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보니...영 맘에도 안들고, 문제도 많은 듯한데...잘 짚어내긴 힘드네요. 여러분들께서 좀 집어내 주시면...감샤드리겠습니다. 확실히...사람은 맘이 편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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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케냐_DOCKING POLES, Venice, Italy_흑백인화_1980

최영진 사진
마이클 케냐와 최영진씨의 사진이 공통점이 없을 것같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예민한 지점에서 접촉하는 부분이 있다. 정말 지겨운 이야기의 주제, 디지털이라는 모서리. 두 섹터의 사진 모두가 내용상 큰 말거리를 제공하는 전시는 아니어서 사진자체를 이야기할 재료는 사실없다,지만. 그들이 좌표된 위치는 꽤 절묘한 구석이 있다.
"그 순수성은 전통적이며 수공적인 은염 프로세스(Gelatin silver process)를 통해 빛을 발하고 있다. 흑백사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은입자의 변주는 사진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정제된 물성을 느끼게 한다. " 라고 쓰여진 마이클 케냐의 전시 팜플렛은, 작지만 꽤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다. 마이클 케냐의 이번 전시 프린트는 모두가 세피아 토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토닝된 흑백사진이 무슨 문제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모두가 표백(브릿지)과 토닝의 두단계를 거친 사진들이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든 브릿지 과정을 거치는 프린트들은 자체 내에 가지고 있는 톤의 부드러움과 단계들이 상쇠 됨으로서, 사실상 은염 프린트의 가장 큰 장점인 연속 계조의 사진 특성을 상당부분 상실하고 만다. 실제로 세피아 토닝된 은염프린트와, 흑백 필름을 세피아 색깔로 프린트한 컬러 인화지를 보면 의외로 컬러인화 쪽이 더 풍부한 계조를 가진 것을 알 수 있다.(물론 단순화된 계조로 인해 조색프린트가 더 눈에 띄여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브릿지 방식의 토닝이 일정부분의 계조를 희생한다고 했을 때, 어느 정도는 전통적인 “은입자의 변주”에는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마이클 케냐의 사진이 이미지로서 아름답고 일정부분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아름다움의 대부분은 단순화되고 스플릿된 톤에서 오는 (거기에 표백된 입자의 이미지가 더해진) 심플한 이미지의 자극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지점이 굉장히 미묘하고 사소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일.반.적.인.경.우. 디지털 인화로 나오는 세피아 색깔의 프린트가 세피아 토닝된 젤라틴 실버 프린트보다 상태가 나은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번 마이클 케냐의 전시사진이 확실하게 "수공적인 은염 프로세스(Gelatin silver process)를 통해 빛을 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하게 "사진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정제된 물성을 느끼게" 하고 있는지는 잘 생각해 봐야지 않을까. 개인적인 취향으로 따져도 정말 마음에 드는 프린트였고, 진짜 칼같은 프릿지/토닝 테크닉이었지만, 그 사진 이미지들이 현재 출현한 다른 사진 출력매체에 비해 효과적인 미디어였는가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말하자면, 이번 전시 사진들의 톤이나 색채가 디지털의 그것과 변별성있는 “흑백 사진만이” 가질 수 있는 이미지를 구사했는지는 깊이 생각해볼 일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마이클 케냐의 전시사진에서의 토닝 컬러 조절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지만, 이런 정도의 단순한 계조를 구사하는 디지털 출력이라는 관점에서는 사실 놀라울 것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날로그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만, 그것은 아날로그가 타 매체보다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지점을 확보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최영진씨의 전시도 입장면에서는 유사한 점이 있다. 올해 업계의 화두중 하나가 디지털 랩이었고, 그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우고 한 디지털 프린트 전시였던 만큼,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 기술적 완성도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역시 케냐 경우와 마찬가지로 “(* 이번 전시작품은 디지털 흑백전용장비를 이용하였는데, 기존의 흑백프린트(젤라틴 실버프린트)에 비해 대형 확대(110cm X 110cm이상)를 했을 경우 풍부한 개조표현은 물론이고 보존성에서도 탁월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란 전시 팜플렛을 값할 만큼의 퀼러티였느냐는 것은... 가늠하기 어렵지 않았는가 싶다.
일단 찍혀진 대상자체가 그 프린트의 질을 알 수 있는 일반적인 피사체가 아니었다. 갯벌을 찍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피사체의 특성상 (특히 맑은 날) 하이라이트와 새도우의 노출차가 엄청나고, 촬영 각도에 따라 노출을 변경해얄만큼 노출 변동의 폭이 큰 풍경이라 상당히 까다로운 대상이다. 강한 광선 아래서 촬영을 하게 되면, 어지간한 감감에도 콘트라스트를 잡을 수 없는 케이스라, 갯벌만을 단독으로 작업한다는 것은 기술적으론 상당한 위험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모든 요소들을 온전히 감당하고 훌륭한 디지털 출력이 되었다면, 정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을 테지만, 전시 사진은 그렇지 못했다. 아날로그로 작업해도 계조를 살리기 힘든 대상이었던 만큼, 하이라이트에서 계조가 연속되지 못하고 끊어진다던지, 무리하게 중간 톤을 살려냄으로 평평한 계조 진행이 되어버린 것이 안타까웠고, 무엇보다 이미지의 질만을 따져봤을 때 아날로그 대형프린트보다 얼마나 나은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을 촬영했다는 것이 많은 의구심을 들게 했다. 더군다나 각개의 상황을 계산해서, 각각의 컷마다 다른 데이터를 잡아 현상을 해야 하는데도 120 롤필름 사용이라는 방법은 여러 가지로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대형 와이드 프린트에서의 디지털의 장점을 백분 보여준 전시라는데에는 이견이 없다. 또한 제대로 된 기술적 습득이 없이 갯벌작업을 한 사진가라면, 열에 아홉은 분명 최영진씨의 이미지보다 더욱 거칠고 콘트라스트 조절이 되지 않았을 거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매체는 언제나, 기존의 세력을 흡수할 정도의 강력한 메리트가 있었던 것을 기억해 본다면, 이 전시에서 계조의 불안함을 느낀 사진가 어느 누가, 자신의 필름을 암실이 아닌 디지털랩으로 가져가겠느냐는 대목에선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 새로운 미디어와 출력법이 난무하는 사진의 무림에서 어쩌면 표식으로 남을 지도 모르는 두 전시였지만, 일정부분의 성공을 제외한다면 두 전시 모두 새로운 환경을 제시하는 것정도의 금을 그은 것이 아닌가란 느낌이다. 마이클 케냐가 청담동 화랑가에 새로운 재화가치로서의 사진유행(본인도 원했을 진 모르지만) 라인을 형성하려고 했지만, 사실상 은염 인화가 미래에 수공업적 미디어로 남을 수 있는 기술적 정착 기반을 다소나마 손상시켰다는 혐의를 가질 수도 있으리라 생각되고. 또한 최영진씨의 개인전은, 시간이 다르게 발전되고 있는 디지털 사진 출력에 대한 갤러리들의 인식을 불식시킬 수도 있는 기회였음에도, 여러 부분에서 기술적 의구심을 불러일으킴으로 오히려 역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일으켰다고 본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결국은 이미지의 말들이 어떤 소스에서 나오느냐는 것이 가장 관건이겠지만, 분명 거기에 따르는 테크놀러지의 환경 변화 또한 절대 무시 못할 일이라면, 각개의 전시/각개의 작가가 어떤 바둑판 위에서 수를 세고 있는지 또한 면밀히 보아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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