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1360  4/68   회원가입 회원로그인
  View Articles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8-07-28 20:39:09, Hit : 475)
전시 7.28



그물과 목어

옥현숙展 / OKHYUNSUK / 玉炫淑 / sculpture

2008_0722 ▶ 2008_0806 / 일, 공휴일 휴관



옥현숙_그물과 목어_혼합재료_50×25×70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Vol.060425c | 옥현숙 조각展으로 갑니다.


------------------------------

초대일시_2008_0722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 ~ 07:00pm / 일, 공휴일 휴관




KTF 갤러리 디 오렌지
KTF Gallery The Orange
서울 중구 명동 2가 51-18번지
Tel. +82.2.773.3434
www.ktf.co.kr






시인 김경복은 『파도의 길』에서 “발라낸 생선의 뼈를 보면서, 푸른 잎 가지런한 장미꽃을 떠올린다”고 했다. 옥현숙의 발상도 이와 유사하다. 식탁 위에서 식사를 하던 작가는 몸이 함부로 파헤쳐진 채 누워있는 생선의 얼굴에서 해탈의 미소를 만났다고 한다. 그 미소는 '장자'의 『소요유』에서 한낱 물고기이던 곤이 도를 체득하여 붕의 경지에 이른 것과도 같았다. 옥현숙이 목격한 건 ‘피부를 들추어내면 거친 뼈와 추한 근육만이 슬프게 얽혀있다는 육체적 진리’만이 아니었다. 인간들의 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저항 없이 누워있는 한 생명체의 겸허한 희생을 더불어 목도했던 것이다. 작가는 그 생명에 대한 경외와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부터 그녀의 「그물과 목어(木漁)」작업이 시작된다.




옥현숙_무제_드로잉_45.5×53cm_2008


옥현숙의 고향은 바닷가였다. 바다에 얽힌 그녀의 기억은 작품에서 그물에 걸려 있는 수많은 물고기로 그 형태를 바꾸기라도 한 듯 무수히 많다. 작가에게 바다는 죽은 아이가 떠내려오고, 여자의 긴 머리카락 같은 해조류가 위협하며, 폭풍우와 저주가 늘상 머물러 속내를 알 수 없는 두렵고도 슬픈 곳이었고, 더러운 것들을 삼켜 정화시키고, 봄볕에 찬란하게 빛나며, 어시장에서 장사하는 아낙들의 생계가 되어주는 고맙고도 따뜻한 곳이었다. 온몸을 내맡기고 싶다가도 한 순간 두려워져 발을 빼버리고 마는 그런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는 일탈을 꿈꾸지만 평상심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욕망구조에도 그대로 대입된다.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기억과 삶의 자세를 그물로 재현했다. ● 옥현숙의 ‘그물’에는 기억만큼 다양한 부유물들이 포획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구슬은 ‘우주를 떠다니던 생전의 망상’인 번뇌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작가는 그물이라는 것이 만남의 장을 형성해주며, 그 속에 포획된 요소들은 각각의 사건을 뜻한다고 말한다. 결국 ‘그물과 목어’는 수많은 서사를 담고 있는 거대한 옴니버스 극인 셈이다.




옥현숙_그물과 목어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8



옥현숙_그물과 목어_혼합재료_120×70×25cm_2007


작품에서 그물과 더불어 중요하게 등장하는 요소인 나무로 만든 물고기, 목어는 불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도구의 이름과도 같다. 목탁의 원조가 되는 목어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쉬지 않고 도를 닦으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실제로 정신이 혼미해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두드리는 용도로 사용된다. 동양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는 사주팔자에서도 ‘물(고기)’와 ‘나무’의 인연은 남다르다. 전자는 후자에 생명을 불어넣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의식을 했건 그렇지 않건, 우리는 이렇듯 다양한 의미가 그녀의 작품에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의 손에서 탄생한 여러 형태의 물고기들은 우리에게 여러 진리를 깨우쳐주고 있으며, 물고기 형태로 다듬은 소박한 질료인 나무는 생명을 얻은 듯 보인다. 이는 작가의 기억 언저리에 머물러있던 집단무의식이 작용한 탓이리라.




옥현숙_그물과 목어_혼합재료_40×40×25cm_2008



옥현숙_그물과 목어展_KTF 갤러리 디 오렌지_2008


옥현숙이 나무를 유독 선호하는 것은 그것을 깎고 잇는 과정이 인생을 보내는 방식과 많이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나무를 깎아 모양을 만드는 일은 욕심을 부린다고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조금씩 천천히 주어진 양만큼만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신이 허락한 밥과 능력, 욕심의 양을 인간이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이치와도 같다. 작가는 또 나무가 쇠보다 따뜻하고, 돌보다 부드러우며, 쓰다듬으면 그 결 하나 하나가 자신의 결점을 포용해준다고 말한다. 따라서 가장 인간적이고, 온화한 재료라는 것이다.




옥현숙_그물과 목어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7


무너지지 않는 세월과 견고하게 굳어버린 고뇌를 버텨내는 방식은 여럿이 있다. 그 중에서 옥현숙이 택한 방식은 나무를 깎고, 그물을 꼬는 작업이었다. 작가는 이 ‘그물과 목어’ 작업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숨을 쉬고, 살아간다는 게 편안해졌다고 고백한다. 스무 해가 넘는 인고의 시간을 극복하고, 드디어 작가라는 정체성이 선사하는 기쁨과 여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 지나고 나면 아무리 곱씹어도 그대로 기억되지 않는 시간들, 그것들이 빛을 발하려면 뮤즈의 능력을 부여 받은 예술가의 손이 필요한가 보다. 고로 옥현숙의 작품에서 나는 비릿한 인생의 내음은 그 어떤 향수보다도 향그럽다. ■ 김지혜

-------------------------


Imitation & Style

이강우展 / LEEGANGWOO / 李康雨 /photography

2008_0730 ▶ 2008_0812



이강우_마젠타-빛에 침잠하다_C 프린트_124×155㎝_2008




초대일시_2008_0730_수요일_06:00pm

기획_사진전문 갤러리 나우
후원_서울예술대학

관람시간_10:00am~07:00pm





갤러리 나우_GALLERY NOW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3번지 성지빌딩 3층
Tel. +82.2.725.2930
www.gallery-now.com






갤러리나우 기획초대 이강우 『Imitation & Style』展 개최 ● 국내외를 이끌어갈 역량 있는 작가들을 소개하고 예술창작활동을 지원하는 방안으로 이강우 작가의 『Imitation & Style』展이 7월 30일부터 8월 12일까지 인사동에 위치한 갤러리 나우에서 열린다. 회화, 사진, 영상, 설치 등의 예술어법들을 아우르며 작업해온 작가 이강우는 이번 전시에서 Imitation(이미테이션_모조)과 Style(스타일)을 주제로 작품을 선보인다. ● 시각적이면서도 개념적 요소가 다분한 그의 이번 작품들은 이전에 작업했던 「2003 The Praises of Light - Collecting Mess Cult Context」의 연작으로 모조 물과 마네킹 등의 오브제나 사람의 몸(body)을 연출해서 촬영한 이미지를 디자인 편집한 후 텍스트를 병치시키는 방식의 것들이 주를 이룬다. 작가는 자신의 정념을 시지각적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구사와 그 취사선택에 공을 들인다. 그가 구사한 텍스트들은 각 작품의 시각이미지들과 일정한 긴장을 유지한 채로 작업의 개념을 은유적이고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 작가는 스타일(Style)에 당대의 사회이념과 문화적 가치 혹은 계급적 이해가 반영되어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것을 전략적 차원의 문제로 접근한다. 그의 목표는 그런 스타일을 매개로 해서 발생하는 정치 심리적 효과와 그 중심에 놓여있는 욕망, 문화와 산업의 관계성 등을 작품 안에 녹여내는 일이다. 또 실물만큼 생생한 모조 물(Imitation)을 이용하여 실제와 허구,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하고 불명확해진 현대사회와 문화의 일면을 노출시켜보려고 한다. ● 여러 매체의 어법들을 수용하고 변형시켜 자신의 스타일을 다채롭게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은 작가 이강우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현재는 서울예술대학 사진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젊은 작가를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박건희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다음작가상의 제 1회 수상자이고,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 등지에 작품이 소장되어있다. ● 이번 이강우의 『Imitation & Style』展은 작업의도가 분명히 드러나는 전시로 보이지만, 관객들이 작품의 곳곳에서 발견되는 사진적 장치를 자신의 삶과 경험에 의거한 나름의 인식방법론으로 다가간다면 한층 더 재미있는 전시가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 갤러리나우




이강우_전사들_C 프린트_124×155㎝_2008



이강우_전사들_C 프린트_124×155㎝_2008


모조 . 스타일(Imitation . Style) ; 모조적 양상과 라이프스타일을 엿보다 ● 1. 도시의 공간은 스타일(style)의 집합체요 전쟁터이다. 그것이 점유하는 범주도 매우 넓다. 고급과 저급의 영역을 가리지 않은 채로 유행과 트렌드화의 장치를 통해 구석구석까지 세밀하게 파고든다. 스타일은 당대의 사회 이념과 문화적 가치 혹은 계급적 이해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스타일이 향하는 지점은 우리의 눈과 몸이며, 그 종착지는 우리의 의식과 내면이다. ● 현대인들의 스타일적 삶에 대한 꿈과 환상은 어느덧 구조화된 욕망으로 뿌리를 내린듯하다. 사람들은 외향적 측면을 매우 중요시하며 타인의 반응에도 아주 민감하다. 특히 자신의 몸(body)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한듯하다. 그와 관련한 문화와 산업의 지형이 크게 확장되고 있음은 그 점을 반증하며, 이제 사람의 몸은 스타일의 주요한 거처로 자리 잡았다. 그런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더 이상 정신의 하부구조 정도로 여기지 않으려 한다. 이는 표면화된 현상 그 자체에 주목하고, 그것을 본질의 영역과 대등한 관계로 설정하려는 인식의 전환과 맥을 같이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몸과 스타일은 이제 타인의 시선과 의식을 향한 전략이자 주요한 무기가 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 내가 스타일의 문제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주체들 간에 스타일적 전략을 매개로 해서 주고받는 정치 심리적 효과와 그 중심에 가로놓인 욕망(desire)이며, 그 토대로서의 문화와 그것을 매개하는 산업과의 상호적인 관계성과 문맥이다. 나는 여기에서 바바라 크루거의 잘 알려진 카피인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 한 문구를 더해 나의 그런 관점을 축약해보고 싶다. ‘나는 스타일을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강우_점령군, 달이 피어오르고 고기나무가 자라다_C 프린트_105×172㎝_2003


2. 내가 모조(Imitation)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멀리는 1990년대 중반이며, 가까이는 2003년경부터이다. 본 전시에서 선보일 몇몇 작품들(대중문화읽기 Collecting Mass Cult Context 인사아트센터 2003)은 조화상가(강남 고속터미널 지하도)에 진열된 모조품들을 만난 우연한 경험으로부터 나왔으며, 이번에도 동일한 맥락의 작업이 이어졌다. 2003년 당시 모조 물들을 대한 나의 느낌은 실로 각별했었다.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사실적인 재현성과 그로부터 오는 싸한 기운, 감상거리의 차이에서 리얼하게 감지되기 시작하는 진짜와 가짜 사이의 절묘한 경계와 착시적 모호성, 그럼에도 불빛 아래에서 각기의 자태를 화사하게 뽐내던 그것들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상가의 공간을 휘감은 플라스틱과 도료와 접착제의 냄새가 섞인 썩 내키지 않는 향취와 더불어 어설프거나 과한 모양의 모조 물들도 눈에 들어오긴 하였으나 그 인상을 반감시키진 않았다. 오히려 바로 옆에 위치한 생화가게들과의 기묘하고도 역설적인 대비는 그것을 더욱 고양시켜주는 듯했다. 또 모조 물 각 부위의 절묘한 조립상태가 우리에게 구조화되고 일상화된 대량생산과 소비의 체계를 떠올려준 점도 무척 흥미로웠다. 그런 인상은 비단 꽃 과일 식물류 등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 기운은 근처에 진열된 인조가발과 머릿결에도 함께 이어졌다. ● 실상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모조 물이 내게 그렇게 생경하게 비춰진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그것을 매개로 해서 실제와 허구의 경계가 상당히 모호하고 불명확해진 현대사회와 문화의 일면에 대해 불연듯 떠오른 어떤 각성이거나 그런 면모의 실체를 함축적으로 체험할 시에 오는 어떤 시지각적인 충격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것들이 결국 어디론가 퍼져나가 환경을 구성하면서 우리의 신체와 의식의 일부를 이뤘을 거라는 사안에 내포된 의미의 심중함 또한 마찬가지일 게다. 그래서 나의 모조에 대한 주 관심사는 결국 그런 과정에서 형성되는 문맥을 들여다보는 일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작업의 출발은 그런 사물들의 리얼한 물질성과 생경한 기호 이미지 그 자체를 통해 거기에 담긴 표상성을 들춰보려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한편, 예술(행위)의 초석이자 전제로 오랫동안 회자되던 것이 바로 모방과 재현이다. 내가 모조와 같은 재현적인 기성품들로부터 그런 측면까지를 잠시 떠올려봤다면 지나친 오버일까?




이강우_의미를 피우다_C 프린트_76×123㎝×4_2003


3. ...분명 사람의 모습을 하고는 있으나 차가운 사물이고, 표정은 있으나 얼음처럼 스산하게 굳은 시선으로 일정한 방향을 응시하고 있고, 분명 형태와 부피가 있으나 무게감이 탈색되어 보이고, 그래서 마치 공중에 살짝 부양한 것 같은 무중력의 상태로 다가오기도 하고, 마치 슈퍼모델처럼 섹시하고 스타일리시하긴 하지만 다소 어눌하거나 과장되어 보이기도 하고, 계절마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의상들을 걸치고 있으나 실상 거기에서 소외되어있고, 마치 사진에서의 정지된 것들처럼 그냥 그대로의 제스처로 시종일관하게 서있고, 세련된 빛으로 밤에 더욱 빛나고, 그래서 우리의 시선을 강하게 흡인하고, 그럴 때마다 그것들이 초현실적인 존재이거나 신상의 이미지로 비춰지기도 하고, 조각품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이는 내가 도시의 거리나 번화가를 지날 때마다 마주치는 윈도우의 마네킹에 대해 떠올려지던 소감이다. 내게 마네킹은 꽤 흥미로운 대상이다. 마네킹은 스타일의 전사요 상품화의 첨병이다. 그리고 대중문화를 수놓는 표상적인 아이콘 중의 하나로 회자된다. 그것은 특히 밤에 더 두드러져 보인다. 감각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자태의 분위기는 윈도우에 설치된 조명에 의해 더욱 고양된다. 이때 윈도우 장치의 유리벽이 조성하는 불가피한 거리감도 그런 물신성을 더욱 부추겨준다. 그런 상태로 끊임없이 거리를 응시하는 그 이미지가 지향하는 바는 아마 결핍심리의 조장과 욕망의 호명일 게다. 그렇게 빛을 매개로 해서 스타일리시한 오브제와 마네킹이 함께 병존하는 쇼 윈도우의 독특한 구조와 그로부터 연출되는 성상과 같은 지배적인 감각의 이미지는 다분히 중세적이다.




이강우_화유백일홍 花有百日紅_C 프린트_100.5×155㎝_2008



이강우_치명적 중독-Poppy World & Mossy Earth_C 프린트_100.5×155㎝_2008


4. 평소 나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이나 혼용을 즐기는 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인데, 인물이나 오브제의 연출이미지에 텍스트를 가미한 방식이 작업의 주를 이룬다. 시각적 긴장이나 대비효과의 부여를 빛과 색채의 활용, 오브제 연출, 화면 구성, 텍스트 설정과 편집 등의 작업과정에서 주안점으로 설정했다. 작품에 사용한 텍스트를 정할 시에는 제목의 역할을 하게 함과 아울러 작업개념을 은유적이고 비유적으로 드러내게 함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화면이미지와 개념 간의 조화를 추구하기보다는 지각적인 긴장을 일정하게 유발시켜줌에 비중을 두었다. 또 화면에 구사된 빛과 색채의 감성적인 힘을 적절히 제어하는 균형추로서의 역할 외에도 오브제이미지의 문맥적 표상성을 부각시키거나 암시하는 기능을 함께 부여해보려 했다. ■ 이강우

-----------------


YOOHYUNGTAICK

유형택展 / 劉亨澤 / YOOHYUNGTAICK / sculpture

2008_0730 ▶ 2008_0812



◁유형택_일상-도대체 아름다움이란 왜 인간존재부터 그토록 멀리 물러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_철, 동_134.5×50.5×26cm_2007_부분
▷유형택_일상_도대체 아름다움이란 왜 인간존재부터 그토록 멀리 물러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_철, 동_134.5×50.5×26cm_2007




초대일시_2008_0730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2층
Tel. +82.2.736.1020
www.ganaartgallery.com






중견 조각가 유형택의 6번째 개인展 ● 조각가 유형택이 6번째 개인전이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유형택은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유럽 조각의 본고장인 이태리, 그 중에서도 세계적인 조각가들이 모인다는 카라라(carrara) 국립아카데미에서 조각을 공부한 중견작가이다. ● 지난 2001년부터 돌 작업에서 과감히 벗어난 ‘철 조각’으로 철이라는 매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철을 주 소재로 삼은 조각들을 선보인다. 주변의 소소한 일상을 담아낸 신작 「일상 시리즈」는 철 조각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의 전작들이 삶에 대한 사색이 담긴 조용하고 견고한 느낌의 작품이었다면, 신작에서는 화려한 색감과 무게감이 훨씬 줄어든 형상 안에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시적인 어휘로 담아내어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다.




◁유형택_일상_그가 보고 있는 것은 각인된 한 조각의 이미지일 뿐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시달렸다_철_155×19×21.5cm_2007_부분
▷유형택_일상_그가 보고 있는 것은 각인된 한 조각의 이미지일 뿐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시달렸다_철_155×19×21.5cm_2007



유형택_일상_그가 거기 있었다는 걸 말해주는 건 머리카락 몇 올 뿐이었다_철_176.5×35×27.5cm_2007



유형택_일상_그에게는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았고, 채워야할 공간이 턱없이 넓었다
철_140.5×46×21.5cm_2007


일상의 이야기를 문학적 어휘로 조각에 담다. ● 유형택은 날씨에서부터 심각한 고민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자신이 느끼는 자잘한 인상들을 문학적 감성이 담긴 시어들로 하나하나 기록하고 이 시어들을 토대로 작품을 구성한다. ‘그가 거기 있었다는 걸 말해주는 건 머리카락 몇 올 뿐 이었다’ ‘진실로 인해 죽음을 맛보기 싫어서 끼리끼리 주고받는 위로를 그는 기억해 냈다’ 등의 제목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어떤 문학적 텍스트를 토대로 구성되었는지 보여준다. 이 글 안에서 작가는 스스로 ‘그’라는 인물로 존재하며 관찰자의 시점에서 일상을 바라보고 이야기한다. 이는 근대화된 사회 속에서 타자화 되어 심리적 고립을 겪는 현대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기도 하다.




유형택_일상_영혼은 없이 세월의 흔적만 간직한 의자에 그의 몸을 놓았다_철, 동_162.5×35×25cm_2007



유형택_일상_자명한 사실에 대해선 따로 설명이 필요 없다는 사실에 그는 망연했다_철_50×12×12cm_2007



유형택_일상_그날따라 5월의 햇살과 수치심이 한데 어울려 그를 조롱했다_철_38.5×26×28.5cm_2007


가벼운 철조각! 매체의 물성을 자유롭게 변화시키다. ● 유형택의 작품은 철이라는 재료가 주는 묵직한 중량감에서 벗어나있다. 얇은 철판을 잘라서 만든 형태와 그 위에 칠해진 화려한 색채는 철 조각에 가볍고 비어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공장, 기차 등으로 연상되는 산업혁명의 주요한 재료였던 철을 문화 예술적 재료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환경 파괴 등의 지구를 훼손하는 시발점이 된 산업사회의 도구에서 벗어나 상승하는 듯한 가벼움과 자유로움을 가진 유형택의 ‘철’은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 인사아트센터

------------------------------------------


내러티브가 있는 텔레비전

현진展 / HYUNJIN / 玄珍 / photography

2008_0731 ▶ 2008_0813



현진_Narrative in television_디지털 프린트_47×70cm_2007





초대일시_2008_0731_목요일_07:00pm

관람시간 / 평일_09:00am~09:00pm / 토_09:00am~05:00pm




갤러리 보다_GALLERY BODA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61-1번지 한라기산빌딩 2층
Tel. +82.2.3474.0013
www.bodaphoto.co.kr






내러티브가 있는 텔레비전 ● 사진은 세계를 재구성하는 매체다. 그러니까 둥글게 주어진 자연적 세계의 네모난 현상이다. 그 네모 안에 무수한 사물을 병치 혹은 중첩하면서 떼어낸 세계의 새로운 시작/해석을 예고한다. 그러나, 그 세계는 늘 한 선의 시간 위에 존속할 뿐 나아가지도 혹은 돌아가지도 못한다. 때로, 사람들이 사진을 두고 죽음이라고 빗대어 이야기하거나 또는, 영원한 삶이라고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을 쓰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진이 정착시켜 놓은, 그러나 새로운 이 세계는 움직이는 동영상과는 사뭇 다르게 우리와 만난다. 지속해서 자극을 주는 시간/변화의 연속성은 없으나, 그 시간의 단면에 실려 있는 모든 사물들이 천천히 그리고 다시 천천히 의식의 각성에 차례로 다가오면서 의미를 얻게 된다. 세계가 정지해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려니와, 바로 그것이 사진의 생명이기도 하다. 이처럼 단절되어 표기된 사물들에 의해 의미가 읽히는 사진은 그러나 그 사물들이 갖는 사회와의 연계 혹은 기호성에 의지해 더 많은 의미가 생겨나기도 한다.




현진_Narrative in television_디지털 프린트_47×70cm_2007


지금 우리가 보는 현진의 사진이 그렇다. 단지 하나의 세계(a world)가, 의미가 있는 그 세계(the world)로 전환되는 보이는 이 사진들은 네모난 사진 안에 다시 또 하나의 세계가 공존한다. 전혀,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면서도 함께 보이는 이 두 개의 세계는, 그러나 사진 혹은 사진적 힘으로 같은 시간의 단면으로 잘려 고정되어있다. 함께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현진의 사진은 두 개의 세계를 하나의 단면에 옮겨 놓은 꼴이다. 이는 마치 두 개의 눈으로 하나의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지각 형상과 닮아있다. 이 지점을 통해 의미를 갖는 현진의 사진 세계는 한편으로 텔레비전(Tele-vision)을 다루고 있다. 텔레비전이란 멀리서 보는 것을 뜻한다. 지금 여기에서, 지금 여기가 아닌 사건을 볼 수 있는 것, 그것이 텔레비전이다. 그러나 비전은 없다. 세계를 비추면서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음을 잊게 해주는 것일 뿐이다. 이 텔레비전의 사회적 파급 효과는 사실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다. 긍정의 힘도 또 부정의 힘도 넘치게 가진 이 매체를 그저 권력이라고 부르기에는 오히려 부족함이 있다. 곳곳에 빈틈없이 스며든 이 기계는 이제 그저 우리의 삶에 한 부속이다. 혹은 전부다. 보여주는 선택의 폭이 너무도 넓어 오히려 당황스러운 이 멀리 보는 기계는 거꾸로 우리에게 먼 어떤 것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를 그렇게 보도록 강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것이 우리의 일상과 밀착되면서 오는 세계/인식의 교란도 만만치 않다.




현진_Narrative in television_(사진 1)_디지털 프린트_47×70cm_2008


지금 현진이 이 사진들을 통해 제시하는 세계의 모습은 이처럼 교란된 세계다. 언 듯 일상적으로 보이지만 그 일상의 단면에 또 다른 세계가 함께 하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환된다. 때문에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어쩔 수없이 이 두 개의 세계에 동일한 관점을 가지려고 애쓰게 된다. 관련성을 찾으려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사진 어디에도 작가가 설치해 놓은 두 세계의 의도적인 교착점은 없다. 연출된 흔적도 없으며 설치의 흔적도 없다. 그저 찾아낸 그리고 기다려 얻어낸 세계의 병치일 뿐이다. (사진 1) 공항인듯 한 곳에서 개찰을 위해 길게 늘어선 여성들의 모습과 그 위에 설치된 텔레비전 화면에 보이는 네 명의 여자모습은 이상하리만치 생경스러우면서도 닮은 듯 연상(聯想)을 자극한다. 게다가 천장의 형광등 조명이, 그리고 늘어선 기둥과 좌우 벽면이 가운데 선 검은 옷의 여자 머리 위로 형성된 소실점에 모두 모이도록 위치된 이 화면은 카메라를 든 작가가 당시 상황의 중앙에 정면으로 서 있었음을 증명한다. 이처럼 정연한 구성과 잘 다듬어진 앵글의 사진은 그러나 그가 서 있었던 공항의 현실과 화면으로 보이는 전혀 다른 현실의 단면을 교란시키며 보여준다. 현진이 보여주는 무심한 계획이 아닐까 싶다.




현진_Narrative in television_(사진 4)_디지털 프린트_47×70cm_2008


진동 안마가 가능한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텔레비전을 응시하고 있는 그녀와, 그 텔레비전 속의 인사가 손을 들어 여인에게 말을 건네는 듯 한 이 장면도 (사진 4) 두 세계가 충돌하기는 마찬가지다. 단지 텔레비전을 보는 여인의 모습이지만, 그녀가 보는 것은 텔레비전이 아니라 그 텔레비전이 전송하고 있는 어느 세계다. 그 세계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그 이야기가 다시금 기계가 놓인 공간의 세계와 교접을 하면서 관자를 교란하고 있는 것이다. 발아래 보이는 발 마사지 기계가 거꾸로 놓여 있는 것도, 안마를 받으려고 누워있는 여인이 두꺼운 버선과 스포츠 옷을 입은 것도, 그리고 머플러까지 정갈하게 두른 모습도 다 같이 매우 수상하지만, 그러나 그녀의 시선과 텔레비전 속 주인공의 시선이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는 모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곳이 어디건 현진이 보여주는 이 이상한 정황은 깊이 보려는 사람에게는 더욱 교란을 일으킨다.




현진_Narrative in television_(사진 5)_디지털 프린트_47×70cm_2008


(사진 5) 에서도 매우 묘한 장면이 보인다.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이 다 제각각이다. 시선의 방향도 제각각이며 하는 일도 다 제각각이다. 식당 입구에서 찍은 이사진은 카운터를 보는 여인과 텔레비전 속 주인공이 너무도 닮았다. 둘 다 옆모습이기는 하지만 튀어나온 광대뼈의 모습에 의해 얼굴 윤곽이 비슷하고, 특히 코의 모습이 매우 닮았다. 하지만 시계 밑에 서 있는 저 검은 옷의 아저씨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자 하는 포즈일까? 그리고 지금 막 방에서 나오려는 붉은 옷의 저 조그만 아가씨는 왼발은 앞을 딛고 있지만 오른손이 너무도 문의 난간에 바짝 붙어 있는 것이 아닐까? 나오려는 포즈로 보기에는 조금 이상하다. 게다가 몸의 중심이 문에 너무 가깝지 않은가? 또한, 아이의 머리와 시계 사이에 있는 초록색 팻말에는 ‘팬션 안내’라고 써져 있다. 무슨 의미일까? 촬영지점이 식당 안이고 밖으로 렌즈를 향한 모양인데 그렇다면 저 건너의 공간은 팬션을 소개하는 공간인가? 교란의 우연인가?




현진_Narrative in television_(사진 6)_디지털 프린트_47×70cm_2008


(사진 6) 에서는 세탁기 앞에 서서 무엇인가를 하는 여인과, 텔레비전 속 주인공의 포즈가 매우 유사하다. 어쩜 텔레비전 속의 여인은 자전거를 타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같은 방향으로 옆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세탁기 앞의 여인의 치마와 텔레비전 속 여인의 옷 무늬가 닮아있는 것만큼 이상하지는 않다. ● 이처럼 이번 현진의 사진은 두 개의 세계를 한 화면에 병치시켜 우리에게 함께 보라고 권하고 있다. 동시에 무심한 듯, 여러 읽어야 할 대상들을 주의 깊게 배치해 놓음으로써 사진을 대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저 스쳐 지나가자면 별일 아니라 할 터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모호한 경계의 시대에 가짜와 진짜의 문제가 아닌, 그 둘이 병치 된 그래서 더욱 교란된 시대의 모습을 구시렁거림 없이 잘 보여주고 있다. 시선의 정교함과 꼼꼼함이 그래서 돋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도드라지는 ‘사진형식’ 없이 말이다. ● 좋은 작업이란, 결코 우연에서 오지 않는다. 무던한 노력과 열정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들판에서 벼락 맞을 확률보다 적을 것이다. 지금 현진의 사진을 보면서 이 작업에 드러나는 성실성과 노력의 흔적이 이번만의 산물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전부이기를 기대한다. ■ 정주하

----------------------------------




조인상 개인전 `壁 The Wall`


한미사진미술관(02-418-1315)
2008-07-29 ~ 2008-08-19
2008-07-29 오후 5시

조인상 개인전 `壁 The Wall`
한미사진미술관에서는 2008년 7월 29일부터 8월 19일까지 조인상 사진전 `壁 The Wall`의 전시를 가진다.

작가가 사진 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벽은 기계적이고 도시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 오늘날의 시멘트벽이 아니라 이제는 점차 모두 사라져가는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시멘트벽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다른 외국의 화려하고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그들의 벽과는 다른 벽이다. 그는 이러한 벽에서 방금 꾸중을 들으며 매를 맞았지만 눈물을 닦으며 다시 그 품으로 안길 수 있는 어머니와 같은 정서를 느낀다고 말하고 있다.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공급된 시멘트 사용법은 단지 소재가 진흙에서 시멘트로 바뀌었을 뿐, 손으로 반죽하고, 사람 손으로 바르는, 그 전에 사용하던 진흙과 똑같은 방법이었다. 1970년대 어느 동네, 어느 골목에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시멘트 벽들은 당시 아이들에게는 한 폭의 넓은 도화지가 되기도 하고, 연인들에게는 연애의 장소가 되기도 했었다. 작가는 이러한 오랜 기억 속의 시멘트 벽을 찾아내어 작가만의 시선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작업은 작가가 이전에 표현하고자 했던 ‘우리 땅’이라는 다소 크고 광대했던 테마를 작가의 몸에 딱 맞춰 새롭게 재단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번 `壁 The Wall` 사진전은 우리들 추억 속 골목길로의 여행을 떠나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3rd artist mapping

난다_양정아_윤정미_파야展

2008_0806 ▶ 2008_0818



3rd artist mapping展_2008




초대일시_2008_0806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_난다_양정아_윤정미_파야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센터 갤러리 미루_Gallery MIRU
서울 종로구 평창동 97번지 가나아트센터
Tel. +82.2.720.1020
www.ganaart.com






난다 작가는 사진 속에서 때로는 모던 걸로, 때로는 유관순열사로, 때로는 캉캉 춤을 추는 댄서로 분하며 제각각 다른 포즈를 취하는 난다로 등장한다. 사진 속에는 수십 명의 난다가 존재하지만,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검은색 선글라스 때문에 각각의 개성을 지닌 난다가 아닌 익명의 난다로 존재하게 된다. 난다 작가는 온라인상에서 사용하는 아이디를 작가명으로 사용할 정도로 사이버 세계에 익숙하면서도, 모던보이, 모던걸이 경성을 활보했던 시대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어서 영화세트장으로 지어진 1920, 30년대 경성의 거리와 시립미술관 등의 근대건축물을 배경으로 촬영을 한다. 촬영에 필요한 소품과 의상을 직접 제작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등 아날로그적인 과정을 즐기는 작가는 디지털 상에서 인물과 배경을 합성하는 과정 역시 노동집약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난다_발리우드식 군무_C 프린트_100×100cm_2006



난다_겨울비_C 프린트_100×100cm_2007



양정아_Real illusions series_디지털 컬러 프린트_110×130cm_2005



양정아_Real illusions series_디지털 컬러 프린트_110×130cm_2006



양정아 작가의 「real illusion」시리즈는 실재인 듯이 보이나 실재가 아닌 이미지가 실재 공간 안에 존재함으로써 만들어지는 또 다른 공간을 대상으로 한다. 프린트 되거나 직접 그려진 가상의 공간은 실재 공간과 자연스럽게 결합하여 새로운 존재감을 드러낸다. 출입문과 소화기가 없었다면 북구의 어느 자연림을 배경으로 한 풍경사진으로만 보였을 침엽수림 사진은 실은 주차장 벽지이며, 얼핏 푸른 들판에 서있는 집처럼 보이는 구조물은 손때가 묻은 전기스위치이다. 한 그루로 보이지만 뿌리를 달리하는 세 그루의 나무는 직접 그려진 아파트 공사장 펜스이지만, 펜스 아래의 실재 나무만큼이나 실재로 보이기도 한다. 한국일수도 영국일수도 있는, 국적을 초월한 가상의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실재와 하나가 되어 새로운 실재를 만들고 있다.





윤정미_블루 프로젝트-에단과 에단의 파란색 물건들_라이트젯 프린트_76×76cm_2006



윤정미_핑크 프로젝트-에밀리와 에밀리의 핑크색 물건들_라이트젯 프린트_76×76cm_2005



윤정미 작가의 「핑크 & 블루 프로젝트」는 어린이들의 방에 펼쳐놓은 그들의 컬렉션과 어린이들을 사진으로 찍는 기획이다. 「핑크 & 블루 프로젝트」의 사진을 통해 여아는 핑크, 남아는 블루가 들어간 물건만을 수집한다는 만국공통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핑크 걸, 블루 보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작가가 확인한 1914년 미국 신문『The Sunday Sentinel』의 어느 기사에 따르면 당시의 스테레오타입은 지금과는 완전히 반대로 블루 걸과 핑크 보이였다고 한다. 한편 핑크 걸의 핑크에 대한 집착은 초등학교 3-4학년정도 되면 사라지면서 독자적인 취향을 갖게 된다는 점을 몇 년간의 프로젝트 과정에서 알게 된 작가는 프로젝트 속의 어린이들이 성장해가면서 어떻게 취향이 변해갈지를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진행할 예정이다.





파야_My mother fashion & fiction_C 프린트_110×120cm_2007



파야_My mother fashion & fiction_C 프린트_120×150cm_2007



파야 작가의 「my mother fashion & fiction」은 패션모델이 꿈이었던 어머니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목적의 프로젝트이다. 작가는 패션사진가를 작가의 어머니는 패션모델을 흉내내면서 상상과 허구의 프레임 속에서 꿈과 욕망을 실현한다. 작가는 작가의 어머니로 표상되는 그 세대의 여성이 꿈과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야 했던 시대적 상황을 현실참여 등의 직접적인 방법으로 해결을 모색하기 보다는 작가적 상상력으로 꿈을 실현시킨다. ■ 가나아트갤러리

 

 

------------------------------------------------------------------------------




Still Life-차원의 경계

유현미展 / YOOHYUNMI / 柳賢美 / photography

2008_0808 ▶ 2008_0831 / 월요일 휴관



유현미_Still life (네번째별_The fourth star)_C 프린트_155×273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 070628e | 유현미 개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808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_10:00am∼08:00pm / 월요일 휴관




대구MBC Gallery M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1번지 대구문화방송 1층
Tel. +82.53.745.4244
www.gallerym.co.kr






대구MBC 갤러리M은 『Still Life-차원의 경계』라는 주제로 유현미 개인展을 개최한다. 유현미는 1987년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학에서 수학하고 뉴욕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1997년 귀국 후 금호미술관, 아트선재센터에서의 개인전과 아트스펙트럼, 미디어시티 서울 등 다수의 그룹 전시에 참여한바 있으며, 아트오마이 레지던시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2005년부터 작업해온 「정물」시리즈 18점으로 구성된 이번전시는 객관적 현실의 대상이 아닌 꿈이나 환상 등에서 가져온 모티브를 현실과 접목시켜 현실도 비현실도 아닌 제3의 공간을 담은 조각과 회화, 사진 장르의 세 가지 속성이 고스란히 들어간 작업과정을 통해 새로운 사진의 신선한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다. 유현미의 작업은 온전히 회화처럼 보이지도 그렇다고 온전히 사진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현실과 환상을 연출한다. 오브제에 그려진 인위적인 입체감과 회화적인 터치는 회화적 연출을 위한 것이다. 작업명이기도 한 ‘차원의 경계’는 이번 작업의 내용 혹은 형식적인 측면을 설명하는 열쇠이다. ● 컴퓨터 그래픽만으로 가상세계를 만든 이미지들은 너무 비현실적이라 더 이상 우리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유현미의 작업은 현실에 기반을 둔 환영이 역설적으로 더욱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꿈 혹은 일상에서 만난 상황과 느낌을 문학의 형태로 옮김으로써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전통적인 장르가 가진 이미지의 반전을 보여 줄 것이다.




유현미_Still life (대지구_Great earth)_C 프린트_173×268cm_2008


장자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나비가 되어 꽃들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니는 꿈이었고 문득 깨어보니 다시 장자 자신이 되어 있었다. 장자는 생각한다. 내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속에서 내가 된 것인가? 나는 깨어있는 것인가 아니면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나는 진정한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변한 나인가? ● 꿈과 현실, 자신과 나비를 구별할 수 없었던 장자의 환상은 오늘날 인생의 덧없음과 물아일체의 경지를 비유하는 ‘호접몽’(胡蝶之夢)으로 불리고 있다. 유현미는 최근작 「차원의 경계 Still Life」에서 현실의 내부공간에 일상사물을 닮은 오브제를 설치하고 환상의 내러티브를 가미한 사진우화를 선보였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그의 사진은 조각과 회화, 사진의 프로세스를 모두 거치며 장르를 넘나드는 환영을 보여준다. 꿈의 차원과 현실의 차원, 미술장르 간의 상이한 차원들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모호한 경계감은 방향에 따라 이렇게 볼 수도 또는 저렇게 볼 수도 있게 만드는 시각적인 유희를 제공한다. ● 지난 20여 년간 유현미가 해왔던 작업들은 일상 속에 내재되어 있는 무의식으로부터 나온다.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한 우물에서 퍼낸 세 양동이의 물에 비유했다. 첫 번째 양동이는 욕망이다. 비상하고자 하는 욕망을 90년대 초반에 조소작업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풍선처럼 가볍게 날아다니다가 돌연 곤두박질치며 떨어지는 꿈을 자주 꾸던 그는 새를 상징하는 깃털과 알을 소재로 닭과 집오리처럼 날지 못하는 새의 슬픔을 시각화했다. 두 번째 양동이는 무의식적인 공포다. 1995년부터 유현미는 계단이나 방 등 건축적인 구조물을 이용해 자신이 가진 폐쇄공포증과 고소공포증을 표현했다. 투명한 아크릴로 만든 방에 20개 이상의 문을 낸 모형이나 핑크색 실리콘으로 만든 흐물거리는 계단 등은 당시에 작가가 느꼈던 공포감을 상징한다. 세 번째 양동이인 퍼즐은 무의식의 구조를 나타낸다. 그는 1997년부터 2006년까지 다양한 재료와 형태를 이용해 퍼즐 시리즈를 선보여 왔다. 퍼즐처럼 막연하고 단서를 찾기 힘든 무의식의 세계는 창, 거울, 계단, 우물 등의 입체적인 구조로 변형되어 표현되곤 했다. 최근 트렁크갤러리에서 전시한 『Still Life-차원의 경계』는 그가 퍼올린 세 양동이의 물처럼 현실에 기댄 환상의 세계를 사진매체를 이용해 보다 시각적인 평면 위에 그려내고 있다.




유현미_Still life (돌구름_Stone cloud)_C 프린트_228×183cm_2007


장르의 혼합이 만든 시각적 유희 ● 유현미의 『Still Life-차원의 경계』 작업은 크게 세 단계로 진행된다. 우선 시계와 탁자 등 평범한 일상사물의 표면을 흰색 석고붕대와 젯소, 젤미디움으로 발라 사물의 표면을 하얗게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레디메이드 조소에 다시 색이 칠해진다. 유현미는 오브제의 표면을 오브제 이전의 사물이 가졌던 색감 뿐 아니라 명암 심지어 그림자까지 색으로 표현해 거친 표면과 붓 자국에 의한 회화적인 질감은 영락없이 한 폭의 캔버스를 연상케 한다. 회화적인 연출이 가미된 오브제는 다시 작업실의 무대공간에 놓여 그림자가 완전히 없어지도록 설치한 조명 아래서 최종적으로는 사진으로 촬영된다. 이렇게 조각과 회화, 사진 장르의 세 가지 속성이 고스란히 들어간 작업과정은 유현미 작업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의 작업은 완전히 회화처럼 보이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사진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는 유희가 엿보일 뿐이다. 오브제에 그려진 인위적인 입체감과 회화적인 터치는 회화처럼 보이기 위해 가장한 눈속임이다. “그림 같은 사진 혹은 사진 같은 그림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아주 잘 그린 그림을 보면 사진 같다고 감탄하죠. 또한 아주 아름다운 사진을 보면 한 폭의 그림 같다고 해요. 이 두 가지를 합친다면 정말 누구나 갈망하는 절대미를 찾을 수 있을 테고, 그것이 제가 원하는 무엇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 작업명이기도 한 ‘차원의 경계’는 이번 작업의 내용 혹은 형식적인 측면을 설명하는 열쇠다. 내용에서는 꿈과 현실의 차원을 얘기하고 있지만 형식적인 면에서는 미술장르 간 차원의 경계 역시 다루고 있는 것. 이전 작업들에서는 내용이 중요했다면 이번 『Still Life-차원의 경계』 작업에서는 장르 탈피 내지는 확장이라는 형식이 돋보인다. “조각과 회화 사진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은 약 17년 전 뉴욕대 대학원의 석사청구전을 준비할 때부터 시작됐어요. 조각과 사진을 이용해 설치작업을 했고 다시 그 설치작업을 사진으로 찍어 1992년 아리조나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죠. 이 두 번째 개인전이 아마도 지금 작업의 모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회화적인 속성이 추가되면서 컬러사진을 하지만 당시는 사진과 조각만이 혼합된 흑백사진의 형태였다. 각 장르가 가진 장단점 때문에 평면과 입체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던 그에게 장르를 교차시키는 혼성매체 작업은 당연한 절차였다. 그가 조각과 회화, 사진을 모두 하나의 작품에 가져온 것은 세 가지 장르 어느 것도 포기하기 힘든 욕심 때문이다.




유현미_Still life (듣기_Listening)_C 프린트_170×120cm2008


꿈과 환상 길어 올리는 창작의 우물“상상은 한발을 현실에 붙이고 한발은 환상의 세계로 향할 때 더욱 공감이 간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컴퓨터 그래픽만으로 가상세계를 만든 이미지들은 너무 비현실적이라 재미가 없어요. 어느 정도 현실에 기반을 둔 환영이 역설적으로 더욱 초현실적으로 보일 때가 있지요. 꿈도 마찬가지에요. 현실적인 상황 속에 초현실적인 상황이 가미되어야 더욱 흥미진진하잖아요. 그래서인지 저는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 소설보다는 현실에 기반을 둔 소설이나 다큐멘터리, 통계와 관련된 책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최근 읽은 ‘아름다움의 과학’이라는 책도 아름다움이라는 환상적인 소재를 과학적인 통계와 실험을 바탕으로 보여주죠.” 최근 작업한 ‘듣기’는 유현미가 지향하고자 하는 현실 속 환상의 특징을 잘 설명해준다. 여성의 토르소를 상징하는 살색 의자가 놓인 사진 속 공간에는 남성을 상징하는 푸른 귀가 돌출되어 있다. 평소 남녀의 대화 특히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행위에 관심이 많았던 유현미는 생활 속의 이야기를 환상적인 내용의 우화로 풀어낸다. 현실의 소재를 현실적인 형태의 사물을 이용해 환상적인 구성과 상징적인 화법으로 표현하는 그의 사진 스타일은 최근작 ‘장자의 나비’와 ‘두 개의 문’에서도 드러난다. ‘장자의 나비’는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경험한 장자의 이야기를 나비를 소재로 표현했다. ‘두 개의 문’은 보색의 문을 통해 어느 문으로 들어가든 완전히 다른 인생을 맞이할 것 같은 느낌을 표현했다. 이렇듯 대부분의 작업은 나름의 짧은 스토리를 가지며 은유와 상징을 통해 표현된다. 유현미는 작업의 아이디어를 습관화된 상상의 유희에서 얻는다. “상상은 대개 별다른 내용 없이 시시한 일상에서 시작되죠. 실없지만 살짝 엉뚱한 상상을 반복하다보면 멈출 수 없는 유희가 되고 그 유희를 그대로 작업으로 옮기게 되요. 아이디어는 일상 속에서 저절로 나옵니다. 마치 믹스기에 오렌지를 넣으면 오렌지 쥬스가 나오듯이, 평소에 보고 느끼고 생각한 모든 것이 작업의 원료가 되는 것이죠. 좋은 원료를 얻기 위해서는 평소에 인내와 고뇌, 체력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해요.” ● 그는 간혹 꿈에서도 작업의 모티브를 얻는다. 꿈이란 매우 개인적인 경험인 동시에 사실이 아니다. 유현미는 꿈 혹은 일상에서 만난 상황과 느낌을 문학의 형태로 옮긴다. 한편의 짧은 시와 같은 작가노트는 작업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일종의 수면장애죠. 꿈속에서도 작업하고 생각하고 경험하니까요. 꿈과 현실이 모호해서 혼란스러울 때가 있어요. 현실에서 10만원 하는 밥을 먹는 것과 꿈에서 10만원 하는 밥을 먹는 둘 다의 가치가 동등하다고 믿을 만큼 꿈의 비중이 높은 편이에요.”조각과 회화, 사진의 본질 찾는 실험 ● 유현미의 작업은 조각과 회화, 사진이 가지는 본질적인 특성을 탐구한다. 조각을 전공했던 배경은 차치하고서라도 전통적인 회화기법과 구도, 과거에 활동한 예술가의 화풍이 작업에 적용되기도 한다. “전통적인 미술장르가 보여주는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합니다. 전통적이면서 매우 수준이 높은 명작은 항상 경외와 탐구의 대상이 되죠.” 그는 현대의 작가보다 과거의 대가들에게서 영향을 받는 편이며 표현에서는 주로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에게서 기법과 색채 사용법을 배운다. 대개의 화가들이 과거 거장들의 화풍을 연습해 자신의 방식으로 체화하는 것처럼 그도 같은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호퍼는 굉장히 현실적인 소재의 그림을 그리면서도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죠. 호퍼 그림 특유의 공허함과 초현실적인 시간성의 비밀은 그가 구사하는 빛과 그림자의 조작에 있어요. 같은 화면에 밤과 낮이 함께 존재하거나 그림자의 길이를 비현실적으로 늘이는 등 작가의 의도가 가미된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여주죠. 호퍼는 사실 베르메르를 연구했다고 해요. 이처럼 작가들이 서로 시공을 초월해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정말이지 멋지지 않은가요.” 그는 예술의 기본적인 조건을 아름다움에 둔다. 때문에 화면상의 아름다움, 예컨대 구도와 배치, 컬러 등 조형요소를 다루는 미장센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며 회화의 연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 조각과 회화의 과정을 거친 작업은 최종적으로 사진을 통해 완성된다. 유현미는 회화처럼 보이는 사진을 통해 사진이 가진 절대불변의 진리 즉 사진의 재현성을 실험한다. 전통적인 사진매체가 가져왔던 ‘사진은 사실을 재현한다’는 확고한 믿음은 회화처럼 보이는 사진에 의해 깨지고 만다. 회화인지 사진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모호한 그림 앞에서 앞뒤로 움직이며 자신의 시각을 의심하던 관람자들은 작품 밑 캡션에 적힌 ‘print’라는 단어를 보고서야 그것이 사진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불완전한 인간의 시각이 만든 이미지의 반전인 셈이다. ■ 김보령


------------------------


The Planarian Realm

박은하展 / PARKYUNA / 朴垠河 / painting

2008_0730 ▶ 2008_0812



박은하_Wall Painting with 'Byte Cella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가변크기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70227c | 박은하 회화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802_토요일_06:00pm

작가의 벽화제작과정을 보여주는 퍼포먼스
2008_0730 ▶ 2008_0801


관람시간 / 10:30am~06:30pm





관훈갤러리_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본관 2, 3층
Tel. +82.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회화는 재료나 양식 혹은 그 주제로써 나뉘기 이전에 이미 그려지는 대상에 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불확실한 동경이거나, 가지고 싶은 것에 관한 열정적인 애착에 기원하고 있다. 박은하의 경우는 유년의 기억 속에 인상 깊게 각인된 비눗방울이 만들어내는 색색의 띠가 초등학교 자연시간에 등장한 플라나리아를 접하며 중첩된 기억의 재현을 이루게 되었고, 그것은 환상과 현실 혹은 일탈과 안주라는 대치를 이루게 된다. ● 많은 경우 기억은 처음 그 출발에 충실하기보다는 점점 자신이 원하거나 기억하고 있다고 믿는 대로 발전되어 간다. 기억은 결국 어떤 원인에 의해 어느 순간 만들어지는 것이지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때로 그것은 손실되기도 하고 변질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 인정하기 싫은 미련과 반항은 살아 있는 것에 대한 동경에 기인하고 있다. ● 무지의 상태로 태어나 점점 자신을 채워가며 몰두하는 모습은 처음부터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출발하나 결국 차츰 퇴색되다 죽음에 이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기억의 꿈틀거림일 뿐이다.




박은하_Fatigue-Man_캔버스에 유채_89×146cm_2008



박은하_Fatigue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08



박은하_In a Row_캔버스에 유채_193×130cm_2008


박은하의 그림 속에 그려진 플라나리아로 대변되는 띠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기억의 그림자가 공간에 투영되어 증식된 작가의 자아일수도 있고,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의 기억이 조합되어 반사된 중첩된 에너지이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아무튼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동경은 그야말로 스스로 빛을 발하는 태양의 주위를 서성이는 수많은 별들의 모습과 같다. ● 박은하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띠들은 그림 속의 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들고 있다. 특정 공간이라는 것은 공간의 제한된 구역을 의미한다. 이차원의 정지된 공간에 표현된 회화는 선과 면으로써 물리적인 구획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작가의 여러 가지 시도와 연습된 공간의 인지로써 물리적 공간을 평면 속에서 우리가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제 꿈틀거리는 띠들은 공간을 넘나들면서 박은하의 그림 속에서 증식된 기억의 플라나리아로 조합되어 시간성을 부여하고 또 다른 공간을 찾아 유영한다.




박은하_Office 2000_캔버스에 유채_218×292cm_2008



박은하_Stir_캔버스에 유채_150×150cm_2008



박은하_Suck the Earth in_캔버스에 유채_230×230cm_2008


플라나리아는 저 스스로 증식하기도 하나, 다른 짝을 찾아 유성생식을 하기도 한다. 박은하의 그림속의 띠들도 작가의 기억을 담고 있으나, 우리의 관심과 기억을 유혹하며 캔버스 밖으로 기어 나와 벽면으로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꾸물꾸물 꿈틀대는 플라나리아가 우리의 기억을 담고 다시 캔버스로 돌아갈지 아니면 벽면을 떨치어 내고 공간으로 헤엄칠지... 그야말로 플라나리아 왕국을 이룬다. ■ 김태윤


번호별로 보기
여러개의 게시물 정리 제목별로 보기 이름별로 보기 날짜별로 보기 조회별로 보기
1300   [펌]못말리는 화가들 - 노성두 글 zabel 2003/03/27 485
1299   [전시]하라 나오히사/이 지연 플래티넘 프린트 전시회 [1] zabel 2003/03/14 485
1298   전시 6.23 2006/06/23 483
1297   전시 8.1 2007/08/01 482
1296   DJ Shadow - Rabbit in your headlight / 퓨쳐링;톰 요... [2] 장명훈 2002/11/01 481
1295   신영복 - 나의 숨결로 나를 데우며 장명훈 2002/10/31 480
  전시 7.28 2008/07/28 475
1293   ani 장명훈 2002/10/31 473
1292     [re] 전시 8.29 2007/08/30 470
1291     [re] 전시 4.23 2008/04/27 465
1290   [펌]매튜바니Crema-ster Cycle zabel 2003/01/03 463
1289     [펌]하우포토에 올라온, 전시 강연 내용입니다. 장명훈 2002/10/28 463
1288   [전시]이정진 사진전 장명훈 2002/10/25 463
1287   전시 11.20 2008/11/20 462
1286   [펌]네크로필리아 - 原題 ; 죽음의 도시,풍경의 죽음 장명훈 2002/10/30 460
1285     [re] [전시]이정진 사진전 장명훈 2002/10/28 460
1284   전시 6.16 2006/06/16 459
1283   전시 2.3 2008/02/03 457
1282   전시 9.11 2006/09/11 457
1281   전시 2.21 [1] 2008/02/20 456
  [1][2][3] 4 [5][6][7][8][9][10]..[68]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u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