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테이토에 있는 인터뷰중 읽을만한 단락 하나. 베를린 전시를 너무 감명깊게 봐서 구와바라 전을 잊고 있었다. 몇십년을 촬영한 대상임에도 분명 이땅의 사진가들과 차이가 있었다. 전시를 보는 중에도 대가리가 터질때까지 생각을 해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안터져서 그런가.
전시에선, 책으로 볼때의 감동이 많이 상쇄되는 기분이었다. 아는 사진이어서 그런건 아닌데, 왜 그런건지. 확실히 확대 인화는 그 사진자체를 분석적으로 읽게 하는 방법중 하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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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촬영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같은 것도 많으시리라고 생각하는데,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1965년에 제가 남대문에 있는 시경 외사과에 소환되어 심문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너무 두렵고 괴로웠던 때였습니다. 제 생각엔 중앙정보부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 같긴 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죠. 그때 25살이었던 저는 그저 의욕만이 앞섰던 시기였지요.
한 번은 또 덕수궁 옆에 있는 서울지검에 불려가 심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잘 안 되는 게, 제 비자를 법무부 출입국관리소가 아니라 당시 절 심문하던 검사가 내주었던 일이었습니다. 지금 같아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그때는 다반사로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제가 붙잡힌 죄목은 관세법 위반이었습니다. 당시는 잡지사 특파원 신분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촬영하고 있었고, 또 체재 기간도 길었기 때문에 나중에 체제비가 떨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한국에 남아서 사진을 더 찍고는 싶었고,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갖고 온 필름 일부를 팔아 체재비로 쓰려고 했던 것인데, 그것을 빌미로 잡혀 들어갈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던 거죠. 아무튼 그 뒤로 전쟁이 한창인 월남에도 갔고 러시아 같은 데에 가서도 취재했지만 그 당시 한국에서처럼 정신적으로 압박감과 두려움을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한마디로 공포 그 자체였죠.
- 구와바라 시세이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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