겨진 옷들과 더불어 작은 수첩 안에 적힌 몇 줄의 문장들이 있었고 나는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바로 그 장소에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젠_지난밤폭우로일곱뼘이나낮아진물고기무덤에서는여전히젖비린내가진동한다
말라비틀어진젖가슴이예의도바르다_검 프린트_33×50cm_2008


이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 역시,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상으로 머무르던 장소를 떠나야 할 모종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그녀는 떠났을 것이다. 혼자서, 미리 정해진 방향 없이, 그러나 그 어딘가를 향해서. 그리고 그녀 또한 돌아와서 가방을 풀어 기념품들처럼 발견했을 것이다, 몇 장의 풍경들, 몇 줄의 텍스트들, 아니 만일 그런 사진 장르의 이름이 있다면, 몇 장의 풍경-텍스트 사진 혹은 텍스트-풍경 사진들을. 그런데 그녀의 사진들은 어느 장소의 기록들일까? 풍경이면서 텍스트인 그 장소는 어디일까? 이젠은 그 사이에 어디를 다녀온 것일까?




이젠_비가오고그비가모여흘러넘친다해도바다는아니다.하늘,땅,바다는唯一하다_검 프린트_33×50cm_2008


이젠의 사진들은, 내게는, 세 개의 층위를 통해서 읽힌다. 우선 시각적 층위, 즉 풍경이 있다. 어촌과 농촌 혹은 어느 바닷가의 갯벌들처럼 이젠의 카메라가 보여주는 풍경들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 풍경들은 모두가 적막하다. 그 적막함은 무엇보다 카메라의 먼 시선으로 포착되는 풍경들이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논밭과 들판, 해변과 갯벌, 놀이터와 긴 축사의 슬레이트 지붕들까지 이젠의 풍경 공간들은 모두가 텅 비어 있어 적막하다. 하지만 이젠의 풍경들 안에 포만한 적막함이 비인 공간성 때문만은 아니다. 풍경들의 적막함은 오히려 더 내밀한 곳, 그러니까 풍경 안에 들어 있는 오브제들로부터 온다. 하염없이 등대를 바라보는 새 한 마리, 닻을 내리고 버려진 어선, 아무렇게나 갯벌 위에 뒹구는 돌들, 너무 만개해서 차라리 터지고 말 것 같은 하얀 불두화(佛頭花)... 텅 비인 풍경을 지키는 오브제들은 모두가 입을 다물어 침묵을 견디고 있다. 이젠의 풍경들은 적막하지만 그 적막함은 공간의 비임이 아니라 말의 막힘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이젠_분노를태운땅에용서의나무가자란다내년봄끌어안을살냄새나는말랑말랑한땅을기다리며
검 프린트_26×40cm_2008



이젠_착한남자가돌을두고간다키큰남자가돌을두고간다모르는남자가돌을두고간다나쁜남자가돌을두고간다
지독한남자가돌을두고간다가난한남자가돌을두고간다_검 프린트_25×50cm_2008


다음으로 문자적 층위, 즉 텍스트가 있다. 이젠의 텍스트들은 얼핏 하이쿠를 닮았다. 짧고 운율적이고 무엇보다 직지적(直指的)이다. 하지만 그 닮음은 다만 형식 뿐 텍스트 안에 담긴 내용은 하이쿠를 뒤집는다. 하이쿠가 일체의 감정을 소독하고 직관적 사실만을 재현한다면 이젠의 텍스트들 안에서는 오히려 억눌린 리비도들이 누설된다. 누설된 리비도들은 짧은 텍스트 안에서 슬픔으로 흐르고 (‘니가 생각나 한참을 서 있다가 결국 울고 만다’), 분노로 폭발하고 (‘...니 새끼 보고 싶지 않은가!’), 자탄으로 역류하고 (‘...말라비틀어진 젖가슴 예의도 바르다’), 회한으로 고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그래도, 어차피...’), 다시 갈증으로 타 오른다 (‘목마르다...’). 그것이 어떤 내면의 표현이든 이젠의 텍스트들은 리비도의 즉발적인 몸짓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몸짓은 풍경 위에 깊이 자국을 각인하면서 풍경의 텅 비임을, 말없음을, 그 포만한 적막함을 더는 참고 견디려 하지 않는다. 이젠의 짧고 가열한 텍스트들은 그래서 풍경의 적막함을 리비도로 채우려는, 풍경의 두꺼운 침묵을 깨고 나오려는 억눌린 말들의 몸부림처럼 보인다.




이젠_우리동네빨간양철지붕집에는입냄새가심한여자가살고있었다매일그녀는열두번씩양치질을하지만
키스는커녕입벌리고웃지도못했다 행복한기억이있어지금도행복하다_검 프린트_25×50cm_2008


마지막으로 사진의 층위가 있다. 이젠의 프레임 공간 안에서 풍경과 텍스트는, 서로 떼어 놓고 읽으면, 서로 대치하고 갈등하고 반목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오래 바라보면, 그러니까 풍경과 텍스트가 응시의 거리 안에서 서로 마주보게 되면, 불화의 프레임 공간은 또 하나의 공간과 겹쳐진다 (바르트는 이 겹쳐지는 공간을 ‘사진 공간’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사진 공간 안에서 풍경과 텍스트는 상상적이고 심미적인 경험의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풍경은 더 이상 막막하게 입 다문 적막의 공간이 아니라 자기의 침묵을 텍스트에게 빌려주는 열린 공간이 된다. 텍스트 또한 더 이상 자기 안에서 못견뎌하는 리비도의 격렬한 몸부림이 아니라 풍경의 적막함에게 말을 빌려주는 이해와 용서의 부드러운 몸짓으로 변한다 (‘분노를 태운 땅에 용서의 나무가 자란다’/ ‘행복한 기억이 있어 지금도 행복하다...’). 그리하여 풍경과 텍스트의 겹침 안에서, 혹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하나의 특별한 장소가 태어난다. 침묵과 말, 막힘과 열림, 미움과 사랑, 문장과 이미지가 서로의 경계를 지우며 열어 보이는 어느 장소가...




이젠_밭일구어물고기를캐고그물드리워양파를건져올리고비닐하우스안에는눈사람이자라고
앞동네행복한장례식哭婢로춤추던미친년은숨바꼭질중이고하루종일굶은갈매기는
보리밭에숨어꼼짝을않는다_검 프린트_25×50cm_2008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어떤 행복한 장소가 삶 속에는 있다고 카뮈는 말한다. 사는 일이 여행이라면 우리는 매일 매일 이 장소를 찾아서 여행을 떠나는지 모른다. 하지만 여행이란 무엇일까? 여행은, 삶이라는 여행은, 도착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떠나는 일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여행이 행복하다면 그 또한 도착이 아니라 돌아옴의 행복일 것이다. 이젠의 풍경-텍스트 사진들이 보여주는 건 다름 아닌 이 행복한 귀환의 기록들일 것이다. ■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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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ing is believing

김승택展 / KIMSEUNGTAEK / 金承擇 / painting

2008_0902 ▶ 2008_0918 / 일요일, 추석연휴 휴관



김승택_동네한바퀴_판화지에 드로잉, 아크릴, 수채화, 바니쉬_80×120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Vol.070615d | 김승택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902_화요일_07: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추석연휴 휴관




프라이어스 갤러리_PRIORS GALLERY
서울 강남구 신사동 564-8번지 가람빌딩 3층
Tel. +82.2.545.4702
www.priors.co.kr






프라이어스 갤러리에서 『Seeing is Believing』이라는 주제로 김승택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다. 김승택 작가는 본인에게 투영된 ‘본다’ 라는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인 시각적 현상에 자신만의 또 다른 감성적 해석을 가미해 ‘보여지는 것’으로 재 창조해 내고 있다. ●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현상 중에서 작가는 일상 생활 속의 주위 공간에 주목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작가에게 늘 친숙하게 생활하고 익숙한 주변의 공간이 대상이 되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공간의 안에서 더욱 확대된 밖의 공간을 주제로 삼고 있다. 꾸불꾸불 작은 골목길들로 연결되어진 작은 옛 단독 주택들, 개발되지 않은, 하지만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개발 직전의 주택지의 공간을 통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파노라마 시점으로 그려진 작품 속 건물 이미지는 골목길 한 지점에서 주위를 빙 둘러 보았을 때의 모습이 하나의 띠처럼 연결되어 서로가 마주 보고 있다. 그림 속 왜곡되고 굴절 된 동네는 마치 이상한 나라로 빠져들 것만 같은 느낌을 주면서, 물리적이고 인위적인 개발로 인해 단절 되어지려는 시공간을 이성적인 회화공간으로 새롭게 연결시키고 있다.




김승택_안동상회_판화지에 드로잉, 아크릴, 수채화, 바니쉬_80×120cm_2008



김승택_한양학원_판화지에 드로잉, 아크릴, 수채화, 바니쉬_80×120cm_2008



김승택_경계선Ⅱ_판화지에 드로잉, 아크릴, 수채화, 바니쉬_80×120cm_2008



김승택_지역탐방_판화지에 드로잉, 아크릴, 수채화, 바니쉬_80×120cm_2008



김승택_오브제(에디션1/3)_디지털 프린트_100×150cm_2008


김승택 작가에게 있어서 선은 공간을 해석하는 중요한 수단이며 과정이다. 대조된 명암과 다양한 색으로 표현된 밀도감과 무게감을 가진 공간이 아니라, 가장 단순하면서도 미적 표현의 기본이 되는 간결한 선의 느낌이 작가만의 표현의 시작이자 최종적인 시각적 결론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자신의 선들의 배경을 컴퓨터에서 캔버스로 옮겨 놓았다. 기존의 마우스를 이용한 디지털 작업에서 손으로 직접 드로잉 하여 페인팅 한 것이다. ● 예전 디지털 작업에서는 사진이 가지고 있는 사실성과 드로잉의 허구성을 컴퓨터 작업이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해주었다면, 이번 개인전은 드로잉의 허구적인 부분을 좀 더 극화 시켜 표현한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그림 안에서는 실제인 것처럼 재현을 함으로써 그것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믿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작가가 만든 그림 속 동네는 재개발 현장에서 쉽게 보게 되는 걷기 힘든 비좁고 낡은 옛 골목길, 오래되고 어두 침침한 살고 싶지 않은 저급한 공간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행복하고 정이 깃든 추억 속 아련한 동네,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야기들을 꿈꿀 수 있는 기억 속의 파라다이스를 걷게 만들어 준다.




김승택_이문동 골목길_단채널 비디오_00:04:40_2007


또한, 이번 개인전에서는 2편의 영상 작품이 소개된다. 주민들의 보행의 통로를 위해서 만든 ‘이문동 골목길’ 이라는 주제로 영상 속 작가의 눈은 한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같은 동네임에도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연결성 있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자유롭지 못하고, 폐쇄적이었던 이 동네가 안기부가 떠나면서 달라진 사람들의 모습과 생활, 그런 흔적들을 이번 작품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 황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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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Ship 3

임승천展 / LIMSEUNGCHUN / 林承千 / sculpture

2008_0903 ▶ 2008_0909



임승천_낙타 Camel_F.R.P_43×24×18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임승천 블로그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관훈갤러리_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본관 1층
Tel. +82.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1963년에 견줘 2007년 우리나라 소비자물가는 43배 올랐다. 그런데 같은 기간 땅값은 서울은 1176배, 대도시는 923배나 올랐다. … 한국의 땅값 총액은 이미 1980년대 말에 1조4636억 달러에 이르러 한국보다 100배나 넓은 캐나다 땅값 2562억 달러의 5.7배, 한국 땅의 5배인 프랑스 땅값 1721억 달러의 9배, 미국 땅값 2억9500억 달러의 절반을 넘었다. 아마 지금은 미국 땅도 몽땅 다 사고 남을지 모른다.… 2005년 8월 현재 한 사람이 무려 1083채를 소유한 경우를 포함해 다주택 보유 상위 10명이 모두 5508채, 한 사람당 평균 550채의 집을 갖고 있었다. 이에 비해 전체 가구 수의 50.3%인 841만 가구는 무주택 가구였다. 2002년부터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섰고 2007년 현재 100만채의 집이 남아도는데도 10명 중 4명이 집이 없거나 있더라도 돈이 없어 셋집을 떠돌고 있다-2008년 8월 18일자 「한겨레」 신문, 28면




임승천_3호 Dreamship3_F.R.P_180×330×330cm_2008


임승천은 「dreamship」시리즈를 통해 사우스 코리아의 아파트 문화(?)와 개발현장을 시각적으로 다루어 왔다. 자신의 작업실인 수원시 동탄면 목리 앞에서 행해진 철거와 아파트 건설 풍경에서 시리즈는 시작된다. ‘왜 멀쩡한 동네를 허물까’, ‘왜 주택 보급률 100%가 넘었는데도 저렇게 아파트를 지어댈까’라는 누구도 의심해 봄직한 것에서 작품은 시작된다. ● 인터넷이나 책을 조금만 뒤적여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금세 알 수 있다. 정부, 건설사, 국토해양부, 토지공사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사실을 말이다. 이 금세 알 수 있는 정답 앞에 대부분의 작가는 세 가지 유형으로 이를 표현한다. 아파트 시스템이 만든(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소외된 현대인의 개인 심리를 그리는 것, 아파트로 인해 생겨난 부산물들, 가령 거대한 쇼핑센터나 놀이공간을 표현하는 것, 아니면 아파트 도시 공간 디자인의 깔끔한 표피만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은 소재의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풍경의 속살에 다다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그런가. 내 생각엔 작가의 상상이 그 풍경에 덧붙여지지 않아서라 생각한다. 임승천은 그렇다면 어느 지점에 해당하는가. 내가 보기에 임승천은 세 지점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가상의 미학을 보여준다. 실제 현실 같지 않은 현실을 가상 같지 않은 가상으로 되먹임으로써 실재로 귀환하는 방식에서 그의 현실에 대한 상상력은 탁월하다.




임승천_바벨 Babel_철, F.R.P_50×75×40cm_2008


그가 이번에 보여주는 작품은 「dreamship」의 완결판으로 볼 수 있다. 국제해사국(IMB), 유엔난민기구(UNHCR), 라울섬(케르마데크 제도) 등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과 선장, 배씨 아저씨, 낙타 등 상상의 인물들이 혼합된 가상의 항해 시나리오가 이번 전시에서 결말을 맺는다. 관객은 그 결말을 이번 전시에서 보는 셈이다. ● 「남태평양 해역 내 무인도로 떠나는 드림호 프로젝트」는 ‘대단위 아파트 공사와 무리한 도시개발공사, 수몰 지역 등으로 인해 갈 곳을 잃어버린 대한민국 국민을 가진 분’을 공개 모집한다. 드림호는 튼튼하고 남태평양 섬은 아름답다. 그러나 과연 이 배는 현실을 떠나 환상의 섬에 무사히 정박할 수 있을까. 뱃머리가 3개인 움직일 수 없는 상상의 배는 이전 작품들보다 더 불안해 보인다. 한쪽으로 약간 기운 배는 목적 없는 표류의 시각성을 극대화한다. 이전 작품이 견고함이 강조됨으로써 정주의 이미지로 다가왔다면 이번 작품은 표류하는 순간을 드러내어 불안한 심리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 또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으로 표상되는 바벨탑은 고스란히 한국의 ‘부동산 계급사회’의 최상층을 상징한다. 현실로 치자면 청와대, 국토해양부, 토지개발공사쯤 되는 부동산 관벌 정도 될 터다. 가상의 시나리오에서 파도가 몰아치는 뱃머리에 거주하는 제3국 난민은 달동네나 철거주민, 자기 이름으로 집이 없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이러한 위계적 구조가 이전 작품보다 더 강렬해졌다. 위계적 구조는 고스란히 1가구 다주택, 1가구 1주택, 무주택자의 실제 부동산 계급 구조와도 겹친다. 여기서 한걸음 내달려 남의 집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소라게의 발이 불도저나 파쇄기로 신체가 확장하는 작품은 광적인 개발문화에 몰두하는 불명확한 실체를 나타낸다.




임승천_바이러스 Virus_혼합재료_83×45×45cm_2008


그가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평면 작품들은 입체 작품만큼이나 단색조의 심리화다. 어디가 출구인지 모르는, 또한 어디에서 무엇이 튀어나올 지 알 수 없는 동굴이나 하늘을 다 가려버린 바벨탑의 내부 풍경은 실제 풍경이라기보다 삶의 불안이 드러나는 심리 풍경이다. 입체 작품의 회색톤, 모노톤의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유화지만 수묵적인 느낌이 드는 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터다. 이는 아마 그가 표현하고 있는 입체 작품의 형식적인 유사성에서 파생된 게 아닌가 싶다. 그가 보여준 입체 작품들이 갖고 있는 모노톤의 시각성, 풍경이 주는 심리적 중압감, 풍경과 관객 사이에 낀 끈적거리는 이물감이 평면 작품에서도 죽지 않고 있다. ● 자기 부정이 삶의 의지의 표현라고 한다지만 그가 그려낸 이런 디스토피아가 마냥 자기 부정으로 치달았으면 전시는 밋밋할 것이다. 아마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세 개의 눈을 가진, 가상의 항해 시나리오에서는 「낙타」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 입체상이다. 전시 제목으로 설정한 「3」이라는 숫자가 갖는 완벽함의 상징성만큼 이 소년의 상징성도 여럿이다. 가상의 시나리오에서 낙타는 드림호에서 살아남은 ‘희망’이다. 아마도 삶을 긍정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상이겠다. 날개가 있다고 믿는 소년의 심리는 고스란히 판도라의 희망의 이미지와도 포개진다. 하지만 하얗고 눈부신 천사가 아니고 처참한 몰골의 천사다. 비루한 현실의 표상이겠다. 등이 굽은 곱추인 것은 현실과 존재의 역설적 상황이다. 드맑은 현실과 희끈거리는 존재의 멀찍한 간격이다.




임승천_I_캔버스에 유채_50×50cm_2008


역설paradox은 괴리에서 탄생된다. 실제 현실이 너무도 현실 같지 않을 때 우리는 ‘꿈같다’고 말한다. 가상의 세계가 너무 또렷할 때 우리는 ‘진짜 같다’고 말한다. 동시에 참이거나 거짓일 수 없는 모순 상황, 참이거나 거짓이어야 배중율에 집착하는 인식에서 역설은 위계의 전복을 꾀한다. 임승천의 역설은 인위의 역설이 아니라 현실의 역설, 바로 그 자체다. ●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나 도연명이 그린 도원경은 가상의 세계지만 생생한 세계였다. 2-3-4-6-18-22-54.이 번호는 1등 로또 당첨 번호가 아니다. 이것은 토마스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의 일일 휴식시간, 노동시간, 남녀 결혼연령, 행정자치구 라는 매우 구체적 숫자다. 그렇다면 1083-819-577-521-476-471-412-405-403-341라는 숫자는? 우리나라 다주택 보유자 10위에 드는 일인당 보유 주택수다. 가상과 현실의 역전에서 우리의 인식은 실재를 혼동하게끔 되어 있다. 이러한 역설은 예술가 임승천에게 오롯이 역설의 미학으로 가공된다. 예술의 표상 불가능성을 얘기하는 현대 미학자가 있지만 “오직 예술만이 두려움이나 현존재의 불합리에서 나오는 구역질을, 사는 보람을 주는 표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 실존론자도 있다. 표상 불가능성은 미학의 의미 영역에서 다루어짐이 마땅하다. 그것이 실천 영역에 다다를 때 오늘날 한국 미술의 표상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임승천이 다다르고자 한 실재는 가상의 이상향보다 현실의 생생함이다. 여전히 사우스 코리아의 지정학에서 그릴 건 많다, 고 말하는 거 같다. 그런 점에서 지난 2년간 광적으로 팽창한 미술시장에서 물건 만들기에 여념 없는 체제 순응적인 젊은 미술가들 속에서 임승천은 우뚝하다. ■ 정형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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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다마리_찬란히 떨어지는 빛

박진영展 / AREA PARK / 朴晋暎 / photography

2008_0903 ▶ 2008_0924 / 일요일 휴관



박진영_첫 눈_C 프린트_125×155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박진영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903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S_GALLERY S
서울 강남구 청담1동 118-17번지 네이처포엠빌딩 2층
Tel. +82.2.512.6470
www.gallery-s.net






박진영 (Area. Park)은 지난 수년간 이데올로기의 충돌과 사회적 갈등을 새로운 다큐멘터리 형식의 사진으로 표현해왔다. 신작 「히다마리」는 디지털 기술이 득세하는 요즘, 사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정의를 찾아나서는 작업들이다. 「히다마리」는 ‘찬란히 떨어지는 빛’ 이라는 일본어로 이미지 폭풍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사진 본연의 맛을 담은, 쉽고 간결한 사진으로 되돌아가는 작업을 보여준다. 실존했던 피사체와 죽어 버린 시간만이 남은 그의 최신작은 사진가로서의 사진에 대한 생각과 재해석을 통해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박진영_가난한 여행_C 프린트_100×125cm_2008


빛이 머문 자리 ● 사진이 어려워졌다. 오늘날, 사진은 저 화려한 액자 뒤에서 나에게 무언가를 감추려고 한다. 그리고 숨은 무언가를 찾으려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사진 속 메시지를 이해하고 나아가 사진너머의 심오한 세계를 보라’최근 열리고 있는 사진전시를 볼 때면 나는 머리와 마음이 참 불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뿐 아니라 간혹 보게 되는 학생들의 작업들마저도 어렵게 보이는 건 매한가지다. 저마다의 작업들은 하나같이 학문적인 이론과 기발한 시선, 개성 있는 작가의식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보편적인 잣대로 그 작업들을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렵고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게다가 요즘 사진의 외형들은 너무나 비슷해서 각 전시마다의 변별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최근 한국에서 진행되는 사진전시의 대부분은 몇 명의 출력 전문가들과 몇 군데의 액자 집에서 독점 하다시피 함으로써 전시구성이 점차 획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실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허나 나도 이 세태에 자유롭지 못하다.




박진영_모델처럼 #01_C 프린트_100×125cm_2008


예전에는 흔히‘사진’하면 크게 두 개의 공정이 있었다.「촬영」 과 「암실작업」촬영은 사진가가 원하는 혹은 우연의 피사체를 찾거나 발견하여 사진을 찍는 행위이고, 암실작업은 그 찍혀진 사진을 자신만의 기술과 노력을 기울여 사진으로 만들어내는 일종의 노동이었다. 모사진가의 이야기처럼 사진가에게 촬영은 원죄이고 암실작업은 천형과도 같았다. 이 두 가지의 요소들은 그 시절 사진가적 관점과 감각 그리고 암실에서의 테크닉과 노력에 따라 전시의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지게 만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에 분명했다. 포니를 만들던 회사에서 제네시스를 만드는 시절이 온 것처럼, 카메라는 그것 이상으로 기술적인 진화를 거듭하였고, 또한 출력기술은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암실을 고상한 취미나 박물관으로 밀어낼 실정에 이르러 버렸다. 촬영의 기술과 개인의 실수를 커버해주는 카메라. 실물보다 좋은 발색 혹은 허구의 피사체를 감쪽같이 만들어 버리는 출력기술. 이는 고전적 의미의 사진과 현실적 의미의 디지털 이미지의 경계선을 그어 버린다. 정확한 명칭이 만들어질 틈도 없이 기술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박진영_봄의끝 #02_C 프린트_155×125cm_2008


얼마 전 중년사진가의 전시장에서 받은 애잔한 감동은 작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코를 자극하는 정착액의 냄새 때문이었으리라. 사진에 있어 재현이란 가장 분명하고 유일한 힘이었다. ● 아름다운 풍경을 취하기 위해 프레이밍을 하고 트리밍을 하기도 하지만,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은 모든 렌즈에 비친 사물을 빛으로 말미암아 고스란히 재현해 내는데 있었다. 존재하지 않았다면 사진에 남지 않았을 사물들, 사진 그 자체가 알리바이가 되어버리는 여러 장면들, 몇 년 전 만해도 사진은 적어도 그러한 것이었다.




박진영_아저씨 #01_C 프린트_100×125cm_2008


나는 그 동안 사진이란 매체로 사회적 관점 혹은 동시대적 관점에 천착해 작업을 진행해왔다. 하나의 시리즈를 완성하기 위해 자료조사부터 표본탐구, 섭외, 촬영, 기금신청, 전시, 출판 등을 거치면서 작업을 만들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사진을 찍는 사람이기보다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또한 뭔가 의미심장한 주제와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사진가란 항상 사회를 향해 발언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또한 지나친 문제의식에 사로잡혀 대상의 본질을 보기보다는 대상의 효과적인 시각화에만 전념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이미 사진이 현대사회에서 가장 대중적인 매체로 자리 잡은 오늘날, 나는 사진가로서 어깨에 힘을 빼기로 한다. 이는 불특정 대중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멈춤이자 편협한 사고를 걷어내기 위한 치유이기도 하다. 그저 시간과 공간을 담는 사진 본연의 속성을 믿으며 기술적 발전이 급격한 이즈음 사진이 태동하던 시기의 자세와 정신으로 돌아가 사진적인 사진을 찍는 시도를 시작한다.




박진영_자서전 #02_C 프린트_125×155cm_2008


갈증을 면하기 위해 마신 캔 맥주에 취기가 올라 나무벤치에서 한 시간을 자다가 깨어났었다. 눈꺼풀을 아른거리며 두드리는 햇살에 실눈을 떴는데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카오루는 ‘히다마리’라고 가르쳐 주었다. 은행나무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떨어져 땅에 고인 빗물이 반짝거리는 평범한 풍경이었지만, 그 순간 섬광처럼 스쳐 지나간 깨달음에 짧지 않은 여행을 떠난다. ■ 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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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한 여인의 발자취

박은태展 / PARKEUNTAE / 朴銀泰 / painting

고양 / 2008_0902 ▶ 2008_0907
서울 / 2008_1015 ▶ 2008_1021



박은태_광화문에서_장지에 아크릴채색_124×149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50812a | 박은태 회화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고양 / 관람시간_10:00am∼06:00pm / 금,토_10:00am∼08:00pm / 월요일 휴관
서울 / 관람시간_10:00am∼09:00pm / 일_10:00am∼07:00pm





고양어울림미술관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779-4번지
Tel. +82.31.960.9730
www.artgy.or.kr




광화랑_GWANG GALLERY
서울 종로구 세종로 81-3번지
5호선 광화문역 지하도 안
Tel. +82.2.399.1167
www.sejongpac.or.kr






전시를 준비하며 ● 그림을 그리는 작가라는 직함을 누가 주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로 입문하면서 두 번의 개인전을 거치면서 자전적인 이야기는 어느 정도 털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스물 스물 더 깊은 곳의 부채가 나를 붙들었고, 세 번째의 주제로“어머니”를 정하고 나서는 이번에는 좀 가볍게 가자고 했었다. 막상 작업을 진행 시키면서는 모든 것이 다 그물 엮이듯 연결되어 있는 것을 느끼고는 못내 다행이다 싶었다. 우리 역사의 근현대사 과정에서 주역이면서도 오히려 소외된 이들을 조명하는 것이 나의 작업 내용의 큰 틀 이였다면, 여기에 어머니의 작업도 맞추어 질 수 있었다. 비록 제 자식, 가족을 위해 한 몸을 바치고 병든 몸밖에 없지만, 결국은 이들이 한국 근현대사의 주인공이고 보호 받아야 할 희생양 이었다. 결국, 나의 이 작은 시작은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저 힘없는 아주머니, 아저씨의 하소연들을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가슴속 깊이 내가 작가로 무엇을 할 것인가? 다시 출발하는 계기에 선 시간이었다. 내가 가르치는 한 아이의 스케치북을 들척이며 “잘 그렸다 멋있다" 했더니 8세 그 아이 하는 말 “선생님 저는 멋진 그림 싫어요. 현실을 그린 그림이 좋아요” 했다. 그래 고맙다 절했다. 「광화문에서」 ● 매번 광화문에 서면 칼 들고 서있는 그 동상, 황당한 건물에 전광판 영상들, 그리고 플랭카드, 나는 그것들을 내 맘대로 바꾸고 싶어서 작년 말에 에스키스 해 두었다가, 그림을 완성하고 나니 오월에 촛불 집회가 시작되었다. 나의 생각만은 아니었다 싶었다.




박은태_길을 인 여인_장지에 아크릴채색_180×114cm_2008


「길을 인 여인」 ● 어머니의 사십대 모습이다. 농한기 겨울에는 몇 십리를 걸어 행상을 하셨는데 스텐그릇을 팔고서는, 놋그릇, 곡식 등으로 바꾸어 오시던 어머니 머리위에는 장정도 들 수 없는 짐이 항상 얹어져 있었다. 이렇게 그려 드리면 좀 가벼우실까? ...




박은태_소화불량_장지에 아크릴채색_171×131cm_2008


「소화불량」 ● 집 근처에서 어머니의 운동하시는 모습이다. 마땅히 산책할만한 장소조차도 없는 서울에서의 우리네 노인들 모습이다.




박은태_친절이삿짐_장지에 아크릴채색_129×151cm_2008



「친절이삿짐」 ● 행당동 재개발 과정 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이다. 같이 살던 집주인은 살던 집을 다 부셔놓고 이사 가버리고 한켠 쪽방에서 세 들어 사셨던 어머니께서 당시 우셨던 기억이 나를 아프게 했던 장면이다.




박은태_어버이 날_장지에 아크릴채색_111×149cm_2008



「어버이 날」 ● 작년 어버이날 집근처 공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어느 노인의 모습이다. 약자일수록 소외 받는 이 견고한 자본의 벽은 더욱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박은태_발1_장지에 아크릴채색_149×87cm_2008
박은태_발2_장지에 아크릴채색_149×87cm_2008


「발1.2」 ● 수 십 년 몸에 부치는 노동으로 살아온 노인의 몸은 그 자체가 그 사람의 역사다. 특히, 손발은 더욱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데, 나는 어머니의 뒤틀린 발을 그렸고, 그 안에 밭으로 소매통을 이고 나가시는 모습을 넣었다. 다른 하나는 일하고 돌아오시며 사립문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는 장면을 그렸다. ●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을, 그나마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몇 점은 그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머릿속에 떠다니기만 하는 게 더 많다. 내가 기억하는 이것들은 훗날로 기약할 수는 있겠지만, 어머니의 마음속에 못 다한 이야기, 더 나아가 우리들의 모든 어머니의 그 많은 이야기는 누가 대신해 들어 주고 풀어 줄 것인가... ■ 박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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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부럼없어라

선무展 / SUNMU / 線無 / painting

2008_0903 ▶ 2008_0928



선무_김정일_캔버스에 유채_194×130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선무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903_수요일_06:00pm

공동기획_갤러리 쌈지_프레파라트연구소
큐레이터_이단지, 백곤
후원_(주)쌈지, 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30am~09:00pm / 금, 토요일_10:30am~10:00pm





갤러리 쌈지_GALLERY SSAMZIE
서울 종로구 관훈동 38번지 쌈지길(아랫길 B1)
Tel. +82.2.736.0900
www.ssamziegil.com






핑크 빛 속삭임의 노래 『세상에 부럼없어라』 ● 2008년 새해 설날을 맞아 북한에서는 갖가지 크고 작은 행사들이 개최되었다.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는 당의 주요 인사들과 외교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학생소년들의 설맞이 모임인 『세상에 부럼없어라』 공연이 펼쳐졌다. ‘세상에 부럼없어라’라는 말은 북한 주체사상의 선전표어로 모든 분야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 즐겁다 손풍금 소리 울려라 / 사람들 화목하게 사는 내 조국 한없이 좋네 / 우리의 아버진 김일성 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 / 우리는 모두다 친형제 세상에 부럼없어라”라는 노래가사는 북한의 사회주의체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세상에 부럼없어라’라는 말은 ‘세상에 좋은 일만 항상 있으라’라는 뜻이다. 즉, 김일성 수령님 밑 사회주의 세상에서는 언제나 행복한 일만 있다는 말인데, 이 노래를 들으면 왠지 모를 씁쓸한 서글픔이 밀려온다. 밥 한그릇 먹지 못해서 죽어가는 이가 수두룩하고 한 해에도 수천 명의 이탈국민이 생겨나는 상황에서, 또 국가는 여러 가지 차관을 위해 폐기된 핵시설을 파괴하는 퍼포먼스를 펼칠 수 밖에 없는 현실 위에서 이 노래는 과연 누구를 위해 불려지고 있는가? 개혁, 개방을 하고 싶어도 쉽게 할 수 없는 21세기 사상누각의 대명사가 된 북한이 스스로의 체제를 존속시켜나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불러재끼는 노래가 바로 ‘세상에 부럼없어라’이다. 이를 악물고 정해진 웃음을 지으며, 연습한 동작을 펼치는 어린아이들의 얼굴 그 어디에도 부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얼굴은 마치 “우리는 왜 이렇게 불행할까요?”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어설픈 키치의 이미지에 가깝다. 그렇다면 북한 어린이를 바라보는 우리들은 과연 행복한 것일까? 그네들의 반대편에서 가엾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들의 부럼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진정 행복한가? 선무의 이번 전시 『세상에 부럼없어라』는 이러한 물음들에서부터 시작한다.




선무_세상에 부럼없어라_캔버스에 유채_194×650cm_2007


선무, 남한예술을 시작하다 ● 2002년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으로 넘어 온 선무라는 개인이 예술가가 되어 예술행위를 펼쳤을 때 남한 사람들의 시선은 관심 그 자체였다. 많은 언론에서 그를 인터뷰하고, 그와 그의 작품을 소개했으며, 미술계 여기저기에서 찾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왜일까? 그의 작품이 예술적으로 대단해서였을까? 아니다. 선무가 탈북을 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결코 경험해 볼 수 없는 탈북이라는 달콤한 소스에, 언제나 먹고 싶은 예술이라는 난해함이 만나 적정의 하모니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심의 중심에 바로 선무가 있다. 이제는 탈북해서 남한으로 넘어온 사람들에 대한 국가적 환영의 시대는 지났다. 왜냐하면 한 해에도 수 천명의 탈북자가 남한으로 들어오고 있는 사회적 부담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의 흡수통일에 대한 선례에서 오는 우려와 한국인으로 살아가기에 너무나 버거운 현실에서도 탈북은 여전히 관심거리다. 그 관심의 표면을 벗겨내면 무엇이 있을까? 거기엔 약간의 우월감과 거리감, 그리고 비교대상으로써 ‘그는 어떠한 생각을 할까’라는 호기심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으로 그에게 관심이 있는 것인가? 선무가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가? 물론 선무가 겪은 특수한 상황을 바라보는 동정의 관심이 그와 그의 작품을 잘못 이해하는 덫이 될 수도 있다. 아시아의 블루칩 중국미술의 싹쓸이가 자본주의의 배는 채워줬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삶을 생각하고, 이용가치를 지닌 상품으로써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그리고 그들의 작품으로 받아들였는지는 모를 일이다. 여기 북한출신 작가 선무가 있다. 어떤 이는 그를 희소성의 경제적 가치로 볼 것이고, 또 다른 이는 그를 소외자, 혹은 이방인으로 볼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보아야 할 선무는 스스로의 삶을 영위해나가면서 자신의 기억과 자신이 겪은 경험들의 파편들을 끄집어내어 정리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한 명의 예술가로서의 선무이다. 그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체제 이데올로기의 희생양도 아니며, 언론 미디어의 좋은 기사거리 또한 아니다. 그는 이 땅을 살아가는 수 많은 사람들 중 예술활동을 하는 한 사람이다. 그에 대한 이러한 생각들이 정리되었다면 이제 그의 이야기를, 그가 작품에서 풀어내는, 작품이 말하는 이야기를 들어볼 준비가 되었다. 그럼 화가 선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선무_생일날_캔버스에 유채_91×116cm_2008


아이들의 지저귐 『세상에 부럼없어라』 ● 앞서 선무의 이번 전시가 『세상에 부럼없어라』라는 물음들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하였다. 그의 작품 「세상에 부럼없어라」는 아이들이 손잡고 즐겁게 노래 부르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북한의 축하공연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하얗고 정갈한 레이스 셔츠에 남색치마를 두른 소녀들이 팔 벌려 손잡고, 입을 크게 벌리고 명랑한 노래를 부르는 생동감은 그것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지금 바로 내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생동감 있는 진실성을 표현하고자 소녀들을 등신대로 그렸다. 아마 처음에는 더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성인의 크기에 맞게 그렸을 것이다. 아이들의 머리 위, 파란색 배경으로 뒤덮힌 곳에는 얼굴의 흔적들이 어렴풋이 나타난다. 작가는 ‘세상에 부럼없어라’라는 노래를 어릴 적부터 부르면서 컸고, 많은 축하공연을 보았다고 한다. 어릴 때 바라보던 누나들의 맑고 우렁찬 노래는 소년 선무의 귀와 눈에 환상적인 소리와 이미지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한 환상은 언제나 기억 속에 더 큰 이미지로 각인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북한 주체사상의 선전으로 끊임없이 불려 질 때 인간의 감각은 무디어 진다. 자신이 알고 있던 관점과의 비교 군이 없기 때문에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이 사실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이 노래는 진실이 된다. 나아가 이러한 기억들은 기념비적인 크기로서 자신의 실제 기억을 억누른다. ‘그래 그 때 보았던 것이 정말 크고 웅장했지! 아마 집채만 했을 걸!’식의 기억들은 자신의 기억을 왜곡시키고 자신의 행동을 영웅화시키기에 이른다. 물론 그 믿음이 처음에는 주저하는 시기가 있다가, 나중에는 진정으로 그것을 사실로 믿게 된다. 이것이 바로 증폭되는 거짓말의 원리이다. ‘세상에 부럼없어라’라는 사회주의 선전표어와 김일성 우상화는 북한에서 태어나 자라는 어린이들에게는 진실 그 이상의 진실, 즉 사실로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프로파간다의 논리이다. 선무는 바로 이러한 선전의 상황들을 ‘아이들’시리즈를 통해 표현하였다. ‘아이들’시리즈는 대부분이 노래를 부르는 것과 연관되어있다. 그것은 바로 축하공연의 한 장면이라는 것인데, 과연 무엇을 축하하는 것인가? 물론 앞서 이야기 했듯이 김일성을 숭배하고, 주체사상과 사회주의체제의 위대함을 교육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된 이러한 이미지는 그 목적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선무가 그린 ‘아이들’은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선무_생일날 아침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08


이번 전시에서 높이 194cm에 너비 130cm의 캔버스 5개(총 너비 650cm)가 한 작품인 「세상에 부럼없어라」를 벽에 걸지않고, 기대어서 바닥에 내려놓은 구성이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가? 그 해답은 바로 이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서 찾을 수 있다. 선무는 어린시절 북한에서 실제 이러한 공연을 펼쳤던바 이것이 가지는 힘을 알고 있다. 아이들의 모습이 각인된 기억에서는 ‘굉장히 크고 아름답고 환상적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선무는 북한을 탈출하여 그 공연의 실체를 인식했고, 그 모습이 진실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그 모습을 직시하기를 희망했다. 그는 작은 아이들을 바라보고, 벽이라는 허공이 아닌, 자신이 밟고 있는 땅에서 그들과 함께 서있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재현의 방식이 아니며 자기인식의 비판 또한 아니다. 그는 북한이라는 사회주의 체제의 비논리성에 대해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 폭로는 남한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관점들을 통해 비교된 양식이며, 두 체제가 가져다주는 갈등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선무는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또한 작품에 끌어들인다. 즉, 자기가 바라보고 있는 것들을 북한식 주체사실주의로 받아들이게 되는 왜곡과 편견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은 다름아닌 타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삶의 영역에서 함께 대화를 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의 의도가 여기에 부합한다면 그가 소녀들을 등신대 크기로 그리고, 작품을 땅에 내려놓은 이유는 적정의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이 논리를 뒤집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은 벽에 기대어 바닥에 내려놓은 그의 작품 앞에 낮은 팬스가 쳐진다는 것이다. 물론 작품의 보안을 위한 조치이기는 하나 해석을 확장시켜보자면 작품에서 선무가 말하고자 하는 사실이 체제의 비논리성의 고발이나, 그것에 쉽게 다가갈 수 없음을 뜻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그 사실이 예술이라는 영역에 들어왔음을 뜻하는 것이고, 둘째, 북한이 체제의 비논리성을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쉽게 벗어버리지 못하는 자가당착적인 상황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고발이 예술의 영역에 들어왔다는 것은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서서 미적이고 개념적인 차원에서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며, 자가당착적 상황의 고발은 자신이 겪었고, 또한 겪고 있는 두 체제에서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완전히 지워버리지 못하는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의 구령에 발맞추고, 하나의 구령에 움직여야만 살 수 있는 곳. 나의 그리움 기다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라고 말하는 선무의 눈빛 속엔 앞의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교차한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선무의 작품에 집중하다 보면 또 다시 두 가지의 물음들이 생긴다. “지금 선무는 어디에 있는가?” 또한 “선무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선무_조선의 풍경_캔버스에 유채_116×91cm_2008


생일날 웃음 짓는 김정일의 추리닝 바지 ● 선무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앞서 설명한 ‘아이들’ 시리즈는 선무의 전시에서 이제껏 보여준 이미지였다면, 이번 전시에 새롭게 선보인 「김정일」, 「생일날」, 「조선의 풍경」등은 더욱 풍부한 내용과 표현형식을 지닌다. 「김정일」은 짙은, 그래서 붉은 빛이 도는 핑크색의 나이키 점퍼에 갈색 옆 스프라이트 줄무늬 아디다스 추리닝 바지를 입고, 왼쪽으로 살짝 몸과 고개를 돌려 웃고 있는 모습이다. 화면에서 김정일은 마치 동네에서 담배 사러 나온, 배불때기 아저씨마냥 편안하고 익살스럽다. 허겁지겁 나왔는지 한 쪽 신발은 나이키, 다른 쪽은 아디다스 신을 신고 있다. 핑크색 바탕에 캐릭터 만화같이 등장한 김정일의 초상화는 발랄하다 못해 키치적으로 느껴진다. 그 모습은 배불뚝이 그 자체이다. 주체사상의 수장으로서의 김정일은 온데간데 없고, 익살스러운 백수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선무는 분명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을 것이다. 민족의 지도자로 인민대중의 혁명적 령도인 김정일을, 신성화되어 범접하기 힘든 그 인물을 선무는 마음대로 재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선무가 김정일을 그린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김정일도 그렸고, 김일성도 그렸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재현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선무가 이번 전시에 보여준 「김정일」은 단순히 재현이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상징적 오브제로써 작용한다. 그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선망의 대상이자 풍자의 대상인 나이키와 아디다스를 김정일에게 입혔다. 그리하여 김정일은 다시 사회주의를 살았던 선무에게 선망과 풍자의 대상이 된 것이다. 김정일이 입고 있는 점퍼의 오른쪽 어깨의 붉은 색에서 왼쪽 배의 흰색까지 연결된 변화의 빛은 김정일의 앞쪽에 강렬한 빛이 있음을 상정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김정일은 눈이 부신지 빛의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애써 웃음 짓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개를 돌려 빛을 바라보면 내가 짓는 웃음들이 한 순간에 일그러질텐데!’ 라는 고민을 간직한 웃음 뒤에는 쇄국과 개방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북한의 현 실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베트남이 개방정책을 펼치고, 중국이 개혁을 외치는 새천년의 시대에 김정일은 여전히 웃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한 웃음이 선무에게는 위태롭고 불안한, 그리하여 역설적인 분홍색으로 다가온다. 희망차고 환희에 찬 핑크는 소녀적인 꿈에 머물러 있게 한다.




선무_피아노 치는 아이_캔버스에 유채_72×91cm_2008


그의 이러한 핑크빛 발랄함, 혹은 불안함은 「생일날」이라는 작품에 잘 표현되어 있다. 「생일날」은 태양절을 의미하는데 태양절(太陽節)은 1912년 4월 15일에 김일성이 출생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북한은 1962년 4월 15일 김일성의 50회 생일을 임시 공휴일로 정하였고, 1968년부터는 정식명절 공휴일로 제정하였다. 이후 1974년 김일성의 62회 생일을 기해 민족최대의 명절로 제정하고 각종 기념행사들을 대대적으로 개최하였고, 김일성 사망(1994.7.8) 3주기를 맞아 그의 생일을 태양절로 제정하였다. 김일성 생일 행사 준비를 위해 국민들은 갖가지 청소와 행사준비, 생산량 달성이라는 무거운 부담을 떠안으며, 고생 끝에 받아드는 것이 바로 명절공급명목으로 당에서 나오는 몇 가지 특식과 선물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일날」인민들에게 나오는 생일상이다. 짚으로 질끈 묶은 몇 근의 고기와 소주, 치약, 칫솔 등 생필품과 당에서 나오는 네모난 선물박스, 그리고 두 권의 교시노트(김일성-교시, 김정일-교시말씀)가 전부인 생일상은 그나마 인민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선물이다. 그러나 행복해야 할 선무의 「생일날」은 왠지 모르게 불안한 정서를 전달한다. 각가지 선물들을 받쳐 들고 있는 상의 실체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오는 긴장감이 바로 그것이다. 상부의 복잡한 사물들과 하부의 알 수 없는 신비함이 이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을 끊임없이 갈라놓는다. 이것이 단순히 생일상을 재현한 것인가? 생일상을 지탱하는 탁자가 분홍 빛 탁자보에 가려져 실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은 그 위에 올려져있는 것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태양절에 받아든 「생일날」의 실체이다. 어린시절 알록달록 사탕들을 입에 물고 마냥 좋아하던 시절, 그 사탕은 달콤함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그 사탕이 어떻게 만들어 진 것인가를 알고 난 다음부터는 그것은 결코 달콤할 수 가 없다. 선무가 바라본 북한의 모습이 바로 이 「생일날」과 같다. 수백만 명이 배고픔으로 죽어가도 빛깔 좋은 태양절 선물들을 만들어내야 하는 주체사상의 나라, 핑크 빛 세계 유일의 부럼 없는 나라, 그 나라가 바로 선무의 기억 속 행복한 나라이다. “우리는 모두 행복동이죠”, “세상에 부럼 없어라”를 아무리 외치고 외쳐도, 끊임없이 외칠 것이 남아 있는 세상이 바로 선무가 기억하는 그 나라인 것이다.




선무_그리움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08


선무는 지금 세상에 부럼이 없을까? 단정하여 알 수는 없다. 더 큰 혼란 속에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선무가 작품활동을 통하여 자신이 알고 있던 ‘부럼’이라는 단어를 정의하고, 그것의 가치판단을 스스로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앞 글에서 물었던 물음, 선무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는 자신의 관점과 또 다른 자신의 관점들을 마주하고 있다. 그 마주함을 통하여 선무는 자신을 정의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무를 바라보는 우리들은 과연 어디에 서 있는 것인가? 우리들은 선무의 작품을 어떤 시각에서 보고 있는가? 이제 우리 자신들의 정의내림이 필요하다. 그 정의가 범주화 되어야 하는 것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의 또 다른 관점들을 따로 떨어뜨려 놓고, 나의 관점과 다시 마주하게 했을 때 비로소 선무의 작품이 우리들에게 말을 걸 것이다. 이제 조용히 선무의 우렁차면서도 속삭이는 이야기를 들어볼 시간이다. ■ 백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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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아트 서울 `B-Side`전


두아트 서울(02-2287-3500)
2008-09-02 ~ 2008-10-12
2008-09-03 오후 4시

국제적인 현대미술의 생생한 현주소로 안내하는 아시아 대표 갤러리를 선언하며 새롭게 6월 문을 연 두아트 서울(doART Seoul 대표 도형태 www.doartseoul.com)이 그 세 번째 전시로서, 음악에서의 B-Side의 의미를 미술에 접목시켜 작가들의 참신한 시도를 이끌어내는 [B-Side]展(2008.9.3.수 – 10.12.일)을 개최한다. 데뷔 이후 10여 년 간 국내외에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해오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 현재 미술계에서 역량 있는 작가로 자리잡고 있는 30-40대의 국내 작가 22명은 이 번 [B-Side] 전시를 통해서 기존의 작품세계와 전혀 다른, 그들의 ‘또 다른 측면’을 소개한다.

B-Side 란, 음악, 음반에서 통용되는 용어로서 대중적인 히트송, 소위 대표곡으로 내세우는 상업성을 띄는 곡과는 반대되는, 음반사가 내세우지 않은 곡, 고로 완성된 곡임에도 A-Side인 정규앨범에 실리지 못한 비상업적인 곡, 또는 Instrumental 버전, 리믹스 버전 등을 일컫는다. 이런 의미를 발전시켜 음악인들은 부르고 싶은 다른 가수의 곡을 부르거나, A-Side의 미완성 곡들을 완성시켜 B-Side용으로 의도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음악인에게 B-Side란, 상업적인 스트레스가 없는, 숨겨져 있던 자신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휴식처 같은 의미이다. B-Side는 대중들에게 자신의 숨겨진 부분을 드러내는 채널이지만, 작가에게 있어 작업이란 언제나 신중하고 진중한 과정이기에, 가끔 예상치 못하게 B-Side의 곡이 히트를 하는 등 흥미로운 결과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렇듯, 이번 두아트 서울의 [B-Side]展은 작가들이 기존에 보여온 작품세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도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이번 전시는 전체적으로 작가와 화랑, 기획자 모두에게 있어서 B-Side의 의미가 성립된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첫째, 작가마다 그 동안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없어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작업 혹은 이미 만들어 놓은 작품이지만 자신의 메인 스타일과 달라 한 번도 공식적으로 보여준 적이 없었던 작업을 B Side라는 ‘틀’ 안에서 자유롭게 소개할 수 있다는 점, 둘째, 상업화랑이라는 곳에서 전시 작가의 이미 공증된 메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상업적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운 B-Side 작품을 선보인다는 점, 셋째, 기획자에게는 10여 년 동안 참여작가들의 작업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왔지만 한 번도 같이 전시를 할 기회가 없었던 이 작가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알려진 측면이 아닌 ‘숨겨진 측면’을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라는 점이다.

이번 전시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작가 개개인의 감춰졌던 B-Side를 처음으로 드러내게 함으로써, 작가들에게 고착화되어 있던 기존 장르를 탈피하여 새로운 시도를 만끽할 수 있는 공식적인 장을 마련한다는 데에 있다. 작가에게 있어 이번 전시는, 본인이 원했지만 시도하지 않았던 장르를 새롭게 개척하거나, 또는 ‘이 작가는 이런 작업만 한다’라는 대중들의 정형화된 기대치를 스스로 가차없이 뛰어넘어버리는 흥분의 지점이다. 동시에 이때까지 구축해온 자신만의 스타일과 작업과정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B-Side를 제안 받았을 때, 저마다의 반응과 사고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또 다른 면을 생각해보게 된다. 작가에게 있어 더없이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지점은 자신이 이미 구축해온 작품세계나 상업적 측면에 ‘맞추어야’ 하는 스트레스가 없고 여유롭다는 것이다. 여유롭다고 하여 작품 역시 여유로운 결과물은 아니다. 기존과는 다른 작업의 기틀을 마련하는 과정이기에, 작업에 임할 때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고 진중한 고민이 수반된다. 설치 작업만 고집해오던 한 작가가 막연히 머릿속으로 갈구했던 드로잉이라는 B-Side 작업에 실제로 부딪혔을 때 고민하고 고뇌하게 되는 지점, 그로써 표현된 참신한 결과물, 그것이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중요한 의의라 할 수 있다.

두아트 서울은 이번 [B-Side]展이 참여작가 22인 모두에게 그들의 잠재된 욕구들을 표출할 수 있는 역동적 공간이 되고, 관객들에게는 희소가치가 있는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의 장을 열며, 국내 현대미술 현장에는 이 작가들의 새로운 이면과 작업의 터닝포인트의 가능성도 함께 발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글 / 김성원(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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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길 개인전 `LAYER`


PKM 트리니티 갤러리(02-515-9496)
2008-09-03 ~ 2008-10-02

피케이엠 트리니티 갤러리는 2008년 9월 3일부터 10월 2일까지 가장 주목받는 젊은 사진작가중 한 명인 김상길의 개인전 ˝LAYER˝ 전시를 개최한다.

김상길 (1974년생)은 영화 혹은 광고 등을 통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시각 이미지들이 우리의 생활 속으로 유입되는 은유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연출사진 `모션 픽쳐` 시리즈, 온라인 상에서만 활동하던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을 실제 공간에 불러모아 단체 사진을 촬영한 `오프라인 커뮤니티` 시리즈, 텅 빈 사무실, 차가 한 대도 없는 주차장 등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전이적 공간을 담은 `re-mode-l` 시리즈 등 현대 사회의 단면을 복합적으로 담아내는 사진작업을 선보여 왔다.

그는 2003년 광주 비엔날레, 2006년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 최종 3인후보 선정, 2007년 리움 `플래시큐브`전, 2007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쿤스트할레의 `엘라스틱 타부`전 그리고 국립 현대 미술관 기획, 2007년 9월부터 11월까지 칠레 산티아고 현대미술관을 거쳐 올해 5월부터 7월까지 아르헨티나 국립 미술관을 순회한 `박하사탕`전에 참가하는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통해 국내외 미술 비평계의 관심을 받아왔다.

김상길은 3년만에 갖는 이번 개인전에서 한 직장에 속하지만 서로 다른 시간대에 근무하여 결코 만나지 않는 파트타임 근무자들을 한 화면에 담아낸 `오프라인`시리즈, 리모델링되어 오래된 흔적과 현대적 요소를 동시에 보여주는 건물의 모습을 담은 `Mode` 시리즈, 반복적으로 겹쳐진 건축적 요소가 만들어내는 날카로운 이미지를 화면에 담아낸 `Mode`시리즈의 하나인 `구조물`, 이상 3가지 시리즈 작품을 통해 동일하거나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하여 서로 상충되거나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층(layer)를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작가의 작품은 리움, 아트선재, 대림미술관, 다음커뮤니케이션등 국내유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최근 스위스 바젤 시립 문화 미술관에 총 11점의 `오프라인 커뮤니티` 시리즈 전체가 소장되었다.

또한, 9월 9일부터 11월 16일까지 열리는 제 7회 상하이 비엔날레에 `Mode` 시리즈 작품 3점이 출품된다.

글 / PKM 트리니티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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