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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이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그런 여부는 별 중요하지 않고.
욕구의 종류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성에 근거한 욕구야 말로 가장 현실과 마찰이 심하잖을까. 시간이 흐를 수록 애정과 성은 분리도를 더해갈 것이고, 가족 구성원을 생성하기 위한 목표 또한 의미를 잃은지 오래.
결국 모든 육체는 구체성을 띨 것이고 대부분의 마음은 나락의 길을 걷지 않을까. 욕구가 마음과 결별한 시대의 도래는 이미 예측된 일. 인간의 마음을 갈구하는 자여, 자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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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GQ korea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였다. 목소리가 뜨거웠다. 그녀가 물었다. “뭐해?” 또 물었다. “집이야?” 그녀와는 폰섹스를 즐기는 사이였다. 그녀의 집은 전라도였다. 대학교 4학년이라고 했다. 모바일 채팅을 통해 알게 된 사이였다. 그녀는 피가 뜨거운 여자였다. 그녀가 버스 안에 있을 때도 폰섹스를 했다. 공개적인 장소라 더 흥분했다. 그녀는 버스에서 내려 인근 PC방의 화장실로 달려갔다. 수업중인 강의실에서도 문자로 서로를 자극했다. 그녀가 부모님 방 앞에서 자위를 하도록 시키기도 했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달아오르곤 했다. 그녀에게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상관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폰섹스를 하려고 전화한 게 아닌가 싶었다. 아니었다. 그 때 이미 그녀는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섹스 파트너가 세 명이 함께 섹스하는 쓰리썸을 하고 싶데. 지금도 섹스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를 하라는 거야.” 둘의 섹스 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전해졌다. 그녀는 절정으로 올라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묘한 흥분이 밀려왔다. 그건 악마의 유혹이었다. 끝내, 내뱉고 말았다. “내 것도…” 그녀가 연기하는 오럴 섹스의 할딱이는 침 소리를 들으며 두 사람과 함께 절정에 올랐다. 잠시 뒤 남자가 말했다. “쓰리썸을 하고 싶은데 파트너를 물색 중이거든요. 그쪽하고는 폰섹스로 자주 즐겼다고 하고, 그쪽과 섹스 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몇 번 한 적도 있고 해서 아예 전화를 했는데 관심 있나요?”
반 년 넘게 시간이 흘렀다. 그들과의 쓰리썸은 없었다. 그녀의 침대가 서울에서 3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지만 않았고 남자 몰래 그녀와 둘만의 폰섹스를 계속하다 틀키지만 않았다면 그때 그들과 뒤엉켰을 거다. 하지만 쓰리썸에 대한 욕망의 찌꺼기는 남겨졌다. 어떻게 하면 쓰리썸을 할 수 있을까. 경험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여자 두 명과 섹스를 한 적이 있었다. 한 여자는 긴 생머리를 지니고 있었고 다른 한 여자는 짧은 커트머리였다. 한 여자는 위를, 또 다른 여자는 아래를 좋아했다. 두 명에게 번갈아 가면서 삽입을 했다. 그때 어렴풋하게 알았다. 쓰리썸의 쾌감은 육체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것이었다. 두 여자의 신음소리를 한꺼번에 듣노라면 스스로 섹스의 신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그 뒤론 기회가 없었다. 가끔씩은 하룻밤에 두 여자와 연거푸 섹스를 했다. 쓰리썸은 아니었다. 한 여자와 섹스를 한 뒤 다시 또 다른 여자와 섹스를 했다. 그러면 자꾸만 쓰리썸을 갈망하게 만드는 마초적인 정복욕이 조금이나마 달래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쓰리썸이 아니었다. 두 여자를 한꺼번에 상대하든, 한 여자를 다른 남자와 나누든 간에 일단 눈을 뜬 본능을 달래기 위해서는 ‘그걸’ 해야만 했다. 여자가 단지 섹스 파트너가 아니라 사귀는 사람이거나 잘 아는 사람이길 바라기도 했었다. 그건 더 사악한 욕망이었다. 사회적으로 정상이라고 규정하는 식상한 관계를 일그러뜨리고자 하는 변태적인 성욕 말이다. 어쩌면 섹스는 몸의 쾌락이 아니라 영혼의 쾌락 때문에 더 멈출 수가 없는 건지도 모른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쓰리썸의 욕망을 옆에 있는 사람에게 감염시킬 수는 없을까.
오랜만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대체 그녀의 섹스 파트너는 어떻게 그녀를 쓰리썸으로 꾀어냈던 것일까. 이제 그녀는 대학생이 아니라 영어 학원 강사였다. 사귀던 남자와 헤어진 뒤 그때 그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둘이 하는 것만으로도 웬만큼은 좋았는데 지금은 지루해.” 그녀는 말했다. “내가 평생 한 남자하고만 섹스를 할 수는 없을 거래. 피가 뜨거워서. 그래서 차라리 외도를 하려면 눈앞에서 하라는 거야. 솔직히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어. 예전부터 쓰리썸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거든. 난 여자 둘이서 남자 한 명하고 섹스 하는 건 싫어. 내가 주인공이었으면 해. 애무를 여러 남자한테서 한꺼번에 받을 수 있다는 게 좋아. 지금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야. 쓰리썸을 원하면 애정이 식었기 때문이라고들 하는데 난 단지 섹스가 좋을 뿐이지.” 그녀는 지금의 남자 친구가 쓰리썸을 즐기도록 자신을 유혹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서로 섹스 파트너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고 섹스가 좋아서 만난 사이였으니까 상대방에게 부담 없이 솔직할 수 있었던 거지. 아님 말고 식으로 얘기했던 모양인데 마침 나도 원했거든.” 요즘도 그들은 새로운 쓰리썸 파트너를 물색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인터넷을 주로 이용한다고 했다. 지금도 한 남자가 그들과 쓰리썸을 즐기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고 했다. 그 얘기를 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나른하고 끈적했다. 그녀는 유혹당한 게 아니었다. 그녀의 관능이 스스로를 유혹했던 것이다.
“그녀는 아주 섹스 머신이었어. 처음 관계를 가진 다음에 판타지를 물어봤지. 그랬더니 쓰리썸이라는 거야. 그래서 여자 둘에 남자 하나가 뒹구는 섹스를 제안했지. 하지만 다른 여자가 있어야 말이지. 꽤 오래 기다렸어. 그러다 우연히 한 애를 알게 됐어. 홍대에서 알게 된 여자였는데 나한테 관심이 있었지. 그래서 쓰리썸에도 관심이 있냐고 꼬셨던 거야. 섹스는 했어. 그런데, 별로였지.” 홍대에 사는 그는 쓰리썸에도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는 자신의 첫 번째 쓰리썸이 별로였던 이유가 잘 짜여진 섹스 시나리오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날 밤 그와 여자 둘은 매시브 어택의 몽환적인 음악을 틀어놓고 술을 나눠 마시며 서로가 알코올 기운에 달아오르길 기다렸다. 하지만 분위기를 이끄는 사람도 없고 쑥스럽기도 했던 탓에 진도가 잘 나가질 않았다. 결국 그는 두 여자에게 자신을 줄에 묶어놓고 둘이서 하고 싶은 짓을 하라고 요구했다. 마침 섹스 머신이었던 그녀는 레즈비언 섹스에 대한 욕망도 있었다. “잠자코 있었더니 둘이서 키스를 하며 나름대로 흥분하더라고. 그러다 묻더군. 나도 낄 거냐고.” 줄을 푼 뒤 그는 두 여자 틈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꼬였다. 중반부턴 섹스 머신하고만 섹스를 했던 것이다. 다른 여자는 미지근해진 채 오도카니 둘의 섹스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쓰리썸을 제대로 즐기려면 섹스를 자신 있게 리드해줄 사람이 필요하겠더군. 그게 여자든 남자든 말이지. 서로에 대해 특별한 감정도 없어야 해. 다른 여자애가 식은 것도 사실 날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거든.”
절치부심, 그에게 만회골을 넣을 기회가 왔다. 섹스 머신이 여자를 발견했다. 어느날 그녀는 그에게 “같이 자고 싶은 여자애가 생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섹스 머신은 페니스가 없으면 섹스에서 만족할 수 없는 여자였다. 그래서 다시 그와의 쓰리썸을 제안했다. 이번엔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섹스 머신이 나머지 두 사람의 주인이 되는 거였어.” 먼저 그는 줄에 묶인다. 섹스 머신의 지시가 없으면 그는 꼼짝할 수 없다. 그 앞에서 섹스 머신과 새로운 여자가 서로를 애무한다. 그 다음 그를 풀어놓고 셋이 뒤엉켜서 섹스를 한다. “그날 밤은 제대로 즐겼지. 서로한테 어색해할 틈을 주지 않았으니까.” 그는 말한다. “쓰리썸이 쾌락이 되는 건 금기이기 때문이야. 누군가는 포르노 때문에 쓰리썸의 쾌감이 과장된다고 하던데 그건 틀려. 분명 자극적이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걸 한번 욕망하기 시작하면 이겨내기 힘들어. 인간은 금기에 매료되니까.”
대강 알 것 같기도 했다. 누군가를 쓰리썸으로 끌어들이려면 마음속의 욕망을 건드려야 한다. 상대가 진작부터 세 명이 함께 즐기고 싶다는 갈망에 시달렸어야 한다는 얘기다. 마음에 없는 사람일수록 함께 쓰리썸을 즐기자고 유혹하기가 쉽다. 싫다고 하면 그걸로 그만이니까. 사랑이 식었느니 어쩌느니 하는 언쟁에 휘말려들 걱정이 없다. 실전에서 당황하지 않으려면 나름대로 시나리오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의문이 들었다. 과연 쓰리썸이 그렇게 대단할까. 과연 모두가 욕망하지만 숨기고 살기 바쁜 탐욕일까. 살면서 정작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난 뒤에는 허무의 나락으로 추락했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그게 섹스의 본질 아니었던가.
그녀는 자신의 행위를 잊고 싶어하는 듯했다. 그녀는 “그때 쓰리썸을 즐겼던 건 단지 두 사람이 유혹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녀에게는 세 명이 즐기는 섹스에 대한 환상 따위는 없었다. 단지 두 사람이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해 애썼고 불장난처럼 잠깐 달아올랐던 것뿐이었다. 그녀는 심지어 “쓰리썸이 주는 특별한 쾌감을 느끼기보단 오히려 두 사람 때문에 당황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녀는 쓰리썸이 주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한 쾌감을 주는 섹스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어했다. 정서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드는 치명적인 독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와는 달랐다. 그녀는 그의 실패한 첫 번째 쓰리썸 파트너 중 한 명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쾌락이었던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언짢은 기억일 수 있었다.
쓰리썸이 포르노에 의해 조작된 욕망인가? 그건 아니다. 쓰리썸은 남자의 욕망도 여자의 욕망도 아니다. 다만 누군가의 욕망이다. 욕망은 무의식을 지배한다. 쓰리썸을 욕망하도록 태어난 사람은 그걸 즐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쓰리썸은 육체적인 쾌락이라기보단 정신적인 일탈이다. 또한 행위 자체는 순도 100%의 육체적인 탐닉이어야만 한다. 육체는 나눠가질 수 있지만 마음은 공유할 수 없는 탓이다. 그래서 쓰리썸은 누군가에게는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무관심의 대상일 뿐이다.
옆에 누운 그녀에게 은근슬쩍 물었다. “셋이서는 관심 없어?” 그녀가 말했다. “셋이서 한다면 처음으로 자기하고 하는 섹스가 허무해질 것 같아.” 모든 욕망이 채워지는 낙원은 이 세상엔 없다. 이제부터 그걸 숙명으로 받아들이든지, 지금까지 보고 배운 재주로 능력껏 그녀를 유혹하든지, 아니면 욕망과 현실의 갈등 속에서 시들어가든지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에디터 | 신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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