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1360  40/68   회원가입 회원로그인
  View Articles
zabel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4-04-27 00:58:20, Hit : 408)
독서와 사랑의 뼈아픈 교훈
엠파스 심통에서 퍼왔음다.
.
.
.
+++++++++++++++++++++++++++++++++++++++++++++++++++++++++++++++



(알랭 드 보통-컬티즌)

문학과 짝사랑은 깊은 친화성을 가지고 있다. 후자를 경험할 때 (잠들기 직전 초콜릿을 먹게 되고 새벽 3시에 외로움을 느낄 때) 우리는 전자에 이끌리게 된다. 행복은 육신에는 유익하지만 출판 산업 그리고 문학의 생존에는 불행이 훨씬 이롭다.

몇 년 전 나는 파리의 서점을 둘러보다가 한 권의 페이퍼백 커버에 쓰여진 글귀에 시선을 멈추게 되었다. "심리학적으로 살아 있다는 것은 사랑 혹은 정신분석학 또는 문학의 매력에 빠져 있다는 뜻이다." 책제목은 "사랑 이야기 (Tales of Love)"이었고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썼으며 내가 오랫동안 그녀의 이름(first name)을 좋아했기 때문에 (나는 아홉 살 때 안경을 낀 동명의 어린 줄리아를 사랑했다) 책을 구입했다. 하지만 줄리아는 300페이지가 넘는 책에서 줄곧 나를 실망시켰다. 그녀는 출판사 직원이 책 뒤표지에 교묘하게 써놓은 매력적이기 이를 데 없는 문장을 공들여 부연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책 표지 문구의 사유는 가치 있으며 아직도 나와 함께 머물러 있다. 사랑과 독서에는 중요한 연관이 있으며 그 둘이 유사한 기쁨을 일으킨다는 사유 말이다.

둘의 관련성은 근본적인 것이다. 연인만큼이나 울림이 큰 - 동시에 더욱 신뢰할만한 - 말을 우리에게 건네는 책들이 있다. 연인들이 그렇듯이 그런 책들도 우울한 의심들, 예를 들어 자신이 인간 종(種)에 완전히 속해 있지 않다거나 이해를 얻을 수 없는 존재일지 모른다는 의심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책은 당혹, 삐침, 죄의식 등의 현상을 유발하지만 그 때에도 우리는 행복한 자아 인식을 유지할 수 있다. 작가가 단어들을 배치해서 고립감을 느낄만한 상황을 묘사하더라도 독자들은 이른 저녁 식사 데이트를 하는 연인과 닮게 된다. 서로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하고는 희열을 느끼는 (그래서 앞에 놓인 해물 파스타를 쳐다볼 뿐인) 연인의 심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책을 잠시 내려놓고는 책등을 보면서 옅은 미소를 짓게 된다. 흡사 "너를 만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런 현상은 왜 문학이 사랑의 실패자에게 안식이 될 수 있는지 설명해준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을 때 나는 대학에 다녔고 21세였고 그리고 당연히 베르테르였다. 거시생물학을 공부하고 좌우 대칭의 가르마를 딴 밤색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 왔던 클레어가 로테였으며 알베르트 역할을 했던 로빈은 그녀와 3년 동안 알고 지내던 경제학 전공자였다. 누군가 문학이 사랑의 실패자에게 위안일 수 있는 증거를 대라면 나는 그 때 상황을 거론할 것이다. 당시 나는 소설들이 스스로 우리 삶의 주위를 감싸고 조명하는 기적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고 깨달았다.

프루스트는 대단히 긴 책의 끝 부분에 얼추 다음과 같이 섰다. "모든 독자는 실제로는 그 자신 속에 이미 들어 있는 것만을 읽어 낸다. 책은 작가가 독자에게 제공하는 광학 도구이며, 독자는 책의 도움 덕분에 놓칠 뻔한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설명은 미묘한 긴장을 강조한다. 책은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해주지만 책에서 발견한 것들은 실은 우리의 일부가 아니다. 위대한 책의 가치는 독자에게 이미 친숙한 사람이나 감정을 묘사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위대한 책은 독자보다 훨씬 우월한 묘사 능력을 갖고 있어서, 우리가 자신의 것으로 감지하면서도 명확히 언어화하지 못한 것들을 선명하게 인식하도록 만든다.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은 안온한 것이다. 하지만 어두운 이면이 있다. 우리는 자신이 특별하고 독특하다고 느끼고 싶어한다. 그런데 문학은 우리의 존재를 그렇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런던에서 에든버러로 비행하는 도중에 다음과 같은 라 로쉬푸코의 경구를 읽었다. "사랑이란 것에 대해 이전에 들어보지 못했다면 어떤 사람들은 결코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나의 반사적인 반응은 이랬다. "이건 결단코 내 아이디어가 아닌가." 마음이 언짢아 창 밖으로 솜처럼 부풀부풀한 미들랜드(Midlands)를 바라보았다. "그가 내 생각을 훔쳤다." 그러나 불가능했다. 그는 1613년 생이고 나는 1969년 생이기 때문이다. 좀 더 관대하게 "내가 그에게 훔친 아이디어일 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해봤지만 그것 또한 불가능했다. 그 금언을 읽은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소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으쓱해지는 해답을 얻게 되었다. 비록 그는 천재이며 나는 그렇지 않더라도 라 로쉬푸코와 나는 같은 세계에 사는 것이며 그 때문에 때로는 유사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라 로쉬푸코는 위의 자기 연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조언함으로써 의기소침함을 간단히 털어 줄 것 같다 :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천재성을 확신하지 못하고 아둔함에 대해서만 불평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우리의 정체감을 위협한다. 정체감이란 차이의 믿음에 기반해 있기 때문이다. 문학에 노출될수록 우리가 타인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된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만일 우리의 지극히 사적인 경험들이 다른 작가들에게는 빈번히 거쳐간 사유의 토대였다면 우리가 무엇을 말하고 쓸 수 있을까.

읽고 쓰기를 배운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만큼 완벽한 개성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또 우리가 자신에게 고유하다고 믿는 것들이 실은 완전히 사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수용한다는 뜻도 된다. 그렇다고 우리의 사적인 세계가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의 서비스가 연상시키는 것처럼) 무개성하다는 말은 아니다. 대신 개인에게 고유한 것들을 모든 인간 존재가 공유하고 있다는 말이다. 자신이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걸 깨닫는 대신 우리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자신이 유일무이하다는 인식에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
.
.



zabel ▒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이행하는 과도기(1520-1600) 이탈리아에 나타난 특이한 미술양식.
원근법 왜곡, 복잡한 구성, 왜곡된 형태, 조화를 깨는 튀는 색채, 과장된 자세 등이 주된 특징

* 매너리즘(Mannerism)

17세기 이후부터 미술에 관한 문헌에 쓰이다가 역사적 비평적 의미가 함축된 복합적인 의미 로 문학 비평 및 신학에도 통용된 용어. 보통 미술사의 시대 구분에서는 르네상스에서 바로 크로 이행하는 사이(약1530∼1600년)에 이탈리아에서 나타났던 과도기적인 미술 양식을 말 한다. 매너리즘이란 종종 성숙기의 르네상스 고전주의의 쇠퇴를 뜻하거나,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을 일컫는다. 또 성숙기의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이어주는 교량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또 그 자체로 완결된, 유럽에서 성했던 실재하는 양식이라는 상반된 주장 도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매너리즘이라는 용어는 '퇴보에 도달한 전통주의', 또는'정신적인 위기의 시대에 두각을 나타낸 죽어가는 양식의 마지막 표현'등으로 매도되기도 했다. 그러 나 20세기 초 매너리즘 시대의 예술가들에 대한 관심이 부활되면서 드볼작의 선도 아래 독 일 비평가들과 역사가들은 매너리즘을 엘그레코에서 정점에 이른 유럽의 예술 운동으로 소 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매너리즘이 독일 표현주의의 미학적 왜곡 및 정신적 격렬함 등이 무분별하고 기묘하게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옥스포드 영어 사전에는 매너리즘을 '독특 한 방식에의 과도한 또는 부자연스러운 탐닉' 이라고 정의한다. 193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영국의 역사가들은 매너리즘이라는 말보다 '후기 르네상스'라는 용어를 선호했다. 한편 영어 의 '틀에 박힌(mannered)' 이라는 비전문적인 비평 용어는 19세기의 편견을 내포하고 있는 말로 특정한 양식이나 시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935년 무렵부터 영국의 미술사가들은 'mannered'라는 단어와 'Mannerism'을 구분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매너리즘이 보여주는 긴장과 과장을 이 시대가 르네상스 시대와 같이 하나의 이상에 의해 지배되던 시대가 아니라 여러 경향들이 교차하여 갈등을 일으키던 위기의 시대 였던 데서 오는 일반적인 불안의 반영으로 해석했다. 13세기에서 15세기까지의 프랑스 궁정 문학이나 이탈리아에서의 '매너' 라는 말은 보편적 인간 행동과 예술 양식에 사용되는 말로 영어의 '스타일(style)'이라는 단어와 유사한 뜻을 갖고 있었다. 바자리에 의하면 '매너'는 유사한 예술 작품의 바람직한 성격을 뜻하는 '우아함'이라는 말과 사실적이라기 보다는 이 상화된 아름다움, 기품, 세련, 능숙함에 버금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예술가들이 고전적 아름다움과 조화를 추구하는 르네상스의 이상에 의식 적으로 반기를 들거나, 전통과의 단절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 증거나 이유는 없다. 그들은 오히려 좀더 미묘하고 세련된 우아함을 추구하려고 했으며, 코렛지오와 라파엘로, 미켈란젤 로가 이룩했던 최상의 완벽을 계속 추구하고자 했다. 그러나 신플라톤주의의 교리와 함께 자연의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것보다는 예술가들의 독창성과 상상력이 장려되었다. 그리하여 과장되고 병적인, 때로는 괴기하기까지한 작품이 나오게 되었다. 또 전문가와 소수의 지적인 엘리트에게 부응하기 위해서는 심원한 암시, 놀라움, 새로움을 추구해야 했다. 마침내 16세 기 말에 와서 고전적 균형, 이성적인 자세, 불안정한 구도, 자의식이 강한 기교, 모호함의 강 조로 변형되어 오늘날의 초현실주의의 한 특성을 예고했다. 이탈리아의 매너리즘의 장식적 우아함, 지적 애로티시즘의 장식적 우아함, 지적 애로티시즘 등은 프랑스의 퐁텐블로 화파 속에서 프랑스적 취향으로 변모했다. 영국에서의 매너리즘의 영향은 미약하나마 엘리자베스 시대의 미니아튀르 예술에서 엿보인다. 1590년대에 매너리즘 은 카라밧지오의 사실주의와 카라치의 신고전주의에 밀려나게 된다. 그 후 18세기 말, 몇몇 낭만주의자들에 의해 관심이 일시 부활되었을 뿐이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초현실주의자들은 자신들과 매너리즘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했다. 그러나 매너리즘에 대한 20세기의 관심을 일 반적으로 그 동기가 모호하고 해석상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매너리즘은 기교주의, 형식주의, 현상유지를 고수하는 경향이나 자세를 비난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 건축에서의 매너리즘

16세기 초에 이르러 로마의 장식시스템에 의한 초보적인 연구는 끝이 나고 건축가들은 이에 대한 확고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르네상스의 독특한 스타일을 꽃피우게 된다.

여기에서 여러 천재들에 의하여 각 개인적인 스타일이 발전하게 되고 이른바 매너리스트들이 출연한다.

르네상스의 발란스와 하모니에 반하여 언발란스, discordant한 특징을 가지며 감정적인

긴장, 우아함, 시각적 조작, 장식적 혼동 등에 의한 의도적 불일치를 특징으로 한다.
Vitruvian Rule을 무시, 더욱 로만틱하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나타난다.

  2004/04/27   
번호별로 보기
여러개의 게시물 정리 제목별로 보기 이름별로 보기 날짜별로 보기 조회별로 보기
  독서와 사랑의 뼈아픈 교훈 [1] zabel 2004/04/27 408
579   베리 배드 씽 [2] zabel 2004/04/23 358
578   날 것 [2] zabel 2004/04/22 425
577   Brother, John Belushi zabel 2004/04/21 474
576   morning high zabel 2004/04/20 412
575   젊은소리꾼 김용우가 말하는.. [2] sia 2004/04/19 436
574   건강을 위하여 zabel 2004/04/19 370
573   black eyed peas - where is the love zabel 2004/04/18 432
572   [album]Explosions In The Sky zabel 2004/04/16 408
571   블루베리 아이스크림 zabel 2004/04/15 419
570   캥거루 zabel 2004/04/13 408
569   [txt]어떤 사기 공장 zabel 2004/04/12 419
568   광고는 狂庫다. zabel 2004/04/12 331
567   이상의 시 zabel 2004/04/10 408
566   애교의 여왕 Nancy Lang [1] zabel 2004/04/08 5599
565   [필독]인류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왜 그렇게 반대하십니까? [1] zabel 2004/04/08 332
564   Gal Scout School Look Party! zabel 2004/04/07 410
563   절도없는 zabel 2004/04/07 441
562   인테리어 혹은 레미콘 발라드 [2] zabel 2004/04/06 417
561   낫싱은 남자의 낫싱이다 zabel 2004/04/01 364
 ◀ [1]..[31][32][33][34][35][36][37][38][39] 40 ..[68] ▶ 
Copyright 1999-2026 Zeroboard / skin by u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