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 포스트 보드에서 푼글. 하도 옛날 문체라 손편지가 아닐까 했는데, 이메일이라...좀 김이 샌면이 없없지는 않은. 첫 대목에 박불똥에 대한 에피소드를 빼면 그닥 오이에 가까운..영양가의 글인데, 그냥 저냥 흐믓하게....재밋게들 사시는군....이란 생각으로 읽으면 뭐 그것도 그닥.
사실은, 이글을 올리는 이유 중 하나가. 글 중간중간에 약간씩 삐져나오는, '한국에서 뻔뻔하게 살아남기'비슷한 단어들 몇개를 읽으며....뭔가 짜.한 느낌때문이다. 핫핫.
p.s : 저어기....존명하옵는 림바우드님/angre님. 그날의 죄과를 사함받고 싶사옵니다. 간만에 해보는 부부 백병전이어서 많이 벙해져 있었다는. 전화를 끊고 보니, 못드린 말이 많더라구요. 죄송하단 뜻도 표하지 못하고...훌쩍.
- - - - - - - - - - - - - - - 절- - - - - - - - - -취 - - - - - - - - - - -선 - - - - - - - - - - - - - - - - - - - -
하여, 언제 책도 구경하고 감자의 삶도 엿볼 수 있는 자리를 가질 수 있기를 간원드리나이다. 신의 맘을 헤아려, 부끄러운 과거를 잘라낼 기회를 하사하시길. 그럼...(머리를 조아리고 퇴청.fade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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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효료수 (2003-09-21 17:08:57, Hit : 292, Vote : 0)
박 불똥 귀하
박불똥 귀하
님의 이름을 기억하오
1993년인가. 인사동 거리의 수도약국 맞은 편의 먹기와 한옥에서 덩그러니 홀로 머물 시기였오. 지금은 아쉽게도 고급 빌딩으로 변해버렸지만 그때는 한적하고 너무 고요한 나만의 공간이었오. 나는 모처럼 복잡한 굴레를 벗어나 조용하게 밤을 맞곤 하였소. 그런데 인사동은 아름다운 거리이고 보니, 세상과 마주치게 되고 그 중에 하나가 님의 기억이오.
나는 황◎배 심○수 윤○모를 포함하여 무더기로 미술관련자와 인사동 술집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었소. 1차는 맹숭하게 끝나 반 수가 넘게 떠나고, 2차에서 몇 순 배를 돌리며 미술판의 좌판이 펼쳐지었오.
그때 최대의 화제는 '민중미술이'였지 싶소 그런데 나는 그만 찬물이 엎어지고 말았오. 민중미술이 이 땅의 사도나 되는 그 날의 화제가 내게는 좀 거북하였던가 보오. 민중미술이 없다면 이 땅의 민주화가 오기도 힘들었다는 식의 논리를 끌어들이는 모순도(한국r민중미술에 껄떡거린 며루도 두어 마리 민중미술에 어찌 꼽사리 끼인) 있는 만큼, 앞 뒤 가리지 않은 성격인 나는 민중미술에다 민중문학 혹은 민족문학에 대한 논리를 끌어 들였오
1930년대의 민족문학은 어떠했는가를 떠올리게 했지요. 민족에 대한, 민중에 대한 글 쓰기와 독립정신과 운동이란 자체가 얼마나 위험하였으며, 가족과 친척 이웃마저도 죽음의 나락에 몰아 넣던 상황의 문학을 슬쩍 써먹었지요. "사실 80년 대 중반까지 다섯 손가락이 남아돌 정도를 제외하면 작금의 민중미술이 너무 우상화할 것이 있느냐. 시대가 너무 좋아 졌는데 무슨 일인들 못할 것이 있느냐"고 좀 기를 구박했지요
사실 나는 객의 입장이면서 민중미술이란 유일한 성벽을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어 버렸지요.
그 때 미술 주가가 떠오르던 윤샘이 한 말이 그것이오. "강원도 탄광 막장에서 민중과 함께 하는 박불똥 같은 사람도 있다"고
윤샘이 말하는 비장의 무기는 발불똥 장군이었오. 강원도 어느 탄좌 막장에서 민중을 이해한다는 대단한 사람이란 것을
나는 리바똥 장군을 원 체 잘 아는지라,리바똥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산다는 박불똥이란 말에 피식 웃음이 터지고 말았오.(이름이 강하고 재미가 있어서)
그리고 나는 그 리바똥과 발불똥이 겹쳤는데 그 이름이 지금도 생생하였지 뭡니까. ㄹ과 ㅂ 발음이 같은데다 항렬-자 까지 같으니 말입니다. 그 날, 윤샘은 속이 상하여 술좌석 중간에서 벌떡 일어나게 되었소. 심정수님은 자신이 민족이고 민중이고가 아니고 한국인의 가슴을 표현하고팠을 따름이라 하였오. 시간이 흐르면서 미안함이 감돌아 옴도 인생인가 보오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잡초와 같은 발불똥의 저돌성을 떠올리며, 임자[主人]을 만나면 반드시 성공할 거란 생각을 그때 한 것 같습니다. 원래가 미술[아트]에 대한 편린이 있어, 절대적인 사상이 존재하는 몇 몇을 빼고 나면 미술판에서 똑똑하다는 자들은 다 한때는 예술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너무도 잘 알기에 '임자'가 떠올라 멤 돌았지요. 어쩌면 미술 자체는 엄청 고지식하지만 항상 버려야 한다는 의지 또한 엄청난 장점이니까요
대기업의 부채가 곧 자산이라면 고지식한 게 장땡(10×10)일 수 있지요. 임자를 만날 때까지 멋모르고 무럭무럭 자라니까요. 강요배나 이두호 등등 위시하여, 의식에 물이 괜찮게 든 작품이 자연스레 배설되기까지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운도 따라야 하고요. 동굴에서 고개를 숙여온 박이라면 반드시 큰 인물이 되리라고 예상은 그때 와 있었다고 할까요
사람은 숙일 줄도 모르면 얻을 줄도 모르겠지요. 예술에서 숙여야 할 이유가 바로 철학이 되지 못한다면 그건 졸개나 똘마니 되기 십상이지요. 님은 역시 11년 전쯤의 내 느낌이 정확하였던 것 같소. 강자는 오직 '느낌'이란 생살부만 있을 뿐이지 않소. 또 하나가 있지요. 오직 적은 없고 다스림만 있다는 것을. 좀 똑똑하고, 좀 세력을 가지고, 좀 벼슬을 하고, 예술인 체 한다해도 거기서 거기까지란 걸. 진리를 팽개치고 손익분기점의 수판을 팅(퉁)기는 인생은 예술에서 질색으로 아는 사람이로 나 역시 융통성이 없습니다.
이렇게 이익을 챙길 줄을 모르는 건방으로 인해 나는 인생을 실패한 사람이오
많은 사람들은 나를 싫어할 수 있소. 생각해 보시오. 실패한 사람에게 붙거나, 알 일이 없지 않소. 뭐 별로 이익 되는 게 없어 보인다는 자체가 귀찮을 수도 있소. 또한 자신과의 돈독한 관계를 맺어온 대부분의 주위사람을 거랑가[川]의 돌로 아는 데 누가 감히 곁에 올 수 있었겠습니까.
나도 그 덕분에 내 길을 갈 수 있었다고 할까요. 멸치와 자주 쓰쓴데면 옷이고 몸이고 온통 비린내 투성이니, 그런 세월에 그만 비린내가 구수해지면 골치가 아프지요. 같은 색깔은 예의가 중요해서 피곤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세월 따라 빨리빨리 마주보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편했습니다. 어쩌던 태어나서부터 사사로움과는 그리 인연이 잘 닿질 않더라고요. 그렇지만 그 만큼 멍청함도 사실이요. 멍청히 내려다 볼 수 있음도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상대의 수준[상식]따라 숫-까 암-까를 식별할 수 있어서 좋았고, 시간 아낄 수 있어서 좋았지요. 젊은 날에 포석이 좋았던지 미술 외 분야에 두루 관계가 좋아 사람 기러븐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사실 미술인과의 관계는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나 만큼 수많은 미술인과 가까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미술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나를 싫어할 희망이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기에 예의를 별로 차리지 않아도 스스로 이유를 달지 않더라고요. 반론이나 반항은 거의 있을 수가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님이 우둔하다고 하였듯이 여(余) 또한 우둔합니다.
막장이라면 생사의 강인데,그러한 강에서 낚시를 하고 세월을 엮어온 님께서 내게 따스함을 표현함에 어찌 감동이 아니 되오리까. 님은 역시 범부가 아닙니다. 답장이 늦음을 넓은 아량으로 받아 주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많은 비사를 얻을 수 있지 싶습니다. 나는 참 맛의 미술이 정녕 보고파 한없이 목이 말라 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운이 없었습니다.
님도 마찬가지일 꺼요. 탄광에 있을 때는 탄광의 사람이 유일할 수도 있소. 그러나 그 시간만큼 더 소중한 시간이 없을 수도 있소. 나는 님의 무한한 잠재력과 과거여행을 인정하오. 그리고 무릇 그릇도 크고 단단하기가 무쇠와 같다는 것도 느끼오. 당당한 자신감도 있음은 몇 번 느낀 적이 있오. 그런데 너무 포괄적이고 세상을 쉽게 믿고 다른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거기에는 장단점이 있을 것이나 나는 그렇지 못함을 이햐하길 바랍니다.
나는 함부로 맞-수 하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아는 것과 맞-수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상식과 에티켓이 다르듯이 말입니다.
나는 구더기 한 마리도 이유 없이 살생하지 않지만 적어도 모기장 안에 들어온 모기는 생명을 거두어들입니다.
이미 피가 통통 묻어 한없이 배가 부른 모기를 죽여 무엇할까마는 그래도 죽이는 게 내 법입니다. 손바닥으로 쳐서 죽으면, 그리도 선명한 피가 손바닥에 벌겋게 틔는 적이 아니 있겠오.
나는 님의 확장된 사고가 암⊙수 까마귀가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묘한 의식으로 흐르지 않길 바라오. 님의 남다른 그런 고민이 압축된 미술을 꿈꾸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오. 그러나 운이 좋소. 그건 만나게 되면 말씀드리리라.
요즘은 시대가 좋아 미술하는 분들마다 나이롱마다리푸데-글을 쏟아 내는 실력이 상당하오. 그런데 잘 썩질 않고, 온갖 곡간이며, 창고마다 여기 저기 그대로 방치된다는 데 문제가 있소. 삼성재벌은 무엇이던 다 잘하듯이, 미술한다는 그 장점으로 온갖 곳에 손을 데어 아니 가본 곳이 없다면 얼마나 피곤하겠오.
여가 <작가>라는 실체에 접근함은 바로 미술의 혼란 때문입니다. 일회용품처럼, 알만한 자들이 글도 나일론-팬티 같은 글을 아쉬울 때는 사정없이 쓰고 그냥 버리면 땅이 썩고 몸살을 하게 되지요. 비닐-막으로 인하여 땅이 숨을 쉬지 못한다는 점이 서글퍼옵니다. 땅이 아파서 신음소리를 하는데도 더 파묻질 못해 안달을 하니 말이오. 설사-글을 아무데나 배설장소를 선택함에 상당히 신중을 기하는 편이 옳다고 보오.(님의 글은 두고 하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결국 그러한 글은 다시 미술인의 뇌와 가슴에 축적되어 쌓이오. 지금 미술계는 글을 짓는다고 생각하지만 온통 고이 다듬고 갈고 닦아온 민족언어에 현학적이니 미학적이니 미사여구니 하는 물감만 덧칠하고 있소. 미학을 한다는 것도, 미술사에 학위를 받아 글 쓰는 것도, 문화부의 기자들 글도, 잡지사 기자들의 글도 조심성이 필요하다고 믿소. 이제 미술이론과 평론, 미술지식의 석사, 박사 아닌 사람이 없는 풍토에서, 미술은 늘 언어에서 문학의 서자는 아닐 것이오
나는 인생을 실패했고 곧 그 말은 나의 문학은 실패하고 있었다는 것과 동일 선상이오. 나는 나의 실패를 자명하게 알았기에 한없이 답답한 공간에서 이십 수년을 문학에서 침묵하고 있었오. 길이 열리질 않아, 어느 해에는 하루 열 여섯시간을 보름이 넘도록 계속 잠을 자기도 하였오. 이제 내게는 문학이 있거나 없거나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게 되었오.
하여간에 배짱하나는 두둑했는지, 염라대왕이 좀 의심하더라고
이도인의 이름이 천수(天壽: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아들을 '천수'외에는 부른 적이 없슴)니, 천수를 누리고도 게을러서 또 천수를 누리면 어떡하나 고심하더라고요.
어쩌던 미국은 일본을 강자의 법칙대로 원자폭탄 두 개로 한 게임 간단히 주워서 잘 챙기면서 옆에 있는 한국이란 임자 불투명한 보따리까지 끼워 갔오. 임자가 하나인 보따리가 두 개라서, 엄청 한국전쟁에 증권-실패도 한 것 같았지만 지금은 참 알짜배기 경제식민지로 남한 만한 주식이 없지요. 주체는 그래서 진리임에도,
한국이란 국가는 세계시장에 점점 목이 조이고 갑갑한데, 본인 역시 문학을 한다는 게 얼마나 더디었딘지 모르겠오. 이십 년을 거의 동굴 끝으로만 여행한 지 모르오.올해는 자그만 계획이 있어 바깥나들이를 하게 되었오. 행차에는 경계가 필요하여, 근위병 이상의 친위대를 투입하게 되었오. 오만한 글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바입니다. 미술을 얕보기 위해 오만한 건 결코 아니었소.
곧
마주보며 하고프고 듣고픈 이야기를 함께 할 날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지는 않을런지요.
4336년 9월
삼가 정 효료수 인사합니다
박불똥 (2003-09-01 08:16:23)
'민미협'과 '미술인회의' 게시판에 올라온 정효료수 님의 이런저런 글들을 때로는 공감하며 때로는 난감하며 유심히 읽고있습니다.
나는 님에 대해 일면식은 물론이고 과문한 탓에 이름조차도 이전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님이 누군지도 역시 모릅니다. 그 분을 비롯한 몇몇이 정 효료수 님에 대해 왜 그리 노골적으로 마다하는지 알 듯한 부분이 전혀 없는 건 아니나 여전히 모를 부분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님이 민미협 게시판에 등장하게 된 시초의 사연을 다만 님과 ♤♤이 님 사이에 몇 합 주고받은 전자 글을 통해 이해할 뿐이라서 무어라 적합한 반응의 말씀을 드리기가 좀 어렵고 조심스럽습니다.
나는 낯선 사람한테 가까이 다가가 새로이 사귀거나 하는 일에 서툰 편이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제고 기회가 여의하면 만나, 술 한잔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재민 (2003-09-22 00:22:10, Hit : 30, Vote : 0)
밀알
Good!!!!!!!
한잔 했소이다!
Good!
그대의 영혼을 높히 평가하오.
살리기 위해서 죽어야하오
어쩌면 그대와 그리고 나 까지도 말이오.
죽어서 온당하다면 죽어버립시다.
운이 없다는 것! 속세의 미련일 뿐이오.
하지만 그대는 죽지 않았소.
죽을 수 없다는 그대의 봄짖이 날 항상 아프게하오.
님의 말씀처럼 그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이 시대 문학이 죽었다고 생각하오.
그처럼 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이 나라 미술이 죽었다고 생각하오.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오.
만약에 미술인 회의가 그 꽃을 피우지 못한다면 미술인회는 죽어서 거름이 되어야하오.
사랑하는 그 무언가를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거름이 되어야하오.
나 그리고 당신까지도 말이오.
당신을 다시금 높히 평가하오.
그대와 그대가 사랑하는 영혼을 위하여...
나와 내가 사랑하는 영혼을 위하여... 오늘 나 왜 이러지?
이재민 (2003-09-22 08:22:01)
위의 내 글은 삭제한 글인데 쓰기가 무섭고만요.
어제 만취상태에서 쓴 글이라 지워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박불똥님과 너무 친한 척하지 마십시요. 속 보이는군요.
박불똥 (2003-09-22 14:28:43, Hit : 37, Vote : 0)
[re] 정효료수 님께.
정효료수 님.
편지를, 비록 전자게시판을 통한 것이긴 하나 예전 봉함종이편지와 흡사한 분위기의 편지를 받고, 그것도 생면부지의 뜻밖인 사람 정효료수 님한테서 받고 한순간 거꾸로 도는 시계바늘을 보는 듯한 환각을 느꼈습니다.
또한 편지내용이 아주 잘못된 사실에 바탕하고 있어서 우습고 당혹스럽기도 하였습니다.
좀은, 허구의 작문에 불과한 거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지요.
그리고 불쾌한 한 가지, 단순오타로 양해하기 어려운 이름자 오기에 이르러서는 님이 내게 그 편지 쓴 까닭을, 겨우 고약한 조롱 따위나 속셈한 게로군 그리도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효'료'수를 정효'로'수로 그릇 타자한 이한테 정색하며 교정을 낱낱이 바라곤 했던 님의 평소 태도에 비추건대 '박'불똥을 '발'불똥으로 연거푸 몇 번씩이나 설마하니 실수로 잘못 적었을 리야 없을 테니까요.
하긴 내 이름이 좀 유별스러운 나머지 여러 모양의 재밌는 '착란'을 더러 겪기는 합니다.
가장 흔히는 박불'동'이려니 넘겨짚는데 박'뿔'똥이라 받아쓰기도 예삽니다.
박'말'똥은 우스개라 쳐도 박'물'똥쯤이면 다분히 악의지요.
그런데 정효료수 님은 한 술 더 떠 名이 아닌 姓을 '박'에서 '발'로 오랑캐화 하였으니, 그 무례를 의당 사과 받을 만하지 싶습니다만 강요는 관두고 님의 자발에 맡기겠습니다.
사실, 님의 편지를 대하고 처음엔 그냥 무심히 지나치는 게 상책이라 여겼습니다.
그 내용이 엉터리라는 걸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 테니 굳이 바로잡고 말고 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겁니다.
정효료수 님 등 영문모르는 몇몇 분을 위해 그 착각부분을 바로잡으려 들었다간 안 그래도 님의 '도배성 글' 때문에 짜증스러워하는 여러 방문객들께 자칫 공연한 피로나 더욱 끼치는 결과 낳지 않을까 염려도 되었지요.
하지만, 이재민 님의 리플이 붙고 또 그것을 즉각 활용한 님 특유의 따발총전술이 이미 발휘된 판국이니 그예 이렇게 답장을 쓰고 맙니다.
정효료수 님.
워낙 상식이라 새삼 이런 말씀을 드리기 겸연쩍으나, 여기 미술인회의 자유게시판은 공론의 마당입니다.
당연히 개개인의 출입과 발언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곳입니다만 동시에 서로를 괴롭히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함께 어울릴 줄 아는 나름의 질서를 자율로 지켜야 옳은 곳이기도 하지요.
부탁컨대, 우리 중 다수가 님을 존중하듯이 님도 님의 글 싣기 방식에 있어서 비록 소수일지라도 타인이 느끼는 엄연한 불편에 대해 좀 더 유의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차후로는 나 박불똥 개인한테 건네실 소감 더 있거든 사설메일(bdsee@hanmail.net)에다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정효료수 님, 끝으로 가장 중대한 착오하나 짚고 마치겠습니다.
님이 1993년 경 어느 술자리에서 윤범모 씨로부터 들은 얘기("강원도 탄광 막장에서 민중과 함께 하는 박불똥 같은 사람도 있다")는 강원 황지의 '광부화가 황재형'을 두고 한 것인데 아마도 님의 기억에 혼선이 왔나 봅니다.
이름과 사람을 잘못 잇는 그런 경우도 나는 여러 차례 당한 바 있어 그다지 낯선 꼴은 아닙니다.
'황재형'으로 오인된 건 이번이 두 번째나 '박재동'으로 인사를 받은 적은 그 보다 더 잦았지요.
아무튼, 정효료수 님의 돌출한 편지를 그냥 무시하려던 나의 애초 태도도 예의가 아니고 지금 이렇게 답장을 띄우는 것도 썩 마땅하지 않고.... 하여, 님께 다시 한번 당부 드립니다.
이 글에 대한 답장 혹 쓰시거든 위에 밝혀둔 개인 메일로 보내주십시오.
언제고 만나 뵙고 소주 한잔 나눌 일 숙제로 남기며 이만 줄입니다.
여불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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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인은 왜 '작가'라는 허명에 목을 매고 꿱꿱 거리는가 - 정 효료수의 글
미술인을 작가라 할 이유가 없다
문학작품이 감동임을 모르면 예술에서 새로운 길을 갈 수가 없다. 소설이 무언지도 모르며 감동적으로 읽은 문학작품이 한 편도 없었다고 말하는 잘난 사람들, 그네들을 무어라고 설명할까. 소설을 왜 봅니까하는 예술학도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몇 년 뒤를 상상하게 된다.
그래서 차라리 만화나 영화로 짜깁기 한 오락물일 지라도 열심히 보길 바람이다. 하기사 웬만한 소설들은 다 만화와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시간 바쁘게 일일이 활자를 볼 필요가 있는가. 영화를 보면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이면 고생 안하고 보는데 굳이 원작의 소설을 읽어 무엇 하겠느냐. 그러나 무게와 깊이를 지닌 걸작소설일수록 영화로 보기 전에 소설을 먼저 읽는 것이 생생한 의식을 바로 접하는 고급독자의 길임은 기본상식이다. 걸작소설들은 영화로 성공한 적이 거의 빈사상태이니, 역시 소설의 위대함은 종교와 같다 아니할 수 없다. 영화는 일방적 강요와 시간이라는 그 길이에서 절대로 소설을 흉내 낼 수 없다. 소설의 꼼꼼한 묘사와 사건들을 이미지로 전달해야하는 영화가 어찌 소설이 비견할 만 하랴. 세세하도록 기막힌 묘사와 치밀한 사건들을 백치에 가깝도록 생략하면서 만든 영화가 문학의 품격을 결코 따라 잡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소설은 혼자 보고 영화는 함께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문학의 고급독자라면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는 경우 원작의 감동이 왕창 무너진 배신감에 무진장 실망했을 때가 많을 것이다. 장편 그리고 대하소설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가 없다. 오직 소설 그 자체를 읽지 않고서는 그 소설이 무슨 내용인지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종합예술로 치부한다. 정치도 종합예술이다. 그래서 그들은 소대, 중대, 대대, 연대를 거느린다. 영화와 정치는 혼자 할 수 없어서 떼거리로 한다. 그러나 소설은 소설가 혼자서 소설을 쓴다. 그 커다란 우주를 혼자서 만든다. 소설가의 고독을 아는가. 장편소설, 대하소설이 쓰여지기까지 소설가의 무한한 영적인 힘과 사랑과 용기를 아는가. 소설이 인간의 무한한 행복을 만들고 용기와 지혜를 만들고 헌신과 사랑을 만들고 평화와 평등을 만들고, 이승과 저승을 여행하게 만든다. 그 우주를 만드는 소설가를 ‘작+가’라고 하자. 그게 무슨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한국미술인이 유독 <작가>에 달라붙어 명예나 권력처럼 가지려고 하는 그것이 작가라는 칭호인가 말이다. 도대체 암행어사가 아닌 패들이 어사의 마패를 탈취하거나 마패를 감쪽같이 복재 하여 어사로 위장해서 어쩐다는 말인가.
나는 감히 말한다. 소설이란 도덕을 모르는 인간은 예술을 함부로 거들먹거리지 말라고, 자격도 없고 예술가일수는 어림반푼도 없다는 건 거짓말이지만. 작가라고 스스로 말하는 미술인의 이름은 스스로 함정에 빠진 엄청 위험한 짓이라고. 그들의 모든 것은 얼음 조각처럼 녹을 것이며 벽에 부딪친 유리공예처럼 산산이 파괴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술인은 이제까지 너무도 쇼에 익숙해져 있다. 그 모순된 행위를 미술은 사과하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다. 미인이 작가라 하는 것은 고의성이 다분한 몰지각한 행위다. 그것은 절대 언어의 착오로 인한 실수가 아니다. 미인이 사회의식에 무지(문외한)하다하지만 그들은 세상에 대처하는 능력은 뛰어나다. 예술은 보통 사람들에 비해 도덕성에서 월등히 우위를 점한다고 착각하여왔다. 만약 미인들이나 그 주위에 사람들이 이 작가라고 하는 고의성이 다분한 파렴치한 행위에 대하여 충격을 받지 않으려 한다면 그건 아주 위험하다.
나는 미인들이 충격을 받길 원한다. 물론 미술 위에 기생하는 온갖 잡인들은 행위를 사과하지 않음이 당연하다해도, 미술은 분명한 사과가 필요하다. 사과에는 일본무사처럼 할복자살로 사과하는 방식도 있고, 닉슨처럼 현직 대통령직을 물러나는 것도 있으며, 백담사에 가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냥 앞으로 <작가>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않으면 문제될 게 없다.
우리는 국민의 정신을 좀먹는 어떤 집단에 대해서는 용서할 수가 없다. 작가라고 위장하는 집단은 국민의 세금을 교묘히 축내는 위정자들의 정신을 닮을 수도 있다. 일반의 국민들을 업수이 여기려는 <작가>라는 그 방법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영원한 강을 만들려는 수작일 수도 있다. 한국현대사에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 지식에게 길고도 쓰린 상처를 안겨 줄 것이다. 미술이란 고무인간처럼 천박한 자본에 기생하며 지식을 엄청 업수이하며 악용하였던 증거들은 너무 많다. 그러나 한국에 지식을 가졌다는 사람 중에서 미술을 재단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특히 대문필가인 작가들은 너무 인간적이랄까. 아무튼 방임하였다. 그러니 다른 자들은, 미술이 기고만장하는 그 앞에도 그 누구 하나 말을 못했다. 미술은 점점 몸뚱이가 불어나는 ‘작가’라는 거식(巨食)동물로 성장되었다. 어떤 수작? 이나 어떤 짓거리? 어떤 변태? 도 예술이란 이름으로 면죄 받는다는 착각 속에 뭣대로 행동한 사건들이 신문과 방송을 잘 도배하여 왔다.
미술은 성역이자 성역이 아니다. 작가라고 하는 고의성이 다분한 행위를 정당화시키려는 이기의 집단논법이다. 자성은커녕 몰지각한 허구는 말[언어]로 다 표현할 길이 없다. 정말 예술을 하는 분-이라면 작가라는 면류관을 벗어라. 누가 네게 작가라고 하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었던 자 보지 못했다. 실수와 책임은 분명히 구분해라. 실수와 책임이 무언가는 아래의 예를 보면 이해가 되리라.
호주의 과학성장관이던 피터맥고란은 수백만 달러의 거부[甲富]임에도 1500 호주달러의 여행경비를 잘못 계상하여 사임하였다. 그는 “분명한 실수였다. 그러나 그 실수가 국민세금을 축내게 만들었기 때문에 기꺼이 사임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닉세리 연방 상원의원도 겨우 1800달러(22만원)정도의 여행경비를 잘못 계상하여 문제화되자 손목-동맥을 끊어 자살을 기도해 절명 직전까지 갔었다. 호주는 워낙 넓고 의회가 자주 열려 실수가 잦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수였다고 해서 책임을 면하지는 못한다. 실수는 인정하되 그 실수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함으로써 국민의 세금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한다 는 호주의 시민정신과 정치, 그 뒤에는 의회행정처 직원들의 과감한 폭로와 야당의 집요한 공격이 정의를 바로 세웠다고 한다.
미인이 지식인인가 . 미술대학이 지식인인가 . 미인이 지성인가 아니다. 미술대학의 교수가 지성인인가? 미술에 있어 예술가라 하는 사람이나 미술대학에서 실기를 가르치며 평범한 미술사를 가르치며 지식인이 된 것처럼 착각하지 마라. 스스로 최고의 지성임을 착각하는 교수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문학과 예술의 성지 프랑스를 보라. 한 때는 프랑스 말을 할 줄 모르는 유학생은 학위도 주지 않았다. 지식인의 정의 내림, 작가의 정의내림이 이 땅에서 얼마나 개판인가는 앙드레 말로가 팡테옹에 안치된 것과 프랑스 지식인 사전의 출간에서 풀어보자.
앙드레 말로는 프랑스 ‘위대한 인물들의 안식처인 팡테옹에 안치되도록 결정 났다. 문인으로서는 볼테르, 장자크, 루소,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에 이어 다섯 번째요 5공화국으로선 7번째로 팡테옹에 들어가게 되었다. 말로는 <안간의 조건>과 <희망>등의 한국민에게 친숙한 작가(미술인이 생각하는 수준의 작가가 아닌)이며 철저한 반 식민주의자요 반 파시스트주의자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고 항독 레지스탕운동의 전사이며 아울러 드골 정권의 문화부장관도 지냈다. 말로는 죽음 속에서 프랑스 지식인 사전명단에 오르는 유일한 정치적 경력을 가진 지식인이다. 프랑스 지식인 사전은 지식인을 정의 내림에 있어 정치적 경력을 선택하지 않은 참여(앙가주망)에 가치를 선택했다. 아울러 정치적 경력을 선택한 지식인은 명단에서 모두가 제외되었다. 다만 말로만이 위대한 작가이자 위대한 항독 레지스탕 투사로써 명부에 등재되었다. 참여 지식인, 참여라는 수식어를 부치지 않아도 지식인이란 사회에 대한 참여를 자신의 학문에 대한 천작으로 뒷받침하는 자가 아니던가. 사회참여와 사회적 책임은 지식인의 등급을 가를 수 있는 잣대가 아니던가. 아울러 진리를 추구하는 도덕적 특성의 구현체로서 하나의 이데올로기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지식인이란 주장도 팽팽하다.
남이 장에 가니 거름 지고 장에 따라 간다고 남이 지식인하고 지성인 하니까 모방에 천재들인 약삭빠른 자들이 모두 자신들을 지식인이나 지성인으로 거들먹거리고 그 짐-값 따라 무리 전체가 무조건 <작가>랍신다.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고 작가를 작가라 하니 미술이 여름밤 개구리 울어재끼듯 작가작가 한다. 미인은 미인일 따름이다. 오직 예술인이다. 미술인은 참으로 위대한 예술의 길을 가기위해 살신성인일 지라도, 미술이 사회에 거들먹거릴 위대한? 이유는 없다. 작가라는 벌거숭이 임금의 옷을 입어야 할 이유는 더 더욱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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