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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형상이 있는 사원에 들어오지 않는다. - 마호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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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이라는 숫자와 유독 연관이 깊다. 음력, 양력 생일 모두 22일이며, 몇 안되는 친구 중 두 명의 생일도 22일로 날짜가 같다. 그리고 지난 22일... 예언컨대 어쩌면 나는 22일 죽을지도 모르겠다. 공력이 높은 선승들은 자신이 죽을 날을 예감한다고 하지 않든가? 하지만, 단순히 숫자의 우연적인 겹침에 기대어 섣불리 짐작해볼 뿐인 예언이기에 자신의 내공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한 친구는 내가 죽으면 사리가 나올 것이라고 칭찬(?)해주었는 걸. (난 화장서약을 했다.) 확률의 많음이 꼭 확정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난 말하련다. 그러니 내가 22일에 죽게 되면 이렇게들 말하며 나를 회고해 주기 바란다. "그 친구는 22일에 자신이 죽게 될거라고 말하곤 했지."
사실, 숫자하고는 그리 친한 편이 못된다. 생일 등속의 기념일에 무심하며, 시간관념이 희박하여 "오늘이 며칠이지?", "무슨 요일이지?" 와 같은 질문을 일삼는다. (다만, 공휴일엔 강하다. -_-;) 하지만 지난 22일은 오래 기억될 듯 하다. 아니, '22'이라는 숫자가 내 삶과 끈끈한 연관을 맺고 있다고 믿게 됐다. 앞으로 어느 계절의 22일에 유의미한 사건이 터지게 될지. 전설에 의하면, 고양이는 목숨이 아홉개라지. 그렇다면 나의 숨은 12개야. 남은 것은 여덟 개. 나, 안심해도 좋은 것일까? 질풍노도의 시기는 지났는데 말이지. 질풍노도의 시기라지만 실은, 안전했던 것 같다. '22'이라는 숫자와 연관시켜볼만한 사건이 크게 떠오르는 게 없으니 말이다. 하기는 단단한 고치 안에 숨어있었던 때였으니까. 누가 뚫고 들어올라치면 으르릉~ 성을 내곤 했지. (성질 한 번 참 고약했다.)
예약해두는 바 확확 꽃이 피는 계절의 22일에 죽고 싶다. 생일에 무심한 대신 내가 죽었을 때의 잔치를 어떻게 치를 것인가에 대해 종종 공상해보곤 하는데, 망자를 위해 눈물을 흘려야 겠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지만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부디 눈물을 거두시라. 하기는 나를 위한 눈물이 아니라 너를 위한 위로와 눈물이겠지. 뭐, 구태여 말릴 것도 없겠다. 일단, 고맙네. 하지만 역시 말이지, 눈물은 적당히 하고 뜨거워진 이마를 산바람에 식히면서 슬렁슬렁 귀환해주었으면 좋겠단 말야. 그리고 집에 가서는 맛있는 음식을 먹도록 해. 아니라면 타다 남은 손을 덩굴손처럼 내밀어 너의 꼿꼿한 다리를 그만 휘감아 버릴지 몰라. 자, 움직여!
주홍빛의 가로등 뒤로 긴 그림자를 늘어뜨린 피로한 표정의 너가 내게 요청했다. 명령이었다면 개길 수 있었겠지만, 부탁은 그렇지 않아. 나는 갑자기 친절해진 게 아니야. (사실, '친절'이란 표현은 내 진정성을 훼손시키는 듯 하여 웬지 서운하다. 그저 '또다른 진심'이었다고 해두지.) 그 요청의 수락이 당신 내면의 핵심적인 요구와 맞닿아 있는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당신이 모르니까 나도 모른다. 제길, 모르겠는 것,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야. 그리고 혼돈에는 뿌리가 없어. 그저 나는 어제에서 오늘로, 오늘에서 내일로 그 혼돈을 의식하며 타넘어갈 뿐이야. 그리하여 나는 22일에 죽게 될거야.
혹 모르지. 22일에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혼돈에 줄을 세우려는 나의 시도가 끝내 무위가 될지라도, 그것조차 내가 사랑하고 지고 가야 할 마지막 혼돈. 이제 눈물이 적당히 되었으면 좋겠는데. 욕심을 보태자면 네가 차라리 '해방'되면 좋겠는데. 그러나 욕심껏 마냥 바랄 수만은 없는 이유,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지? 더이상 물음은 부쳐지지 않을 것이며, 나는 내일 맛있는 것을 먹을테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발걸음 가볍게 춤을 추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줘. 이상, 부탁이었어!
written by 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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