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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난.
아주 많이 쪽팔리다. 내가 사는 땅이 여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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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컬쳐뉴스
"예술가가 노출증이라면, 감상자는 관음증 환자다"
작가와의 대화 '92 마광수 vs 2005 김인규'
강문영 기자
   
김인규 미술교사 사태와 관련 11월 18일(금)부터 홍대 앞 '갤러리 꽃'에서 《유죄교사 김인규와 죄없는 친구들》전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22일(화) 오후 7시 30분 작가와의 대화 '92 마광수 vs 2005 김인규'가 열렸다.
지난 1992년 그의 저작 『즐거운 사라』의 '외설'시비로 실형을 받고 필화를 겪었던 마광수 교수는 최근 『즐거운 사라』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로라』(해냄·전 2권)를 출간했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2005년의 대법원은 지난 1992년 마광수 교수의 판례를 적용하여 김인규 교사에게 유죄판결을(1, 2심에서는 무죄판결이 났음에도!) 내렸다. 1992년에 일어났던 일이 2005년인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 이날 대담을 마련한 이유이다.
작가와의 대화는 반이정 미술평론가의 사회로 반이정 평론가의 질문에 마광수 교수와 김인규 교사가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마 교수는 이번 김인규 교사 사태에 대하여 "한국은 합리적 이성이 부재한 나라"라며 운을 뗀 뒤,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성이며 성에 대한 얘기를 책과 강의로도 하는 마당에 이러한 사태가 또 다시 발생한 것은 문화적 수준이 낮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사는 "50대의 어떤 분이 '혼자만 알고 있지, 왜 홈페이지에 올리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며 이에 대해 "예술가들은 다 노출증환자이기 때문이며, 사람들에게 이러한 표현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감동하지 않겠냐"고 답변했다. 또한 만일 "벗고 살 수 있고 이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나의 작업은 이러한 억압을 드러내는 표현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마 교수 또한 "'예술가는 노출증환자며 감상자는 관음증 환자'"라면서 또 "이번 사태와 이러한 환경에 대한 책임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신념이 없는 대중에게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사는 이번 사태에 원인에 대해 "표현의 문제라기보다 자신이 교사였다는 사실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예술이 표현이기 때문에 누구나 표현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당시에도 내가 부적절하다면 나의 입장을 철회할 용의가 충분히 있었다"며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문제를 당사자들끼리의 적극적인 토론을 통해 결론을 내는 방식이 아닌 검찰이 체포하는 식으로 접근해 토론의 장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마 교수 역시 "판사들은 『즐거운 사라』의 남자 주인공을 나로 동일시했다"고 말한 뒤, "교수의 입장에서 그러한 책을 쓴 것에 대해 괘씸죄를 적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동업자들이 이렇게 지지해주는 김인규 교사가 부럽다"면서 "그 당시 나는 이문열, 이호철 등 동업자들조차 나를 비난해서 더욱 힘들었다"며 그 때의 심정을 토로했다.
이러한 사태를 겪은 이후 창작하는 데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마 교수는 "『로라』는 5년전인 2000년 완성했었다. 그러나 그 때의 기억으로 겁이 나서 출간하지 못했다"면서 "출판사에 원고를 갖다줬다가 다시 가져온 적도 있었다"며 "92년의 일은 글을 쓰는 기계를 작동중지 시킨 것과 다름없었다"고 대답했다.
김 교사는 "당연히 창작활동이 어렵다"고 밝힌 뒤, "이번에 유죄판결을 받은 작품은 1996년 오프라인인 개인전에 이미 발표했던 작품이며, 그것을 홈페이지에 올린 것 뿐이었다"면서 "현재는 다른 경향의 작품을 하고 있는데 예전의 작품으로 유죄판결을 받으면서 작업의 흐름이 뒤죽박죽이 되어 나의 정체성이 무언지 헷갈리고 있다"고 답답함을 표현했다.
김 교사는 현재 유죄판결을 받은 작품의 출품 당시 미술계에서 전폭적인 옹호와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성기노출이 음란한 것인지, 또한 예술을 통해 과연 대리만족을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반론 혹은 질문을 한 것에 지지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
이어서 "예술에서의 외설시비가 정치적으로 얘기되고 있는 현실에서 예술계에서 먼저 예술과 외설의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청중의 질문에 대해 김 교사는 "예술·외설은 노출의 수위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성기노출과 외설시비를 동시에 얘기하는 사회적 담론에 불만이다"라면서 "사람들의 취향은 다양하고 우리는 비교, 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논의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문제이고 불만"이라고 답변했다.
같은 질문에 대해 마 교수는 "외설은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 차원의 문제"라면서 "객관적 기준이 없다. 판사 마음 아닌가"라고 대답했다.
"성에 관한 작품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청중 질문에 대해 김 교사는 "자본주의의 소비 형식은 '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성은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소비된다"면서 "그러나 실제의 일반인들의 성은 비참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즉 하루종일 노동하고 하루 벌어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 영화처럼 멋있고 그럴 듯한 '성'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이 겪는 성생활은 복잡·다양한만큼 멋있는 성이 아닌 현실의 불편하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성'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아름답지 않음으로 판매되지 않는 성, 그래서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성에 대해서 말이다.
이에 대해 마 교수는 "난 '국산'을 만들자는 것"이라며 "사랑과 성에 관해 국산이 없는데다가 국산을 경멸하는 현 상황이 문제"라고 답했다.
향후 계획을 묻자 마 교수는 "평생 야하겠다"는 말로, 김 교수는 "잘 모르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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