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작업으로서의 강홍구씨는 진짜....내하곤 너무 다르지만....그래서 그 주변 것들도 좀 그렇긴 하지만.
글로서의 강홍구 이미지는, 솔직히 많이 접고 들어가는 편이다. 일전에 사진비평에 쓰인 인터뷰를 보고 살며시 꼬리를 내린 적이 있었는데, 이번 포럼a 에 실린 글을 보고 완전히 뻗어버렸다.
자만 백배해 말하자면...작가의 글은 이론가의 글보다 이천 팔백배 강하다. 이미지를 생산하는 자의 일갈은, 말릴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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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을 만드는 방법 -스탄 형제의 경우
주의: 본 리뷰는 철저하게 사적입니다. 공식적인 리뷰를 원하시는 분은 읽지 마십시오.
Doug & Mike Stern
박영덕 화랑
2003. 4.17 _ 2003. 4.30

black pulse#17 _48cm X 91cm_ lambda digital C-print _2002

structure of thought#6 _101cm X 86cm_ MIS and lysonic inkjet print on Thai mulberry, gampi and tissue papers, with wax, encaustic and vanish _2001
강홍구 (작가)
1.
독촉 전화를 받는다. 10일까지 리뷰를 써내라고 한다. 아마도 힘들 것 같다고 답한다. 물론 그 전에 이 메일도 왔고 얼굴을 보고 원고를 써달라는 부탁도 들었다. 그런데도 쓰기가 싫다. 우선 글 쓰기가 싫고 두 번째 핑계로는 리뷰를 쓰고 싶은 전시가 별로 없다. 전혀 없다는 것은 지나치니까 거의 없다고 해두자. 어쨌든 전시를 본 다음에 도대체 생각하기가 싫다. 아무런 자극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미술에 진짜로 흥미가 사라진 것일까? 열심히 전시회를 보러 다니는 걸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최근에 본 전시만도, 마인드 스페이스, 동물 우화 사진전, 스탄 형제 사진전, 부동산에 관련된 피 케이 엠의 사진전..... 또 뭐 없나? 아, 이 봄순, 그리고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많은 전시를 보았다.
그런데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빌 비올라, 김 명희, 야요이 쿠사마 등의 전시를 보지 않았다. 비올라나 쿠사마는 이상하게 보고 싶지가 않다. 티비에서 언뜻 본 비올라는 이상한 오리엔틱 옥시덴탈 후까시 싫고, 쿠사마는 내가 견딜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메가 박스 극장 입구 조명이나 바닥 무늬 같은 작품들은 이제 싫다. 도날드와 캔터키 프라이드 치킨 가게 입구 조각 같은 것도 싫다.
대신에 영화와 만화를 열심히 봤다. 살인의 추억, 엑스맨 2, 볼링 포 콜롱바인, 이니셜 디, 고르고 13호 전부, 또 뭐드라. 이것들 역시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무작위로 봤다. 그리고 그 보다 더 열심히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며 아무거나 찍었다. 그린벨트와 명동과, 압구정동과, 대학로와, 봉원사와 기타 등등 마구 찍었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현실만한 것이 없다. 현실이라고 말하면 이제 약간 정떨어지니까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까.
아무튼 전시장 밖에 있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생생하고, 그것은 살아 있고, 그것은 뭔가 생각하게 하지만 이상하게 전시장에만 들어서면 거의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나와서도 물론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전시장에 가느니 동대문 시장 육교 위에서 1 시간 동안 서 있는 것이 500배 낫다는 생각만 든다. 이것도 일종의 중독증일지 모른다. 미술에 관한 중독, 그 중독은 거부반응, 심드렁함, 냉소 따위로 이루어져 있다. 아니다. 독이 아니라 면역인가? 아니면 사스와 유사한 신종 전염병인가?
2.
생각 끝에, 아니 아무 생각 없이 스탄 형제의 사진에 관해 쓰기로 한다. 정확히 말하면 쓰는 것이 아니라 거나 비웃기로 한다. 비겁하긴 하지만 그 인간들이 만만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번쩍이는 대형 인화지 세 조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전부 디지털 프린트다. 쓱 한 번 둘러 본다. 금방 재단된다. 제품으로서는 성공적이고 작품으로서는 꽝이다. 거의 바닥이다. 아무것도 없다.
물론 뭐라고 쓸 수는 있을 것이다. 포스트 모던, 파편, 디지털, 오리엔탈리즘, 재현, 인덱스, 생명, 에콜로지 혹은 소멸, 사물에 관한 미세한 들여다 보기와 그것의 시각화 따위의 흔해빠진 말들을 한 뭉텅이 선물할 수도 있다. 이름이 기억 안나는, 미국이 이라크에 퍼부은 초대형 폭탄처럼. 꽈, 꽈, 꽈, 꽝!!!!! 그러나 그것은 무척 피곤한 일이다. 왜냐하면 순 거짓말이니까.
대신에 어떤 기술로 제품을 만들었나에 관심이 간다. 우선 포장술이 뛰어나다. 희게 칠한 액자도 뛰어나고, 태국산 종이의 선택, 그 위에 바른 밀납도 그렇듯 하다. 소재 역시 말할 나위 없다. 바스라 질 것 처럼 바싹 마른 낙엽, 복잡하게 가지가 뒤얽힌 나무, 인시류 나방, 일본의 부처 등등. 때문에 작품 자체에 대한, 작품이 뭘 보여주고 있나에 대한 것 보다 어떻게 보여주고 있나에 눈이 간다. 액자, 종이, 프린트 방식 등을 주의 깊게 보게 되는 것이다. 사진이 무슨 의미인가는 거의 읽히지도 않고 읽힐 필요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 모든 포장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것은 그들의 이름이다.
그들의 사진은 소유의 욕망을 자극한다. 태국산 종이에 작게 프린트된 낙엽들은 탁월한 일류젼이다. 바싹 마른 낙엽과 같은 느낌의 종이 위에 구겨진 상태로 프린트한 낙엽은 일종의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낙엽인가, 낙엽의 프린튼가? 오래 된 환영주의가 그들의 작품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진으로 이루어진 하이퍼 리얼리즘이지만 냉정함과 중성성은 빠져 있다. 때문에 직접적으로 소유욕과 허영심을 동시에 자극한다. 스탄 형제는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사진들, 제품들은 어떻게 제작 되었을까? 주의 깊게 낙엽을 고르고, 고른 낙엽들을 스튜디오에 놓고, 디지털 혹은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들을 보정해서 프린트와 사후 처리에 심혈을 기울인다. 포장술, 탁월한 포장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알고 동시에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는 것은 놀라운 수행능력이다. 워홀 같은 통찰력은 없지만 제품 제조력은 있는 것이다.
이상하다. 비웃으려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그들의 방법과 방식에 동화되거나 동조하려는 태도가 내 안에 있다. 나도 사진들을 이렇게 만들면 팔릴까? 이런 식으로 포장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들이 일어난다.
잠시 글쓰기를 멈춘다. 그리고 그들의 팜플릿을 다시 한 번 본다. 역시 작품으로서는 꽝이다. 기법들, 프린트 용지 등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 일제 후지 디지털용 인화지. gampi paper에 잉크젯 프린트를 하고 밀랍과 알부민 처리, 혹은 그 역순, 태국산 mulburry 종이에 사후처리 등등. 사전을 찾아본다. gampi는 사전에 없고 mulburry는 뽕나무다.
다시 한번 놀랍다. 어떻게 이렇게 단순하고 이렇게 아무 것도 없을 수 있을까? 그야말로 순수하다. 즉 세계를 어떤 식으로든지 해석하고 바라보겠다는 태도가 전혀 없다. 아니면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일까? 어쨌든 기법과 포장술만 눈에 보인다. 이것이 의도였을까? 물론 천만의 말씀일 것이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다.
3.
이쯤 되면 나는 후회하기 시작한다. 괜히 스탄 형제의 작업에 관해 썼다. 너무 말할게 없다. 다른 사진전들은 어땠을까? 한 사진전에서 만난 큐레이터, 평론가는 그랬었다. 외국 큐레이팅을 그대로 가져다 전시하는 것도 괜찮고 폼 나지만, 좋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해야 되는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런 의미였다. 묻고 싶어졌다. 근데 왜 안하세요?
시시하기 짝이 없는 미술판의 권력은 이제 작가 손을 떠난지 오래되었다. 생각해보니 작가들이 무슨 권력을 가진 적이 별로 없다. 그냥 생산자일 뿐 작품을 평가하고, 전시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권력은 큐레이터와 평론가와 기타 등등에게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전시에 대해 짐 호버만 정도의 평도 없다. 때로는 큐레이터가 아니라 예술가인척하는 사람들이 조직한 전시에도 그저 그런 말들이 오갈 뿐이다.
또 기다렸다는 듯이 연이어 열리게 되어있는 해외 작가들의 전시가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정직하게 말하면 별 의미 없다. 그저 알려진 사람들 작품을 본다는 것 말고는 그저 그렇다. 그것은 헐리우드 영화를 돈내고 보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엑스 맨 2나 매트릭스2를 보고 음 특수 효과 괜찮았어 정도의 감상을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남의 전시인 것이다. 내 혹은 우리 전시가 아니라. 지겹다. 지겹고 또 지겹다. 이럴 때는 원형을 보고 싶다. 그러니까 아이들 그림, 아마추어 작품 같은 것을 보고 싶다. 때 안 묻은. 그림은 그냥 그림이고, 사진은 그냥 사진이고, 물건은 그냥 물건인 걸 보고 싶다. 그러니까 동대문 시장 육교 위에 서있게 되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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