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즘적 사회주의자의 예외적 '피카소론'
“그의 위대한 작품조차도 사회적 맥락 고려 안했다”
존 버거(77)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좌파 비평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아나키즘적인 사회주의 사상가인 그는 문학·예술·비평의 드넓은 영역에서 저작 활동을 해온 작가로도 이름이 높다. 국내에도 소설 〈결혼을 위하여〉 〈그들의 노동에 함께하였느니라〉, 비평서 〈랑데부〉 〈본다는 것의 의미〉 등 10권의 저작이 소개돼 있다.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는 그가 개별 예술가를 주제로 삼아 쓴 두 권의 책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의 초판은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살아 있던 1965년에 나왔으나, 초기 피카소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라 1984년에 증보판을 펴냈다. 한국어판은 이 증보판을 옮긴 것이다.
피카소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다. 그런 만큼 그에 관한 책들도 무수히 쏟아져 나왔는데, 요절한 비극의 주인공 빈센트 반 고흐를 제외하고는 종수가 가장 많다고 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책들이 피카소의 천재성을 찬양하는 데 급급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은 예외라고도 할 수 있다. 화가로서 피카소의 성취와 실패를 동시에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평전이 피카소를 여러 유명 화가들 가운데 한 사람 정도로 그렸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분명히 신동이었고 천재였으며, 미술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초인적 재능을 지닌 특별한 인간이었다. 지은이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특출난 재능이 그를 성공으로 이끈 것과 똑같이 실패로 이끌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지은이는 피카소의 뮤즈가 천상의 노래를 불러댄 시절을 1907~1914년 사이 입체주의 시기와 1931~1943년의 시기였다고 말한다. 미술사에 처음으로 입체주의를 도입했던 이 첫 시기에 피카소는 새로운 주제·재료·관점을 통해 존재의 정태적 상태를 영원히 파괴했다. 그가 미술가로서 일관되게 ‘발전’한 시기는 이 때였다. 그런 이유로 지은이는 이 시기를 “피카소 생애의 위대한 예외”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시기는 수백만명의 병사가 참호 속에서 죽어가는 1차 세계대전의 전운과 함께 끝났다.
두 번째 창조의 시기는 ‘사랑’과 ‘역사’라는 힘찬 주제와 더불어 열렸다. 연인 왈테르와의 사랑은 부드럽고 편안하며 섬세한 즐거움으로 가득하며, 스페인 내전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게르니카〉는 야만과 폭력에 저항하는 회화적 기념비가 됐다. 그러나 여기에 맹점이 있다. 피카소는 위대한 작품을 남길 때조차도 그 작품의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았다. 〈게르니카〉의 고발마저도 전혀 구체적이지 않다. “그의 타고난 재능, 과도한 개성이 역사와 자신의 연결고리를 잘라버렸다.”
이 책은 1944년 이후 피카소가 제도화했고,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때 그가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사실이다. 피카소는 줄곧 “예술가는 정치적 인간”이라고 생각했지만, 거대한 명성과 재산을 얻은 뒤 혁명적 파괴, 파괴를 통한 창조의 정신을 잃어버렸다. “부르주아 세계에 투항했을 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빵이 아니라 돌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영혼을 의탁할 민중이었으나 정작 그를 둘러싼 것은 아첨꾼들뿐이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