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1360  4/68   회원가입 회원로그인
  View Articles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7-08-30 19:51:23, Hit : 470)
[re] 전시 8.29



머물다

정대원 개인展

2007_0904 ▶ 2007_0913



정대원_머물다_etching_60×90cm_2005




초대일시_2007_0904_화요일_06:00pm




수아아트스페이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 184 B1
Tel. 031_258_5652






나의 그림은 사물이 머무는 자리의 익숙한 것들을 바라보고 꼼꼼히 기억해 두는 것이다. 매일매일 똑같이 자리하는 것들을 기억하고, 그려서 남겨 두는 것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이렇게 그리는 일을 계속하게 한다.




정대원_알싸한 그리움_etching_10×10cm_2003



정대원_자리하다 · 하나_etching_20×20cm_2004



정대원_자리하다 · 둘_etching_20×20cm_2004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는 그렇게 박아놓지 않으면, 순간의 작은 기억들이 얼마 후에는 아무리 기억해보려고 해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영원한 기억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억하고 싶은 순간에 어렴풋이라도 떠올라야 아쉬운 마음은 피할 수가 있을텐데, 기억해둘 것이 넘치는 세상에서 그게 참 쉽지가 않다. ● 먹고 마시고 머무는 공간 속에서 명확하거나 때론 흐물거리는 일상의 기억들은 작은 것들이 자리한 곳에서 시작된다. 기를 쓰고 공부하지 않아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는 나의 작은 것들,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그대로 있는 것들에게서 들려온 이야기가 꼬물꼬물 모여서 그림이 된다.




정대원_머물다..._etching_70×50cm_2006



정대원_마리마리 두루마리_혼합재료_28×35.5cm_2006



정대원_다섯 번의 집들이_혼합재료_28×35.5cm_2006


하루하루 매일매일 같이 있다가 내 일부가 된 것들,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것이지만 내게는 애틋하고 소중한 것들의 자리를 들여다 보고 기억해 두는 일이야 말로 내게 가장 의미있는 일이기에, 바로 그 자리에서 자리하고 머물고 그린다. ■ 정대원

---------------------


Peijingzhe Solo Exhibition

배경철 개인展

2007_0904 ▶ 2007_0914



배경철_어린이_캔버스에 유채_150×200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유아트스페이스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904_화요일_06:00pm

2007 유아트스페이스 젊은작가 기획공모




유아트스페이스
서울 강남구 청담동 101-6번지
Tel. 02_544_8585
www.yooartspace.com






경계와 경계사이의 혼성 이미지 ● 제2의 인터넷세계로 세컨드 라이프라는 가상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에 새로운3차원의 가상세계를 구현하여 건물을 짓고 주민을 입주 시키고 물건을 사고파는 등 또 다른 경제 활동의 세계가 만들어 짐으로서 이제 인터넷혁명시대에 인간의 욕망은 현실을 벗어나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새로운 지구를 재편하고 유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기대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컨드 라이프와 같은 사이버스페이스는 은폐된 욕망의 해방구 역할을 하고 있음과 더불어 국적, 언어, 성별, 신분 등 나와 타자에 대한 경계를 허물고, 이에 따른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새로운 열풍으로 확산되고 있다.




배경철_어린이_캔버스에 유채_150×150cm_2007


조선족이라는 한(韓)민족성, 중국인이라는 국적을 동시에 포괄, 민족 정체성에 있어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 배경철에게 이런 사이버스페이스는 유학생활에서의 소외감과 적응장애로 부터 유발되는 현실에 대한 대피공간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아바타를 설정하고 세컨드라이프세계에 살고 있진 않지만 컴퓨터라는 매체는 그에게 정체성의 혼돈으로부터 오는 갈등적 요소를 해결해 줄 만큼 이상적인 공간이다. 한(韓)민족으로서의 기본적인 정체성은 유지하고 있지만 언어와 문화, 생활 속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소속감에 대한 갈등적 요소는 그의 작업의 중요한 소재로 등장되고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가상현실과 현실사이의 정체성의 문제는 본인의 현실과 부합되는 작업으로 연관되어 진다.




배경철_어린이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07



배경철_23-어린이-픽셀_캔버스에 유채_150×150cm_2006


배경철의 작업은 그의 자라온 환경과 유학생활에서의 소외감 정체성이라는 현실에 근거 한다. 한민족이라는 민족성을 토대로 시작된 그의 유학생활에서 이방인이라는 감정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고 이로 인한 갈등적 요소들은 그의 회화에 확연히 담겨있다. 회화의 소재는 그의 감정적요소를 주제로 하지만 그 기법과 형식은 컴퓨터 매체에서 얻어지는 현상을 전통적 회화 기법을 통해 지극히 아날로그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배경철_어린이_캔버스에 유채_130×97cm_2007


여러 명의 군중들이 운집되어있거나 신생아의 모습이 주로 등장하는데 여러 사람이 모여 한곳을 바라보는 시선, 엄마의 태반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으로 나오면서 소외되는 경험 등을 유학초기시절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본인의 현실로 표현하고 있다. 사각형의 픽셀이 조각조각 구성되는 분해적 형식과 화면이 밀려 잔상이 흐려지는 형태는 정체성이 없는 본인의 상황과 정체성을 지워버리고픈 의도적 표현이 담겨있다. 유학초기 혼돈된 정체성과 소외감의 문제, 그를 속박시켰던 언어, 국적 등 생활 속에서 느끼는 불편하고 어색한 것들에서 벗어나 이제는 지리적 위치와 현실에 적응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화면에 반영하고 있다. 그는 정체성을 버리는 것과 찾는 것에 따른 갈등적 요소, 한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혼돈된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해소하려는 의지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배경철_군상2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07



배경철_군상-픽셀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06



배경철_군상3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07


모호한 색체와 형태, 픽셀과 픽셀 사이의 경계, 아른거리며 흔들리는 듯한 이미지 등 그의 작품에 보여 지는 모든 형태와 이미지는 그의 소외감과 혼란한 정체성,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장애적 성격의 모든 면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정체성은 경계와 경계로부터 오는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의식 속에서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질되고 유동적인 것임을 다시 한 번 인지 시켜주고 있다. ■ 신경아

---------------------


Room

Lina Kim 리나 킴 사진展

2007_0904 ▶ 2007_0929



리나 킴_Room Fürstenwalde_C-Print, Diasec_125×185cm_2003-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더 컬럼스 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904_화요일_06:00pm

큐레이터_권민영_황혜련




더 컬럼스 갤러리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63-14
Tel. 02_3442_6301
www.columns.co.kr






한국인 부모를 둔 리나 킴 Lina Kim 은 브라질에서 태어나 베를린과 뉴욕에서 거주하고 있는 작가이다. 리나 킴은 2006년 하바나, 2002년 상파울로 등의 국제적 비엔날레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 왔으며, 2002년 광주 비엔날레에도 참가하였다. 또한 2006년 독일의 Fahnemann Project 에서 Wrong Movie 라는 장소 특수성을 띤 개념적 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최근 유럽 등지에서 작품을 인정받으며 사진계의 기대주로 주목 받고 있는 리나 킴은 이번 전시로 다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리나 킴_Room Wittstock_C-Print, Diasec_125×185cm_2003-2006



리나 킴_Room Beelitz_C-Print, Diasec_125×185cm_2003-2006



리나 킴_Room Wittstock,_C-Print, Diasec_125×185cm_2003-2006


Room 은 2003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는 시리즈 작업이다. 사진 속의 주요 모티브가 되고 있는 이곳은 독일의 군부대로 거주 공간, 근무지, 스포츠 홀 등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이다.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후 폐허가 되어버리거나 사라져 간 마을의 흔적을 찾아간 곳에는 역사적 사건이 남긴 잔해와 시간의 파편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기서 눈 여겨 볼 것은 창문 밖의 풍경이다. 마치 한바탕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간 듯한 실내 공간과 창 밖의 고즈넉한 자연경관은 완전한 대립구조를 이루고 있다. 작가는 평온하고 고요한 실외의 풍경을 거친 실내 이미지 속에 심어 놓으며 한 공간 안에 형성되는 또 다른 세계를 한 장의 사진에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공간 속의 공간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또 다른 상황을 연상하게 만들며 한 공간 안에 생성되는 두 가지의 내러티브를 연출하고 있다.




리나 킴_Room Sperenberg_C-Print, Diasec_125×185cm_2003-2006



리나 킴_Room Wittstock_C-Print, Diasec_125×185cm_2003-2006



리나 킴_Room Wittstock_C-Print, Diasec_125×185cm_2003-2006


이러한 독특한 시각으로 리나 킴은 이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을 이미지화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과 장소라는 카테고리로 나타낼 수 있으며, 크게는 자연의 범주 내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시각화로 간주할 수 있다. 무수한 변화를 갖고 있지만 결국 변하지 않는 자연의 순리처럼 작가는 한국인의 뿌리를 둔 이방인의 입장에서 창 밖을 응시했는지도 모른다. 리나 킴의 사진에서 재현된 이미지는 삶과 사회, 자연과 인간이라는 인과관계 속에서 각 영역의 상호작용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작용은 장소와 시간, 예술과 사회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관계를 확장시킨다. 리나 킴의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갖는 첫 번째 개인전으로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신선하게 다가올 것을 기대한다. ■ 장동조

--------------------------------


The Bitter-Sweet Life

변경수 개인展

2007_0831 ▶ 2007_0909



변경수_The Afro Thinker_Fiber Glass, Wood, Automotive Painting_110x75x140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덕원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831_금요일_06:00pm




덕원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02_723_7771
www.dukwongallery.com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는 어떤 세상일까? 또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이러한 의문은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현대사회는 문명의 이기가 충만한 디지털사회, 인터넷이나 모바일의 발달로 새로운 사이버 세계가 생기고, 향락적이고 소비적인 사회, 다시 말해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세상이다. 이러한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생각해보자.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사회 환경은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행복하고, 편안하고, 안전한 세상에서 살고자하는 우리들이 품고 있는 꿈이자 희망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희망과 바람으로 우리들은 편리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냈다. 인간은 자연을 개척하며 살아오며, 자연에 동화되거나 적응하기보다는 자연을 사람에게 맞게 변화시켜 살아가는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의 흐름을 역행하는 유일한 동물일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그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아이러니한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새롭고 편리한 세상을 만들어가면서도 만족을 모른다. 계속해서 어디론가 향해 나가고 있다.




변경수_The Balloon-y #2_Installation_Fiber Glass, Star Sticker, Automotive Painting_2007



변경수_The Balloon-y #2 Details



변경수_The Chicken George Man_Expanded Polystyrene Coating, Film, Automotive Painting_77x45x165cm_2007


변경수의 작업은 이러한 인간의 끝나지 않는 욕구와 그로 인해 만들어지고, 만들어질 현대사회에서의 우리의 현재의 모습을 찾는 작업이다. 작가의 작업은 조그맣게 폴리머클레이를 가지고 조물조물 거리면서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내는 데서 시작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에 대해 작가는 “낙서와 같은 존재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며 일상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일상의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조그마한 신체로 이루어진 다양한 물건들은 표면적으로 보면 화려하고 귀여운 팬시적인 사물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 세상처럼 치열하고 그로테스크한 면을 보여주는 이중적인 현대사회의 단면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테이블에 가득 찬 물건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작업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의 생활 속에서 우리들의 살아가는 모습이나 행동들을 찾기 시작한다. 작가는 하나하나 개별적인 스토리를 가진 인물들을 만들어 내는데, 현대 사회 속에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 모습을 유아적인 인체로 희화적이면서도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키스헤링처럼 인간을 원과 사각형으로 단순하게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원형의 곡선적인 형태를 가지며 단순하게 표현 되어있지만 사람의 기본적인 골격이나 근육의 표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또한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얼굴의 표현이 거의 없거나 아주 조그마한 눈이나 입으로 표현되어 전체적으로 멍한 표정으로 나타나고, 표면은 인위적인 광택을 띠고 있다. 이러한 인체의 표현들을 통해서 작가는 편리하고 발달된 현대사회에서의 인간의 허망함고 공허함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표현된 인간의 모습들은 개별적인 모습으로는 색채와 형태로 인해 귀엽고 아동적인 느낌을 주지만, 무언인가에 빠져들거나 혹은 무엇인가에 사로잡히는 등의 다소 몽환적인 상황에 처해있다.




변경수_The Helmet Boy_Fiber Glass, Helmet, Film, Automotive Painting_100x40x155cm_2007



변경수_The Sweet Fatty_Fiber Glass, Iron, Automotive Painting_55x55x200_2007


변경수의 작품에는 〈화면조정〉, 〈달콤한 뚱땡이〉, 〈풍선사람〉, 〈닭철수〉, 〈헬멧소년〉, 〈회로인간〉등등 다양한 인물군상들이 등장한다. 귀여운 모습과 반짝이는 화려한 색채를 가진 외형을 보면 아주 친근하고 위트 있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작품을 들여다보고 이들이 모여 있는 세상을 서서히 인식하게 되면, 이들 모두 디지털사회, 인터넷이나 모바일의 발달로 새로운 사이버 사회, 향락적이고 소비적인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무기력하고, 소비지향적인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당혹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또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인식을 잊어버리고 원래의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로 돌아 갈 것이다. 〈The Afro Thinker〉에서 작가의 의도가 가장 잘 들어나는데, ‘사람은 혼자 앉아서 무엇을 생각하는가?’ ‘인간적인 고뇌와 철학적인 사유를 하는가?’ ‘실상 우리들은 현실을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현실적인 고민이나 우리의 개인적인 욕구와 욕망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말한다. 작가가 창조해내 이 캐릭터들은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작가의 자화상이자 우리들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다시 말해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하는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우리의 인생이다.




변경수_The White Desk_Installation_Mixed Media_2004_2007



변경수_The White Desk Details


작가는 작업을 통해 현대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을 고발하거나, 소비 지향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과학 기술문명의 발달에 의해 야기되는 문제들을 해결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변경수의 작품은 부정적이고 비판적 텍스트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변경수의 작업에 나오는 캐릭터는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으며, 선과 악이 한 캐릭터 안에 혼재돼 있어 흑백논리의 이분법적 틀에 갇혀 있지 않다. 우린 분명 달콤한 세상을 살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쌉싸름한 맛만 강하게 느낀다. 그래서 더 끝없는 욕구와 갈증을 느끼는 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의 복잡하고 다양함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하고 파악 불가능한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이 지금 어떠한 상태인지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인지하고 있을 때 달콤 쌉싸름한 인생을 행복하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설사 다시 망각한다 할지라도.......... ■ 신승오

---------------------------------------


Gallery

강유진 회화展

2007_0830 ▶ 2007_0916



강유진_Garden in the TAT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에나멜_162×112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선컨템포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830_목요일_05:00pm

후원_서울 문화 재단 젊은 예술가 지원 사업(Nart 2007)




갤러리 선컨템포러리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02_720_5789
suncontemporary.com






표면을 흘러내리는 회화 ● 강유진의 작품에는 여러 층위의 시선들이 있다. 시선들은 무엇을 바라보기 위한 것들이 아니라 어떠한 것들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들이다. 장치들은 자칫 상징들로 오해 받기도 하는데 그녀가 선택한 오브제들은 도시의 것들 즉, 도시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스펙터클한 풍경들이다. 도시풍경은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하며 많은 시선들을 만들어낸다. 건물이며, 도로이며, 인위적 수영장의 풍경까지, 도시는 언제나 바라볼 수 있는 어떠한 시각적 틀을 제시한다. 그녀는 이러한 틀을 이용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단순히 도시의 풍경을 재현한다거나 도시적 감성을 표현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진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강유진이 회화작품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도시성은 무엇일까?




강유진_Garden in the TAT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에나멜_162×112cm_2007


그녀는 도시를 여러 시선들로 바라본다. 마치 도시계획을 하듯 도로를 구성하고 건물을 배치하는 조감원근법적 시선과, 도시 속에서 고층빌딩의 마천루를 바라보며 동경하는 시선이 함께 교차한다. 그리고 이 두 시선에 전혀 연관성이 없는 사물오브제를 던져 넣는 개인의 시선, 바로 이러한 시선들의 교차와 중첩을 통해 작가는 시각이 주는 원근법적 환영에서 벗어나 도시를 새롭게 보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회화의 구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회화가 가지는 원근법적 소실점은 도시 속의 실제적인 공간 원근과 맞닿아 있다. 3차원의 공간에서 바라보게 되는 인간의 양안원근법은 바로 회화에서의 투시도법의 기준점이 된다. 하지만 회화의 소실점은 양안의 불일치와 운동시차, 망막의 만곡을 고려하지 않고 시각 소실점이라는 정확한 지점을 연역해내어 내면화시킨 하나의 지점에 불과하다. 즉, 그것은 의식의 눈에 모든 것을 일치시키는 행위인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공간의 입체감을 드러내는 여러 시선들을 뒤흔들어 놓음으로써 회화를 평면으로 인식하게끔 유도한다. 여기서 평면성은 단순히 캔버스의 질료적 평면성이나 회화를 벗어나고자 하는 평면성의 의미를 넘어서 두 세계가 양립하는 표층, 혹은 표면(surface)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평면은 하나의 현상, 혹은 이미지로 받아들여지며 그것이 지칭하고 있는 기표적인 오브제로 작용하지 않는다.




강유진_In the Gallery 미술관 안에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에나멜_130×130cm_2007


도시의 건물과 수영장, 도로는 하나의 칼리그램이 아니라 화면을 구성하는 구성요소일 뿐이다. 즉, 평면은 단지 표층, 표면인 것이다. 강유진은 이러한 회화의 평면성을 강조하기 위해 액션페인팅 효과인 흩뿌리기와 물감 흘리기를 사용한다. 물론 이러한 우연적 효과는 자동기술적인 우연성보다는 작가의 의도된 표현에 가깝다. 그녀의 의도는 바로 작품의 표면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그런데 왜 그녀는 표면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두 가지의 의미로 함축된다. 첫째는 회화의 파노라마적 원근법을 파괴함으로써 회화가 환영임을 드러내는 것이고, 둘째는 그렇게 함으로써 회화라는 매체 자체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녀의 이러한 이중 장치의 근본적인 물음은 바로 ‘회화란 무엇인가?’ 라는 명제에 있다.




강유진_Inward or Outward between heart and Guggenheim Bilbao Museum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에나멜_162×182cm_2007


Artist와 Painter의 경계를 인식하고자 하는 그녀의 태도는 바로, 회화를 어떠한 영역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인 것이다. 그것은 또한 매체의 진정성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영역의 경계에서 해석의 여지를 관객들에게 넘겨주는 작품들의 애매모호함을 작가는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표면으로의 지향’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의 작품이 내뿜는 힘찬 에너지는 커다란 캔버스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벽을 가득 메우는 커다란 작품은 사각 캔버스의 프레임을 인식시키지 않고, 화면 즉 그것의 표면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한다. 표면이란 그것의 내용으로 침잠해 들어가거나, 혹은 내용의 연결고리들 조합, 분석해내는 것이 아닌 바로 그 자체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다. 여기서 구조는 작품의 내적 구조이자 작품 외적 환경과 조우하는 체계에 대한 인식이다. 그것은 오버랩 되는 여러 공간들이 지칭하는 의미 층에서 벗어나 그것을 구성하는 체계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이러한 몰입을 위해 작가는 적극적으로 시선을 유도하는 선형원근법을 사용한다. 회화에 빠져들게 함으로써 회화를 벗어나게 만든다는 작가의 전략은 상반되는 요소들의 병치, 혹은 공존을 통해 인식의 틀을 매체자체에 집중시키는 것이다.




강유진_Meat in the Galler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에나멜_162×112cm_2007


여기서부터 강유진 작가의 이번 전시 ‘Gallery’는 시작된다. 앞서 설명한 대로 작품을 구성하는 전체적인 틀을 보지 못한다면 자칫 그녀의 작품을 오해할 수 도 있다. 왜냐하면 화려한 화면과 거대한 스케일, 그리고 여러 오브제들의 조합은 단순히 재현을 위한 도구들이 아니며, 그녀의 작품이 생산성을 목적에 둔 테크닉적인 회화이거나 재현에서 추상회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번 전시 ‘Gallery'는 형식과 내용에 대한 이야기이다. 갤러리, 혹은 미술관은 한마디로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인공적인 건물인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갤러리는 기능적인 공간, 가치적인 공간, 인식적인 공간 등 여러 관점들을 모두 수용한다. 현대 미술에서 갤러리가 가지는 의미는 개개의 작품 이상의 가치일 수 도 있다.




강유진_Poo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에나멜_162×112cm_2007


작가는 갤러리가 고정된 건축물이지만 그 내부에서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짐에 관심을 갖는다. 특히, 각기 다른 작가들의 예술적 언어가 갤러리라는 공간에 들어가 그 곳의 틀에 맞춰져 다른 이야기로 전환됨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갤러리의 느낌은 작가의 말에 의하면 “가득 찬 공허, 풍부한 빈 공간”이다. 여러 지칭하는 의미들이 하나의 구조체계 속에서 새로운 의미들로 치환되는 곳, 그곳이 바로 갤러리인 것이다. 물론 작가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갤러리를 바라보지 않는다. 다양한 에너지들이 드나들며, 채워지고 비워지는 갤러리를 평평한 표면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것, 이른바 고고학적 해석의 시작이다. 이것은 단순히 갤러리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본질에 대한 것이며, 그것보다 먼저 갤러리에 걸려 질 자신의 회화작품의 존재에 대한 물음인 것이다. 인공적인 갤러리에 투영된 자연의 모습과 도로의 안전표식의 격자들, 수영장의 반짝이는 수면, 그리고 두근거리는 심장과 고깃덩어리, 이러한 모든 오브제들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외적 환경과의 관계를 드러낸다.




강유진_The Road to the Museum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에나멜_130×194cm_2007


따라서 그녀의 작품은 외부에서 시작하여 내부로 침잠해 들어가는, 혹은 내부에서 뿜어져 나와 외부로 드러나는 에너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것이 바로 표면의 이야기인 것이다. 표면이라는 것은 외부와 내부의 경계에 있으면서 두 세계 모두를 아우른다. 반대로 표면은 모든 것을 버리며 그것 자체의 평면성을 요구한다. 결과적으로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평면성, 특히 표면성은 현대미술에서의 갤러리(회화)의 위치와 갤러리(회화)의 본질을 요구하는 논리 사이에서 끊임없이 물어지는 물음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물음은 하나의 해석 기준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항상 선 이해(혹은 선입견)로써 작용한다. 그 기준점이 되는 회화적 소실점은 결코 관객들을 회화의 영역에서 벗어나서 작품을 바라보게 만들지 않으며, 또한 그러한 것들을 해체하고자 하는 평면성으로 인해 회화를 다시 인식하고 구성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작가 강유진이 회화를 바라보는 시선이며, 그녀가 말하는 표면으로서의 회화감상이다. 결국 회화는 스스로 회화임을 드러낼 때 비로소 그 의미의 근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 백곤

------------------------


옮겨진산수 유람기

임택 개인展

2007_0901 ▶ 2007_0920 / 월요일휴관



임택_옮겨진 산수유람기073_디지털 프린트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심여화랑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901_토요일_05:00pm

심여화랑 이전 개관전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여화랑
서울 종로구 사간동 37-1번지
Tel. 02_739_7518
www.simyogallery.com






당대의 감성으로 옮겨온 산수를 유람하다 ● 임택이 제시하고 있는 ‘옮겨진 산수 유람기’라는 주제는 동시대의 감성으로 표현해낸 풍경 즐기기이다. 그는 전통을 잇는다는 명분을 가지고 고전을 박제화 하는 관념산수의 관념성을 비트는 의미에서 입체 산수풍경을 만들었고, 그것을 다시 디지털 프린트로 출력해내는 과정에서 진정한 의미의 패러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작품 속 산과 바위 풍경에 인형이나 실재인물 사진을 배치함으로써 자연 속에 뛰어든 인간의 유희를 담아내고 있다. 동료화가들과 화첩기행에 나서곤 하는 임택은 표현 방법은 달라도 산수풍경에 대한 경험과 이해를 작품에 담아내는 방식에 있어서는 큰 틀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임택의 ‘옮겨진 산수 유람기’는 작가 자신의 실재 산수에 대한 체험을 가미한 패러디인 셈이다. 그의 합성 이미지는 고전과 현대의 꼴라주인 동시에 작가의 경험을 꼴라주하는 것이며, 나아가 경험 너머의 판타지를 꼴라주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당대의 감성으로 옮겨온 산수를 즐기는 과정인 것이다.




임택_옮겨진 산수유람기074_디지털 프린트_2007



임택_옮겨진 산수유람기075_디지털 프린트_2007

임택의 디지털 프린트 작품은 설치작품과 실재풍경을 촬영하는 것과 관객참여 프로그램, 온라인 상에서의 이미지 채집 등 다양한 경로를 거친 얻은 이미지들을 합성한 결과물이다. 그는 카메라 렌즈를 통과한 다양한 이미지들을 다듬어서 겹쳐놓는다. 이러한 작업은 포토샵 툴을 사용한 디지털 합성작업으로 진행하는데, 다양한 시공간을 경과한 다시점(多視點)의 이미지들이 한 화면 안에 배치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몇 가지 관건들이 임택 사진의 묘미이다. 우선 설치작품을 실사 촬영한 산과 바위의 표현이 특유의 종이 재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실재의 산과 바위에 비해 매우 절제된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임택의 설치작품에는 볼륨에 따른 명암이 있을 뿐 색이나 마티에르가 거의 없다. 따라서 최소한의 볼륨만으로 형성된 입체를 찍은 산과 바위의 골격 위에 합성되는 여타의 이미지들은 그 배경에 비해 훨씬 더 컬러풀하고 현란하며 다채로울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 배경의 미니멀한 설정에 비해 여타의 대상들, 가령 나무와 사람, 자동차와 비행기와 배, 꽃, 해와 달, 새와 곤충 등의 이미지들은 컬러풀하며 역동적이고 다채롭다. 산의 뒤편을 이루는 하늘 표현들 또한 역동적인 구름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는가하면, 연두색이나 노란색을 써서 풍경의 판타지를 자극하기도 한다.

임택_옮겨진 산수유람기076_디지털 프린트_2007



임택_옮겨진 산수유람기077_디지털 프린트_2007

그는 기존에 발표했던 설치작품의 익숙한 시점을 180도 틀어서 전혀 다른 각도에서 포착함으로써 하나의 입체 작품이라도 포착하기에 따라서는 수많은 이미지 생산이 가능한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Use)’의 생산력을 십분 활용하기도 한다. 평면을 입체로 끌고 나온 데 이어 전자적으로 부호화한 이미지 생산은 이렇듯 임택에게 풍부한 상상력과 그에 부합하는 생산력을 제공하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간 그는 이미 고전 베끼기를 넘어서 원본을 생산하는 작가로 거듭나고 있다. 그 예로 인사미술공간에서의 설치작품은 집 뒤편 등산로를 재현한 것인데, 그 공간을 채운 인간 군상들 또한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미 고전을 고정된 텍스트 개념이 아닌 유동하는 가치의 개념으로 전환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 상당수도 이미 고전의 구조로부터 따온 입체이기는 하나 카메라의 시선에 의해 전혀 다른 풍경과 장면으로 재구조화 했다. 임택의 패러디는 비판적 성찰이 결여된 혼성모방인 패스티쉬와 구분되는 유머와 창의력이 넘치는 패러디로 자리 잡았다.

임택_옮겨진 산수유람기0713_디지털 프린트_2007



임택_옮겨진 산수유람기0716_디지털 프린트_2007


임택이 평면에서 입체로 입체에서 사진 작업으로 전환한 것은 고전 다시 읽기가 현재 진행형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의 근거이다. 임택의 작업은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화답이다. 디지털 문명은 이미지 생산의 목표와 공유방식을 뒤바꾸어 놓았다. 전자적으로 부호화한 이미지 생산은 수천년에 걸친 시각예술의 자산 위에 새로운 가능성을 무한하게 추가하는 요소이다. 그것은 일품성의 신화를 복제가능성에 따른 탈신화로 전환하는 데 있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더 이상 천재적 작가주체의 유일무이한 창조주체로서의 역할에만 기대지 않고 창작의 주체와 향유의 주체가 상호 교감을 전제로 새로운 창의력을 발산하는 문화민주주의의 맥락을 형성하는 데도 크게 기여한다. 임택은 지금까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실험으로 온전히 임택 고유의 스타일을 창출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이 설치이든 사진이든 간에 임택은 예술가에게 숙명과도 같은 창의력과 독창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지역과 국가, 인종, 민족 등 모든 이질적인 것의 경계를 넘어서는 디지털 이미지의 가능성을 매우 차분하게 그리고 충실하게 재발견하고 있다. 요컨대 임택의 작업은 설치와 조각, 그림과 사진의 경계를 넘나들며, 나아가 예술을 둘러싼 여타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이다. 나아가 그의 작업은 고전의 맥락에서 출발하되 20세기 이전 문명의 이분법적인 대립구조를 넘어서는 디지털 문명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 것이며 그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하고 있다. ■ 김준기

----------------------------


욕망과 신념의 에로티즘

박소빈 회화展

2007_0903 ▶ 2007_1223



박소빈_깊은 향기_종이위에 연필, 채색_230×145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갤러리 PICI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903_월요일_06:00pm




갤러리 PICI / 2007_0903 ▶ 2007_0916
서울 강남구 청담동 122-22번지
Tel. 02_547_9569
www.galeriepici.com


TENRI / 2007_1127 ▶ 2007_1223
43A west 13th Street NY, NY 10011
Tel. 212_645_2800
www.tenri.org






“욕망과 신념의 에로티즘” -龍과 여인의 사랑 ● 유럽에서 "龍"(Dragon)은 고대부터 잔인하고 호전적이면서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으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하늘의 선행과 풍요, 음양설(陰陽說)로는 활동과 남성다움의 원리를 뜻하는 양(陽)을 대표하고 도교(道敎)에서는 신성한 自然力의 하나를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龍"은 존재하지는 않는 신성의 상징으로 박소빈은 20여년이 다되도록 일관되게 그러한 용을 소재로 작품을 제작하여 이제는 그녀의 애칭에 "龍"이 따라 다닐 정도가 되었다.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예술가들은 용을 소재로 작품제작을 해왔었지만 박소빈의 용은 어떠한 두려움이나 신성함이 없이 친근감있게 작품 속에 끌어들어 여인과 함께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다.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꿈과 이상을 용이라는 상징을 통하여 자신의 심리적 안정과 평온함을 찾아 가는 것이라 보여 진다. 이렇듯 박소빈의 작품에는 두렵지 않는 용과 나체의 여인이 은밀함을 감추지 않고 과감하고 역동적인 사랑을 통하여 그의 예술적 기량을 읽어 가는데 명쾌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박소빈_향기_종이위에 연필, 채색_75×105cm_2007



박소빈_가슴속 향기_종이위에 연필, 채색_145×114cm_2007



박소빈_깊은 여화향女花 香_종이위에 연필, 채색_218×145cm_2007


박소빈의 작품을 보자면 에로틱의 대명사인 '구스타프 크림트(1862-1918/오스트렐아)'가 연상된다. 그러나 '크림트'와 '박소빈' 두 작가의 작품에는 에로티즘의 유사성이 있지만 형식과 내용면에 있어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크림트'의 에로티즘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분위기의 다소 우울하고 정적(靜的)이라면 '박소빈'의 에로티즘은 섬세함과 역동적인 동시에 대담하여 생동감을 더해주고 있어 남성적이고 명쾌한 미적 관점이라는 차이를 나타내주고 있다. 그리고 형식면에 있어서도 '박소빈'은 연필을 이용한 드로잉과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설치작품, 드로잉을 주로 이용한 영상작품 등 형식의 실험과 도전을 찾을 수 있다. 물론 두 예술가는 시대와 환경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작품을 제작함에 있어 사물에 접근하는 미학적 관점과 조형적 해석의 차이가 크다는 것은 누구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성적본능의 에로티즘이라는 명제에 대하여 이해와 접근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관점에서의 두 작가를 보고자는 것이며, 크림트에 비하여 박소빈의 에로티즘은 인간의 본! 질적인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접근하고자 태도를 갖추고 용을 통한 자신의 내부 속에 감추어진 욕망의 그늘을 분석적이면서 집요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이 박소빈의 에로티즘은 오래전부터 '크림트'에 대한 작품분석과 연구가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 최근 박소빈의 작품을 보자면 과거의 작품과는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근작이 과거작품보다 완성도와 밀도가 더욱 깊어져 여성성과 장식적인 요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용과 여체의 주변에 초생달과 구름문양의 이미지, 그리고 꽃의 이미지를 중첩시킨 연필드로잉 위에 수체물감을 이용한 화려한 채색의 중첩효과로 장식적 요소가 강해졌다는 것이다. 작품제목도 과거와는 달리 '꽃'의 상징적 의미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화려하면서도 시각적 깊이를 더한 '용과 여인'은 연필의 움직임을 중첩시켜 용의 비늘과 여인의 피부가 체온을 가지고 호흡을 하는 듯한 효과를 연출해내고 있다. 그리고 주제에 대하여 접근해 가고 자는 조형적 방식에 있어 한결 집약적이고 완숙함을 느낄 수 있는 움직이는 역동적 동세 역시 세련미가 가중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배경을 형성하고 있는 꽃과 운문(韻文)같은 문양들 속에서 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기기묘묘한 형상들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박소빈의 작품에서 주제가 되고 있는 '龍과 여인의 사랑'은 작품을 읽어가는 필자에게는 적어도 즐거운 상상력을 유발시키는 그녀만의 에로틱하고 독창적인 대담성에 강한 예술적 기운(氣運)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또 작품 속에 등장되는 龍은 단순한 우화속의 龍이 아닌 박소빈의 삶이자 꿈이자 예술적 심념으로 자신욕망과 이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박소빈은 龍이 자신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그 무엇이라 생각된다. ● 마지막으로 이번 서울전과 뉴욕전에 출품될 작품을 보면서 어느 때보다 박소빈은 많은 고심과 작품의 변화를 위해 강도 높은 노력의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앞으로도 어떠한 각오로 얼마만큼의 치열함으로 땀을 흘려야만 하는지를 알고 있다. 그녀는 항상 새로운 작품의 형식과 내용을 위하여 매체를 실험하고 도전하는 작가적 태도와 근성에 격려와 찬사를 보내고자 한다. ■ 장경화




박소빈_사랑합니다_종이위에 연필, 채색_155×145cm_2007



박소빈_여화 女花_종이위에 연필, 채색_72×105cm_2007



박소빈_깊은 향기_종이위에 연필, 브론즈 분, 채색_72×105cm_2007


"Erotism of a Desire and Faith" 'Love of Yong and a Woman' ● While "Yong(龍, a dragon)" has a cruel, bellicose, and negative meaning from the ancient time in Europe, it stands for good conduct and richness of the heavens and represents Yang(the positive) of the principles of the negative(Yin) and positive(Yang), meaning activity and masculinity, and symbolizes divine natural power in Toism in East Asia including Korea. Since Park So-Bin has consistently made her works for nearly 20 years based on this "Yong", a symbol of inexistent divinity, even she has a "Yong"-related nickname. ● Many artists have made their works based on Yong across the ages and countries of the world, but she intimately brings Yong into her works without any fear or divinity to share deep love with a woman. It is guessed that she is seeking for a dream and an ideal that cannot be found in reality through a symbol of Yong for her psychological stability and calmness. Like this, her works clearly show her artistic skill through drastic and dynamic love of a unfearful dragon and a nude woman that do not hide a secret. Erotism of 'Park So-Bin' is delicate but dynamic, as well as fearless and vivid, showing a masculine and clear aesthetic view. In their froms, 'Park So-Bin' shows her experiment and challenge through drawing using a pencil, installation works using various materials, and video works mainly using drawing. ● Human beings' understanding and approach of a proposition of erotism of sexual desire does not seem different across the ages and countries of the world. Park So-Bin's erotism intends to approach human beings' essential problems more actively and analytically and stubbornly reveals the shadow of desire hidden within her inside through Yong. ● Recently, Park So-Bin's works show some difference from the past works. In other words, her latest works are notable in womanlike and decorative elements with deeper perfection and density. For example, images of a crescent and cloud patterns around Yong and a woman and an overlap effect of loud colors using watercolors on the pencil drawing overlapping a image of flower. Unlike the past, titles show a symbolic meaning of 'woman flower(女花)' more strongly. In particular, 'Yong and a Woman" which is colorful and adds visual depth overlaps the movement of a pencil to create an effect that Yong's scales and woman's skin seem to breathe with temperature. ● It is also identified that her plastic way to approach the subject becomes remarkably intensive and fully ripened and a dynamic movement increases refinement. Above all, mysterious forms can be found in flowers and verse patterns of the background like a hidden image. In this way, 'Love of Yong and a Woman' is enough to feel her unique erotic and originative boldness and strong artistic energy which induces happy imagination. Yong appearing in works is not a simple dragon in fables but her life and dream and artistic faith to show her desire and ideal symbolically. Thus, she seems to hope Yong will become her guardian. ● Finally, seeing works prepared for this Seoul and New York exhibitions, I can read her traces of pains and intensive efforts for a change ever than before. Furthermore, I also know how she has to sweat to create new forms and contents of her works in the future. I encourage and pay my tribute of praise to her artist attitude and temper which make experiment and challenge media for new forms and contents of her works. ■ Jang Gyung-Hwa

-------------------------------------------------------------------------


[주말, 이전시 어때?] 9월 첫째 주에 만날 전시 들/들/들
--- <아르코미술관 중진작가 초대전-조숙진 최민화>展 아르코미술관 2007.8.31 - 9.30
Vol. 76   2007. 8.30~9.5

뒤 늦게 학교를 입학한 한 작가는 이제 훌쩍 40세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그의 대학 동기들은 이제 30대 중반 쯤. 그러다보니 동기들은 이곳저곳 공모전에 도전해본다고 합니다. 그러나 40세를 훌쩍 넘은 작가는 어디에 명함도 내밀지 못합니다. 공모전에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 것이 있죠. ‘나이제한’. 사회 곳곳에서는 폐기처분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아직 미술계는 버젓이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나이제한. 물론 사회에서도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 그래도 아무리 형식적이라 해도 점점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미술계에서는 그 위상을 강화하고 있으니… 경력은 30대 중반에 준하는 것을 가지고 있으니, 여간 곤혹스럽지 않나 봅니다. 비단 그것이 그 작가뿐이겠어요? ‘젊은’이라는 키워드가 미술시장에 활발하게 유통되면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작가들이 많아졌죠. 불평불만들도 많아지고요. 이번 주는 잠시 시선을 돌려 아르코미술관에서 기획전으로 준비한 <중진작가초대전>을 찾아가보죠.


아르코미술관에서는 상반기 하반기 두 차례로 나누어 중진작가 개인전을 개최하고 있죠. 상반기에는 권부문, 이옥련 작가가 전시를 했었습니다. 벌써 하반기가 찾아와 이번에는 조숙진, 최민화 작가의 전시가 열린다고 합니다. 


▶▶▶조숙진 개인전 <버려진 나무와의 만남 20년 -뉴욕작업> 2007. 8.31 - 9.30  제 1전시실



조숙진 <남동생의 파수꾼> 설치, 혼합재료 2006 


조숙진 <명상공간> 공공미술 2000


조숙진은 사용가치를 상실한 폐기된 사물, 그중에서도 나무로 만들어진 물건들을 가지고 작업을 합니다. 1988년 미국으로 건너간 작가는 해외에서는 여러 차례 주목을 받았지만, 그간 한국에서는 뜨문뜨문 소개되었었죠. 단발적으로 보이는 그의 작품에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개인전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니 발 빠르게 찾아가 봐야겠죠. 역시 나무가 가득하군요. 그는 서울 경기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홍수에 떠내려 온 부러진 나무줄기, 부러진 식탁 다리, 망가진 책상, 문짝 등을 모아 숲을 만들었군요. 생명력 하나 없어 보이는 검은 나무 덩어리들이 얼기설기 모여 숲을 만들고 그곳에 다시 생명을 불어 넣고 있습니다. 작가의 아카이브 공간도 마련되어 있군요. 이곳에는 작가의 퍼포먼스, 기존 설치작업에서 나온 사진, 드로잉, 공공미술 작업의 이미지와 영상이 놓여 있습니다.  



조숙진 <비석 풍경/존재는 비존재로부터 태어난다> 나무 위에 혼합 재료 2000


조숙진 <명상을 위한 작업> 나무 위에 혼합재료, 1993


조숙진 <천국의 창문은 열려있다> 창틀, 의자 1995




▶▶▶최민화 개인전 <이십세기 연작 The 20th Century Series> 2007. 8.31 - 9.30 제 2전시실


이제 자리를 옮겨 최민화 작가를 만나러 가보죠. 최민화 하면 떠오르는 것은 화면 가득 번져 있는 ‘분홍색’이겠죠. 그곳에는 분홍과 상반되어 보이는 ‘부랑’이라는 소재가 있고요. 요즘 최민화 작가가 대작을 준비하고 있나 봐요.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이십세기 연작>은 총 4부로 구성되는데, 이번 전시가 1부라고 합니다. 이번 전시도 궁금하지만, 앞으로 뻗어나갈 이야기들도 덩달아 궁금증을 자극하는 군요. 자 그럼 <이십세기 연작 1부>의 세계로 들어가 보죠.



최민화 <이십세기-1944. 6> 실사출력 위에 유채 2007


최민화 <이십세기-1939. 2> 실사출력 위에 유채 2006


 1부의 주제는 ‘전쟁과 아이’입니다. 작가는 대중인쇄매체에서 전쟁 관련 보도사진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요즘 전쟁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 버렸죠. 그래서 일견 그것에 무감각해지기도 하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전쟁’을 재인식할 수 있겠군요. 최민화는 이번 전시에서 1937년 남경 대학살, 미국 대공황, 미시시피 버닝, 1939년 스페인 내전 당시, 1944년 드골 파리입성, 1945년 유태인 수용소, 1950 한국전쟁, 1972년 베트남 전쟁 당시, 1980 광주학살현장 등 이십세기에 벌어진 수많은 살육의 참상을 다룬 사진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재밌는 점이 있군요. 제목을 보니 특정 전쟁명이 없어요. 특정 전쟁에서 가져왔지만, 그것으로부터 분리 시켰군요. 그렇다면 전쟁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참혹성, 잔인성 정도만 남지 않을까요? 보도자료에 따르면 “‘보이지 않는, 보지 못했던’ 미지를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최민화에게 있어 그것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흔들고 배타적인 자기 보호 장막을 걷어내어 ‘저 너머’를 대면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라고 말하는 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배타적인 자기 보호 장막을 걷어낸다는 말에 필이 딱 오는군요. 여러분들도 자신에게 내재된 자기 보호 장막을 확인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최민화 <이십세기-1945. 4> 실사출력 위에 유채 2007


최민화 <이십세기-1948. 12> 실사출력 위에 유채 2007


사각형의 눈을 가진 사람은 모든 사물을 사각형으로 본다고 합니다. 책상도 얼굴도 의자도 컴퓨터도…… 그 모든 것들을요. 이번 주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선 외부를 주목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물론 자신의 시선을 알아야 가능한 이야기겠지만요. 들리는 소문에 9월 전시는 화끈하다고 합니다. 기대해보세요. 그럼 다음 주에 다시 만나요. 



| ABC PAPER 편집부 ask@abcpaper.co.kr




번호별로 보기
여러개의 게시물 정리 제목별로 보기 이름별로 보기 날짜별로 보기 조회별로 보기
1300   [펌]못말리는 화가들 - 노성두 글 zabel 2003/03/27 485
1299   [전시]하라 나오히사/이 지연 플래티넘 프린트 전시회 [1] zabel 2003/03/14 485
1298   전시 6.23 2006/06/23 483
1297   전시 8.1 2007/08/01 482
1296   DJ Shadow - Rabbit in your headlight / 퓨쳐링;톰 요... [2] 장명훈 2002/11/01 481
1295   신영복 - 나의 숨결로 나를 데우며 장명훈 2002/10/31 480
1294   전시 7.28 2008/07/28 476
1293   ani 장명훈 2002/10/31 473
    [re] 전시 8.29 2007/08/30 470
1291     [re] 전시 4.23 2008/04/27 465
1290   [펌]매튜바니Crema-ster Cycle zabel 2003/01/03 463
1289     [펌]하우포토에 올라온, 전시 강연 내용입니다. 장명훈 2002/10/28 463
1288   [전시]이정진 사진전 장명훈 2002/10/25 463
1287   전시 11.20 2008/11/20 462
1286   [펌]네크로필리아 - 原題 ; 죽음의 도시,풍경의 죽음 장명훈 2002/10/30 460
1285     [re] [전시]이정진 사진전 장명훈 2002/10/28 460
1284   전시 6.16 2006/06/16 459
1283   전시 2.3 2008/02/03 457
1282   전시 9.11 2006/09/11 457
1281   전시 2.21 [1] 2008/02/20 456
  [1][2][3] 4 [5][6][7][8][9][10]..[68]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u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