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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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3-07-29 01:00:10, Hit : 583)
[대담] 술조차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안주빨.
다 좋은 이야긴데......잘못된 것에 대한 사태를, 책임질만한 사람은 없는 것같다.
모두들 나는 피해자고, 시스템의 마이너리티며, 입바른 진정의 선비가 되기를 원하는 것같기는 한데, 해결의 기미는....물론 내 생각이지만, 없다.
아마도 난 적어도 한국안에선, 내입으로 내가 작가란 소리를 못할 것같다.     선배소리도 들을 수 없을 것같고, 어떤 일이 있어도 진짜 스승의 위치엔 절대 서지 못할 것이다.
울상을 지으면서 작업을 하는 나이어린 사람들을 볼때면 난 솔직히, 어쩔 줄을 모르겠다.     내가 나에게 나쁜 놈이란 자괴를 부리기에도, 난 너무 염치없는 인간같다.

p.s : 정말....너무나 긴 게시물이어서...시간이 많고 인내심 강한 분만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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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대해 말하기

대담자: 박불똥(작가) 조이한(미술사) 최진욱(작가)



최진욱 :
안녕하십니까?
먼저 독일에 계신 조이한씨게 묻겠습니다. 나는 늘 독일유학생들이 유학 후, 엄청나게 그림 실력이 늘어서 돌아오는 걸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었습니다. 제 궁금증을 좀 풀어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나라 미술대학의 회화수업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잘 모르신다 하더라도 생각나는 대로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조이한 :
하하하, 최선생님 질문을 읽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초반부터 엄청난 질문을 하시는군요. 작가들이 독일 유학 후 그림 실력이 엄청나게 늘어서 귀국한다는 최선생님 말씀의 진위 여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보통 독일 유학은 짧게 5년에서 길게는 7,8년입니다. 그 시간동안 그림에 전념한다면 어디서 작업을 하건 그림 실력이 느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요? 제 생각에는 장소성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이곳 독일에 유학하는 사람들 얘길 들어보면 학교에 들어가서 초반에 많이들 고생을 한다고 합니다. 이곳 선생님들이 한국 유학생들을 힘들어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가 전형적인 스타일들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에서 미대를 졸업하고 온 사람들의 경우에 특이 그 경향이 두드러진다더군요. 그 전형성을 탈피하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지요. 이 점에서만 본다면 미대를 들어가기 위해 학생들이 겪어야하는 천편일률적인 수업의 문제가 크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대상을 모사하는 실력은 비교적 뛰어나지만 소위 그 "독창성"에서 머리를 갸웃거리게 만든다는 거지요. 게다가 자기 생각, 자기만의 느낌, 왜 이렇게 그렸는지에 대한 이유 설명 등에 대해서는 자기 주장이 약하거나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림은 그렇다 치고 미디어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독일이나 그 밖의 다른 나라에서 유학을 했다고 해서 실력차이가 난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곳이 아무래도 교육환경이 상대적으로 좋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실험하고 기술을 습득하기에 좋기는 하겠습니다만 한국에서만 작업하신 분들 중에서도 훌륭한 작업을 하시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독일 미술은 사변적인 경향이 많습니다. 자기 작품에 대해 자기가 변론하고 이론을 덧붙이고 이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그런 훈련들이 가져다주는 장점은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제 생각엔 작품 제작의 세련됨이나 외적 완성도의 문제보다는 문제의식에서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고 봅니다. 자기가 왜 이런 걸 하는지, 하고 싶은지, 이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등에 대한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건 자기 문제의식을 분명히 한다는 걸 의미할테니까요.

독일에서 그런 걸 꾸준히 요구받고 있고 훈련받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학생들은 이 점에서 취약합니다. 꾸준히 문제의식을 갖고 작업하는 작가를 만나기가 힘들지요. 그저 순간 순간의 재미나 효과의 다양함을 따라 작업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와는 반대편에, 너무 거대한 주제를 거대하게 표현하려다보니 작품이 무거워지고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힘겨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거대한 이야기를 포함하더라도 작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작품에 대해 얘기하면서 "존재", "인간" 등등의 추상적이고 커다란 얘기들만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최선생님과 박선생님, 두 분 다 작가분이시니 드리는 질문입니다만, 작가에게 이렇게 자기 작품에 대해 설명을 요구할 때 어떻게 느끼시는지, 이에 대해 답을 해야할 필요를 느끼시는지, 제가 지금까지 말한 한국 학생들의 취약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것이 한국 미술교육의 문제점과 연관되어있다고 생각하시는지를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진욱 :
문제의식에 차이가 있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나는 우리 미술판에서 이 문제의식 마저 수입해 들여오는 것 같은 느낌을 한동안 매우 강하게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문제는 무엇일까요? 민중미술작가였던 박불똥씨는 8-90년대에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기점으로 작품을 하셨던 분이니 너무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단지 눈앞에 있는 작업실의 정물이 나의 문제였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겠고요.


박불똥 :
하하하. 조이한 선생이랑 함께 웃을 걸 온라인 대담이다 보니 따로 웃네요. 최진욱 선생의 말 법이 남다른 줄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대담 첫마디부터 '엄청나게' '신기하게' 등의 수식어를 동원하면서 '그림실력' 얘기를 끄집어내니 절로 웃음이 터집니다.
그런데 최 선생이 말씀하신 그림실력이란 게 구체적으로 무얼 뜻하는지 궁금하군요. 단순히 화폭을 다루는 솜씨인지, 이성/감성의 통합적 표출로서의 작가의식인지. 언뜻 느끼기엔 전자에 가깝지 싶은데.
만약 그렇다면, 대체로 국내에서 대학과정을 이미 마친 다음 다녀오는 '작가유학'에 다름 아닌 해외유학의 의미나 효과에다 그림실력이라는 잣대를 갖다대는 건 영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작가수업의 내용이 '입시미술'이 아닌 바에는 말이지요.
중요한 건 유학생활을 통해 '작가로 산다는 것'에 대한 자각을 얼마나 깊게 하고 또 이해의 폭을 얼마나 넓혔는가 입니다. 이는 곧 '문제의식'으로 직결되지요.
문제의식 없이 작가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미술의 안쪽과 바깥쪽을 나눠 하는 고민은 진정한 문제의식이 못 되며 결국 허망한 겁니다. 체내 체외 분간을 애써 마다할 때에만 미술이라는 몸뚱이가 비로소 생물로 살아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작업실은 송장이나 뜯어보는 해부학 교실과는 분명히 다르지요.

"나는 단지 눈앞에 있는 작업실의 정물이 나의 문제였다"는 최진욱 선생 진술이 새삼스레 가슴에 와 닿습니다. 지난 '80, '90년대 상황에서 나는 내 오관에 포착된 사회 전반의 현실을 마치 "작업실의 정물"처럼 "나의 문제"로 삼았습니다. '진정'이라는 것, 정말 소중하지요. 문제의식의 초발점과 궁극점을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여깁니다. 그 진정성이 작업실의 정물에 관한 건가 새만금 갯벌을 향한 건가는 그 다음 문제지요.
스스로 경계하고 비판해야할 것은 '사이비 진정성' 즉, '문제의식 없음'인데 마침 최 선생이 "그나마 지금은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하시니 참 난감하네요. 설마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걸 문제삼는 '지고=이윽고'의 문제의식은 아니겠지요?

그리고 이건 조이한 선생의 질문에 대한 소감인데요, 나는 작가가 자기 작품/작업을 기꺼이 또 가능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도가 막연하고 포괄적이고 두루뭉수리 할수록 더 품격 높은 작품이다거나 작가는 말과 글이 어눌해야 진국이다 는 따위 전설을 나는 반기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미술교육이 푸르스름한 달빛과 연막의 그러한 '전설의 고향'을 다분히 조장해왔지요. 대부분의 학생들이 농락 당한 셈이고 그 부작용이 해외유학 현장에서 '전형화'나 '묵묵부답' 내지 '횡설수설' '더듬더듬' '얼렁뚱땅'같은 태도로 나타나는 거 아닐는지요.

최진욱 :
화폭을 다루는 테크닉과 이성/감성의 통합적 표출로서의 작가의식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놀랍다고 여겼던 점은 둘 다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현실적 삶과 작가 개인의 원초적 몸의 삶을 둘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죠.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걸 문제삼는 문제의식도 사이비 진정성이라고 볼 수는 없겠죠. 문제의식이 없는 것도 아니겠고요. 내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건 미술판이 주는 좌절감이 포함된 상태를 일컫는 것이고요. 외국이라면 모든 게-작업환경이-비교적 투명하죠. 내가 하루에 3시간 그리는 것과 10시간 그리는 것의 차이점을 금세 깨닫게 되거든요. 우리는 그렇지 않죠.

학생들뿐만 아니라, 작가들도 농락 당하고 있죠. 하지만 멋모르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겠지만, 소위 작가란 사람들이 농락 당하고 있는 풍토는 스스로 고쳐나가는 길밖에 없겠지요. 이 걸 '정치적'이라고 부르며 등 돌리는 사람들이 있어 딱하지만요.


조이한 :
두 분 다 화폭을 다루는 테크닉과 이성/감성의 통합적 표출로서의 작가의식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당연한 것이겠지요. 어떻게 내용과 형식을 분리해서 그 중 어느 한쪽만 좋아도 작가다,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전반적으로 한국 유학생들의 경우 테크닉에 집중해 있고 내용의 문제는 본인도 헷갈려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왜 내용이 문제인지를 가르치는 선생이 드물었기 때문일까요?

박불똥 선생님 글을 읽다가 든 생각인데, 도대체 작가는 언제 작가가 됩니까? 선생님 글에서 "국내에서 대학과정을 마친 다음 다녀오는 작가유학에 다름 아닌 해외유학"이란 문장이 나와서 든 의문입니다. 미대를 졸업하면 자동적으로 "작가"가 되는 것은 분명 아닐텐데 우리는 누구를 작가라고 하는지요. 최진욱, 박불똥 선생님은 언제 작가가 되셨습니까?
제 생각엔 "중견 작가"라고 하면 자신의 예술이 일정한 단계에 올라 그들의 예술적 성과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을 일컬을텐데 우리나라에선 "중견 작가"가 "나이 40대 중반에서 50대 후반"정도에 들면 중견작가라 부르는 것 같더군요. 예술적 성과를 사회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쉽게 나이를 갖고 작가들의 단계를 구분짓는 건지 궁금합니다.


최진욱 :
언제 작가가 되는지, 또 언제 중견작가가 되는지는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별로 궁금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 내 생각으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보고요, 내가 재미있게 생각하는 건 우리 미술판에서 나나, 박불똥씨처럼 작가가 40세 후반에 접어들면 은근히 퇴물 취급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에요. 내가 알기로는 독일에서는 40세 중반이면 신인 축에 든다던데요, 아무튼 재미있는 현상이죠.

우리 사회는 경쟁에 환장한 사회입니다. 무엇을 가지고든 경쟁을 하죠. 돈, 학벌, 옷, 얼굴, 몸무게, 키, 나이... 그러니까 약자는-약자가 아니라도- 가만히만 있어도 뒤로 밀려나게 되어 있는데, 이 것도 그와 비슷한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빨리빨리 밀어내자는 거죠. 아마 가만히 두면 40세 초반도 한 물 갔다고 밀어낼 걸요. 매스컴의 천박함이 한 몫 단단히 거든다고 생각합니다. '실험적'이니, '새로운', '젊은' 어쩌구 하는 이런 표제가 미술 기사에선 다반사 아닙니까? 아무 내용도 없이 주로 이런 제목 아래 기사거릴 모으다 보니 40대만 되어도 원로작가가 되어버리는 기분이 들죠. 정말 한심한 사회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40대 중반 신인론을 주창하는 바입니다. 이를테면 40은 되어야 작가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고, 중견이 되려면 50-60대는 되어야겠죠. 나이로 구분을 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셨는데, 오히려 이런 말을 하니 우습게 되었네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40대에야 비로소 작가가 되고, 60대에나 중견소릴 듣게 된다면 조이한씨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으셨겠죠.

일반적으로는 미대를 나와 개인전을 한번 하거나, 단체전을 서너번 하거나, 큰 상을 받거나, 매스컴에 오르내리거나 그러면 작가가 되는 거죠. 미대를 나오지 않았거나, 다른 전공을 하다가 취미로 하다가 전시를 하는 경우, 적어도 5년은 작품활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면 누구나 전업으로 5년만 작품활동을 하게 되면 작가 소릴 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하나도 재미 없죠?) 그리고 중견이야 나이만 40중반을 넘어서면 되는 거고...


박불똥 :
나는 유학 경험이 없습니다. 그 점을 처음에는 대수롭잖게 여겼는데 작품활동을 해오면서 어라 이거 별 거 아닌 게 아니네 하는 쪽으로 생각이 점차 바뀌더군요. 이제는 성공적인 화단생존을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불가결의 기본조건으로 나는 해외유학을 서슴없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고 또 주위 사람들한테 적극 권하기까지 합니다.
십여 년 전, 서울 강남 소재 모 화랑이 평론가 추천방식으로 꾸린 한 전시 오프닝 때 일입니다. 유달리 서양인 손님이 많았는데 그 바람에 전시장이 온통 삼삼오오 외국인과의 대화분위기로 가득 찼지요. 내 나라말 밖에 할 줄 몰라 멀뚱해진 나는 어느 순간 기이한 소외감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마치 유령상태의 스크루지 영감이 된 기분이었지요. 이게 어쩐 영문인가 했더니 열 두어 명 초대작가 중 외국물 못 마셔본 놈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던 겁니다. 제기랄.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느냐 하면, 독일유학생들의 그림 실력(눈과 손과 머리와 가슴을 한 데 아우른 것)이 대부분 현저하게 향상된 걸로 느꼈다는 최진욱 선생이 조금 전 "미술판이 주는 좌절감"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좌절감의 최고조를 '빈익빈 부익부'현상에서 곧잘 맛보곤 합니다. 유학경험을 하는 자보다 못하는 자가 예나 제나 훨씬 더 많은 것이 명백한 현실인 한 나는 미술인의 해외유학을 선택사항 아닌 간택사항으로 이해합니다. 타고났건 길러졌건 능력 있는 사람만이 누리는 기회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자, 간단한 이칩니다. 일단 능력이 뛰어난 자가, 남다른 기회를 얻어서, 더 나은 교육환경을 누리며, 다년간 노심초사 주경야독하였으니 '실력향상'은 그야말로 '당근!' 아니겠습니까? '독일유학 덕택'을 굳이는 강조할 거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처럼 당연하고 평이한 결과를 '엄청나게' '신기한 일'로 받아들이는 듯한 최 선생의 태도가 나는 사뭇 과장 아닌가 싶은 거지요. 실력향상을 있는 그대로 담담히 봐야지 자칫하다간 '빈익빈 부익부의 피이(premium)'를 얹어주는 꼴 되기 쉽습니다. 그것은 결국 '좌절감 권하는 미술판'을 부추기는 셈입니다.


최진욱 선생 말을 한가지만 더 받겠습니다.
정당한 자구책으로 펼치는 예술가의 현실 혁파 노력(작품활동을 포함한)이 '정치적'이라 불리는 거, 또 스스로 그렇게 부르는 거 둘 다 나는 마땅하다 여깁니다. 인간의 모든 사유와 언표와 행동은 어차피 정치적입니다. 아니 인간 그 자체가 정치적인 존재인 걸요. 흔히 '진흙탕'으로 인상짓는 정치나 경제의 저쪽 피안에 미술/예술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입니다.
"도대체 작가는 (누구/무엇에 의해) 언제 (어떻게) 작가가 됩니까?"
햐, 이거 참 우문 이지만 재밌고도 야릇한 생각거립니다.
'사람은 도대체 언제 사람이 됩니까?' 이렇게 말을 고쳐보니 더욱 가관이군요. 열 달 배부른 동안도 사람으로 여겨서 태어나자마자 한 살 먹는 게 '조선 나이'지요. 그런가 하면 "넌 언제 사람이 될래?" 소릴 늙도록 듣는 어른도 더러 있습니다. 그 타박을 나도 거울 보며 거의 날마다 주문인 양 외는데, 내일부터는 "넌 언제 작가가 될래?"로 당분간 바꿔볼까 싶습니다.
또한 우답인가요?

한 문단 써서 올려놓고 보니 그 사이에 최진욱 선생 글이 먼저 들어섰군요. 몇 줄 더 보탭니다.

미술저널에서 통용하는 신인, 중견, 중진, 원로 따위 '작위'라는 게 흡사 소위, 중령, 중장, 대장 식의 계급질서를 본뜬 것이라 나는 아주 질색으로 싫습니다. 그래서 최 선생이 "주창"하는 "40대 중반 신인론"보다는 '작위 부여' 행태 자체를 아예 거부하고 폐기토록 방향을 잡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군요.
요사이 일간지며 잡지에 자주 오르내리는 '강요배 개인전' 기사 속에 '대가'라는 말이 너무나 태연히 쓰인 것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이제 쉰을 갓 넘긴 젊은 나이인데 말이지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지도 겨우 십 년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긴 그가 살고 있는 작업실 터가 400평이 넘는다니, 뭐 대가라 불릴 만도 합니다. 그리고 '낯간지러움'도 쾌감의 일종이지요 아마.


조이한 :
사실 질문을 보내고 나서 저 스스로도 우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엉뚱한 질문이 왜 생겼냐면, 이곳에서 유학하는 한국 사람들이 스스로 작가와 학생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헤매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이미 개인전도 했고 단체전에도 여러번 참가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말입니다. 그런데도 스스로를 왜 작가로 인식하지 못하는가 하고 봤더니, 개인전도 자기 돈 내고 하는 거라더군요. 문학 작가로 치면 자기 돈 내서 출판 한 번하고 작가행세 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소위 데뷔를 하고도 스스로 작가 의식을 갖지 못하는 거죠.

데뷔는 그렇게 했다고 쳐도 그렇다면 작품을 팔아서 먹고 살 수 있어야 작가라는 말을 할 수 있을텐데, 최진욱 선생님 말처럼 전업으로 5년을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거 아닙니까? 제가 들은 바로는 대학교수라는 명칭을 달고 있어도 작품 하나 팔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하더군요. 작품도 못 팔고 전시회도 자기 돈 내서 하고 미술과도 상관없는 직업을 갖고 있다면 남는 건 자기가 작가라고 하는 (우기는) 의식뿐이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렇게 자기가 작가라고 우길 수(?) 있으려면,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 버틸 수 있으려면 뚜렷한 문제의식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것 마저 없다면 절망적이지요.

최진욱 선생님은 그런 문제의식마저 수입되는 것 같은 불안을 느끼셨다고 했습니다. 자기 현실에서 벗어나 유행을 따르는 행태를 지적하신 거라 생각합니다. 유학형태에만 한정되서 말씀드린다면 그런 현상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바르다는 의미에서 당연하다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 미술 공부를 끝내고 미술로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습니까? 유학은 했지, 예전처럼 미술학원 강사를 할 수는 없지, 작품을 팔아서 먹고 살 길은 막혀 있지, 남은 건 대학교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드는 거겠지요. 이곳에서 공부하면서도 온통 머리는 한국을 향해 있습니다. 이곳에서 작가로 승부해 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찾아보기 정말 힘듭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만 끝나면 어디 자리하나 없을까 기웃거립니다. 가서 운 좋게 강사자리라도 구하게되면 서구에서 배운 대로 가르칩니다. 자기만의 문제의식, 그런 거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건 미술사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집니다. 적당히 하루라도 빨리 논문 써서 한국에서 자리잡을 생각만 합니다. 이곳 미술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미술평론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어떤 작품들이 전시가 되는지 파악하며 공부하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공부하고 돌아가서 서구의 최신 이론 가르치는 것으로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려 합니다. 그렇게 공부한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시대 미술을 평론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미술을 논하는 자리에 작품 얘기는 없고 피상적인 이론만 허공을 떠돌게 되는 거겠지요.


최진욱 :
생각보다는 대담이 재미없어지네요.
어찌 보면 나와 박불똥 씨는 너무 비슷한 사람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뭐에 분개하는 코드도 대충 비슷한 거 같고. 단지 박불똥 씨가 나를 ‘부’쪽에 위치 지우고, 자신을 ‘빈’ 쪽에 위치 지운다는 게 다른 점일 텐데, 그랬거나 말거나 시선이나 시각은 같으니까 말이죠.

오늘날 대학교수가 얼마나 부티 나게 사는지, 또 유학씩이나 하고 돌아 온 내가 얼마나 부티나게 살았는지 얘기하고 반성해야하는 자리는 아닌 거 같고, 어쨌든 박불똥 씨 위치에서 보자면 내가 비판의 대상이 아닌 것도 아닐 테고, 시쳇말로 ‘뻘쭘'한 대담이 되고 있군요.

얘기의 방향을 돌려, 나는 여러 자리에서 민미협을 존경한다고 얘기했고, 우리 미술에서 유일한 미술은 ‘민중미술’이라고-진심으로-떠들고 다니는데, 민중작가들은 왜 나를 그렇게 싫어하는 거죠? 나라는 인간이, 개인의 어투와 감정과 문화로 뱉는 말을 왜 오만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박불똥 :
자기 돈 퍼들여서 오시어요/ 보시어요/ 드시어요 잔치 벌이는 신출내기 미술가의 개인전 행렬을 시인, 소설가연 하는 언저리 문인의 자비출판 행태와 마찬가지 꼴불견으로 치부하긴 좀 그렇지요? '비리ㄴ내'에 에워싸인 이른바 공모전의 실상을 모르지 않는다면, 젊은 작가들이 화단활동 초기에 보여주는 출혈 전시가 맘 부득이 불가피한 것인 줄도 알 터입니다.

그런데 조이한 선생은 '작가로 산다는 것'에 대한 이해를 지극히 표면적인 두 가지, 즉 초대받아 전시하기와 작품 팔아 먹고살기로부터 시작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나는 조 선생이 이어서 언급하신, 그도 저도 못 이뤘을 때 개기고 우기며 버티는 '독기'로서의 "문제의식"을 보다 절실한 작가요건으로 칩니다. 문제의식이 제대로 살아있는 작업이라면 내 돈을 들인 전시이건 네 돈을 들인 전시이건 가릴 것 없으며 작품이 팔린다 안 팔린다하는 사항도 그다지 개의할 바 아닙니다.
작가의 치열한 문제의식, "이것마저 없다면 절망적"이라 하신 조 선생의 말을 나는 "그것 저것 다 있어도 정작 이것이 없다면 말짱 꽝"으로 고쳐 적고 싶습니다.
따라서 그야말로 '작가다운 작가'는 내가 보기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달리 부를 말이 마땅치 않아서 '작가'라는 이름을 온통 손쉽게 달고 사는 너그러운 현실이긴 하지만 '작가=쟁이'라는 인식을 넘어서는 의미의 '작가'는 도나 개나 함부로 할 수 있는 노릇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말 나온 김에 '돈'과 '허영'한테 한마디하겠습니다.
"작가를 '물'로 보지 말라!"


박불똥 :
나도 최진욱 선생(외모가 아닌 성향/기질)한테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을 이따금 받습니다.

최 선생이 내 심통의 중요한 지점-배꼽을 찌르셨네요. 나는 사람살이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 다각도로 관심 있어합니다. 그 관심의 기저에 똬리 튼 열등감이나 이로 말미암는 적개심과 공격성이 지난 날 나를 지탱해준 '활력'의 주요한 부분이었지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으며 또한 앞으로도 당분간(희망사항) 내지 죽을 때까지(절망사항) '개 못 줄 제 버릇' 따라 속 끓이며 살아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민중작가들"이 '최진욱'을 싫어한다?
글쎄요. 나도 '민중작가'인데.... 내 주위의 누가 '최진욱'을 어떻게 싫어하는지 그 예를 나는 알지 못합니다. 아무튼, 최 선생 말대로라면 나 역시 선생을 싫어하는 축에 들겠군요? 그리 비쳤을 만하네요.
이 자리를 빌어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나는, '최진욱'을, 좋아합니다!" 다만 선생의 어떤 '맥락'이 불쾌했던 것뿐이지요. 사실 그 맥락이라는 것조차도 바라보는 각도 따라 저마다 해석이 다를 테니 못박듯 '고정된 미움'은 아닌 셈입니다. 세상에 누가 누굴 '무조건' 좋아한다/미워한다는 게 미치지 않고서야 어디 가능한 일인가요?

'민미협' 회원이 아니고 '80년대 민중미술 현장에 합류하지도 않았으면서 "여러 자리에서 민미협을 존경한다고 얘기했고, 우리 미술에서 유일한 미술은 민중미술'이라고-진심으로-떠들고 다니는" 최진욱 선생을 지켜보노라면 나는 십 년쯤 전 사회분위기의 일단이 저절로 떠올라 다시금 입맛이 시고 떫어집니다.

사회주의의 종주국 소련이 해체되고 동구 공산권 전반이 몰락하는 국제 정세, 곧 자본제의 전 지구적 지배 질서 재편에 맞물려 국내의 사회변혁기세도 풀죽는 방향으로 급전직하하던 '90년대 상황에서, 민중미술의 소위 '간판작가'들 중 상당수는 "나를 '민중'미술가로 단정지어 부르지 말아다오"하는 당부를 공공연히 나불대고 다녔습니다. 물론 그러한 처신을 순전히 '기회주의적 작태'로 단순 무식하게 매도할 뜻은 없지만 대비하여, 신학철 씨가 "치받고 올라오는 후배들이 나를 민중작가로 인정해주지 않을까 봐 오히려 그게 걱정이야"라며 헐,헐,헐, 웃던 모습을 나는 두고두고 잊지 못합니다. (아 쓰발, 븅신같이 눈물 날라하네)

이 신파조 에피소드를, 최진욱 선생한테 내미는 혀-메롱!으로 혹 괘념하실 지 몰라 덧붙이는 사족인데, 나는 최진욱 선생이 민미협이나 민중미술에 대해 표명한 애정과 지지를 액면 그대로 사심 없는 "진심"인 줄 '진심으로' 믿습니다.


최진욱 :
어쨌든 모종의 '맥락' 하에 나에 대해 불쾌할 뿐이라는 말씀, 여전히 어떤 맥락이 그 맥락인지 궁금하지만 그 쯤 하고요. 90년대 초 민중작가들 일부가 자신들을 민중작가라고 부르지 말아달라고 했다는 에피소드, 나도 눈물이 나와야만 할 지경이군요.

정말 이상한 경험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와 비슷한.
그 중에 하나가 '민중미술은 정치의 표현에는 성공했지만 표현의 정치에는 실패했다.'는 그런 얘기하고, 늘 민중작가들 스스로 입에 달고 다니는 '지난 날의 실패'라는 표현, 이런 말과 표현을 들을 때, 나는 정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제 정신인가?' 속으로 생각했죠.

민중미술은 사실은 대성공이었죠. 너무 크게 성공하다보니, 뒷 감당이 잘 안 됐을 뿐이란 말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됐어야 정상이겠죠. 너도 나도 개도 소도 '나도 민중작가라고 불러다오.'
나를 간혹 민중작가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되게 부끄러워합니다. '감히 내가 어떻게 민중작가로 불리울 수 있는가. 오해일망정'.
당시 민중작가들 중에 내가 그들 꽁무니에 슬며시 스며드는 거에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분들이 더러 계십니다. 그 건 미술이 변하고 있는 징조였을 따름인데도 말입니다.


90년대 초부터 포스트모던이다 뭐다 해서 미술이 변했습니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사회는 민주화되고, 대중매체의 시대가 바야흐로 열리니 미술도 변할 수 밖에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미술판에서는 '민중미술'이 헤게모니를 잡지 못했어요. 80년대 신랄하게 기존 기득권 미술인들과 경합을 버리다가 슬며시 샅바를 놓고 관중석을 지나 비상구 쪽으로 몸을 돌려 나가버렸거든요. 어떻게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 심지어 군부독재치하에 검찰 측 증언을 마다하니 않던 인물이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장직에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굵직굵직한 매체들에서 필명을 드날리고 있어요. 민중작가들은 왜 떼거지로 이 경기장을 떠나버렸나요?
미술이 변했다면 그 건 단지 민중작가들이 이 경기장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거칠게 말해봅니다. 옳든 그르든 말입니다.

물론 나로서도 그 때를 겪었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같이 풍경화나 그리던 사람도 이상하게 공기가 바뀌니 느낌이 잡히질 않더라고요. 정치적 긴장이 팽배하던 장소를 그리는 일과 그런 긴장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의 장소를 그리는 일은 너무 달랐고, 당연히 내 그림은 곤두박질 쳤죠. 나는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봐요. 그러나 민중작가들이 일시에 사라져버린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들은 '군부독재정치' 외에는 그릴 수 없는 사람들이었을까요? 그야말로 '정치의 표현' 외에는 할 수 없었던 걸까요? 그런데 그 것도 아니죠. 지금도 정치적으로는 수구와 진보가 대가리가 깨져라고 싸우고 있는 참이니까요. 아마 민중작가들은 뭘 대단히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성공을 실패로 보기까지 했으니 말 다했죠.(망할놈에 민중작가들!)

조이한 :
며칠 동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두 분의 얘기 사이에 제가 낄 틈이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포럼a에서 저와 두 분 선생님의 대담을 연다기에 아주 의아했지요. 제가 왜 이 대담에 끼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박찬경 씨가 저의 역할을 미리 얘기해 주지도 않았고 "자, 대담 시작합니다"라고 하면서 막판에 저더러 사회자 역할을 하라고 지나가는 말처럼 던졌습니다. 그 말뜻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대담이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저 "미술에 대해 말하기"가 주제라니 이에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두 분 선생님의 대화가 이렇게 진행되는 걸 보면서 대충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박불똥 선생님과 최진욱 선생님의 포럼a 자유게시판 논쟁이 이 대담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두 분 사이의 논쟁을 지켜보면서 도대체 무슨 일들이 오가고 있는지 궁금해 했지요. 그리고 그 중, 정말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는 제게 이 대담의 참여자 자격이 부여된 겁니다. 왜 하필이면 한국 사정 모른다는 걸 자타가 공인하는 나를 이 자리에 끼어 넣었을까? 혹시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역할을 솔직히 대변해달라는 요구였을까? 그렇다면 주제넘을지도 모르지만 이 대담의 참여자로서 나름대로 역할을 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 자유게시판 논쟁을 지켜보는 저는 참 갑갑했습니다. 박불똥 선생님이 뭔가 대단히 불만이 있으신 것 같은데 직접적으로 이유는 밝히지 않고 비아냥거리며 딴지를 거는 것처럼 보였고, 최진욱 선생님은 지난 글에 쓰신 것처럼 "도대체 날 왜 이리 미워하는 거야"하면서 억울해 하시는 걸로 보였습니다. 그리곤 흐지부지 끝났지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지만 억지로 끄집어낼 수도 없는 일이라서 일단 그렇게 단락이 지어졌습니다. 전 사람들이 마치 권투중계 보듯 두 분의 공박을 지켜보는 게 못내 못마땅했습니다. 그리고 두 분의 논쟁이 오래전 제가 겪은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예전에 운동하다가 뒤늦게 유학 온 나이 많은 A라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남자의 동창생 B 는 미리 유학 와서 공부하고 있었지요. A는 성격이 참 별로 였습니다. 술 먹으면 깽판 치고 툭하면 과거에 운동하던 경력만 들먹이면서 다른 사람들을 기회주의자로 몰아대곤 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싫어했지요. 그런데 B는 A의 그 모든 꼬장을 다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A를 비난하면 그를 변호하면서 감쌌고 그가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일들을 다 해주었습니다. 심지어 A가 자신을 근거 없이 비방하고 돌아다니는 것도 그냥 참아 넘겼습니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궁금해하자 B는 말했습니다. "자신이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고 있을 때 A는 짱돌 던지다 감옥 가고 돈 한푼 안나오는 노동운동 하다가 저렇게 되었다. 난 그에게 진 빛이 많다"라고 했습니다. 전 그 때 정말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 관계와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중요한 건 현재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요. 언제까지 과거의 기억을 싸안고 부채와 채무관계를 이어나갈 것인가. 자신의 현재로 승부를 걸고 말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고...

저는 두 분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습니다. 박불똥 선생님이 예전에 민중미술을 하시던 분이라는 것 외에는. 그런데 두 분 논쟁을 보면서 최진욱 선생님의 부채의식, 박불똥 선생님의 피해의식이 느껴지더군요. 부채의식과 피해의식이 발전적으로 이루어지면 미술계에도 긍정즉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보기엔 이 두 심리 상태가 별로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제가 하는 말을, '나이도 어린것이', 하며 불쾌히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박불똥 선생님의 회한에 찬 "신파조 에피소드"를 맞받아 최진욱 선생님께서 그렇다면 "민중작가들은 왜 떼거지로 이 경기장을 떠나버렸나요?"라고 외치십니다. 전 이 이야기들이 한번쯤 나올법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이렇게 사뭇 비장한 어조로 센티멘탈하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은 좀 거북합니다. 제 생각엔 "그 때의 그 민중작가들이 경기장을 떠났을 뿐"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 분들이 더 이상 그 때의 그 감수성으로 작품을 하지 않는다고 이 땅의 민중미술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최진욱 선생님 말씀대로 시대가 바뀌었지요. 아직도 수구 보수의 싸움에 박 터지기는 하지만 더 이상 군사독재시절은 아니거든요. 변화된 상황은 미술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모든 상황, 냄새, 촉각, 이미지, 일상의 숭고함과 지난함에 비판적인 시선을 던지고, 세포 하나하나를 날카롭게 일으켜 세워 반성의 계기들을 포착하는 젊은(나이가 아닌) 미술은 모두 달라진 의미에서의 민중미술(차라리 비판적 미술이라고 해야 할지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어떤 미술이 되었든 그것이 사람들한테 보여지질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예전에 걸개그림은 한꺼번에 수 백명에서 수 만명에게까지 보여졌거든요. 그 미술에 감동 받고 좋아했건 촌스럽다고 싫어했건 간에 어쨌든 대중에게 보여짐으로서 자기 의사 전달은 할 수 있었지요.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지금 두 분이 "자신을 싫어하는가", "아니다. 좋아한다. 어떤 맥락에서만 싫어할 뿐이다"라는 말을 주고받음으로써 화해 분위기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제가 찬 물을 끼얹는 건 아닌가 조심스럽습니다만 그런 화해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군요. 왜냐하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는지 지금도 알려진 바가 없고 두 분 다 그것에 대해선 말씀을 하지 않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뭔가를 전제하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대담에서 이 주제가 나오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나왔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전제를 밝히지 않고 넘어간다면 아주 이상한 모양새의 대담이 될 것 같습니다. 여전히 아무 문제도 밝혀진 바 없는데도 불구하고 얼렁뚱땅 화해의 모양새를 띄게 되는 거죠. 두 분께서 개혁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포럼a 논쟁에서처럼 두 분만이 아는 전제를 깔지 마시고 구체적으로 어떤 입장 차이가 있는 건지 설명해 주실 수 있겠는지요?


최진욱 :
아마 조이한씨의 이런 점이 이 대담의 사회자로서 적격자로 판단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한 건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각이 선 시선. 자신의 입장을 어찌 되었건 밝혀야겠다고 믿는 투명한 책임의식. 게시판 글에서 그런 게 느껴졌거든요.

잘은 모르겠지만 대담 사회자로서 요구되는 저널리스트(물론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로서의 후각은 별로라고 생각되지만 말입니다. 용서하십시오. 나도 이 대담의 참여자로서 이 대담의 흐름을 3분의 1은 책임지고 있기에 지루한 대담의 참여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조급한 마음에 사회자의 분발을 은근히 촉구했던 것입니다.

나는 포럼A에서 이 '대담'의 꼭지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재미있게 생각되었습니다. 사실 글은 믿을 수 없어도 말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말이 더 '리얼'하다고 해야겠죠.
이렇게 필담이 되고 보니 또 글이 가진 맹점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 같네요.

사실 민중작가에 대한 부채의식은 필요합니다. 그리고 중요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지지자로서 그들의 분발을 촉구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내가 별 볼 일 없는 작가 취급을 받는 거 참을 수 있습니다. 나는 사실 민중작가들에 비하면 별 볼일 없는 작가였으니까요. 어찌 보면 부채의식 따위는 필요가 없을 수도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비평과 언론이 그들을 하늘 높이 띄어줬더라면 나 같은 사람이 왜 따로 부채의식을 가져야 할까요? 그냥 죽치고 부러워하면 그만인 것을 말입니다.

요는 민중작가들이 그 후로 소위 그 '가난함'을 토대로 민중미술을 싹 틔워 놓고, 개화시켜 놓고, 다시 그 '가난함' 속으로 걸어 들어가 버렸다는 데 있을 겁니다. (왜 그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그들의 빵을 차지하려 하지 않았을까요? 왜 당시로서는 시효가 끝나버린 수구 미술인들에게 웃으며 그들의 몫을 내주었을까요? 바보같은 새끼들.)

김영삼 시대, IMF 이 전 까지 호황을 누렸던 건, 비 민중권, 소위- 해방이후부터 줄곧 그들 차지였던- 기득권 주류 보수 미술인들이었습니다. 이 건 언론이 언제나 그들 편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봅니다. 또 언론이 그랬던 건, 담론을 이끌어 갈 진정한 민중진영의 미술비평가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민중미술은 시효가 끝나버리고 예전처럼, 늘 그래왔듯이 외국의 현대미술이 그 자리-담론의 중앙부-를 차지하고 앉아 버린 것입니다.

이 게 당연한 일입니까? 이 명백한 '단절'에 대해 누군가는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습니다. 어느 나라 건 문화적으로 개방된 나라는 서구의 현대미술이 담론의 중심부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평'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서 입니다.

비평이 없으면 개방적으로 들어 온 외국의 문물이 우리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 현상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져 왔습니다. 수구 꼴통들의 미술과 평문이 새로 들어온 서구 담론의 껍질을 덮어쓰고 실험적이고 앞서가는 미술인 양 우리 미술판을 호도해 왔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 걸 지적하고 막아서야 할 세력인 민중진영의 이론가들과 작가들은 소위 제대로 된 의미의 '해체주의자'들이 되어 해체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 모든 것이 당연한 건데 뭘 그러냐고 마치 성인처럼 말합니다. 내가 보기에 제대로 된 비평이 없다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공무원들이 학예연구원을 시다바리로 아는 미술관의 제도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미술시장이 완전히 죽어버린 것 역시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바로 예전 형태의 민중미술이고, 민중작가고, 전투적인 민중평론가들입니다. 과격하게 말한다면 페미니즘이나, 해체주의나, 글로벌리즘, 생태주의 모두 수구 벅테리아들의 온상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박불똥 :
민중미술에 관한 최진욱 선생 이야기, 무슨 소린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자의적인 해석과 표현들이 하도 많아서 횡설수설처럼 느껴지네요. '민중미술과 그 이후'로 박사학위라도 받으신 분 같아요. 최 선생한테는 '민중'도 '미술'도 식은 죽 만큼 먹기 쉬운 것인지 모르지만 내겐 그렇지 않습니다. 일례로 이런 거,
<민중미술의 소위 '간판작가'들 중 상당수는 "나를 '민중'미술가로 단정지어 부르지 말아다오"하는 당부를 공공연히 나불대고 다녔습니다. 물론 그러한 처신을 순전히 '기회주의적 작태'로 단순 무식하게 매도할 뜻은 없지만 대비하여, 신학철 씨가 "치받고 올라오는 후배들이 나를 민중작가로 인정해주지 않을까 봐 오히려 그게 걱정이야"라며 헐,헐,헐, 웃던 모습을 나는 두고두고 잊지 못합니다. (아 쓰발, 븅신같이 눈물 날라하네)>
내가 진술한 이 단락을 "90년대 초 민중작가들 일부가 자신들을 민중작가라고 부르지 말아달라고 했다"로 딱 부러지게/단순 무식하게 정리해버리는, 저널리즘 식 안목 말이지요.
'민중' 한가지만 놓고도 정확한 이해를 토론하자면 몇날 며칠이 걸릴지 모를 일을, 이렇듯 마구잡이로 휘둘러대다간 "대담 계속되다"가 아니라 "대담 날 새다"일 것 같은데, 설마 막가자는 건 아니겠지요?

민중작가들은 나를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냐고 요 앞 번에 최진욱 선생이 물으셨죠? 나도 하나 물읍시다. 최 선생은 왜 '민중미술' 얘기만 나오면 그렇게 열광인지 광분인지 하는 겁니까? 조이한 선생이 말한 "부채의식"이 그토록 깊어요? "피해의식"은 혹 아닌가요?

최진욱 :
다 아는 얘기 가지고 개념해석에 몇날 며칠이 필요하다면 물론 날새겠지요.
민중미술이 무엇인지 나만큼 알고 확신하는데, 그리고 열광하는데 박사학위가 왜 필요합니까?
내가 흥분해야할 이유에 동의가 안 되는 지점이 정확히 어디입니까?

"90년대 초 민중작가들 일부가 자신들을 민중작가라고 부르지 말아달라고 했다"
이 말이 박불똥씨 증언에 대한 단순무식한 저널리즘적 해석이라는 말입니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군요. 나는 그런 말을 박불똥씨로 부터 처음 들은 셈이고, 다시 언급한 것에 불과한데 말이죠.

남이 흥분하면 이유가 합리적이거나 말거나 광분으로 몰아붙이는 그 작태가 한심할 뿐입니다. 단언컨데 피해의식이야말로 님의 것입니다.


조이한 :
박불똥 선생님께 드리는 질문입니다.
최진욱 선생님이 민중미술을 거론하는 게 왜 그리 못마땅 하십니까? 민중미술에 대해서는 예전에 민중미술 하던 사람들만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최진욱 선생님이 민중미술에 존경을 표하면 안될 이유라도 있나요? 민중 미술 얘기만 나오면 흥분하시는 분은 박불똥 선생님처럼 보입니다.

최진욱 선생님께서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포럼a 게시판 논쟁에서 두 분 사이에 개혁에 관한 밑그림의 차이가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권력싸움처럼 보였던 게 사실입니다. 그걸 숨기고 계신가요? 아니면 저의 오해였던가요.

저는 이 대담이 계속 될 수 있을지 사실 의문입니다.
최진욱 선생님께서 정말 잘 지적하셨는데, 저는 이 대담의 사회자로 부적격인 것 같습니다. 사정도 잘 모르고 도대체 얘기를 어떻게 끌고 가야할 지 갈팡질팡인데 두 분 선생님의 말씀은 감정싸움으로만 치닫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제 생각을 말하라고 하면 모를까 사회자 자리는 사양하겠습니다.

박불똥 :
쌈판에 오른 닭(대가리) 꼴 될까봐 나는 이 대담 참여를 애초 꺼렸습니다. 또한 최진욱 선생이 "뻘쭉"한 분위기를 바꾼답시고 "민중작가들(중 한 사람인 박불똥)은 나를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냐?"라는, 대담 주제와 무슨 연관인지 모를 물음을 내게 던졌을 때 '어떤 맥락'만 아니라면 "나는 최진욱을 좋아한다"로 응대함으로써 질곡일 게 뻔한 이 '엉뚱한 구렁텅이'를 비켜가려 했습니다. 그리고 '민중미술'을 이번 대담의 '주요 안건'으로 삼는/씹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발이 빠지고 말았네요. 피곤합니다. 무엇 때문에 이 지경을 치러야하는지요?
포럼a 게시판으로는 부족해서 '특설 링'을 만든 겁니까?

조이한 선생한테 답합니다.
나는 최진욱 선생이 민중미술을 '거론하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한 적 '결코' 없습니다. 한심한 질문입니다.
특히, "민중미술에 대해서는 예전에 민중미술 하던 사람들만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최진욱 선생님이 민중미술에 존경을 표하면 안될 이유라도 있나요?" 이건 너무나 수준 이하의 질문이라서 조 선생에 대해 일순, 무례한 평가를 속으로 내리고 말았습니다. 어이가 다 없네요.
한 술 더 떠, 박불똥은 민중 미술 얘기만 나오면 흥분한다? 점입가경, 오독의 극치!
간곡히 부탁드리건대 사람 말/글 좀 똑바르게 듣기/읽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까부터 자꾸 "두 분(실명 최진욱과 박불똥)의 포럼a 게시판 논쟁"을 들먹이시는데 다시 한번 거길 찬찬히 둘러보세요. 나는 최진욱 선생과 "논쟁" 벌인 일, 천만에! 없습니다. 최 선생의, 곡해와 손잡은 자기발산 일변도의 힐문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도 소용도 나는 못 느끼는 사람입니다.

"흐지부지" 끝나버린 "그 자유게시판 논쟁을 지켜보는 저는 참 갑갑했습니다." 조이한 선생 뿐 아니라 나도 참 갑갑했습니다. 더 정확히는 '공론화'라는 운을 처음 뗀 내가 '가장' 갑갑했습니다. 왜냐하면 조 선생을 포함한 많은 독자들이 갑갑해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박불똥 선생님이 뭔가 대단히 불만이 있으신 것 같은데 직접적으로 이유는 밝히지 않고 비아냥거리며 딴지를 거는 것처럼 보였다"는 이 말, 또 문제네요. 분명히 "불만"의 "이유"를 내 딴엔 최대한 밝혔습니다. 따옴표까지 쳐가면서 신경 써 작성한 내 글을 조 선생은 도대체 눈으로 안 읽고 무얼로 읽으신 겁니까? 그야말로 맥 빠지는 노릇이군요.

조 선생이 보시기엔 '박불똥'과 '최진욱'이 (있지도 않은 논쟁을 통해!) "개혁에 관한 밑그림의 차이"로 "권력싸움"을 벌이는 거 같더라 굽쇼? 아.... 으....
전자게시판이 '오해 잘 낳는 미운 오리'라는 건 일면 수긍하는 바이지만 이거야 원.
조이한 선생, "사정도 잘 모르고" 그래서 영판 헛 짚으시고 따라서 "이 대담의 사회자로 부적격인 것" 정말 맞습니다, 맞고요.



박불똥 :
"민중작가들은 왜 나를 그렇게 싫어하는 거죠? 나라는 인간이, 개인의 어투와 감정과 문화로 뱉는 말을 왜 오만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저 앞 번 대목에 나왔던 최진욱 선생의 이 '앙탈'에서부터 다시 출발합니다.

최진욱 선생한테 묻습니다.
'유독 민중작가들만' 최 선생을 싫어하나요? 아니면 민중작가 이외에도 최 선생을 싫어하는 사람이 상당 수 있지만 그들의 반응은 별로 문제삼지 않는 건가요? 전자든 후자든 그 이유가 뭐지요 ?
(남의) 말의 희화화를 일삼는 개그맨이나 (남의) 말의 스탬프화에 다름 아닌 꼭두각시말고는, 사람은 누구나 "개인의 어투와 감정과 문화로" "말을" "뱉"고 살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뱉은 말에 대해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저 나름의 느낌을 갖게 되며 "오만하다"도 그 중 한 반응입니다.
무릇 '말'이란 상관/상호를 전제로 만들어지고 쓰이는 법이지요. 변기에 걸터앉아 혼자 지껄이거나 일기장에 내밀히 담아두는 것은 미처 '말'이 아닌 셈입니다. 따라서 정상적인 말은, '뱉고 듣는 관계' 속에서만 그 의미를 갖는 걸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말'을 매개로 한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인생을 새롭게 배우며 또 더 나은 세상을 꿈꾸기도 만들기도 합니다.
최진욱 선생은 미술판의 언로/언론에다 비교적 자주 '말'을 "뱉"아 대는 편이지요? 이는 곧 최 선생의 입이 크거나 많이 열려 있다는 뜻인데 그럴수록 귀도 크게 또 많이 열려 있어야 옳습니다.
최 선생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비록 소수더라도 그래야 바람직하거늘, 내가 알기로 결코 적은 수가 아닌 터에 "왜 나를 그렇게 싫어하는 거죠? (난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라는 '앙탈' 일색이니 더불어 참한 이야기 오래 나누기 곤란한 상대로 치부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한마디로 최진욱 선생은 자기 입 놀리는 열정에 워낙 사로잡힌 나머지 귀가 너무 꽉 막혀있습니다.

"무슨 개소리! 나를 인정하고 좋아하는 사람도 못지 않게 많다. 나는 '백아'이니, '종자기'만 남고 죄다 꺼져라!"
혹 여전히 그렇다면, 나는 더 할 말 없지요. 정치하는 것들한테서 그 따위 태도 이제까지 지겹도록 봤습니다.

최진욱 :
글이란 참 묘해요. (사람들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는 힘은 ‘말’도 가지고 있지만) 상대의 표정을 읽고 하는 말과는 달라서 일부사람들에게는 그 것이 무조건 마음을 다치게 하거든요. 하지만 자유게시판의 글이란 것이 마음 다치는 몇 사람 때문에 항상 ‘정갈’한 걸 요구할 순 없겠죠.

또다시 망언이라고 규탄하시겠지만 포럼A 자유게시판에서 나는 잘못한 게 없어요. 익명으로 욕이나 해대는 인터넷 자유게시판에서 나의 글쓰기는 ‘모범’ 그 자체죠. 나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말 마구하기’는 내 전매특허가 아니라, 게시판에서 ‘최선을 다하기’일 따름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현재로선 그 게 최선이었다는 얘기입니다. 간단하게 얘기해서 박불똥 선생님은 최선을 다하셨습니까? 그래야 할 이유도 없었고, 그럴 이유는 없으셨겠죠. 나는 이 게시판에 들어와 헛소리하는 자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선생님이 지금 나라는 인간과 싸우듯이요.

이 대담에서 조차 ‘빌어먹을 민중작가’, ‘바보같은 새끼들’ 해버렸지만 진한 애증의 표시라는 점, 아시면서도 피하지는 말아주십시오.

민중작가들 외에는 그들이 나를 싫어하거나 말거나 나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덕분에 쌍욕을 푸짐하게 들어먹고 있으니 그 걸로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독’ 민중작가들로 부터의 성토는 내게 괴롭습니다. 나는 그들을 욕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도덕성에 상처를 줄 수 없습니다. 지금 박불똥 선생께 대드는 건 예외 중에 예외에 속합니다. 이 대담은 내게 이런 곤혹한 심정을 토로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실제로 뭘 잘못했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학술토론장이 아닌-익명의 욕설이 난무하는 인터넷 공간에서 정갈한 글쓰기로는 무리라는 게 내 판단입니다. 내 판단이 무리라는 말씀이라면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한국의 비평가들을 욕했습니다. 삼성미술관을 욕했습니다. 오광수, 하종현, 이용우를 욕하고, 월간미술과 월간아트를 욕했습니다. 최초로는 (나를 포함한)미술인들의 무식함을 폭로하였습니다. 왜 미술판이 이렇게 후진가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 분노하였습니다. 이 모든 욕설의 총합이 소위 나의 ‘오만’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단지 한 인간의 캐릭터고 문화인 걸 가지고, 너는 안 되겠다고 한다면 어쩌란 말입니까? 나는 박불똥씨를 존경하지만 나를 바꿔야 한다고 한다면 그 건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말씀드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제 정말 우연히 작업실 선반의 먼지를 닦다가 1992년 금호미술관 박불똥 개인전 카다록을 발견하였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왜놈좆달당’ 작품도 거기 실려 있더군요. 놀랍게도 1985년 작이었습니다. 그 때 나는 뭘 했던가, 생각하니 갑자기 사위가 다 조용해지는 것 같더군요. 그러다 이 대담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간이 배 밖에 나왔지, 지금 박불똥한테 엉기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우리 미술판에는 존경심이 다 사라졌습니다. 박불똥을 존경해야하는 젊은 무리들이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까맣게 잊었을 때,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 그 걸 알 리가 없습니다. 지금 최고로 생각되는 조습보다도 박불똥 선생은 쎈 사람이었는데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장차 미술사에 남고 안 남고는 별개로 말입니다.)

한 편으로 나는 해괴한 인물입니다. 나는 이렇게 외칠 수 있으니까요. “야, 니들 왜 나를 존경하지 않는 거야?” 인터넷은 정말 해괴한 공간입니다. 이렇게 외칠 수 있는 공간이니까요.
지금 젊은 친구들이 박선생(민중미술의 대표작가로)과 나(현대구상회화의 대표작가로)를 존경하는 건 필경 좋은 일일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지금의 조습이 10년 후에 완전히 별 볼 일 없는 작가 취급을 받는다면 그 게 왜 조습 혼자만의 잘못이겠습니까?

‘존경’이란 어떤 긍정적 권위의 축적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우리 사회의 ‘축적 없음’은 문화적으로 좆도 아무 것도 없음으로 이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존경의 지분을 찾도록 하고, 박선생은 박선생의 존경의 지분을 되찾도록 합시다. 필히 존경이 쌓여가는 사회가 되도록 하는 것에 합의합시다.

조이한 :
박불똥 선생님의 호통에 아이구, 깜짝이야, 했습니다만 그 말에 삐지거나 상처받아서 안 들어온 것은 아니고 전시 때문에 바빠서 긴 글을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순전히 올라온 글들만 가지고 판단해서 써야하는 저로서는 상황판단이 상당히 늦을 수 밖에 없고 또 오독의 가능성을 항상 갖고 있습니다. 그건 모든 글읽기가 갖는 함정일 겁니다. 하지만 어떤 글이 상대의 글을 오독한 것이라면 화만 내기 이전에 왜 오독인지 밝히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면 될 일입니다. 그리고 저의 질문이 제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서 한 질문이라기 보다는 좀 답답한 생각이 들어서 푸념조로(이것도 정확한 말은 아닙니다만) 쓴 말입니다.

지난 포럼a게시판을 다시금 찬찬히 읽어 보았습니다. 박불똥 선생님의 문제제기가 크게 몇가지로 요약되더군요. 첫째, 새단체를 위한 논의에서의 공론화 문제, 둘째, 그 과정에서 민미혐과의 관계설정의 불합리성, 셋째, 개혁논의 과정에서 최진욱 선생님의 독선적이고 "안하무인"적 발언이 갖는 문제점 입니다. 이 중 지금 이 순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세번째군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다 연결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박불똥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바에 따르면 새단체를 위한 논의 과정에서 민미협을 배제(혹은 네멋대로식 해체/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박선생님께서는 비록 민미협이 이 시점에서 침체와 답보, 퇴행으로까지 보일지라도 20년간의 역사를 갖는 기존 단체인 민미협을, 자율적인 내부논의가 이루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외부에서 마음대로 조율하려는 시도 자체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신 것이라 보여집니다. 그리고 그 논의의 중심에 최진욱 선생님이 있습니다. (아니면 이 둘은 별개의 문제일까요?)

민미협과 민중미술에 대한 존경 표하기를 주저하지 않으시는 최진욱 선생님께서 새단체를 위한 논의 과정에서 민미협과의 관계설정에 주저하셨다면 그 이유는 뭘까요? 그건 (박찬경님의 답변을 빌자면) 90년대 이후 민미협은 "새로운 비젼을 제시하지 못했고 전과 같은 활력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민미협의 운동방법이나 방향이 새로운 개혁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는 데에 적합하지 않다는 말이겠지요. 그러므로 결합하려면 민미협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안되고 다른 모양새로 해야한다는 말일 겝니다. 새단체에 참여할 기존 단체나 개인을 고려하면서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텐데 그 과정의 정당성에 대해 이견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논의를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 요인으로 최진욱 선생님의 어법이 거론 됩니다. 무릇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은 타인의 비판과 이견에도 귀기울여야하는 법, 하지만 최진욱 선생님은 자기만 잘낫다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의 이견은 무시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전형이므로 이런 사람은 개혁의 걸림돌이다, 뭐 이런 주장이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담을 하면서 제가 저의 오해이기를 바라는 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박불똥 선생님께서 최진욱 선생님을 향해, 80년대에 참여하지도 않고 침묵했던 사람이 이제 시절 좋아지니 개혁 운운 떠드는 것을 못마땅해 하신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제가 미술계의 분위기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다른 운동판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들었거든요.

한쪽은 80년대 험악한 분위기에서 힘겹게 운동하다가 자유를 억압당했고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과거의 운동적 경직성과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사시를 보거나 유학을 통해 사회적 지위도 획득하고 유연하며 세련된 어법을 익힌 새로운 세대가 다른 한쪽에 있답니다. 시대가 바뀌어 소위 "진보"가 주류인 듯한 분위기가 되면서 진보세력에 국가적 지원을 해주게 되자 새로운 진보단체가 필요했는데 이때 구세력과 신세력간에 엄청난 갈등이 생겼다고 하지요. 둘 다 도덕성에서는 뒤지고 싶지 않았고, 네가 운동에 대해 뭘 안다고 떠드느냐고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기만하다가, 에라, 더럽다, 그거 너나 먹어라, 하고 둘 다 손을 놨다지요, 아마. 그래서 결국 죽쒀서 개 준 꼴이 되었답니다. 개혁이나 진보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단체가 그 자리를 맡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건 여러 분야의 진보/개혁 세력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전 미술계가 혹시 그 꼴이 나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최진욱 선생님의 말법은 부차적인 문제일테지요. 하지만 이건 저의 오해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민미협의 운동역사와 경험은 우리에게 소중하고 또 새로운 생각과 에너지, 시대를 읽는 신선한 감각 또한 중요합니다. 민미협이 지지부진, 구태의연하다면(!) 스스로 환골탈퇴의 과정을 밟아야 할 겁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이러저러한 상태에 있긴 하지만 새로운 개혁, 같이 하자. 서로 노력하자"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리고 포럼a를 비롯한 새단체를 위한 논의의 주체들 또한 구체적인 사안을 놓고 터놓고 얘기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너무 안일한 생각입니까?


박불똥 :
사람 산다는 게 뭔지. 먼지처럼 부질없이 떠도는 세상사, 이리도 어지럽고 바쁘네요. 요 며칠동안, 내가 백수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공사다망'한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야 겨우 한 숨 돌릴만하여 컴 앞에 앉았습니다. 평생을 연중무휴이다시피 팽이처럼 뺑뺑이 치는 '중생의 삶'이라니! 다시금 생각해봐도 '백수'는 참 괜찮은 인생이다 싶습니다. 그런데 백수조차 바삐 나부대야하는 이 현실, 뭔가 불길한 조짐 아닌가요? 국내경기가 엉망이랍니다.



조이한 선생의 여전한 오독 건 ;
"어떤 글이 상대의 글을 오독한 것이라면 화만 내기 이전에 왜 오독인지 밝히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면 될 일입니다"
: 조이한 선생, 내가 '화만' 냈나요? '오도독' 소리가 납니다.

조 선생이 "포럼a 게시판을 다시금 찬찬히" 읽고 "크게 몇 가지로 요약"한 "박불똥 선생님의 문제제기" 가운데 "둘째, 그(새로운 단체 결성) 과정에서 민미협과의 관계설정의 불합리성"은 합리/불합리 보다 민주/비민주가 그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 논의의 중심에 최진욱 선생님이 있습니다. (아니면 이 둘은 별개의 문제일까요?)"
: 별개거나, 별개가 아니더라도 그 논의의 '중심'에 최진욱 선생님이 있지는 않습니다.

"이번 대담을 하면서 제가 저의 오해이기를 바라는 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박불똥 선생님께서 최진욱 선생님을 향해, 80년대에 참여하지도 않고 침묵했던 사람이 이제 시절 좋아지니 개혁 운운 떠드는 것을 못마땅해 하신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제가 미술계의 분위기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다른 운동판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들었거든요"
: 대담 초반에 적어낸 글에서 나는 ('민중'미술가로 단정지어 부르지 말아다오='간판작가' 상당수//신학철=민중작가로 불러다오) "이 신파조 에피소드를, 최진욱 선생한테 내미는 혀-메롱!으로 혹 괘념하실 지 몰라 덧붙이는 사족인데, 나는 최진욱 선생이 민미협이나 민중미술에 대해 표명한 애정과 지지를 액면 그대로 사심 없는 "진심"인 줄 '진심으로'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조이한 선생은 결국 나의 "진심"을 의심하셨군요. 굉장한 사갈십니다.
그리고 '예를 들자면'이라는 식으로 "다른 운동판"의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자꾸 끌어대시는데, 조 선생이 '그 따위' 이야기를 접한 '청취범위'나 '표본수준'이 얼마나 광범한지 원단인지 모르겠으나 '소폭의 샘플'로 '각양각색의 케이스"를 너무 단순화/일반화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미술계가 혹시 그 꼴이 나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최진욱 선생님의 말법은 부차적인 문제일 테지요. .... 우리는 지금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하면 할수록 그 '서로' 간의 배려하고 자중자애하는 태도(말 법도 그 중 하나)는 다른 무엇보다 선취/선결해야할 '일차적인' 조건이지요. '말하기와 듣기'에 있어서 불필요한 반감과 잡음을 오히려 반기고 즐기는 듯한 'SM 최진욱'은 내가 보기에 결코 "부차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과거의 운동적 경직성과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 "운동적 경직성"이라. 이 기막힌 형용모순을 어찌 이해하면 좋을는지요?

"민미협이 지지부진, 구태의연하다면(!) 스스로 환골탈퇴의 과정을 밟아야 할 겁니다"
: 물론 오자 난 겁니다만 '탈태' 대신 "탈퇴"로 읽으니 한층 더 '의미심장'하네요.


박불똥 :
새 차를 뽑고서 한동안은 아주 작은 흠집만 나도 온 신경이 곤두서지요. 그러다가 '기스'가 시나브로 점철되어 웬만큼 '헌차'로 망가져 가다보면 어느 순간 긴장이 확 풀리면서 저절로 마음 너그러워지는 때가 옵니다. 물성적 소유권이야 물론 차 값을 치르고 차량 등록부 상 명의이전을 함으로써 자동으로 발생하지만 심성적으로도 '진짜 내 차'가 비로소 되는 건 그 '기스'로부터의 '해방/해탈'의 시점을 통과한 이후에나 가능한 셈이지요. 비단 자동차뿐 아니라 다른 물건도 마찬가지고 사람 관계도 또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최진욱 선생을 아직 편하게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어려움이 이러한 대담자리에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설령 최 선생과 내가 사석에서 '너, 나' 할 정도로 허물없는 사이일지라도 여기서는 '관계의 초기'에 지녔던 '긴장감'을 짐짓 되살려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같은 이치로, 언로/언론으로서의 어떤 '장'에다 '말'을 '뱉'을 적에도 그 짓에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자칫 마구 놀기 쉬운 입술과 혀를 스스로 지그시 깨물 줄 아는 자기조절-심호흡-"정갈"이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거 당연한 일 아닌가 싶습니다. 무대에 선 배우야 경력이 쌓여갈수록 한껏 뻔뻔스러워지는 게 칭찬 받을 기량이고 심지어 미덕일 테지만 우리가 그들처럼 능글맞게 굴 것까지야 없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시방 내가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왜 이렇게 점잔을 떨고 있는 거야? 구구절절 꼬불쳐 둔 배알이 아까부터 몹시도 꿈틀거려 이제 더는 견디기 힘들어!)

'인터넷 자유게시판에서 욕이나 헛소리 해대는 익명들을 상대로 싸우는 일'이 밑도 끝도 없을 정도로 지난한 피곤이요 얼굴에 침 튀는 악'취'고투라는 건 알겠으나 굳이 그러는 게 "최선"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오히려 필요악 아닐까요? 필요악은 최선과 거리가 멉니다. 그 악역을 최진욱 선생은 '최선을 다해' 자청/자임/자부하다시피 즐기는 걸로 내겐 보입니다.
최 선생의 '병법'이 초지일관 일직선만 그어댈지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지" 궁금한데 '이러저러하게 바뀌기를' 주문 내지 조언하기가 최 선생의 개성이 워낙 강해서 여간만 어려운 노릇이 아니네요. 다만 이 말만큼은 어떻든 하고 넘어가렵니다.
"최진욱의, 후방에 방치된 채 군량미나 축내고 있는 또 다른 '전투력'이 정말 아깝다!"
여기서 '전투력'은 '그림 그리기'를 일컫습니다. '최진욱'은 뛰어난 '화가'입니다.

동료 선후배 작가든 비평가든 국립현대미술관장 오광수든 서울시립미술관장 하종현이든 광주비엔날레 감독 이용우든 삼성미술관이든 월간미술이든 월간아트든 신문이든 방송이든 또 무엇이든 누구든 이 나라 미술판의 후진성을 볼모로 일신의 영달이나 집단의 이익 따윌 모의/모사하는 자라면 욕을 되로 말로 먹어도 싸지요. 틈 날 때마다 욕해야 옳습니다. 웬걸, 욕 퍼붓는 걸로 끝낼 게 아니라 아주 확 뒤집어엎어야겠지요.
사람들 뛰놀고 지나다니는 마당이며 길바닥에 잘못 뿌리박힌 '돌부리' 모양의 제도, 정책, 관행, 인식, 사고, 단체, 개체 등등 그 모든 것을 깨부수고 바로 잡는 일에 몸 사리지 말고 다함께 떨쳐나서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 대열과 진격에 앞장서고 있는 최진욱 선생이 여태까지 수행한 혁혁한 전투="욕설의 총합"을 곧 '최진욱은 오만하다'라며 눈흘기는 평판의 주요한 "근거"가 되었다고 이해하는 선생의 주장에 나는 좀체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벼는 벼요, 피는 핍니다. 벼논에서 벼랑 같이 자랐다고 피를 솥에 앉혀 밥 지을 리 만무하지요.

"야, 니들 왜 나를 존경하지 않는 거야?"
"해괴한 공간"에서 '해괴한 고함'을 지르는 "해괴한 인물"의 '남다른 가치'를 점차 인정합니다.
그러나 나는 최진욱 선생과 달라서 나 스스로 '존경'을 운위할만한 위인이 못됩니다. 존경이든 부동산이든 내 지분이 있다고 하면이야 당연히 찾고싶고 끝내 찾겠지만,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내겐, 반 백살 다되도록 연명한 이 남루가 '최선'입니다.
뺏거나 뺏기는 건, 결국엔 각자 능력의 문제이되 그 와중에서는 제도와 체제의 문제이고 저 멀리 원천에 팔자소관도 그 일부가 작용하는 줄 압니다.

첨단을 지향하는 구심력과 말단으로 파생하는 원심력의 길항 관계, 그것이 없고 있고의 차이, 또는 적고 많고의 차이가 아마 '최진욱'과 '박불똥'의 다른 점이겠거니 나는 짐작합니다.


최진욱 :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하면 할수록 그 '서로' 간의 배려하고 자중자애하는 태도(말 법도 그 중 하나)는 다른 무엇보다 선취/선결해야할 '일차적인' 조건이지요. '말하기와 듣기'에 있어서 불필요한 반감과 잡음을 오히려 반기고 즐기는 듯한 'SM 최진욱'은 내가 보기에 결코 "부차적인 문제"가 아닙니다."(박불똥)

"그러나 그 대열과 진격에 앞장서고 있는 최진욱 선생이 여태까지 수행한 혁혁한 전투="욕설의 총합"을 곧 '최진욱은 오만하다'라며 눈흘기는 평판의 주요한 "근거"가 되었다고 이해하는 선생의 주장에 나는 좀체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벼는 벼요, 피는 핍니다. 벼논에서 벼랑 같이 자랐다고 피를 솥에 앉혀 밥 지을 리 만무하지요."(박불똥)

두 글을 통하여 이 반목의 진상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불필요한 반감과 잡음' 즉, 민중작가들의 나에 대한 반감을 내가 반기고 즐길 리 만무하다는 걸 박불똥씨가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게시판에서 비합리, 비이성, 비인간적 언사를 일삼는 이들과의 반감과 잡음은 실로 즐기는 편입니다. 그리고 이는 진정 '부차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두 번째 글에서 말씀하신 건 내가 인정합니다. 나는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 '혁혁한 전투'에 심술과 유희를 칵테일 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인격에 '기스'가 난 사람이 아니라면 나처럼 할 수 없을 겁니다. 피를 섞어 밥을 지었습니다.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첫 번 글의 오해는 풀었으면 합니다. 첫 글의 오해가 풀린다면-참지 못하고 변명을 하자면-두 번째 글의 동의하기 어려움도 조금은 풀릴 수 있지 않을는지요.


박불똥 :
전자게시판에 "심술과 유희를 칵테일한" 글이 난무하는 거, 인터넷환경의 속성 탓이기도 하지요. 그 속성을 나는 온통 못마땅해 하지는 않습니다. 등 두들겨 맞으면서까지 게워버리고 싶은 것 천지인 현실을 매일같이 보고 듣고 먹고 마시느라 불가피 발생하는 다량의 울화성 두통성 쓰레기와 오폐수, 그것의 매립지/하수처리장으로 나는 '인터넷 글 쓰기'를 주목합니다. 물론 '악취'가 아주 안 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만하면 '난지도/탄천'에 비해 거의 무공해나 다름없는 편이지요. 어쩌면 '멋진 신세계'의 비상탈출구 내지 해우소-복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물론 인터넷이나 인터넷 글 쓰기의 본령은 그와 같은 부수 효과 너머에 더 값진 게 따로 있을 테지요. 최진욱 선생이 "심술과 유희를 칵테일한" 글 쓰기를 통해 한편으로 유발하는 독자들 반응-'반감과 잡음'을 즐기는 일 또한 미술개혁의 훼방꾼을 겨냥하여 가차없이 활시위 당기는 '최진욱의 본령'이 당연히 아니겠지요. 따라서 그 즐김, "부차적인 문제"인 거 맞습니다.
그런데도 그 '부차적인' 문제를 내가 '일차적인' 조건이라고 달리 규정한 것은 "오해"가 아니라 '이해의 차이'입니다. 나는 구분 짓지 않은 '독자 일반'을 전제로 이야기한 데 반하여 최진욱 선생은 '독자도 독자 나름'이라는 식의 어떤 분간을 둔 대응논리를 펼치는 듯합니다.
5일장 같은 포럼a 게시판에 생판 터무니없는 장돌뱅이가 문란히 드나든다고 나는 보지 않습니다. 단골도 구경꾼도 마찬가지고요. 그들 모두를 가상의 '하나-우리'로 일단 접수하자면 목 좋은 곳 차지하고 '골라, 골라!'를 연호하는 토박이 장꾼의 목청과 장단이 구성지고 흥겨울수록 훨씬 더 벌이가 낫지 않겠느냐는 게 내 생각입니다.
최진욱 선생은 목소리가 지나치게 새됩니다. 메리트를 데미지로 죄 상쇄시키는 바람에 파장 녘 셈해보니 목이 쉴 정도로 애쓴 데 비해서는 남은 게 얼마 없는 형국이지요. 아까운 재능의 덤핑입니다.
정녕코 '최선'은 불가능한가요?

"나는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최진욱 선생의 이 진술에 그만 속이 뜨끔했습니다. 그 토로를 반어적으로 하신 건지는 모르겠으되, 나는 '도무지 나한테 인격이란 게 있기나 한가'를 심각하게 자문/자탄해보는 수가 간혹 있습니다. 나 역시 미술개혁을 덩달아 부르짖으며 상식과 원칙을 내세우지만 삿대질하느라 뻗지른 손가락이 자꾸만 나 자신을 향해 꼬부라드는 듯한 느낌도 받습니다. 솔직히 나는 일상 생활에서 상식을 벗어나거나 원칙을 지키지 않는 행동을 왕왕 저지릅니다. 그러므로 '공의로운 일'에 앞장으로 썩 나서기가 꺼려지지요. 엔간해선 입을 떼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쩌다 보면= 술 한잔 걸치거나 저번 포럼a 게시판 건처럼 요상스레 '말려들다'보면 어느새 그만 주제 넘는 언행을 떠들고 그러다가 결국 이렇듯 숙제를 떠맡게도 됩니다. 스스로 가소롭지요.
그런데, 상식이니 원칙이니 하는 것, 참 맹랑한 거 아닙니까? 미술판 현황이 하도 몰상식하고 반칙 변칙 무원칙한 터라 우선 상식과 원칙을 회복하는 일이 당면현안으로 중하고 급하다는 데 공감은 하지만, 그런 것에 너무 매이다보면 어째 갑각류로 변신하는 게 아닐까 싶거든요.


렌즈인 ▒

퍼갑니다.^^(이제 좀 친해졌다고 함부로 퍼가는 렌즈인^^;;)

  2003/07/29   
zabel ▒

유아 웰컴입니다...o^_^o

  2003/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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