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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훈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2-10-28 14:22:43, Hit : 462)
[펌]하우포토에 올라온, 전시 강연 내용입니다.
하우의 권오중님이 올려주신 것인데....퍼온다는 말씀을 감히 드리질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혹 이의를 제기하신다면 삭제토록 하겠습니다. --------------------------------------------------------------------------------------
더글라스 R . 니켈 /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사진부 큐레이터

70 년대에 최초로 포스트모던 이론이 자의식적으로 발현되었다면, 80 년대는 이것이 일반적인 미술 관행과
대중적 인식에도 나타난 때로, 90년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분명한 양상들이 점점 흐릿해지는 시기로 볼 수 있다.
공산주의의 붕괴, 걸프전, 인터넷과 실리콘 밸리의 부상이 지난 10년 동안 나타났던 중요한 경향들의
지표가 되었지만, 어느 것도 제2차 세계대전이 40 년대에 대해서나 , 히피 문화가 60년대를 규정했던 것처럼
결정적인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90년대는 과도했던 80년대 분위기를 어느 정도 누그러지게 하면서,
대부분 이전 시기에 이뤘던 것에 혁명을 일으키기보다는 그것을 확대시켰던 시기였다. 전에는 스스로를
미술가 보다는 사진가로 여겨 사진 전통에 속했던 많은 이들은 더 이상 사고의 전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1980년대에 사진가 로버트 아담스 (Robert Adams) 는 마치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비판적 이론을 무시하거나 그런
비판에는 면역된 듯이, 기존의 스트레이트 혹은 다큐멘터리 양식으로 건축 환경의
황량한 아름다움을 지속적으로 탐구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은 - 예를 들면, 텍스트와
이미지의 결합이나 다른 사람의 작품을 다시 만드는 것처럼 - 작품에 드러나는 몇몇 양식적인 특징으로
구분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스타일을 이데올로기와 권력과 연결 시키는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기 보다 단순히 양식의 선택으로 간주되었는지도 모른다 .


( 1970 초반에서 ~ 1990 년 중반 까지의 Robert Adams 의 사진 중에서 )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자 미술운동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사실, 이 시기 예술 사진에서 의미를 찾자면,
이전 시기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정말 타당했던가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십 수년 이상 이론에 기초한
미술에 관한 저술과 토론으로 격렬한 시기를 보낸 이후, 몇몇 사람들은 80년대에 모더니즘은 끝났고, 이제
우리는 완전히 포스트모더니즘 시기에 있다고 선언한 일이 어느 정도 시기상조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몇 가지 면에서 모더니즘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 단지 새로운 국면으로 이동한 것처럼 보였으며,
모더니즘을 비판하고 분석하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의
조건을 지속적으로 규정했던 것은 여전히 모더니즘적인 가치와 개념들이었다. 21세기 초 사진이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의 조건을 지속적으로 규정했던 것은 여전히 모더니즘적인 가치와 개념들이었다. 21세기 초 사진이 포스트모더니즘
기획의 불가결한 확장인가 아니면 어느 정도 새로운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인가 , 또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짧은 조정시기를 거친 후 모더니즘으로 회귀할까 하는 것은 오직 시간이 증명할 문제일 것이다 .
그러나 80년대에 포스트모더니즘이 그럴듯한 영향력을 보여주었고, 미술계도 신디 셔먼이나 바바라 크루거 같은
인물들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던 데 비해, 1990년대 초에 마치 제 궤도를 잃어버린 듯이 보인 이유는 무엇인가 ?
여기에는 몇 가지 설명이 있을 수 있다. 1 세대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은 지난 100년 동안에 근대사회에서
미술의 위치를 언제나 자기비판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교정하려는 것처럼 등장했다.
그것은 때마침 그럴 필요가 있었을 때, 전통과 단절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런 새롭고 반응이 빠른
지적 에너지는 빠르게 소진되기 마련이다. 우선, 많은 이들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은 힘들게 느껴질 정도로 엘리트주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탐 울프 ( Tom Wolfe ) 는 팝아트에 대한 글에서 일단 팝아트가 거의 작품을 만들
필요가 없게 된 최초의 미술운동이었다고 진술했다. 혹자는 실크스크린으로 찍은 거의 동일한 캠벨수프 상표를
대형 화면에 배열하거나, 6 개의 브릴로 세제 상자 모조품을 쌓아올린는 법을 적은 설명서를 읽는 것이나
작품 자체를 보는 것이 대동소이하다고 표현했다. 팝아트의 개념주의를 계승한 80년대의 포스트모던
사진에서는 개념이 더욱 복잡해졌다. 셰리 르빈 자신의 사진은 물론 워커 에반스의 사진을 모방한 르빈의 작업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관람자들이 그 작품들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작가의 행위에 관한 이론적인
토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설명이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언어학, 철학, 포스트구조주의 ,
해체주의, 마르크스주의와 서로간의 학문영역에서 생성된 소위 비판이론에서 끌어온 개념적인
단어들이 동원되었는데, 이런 어휘를 사용해 저술활동을 하는 이들조차 종종 전문화된 언어를 사용할 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80년대에 시뮬라크라, 스펙터클 문화, 의미의 연쇄, 차연, 보충 등등에 익숙하지않은
상태에서 화랑에 들어갔던 사람이라면, 이런 개념을 참조하는 미술 작품에 위압당하는 듯 느꼈을 수도 있다.
아름다움이나 표현 같은 전통적인 범주들이 더 이상 적용되니 않았기 때문에, 미술 관람객과 수집가들은
이렇게 이론에 기초한 실천들이 성공했는지 또는 실패했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작가들도 점점 이론이
작품을 구속해서, 작품들이 정서적인 면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고 생각했고, 이론으로 인해 작품들이 삽화의
지위로 격하되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르빈이나 리차드 프린스 같은 이들은 사진 개념주의로부터 물러서서,
1990년대에는 각자의 그 이전 시기 작업을 통해 시대에 뒤떨어진 지위에 있다고 선언했던 회화와 조각으로
돌아왔다. 회화와 사실적인 사진은 70년대에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지만, 90년대 이후 상당히 회복되었다.
미술시장과 보다 보수적인 수집가들의 요구로 회화와 다큐멘터리 사진은 내세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비꼴 수도 있겠지만, 이는 전통적인 회화와 사진이 이론에 바탕을 둔 미술이 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다는 점을 회피하고 있을 뿐이다 .
포스트모더니즘은 방대한 독서를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현학적이기도 했다. 페미니즘, 인종, 또는
성적 태도의 정치학, 불균등한 부의 분배에 대한 비판, 또는 무엇이건 간에 미술의 정치적 입장 천명은
선전이 초래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선전적인 작품은 메세지를 가지게 마련이며 모호함은 메세지의 적이다.
메세지가 있는 미술은 종종 일차원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일단 그 의미가 파악되고 나면 작품을 다시
처다보게한 만드는 내용이 거의 고갈되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은 작품을 통해 신비, 복잡성, 애매모호함이 느껴지며,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각기 다른 의미층에서 나오는 심오함으로 말미암아 되풀이해서 볼만한 가치를 느끼게 하기
때문에 높게 평가받는 것이다. 이론적인 명료함이나 수사적 권력을 추구하며 이러한 모더니즘의 특성을 포기할수록
포스트모더니즘은 자기가 종종 닮아 가고자 했던 대중매체와 광고의 이미지들과 비슷해졌다. 광고는
결국 메세지가 명백해야 하는 일종의 선전이며, 산만하고 때로는 반발심을 느끼는 이들에게까지 그 의도를
즉각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초기 포스트모더니즘의 호소는 종종 피상적으로 느껴졌다 .
모더니즘의 유토피아주의가 처음에 우려했던 것처럼 획일적이거나 권위적이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났 듯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토대가 되었던 이론들도 세월이 흐르면서 최초의 입장에 대해 어느 정도 수정을 거쳤고 제한적인
조건들을 인정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70 년대 말과 80년대 초 포스트모던 미술의 이미지로 구성된 세계,
매일 퍼부어대는 대중 매체 이미지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핵심적인 개념으로 삼았던
신디 셔먼의 < 필름 스틸> 작업에서도 목격했지만, 이것은 개인이 현실을 구성하고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는 데에
대중 매체가 상상하여 선전하는 스테레오타입이 대부분 결정하는 역활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
제기가 지속적으로 전개되면서, 요즘은 실제 생활과 재현된 이미지를 구별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크다는 연구결과가 등장해 균형을 잡게 되었다. 예를 들어, 어린이들은 현실이 허구적인
영화와는 다르다는 점을 훨씬 잘 이해하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무언가가 자기들을 속이고 있으면, 그것을 알아
채고 피한다는 테스트 결과도 나와 있다. - 지난 10년 동안 나타난 이런 결과들로 말미암아 광고업자들은 더욱
더 교묘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상품들을 영화에 등장하게 하거나, 인터넷에서는 돌발적으로
나타나는 팝업 광고를 사용한다. - 시청자가 그러한 기업의 문화를 전혀 모르고 속아넘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포스트모더니즘이 애초에 주장했던 대로 미디어가 시청자들의 정신을 조정할 것이라는 절박한 우려는 따라서
줄어들게 되었고, 그 때문에 그런 작품들은 어느 정도 적합성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서구 문화가 보유한 이미지 저장고는 이미 가득 찼다는 이론적인 전제에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해체주의는 모든 이미지는 기존하는 다른 이미지의 변이이거나 인용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보다 그림을 베껴 그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특징적인 행위를 설명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어왔다. 만약 사람들이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주장하는 대로 우리가 세상을 볼 때 저장되 이미지의 목록이
매개되며, 이런 목록이 지식을 조건짓는다고 생각한다면, 차용은 포스트모더니즘에 적합한 전술이다.
사진 비평가 앤디 그룬버그( Andy Grundberg) 는 20 세기 말, 사진작가들이 두 진영으로 분리되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한 쪽은 가능한 모든 이미지들은 이미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그것들을 되풀이할 뿐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쪽은 이 세상에는 여전히 우리가 결코 보지 못했던 피사체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이미지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느냐, 그러한 이미지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하느냐에 따라 개방적인
체제와 폐쇄적인 체제를 나누게 된다. 메이플소프가 자신이 속했던 동성애 변태성욕자들의 환경에서나 볼 수
있는 더 극단적인 행위를 소재로 작업했을 때, 확실히 그는 적어도 미술관이나 갤러리라는 장소에서 가장
보기 힘든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낸 골딘의 작품 역시, 시각적으로 새로운 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작가 자신의 하위문화에 대한 기록이 다른 규범과 전제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규범과 전제들은
사실 대다수 관람자들의 삶과는 비슷하지 않고, 현존하는 사진사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메이플소프는
사진을 찍을 때 연출 전략을 사용했고, 골딘은 그 보다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의 불개입적 입장을 취했다는
차이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두 작가 모두, 존재했지만 그 전에는 재현되지 않았던 사회
현실에 접근하는 통로를 제공하고 있다는 신념을 공유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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