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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8-11-20 17:36:12, Hit : 462)
전시 11.20



이브의 정원

전은선展 / JEONEUNSEON / 全垠宣 / photography

2008_1121 ▶ 2008_1203



전은선_이브의 정원_C 프린트_120×120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80707f | 전은선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1121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01:00pm~09:00pm




벨벳 인큐베이터
VELVET INCUBATOR
서울 종로구 팔판동 123-3번지
Tel. +82.2.736.7023
www.velvet.or.kr






산타마리아, 플라스틱 아일랜드, 그리고 이브의 정원 시리즈는 모두 원형으로써의 대상과 그 대상을 닮고자 하는 차용된 대상들(현실 속에 존재하는) 간의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다. 이 전의 「산타마리아(2005)」시리즈에서의 육지로 올라온 배 건축물이나, 「플라스틱 아일랜드(2007)」시리즈에서의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플라스틱 야자수들 과 같이 이번 작업 ‘이브의 정원’은 천상의 정원을 모방하여 우리의 현실 속에 나타난 모조의 정원을 찾아 채집하였다.




전은선_이브의 정원_C 프린트_70×70cm_2008



전은선_이브의 정원_C 프린트_70×70cm_2008


극히 개인적인 공간이었던 화원은 이제 공공의 장소에 나타나 모조의 화원을 만들고 있다. 원래 서구인이 화원을 만든 동인이 태초의 하나님이 만든 정원 즉, 에덴에의 강한 향수와 갈망이라면 이제 현대인은 그 정원을, 또 그 정원을 모사한 플라스틱화원을 그리고 한 장의 그림(이데아의 화원에서 두 단계 떨어진 저급한 화원)으로 그 파라다이스를 대신하려고 한다.




전은선_이브의 정원_C 프린트_100×130cm_2008


이제 자연그대로의 자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원형으로서의 자연과 그것을 닮고자 하는 식물원의 자연, 그리고 인공정원, 그 인공정원을 본 딴 플라스틱 정원들은 서로가 서로를 차용하며 원형으로서의 자연을 닮고자 한다.




전은선_이브의 정원_C 프린트_70×70cm_2008



전은선_이브의 정원_C 프린트_110×138cm_2008



전은선_이브의 정원_C 프린트_70×70cm_2008


과연 원형으로서의 자연이 존재하는가 ? 과연 원형으로서의 천국은 존재하는가? 그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저 파라다이스에 대한 열망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 존재한다는 것이 진실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진실 된 것인지에 대한 것 또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거짓임이 드러나면 또 다른 대상을 찾아 가기 때문이다. ■ 전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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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더욱 신이 나서 과장하여 떠들 수 있었다

김정향展 / KIMJEONGHYANG / 金汀香 / painting

2008_1121 ▶ 2008_1207



김정향_증기 너머로 본 환상목욕탕_한지에 채색_130×161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80212b | 김정향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1121_금요일_06:00pm

NArT 2008 젊은예술가 지원 프로그램
환상목욕탕 기행(記行)#2

후원_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01:00pm~09:00pm / 명절연휴 휴관





예술공간 헛_HUT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8-13번지
Tel. +82.2.6401.3613
club.cyworld.com/hut368
www.hut368.com




설화적 사유를 통해 재해석된 전통, 그리고 일상바리(潑利)메디온(medion) 70,80년대 수묵이나 채색실험과 같이 동양화 재료가 가지는 물성자체에 대한 탐구와는 달리, 90년대 이후 한국화가들의 작업은 서양화와의 변별성을 찾기 힘들 정도로 그 재료와 표현 방식에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통섭(統攝,Consilience)과 장르해체가 인문학과 예술의 보편적 전략으로 추구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작가들의 실험은 영역의 제한이 있을 수 없다. 젊은 작가들의 최근 작업들에 나타나는 대표적 양상 중 하나는 전통적 기법의 고수보다는 패러디나 대중적 이미지의 차용이 보편화되고 있다는 점인데, 대중적 이해를 높일 수 있는 팝(Pop)적 요소와의 결합 역시 동일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젊은 작가들에게는 관념적인 산수화나 수묵과 채색에 대한 물성적(物性的) 실험보다는 당대의 삶과 괴리되지 않는 그들만의 감수성에 기인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전통적 재료나 소재로 무분별하게 서양화의 방법론을 실험하는 한계는 자명하다. 극단적 실험 역시 한국화의 정체성에 기반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화단 일각에서 전통회화와 현대적 어법을 접목코자하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장르 해체의 실험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전통과의 결별이 아니라 전통의 핵심을 새롭게 해석해내는 일이다. 이는 동양화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대미술이 반드시 해결하고 나아가야할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미술의 정신과 양식으로서의 전통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세계적 공용어법으로 구축해 낼 것인가는 한국화단에 부여된 간단없는 과제이다.




김정향_환상목욕탕 그 아래에서_한지에 채색_160×130cm_ 2008


젊은 작가 김정향은 매우 흥미로운 시각을 통해 전통적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풀어가고 있다. 2007년부터 <환상목욕탕>과 <바리메디온의 환상목욕탕>연작을 발표해온 그녀는 독특하게도 목욕탕을 소재로 한 작업을 펼친다. 그녀의 작업에는 목욕탕을 배경으로 무수한 욕녀(浴女)들이 등장한다. 상이한 정황과 시점(視點)의 인물들이 다양한 포즈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하지만 이 욕녀들은 앵그르와 같은 화가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이 가지는 육감적 속성과는 거리가 먼 중성적 이미지의 여인들이다. 여인들은 서로의 때를 밀어주거나 물을 뿌려주는 등 서로의 목욕을 도와주고 있다. 일상 공간인 목욕탕은 우선 육체적 정결을 성취하기 위한 공간이며, 피로를 풀고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다. 뿐만 아니라 서로의 사소한 관심들과 세간의 소문들을 나누는 정겨운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녀에게도 목욕탕은 이러한 기능들과 무관하지 않지만, 물과 증기의 상징성이 결부된 종교적, 신화적 공간이며 신비적 공간으로 해석되고 있다. 욕탕의 배경과 장면들은 현실과 환상이 긴밀하게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속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상적 정경과 함께 기묘한 동물과 식물, 기물들이 배치됨으로써 현대적 공간과 신화적 공간들이 다채롭게 결합된다.




김정향_북문_한지에 채색_130×130cm_2008


작가는 이 욕녀들을 ‘바리(潑利)메디온(medion)’ 이란 조어를 만들어 명명하며 아래와 같이 그녀들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다. 바리메디온은 ‘물을 뿌려 모두를 이롭게 하고 치유를 도와주는 ’가상의 존재이다. 이들은 누구나 쉽게 가까이 할 수 있는 외양을 지니고 있으며, 현실 속에서 꿈과의 괴리, 사회에서의 소외와 관계 속에서의 상처,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치유의 의식을 행하여준다.(작가노트)




김정향_탄식을 엮어 만든 집_한지에 채색_130×130cm_2008


물과 목욕은 인간의 정화를 상징하며, 바리메디온들은 이 정화를 수행하는 인격체들이다. 물과 목욕은 세례나 속죄와 관련되기도 하며, 회복과 재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렇듯 그녀는 매우 종교적인 색채를 가진 주제들을 다루지만, 이를 엄숙한 제의적 어법이 아닌 즐거운 축제의 어법으로 풀어내고 있다. 비실제적인 장면이지만 장면과 장면들이 어울려 총체적 현실이 승화된 건강한 삶의 이상을 드러낸다. ● 그녀는 바리메디온을 ‘바리공주의 설화’와 연결시키기도 한다. 부왕으로부터 버림받은 막내딸인 바리가 자신을 희생하며 영약을 구해 죽은 부왕을 살려내는 바리공주 설화에서 보듯 ‘바리’는 자기희생을 통해 세상을 구하는 중재자이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바리메디온은 때로는 반가사유상의 형상으로 때로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삼미신(三美神)의 형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세상의 고통과 죄악을 치유하며, 화해와 회복을 추구하는 존재로 의인화하고 있는 것이다. ● 김정향의 작업의 구성요소는 매우 복잡하다. 우선 바리메디온들이 놓이는 다양한 배경에는 『산해경(山海經, Shanhai ching)』이나 『극락도極樂圖』에 등장하는 요소들과, 단테의 『신곡』의 배경과 같이 파라다이스로 향하는 순차적 단계와 유사한 구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를 통해 그녀의 화면은 하나의 파라다이스를 상정하고 있다.『산해경』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동양 최고(最古)의 지리서로서 백과전서적 의미를 가진다. 여기에는 고대의 지리, 역사, 인물, 동식물 등 숱한 신화적 정보들을 담겨 있다. 그녀의 작업에는 『산해경』에 등장하는 혼돈의 신(神) ‘제강(帝江)’과 같은 기이한 동물들과 신선초와 같은 식물들이 등장한다. 또한 다양한 이미지들과 텍스트가 한 화면에서 만나기도 한다. 많은 바리메디온들의 이미지는 마치도 숨은그림찾기와도 같은 형국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녀의 작업은 종교적 주제를 다루되 특정 종교의 요소를 강조하지 않으며 다문화와 서로 상이한 종교적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진다. 이렇듯 다양한 이미지와 상징, 그리고 텍스트들이 하나의 콘텍스트를 이루어 관자들로 하여금 자유로운 상상력과 의미 생성의 고리를 제공한다.




김정향_바리메디온의 환상목욕탕#9_한지에 채색_81×65cm_2008


그녀의 작업은 전통적 동양화의 일반적 태도인 관념적 수묵화의 정신성을 탐구한다기보다는 고분벽화의 전통과 관련한 채색의 기법과 정신에 좀 더 가까워 보인다. 그녀의 작업은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일반적인 동년배 작가들의 서양화식 실험과도 궤를 달리 한다. 탈모던적 사고를 통해 현대적 어법을 구사함으로 전통과 만나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통의 재해석을 꾀할 때 범하기 쉬운 오류는 소재주의적 함정이기도 한데, 그녀의 경우 이런 오류로부터도 거리를 두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궁극적으로 일상과 현실적 소재를 환상성과 결부시켜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구현하고 있다. ● 그녀의 작품이 보여주는 시·공간에 관한 사고는 후기구조주의 철학자 중 한 사람인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개념인 ‘리좀(rhizome)’적 사유와 유사하다. 리좀은 일반적인 나무와 달리 뿌리나 줄기의 구분이 없는 덩굴뿌리를 지칭한다. 리좀적 사유는 뿌리와 줄기가 분명한 구조를 가진 수목적(樹木的) 사유와 달리, 어느 곳에서 출발하더라도 사유가 자유롭게 본령과 연결될 수 있는 사유구조를 지칭한다. 땅 밑 뿌리로부터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거대한 수목, 단일한 방향과 수직적 사유만을 고집하는 사방이 틀로 둘러친 공간, 체계 ,질서라는 권력으로 장식된 틀과 제도, 관습.. 등등으로부터의 탈주가 리좀적 사유방식이다. ● 물론, 그녀는 작품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나름의 시각적 입구를 설정해 놓고 있지만,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시선의 출발점이 어느 곳이어도 무방하다. 화면 내의 모든 부분과 연결된 시각적 통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화면은 차원이 다른 소재들과 정황들이 겹쳐지며, 상호 간섭함으로써 다양한 의미구조를 만들어 낸다.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 등 이분법적 요소들이 서로 틈입하여 중심과 주변부, 핵심과 표피의 구분이 무의미해 진다. ● 그녀의 리좀적 사유는 작품에 설화나 신화적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전통과의 접맥이 이루어진다. 신화나 설화는 비논리적이다. 다양한 이야기 다발들이 시대를 거치면서 끊임없이 구전되고 시대적 상황에 굴절되어 온 것으로서 숱한 원천적 사유의 편린들이 담겨 있지만, 확정적 의미 해석을 불가능하게 하는 존재이다. 물론 블라디미르 프롭 (Vladimir Propp)과 같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같은 구조주의 문화인류학자들이 이를 과학적 방식으로 유형화하고 구조분석의 방법론을 개발하기도 하였지만, 서구의 이원론적 분석틀이 가지는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신화나 설화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제와 같아서 시대적 정황에 따라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해석의 문맥에 따라 의미를 달리하는 것이다. ● 김정향이 동양의 신화나 설화의 소재들을 화면가득 채우며 층위가 다른 이야기 다발들을 병치시키는 이유는 아마도 설화적 사유가 전통을 현대적 어법으로 풀어갈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오늘도 일상과 설화적 사유의 접목을 통해 현실을 비실재적 상황으로 전환시켜 작품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재맥락화 하고 있다. ■ 김찬동




김정향_바리메디온의 환상목욕탕#6_한지에 채색_191×130cm_2006


김정향은 상상의 장소인 「환상목욕탕」과 ‘바리메디온 (潑利-medion)」이라는 가상의 중간자적 존재(영매_靈媒)를 설정하여 치유와 환상의 내러티브를 엮어내고 평면 회화와 스토리가 있는 책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본 전시는 첫 번째 개인전의 연장선상에서 더욱 구체화된 ‘치유’의 모티브를 근간으로 관계의 회복과 자아의 정신적 치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김정향의 두 번째 개인전인 이번 『더더욱 신이 나서 과장하여 떠들 수 있었다. - 환상목욕탕 기행(記行) #2 展』에서는 위로와 치유의 장소인 허구의 「환상목욕탕」에 접근하여 각자 마음 깊이 뿌리박혀 있던 개개인의 아픔과 탄식, 외로움과 고민 등을 아무런 편견과 의심 없이 떨어내 버릴 수 있는 통로와 기회를 공유하고자 한다. 한국인들에게 매우 익숙한 동네 목욕탕의 모습 (녹색 때 수건으로 서로의 등을 밀어주고 있는)을 지니고 있지만, 여기에는 과거 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 목욕탕이나 로마시대의 목욕탕처럼 특정의 정화와 집회의 장소로서의 의미와 물이 가지는 의미- 예컨대 기독교의 세례나 각국의 물 축제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새로운 생명의 약속과 재생과 회복을 의미도 함께 드러난다. '환상 목욕탕’ 속에는 ‘치유와 정화 그리고 재생, 벽사’를 은유하는 다양한 형태의 물과 수증기, 구름들, 그리고 물과 연관된 물고기, 해태, 용들이 전통적 상징을 바탕으로 해학적으로 재해석되어 중첩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어떤 고민도 털어놓을 수 있는 방', '눈물을 실 삼아 이를 엮어 만든 목욕탕 입구', '모든 고민을 씻어낼 수 있는 목욕탕' 등의 평면작업들로 구성된 전시 장소는 단순히 작품을 '시각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의 의미를 넘어서서 동감과 정신적 치유를 공유할 수 있도록 구성된다. 또한 본 전시에서는 단순히 평면 작업을 갤러리에 걸고 감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환상 목욕탕’으로 비유되는 이상적인 공간으로의 방문을 기록한, 결국 모두의 마음이 치유되어 가는 과정을 중국의 고전인 ‘산해경(山海經)’과 같은 방식으로 그리고 글을 쓴 ‘스토리 북 ’도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 예술공간 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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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형선상 교점

이탈리아 젊은 작가 8인展

2008_1121 ▶ 2008_1204



Roberta Coni_Le tre Sook_캔버스에 유채_116×170cm_2007




초대일시_2008_1121_금요일_06:00pm

KTF갤러리 디 오렌지 기획초대展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KTF 갤러리 디 오렌지
서울 중구 명동 2가 51-18번지 2,3층
Tel. +82.2.773.3434
www.ktf.com/business/gallery_list.jsp






“여기에 내리고 / 거기에 내리지 않는 비 / 당신은 그렇게 먼 곳에 있습니다”- 나희덕, 『젖지 않는 마음』 물리적으로 아무리 가까운 데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나 아닌 다른 것과의 간격을 곧잘 발견하곤 한다. 심지어 세포 사이 사이에도 틈이 존재하며, 분자 혹은 원소 사이에도 간극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완벽한 일체가 될 수 없는 두 개체 간의 진정한 소통이 가능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긍정의 답을 내릴 계기는 분명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공통감’이다.




Armando Romeo Tomagra_"A Spisa"_면지에 람다프린트_90×112cm_2000



Matteo Cremonesi_HI, Michael bitt fur uns 05_인화지에 디지털 프린트_66×50cm_2008



Maya Quattropani_AH-AH-AH between brother and sister_흑백, 사운드, 퍼포먼스 비디오_00:03:24_2008


KTF갤러리 디 오렌지에서 열리는 전시, 『비정형선상 교점』에서 작품과 작품, 작가와 관객을 한데 묶기 위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것 또한 이러한 ‘공통감’이다. 회화, 사진, 영상에 이르기까지 장르도 매체도 다른 여덟 명의 이탈리아 작가들이 내놓은 작품이 하나의 전시를 이룰 수 있는 결정적인 교점은 그들이 모두 ‘삶에 대한 이야기한다’는 데 있다. 그 ‘인간사’는 유년시절의 사소한 기억부터 가족들에게 유전된 정신적 트라우마, 지독한 사랑과 그보다 더 지독한 이별, 그로 인한 깊은 상처, 주변을 에워싼 타인 혹은 환경과의 역학적 관계, 홀로 존재한다는 데서 유발되는 고독 등으로 귀결되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이야기들이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언제나 끊임없이 발생하고 회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간격’은 분명 존재하나 그것을 메워주는 무형의 세포간물질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앞에서 말한 ‘공통감’이다. 따라서 우리는 활자와 언어로 소통할 수 없는 이탈리아의 젊은 작가들과 정신적 연대와 공감을 형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중세의 이콘이나 러시아의 사회주의리얼리즘 회화가 대중과의 소통에 성공했던 것처럼, 이는 예술적 소통이기에 더군다나 시각예술의 영역이기에 더욱 가능해졌다.




Federico Cortese_2 Woman at the Balcony 3_캔버스에 유채_70×50cm_2000



Fabio Sanna_Multiple Reality and society of Hypertext_비디오, 사운드_00:04:22_2007



Gianluca Di Pasquale_The Park_캔버스에 유채_85×120cm_2000


이탈리아는 유럽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국가다. 예술사에서도 고전주의와 르네상스라는 엄청난 업적을 이루어냈으며, 위대한 예술가들을 끊임없이 배출해왔다. 이번에 KTF갤러리 디 오렌지를 찾은 젊은 작가들 또한 유럽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의 화단에서 획기적인 실험과 모험을 벌이고 있다. 스페인과 미국에서 수학한 로베르토 코니의 실존적 물음, 건축가이자 화가로 활동중인 페데리코 코르테제의 현대식 스푸마토 해석, 마테오 크레모네시의 모순과 은유, 쟌루카 디 파스쿠알레의 객관적 시선, 미켈리노 이오리쪼의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 파비오 산나의 의미 있는 주변 고찰, 마야 콰트로파니의 윤리와 구속을 향한 항변, 아르만도 토마그라의 독창적인 대상 분석. 이러한 요소들이 우리의 눈과 가슴을 즐겁게 해줄 것이다. 비정형선상 교점. 일체는 이루지 않으나 묘한 교점을 양산하는 이번 전시가 주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거리와 간격을 넘어선 소통이다. 즉 “당신은 그렇게 먼 곳에 있으나” 또한 “이토록 가까이 있다.”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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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도스 기획공모 김동현展

'Monster Park'

 

두개의 검을지닌 용130× 130cm  Acrylic on canvas   2008

 

 

2008년 11월 26일(수) ~ 12월 9일(화)

운모하[雲暮霞]terrace - 갤러리 도스 (Gallery DOS)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54-7  Tel. 02.735-4678

관람시간: 오전 11:00~오후 12:00

 

작가홈페이지: www.monsterhyun.com

오픈파티: 2008. 11. 26(수) PM 6:30

 

 

B-47호(나는 사색할 수 있으며, 나는 금식할 수 있다) 70×90cm Acrylic on canvas 2008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교류한다.

갤러리도스 큐레이터 최윤하

  김동현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것들이 서로 교류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저마다 다른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그 에너지들은 우리가 느끼던 느끼지 못하던 그것에 상관없이 상호 간에 작용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는 깊은 철학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과학과 종교학에서도 다른 목소리지만 모두 같은 사실을 말하고 있다. 작가는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이 이야기들을 ‘Monster’라는 캐릭터들을 창조해내 재미있게 표현해 내고 있다.

 

E=mc2 70× 140cm  Acrylic on canvas   2008

 

Look at that bird That's beautiful~! 100× 80cm  Acrylic on canvas   2008

 

작가의 작업주제는 ‘Monster Park’이다. 그 주제처럼 그림 속에는 그가 탄생시킨 다양한 종류의 ‘Monster’들이 유기적인 형태와 역동적인 색감을 가지고 하나의 공간을 만들고 있다. 공간안의 ‘Monster'들은 누구나 접해봤고 쉽게 볼 수 있는 달걀, 용, 원숭이, 악어, 새 등 다양한 모티브들을 응용해서 캐릭터를 창조해낸다. 이는 작가의 재해석으로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신기한 형상으로 재탄생하여 각자의 캐릭터를 갖게 된다. 그것들은 그림 속에서 서로 얽히고설키어 역동적인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유기적인 선과 생동감 있는 형태, 원색적인 색감으로 인해 살아 움직이는 것 이상의 강렬한 에너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작가는 예쁘고 귀여운 형광의 아크릴물감과 반짝이 풀들을 이용해 그 강렬함을 더하는데 이는 ‘Monster’들이 폭력적인 형상을 띄고 있으면서도 유쾌하고 재미있게 다가오는 것과 같이 역설적인 느낌을 준다. 또한 음영과 질감의 표현은 절제하고 형태와 색감, 문양 등으로 설명을 하는데 이는 명암, 원근, 채색법을 무시하고 깊이, 공간의 전통적인 표현을 배제하여 화면이 평면으로 되는 큐비즘을 연상시키고 강렬한 색감과 재미있는 기법적인 표현은 마치 팝아트 같다.

 

Merry Christmas! 60× 70cm  Acrylic on canvas   2008

 

SUM-OVER-PATH 95× 130cm  Acrylic on canvas   2008

 

경쾌하고 독창적으로, 여백 없이 가득 표현된 그림은 시각적으로는 가벼운 느낌을 주지만 그 안에 담겨진 의미는 깊고 진중하다. 간단히 말하자면 모든 만물들은 고유한 파동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파동들은 끊임없이 작용하고 서로 간에 영향을 미쳐 하나의 현상 즉, 현재의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무엇도 그 어떤 현상도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작가는 이러한 현상을 폭력성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이 학습했던 폭력성을 다른 이에게 가하게 되고 이는 또 다른 이에게 학습되고 전이되어 끊임없는 에너지의 교류가 이루어는 것이다.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재미있는 그림 속에 이러한 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그림마다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깊이 있게 담고 있다.

 

Tachyon-좋은 사람이나 되려고 태어난게 아니야 130×160cm Acrylic on canvas 2008

 

The Nutcracker-March 130× 130cm  Acrylic on canvas   2008

 

영화 ‘매트릭스’가 종교적, 철학적, 과학적 이론을 배경으로 해 관람자로 하여금 단순히 줄거리를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이중적인 의미를 파헤치는데 즐거움을 줬던 것처럼 김동현의 그림 역시 일차적인 시각적 감성에 더해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오랜 시간 깊이 있게 정립해온 그의 생각들을 어렵지 않게, 은유적으로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한 줄의 제목에 담긴 함축적인 의미들을 참고해 해석해 나가는 것은 숨겨져 있는 의미를 발견해 나가는 희열을 느끼게 한다. 이에 더해 각 그림마다 어디엔가 숨어 있는 이름이 아주 긴 악마 캐릭터를 발견함으로써 작가만의 유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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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아 내리는 오후

서상익展 / SEOSANGIK / 徐相益 / painting

2008_1125 ▶ 2008_1212 / 일요일, 공휴일 휴관



서상익_양들을 위한 시간_캔버스에 유채_145.5×112cm_2008




초대일시_2008_1125_화요일_06:00pm

2008 리나갤리러 신진작가지원展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 공휴일 휴관





리나갤러리_LINA GALLERY
서울 강남구 논현동 229-26번지 해광빌딩 1층
Tel. +82.2.544.0286
www.linaart.co.kr






Use your illusion ● 최근의 한국미술에서는 회화의 복권 주장과 더불어 구상회화의 붐이 불기 시작했다. 이는 한편으로는 한국미술시장에서의 콜렉팅의 붐과 관련이 있다. 젊은 작가들의 구상회화는 콜렉팅의 일차적인 표적이 되면서 붐을 이루고 있다. 짧은 극사실주의의 복권과 더불어 이런 젊은 작가들의 구상회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현상중의 하나가 작품에서의 ‘스토리의 복원’이다. 이런 맥락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가 중의 한명이 서상익이다. 그가 탁월한 스토리 텔링 능력은 우리 미술을 더욱 풍부하게 해줄 거라는 기대를 감히 가져본다. 그의 표현법보다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의 테크닉이 이미 논의의 대상에서 벗어난 안정적인 것이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서상익의 작품은 두 가지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첫 번째는 우선 앞서 지적한 회화의 유물론적인 탐구가 어느 정도 지난 지점에서 이제는 더 이상의 형식 실험조차도 진부해졌다는 것이다. 소재 자체가 갖는 물성의 탐구, 새로운 소재의 발견(한지, 유화, 아클릴릭 등 재료 혼합)이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시점에서 회화는 구상회화의 틀 안에서 새로운 단계로 서서히 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구상회화의 요체는 더 이상 극사실주의적인 묘사 자체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롭게 스토리에 기대기 시작했는데, 이 스토리는 기존의 서사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맥락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 미술은 인상주의 때부터 시작하여 추상미술에 도달함으로써 결정적으로 문학(스토리의 지배)으로부터 벗어났다. 추상미술에 대한 최초의 이론적인 고찰을 제안했던 칸딘스키는 “자연의 작은 조각이나 분홍 옷을 입은 부인의 초상화에서처럼 모든 것의 가장 사소한 것들에 매달리는” 미술에 반대하면서 추상미술을 제안했다. 칸딘스키가 가장 역겨워한 것은 전통적인 대서사가 사라진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일상의 남루함이었다. 20세기 초반 소설에서 대서사의 소멸 선언과 거의 동시적으로 이루어진 문화사적인 현상이었다. 문학의 지배력에서 벗어나자 회화의 유물론적인 측면은 더 강조되었다. 그림의 재료가 가지는 물성에 대한 강조는 추상표현주의 이후에 등장한 모든 추상회화의 공통적인 특성이었다. 어떤 양상의 추상미술이건 그 기저에 깔려있는 것은 삶의 소소한 산문을 혐오한 엘리트주의적인 작가의 태도이다. 이런 태도는 추상회화 전반을 모더니즘으로 범주화하는 일차적인 근거가 된다.




서상익_대화의 시간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08


한국 미술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미술에서의 가장 중요한 흐름이었던 ‘모노크롬’ 회화는 회화적인 물성에 대한 강조와 서사(스토리)를 배제한 직관적인 통찰을 그 특징으로 한다. 70년 중반에 등장한 극사실주의는 모노크롬 회화에 대한 반발이기는 했지만, 스토리의 배제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대부분의 극사실주의 작가들은 ‘극사실주의’라는 이름을 거부하면서, 자신들이 그리는 가시적인 이미지의 저편을 인식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 역시 같은 ‘일상의 삶’을 초극하려는 노력에서 기인한다. 스토리를 보존하고 있었던 것은 80년대의 민중미술이었다. 그러나 민중미술의 퇴조와 더불어 우리 미술에서 서사적인 스토리는 결정적으로 무대에서 사라진 듯이 보였다. ● 문학과 미술에서 잠시 실종되었던 스토리들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사실 인류 역사상 스토리가 사라지는 법은 없다. 잠시 잊혀질 뿐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살아있는 한, 그 살아가는 이야기, 즉 스토리라는 것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토리를 보존하고 있었던 것은 영화, 드라마, 게임, SF물 등 대중문화이다. 그러나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경계가 사라지고, 혼용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대중문화 속에 간직되어 있던 서술적인 요소가 다시 미술에 틈입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중문화의 수용은 작가들이 모더니즘 특유의 엘리트주의를 버리고 대중문화를 삶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여기에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스토리가 삶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상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의 스토리는 삶을 압도하고, 세상에 어떤 영웅보다 더 위대한 영웅들은 SF물에서만 만날 수 있다. 최근 팩션(Faction: fact와 fiction의 합성어. 주로 역사적인 사실과 작가적 상상물의 결합)의 대 유행 역시도 작가의 상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삶의 진부함과 남루함은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스토리가 돌아온 것은 작가적인 상상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상익_방문-Unexpected awakening_캔버스에 유채_89.4×145.5cm_2008



서상익_오늘도 채펄린은 날지 못했다_캔버스에 유채_162.2×130cm_2007


“나의 작업은 회화의 공간속에서 일상과 상상이 만나는 연극의 순간이다.”라는 작가의 말은 이런 상황을 분명하게 요약하고 있다. 대서사가 사라진 우리의 삶은 소소하고, 무의미하고 메마른 일상의 연속이다. 그 일상을 의미 있는 그림의 소재로 만드는 것은 그의 ‘상상’이다. 우선 서상익의 상상의 뿌리는 영화, TV, 대중음악 등 대중매체라는 점이다. 서상익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던 작품은 「Sunday pm04:00」이었다. 그 우람한 갈기털이 무색하게도 사자는 좁은 자취방의 작은 침대에서 혼곤한 잠을 자고 있다. 일요일 오후 네 시, 느슨한 시간이면 TV에서 ‘동물의 왕국’이 방영된다. 이 프로그램의 메인 히어로우인 사자는 하루 평균 17시간에서 21시간을 잔다. 게으른 백수의 왕이 좁은 자취방 공간과 오버랩되면서 하나의 장면을 이루어 내고 있다. 이 이외에도 강한 스토리 라인이 담겨있는 영화의 한 장면들이 일상에 서슴없이 들어온다. 작품 「양들을 위한 시간」,「대화의 시간/가제-양들은 잠들었는가?」 등은 노골적으로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 대목들을 작품 속에서 인용하고 있다. 「무엇이 나를 남자로 만드는가?」 시리즈 역시 대중 매체의 영향이 강하게 보이는 작품들이다. ● 이렇게 상상을 끊임없이 끌어들이는 것은 바로 일상의 남루함이다. 그리고 이 상상의 밑바닥에는 MTV세대 혹은 88만원 세대의 무기력과 두려움, 위축된 감정이 깔려있다. 그의 작품은 삶이라는 말을 ‘일상’이라는 말이 대체해버린 우리의 현실에 대한 직시로부터 시작한다. 2007년 작 「무엇이 나를 한심하게 만드는가?」 시리즈는 가감 없이 자신을 드러낸 그림들이다. 묘한 동영상 화면 앞에 쌓여있는 휴지더미와 끼니를 때운 컵라면 용기들을 그린 이 그림들은 그의 앞에 놓여진 현실의 삶의 시시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시한 현실 앞의 무기력한 자아 - 현실에 대한 냉정한 직시 이후에 상상으로 현실을 구제함으로써 본격적인 서상익적인 세계가 구축된다.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이라는 것이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방식, 내가 느끼는 것을 전달하는 것, 내가 바라보는 세상으로 재구성한다.”라고 그는 말한다. 짧은 문장이만, 무려 네 번의 “내(I)”가 존재한다. 작가는 그리고자 하는 세계는 무엇이었는가?




서상익_무엇이 나를 남자로 만드는가2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08



서상익_Use your illusion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07


2007년 작「Use your illusion」는 시대를 풍미했던 락 그룹 ‘Guns & Roses'의 연주자 슬래쉬가 그의 자취방 한켠에서 멋들어진 모습으로 전자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Use your illusion”은 앨범의 제목일 뿐 아니라, 서상익의 작품을 설명하게 하는 키워드를 함축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슬래쉬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기타이다. 이는 슬래쉬의 연주에 감명을 받아서 배우기 시작했지만, 현재의 형편없는 자신의 기타 솜씨를 상기시키는 존재이다. 이런 상상의 틈입은 한편으로 시시한 일상을 구원해 작품의 대상이 되게 만들어 준다. 이번 전시 제목 “녹아 내리는 오후” 역시 이런 상상이 일상으로 틈입하여 혼융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상상은 다시금 일상의 무기력과 남루함을 강조하고, 때로는 현실을 압도하고 가치 평가를 내린다.●「에스겔 25장 17절」에서 영화속의 인물은 그림 앞에서 절망하고 있는 작가에게 총구를 겨눈다.「양들을 위한 시간」에서는 양떼들이 화면의 상층부에서 현실의 공간을 압도한다.「무엇이 나를 남자로 만드는가? 2」에서는 왼편의 대중매체 속 이미지에서는 승리의 환호성이 울려 퍼지는데, 오른편의 현실 속 인물은 지치고 패배한 모습이다.「달콤한 꿈」에서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성공한 젊은이가 서울의 야경을 뒤로 하고 있는 모습이다.(저런 서울의 야경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조망권 자체도 사회적인 부의 배분 관계를 나타내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 유리에 비쳐진 것은 작은 자취방에서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현실의 젊은이다. 영화나 대중 매체의 스토리가 ‘상상’이라는 매개물로 일상의 작은 부스러기들과 화학작용을 일으켜서 작품의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스토리는 문학적인 논리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회화적인 논리에 입각한 것으로 관객에게 새로운 상상을 자극하는 신선한 시각적인 이미지가 된다.




서상익_에스겔 25장 17절_캔버스에 유채_112×145.5cm_2008


그러나 이 상상이 순전히 서상익 개인의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상상력이 대중매체에 의해서 촉발된 것이기 때문에 그의 상상은 그만의 것이 아닌,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우리의 것’이 된다. 그림의 주인공은 상상이며 일상은 그저 화면의 배경으로 물러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배경 역시도 시대의 이름을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서상익 작품의 배경에 주로 등장하는 것은 작업실과 자취방 등 작가 개인의 공간이지만, 이 개인의 공간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일종의 도상적인 기능을 갖는다. NY라고 쓰여진 푸른색 선캡, 등이 두 쪽으로 갈라진 의자, 옷이 걸려있는 행거, 다용도로 쓸 수 있는 박스 등 모두 그의 개인 용품이지만, 너무나 평범한 물건들이다. 이 대량으로 생산된 상품들은 남루한 일상의 아이콘으로 그의 방을 익명의 방으로 만들며 보편성을 부여한다. 이 남루한 일상의 물건들은 이런 익명성으로 해서 시대상을 보여주는 물건들, 우리 시대의 특징이 된다. 서상익의 화면에 스토리가 복원됨으로써 하마터면 버려졌을 우리 시대의 삶이 ‘그려질 가치가 있는’(츠베탕 토도로프) 것이 되었다. ■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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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도시위엔 달의 강이 흐른다...

정태균展 / CHOUNGTAEKYUN / 鄭泰均 / painting

2008_1126 ▶ 2008_1202



정태균_비가 오는 도시위에는 달의 강이 흐른다_한지에 수묵채색_100×65cm_2008




초대일시_2008_1126_수요일_06:00pm

The moonlight floods like a river beyond the city's raining skies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영아트갤러리_YOUNGART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5번지 3층
Tel. +82.2.733.3410
www.youngartgallery.co.kr






억압된 것의 귀환 ● 매체로서의 수묵을 바탕으로..작품에 등장하는 우리 자화상으로서의 다양한 인물들은 그 인물들과 만나는 전시 현장의 모든 관자(觀者)와 실존으로서 일대일로 조우하도록 연출한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작품과 관자(觀者)가 같은 시간 속에서 너와 나, 우리들의 공간 속에서 만남으로써 자신의 무의식적이고 감추어진 욕망과 감성을 상대에게 투사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한다. 이 또한 예술이 갖는 탈리스만(Talisman)적 기능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정태균_비오는 도시위엔 달의 강이 흐른다_한지에 수묵채색_135×70cm_2008



정태균_비오는 도시위엔 달의 강이 흐른다_한지에 수묵채색_135×70cm_2008



정태균_Connivance(黙認)-묵인(墨人)-사랑초_한지에 수묵채색_135×70cm_2008


Connivance,묵인(黙認) ●「묵인(墨人)-묵인(黙認)」은 작가 자신과 우리들의 초상이다. 즉 묵인(墨人)의 묵인(黙認)을 형상화한 자화상이다. 묵인(黙認)하며 살아가게 되는 작가 자신의 갈등과 불안에 대한 자기 치유를 표출해보려는 것이다.




정태균_Connivance(黙認)-묵인(墨人)-사랑초_한지에 수묵채색_135×70cm_2008



정태균_비가 오는 도시위에는 달의 강이 흐른다_한지에 수묵채색_70×46cm_2008



정태균_Connivance(黙認)-그리운가요..._한지에 수묵채색_70×100cm_2007


나는 고집스럽게 사람의 표정을 그림 속에 담아낸다. 그래서 구상적일 듯도 하지만 실은 내 작품에는 거의 현장감이 없다. 작품안의 인물은 표의적인 형상일 뿐이다. 그래서 현장에서 작품을 스케치 하지 않는다. 작업실에서 모델과 함께 계산된 작업. 나는 자기 세대 전체의 자화상을, 그 전형을 만들어내고 싶어하고, 그들의 또, 나의 부작(符作)이 되고자한다. ● 정형성과 상징성 간의 긴장. 아슬아슬하게 그 경계의 유희를 지속하고 있는 나는, 작품의 진동이 가장 자기 세대다운 자화상의 울림으로 다가오기를 바란다. ■ 정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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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풍경_Survival Scenes

문중기展 / MOONJUNGKI / 文中技 / painting.drawing

2008_1126 ▶ 2008_1213 / 월요일 휴관



문중기_산전망대_종이에 연필_129×320cm_2008




초대일시_2008_1126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175_GALLERY 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2.720.9282
blog.knua.ac.kr/gallery175






풍경(landscape)과 풍경(scene) ● 문중기의 작업은 풍경이다. 대상에 대한 관망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가지고 그려낸 일상의 풍경이다. 처음부터 작가는 철저히 인물을 배제하고 대상과의 거리를 둠으로써 낯익은 풍경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닦아낸 다소 ‘메마른’ 풍경을 만들어냈다. 작가는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보는 사람의 시점이 중심인 원근법을 사용하지 않고 대상 중심의 그리기 방식인 등축도법을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그리고자 하는 대상 이외의 배경을 제거하고 단순화시킨다. 주로 가느다란 연필 선으로만 빼곡히 채워진 드로잉들은 색감도 콘트라스트도 강하지 않다. 그런데, 작가가 그려낸 풍경을 찬찬히 살피다 보면 ‘메마른’ 풍경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익숙한 정경들이 발견된다. 조그마한 삶의 공간에 만들어낸 어이없고 기가 막힌 풍경들이다. 질퍽한 삶 속에 묻어있는 우리네 풍경들, 이것이 바로 문중기가 그려낸 ‘서바이벌’ 풍경의 매력이다. 우리 주변에서 언제나 마주치는 아주 익숙한 풍경, 조물조물한 사람의 모습과 삶의 모습, 그렇기 때문에 이 화면들은 우리에게 메마르게 다가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 화면은 풍경(landscape)이라기보다 삶의 현장(scene)이다.




문중기_공원_종이에 연필_47×63.5cm_2006



문중기_옥상_종이에 연필_47×63.5cm_2006


물론 그림 속에 사람은 없으니 사람의 모습이라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 광경은 분명 사람의 모습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다. 이 좁은 땅에서, 이 좁은 도시에서 복작복작하게 살려니 어지간해서는 여유를 부릴 새도 없고, 지붕위에 지붕을 덧대는 것(屋上架屋)에도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골프 연습장을 지을 곳이 마땅치 않으면 옥상위에 지으면 되고, 고층빌딩 옆에 테라스를 이어 붙여 엉뚱하지만 참으로 현실적인 휴식공간을 만들면 되고, 차들로 붐벼대는 도로와 도로 사이 생뚱맞은 공간에 화단을 만들어내고, 그 화단 사이를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이 또다시 길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일상의 모습이다. 섬세한 드로잉으로 산 전망대를 그려 관객을 압도시키는 저 거대한 300호짜리 그림 속에도 사람들은 산 전망대를 세우고 길을 내었다. 테이블이 없으면 의자로 테이블인 셈 치면 되고, 길가 전봇대에 줄을 걸어 빨래를 말리면 바싹바싹 잘 마르는 것이 우리네 현실, 서바이벌 풍경이다.




문중기_길_종이에 연필_63.5×47cm_2007



문중기_옥상 골프연습장_종이에 연필_47×63.5cm_2007


작가는 이러한 것들을 ‘엉뚱하고 엉성한 것들’이라고 표현한다. 엉뚱하고 엉성한 것들, 그것은 이러한 풍경들의 목적이 ‘서바이벌’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근사하고 멋들어진 것들은 지금 당장은 필요치도 않을뿐더러 그럴 돈도 시간도 이유도, 대의(大義)도 없다. 목적은 풍경(landscape)이 아니라 실용성이자 동시에 그 풍경을 만들어낸 사람의 소소한 자기 위안이며, 자기만의 파라다이스를 향한 소망이기 때문이다. 김광섭 시인의 표현처럼, 어쩌면 인간조차 성북동 비둘기 신세가 되었음을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둘기와 달리 인간은 그들의 목적을 달성했다.




문중기_자동야구장_종이에 연필_47×63.5cm_2007



문중기_제방공원_종이에 연필_70×100cm_2007


비좁은 옥탑방에 산다고 해서 우리네 삶도 쉬이 여길 수 없는 것이다. 옥탑위에 낡은 바캉스의자와 화분 몇 개로도 근사한 파라다이스를 꾸며내는 것이 인간일지니. ■ 임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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