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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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8-11-05 02:15:24, Hit : 896)
전시 11.5



Purgatorium 연옥

홍경택展 / HONGKYOUNGTACK / 洪京澤 / painting

2008_1023 ▶ 2008_1122 / 일요일 휴관



홍경택_매화지몽_캔버스에 유채_200×200cm_2008




초대일시_2008_1023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_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카이스 갤러리 제1,2전시관_CAIS GALLERY
서울 강남구 청담동 99-5번지
Tel. +82.2.511.0668
www.caisgallery.com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인 홍경택의 개인전 “Purgatorium(煉獄)”이 2008년 가을, 카이스 갤러리에서 열린다. 화려한 색채와 재기 발랄한 팝 아트적인 작품으로 디자인적 요소와 회화적 아이콘 요소가 현란하게 어우러져 있는 이번 전시는 근작 「훵케스트라(Funkchestra)」시리즈와 함께 홍경택의 아트 북 작품들로 구성되어있다.




홍경택_해골_캔버스에 유채_200×200cm_2008



홍경택_스칼렛 요한슨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08


이번 주제 ‘Purgatorium(연옥)’은 가톨릭의 교의로서 죽은 영혼들이 정죄(淨罪)를 위해 머무는 곳을 뜻하며, 현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가 느끼는 자신의 내면 심리를 전시 제목을 통해 표현하려는 의도가 내재되어있다. 홍경택은 이번 전시를 통해 대중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가 살아가면서 고민해왔던 내면의 상실과 상처 등 작가 자신이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픈 내면 심리들을 쏟아내고 있다.




홍경택_십자가 책형로_캔버스에 유채_97×97cm_2008



홍경택_박찬욱_캔버스에 유채_91×91cm_2007


홍경택의 「훵케스트라 」는 대중음악의 선율과 리듬에서 받은 개인적인 느낌들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Funk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음의 선율 중 반복되는 리듬 파트를 바탕으로 흥을 돋우며, 그 리듬이 연상시키는 이미지 속에서 화려하고 원색적인 요소들을 끌어내어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스타들을 이미지와 함께 형상화하였다. 대중적인 스타들의 이미지와 포르노그래피, 섹슈얼리티, 종교적 이미지와 철학적인 의미들이 화면에 어우러지면서 거대한 오케스트라처럼 표현되는 「훵케스트라」작업은 화면 속에서 이루어지는 충돌과 화합을 통해 현시대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의 용광로 즉, 카오스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홍경택_Catch me if you can_캔버스에 유채_52×33cm_2008



홍경택_Purgatorium 연옥展_2008


홍경택은 이번 전시에서 마릴린 먼로, 반 고흐, 스칼렛 요한슨, 캐서린 제타존스, 박찬욱 감독, 원로배우 故 남정임 등 대중의 스타와 섹슈얼한 이미지, 종교적인 아이콘들을 등장시켰다. 훵케스트라의 음악적인 요소들로 화려하게 반복되는 패턴으로 캔버스를 채우면서 여백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편집증적인 공간을 바탕으로 화면의 중심에 위치하는 유명인사 및 대중적인 인물들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홍경택이 바라보는 현 시대의 혼돈과 조화, 시대적 강박증과 이와 상반되는 유머를 이번 전시를 통해 엿볼 수 있을 것이다. ■ 김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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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중간한 풍경-Utopia

전나무展 / JEONNAMOO / 田나무 / painting

2008_1024 ▶ 2008_1111



전나무_무릉도원-유유자적_장지에 채색_100×80㎝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전나무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1024_금요일_06:00pm

예술공간 헛 2008 전시공모 개인전

관람시간 / 01:00pm~09:00pm





예술공간 헛_HUT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8-13번지
Tel. +82.2.6401.3613
club.cyworld.com/hut368
www.hut368.com






높은 산이 사방을 둘러싼 외진 곳 / 이곳을 찾아가기 위한 험난한 과정 /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매우 좁은 입구 / 담 너머의 세상을 이따금씩 훔쳐 볼 수밖에 없는 곳 / 속세의 인연을 모두 잊어야하고 버려야 하는 곳 /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는 사람은 드물다는 점 / 자연과 벗할 수밖에 없는 곳 / 시간이 지난 그 곳은 가끔 술자리에서 전설로 전해질 뿐이었다.




전나무_무릉도원-군대스리가_장지에 채색_103×146㎝_2008



전나무_무릉도원_장지에 채색_206×130㎝_2008


대한민국 남자라는 누구나 가야하는 끔찍한 ‘군대’와 동양의 이상향이었던 ‘무릉도원’은 유사한 점이 많다. 지리적?물리적 속성은 거의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할 만 한 점은 시간의 경과(전역 후)에 따른 인간의 추억과 소문이 닮아있다는 점이다. 오늘날에도 군대는 대개 속세(현실)와 동떨어져 있는 곳이며, 자연과 벗할 수밖에 없는 외진 곳이다. 생각을 살짝만 바꾸면, 이곳은 전쟁을 위한 곳 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상향에 가까운 듯하다.




전나무_불꽃놀이_장지에 채색_103×146㎝_2008



전나무_추수_장지에 채색_90×145㎝_2008


연병장(운동장)에는 고물 탱크가 있고 겁 많은 사슴들이 군인들과 함께 뛰어논다. 이들 모두는 이기고 지는 전쟁이나 승부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자연과 유유자적할 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꿈꾼다. 이곳은 아무리 찾아 헤매어도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굳이 찾으려면 그것은 시간의 관계 속에서만 어중간하게 존재하는 것 같다.




전나무_개구리 낚시_장지에 채색_130×98㎝_2008



전나무_태권소녀_장지에 채색_90×145㎝_2008


실제로 군대 막사에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당시 힘들고 죽겠는데 왜 이다지도 복사꽃은 아름다운지……. 군복무 중에는 몰랐다. 전역을 하고 시간이 한참 지난 뒤, 그 곳은 술자리에서 유토피아가 되어있었다. ■ 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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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집된 풍경

박병춘展 / PARKBYOUNGCHOON / 朴昞春 / painting

2008_1029 ▶ 2008_1111



박병춘_낯선, 어떤 풍경_한지에 먹_72×93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71013e | 박병춘 개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1029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_09:00am~06:30pm / 일요일 및 공휴일_11:00am~05:00pm




동산방화랑
DONGSANBANG GALLERY
서울 종로구 견지동 93번지
Tel. 82.2.733.5877/6945






박병춘의 작업은 채집된 풍경이다. 어디에서 본 듯한 풍경일 뿐 완벽한 실제의 풍경이 아니다. 재현적인 풍경이 아니다. 하나의 평면위에‘재구성된’풍경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어디서 본 듯한 장소를 만나게 된다. 이것은 그의 작업이 단순한 시각적 만남 뿐만 아니라 새로운‘바라봄’임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자연이나 다양한 나라의 자연에서 ‘채집된’풍경으로서의 장소성이다.




박병춘_빨간 버스가 있는 풍경_한지에 혼합 재료_68×94cm_2008


박병춘의 작업에서‘채집된’은 자연의 구체적인 곳을 실제로 수없이 스케치하며 체험한 시간의 경과를 배경으로 한다. 하나의 장소를 반복 답사하며 그곳의 특성과 공기까지도 섭렵하려는 태도이다. 간접적인 이야기, 움직이는 영상으로 느낄 수없는, 그의 몸이 느끼고 흡수한 체감적 과정이다. 그곳의 기운이, 공기가 그의 몸속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의 풍경을 차안에서, 방안에서도 느낄 수 있는 인간의 경험적인 면을 고려함에도 불구하고 그 간접성 만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직접성’이 있다. 이러한 그의 작업의 직접성은 오감적인 체험 위에 존재하는 여섯 번째의 세계이며 몸속에서 육화된 창의적 태도에서 출발한다.




박병춘_흐르는 풍경 한지에 혼합재료_132×162cm_2008


화면 속의 부유하는 정물이나 인물, 입술 등은 동영상의 화면 속에서 애니메이션 할 때 등장할 수 있는 풍경들이다. 이 풍경들은 움직이지 않는 그의 화면에서 전혀 어색하게 등장한다. 이때 우리는 그의 화면에‘낯설다’는 단어를 부여한다. 이 낯설음을 주도하는 그의 리더쉽은‘채집’이라는 단어로 대체될 수 있다. ● 그의 채집은 자연에서 수없이 경험된 자연적 에너지를 3차원이 아닌 2차원의 평면에 옮길 때 등장하는 필요불가결한 그의 기법이 되고있다. 이 채집은 3차원에서 2차원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소멸되었던 1차원을 회복시키는 전략이며 독특한 상상력이 되고 있다. 한 차원의 소멸 또는 탈락이라는 그 제한은 오히려 그에게 창의적인 기법이 되었다. ● 창의적인 기법으로서의 채집은 움직이는 동영상에서 layer처럼 하나의 층위를 가지는 요소이며 그 층위를 하나의 평면으로 치환시키는 중요한 방법이 되고 있다. 구속처럼 작용하는‘제한’은 그에게 창조적 자극이 되었으며, 그것은‘낯선’ 풍경이 되었다.




박병춘_빨간 등대가 있는 풍경 한지에 먹_69×98cm_2008


이 풍경은 평면에서 하나의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형성하면서 순차적 시간을, 동시적 시간으로 환원시키는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 절벽 속에 숨어있는 인물들의 풍경, 암각화처럼 그려진 절벽 위의 정물들, 비상식적인 비례와 동등한 예우, 하나의 이야기로 엮일 수 없는 혼성 등이 낯설음으로 다가온다. 절벽처럼 표현된 준법의 난무, 절벽의 주름을 그린 듯 하나 박병춘의 호흡처럼 느껴지는 선들의 유희 등은 최소한의 이미지 만 다가온다. ● 수많은 현장 스케치와 답사, 그곳의 공통인수를 채집한 공간적 체험, 그것을 무화시키는 그의 낯선 준법 등은 자연적, 구체적인 곳을 새로운 장소성으로 안내한다.




박병춘_흐르는 풍경-연화도_한지에 먹_70×145cm_2008


박병춘은 호흡과 함께 화선지, 수묵, 채색, brush stroke 등을 동원한다. 수묵화의 요소를 이용하고 그 곳에 그의 호흡을 첨가하여 전통적인 맛을 지닌 현대적 산수화로서의 21세기적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수많은 준법의 변용과 다양한 각도에서의 붓질, 전통적인 화면구성을 뒤집는 공간의 해석 그리고 동시적 시간의 레이어적 구성은, 그 풍경의 주요한 요소이다. ● 제주도의 풍경에서 그는 흐린 담채를 배경으로 진한 먹을, 먹을 쌓아가는 기법이 아닌, 동영상의 화소처럼 사용하고 있다. 전통적인 산수기법에서 보면 이질적이고 낯선 것으로, 우리의 망막 상에서 백과 흑이 혼합되는 기법처럼 작용되고 있다. ● 이러한 기법은 흐린 먹에서 진한 먹으로 채색해 가는 전통의 담채기법과는 다른 접근방식이며 시지각을 자극하는 독특한 방법이다. ● 담채 위에 병렬되는 점들의 사용을 통해, 제주도라는 구체적 장소를 채집하듯 사생하여 실제보다 더욱 실제감을 전달한다. 그것은 평면적 화면에서 얻어내기 어려운 것으로 그곳의 공기층까지도 획득하고 있다.




박병춘_낯선, 어떤 풍경_한지에 먹_93×137cm_2008


구불거리는 듯한, 살아있는 듯한 독특한 그의 준법은 마치 초현실적인 회화감을 전달하면서 재현적이되 재현이 아닌 화면의 상호작용을 모호하게 구성하고 있다. 라면발처럼 사용된 그의 준법은 실제의 라면을 사용하여 부감산수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표현하기 위한 준법이라기보다 그의 심리적 상상력을 대변하는 원형감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가 명명한 라면준이라는 것은 라면이라는 패스트푸드에서 발견된 것이지만 그것을 발견하기 이전에 그의 잠재의식 속에 이미 자리잡고 있던 것이다. ● 그의 이러한 준법의 해석은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숨어있는 원형감각을 불러내는 메신저로 작용되고 있다. 따라서 그의 풍경은 초현실적인 풍경으로서 예측불가능한, 그러나 이미 존재하는 그 무엇과의 상호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 그의 의도는 인간의 상상과 사유가 개입된 생명력, 그리고 예측불가능한 내적 유동성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박병춘_낯선, 어떤 풍경_한지에 먹,인형_58×80cm_2008


박병춘의 준법은 자유롭게 흐른다. ● 자연 속에서 스며나와 화면 위에 흐르는 선들, 그것은 선이 아니요 일정한 그릇 속에 담긴 자유로운 선. ● 그러한 그의 선들이 절벽을 스치며 조각돌에 표정을 일으키며 푸르고 노란 하늘과 즐겁게 율동하고 있다. ● 박병춘의 준법은 즐겁다. ● 흐르는 모양, 흐르는 소리가 재미있다. 처음의 소재를 만난 구체적 감흥은 어느덧 사라지고 그것이 연상시키는 무한한 상상력으로 번진다. 그 준법은 산과 들을 넘어 가로막힘없이 덤비는, 빛없이 즐겁게 흘러 넘어간다. 고요하면 고요한대로, 요란하면 요란한 대로 그곳의 느낌을 유지하면서 즐거운 상상력으로 변화되고 있다. 구체적인 곳에서 새로운 장소성으로 옮겨가고 있다.




박병춘_정선가는 길_한지에 먹_68×93cm_2008


잔잔한 하나의 필선이 그의 상상력에 의해 풀잎을 스치며 조각돌에 잔물결을 일으키며 절벽에 새로운 암각화를 새기며 하늘에 강렬한 색감의 이미지를 떠다니게 하며 평면 위에 3차원적인 공간을 시도하고 있다. 그의 무기는 수많은 사생과 준법의 자유로움이 그의 호흡과 함께하는 박병춘식의 준법이다. 무심한 듯이 흐르되 호흡과 하나된 그의 준법은 그의 화면에서 논, 밭, 그리고 절벽 등으로 더욱 윤택해진다. ● 그의 준법의 힘을 얻어, 자연은 새로운 생명이 된다. ■ 김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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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지 않다, 그러나 말하자면 두렵다

이은실_문무왕_조습_차재민展

2008_1105 ▶ 2008_1123 / 월요일 휴관



이은실_Out_장지에 수묵채색_115×200cm_2008




초대일시_2008_1105_수요일_06:00pm

책임기획_이대범
진행_서원석_서준호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175_GALLERY 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2.720.9282
blog.knua.ac.kr/gallery175






비가시적인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면서도 호기심의 대상이다. 이러한 이중적 감정은 비가시적인 것을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의 근거가 된다. 이 욕망은 다양한 미학적 형식으로 표출된다. 어쩌면 미술은 이러한 비가시적인 것에 대한 재현 욕망과 그것을 표출해 내는 미학적 태도에 따라 변화해왔는지도 모른다. ●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있다. 과거의 미술이 ‘상징을 재현’했다면 현재의 미술은 이러한 ‘가치들을 시각화’한다. 이 두 가치는 일견 비슷해 보이나 ‘미’에 대해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인다. 전자는 미를 순수한 미 그 자체로 다룬다. 그 속에 숨겨진 상징이 어떤 종류이든 그것은 ‘미’로 귀결된다. 이러한 접근 태도는 늘 자기와 함께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들은 “두렵지 않다.”라고 말한다. 이에 반해 후자에는 상상화된 상징에 더해진 비가시적 권력과 필연의 논리들이 존재한다. 전자를 따르는 자들처럼 단순히 일상의 맥락 없는 신변잡기(이것은 일상의 껍데기일 뿐이며 과거에 있었던 미의 상징화에 대한 단순한 맹목에 불과하다.)만 드러내지 않는다. 이들은 세상에 대해 두려워하는 태도를 가진다. 그러나 확장된 세계를 컨트롤해 내는 이들은 ‘두렵지 않다’라는 문장에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쉼표를 남기면서 한 마디를 붙인다. “그러나 말하자면 두렵다”라고. ● 이번 전시 참여 작가들의 작업 태도는 후자이다. 너무나,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이 ‘두렵지 않다’라는 발언을 하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전자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그들은 비가시적인 것을 재현의 맥락 속에서 무질서하게 확장과 재현만을 반복하게 두지 않는다.




문무왕_고민거리 있으면 내게 다 털어놔요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8_부분



문무왕_고민거리 있으면 내게 다 털어놔요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8_부분



조습_누가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가 03_디지털 프린트_122×101cm_2008



조습_누가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가 06_디지털 프린트_122×101cm_2008



차재민_untitle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5×130cm_2008



차재민_untitle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0×70cm_2007


참여 작가들은 공간에 대한 비가시성의 개입, 그것의 무한한 가치적 확장, 신체적 정제 등 비가시적인 대상을 가지고 그곳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작가들이 남긴 쉼표는 무한히 확장되고 있는 세계에 대한 경계를 의미한다. 어디서 마쳐야 할지를 알고 있는 그들은 세계 속에 자신을 표현하고 세계라는 공간과 개인 사이의 간극을 적절히 조절한다. 그러한 공간과 개인이 교차하는 지점들은 매우 흥미롭다. ● 이러한 이야기들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이야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발언의 영역까지 확장 된다. 이들의 지향점은 일상적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사회적 두려움에 관한 표현이다. 이러한 살아있는 두려움은 차가운 이성보다 더 인간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이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다른’ 이해의 방식이며 이번 전시의 작가들은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것은 작가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관객의 이야기이고, 그들과 우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 이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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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물건이나 상황들은 항상 우리 곁에 있지만 우리가 인지하고 그 상황을 포작할때만 비로소 그것들이 현실로 다가옵니다. 비현실과 현실은 아주 다른것 같지만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게 체험 하게 됩니다. gaze전은 현실 속의 실체들을 드러내는 촉진자,또는 촉진작용으로서의 4명의 작가의 작업을 전시합니다. 우리도 현실적 존재로 누군가에게 무엇인가에게 꼭 이렇게 오브제로 살아가니까요.

구본창
자연 속에는 숨겨진 추상적인 형태가 많다. 그러나 추상적인 형태는 사물을 새롭게 보여주려는 하나의 방법일수도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 항상 그런 방법으로 보도록 교육 되어진 것에 의문을 갖고 자연을 다시 바라보는 것, 아마도 이번 시리즈에서 시도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볼 수 있는 사람에게만 보여 질 수 있는 것들… 내 자신과 자연의 대화, 그리고 가능한 조형성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작업하려고 노력하였다. 자연스러운 자연의 흐름에 맡기면서 이 작업들은 내 자신이 말로 하고 싶은 것을 자연의 언어에서 찾는 일이었다. 시간의 흔적, 자연이 만든 그림을 통해서…

김수강
김수강은 세상의 작은 사물들과 조우한 기억, 그 만남을 사지의 갈피 안에 품는다.
정지된 시간 속에, 막막한 공간 속에 홀로 남아 관자의 눈에 다가오는 이 사물들은 마치 의인화된 대상들처럼 자리한다. 본래의 형태를 가만 부담시켜 줄 뿐이데 그 위로 아주 오래도록 그 사물을 응시한 결과물로서의 침전과 관조가 내려앉아 종이, 인화지의 피부를 물이고 있다. 작고 가볍고 흔한 이 일상의 사물은 가볍게 놓여져 세상과 연관성을 지우고 홀연 고독하다. 그러나 그 사물들 역시 자신의 생애를 보여주고 이런저런 기억과 상처를 드러낸다. 사진은 그 존재성을 각인시키는 훌륭한 도구다.
사진은 분명 작가의 의지와 결단에 의해 대상을 찍게 되지만, 그 선택의 결과물 안에는 미처 예기치 못한 상황성, 틈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까 작가의 사진에 대한 인식이 하나가 바로 세상과 작가자신, 작가가 바라보는 대상이랑 작가가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점에 있다.

박시찬
이 작업에서 보여지는 현대적 건축물과 변화된 풍경은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평범하고 비슷한 형태로 형성된 이미지들이다.
각각의 건물과 풍경이 그 자체로 하나의 유형적 형태로서 존재 하지만, 나 자신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이러한 형태들이 표면으로서, 조형으로서, 미술적 구조체로서의 이미지로 보여지길 원했고, 불필요한 외부적인 감정이나 느낌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중립적인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삼았다.
또한 일부 사진은 디지털 방식으로 처리하여 사진의 구조를 방해하는 디테일을 제거했다.
테마에서도 느껴지지만 변화된 풍경과 건축물을 단순히 재현이라는 시각에서의 사진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비평을 통한 공간의 재인식, 즉 본다는 인식에서의 작업이 아닌 보여 준다는 시점에서 새롭게 창조 하고 싶었다.

하형선
나는 창을 찍는다.
창(Window)은 다른 세계를 바라보고 찾는 입구이자 통로이며 서로 다른 두 세계를 분리하는 경계이기도 하다. 나에게 창은 분리(Point of Separation)의 의미이며, 또한 통로(Point of Access)의 의미이기도 하다. 창은 ’내가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실체적이고도 정신적인 대상인 것이다.
여행을 가거나 어딘가를 방문할 때 난 그곳의 창을 통해 촬영한다. 그 때의 특별한 감정이나 특정 지역의 아름다움을 찾아 표현하려고 하기보다는 그 때 그곳에 내가 있다는 사실과 그 상황에서의 ‘지금’을 기록하려 한다.
암실에서 나는 인화지 위에 쌀을 뿌린다. 그리고 창의 이미지를 노광한다. 쌀이 뿌려졌던 흔적은 포토그램이 되어 창의 이미지에 남게 된다.
여러 문화권에서 쌀을 뿌리는 의미는 우리 삶의 미래에 대한 축복이며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다. 특히 우리나라 무속인 들은 주술적 행위로 상위에 쌀을 흩뿌리며 미래를 이해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예측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러한 노력들은 단순한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와 또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의지에 대한 자각으로써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쌀이 뿌려져 포토그램된 창 이미지 작업은 지금 내가 있는 곳을 생각하고 내다보는 상징적인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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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열대 Tristes tropiques

강제욱展 / KANGJEAUK / 姜帝旭 / photography

2008_1105 ▶ 2008_1111



강제욱_TR04M(Mulu National Park)_C 프린트_100×100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강제욱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1105_수요일_05:00pm

SeMA 신진작가 지원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_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3F
Tel. +82.2.736.1020
www.ganaart.com






강제욱의 열대 숲이 우리에게 건네주는 이야기 ● 세계를 보이는 그대로 옮겨낸다는 것은 사진이라는 매체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이자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서구 르네상스 이후 600년 동안 서구의 회화의 역사는 완벽한 환영을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할 만큼 서구인들에게는 세계를 눈에 보이는 대로 재현하는 것이 가치 있는 활동으로 여겨졌다. 사진기의 발명으로 ‘매체의 투명성’이 확보되면서 보이는 세계에 대한 완벽한 기록이 가능해졌다. 실용적인 매체로서 사진은 객관적인 기록이 필요한 모든 영역에서 환영받으며 광범위하게 사용되게 되었다. 그러나 사진의 ‘투명성’, 즉 세계를 주체의 개입 없이 묘사할 수 있는 능력이 오늘날의 미술 영역에서는 장점이라고만 할 수 없다. 현대미술은 작가의 개성이나 독창성을 강조하면서 사진에서 작가만의 시선이나 표현 방식, 즉 ‘불투명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사진작가들은 합성이나 콜라주 기법 혹은 연출 기법 등을 이용하여 매체의 투명성을 넘어서려고 시도한다. 문제는 이러한 시도가 사진의 가장 큰 장점인 ‘외부 세계에 대한 창’이 주는 매력을 반감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시도가 사진이 그 피사체와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얻을 수 있는 사진의 강력한 호소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 작품은 사진이라기보다 회화의 매력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사진의 ‘사진다움’, 즉 사진 매체의 ‘투명성’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작가의 고유한 시선과 개성을 드러내는가의 문제가 오늘날 사진작가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강제욱_TR01M(Grand Old Lady)_C 프린트_25×25cm_2008_왼쪽
TR02M(Iban Tribe)_C 프린트_25×25cm_2008_가운데
TR03M(Parkson Shopping Center)_C 프린트_25×25cm_2008_오른쪽


강제욱은 ‘매체의 투명성’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그것이 줄 수 있는 한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극복해낸다. 그는 사진 매체의 ‘투명성’이 주는 매력을 한껏 보여주면서 자신만의 시선 혹은 주장을 그 투명성 사이로 잔잔히 표명하고 있다. 언뜻 보면 이번 전시 작품은 열대 정글의 모습을 주체(작가)의 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열대의 울창한 나무줄기와 나뭇잎들이 햇살을 받아 초록색의 미묘한 변화를 보이면서 바람에 출렁이고 있다. 그의 어떤 작품들은 강렬한 햇빛을 받아 반사되는 밝은 색의 잎들과 숲 깊은 곳의 어둠을 대비하여 보여주기도 하고, 다른 작품들은 싱그러운 나무 아래에 시든 나뭇가지와 갈색의 나뭇잎을 배치해 밝은 녹색과 어두운 갈색의 강한 대비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한마디로 밝은 녹색과 어두운 갈색, 빛과 어둠의 향연의 장이다. ● 그가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은 단지 열대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그의 작품들은 자연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강제욱은 열대 숲의 싱그러움을 넘어서 사라져가는 소중한 것들의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화면 가득히 채워져 있는 빛의 충만함 속에서 밝음과 어둠, 생과 사의 대비를 보여준다. 이것을 통해 그는 생명력과 자연의 은총을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또한 이것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열대의 숲이 하나의 통일된 질서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의 심도를 깊게 하여 빛과 공기로 충만해 있는 숲 전체를 잡아내고 있다. 또한 숲 깊은 곳으로부터 역광으로 스며 나온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생명의 근원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고 있다. 동시에 싱그러운 초록의 잎과 갈색의 죽은 잎의 대비를 통해 이러한 신성한 생명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사진 촬영 시점과 촬영 기법의 조절을 통해 열대 숲이 자연의 축복의 결과이고 그것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이용하여 실제 열대 지역의 한 장면을 자신의 의도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재현해놓음으로써 다른 예술 매체에서는 얻을 수 없는 강한 호소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강제욱_TR05M(Mulu National Park)_C 프린트_100×100cm_2008



강제욱_TR07M(Mulu National Park)_C 프린트_100×100cm_2008


강제욱의 기본적인 관심은 자연 환경의 문제이다. 이것을 어떻게 소통하고 그 결과를 어떻게 실천으로 연결시키느냐가 그의 관심사이다. 그는 황폐해지는 지구 환경의 보존에 대한 실천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그는 사라져가는 열대 우림을 어떻게 하면 보존할 수 있을까 하는 실천적 관심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우리들의 작은 관심이 그 지역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소통 매체와 방식에 대해 고민한다. 그래서 그가 찾아낸 매체가 바로 사진이다. 그는 충격적인 영상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그 환경의 유의미성을 보여줄 수 있는 담담한 영상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체득하고 있다. 충격적인 고발 영상이 일회적이라면, 관심과 애정을 갖게 만드는 영상은 그 대상을 보는 방식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환경을 바라보는 관람객의 태도를 변화시켜 환경 보존을 위한 작은 실천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그의 작품은 한마디로 자연의 아름다움의 표현이 아니라 변화와 실천을 위한 소통의 수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의 작품은 이러한 실천을 위해 세밀히 기획된 것이고, 이러한 기획 의도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내용과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마음만 먹으면 그 장소에 가서 누구나 찍을 수 있는 풍경 사진이 아니라 자신의 실천적 목표를 위해 세심하게 기획된 사진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열대의 숲이 고귀하고 그것이 사라져가는 것이 아쉽다는 것을 사진이라는 매체가 줄 수 있는 재현방식(효과)을 한껏 이용하여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강제욱의 작업 방식은 다원주의 시대에서 사진 예술이 나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은 아름다움이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변화와 실천을 위한 소통의 매체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작가는 자신의 목표에 따라 주제를 선택하고, 그 주제를 구현하기 가장 적합한 방식을 찾는다. 그렇게 제작된 작품은 관람객들이 그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변화시킨다. 강제욱은 앞으로도 밀림 시리즈를 포함하여 사막 시리즈, 기후변화 시리즈 등 환경의 문제에 천착한다고 한다. 여러 환경의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작품으로 구현될지 자못 기대가 크다. ■ 장민한




강제욱_TR08M(Bako National Park)_C 프린트_100×100cm_2008



강제욱_TR12M(Mulu National Park)_C 프린트_100×100cm_2008



강제욱_TR17I(Sultan Hotel)_C 프린트_80×240cm_2007


슬픈열대展을 준비하며... ● "매순간 순도 100프로의 산소와 생명력을 괴물처럼 뿜어내는 열대우림숲 속을 서성이고 있었다. 갑자기 모든 사물의 존재를 두드리는 열대우림의 전지전능하며 웅장한 빗줄기가 무참히 쏟아졌다. 산소와 물로 충만한 열대우림 속에서 수억만년동안 모든 생명체가 그래왔듯이 나의 폐는 온전히 그 산소-축복을 받아들였고 내몸을 한바퀴 기꺼이 돌고돌아 다시 외부로 튕겨냈다. (중략) 그러다 어느덧 어둠 속에서 빛이 보였다. 슬픔 속에서 환희를 만났다. 그리고 환희 끝에 도사리고 있는 슬픔이 나를 다시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나는 뼛속까지 두렵지만 또다시 그리고 영원히 맞설 것이다." ● 내 환경프로젝트는 2006년을 전후로 하여 크게 나뉜다. 우선 사진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999년부터 2006년까지 역사, 문화, 환경, 지리 등 다양한 주제로 작업 하였던 다큐멘터리 작업의 결과물을 환경이라는 주제아래 다시 분류하고 정리하였다. 서가에 꽂혀있는 수십만장의 사진을 기획아래 재분류하고 새롭게 구성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열정의 분화구 속으로 나를 내던지는 황홀하면서 뼈속까지 고통스러운 또 다른 창조의 행위었다. 그동안 약 10년을 50여개국을 홀로 유목민으로 떠돌며 만났던 세상과 사람들을 작업실에서 다시 전부 대면하고 그들을 내 품으로 껴안아야 했다. 그 첫번째 결과물이 유니세프와 함께한 '물과 세상의 어린이'展이었다. 환경의 문제는 빈곤과, 보건위생 등 지구상의 여러 문제들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 결과물을 가지고 환경이라는 주제를 알리는 다양한 전시회에 참여하고 여러 국제기구, NGO 들과 함께 대중매체를 통해 내 사진을 선보였다. 버스의 광고, 신문지면의 광고 엽서, 포스터, 잡지, 리플렛, 모금용지, 환경에 대한 에세이를 곁들인 단행본의 발간 등이 모두 나의 새로운 전시장이었다. 내 작업은 갤러리와 갤러리 밖에서 사회와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 두고 실천하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진의 장점이자 강점이다. ● 2006년은 작가인 본인에게 큰 전환의 시기였다. 2년간의 파라과이 목공교사근무를 마치고 한국에 돌와왔을때 그 동안의 나는 하나의 벽이 되 있었고 내 자신을 극복하고 넘어서는 것이 가장 큰 과제로 다가왔다. 그 극복의 끝에 그동안 지구곳곳에서 목도하였던 다양한 환경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의 세계로 받아들여 평생의 과제로 가져가자는 결정을 했다. 이전의 작업을 재창조하고 2007년부터 행할 새로운 작업을 1차적으로 10년을 목표로 설계하였다. 2007년은 외교부 산하의 대외원조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6개국가들을 돌며 개도국의 현실을 사진으로 담았다. 아시아의 베트남, 인도네시아 아프리카의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남미의 페루 그리고 마지막으로(납치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다시 분쟁지였인 아프가니스탄을 다녀왔다. 물부족, 사막화, 양극화, 절대빈곤, 보건위생, 열대우림, 환경오염, 전쟁, 기후변화, 교육 등을 주제로 작업 하였다. 이는 개발도상국과 빈곤국가들이 모두 갖고 있는 문제였고 또한 인간을 둘러싼 환경의 문제였다. 이렇게 10년동안 실천할 작업의 기본 방향을 잡는 작업을 2007년에 행하였고 인사동 아트비트 갤러리의 초대로 '침묵의 봄 Silent Spring'展이라는 제목으로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이후 2008년에 들어서는 단행본 발간을 위해 황사가 부는 3월에 황사발원지인 내몽고 고비사막에 속한 쿠부치, 텅거리 사막을 방문하였고 5월에는 말레이시아 관광청의 초청으로 보르네오 섬에 위치한 물루국립공원과 바코 국립공원을 방문하였다. 그 이후에도 2차례 더 초대를 받아 6월에는 빠항주에 속한 타만 네가라 국립공원 그리고 이번 전시회를 몇일 남겨둔 지난 10월에는(아쉽게도 이번 전시회에는 일정상 이 시기의 작품이 포함되지 못하였다.) 아름다운 맹그로브 숲을 가진 랑카위를 방문하였다. 2007년 인도네시아 방문까지 포함하면 총 4차례에 걸친 출장을 통해 열대우림의 모습, 열대우림에 세워진 도시의 모습, 맹그로브숲과 팜유 농장 그리고 아름다운 열대우림에 세워진 골프장 다섯곳의 모습을 모두 필름에 담을 수 있었다. ● 이번 전시회 슬픈열대는 작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한 젊은 작가의 현재 진행상황을 보여주는 중간보고의 의미를 갖는 전시회이다. 오는 12월에는 남미를 4번째 방문하여 아마존의 열대우림지역들, 판타날국립공원 등을 기록하는 작업을 할 계획이다. 그 외에도 내년 초까지 아프리카를 2차례 정도 방문할 것이고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 지역들을 다시 방문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시 3월이되면 내몽고 지역의 황사발원지를 다시 방문해 사막작업을 어느정도 마무리 지을 계획이다. 이렇게 봄까지 열대우림과 사막을 주제로 하는 작업을 정리하고 다음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다음단계는 물을 중심으로 환경이 어떻게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관해 보여주는 작업이다. 인간이 원인이 된 기후변화의 결과로서 식수문제, 홍수, 가뭄, 쓰나미, 빙하의 붕괴, 해수면 상승 등을 다룰 것이고 이러한 환경문제에서 비롯된 결과가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빈곤한 이웃들의 삶을 철저히 파괴지켰는지 빈곤, 보건위생, 교육 등의 관점에서 기록할 것이다. ● 이러한 작업을 지속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속발전가능한 관광인(Sustainable Tourism) 에코 투어리즘을 위해 힘쓰고 있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와 정부(관광청)와의 긴밀한 협력 그리고 개발도상국과 빈곤국의 국민들을 돕고 있는 국제백신연구소(IVI), 유니세프(Unicef) 한국국제협력단(KOICA) 같은 국제기구, 대외원조기구 그리고 아프리카를 돕는 피스 프랜드 같은 NGO 단체와의 동반자적 협력의 관계가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이 단체들과 젊은 작가의 의욕적인 활동을 지원하는 서울시립미술관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고 작업의 과정에서 받은 모든 것을 인류에게 환원한다. 이번 전시회는 전시명와 동일한 이름을 가진 책인 '슬픈열대'를 저술한 레비 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년 3개월간(2004-2006) 살을 부대끼며 살았던 남미 파라과이의 판타날 지역과 인근의 열대우림지역에서 만난 지난 역사의 주인이었던(이제는 거의 존재가 사라져간) 차마코코, 마카, 과라니족 인디오들 그리고 올해 보르네오에서 만난 이반족의 마지막 전사들에게 이번 전시를 바친다. ■ 강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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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cked Room 잠겨있는 방

박혜수展 / PARKHYESOO / installation

2008_1105 ▶ 2008_1114



박혜수_묻지 않는 질문, 듣지 못한 대답_타자기, 수동파쇄기, 롤페이퍼_가변설치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박혜수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1105_수요일_06:00pm

SeMA 신진작가 지원展

관람시간 / 월~금요일_10:00am~06:00pm / 토요일_10:00am~05:30pm





갤러리 원_GALLERY WON
서울 강남구 청담동 101-5번지
Tel. +82.2.514.3439
www.gallerywon.co.kr






잠겨있는 방 (the Locked Room) ● “당신의 삶에서 잃어버린 가장 아쉬운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사람)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것(사람)을 잃어버린 이유는?”, “그 모습을 기억하나요? (모습을 서술해 주세요)” 박혜수 작가의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에서 접하게 되는 질문들이다. 작가는 지난 몇 년간 시간에 대한 탐구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이 담긴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특히 이번 전시는 위 질문들을 토대로 국내외 누구든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설문조사를 통해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작품과 연계하여 소개하고 있다. 단순히 기억을 그저 나열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획득된 답변들이 추억을 상기하고 기억해내는 과정을 요구함으로써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자신의 모습, 타인과의 관계를 깨닫게 하는 배움의 과정을 내포하고, 작품들은 다양한 이야기로 전개되어 펼쳐진다. 설문에 답한 사람들의 답변은 다양했다. 자신감, 미소, 건강, 꿈, 사람에 대한 믿음, 설레임, 지갑, 친구, 등등 추상적이고 구체적이며 의미심장하기도 하고 때론 서글픈 답변들로 개개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의 것들이 많았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박혜수의 작업 성향을 간단한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건 하나로 귀결되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묻는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시의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 작가의 의도를 보다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두개의 소주제로 구분지어 접근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가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드러나는 여성의 감수성과 시간선상에서 해석된 개체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라면, 두 번째는 기억이라는 ‘시간성’에서 획득된 타자와의 관계에 주목하며 잃어버린 시간 찾기의 주된 과제를 작품들을 통해 만나게 될 것이다.




박혜수_시간 창고_판넬에 연필글씨, 모터, 회전바늘_270×240cm_2008



박혜수_시간 창고_판넬에 연필글씨, 모터, 회전바늘_270×240cm_2008_부분


잠겨있는 방 ● 『잠겨있는 방』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이 방을 열어야 할 것 같은 충동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발생되어지는 것만은 아닐 것 같다.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잠재되어있던 내면의 세계를 드러냄은 물론 타인의 고민까지 공유하며 실존주의 철학자와도 같이 현존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우선, 작가가 제시한 전시타이틀에서 느낄 수 있듯이 ‘방’이라는 공간의 제시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분히 상징적이고 관념적인 해석일 수 있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나 그리스신화에서의『판도라의 상자』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잠겨있는 공간, 심리적 갈등의 대상이자 사유의 공간으로 대치되어지는 단어의 제시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작품, <사람의 집>은 작은 집 모양의 오브제와 타조의 깃털과 설탕으로 만든 민들레 홀씨 모양의 둥근 오브제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위해 사용된 재료와 형상은 자유로울 수 없는 상징적인 대상물들이다. 작가는 현실에서 만나는 허망함을 노래하듯 방향도 없이 바람 따라 떠다니는 민들레 홀씨와 날개는 있으나 땅위에서 살아가는 타조를 보며, 본인의 처지,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위치, 인간의 한계, 현실의 무게를 자화상과도 같이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날 수 없는 타조와 땅에 붙어있는 집을 공중에 띄우는 것으로 어떤 가능성을 제시한다. 알베르 카뮈의 문학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적 의지, 시지프스의 신화를 극복하려는 의지, 불가능에 도전하는 시도가 박혜수의 작품에도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숨은 시간의 방」이란 작품은 방(전시장의 작은 방)에 들어서면 환기구를 통해 새어나오는 빛과 들려오는 소리-인기척-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서면, 빛도 인기척도 사라지게 된다. 가만히 30초 정도 서 있으면 인기척은 다시 들려온다. 다시 움직이면 사라지고, 멈추면 다시 들려오는 아련한 소리들, 바로 인간 생활에서 발견되어지는 소리이자 기호들이다. 평소, 우리는 벽을 사이에 두고 귀 기울이면 옆방이나 이웃집에서 또는 밖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무수한 소리들, 인기척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얼핏 ‘공간지각’적인 사고를 유발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억해서 유추해 낼 수 있는 찾기의 근원들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방이라는 공간은 독립적이고 사적이며 고독한 공간으로 보여진다. 그럼, 왜 ‘숨은 시간의 방’일까. 하이데거에 의하면 ‘시간성’은 서로간의(타자와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존재론적 의미를 가진다. 시간은 공유되어질 때 그 가치가 있는데 시간이 ‘숨었다’ 혹은 ‘멈추었다’는 것은 어떤 대상과의(타자와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말이다. 바로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시점으로 시간이 멈춘 공간 즉, 존재의 의미가 사라진 시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기척이 들려오면 우리는 주변상황에 관계를 시도한다. 바로 빈 공간에 혼자 있지만 혼자가 아님을 깨달을 때에 관계성을 드러내며 우리는 존재의 의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박혜수_묻지 않는 질문, 듣지 못한 대답_타자기, 수동파쇄기, 롤페이퍼_가변설치_2008_부분



박혜수_묻지 않는 질문, 듣지 못한 대답_타자기, 수동파쇄기, 롤페이퍼_가변설치_2008_부분


되찾은 시간, 어떤 배움의 이야기 ● 질 들뢰즈의 지적처럼 ‘찾기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하고 있다’. 다시 무언가를 기억해 내는 것은 작가의 말대로 후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이러한 시도는 ‘찾기’의 일환으로써 어떤 근거를 통해 미래를 향하는 배움의 한 양상을 의미한다. 박혜수의 작품들-「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 「시간 창고」 그리고 「잊혀진 그래서 잃어버린 사람들」-에서는 시간에 대한 탐구, 기억에서 출발해 발견되어진 기호들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기호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회상하고 추억하며 반성하는 과정 속에서 배워나가는 대상으로서의 기호이다. 「잊혀진 그래서 잃어버린 사람들>이란 작품은 작가가 사진 속에 남겨진 대상이나 장소를 묘사한 것이다. 희미한 어릴적 기억의 장소와 사람들을 아크릴판 위에 바늘로써 형상을 그려내고 그 아크릴판 위에 물을 붓고, 그 위로 빛을 투사해 벽면에 그 형상들이 그림자 소묘로 보여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타인을 통해 획득된 기억의 파편들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억의 파편들은 사물들, 사람들, 이름들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잊혀진 기억의 내용들을 사유해가는 시도이자 배움의 연속성을 나타낸다. 기억의 묘사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교집합을 이룬다. 시간 선을 따라가다가 보면 그 선 위에서 간섭하고 서로 작용하며 서로 익혀가는 배움의 선들을 만들어 나가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이란 작품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쉽게 하지 않는 질문, 불편한 질문들을 드러내고 분쇄해서 지우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천장을 이용해 공간을 가로지르는 롤 페이퍼 양쪽에 타자기와 수동파쇄기가 연결되어 설치되는 작품이다. 작가가 평소 느꼈던 것들 그리고 책에서 인용한 것들 중에서 찾아낸 문구들을 타자기로 쓰면 건너편에 파쇄기에 의해 분쇄된다. “당신의 꿈은 이루어졌는가.”, “무엇이 당신을 변화시키는가.” 등등. 이 작품 또한 본인 스스로에게 건네는 질문이면서 타인과의 관계, 사회라는 구조 속에서 형성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얻은 사람들의 대답을 판넬 위에 연필로 썼다가 모터에 의해 지워지는 「시간 창고」란 작품이 있다. 꼭 시계 바늘이 판넬 위에 질문들을 지워가듯이, 시간 창고에 남겨질 우리의 기억들이 잊혀지듯이 사라지고 있다. 시간은 본래 존재의 의미를 인정해주는 매개이다.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시간 속에서 탐구되어지는 자아성찰이자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는 과정과도 같다. 이 작품은 시간이라는 매개와 기억의 속성을 드러내며 되찾은 기억들을 다시금 지우는 과정을 통해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기호들을 잊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라면, 기억하는 자세, 반성하는 자세는 인간에게 주어진 필요조건인지 모른다. 우리는 박혜수의 작업 속에서 설문조사와 기억을 찾아가는 시도를 통해 작가 개인의 성찰은 물론 존재의식의 행보를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작가 박혜수에게 시간에 대한 탐구는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가듯이 과거의 장면들을 찾아 나서는 노력의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의 의미심장한 질문들은 어찌 보면 대수롭지 않게 생활 속에서 잊혀지고 있는 크고 작은 삶의 흔적들이다. 그래서 작가는 그 흔적들을 기억하고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우리 모두에게 있는지를 묻는다. 또한 이 기억의 대상(양상)들은 타자(개체)에 의해서 보여지는 것이기에 ‘상호관계성’을 드러낸다. 결국 타자(개체)는 세계를 체험하는 우리 의식의 근본 구조를 가능하게 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되찾은 시간’은 자전적인 이야기이면서 작가와 관계되어지는 기호들(사람, 사물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의 조합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조형적으로 표현될 수 있었기에 작가의 시도가 예술작품으로 빛을 발할 수 있었다고 본다. 우리에게는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부서지고 아파도 해낼 수 있는 강한 의지와 열정이 작가 박혜수에게는 있다. 끝으로 예술에 대한, 삶에 대한 작가의 의지가 작품으로 꾸준히 표출되어지기를 바란다. ■ 강효연




박혜수_잊혀진 그래서 잃어버린 것들_아크릴위에 엣칭, 물, 수중 모터_가변크기_2008



박혜수_잊혀진 그래서 잃어버린 것들_아크릴위에 엣칭, 물, 수중 모터_가변크기_2008_부분


“당신의 삶에서 잃어버린 가장 아쉬운 것이 무엇입니까?" ● 이번 작업을 위해 3년 전부터 시행해온 1000명의 서로 다른 직종과 연령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묻는 질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얻어진 이야기를 바탕으로 과거란 시간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풀리지 않는 부분의 답을 가진 곳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에서 다루고 있는 과거란 시간은 후회를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앞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가 잃고 살아가는 것은 무엇이고 과연 그것들이 잃어버려도 좋을 만큼 사소한 것인지를 되묻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5점의 설치 작품들은 사람들의 개개인의 이야기들이 반영되어 있다. 일상적인 사람들과의 대화에선 하지 않는 불편한 질문을 하는 「묻지않는 질문, 듣지못한 대답」을 비롯, 설문조사를 통해 얻은 사람들의 대답을 판넬 위에 연필로 썼다가 모터에 의해 지워지는 「시간 창고」, 사람들이 들어서는 순간 사라지는 「시간이 멈춘 방」, 그림자 소묘인 「잊혀진 그래서 잃어버린 것들」 그리고 사람들의 꿈을 잡아먹는 공간을 상징화한 「사람의 집」이 선보일 예정이다. 작품의 토대가 된 설문조사는 현재도 진행 중이며 홈페이지에서도 참여할 수 있다. ■ 박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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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점더하다

김미로展 / KIMMIRO / 金美路 / painting

2008_1105 ▶ 2008_1116 / 월요일 휴관



김미로_토마토나무_캔버스에 꼴라쥬_53×45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미로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110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01:00pm~08: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안단태_GALLERY ANDANTE
서울 종로구 소격동 92번지
Tel. +82.2.735.3392
www.andante.or.kr






비유: 돌려말하기 ● 하고싶은 말이 많다. 그렇지만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돌려 말하는 습관을 가진 때문인지 대놓고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다. 어린 아이가 인형놀이를 하면서 감정을 투사하고 욕구를 해소하듯, 꽃과 원숭이, 강아지 토마토나무, 식물의 뿌리모양 등을 그림으로서 답답한 나 자신에게 비유적으로 말을 건다. 이미지를 찾아다니고, 발견하고, 표현하는 각기의 과정마다 심장에서 그림으로, 머리에서 그림으로 생각과 마음이 전달되는 듯 느껴지며 시원한 기분이 든다.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에서 유발되어 그림으로 표현된 동물이나 식물의 형태들은 화면 속에서 여러 가지 방식의 조합을 통해서 시어와 같은 역할을 할 준비를 한다.




김미로_쌓이는 그림들_실크스크린 꼴라쥬_56×75cm_2008



김미로_쌓이는 그림들-세식구_드로잉 꼴라쥬_60×75cm_2008


반복: 효율과 어리석음의 이중성 ● 「정처없는 패턴」연작은 표범무늬깔개, 얼룩말의 패턴, 호랑나비, 비둘기와 공작, 방울뱀 등을 흑백의 실크스크린으로 찍은 후 그 이미지를 따라 작은 단위로 오려낸 다음 다시 원본의 형태를 추적해 가며 붙이거나 추상적인 배열로 꼴라쥬한 작업이다. 다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실크스크린이라는 효율적인 반복의 작업방식을 사용하지만, 그와 동시에 원래의 이미지를 모두 해체한 후에 다시 구축하는 어리석은 반복의 과정을 거친다. 이때 효율적인 반복의 과정에서보다 어리석은 반복의 과정에서 훨씬 더 집중하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또 즐거움마저 느끼는데, 과연 예술이란 어리석은 짓 인가 보다.




김미로_쌓이는 그림들-귀염둥이_드로잉 오려붙이기_135×80cm_2008



김미로_정처없는패턴_실크스크린 꼴라쥬_가변설치_2008_부분


오려붙이기: 계획된 즉흥성 ● “우리의 삶은 ‘삼총사’보다는 ‘율리시스’와 비슷하다. 우리는 ‘율리시스’보다 ‘삼총사’의 범주를 사용해서 삶을 생각한다. 전통적인 소설 즉 로망스로 생각할 때만이 삶을 회상하거나 삶에 대해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에코의 문장처럼, 사회생활에서 우리의 일상은 육하원칙, 즉 원인과 결과가 규명된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된다. 발 뺄 틈이 없다. 이러한 빈틈없는 사건이나 생각의 문장들을 마치 하나의 시어처럼, 혹은 무의미한 듯한 음성의 나열처럼 조각조각 분리해 버린다면 조금은 숨통이 트일까. ● 반복, 중첩된 이미지들을 오려내고 붙이는 행위를 통해 기억의 조각이나 단편적인 경험을 다시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 수 있는 실마리를 구성한다. 오려내는 과정에서, 각 형태에서 도출된 작은 단위나 조형요소들로 인해 규칙들이 생기고 그것이 어느 순간 작업의 패턴이 된다. 그러나 오려내었던 패턴들을 다시 화면에 붙이는 과정은 매우 순간적이며 즉흥적이고, 어느 위치에 한번 붙여버리면 다시 떼어낼 수 없기 때문에 작업이 완성될 때까지 긴장감을 유발한다.




김미로_점점점달마시안_실크스크린,드로잉 꼴라쥬_27.5×41cm_2008



김미로_점점점장미_실크스크린 꼴라쥬_49×57cm_2008


쌓이는 그림들 -추상적인 ‘나’ ● 일정한 기간 동안 매일매일의 드로잉들을 여러 번 겹쳐서 화면에 꼴라쥬한 작업, 「쌓이는 그림들」은 일상의 반복적인 경험의 축적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추상적인 문장처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 때 소재가 되는 각각의 동물이나 식물의 이미지는 개인적인 경험이나, 특정한 사건과 연관되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최근의 작업에서는 반복적으로 식물의 뿌리형상이나, 도돌이 얼룩말의 무늬, 장미, 공작, 목욕가운의 패턴, 강아지 등을 판화와 드로잉으로 얇은 종이에 표현하였는데, 이는 지난 일년간 본인이 경험했던 임신과 출산의 경험에서 인상 깊었던 순간적인 생각들을 반영하는 개인적인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드로잉들이 겹쳐지고 반복적으로 중첩되면서 점점 개개의 의미는 감추어지고, 추상적인 점 선 면과 같은 역할을 하여, 오히려 나 스스로에게는 매일 매일의 습관처럼 행해지는 작업의 집적물로서 의미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 김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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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남 1,025: 사람과 사람없이

YUN Suknam 1,025: With or Without Person

2008.09.27~2008.11.09

아르코미술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에서 2008년 9월 27일부터 11월 9일까지 <윤석남 1,025: 사람과 사람없이>전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윤석남의 신작 <1,025>는 유기견을 소재로 한 작업으로 나무로 제작한 1,025개의 조각으로 구성됩니다. 본 전시는 아르코미술관에서 진행해 온 중진작가전과 대표작가전을 통합한 개인전으로, 한국현대미술계를 대표하는 주요 작가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재조명하고 한국현대미술사를 연구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전시 기간 중에는 아카이브, 스크리닝,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전시와 관련하여 윤석남의 작품세계를 정리한 단행본 및 아티스트 북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한국 여성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는 윤석남은 여성의 삶을집중적으로 조망해 온 작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페미니즘의 초기 전시로 거론되는 <반에서 하나로>(1986)전에서 윤석남은 썩은 보석 사이에 벌거벗고 앉아 있는 여자, 손이 여섯 개라도 모자라는 어머니, 일하는 건강한 여자들을 그려냈습니다. 이후 그는 9백99개의 여성상으로 모성의 강인함을 표출한 <999>, 오늘을 살아가는 중산층 여성들의 불안한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핑크 룸>등의 작업을 통해 억눌려 지내온 모든 여성들을 복권시키고 스스로의 주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의 모습을 표현해 왔습니다.



윤석남이 유기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유기견을 돌보는 '이애신'할머니의 기사를 신문에서 읽고 난 부터입니다. 1,025마리의 버려진 개들이 살고 있는 '애신의 집'을 방문한 그는 주인을 잃거나 아픈 개들 이외에도 건강하고 예쁜 개들조차 버림받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동물을 인간과 동등한 생명체가 아닌, 단순히 인간의 즐거움을 위한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개는 말 그대로 애완견, 즉 질리면 버려도 되는 장난감이었습니다. 여성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풀어내던 윤석남이 버려진 개를 소수자와 약자의 입장에 처한 여성의 또 다른 이름으로 인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후 윤석남은 나무를 자르고 개 모양으로 드로잉을 하고, 깨끗이 표면을 갈고 밑칠을 하고, 표면을 갈고 다시 그림을 그리며 1,025점의 나무 조각을 완성했습니다. 열두 번의 공정을 거쳐야만 하는 작업 과정동안 작가는 버려진, 비참하게 죽어간 생명들을 애도했습니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임을 떠올리며 자연과의 상생과 조화가 가능한 삶을 기원했습니다. 윤석남의 <1.025>는 자연을 정복과 억압의 대상이 아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근간으로 바라보는 생태여성주의(eco feminism)의 경향과 맞닿아 있습니다. 물론 윤석남이 의도적으로 생태여성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아닙니다. 여성으로서 소수자의 삶을 살아 온 경험 덕택에, 인간중심적 사고에 사로잡힌 채 인간만을 우선시하는 사고를 지양하고, 자연과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데 가치를 두는 생태여성주의의 지향점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 전시에는 강아지 이동장(이동가방)을 이용하시는 경우 강아지와 고양이와의 동반관람이 가능합니다.


전시안내


전시디자인: 최정화

그래픽디자인: 박우혁 진달래


전시기간: 2008년 9월 27일(토) - 2008년 11월 9일(일)

전시관람: 11 am - 8 pm (매주 월요일 휴관)

전시설명: 주중(오후 2시, 4시), 주말(오후 2시, 4시, 6시)


입장료

2,000원 ㅣ 일반 (19세-64세)

1,000원 ㅣ 할인 (18세 이하)

50%할인 ㅣ 20인 이상의 단체

무료 ㅣ어린이(6세 이하), 노인(65세 이상), 장애인, 국가유공자



이벤트 블로그 : http://blog.naver.com/arko1025.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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