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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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8-04-04 21:27:02, Hit : 444)
[re] 전시 4.2




Emerging 8

2008_0410 ▶ 2008_0531



김시내_browser abstract_redemption_자바 스크립트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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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0410_목요일_06:00pm

작가와의 대화_2008_0424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_11:00am ~ 09:00pm

사이렌송_김시내展
2인용1인실_로와정 그룹展
님의 변주곡_류현미展





쌈지스페이스
서울 마포구 창전동 5-129번지
Tel. 02_3142_1695
www.ssamziespace.com






쌈지스페이스는 ‘떠오르는(emerging)’ 신예작가를 소개하는 연례기획 Emerging의 8번째로 김시내의〈사이렌 송_Siren Song 〉전, 로와정 그룹의〈2인용1인실〉전, 류현미의〈님의 변주곡〉전을 쌈지스페이스 1층, 2층, 3 층 갤러리에서 각각 개최합니다. 우리는 기성세대로부터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행동양식을 배우게 되지만 변해가는 환경에서 생겨나는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이번 전시에 초대된 작가들은 기성세대가 전수하는 관습과 행동의 메커니즘에 부딪히고 고민하는 젊은이들로서 각자의 고민을 설치작업으로 보여줍니다. 기성세대들의 관습, 사회 인식의 구조, 믿음의 체계를 바라보면서 도출해낸 각자의 해석에 입각하여 이들은 이와 타협하고 재창조 낸 자신들만의 논리를 제안합니다.




김시내_sirensong_sound insallation, wax, tree neon, sound_2007



김시내_sirensong_sound insallation, wax, tree neon, sound_2007_부분


사이렌송_김시내展 ● 은 보들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이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컴퓨터, 사이버네틱, 모사코드와 모델이 근간이 되는 현재 사회를 반영합니다. 그의 미디어 작업, 〈브라우져 앱스트랙트 Browser Abstract〉는 인간의 논리전개방식마저도 영향을 받고 있는 컴퓨터세대를 상징하는 브라우져 이미지를 모티브로 하여 제작한 추상화 작업입니다. 그리고 〈Siren Song〉은 귀를 막아 허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현대인을 은유하는 사운드 설치작업, 입니다.




로와정_씨름-8개의 이미지중 3번_디지털 프린트_가변크기_2007



로와정_The door_디지털 프린트_2007_부분



로와정_남자는 소모품이다-18개 중 6번_디지털 프린트_가변크기_2006_부분


2인용1인실_로와정 그룹展 ● 은 때로는 2인실, 때로는 1인실로 변용되는 침실 작업인 〈2인용1인실〉과 서로의 앞에 놓여진 문을 닫아주는 이미지의 비디오 작업인, 〈The Door〉를 선보여 결혼이라는‘실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남녀관계에 있어서의 현실적인 솔루션을 제안합니다. 그들은 결혼 이전부터 남녀간의 평등한 화해의 시각을 제시하는 도상 작업을 제작하여왔습니다. 이러한 이전의 작업이 카니발리즘 (cannibalism)에 입각, 남녀가 완벽한 하나가 되는 방법을 도상화하여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2인용1인실〉전은 노윤희 정현석으로 구성된 로와정 그룹의 세 번째 개인전이며 아트스펙트럼에 선정된 작가이기도 합니다.




류현미_멀티타워, 4 미터, 음료수 병, 찌라시_디지털 프린트_가변크기_2008



류현미_한성종합유통_디지털 프린트_80×60cm_2008



류현미_no.1_디지털 프린트_15×15cm_2008


님의 변주곡_류현미展 ● 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는 한물간 찬송가의 변주곡 공연이자 일련의 설치작업으로 구성된 개인전의 제목입니다. 여기서 희망이란 우리가 맹신할지도 모르는 개인으로서 혹은 집단으로서 취하는 행동들의 원동력이 됩니다. 희망을 향해 매진하는 우리의 모양새를 작가는 신앙의 체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미 한물간 그래서 수많은 변주곡이 만들어지는 신앙적인 모습을 작가는 항상 용도 변경될 수 있는 교회의 첨탑과 종교와 관련된 설치물에 비유합니다. ■ 쌈지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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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현_성유진

2008_0410 ▶ 2008_0504 / 월요일 휴관



성유진_Save yourself_다이마루에 콩테_130.3×162.2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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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0410_목요일_06:00pm

갤러리 스케이프 기획展

관람시간_화~금_10:00am∼07:00pm / 주말_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스케이프_GALLERY SKAPE
서울 종로구 가회동 72-1번지
Tel. +82.2.747.4675
www.skape.co.kr






여기 선을 반복하는 두 화가가 있다. 이들의 화폭을 들여다보면, 하나는 선이 그어지며 형상이 상쇄되어 가고, 다른 하나는 무수한 선들이 정연하게 늘어서면서 형상이 생겨난다. 형상의 유/무라는 측면에서 서로 상반되어 보이는 두 작업은 근본적으로 ‘그리기’로서 탐구되어온 것이다.




남학현_먹빛 얼굴_한지에 먹_122×81cm_2007


한지 위에 전통 채색화의 안료를 사용하여 선들을 겹쳐 그린 남학현의 회화는 이미지가 눈에 잡힐 듯 말 듯 애매하다. 희미한 선들이 서로 중첩된 가운데서 포착된 인상은 금세 선 속으로 흐릿하게 사라지며 희열과 아쉬움을 동시에 남긴다. 반복되는 선속에서 유년기의 인상을 신기루처럼 포착했던 2005년도 이후에 그의 회화는 선으로부터 실루엣을 희석해가며 형상의 재현에서 벗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구체적인 이미지의 포착으로부터 감흥을 환기하기보다는 인간과 세계에 있어 본질 그 자체로 접근하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이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감흥이나 사라졌다 문득 떠오른 기억, 손에 닿아 오는 한낮의 태양빛 등 언어로 표명되지 않은 세계에 대한 표상은 교차하는 그리기 속에서 때로는 대상의 포착으로, 때로는 불어진 감정으로, 때로는 선들의 풍경으로 어느 날 문득 일어날 것이다.




남학현_하늘색 얼굴_한지에 채색_160×121.5cm_2007



남학현_mud_캔버스에 밀랍, 안료_73×60.5cm_2007


성유진의 회화에서 고양이는 개인이 처한 정신적 상황을 표상하는 자아 반영물로 형상화된 것이다. 작가는 불안, 우울, 트라우마 등 사회 속에서 개인이 홀로 직면하는 내면의 공황 상태를 익숙한 대상인 고양이에 전이하여 이성의 통제 없이 표현해 낸다. 온몸이 일그러지고, 커다란 동공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는 검은 고양이는 인간의 소외된 혹은 억압된 욕망으로부터 탄생된 것으로 또 다른 자아와의 직면이다. 전작에서 보여졌던 고양이의 과도한 신체적 변용은 이상적 자아로부터 괴리되고 분열된 주체의 실체를 엿보게 한다. 근작에서는 이러한 신체성보다는 화폭에 두상을 가득 채운 채 눈을 내리 깔거나 감는 형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작가가 줄곧 고집해온 콘테의 그리기로부터 더욱 안정감 있게 표현된다. 자유로운 필치만큼이나 한 번 그으면 수정이 불가능한 콘테의 반복되는 그리기를 통해 고양이는 더욱 겸허해진 인상이다. 욕망으로부터 시작되어 욕망을 비워내는 성유진의 그리기는 이제 분열과 불안의 증상을 보여주기보다 자신의 징후를 고뇌하고 사유하고자 하는 주체로서의 면모로 다가온다.




성유진_blooming_다이마루에 콩테_162.2×130.3cm_2008



성유진_blooming_다이마루에 콩테_145.5×112.1cm_2008


근래에 계속된 드로잉과 회화에 대한 관심은 매체를 막론하며 ‘그리기’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가능케 했다. 남학현·성유진의 작업에서 주목할 점은 눈에 띄는 소재나 재료적인 특이성을 넘어 ‘그리기’의 방식으로부터 정체성을 획득하며 세계와의 접점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학현·성유진’ 2인전은 선으로부터 시작하여 선들이 접경하는 지점에서 분투하는 두 젊은 작가를 통해 ‘그리기’의 본질과 그 가능성을 논하는 자리가 되고자 한다. ■ 심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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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초상

서정태展 / SUHJUNGTAE / 徐政泰 / painting

2008_0411 ▶ 2008_0502



서정태_푸른초상_장지에 채색_130×80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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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0411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_10:00am~06:30pm




선화랑_SU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84번지
Tel. +82.2.734.0458
www.sungallery.co.kr






선화랑에서 제7 회 선미술상 수상 작가인 한국화가 서정태의 작품전을 갖습니다. 동시대 어느 작가의 채색화보다도 개성적이며 완성도가 높고, 화면구성 및 기법적인 면에서 나름의 독자성으로 채색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 서정태는 80년대 화단에 등단한 이후, 강렬한 진채의 색감과 구성적인 화면을 보여주며 독자적인 소재를 통해 전통 채색화의 기법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 왔습니다. 1984년 동아미술상을 수상, 미술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며 1990년 제 7회 선미술상, 1993년 조선일보 ‘올해의 작가상’ 수상으로 한국화단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금호미술관과 동산방화랑에서의 1998년 개인전 이후 오랜만에 갖는 이번 선화랑 전시는 재료와 기법의 확장을 통해 한국화의 전통이 깃들어 있으면서도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한국화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서정태의 근작을 만나볼 수 있는 반가운 자리가 될 것입니다. ● 서정태는 작품 활동 초기에 전통 채색화의 바탕 위에 한국의 단청과 민화의 요소를 왜곡된 인물들과 함께 화면에 도입하여 원초적인 표현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시대적인 분위기를 대변하기 위하여 사회의 어두운 인물들을 그리기 시작한 서정태는 그 후 커다란 눈망울이 인상적인 인물 초상과 더욱 대담해진 화면 구성으로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푸른 초상들을 그려왔습니다. 인체와의 만남에서 눈이 가진 생명력과 손의 움직임에 더욱 초점이 맞춰진 그의 인물들은 눈과 손의 표정만으로도 그림의 감정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정태_푸른 초상_장지에 채색_160×200cm_2004


이번 전시에서는 새롭게 원색이 가미된 화면의 중심부에 조금은 유쾌해진 눈과 손의 이야기를 담은 소년 소녀상과 90년대 말 「푸른 초상」연작 이래 남, 여의 공존성에 실존적인 의미를 둔 포개진 인물 초상 작업들도 함께 전시되어 그의 장엄한 색채미학과 독특한 화면 구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 서정태는 주문 제작한 닥지를 구긴 후 팽팽하게 화판에 펼치는 그만의 섬세하고 정교한 밑작업으로 바탕 화면에 독특한 마티에르를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바탕위에 구성된 이미지에 빈틈없고 정교하게 채색하는 등 장인적인 솜씨가 돋보이는 그의 작업은, 재료의 한계를 벗어나는 동시에 전통적인 채색물감만으로도 다채로운 질감을 표현하는데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한국화 진채가 유화나 수채화와 어떻게 차별되고 독립성이 유지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의 참맛을 어떻게 절묘하게 살려내고 있는지를 한 눈에 보여줄 것입니다. ● 이처럼 견고하게 절제된 균형과 진채의 아름다움, 밀도 높은 완성도와 더불어 여타의 한국화가 가지고 있지 않은 독창적인 화풍이 담겨진 근작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번 5번째 개인전은, 작가의 선명한 주제의식과 성실함 그리고 창작 에너지를 확인함과 동시에, 그만의 관능적이고 아름다운 인물의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 선화랑




서정태_푸른 초상_장지에 채색_160×145cm_2008


서정태의 그림, 고유의 채색화여서 좋다 ● 화가 서정태를 언급할 때 그의 이름 앞에 '한국화 채색화가'라는 수식을 항상 붙이고 싶다. 그가 채색화가라는 사실, 바로 그 점이 우리에게 각별한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채색화이기 때문에, 그리고 서정태이기 때문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특별한 의미가 오늘날 크게 간과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보편적인 회화의 가치 측면에서 보아야 하는 것이 온당하다. 하지만 화면의 도상적 해석 너머의 질료적 토대가 주는 본질적인 차이 같은 것을 읽어주지 않는 추세 때문에 어쩌면 지금의 우리는 그런 보이지 않는 점들을 읽어내는 능력이 퇴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러한 노력조차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만큼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 전통 한국화를 평가할 때 우리가 가장 잘못하는 것은 바로 채색화를 서양 유화의 대체재 혹은 아류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채색화가들이 가지는 불만 가운데 첫 번째는 채색화의 진정한 묘미와 가치를 읽어주는 독법과 글쓰기 자체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채색화는 재료를 기술적으로 잘 소화하지 못할 때 유화와 비교되어 폄하될 수도 있다. 그러나 김은호, 김기창, 박생광, 천경자 등의 쟁쟁한 거장들이 보여준 채색화의 경지와 내공은 같은 내용이나 이미지의 화면이라 하더라도 유화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음을 기억하자.




서정태_푸른 초상_장지에 채색_133×80cm_2006


특히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색감을 발산하는 한국 채색화의 특징과 묘미는 누구나 쉽게 감지할 수 없다. 그림을 보는 안목과 내공이 어느 정도 쌓였을 때 경험적으로 감지된다는 것이다. 끈적거리고 번들거리는 기름기를 띤 유화가 식상해질 때에서야 그것의 가치와 진면목이 섬광처럼 눈에 들어오게 된다. 바로 이런 감식안이 오늘의 동시대인들에게 사라졌다는 사실은 그림을 보거나 읽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다. 현대의 작가들, 특히 젊은 작가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내용이다. 어떤 과정을 통한 경지를 무시하고 유화를 다룰 때의 감각과 제스처로서만 접근해서 분칠한 것 같은 화면들이 채색화 폄하의 빌미가 되기도 하고 또한 젊은 작가 좌절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 그러나 이 점은 오늘의 젊은 작가들만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거장들의 초창기 습작 역시 그랬다. 예컨대 기교를 완성하면 내용이 공허하고, 내용적으로 충실한 작품은 채색화 고유의 미감을 만족시키지 못했다거나 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채색화의 참맛과 묘미를 주는 작가가 많지 않다는 사실도 이와 같은 양상을 반영하고 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화가 서정태가 단순히 화가로서가 아니라 채색화가로서 우리에게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각별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한국화 화단에서도 작가에게 거는 기대가 컸으며, 작가 역시 의연하게 자기 회화의 정체성을 탐구하면서, 동시대 소임에 대해서도 깊이 고뇌하는 작가상을 보여 온 터다. 93년 조선일보가 제정한 '올해의 작가상'에서 수상자로 선정된 이유도 채색화를 통한 전통미술 중흥과 창조적 발전이라는 중책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정태_푸른 초상_장지에 채색_160×160cm_2006


작가의 화면이 가지는 성취들 중 첫째로 꼽고 싶은 점이 바로 채색화 느낌을 표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채색화의 확장된 미감을 절묘하게 실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채색화는 조금만 덜 숙성되어도 금방 약점이 드러나게 마련인데 작가는 이점을 잘 극복하고 있다. 작가는 종이의 마티엘을 독특하게 내는 것에서부터 다양한 자기만의 방법들을 장인적으로 축적해왔다. 그 결과 종래 보아온 여타의 채색화와는 화면의 분위기나 색감이 사뭇 다르다. 특히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과 관련하여 등장하는 초상 이미지들과도 적절하게 밀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또한 작가에게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독특하고 개성적인 이미지이다. 「푸른 초상」연작으로 잘 알려진 그의 화면은 결코 편안한 서정적 화면이 아니다. 무언가 불안한 그림자를 안고 있는 내면을 조금씩만 열어 보이고 있다. 최근 들어 조금은 밝고 해학적인 분위기도 엿보이고는 있으나, 여전히 오랫동안 견지해온 어두운 분위기가 쉽게 걷히지는 않았다. 작가가 자신의 개성을 쉽게 버리지 않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급변하는 사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따라다니는 실존의 그늘을 떨치지 못하는 이상 크게 변할 수 없는 것으로도 보인다.




서정태_푸른 초상_장지에 채색_133×80cm_2008


초상이라는 것이 대상인물의 개성을 해석하고 전달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지만, 그의 초상은 오히려 대상의 개별성이 제거되고 공통적으로 부각되는 하나의 정형화된 아이콘으로 수렴되고 있다. 바로 우리 시대의 실존에 대한 자화상이 아닐까. 생기 없는 박제와도 같은 모습은 그야말로 삶과 죽음의 기로와 문턱에 놓여 있는 존재를 끊임없이 묻고 또 침묵하는 독백과도 같은 것이리라. 태연하게 그러나 강력하게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몸짓 또한 읽을 수 있다. 자신의 실존과 희망, 유토피아를 기만당한 동시대인의 소리 없는 절규로 들리기도 한다. ●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여체이거나 여성의 얼굴이다. 하지만 어떤 관능과 욕망의 테제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허용된 오독의 범위에서는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같은 부류로 읽혀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작가는 죽음, 그림자, 어둠을 의미하는 삶의 알레고리를 의식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마치 팽팽하게 조율된 현악기처럼 미세하게 흔들리는 바람결에도 어떤 굉음이 터질 것 같은 긴장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 이유를 작가는 쉽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 침묵이 때론 더 훌륭한 담론일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 한편 인물의 배경에 작가는 다양한 세계상을 더욱 간결한 삽화적 도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인물의 여백 공간에서 아기자기하게 펼쳐지는 이미지들이 오히려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는데, 그 재치와 감각이 어두운 먹구름 사이로 보이는 햇살처럼 돋보인다. 절제된 잿빛 혹은 군청색조의 탄탄함과 화면 속에서 간간히 보여주는 강렬한 색상의 상큼함이 여타의 채색화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서정태_푸른 초상_장지에 채색_160×200cm_2004


오늘의 예술이 그야말로 해볼 실험은 다 해본 끝에 ‘현대’라는 막다른 궁지에서도 사회적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종교배라는 강력한 패러다임에 기인한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무수히 많은 공해를 배출하면서도 질긴 생명력을 영위할 수 있는 원천도 결국은 무차별적 교배와 생식능력 때문이다. 이러한 잡종적 문화코드는 결국 종래의 고유 체계들을 해체하는 결과로 귀결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이 바로 전통적 양식이나 장르가 소멸 일보 직전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 오늘의 미술에서 보편화 논리에 직면한 전통 한국화의 딜레마는 이제 수습이 불가능한 상태로 보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미술계가 주체적 신념으로 저항의 몸부림을 보였으나, 이제는 대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인 것 같다. 물론 전통 산수나 문인화의 경우는 그나마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전통 채색화의 경우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우리는 그동안 서양화와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일에만 열중했지 채색화가 왜 존속되고 발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강력한 조형적 호소와 설득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별로 없다. 자칫 서양화의 조형논리에 함몰되어 채색화 기반의 우리다운 그림이 사라져갈 위기에 그나마 위안을 얻고 든든한 것도 바로 그가 있어서다. 채색화가 서정태말이다. ■ 이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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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JUNGWOONG

이정웅展 / LEEJUNGWOONG / 李錠雄 / painting

2008_0409 ▶ 2008_0422



이정웅_Brush_한지에 유채_140×191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인사아트센터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409_수요일_05:00pm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1층
Tel. +82.2.736.1020
www.ganaart.com






붓을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이정웅의 신작전! ● 하얀 한지 위에 붓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으로 잘 알려진 중견작가 이정웅(1963-)의 신작전.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작업 초기부터 한국적인 정서를 화면에 담아내기 위한 다양한 작업을 모색해 온 작가는 90년대에 도자기와 꽃, 과일 등의 정물을 선보이다가 2000년 이후 부터 붓이라는 대상에 주목하고 있다. 한지 위에 먹을 듬뿍 머금은 붓을 유화물감으로 그려내는 작업은 소재와 기법 면에서 동양화와 서양화, 추상과 사실적 구상을 아우르는 것이다.




이정웅_Brush_한지에 유채_122×195cm _2008


특히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100호 이상의 붓 그림 20여점은 전작에서 종이에 스며든 먹물을 주로 그려서 표현해왔던 것과는 달리, 작가가 한지위에 올라서서 직접 붓을 내리찍거나 획을 긋는 행동을 통해 역동적인 움직임의 흔적을 담아내고 있다. 마치 실제 오브제를 마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치밀한 묘사력과 더불어, 힘차게 내려 그은 획 위에 조용히 놓여있는 이정웅의 붓그림은 생동감 넘치는 강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이정웅_Brush_한지에 유채_140×140cm_2008


하얀 여백 위에 역동하는 붓의 움직임을 담다! : 현대미술의 다중적 이야기를 포용하는 그림 ● 이번 전시에 보여지는 붓 그림은 더욱 기운생동한 모습이다. 붓은 가지런히 놓여 있지만 화면을 가득채운 먹의 흔적들은 힘찬 움직임을 머금고 있으며, 사방으로 튀긴 먹물은 무겁고 강하게 내려쳐진 듯 에너지를 발산 하고 있다. 작가는 직접 맨발로 한지 위에 올라서서 커다란 붓을 들고 일획을 긋는다. 그 집중의 순간과 그 순간의 흔적이 먹 번짐으로 화면을 울린다. “대상은 붓이지만 먹 번짐이 주제이며, 추상을 시도한 것이다.” 라는 작가의 설명처럼 우리 전통에 담긴 정신적인 힘이 실물과 같이 묘사된 붓의 표면을 압도하고 있다. 먹과 붓이라는 동양화의 소재를 사용하여 추상적 먹의 번짐과 일필휘지의 기를 담아내면서 그 위에 유화라는 서양화의 전통적인 재료로 붓의 형상을 그리고, 구상화가 주류를 이루는 대구라는 지역적 배경 속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묘사의 테크닉으로 실재와 재현의 문제를 아우르는 이정웅의 붓 그림은 동시대미술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다중적인 모습들이 공존하며, 다양한 개념과 장르들 사이를 자유롭게 부유하는 지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 인사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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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어떤 곳 - 식물원, 기념촬영

강기훈展 / KANGKIHUN / 姜棋薰 / painting

2008_0409 ▶ 2008_0422



강기훈_Some Other Place_또 다른 어떤 곳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0×200cm_20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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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0409_수요일_06: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_10:00am~06:00pm





덕원갤러리 4,5층
DUKWO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82.2.723.7771~2
www.dukwongallery.co.kr






공간에 대한 재인식 - 식물원 ● 강기훈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인공적인 공간과 인간들 사이의 관계와 의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공간 중에 하나인 식물원이라는 특정한 공간을 선택하였다. 작가는 식물원이라는 공간이 어떤 역할을 하고 사회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파악하기 위해서 그 안에 구성원인 식물들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전국에 있는 식물원을 찾아다니며 조사하였다. 직접 전국을 돌며 살펴본 식물원은 일단 사회의 관심에서 멀어진지 오래되었고, 안에 있는 식물들의 배치 방법이나 구성이 비슷하고, 구조물도 유리로 된 공간도 거의 비슷해서 규모만 제외하고는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또한 식물원은 방문하는 관람객의 수도 현저하게 줄어든 소외받은 공간일 뿐만 아니라 관람객들의 모습들도 식물원에서 그냥 스쳐지나가면서 기념사진을 찍듯이 사진을 찍거나 무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현장답사를 통해 작가는 현재 식물원의 모습을 파악하였다.




강기훈_Eloigned Garden_옮겨진 정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2×194.0cm_2008


그러나 식물원은 과거에 서구 유럽에서 그들의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진귀한 열대의 꽃과 나무들을 외국에서 들여와 키우면서 그들의 국력과 그 위세를 떨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 있는 식물원도 일제 시대에 창경궁에 만들어진 식물원을 시작으로 식민지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신기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명분하에 자신들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 졌다. 그리고 해방과 더불어 식물원이라는 공간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휴식의 공간이자 유희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해외여행도 자유롭고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을 통해서 수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현대사회에는 과거와는 다르게 더 이상 식물원이라는 공간은 특별하거나 신기한 공간이 되지 못한다. 이제는 식물원은 현대사회에서 동떨어진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강기훈_A Trespasser_침입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7×260cm_2008


강기훈의 작업에서는 이러한 식물원이 주된 소재가 된다. 처음 식물원이라는 소재에 접근하였을 때는 기하학적인 온실 건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서서히 작가의 눈은 식물원 안으로 향한다. 화면 전체에 철제로 된 골조와 유리로 이루어진 유리방인 식물원의 공간을 평면적이고 원색적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이런 실내의 표현은 식물들 사이에 난 길이나 구조물들이 일반적인 구도와는 다르게 이상하게 어긋나 있다. 또 그 안에 꾸며져 있는 나무와 선인장 같은 열대 식물들은 생기 있고, 정글처럼 무성하고 빽빽하게 표현 되어있다. 식물들 사이사이에 난 길은 빨간색이나 노란색의 원색으로 표현되어 평면적이고, 기괴하면서도 이상한 공간으로 표현되고 있다. 작가가 만들어내는 온실은 이상하리만치 평면적이면서도 입체적인 공간이 뒤섞여있는 이질적인 공간이다. 우리는 이 공간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당황스럽다. 생명이 넘치는 공간이지만 숨막힐 정도로 답답하고 현기증이 난다. 이러한 공간속의 인간들은 어떠한가? 정글 같은 숲 사이로 사람들이 등장한다. 대부분의 인물은 작가 자신의 모습으로 들어나는데 표정이 무덤덤하고 멍한 표정으로 식물원의 이곳저곳을 응시하거나 우산을 쓴 모습으로 나타나 이상하고 묘한 공간에 갑자기 나타난 모습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작품에 나오는 공간과 인물과 식물들은 서로 묘한 긴장관계에 놓여있다. 도대체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일까?




강기훈_Unflyable UFO_날지 못하는 비행접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60×374cm_2008


인간이 만들어내는 공간이라는 것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며 퇴색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렇게 의미가 달라지고 변해버린 인공적인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인간은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다 점점 소외시키고 다시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반복 속에서 소외된 공간인 식물원은 작가가 이야기하고자하는 ‘다른 어떤 곳’이다. 위에서 이야기 하였듯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식물원이라는 공간은 변해갔고, 우리에게 더 이상 신비함과 경외감을 일으키지 못하는 ‘다른 어떤 곳’ 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식물원 안에 있는 식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장소에 존재하고 있고, 관리인들의 정성스런 관리를 받으며 변함없이 생기 있고, 건강하게 존재한다.




강기훈_The Discovery of Desire - Commemoration Picture-Taking
욕망의 발견 - 기념촬영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1.8cm×454.6cm_2006~8


작가는 이러한 식물원을 우리와 같은 시간과 장소에 공존하고 있지만 ‘다른 어떤 곳’이라는 장소로 제시하여 이 함축적인 공간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자 한다. 식물원의 인공적인 구조물과 그 안에 있는 다양한 식물들, 작가 자신의 모습과 익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 인간 사회의 단면을 식물원이라는 공간과 그 안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에 투영하는 것이다. 생기 있어 보이지만 불안해 보이는 식물들, 차갑고 기하적인 차가운 건물은 무표정한 인물들을 통해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에 자신을 잃어버린 채 적응하고 변해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서 작가는 인공적인 공간 속에 구성되어있는 우리들의 자아와 우리들의 위치를 발견해내고 그 내재하고 있는 인식하지 못하는 의미들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식물원을 찾아오는 사람들과 식물원이라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자신도 모르게 현대사회에 종속되어 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해 낸다.




강기훈_Stuffed Landscape 박제된 풍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cm×162.2cm_2006


강기훈은 공간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소외시키며 다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반복하는 인간들의 부조리와 역설의 모습을 ‘다른 어떤 곳’ 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자.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속에 얼마나 많은 ‘다른 어떤 곳’이 존재하는지 말이다. 이는 현대사회에 길들여진 우리의 모습이며,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모르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 신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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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n Arad

론 아라드展 / RON ARAD / design

2008_0327 ▶ 2008_0420



Ron Arad_Big Easy Chair_New Orleans_No Idea but I'm Sure It's Going to be OK
pigmented polyester reinforce_90×60×80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가나아트센터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327_목요일_06:00pm



퍼포먼스_2008_0327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_10:00am ~ 07:00pm





가나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평창동 97번지
Tel. +82.2.720.1020
www.ganaart.com






세계적인 디자인 거장, 론 아라드 Ron Arad 국내 최초 개인展 ● 이스라엘 텔 아비브 출신의 론 아라드는 1983년 런던에 디자인 공방과 쇼룸을 갖춘 ‘One-Off Ltd.,’를 설립한 이래 혁신적이고 예술적인 디자인 작품들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런던의 AA스쿨(Architectural Association)에서 이라크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 (Zaha Hadid)와 함께 60년대 급진적 건축의 대가인 피터 쿡, 베르나르 츄미(Peter Cook, B. Tschumi)에게 사사받았고, 1994년부터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일본 등 세계 유수의 디자인상 및 올해의 디자이너상을 수상하였다. 특히 2002년에는 영국 왕실로부터 영국 디자이너 최고의 영예인 RDI(Royal Designer for Industry)칭호를 수여 받았다.




Ron Arad_Box in 4 Movements_Olive wood_42×42×42cm_1983


     론 아라드는 1980년대 초부터, 폐허적, 해체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개성 넘치는 디자인으로 기성 디자인계를 경악하게 만들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 후 자신만의 철학과 천재적인 예술적 기질이 스며든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디자인계와 미술계를 아우르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이는 소더비(Sotheby’s), 크리스티(Christie’s) 등의 주요 경매 기록을 통해 증명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런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 파리 현대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08년 10월 파리 퐁피두센터와 2009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금속 조형의 개성이 잘 표현된 런던의 Belgo 레스토랑, 동경 롯본기 힐스에 위치한 일본의 대표적인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의 스토어(Y’s Store) 이태리 두오모 호텔(Duomo Hotel), 텔 아비브 오페라하우스 등이 있다. 전세계를 무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론 아라드의 초기작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반적인 작품 세계를 아우르는 작품들과 전시를 맞춰 방한하는 작가를 직접 만나고 그의 퍼포먼스를 관람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Ron Arad_Arcylic Oh-Void_Slabs of clear arcylic red vertical_58×119×66.5cm_2006


장르를 넘나들며 시대를 앞서가는 혁신가 ● 론 아라드는 작품을 통해 미래의 예술과 삶에 대한 무언가를 제시하는 혁신가적 기질을 발휘한다. 마치 소년과도 같은 호기심과 열정으로 가득한 그는 신기술에 대한 관심이 유별나다. 특히 그의 최근작들은 마치 외계에서 온 듯한 물체를 보는 것 같은 형이상학적 구조와 조형미를 뽐낸다. 장르를 넘나드는 프로젝트에도 흥미를 가진 그는 가구, 제품 디자인 뿐 아니라 공간 디자인과 건축 작업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주목받는 의류 브랜드 돌채 앤 가바나의 초대로 열린 2006년과 2007년 두 번의 개인전에서는 Bodyguard 시리즈와 Blo-Void 시리즈를 선보였는데, 이들 전시는 서로 다른 두 분야의 최고가 만났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Ron Arad_A.Y.O.R(At Your Own Risk, 1991)_Patinated steel, AP1_49×46×100cm_1991


“…우리는 물건을 제조할 때 다음의 방식을 하나 이상 취한다. Waste(절삭, 대패질 등), Mould(압축 등), Form(벤딩, 프레싱 등의 기계가공), Assemble(용접 등). 나는 여기에 ‘제5의 방식인 Grow(컴퓨터로 레이저 빔을 제어하여 물건을 한 켜씩 덧붙이거나 삭제하는)’를 덧붙이고자 한다. 컴퓨터의 도움으로 우리는 어떤 것도 그리고 만들고 제조할 수 있다.  가상실현은 이제 그 한계가 없다. 현재를 잘 들여다 보라. 미래가 뚜렷이 보일 것이다. 현재란 너무 환상적이라 멈출 수가 없고, 미래에 대해 걱정할 틈이 없다…” ■ 론 아라드_Ron Arad




Ron Arad_Blo-Void 5 Blue_Steel mirror polished tinted blue and fishnet of steel_55×120×74.5cm_2004


론 아라드 만의 새로운 금속 미학 ● 론 아라드는 1980년대 말부터 금속을 주된 소재로 작업하였다. 거칠고 차가운 느낌의 금속은 표면착색이나 도금처리를 하지 않은 채, 소재 자체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내는 동시에 부드러운 곡선과 유기적인 형태로 조형미를 더한 풍부한 감수성을 지닌 오브제로 재탄생 되었다. 그는 의자를 쿠션이나 가죽 등 부드러운 소재와 연결시키는 통념에 반기를 들며, 기능성과 편리함 등 본연의 요소에 충실하면서도 마치 조각작품을 보는 듯한 감흥을 주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Well Tempered Chair(1986~1987), Big Easy Reed Sofa(1989) 등 장인적 솜씨가 발휘된 작품들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1990년대 초에 제작된 책꽂이 ‘Bookworm’은 ‘수평 선반’이라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으며 유연한 곡선의 선반에도 편리하게 책을 꽂을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그의 디자인은 항상 새로운 조각적인 방법을 시도하면서 정감으로 가득 찬, 관능성과 실용성을 고루 갖춘 것으로 늘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Ron Arad_Bodyguard_Polished and annodized red aluminum_85×190×122cm_2006


폐허적이고 비판적인, 그러나 감성적이고 창의적인 ● 론 아라드가 활동을 시작하던 80년대 초, 영국은 팝과 히피, 아방가르드 등 사회적 변혁이 생동하던 시기로 비평가들은 당시의 디자인적 경향을 일컬어 아방가르드 디자인의 새로운 르네상스라 평가하였는데 론 아라드는 그러한 시대적 흐름에 기여한 대표적인 작가로 거론된다. 당시 30대 초반의 론 아라드는 해체주의적 철학이 담긴 작업들로 디자인계의 이단자가 되었고, 그의 이름에는 ‘폐허성’, ‘해체주의’, ‘아방가르드’와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이는 활동 초기, 폐차된 ‘Rover’ 자동차의 시트와 파이프를 소재로 버려지고 폐기된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드러낸 ‘Rover Chair(1981)’와 같이, 각종 재화를 폐기 처분함으로써 유지되는 산업사회의 정황을 날카롭게 비판한 작품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콘크리트 덩어리로 만든 턴테이블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Concrete Musical System’은 폐허의 느낌과 음악이라는 감성적 매체를 접목시켜 묘한 아이러니를 자아내며 또 한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의 작업은 점차 특정 소재와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 실험적인 기법과 디자인을 통해 마치 ‘물질’ 그 자체를 보는 듯한 유기적인 형태로 발전되었다. 작품은 단순한 하나의 가구가 아닌 형이상학적인 형태로,  마치 마티스(Matisse)의 드로잉을 떠올리는 대담한 곡선과 에너지로 가득하며, 물질의 고유한 성질을 유지하는 동시에 형태의 미학적 본질에 더 집중한 작품들은 기능적 형태와 생산성에만 치중하는 기존의 디자인계와 차별되며 단연 돋보인다. 유려한 곡선미와 폐허성을 가감없이 드러낸 그의 작품들은 숨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사색의 여유를 선사할 것이다. ■ 가나아트센터




Ron Arad_Restless Stainless & Patinated Unique cu
Stainless and patinated steel_289×48×214cm_2007


“…. 많은 공상과학소설가들이 묘사한 외계침입자, 핵전쟁, 각종 대재앙들은 한편으로는 공포심을 조성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폐허를 새로 일구어 신세계를 건설하는 기쁨을 선사한다. 이는 런던 디자인계에도 영향을 주어 신예 디자이너인 론 아라드, 톰 딕슨(Tom Dixon), 대니 레인(Danny Lane)의 작품을 통해 표현된 것 같다...” ■ “80’s Style-Designs of the Decade, P.122” _ A. Bang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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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DESIRE

오화진展 / OHHWAJIN / 吳和珍 / painting

2008_0405 ▶ 2008_0413



오화진_The Arter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9×116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31217b | 오화진 개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405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_10:00am ~ 06:30pm




아트서울 갤러리_ARTSEOUL GALLERY
서울 마포구 용강동 112-1번지 민영빌딩 7층
Tel. +82.2.730.8478






금번 오화진 작가의 『Pre-Desire』展은 끊임없이 자아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는 작가 활동의 일환(一環)이며 초기 작업의 화두였던 ‘우상타파'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그녀가 보여주는 인간이 추구하고자하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욕망을 채우는 것에 있다고 보고 그 일련의 진행들이 인간 개개인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화와 예술의 산물(産物)일 것이다.




오화진_My own recipe 1_종이에 아크릴채색, 과슈_55×46cm_2007



오화진_My own recipe 2_종이에 아크릴채색, 과슈_65×48cm_2007


다르게 표현한다면 오화진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desire)이라는 이름은 프로이드가 말한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의 체계에서처럼 사회의 가치와 이념 그리고 도덕이 내면화된 내적 가치를 형성하고 발달시키게 되며 현실세계의 테두리 안에서 외부세계와의 교섭을 통한 지속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모든 활동(input)이 문화와 예술이라는 욕망의 결과물(output)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오화진_Mermate 1_종이에 아크릴채색, 과슈, 파스텔_55×46cm_2006



오화진_Before, five minutes_종이에 아크릴채색, 과슈_30×30cm_2007


그녀의 작품 중 「my own recipe」 은 욕망과 연결 지을 수 있는 여러 사물, 식탁, 소, 저울, 가시만 남은 물고기 등을 통해 욕망추구 법을 상징화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 내포하고 있는 출산에 의한 외상(birth trauma)과 도덕적 장벽이 높은 사회에서의 이성애적 행위 또는 동성애적 행위에 대한 심리적 부담과 거부상태가 만들어 내는 억압된 욕망들의 면면들이며,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하는 개인이 국가, 도덕, 법률, 종교 따위의 힘을 빌려 일반의 안녕과 질서 유지, 공공의 복리 증진을 꾀하려는 욕심을 넘어서 지나치게 탐하는 탐욕으로 ‘우상’을 만들고 ‘욕망’을 지나 남근과 같은 공격적인 ‘탐욕’으로 점철(點綴)된 모습의 표현인 것이다.




오화진_Zero_종이에 아크릴채색, 과슈, 파트텔, 색연필_65×48cm_2006



오화진_Yesterday's Present_종이에 아크릴채색, 과슈, 파트텔, 색연필_65×48cm_2006


저울 위에 올라서 있는 소의 모습처럼 금번 전시를 통하여 그녀만의 'my own recipe'라는 ‘욕망’(desire)을 채우기 위한 힘든 균형 잡기가 새롭게 시작 되었다. 오화진 작가의 철학적 고뇌와 물음들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인, 문화인으로써 애정 어린 깊은 관심과 사랑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김한준




아트서울 갤러리 오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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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의 정원

구이진展 / KOOEGENE / 具利珍 / painting

2008_0405 ▶ 2008_0427 / 월요일 휴관



구이진_그녀의 마법을 풀거나 Break her spel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50cm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터치아트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405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_11:00am ~ 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터치아트_GALLERY TOUCHART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235번지
예술마을 헤이리 ㈜터치아트
Tel. +82.31.949.9437
www.gallerytouchart.com






언제부터인가 서점에는 성인을 위한 동화책과 그림책들이 등장했다. 줄거리는 상상만으로 일상의 일탈이 가능하게 하며, 그들이 갈망하는 그 무언가를 자극 한다. 자신이 나서 말하기 어려웠던 이야기와 숨기고 싶은 상황을 아이라는 등장 인물을 통해서든 다른 의인화적 방식을 통해서든 만들어진 비현실적인 상황을 통해 현실적 상황을 말하고 있다. 그 상황은 아주 은유적이고 비유적이다. 이는 우리에게 어릴 적 순수했던 동심을 다시금 꺼내게 하며,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주기도 하며, 살아가면서 접하게 되는 문제, 고민 등을 대처할 때 발생하는 심리적 작용을 최대한 노출시키게 한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감정과 사고의 기능을 활발히 하여, 무한한 상상력을 발생시킨다. 이전의 순수함과 지금의 그렇지 않은 면, 즉 인간의 양면성을 대립시키고 절충해 가는 다양한 성인을 위한 동화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구이진_손 Hand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60cm_2007



구이진_손 Hand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70cm_2007


이번 전시 『잃어버린 것의 정원』은 바로 이런 우리들의 이야기다. 우리가 놓치고 잃어버린 오래된 우리의 모습과 아름다운 기억들, 그리고 그 기억들을 하나하나 이어가는 스토리로 풀어내고 있다. 작가 구이진은 어릴 적부터 자신을 따라다니는 조그만 아이가 있다고 말한다. 그 아이는 그녀 자신일 수도, 아님 다른 어느 누구의 존재로 대신할 수도 있다. 그녀는 그 아이를 통해 내적 존재감을 성장시킨다. 현실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며,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어 간다. 이는 바로 고통이 수반되는 내면적 성장 과정을 매우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구이진_손 Hand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5×90cm_2007


작가 구이진의 작업은 동화적 모티브를 중심에 두고 있다.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눈망울과 파스텔 톤의 색감, 가냘픈 다리, 디테일한 옷의 패턴, 어느 하나도 허술히 놓치지 않고 그려나간다. 아이를 감싸고 있는 손의 모습은 그들의 눈망울에 담긴 감정에 따라 다르다. 넓게 시원스레 펼쳐진 손, 수줍게 감싸 안은 손, 그리고 조심스럽게 오므린 손. 마치 그들 등뒤에 달린 날개와도 같아 보인다. 천사의 날개. 그것은 보이는 것에 대한 일차적 의미가 아닌 그 이면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의미로 해석된다. 직설적인 표현이 아닌 포개고 포개어진 비밀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구이진_손 Hand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65cm_2007


우린 작업을 바라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품 속 인물이 보여주고 있는 독특한 상황을 통해 심리적 일탈 욕망과 갈등의 과정과 대면하게 된다. 『헨젤과 그레텔』, 『빨간 모자』 등 다양한 동화이야기를 통한 평범한 주변 인물들의 일상적 모습을 특정 이야기와 결합함으로써 그들의 일상과 동화적 텍스트 간의 연관성을 끌어내고 있다. 그들의 마음에 담고 있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들도 있다. 감추려 하지만 감추어 지지 않는 심리적 움직임을 표면적 행동이나 직접적 언어이기 보다 작품 전체의 아우라(aura)를 통해 직감하게 된다. 이렇듯 작업의 동화적 모티브는 순수함을 잃지 안으려는 모습과 동시에 그 이면에 -양의 탈을 쓴 늑대 이야기처럼- 대립되는 우리들의 불안정한 모습을 영상처럼 상황을 설정해 나간다. 이렇듯 그녀는 인간 내면 심리적 예민함과 이지적인 사고 방식을 통해 자신의 사고와 행동에 관해 집중하고 있다.  




구이진_새 Bird 1,2,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60cm×3_2006



구이진_초콜릿으로 만든 방 Chocolate room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40cm×3_2005


작가는 지극히 자아반영적인 작업을 진행하며, 또 다른 작업을 시작할 땐 조각처럼 흩어져 있던 다른 요소들을 퍼즐처럼 맞추어간다. 그렇게 이전 작업과 연결 지으며 조금씩 잃어가는 자신의 정원을 채워나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조금씩 자아를 찾아간다. 새로운 국면을 접했을 때, 자신의 내면은 더 강해지고 또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질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번 전시 『잃어버린 것의 정원』을 통해 우린 작가의 호기심과 심리적 갈등의 절충 과정을 이해하고, 그 스토리 텔링 과정 속에서 우리도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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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나르시시즘_Distressed Narcissism

박종호展 / PARKJONGHO / 朴鍾皓 / painting

2008_0405 ▶ 2008_0430



박종호_산책III-서글픈 꿈_캔버스에 유채_90×90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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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0405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_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아트팩토리(헤이리)_ARTFACTORY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134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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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이가 태어난 후 생계를 위해 작업을 놓고 직장을 갖게 되었다. 그토록  불편해 했던  관리자들의 체제에 종속되면서 상당한 보상을 얻을 수 있었지만, 끊임없이 소모되고 반복되는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일상으로 인해 나는 자신이 인간으로서 존엄하다는 생각을 잃어갔다. 아니 버리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무엇이 득인지 실인지 판단하기 위해 삶의 가치를 판가름하던 기준들을 하나 둘씩 묻어 두어야만 했다. 사회의 말단인 내게 문제가 생겼지만 견고해진 상부 구조들로 인해 원인을 찾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란 힘겨워하는  자신을 문제 삼는 것 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사랑하려면 지독한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일을 그만두고 평택의 한 돼지 농장을 물어물어 찾아 갔다. 그리고 그저 수동적인 그것들 속에서  현실의 나를 보았다. 나는 추구해온 인간을 버리고 생존경쟁의 논리에 수동적으로 길들여져야만 했던 것이다. 친우들에게 이야기하니 사람인생 다 똑같지 않나 한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고, 나는 되고자 했던 인간의 이야기를 그들에게 할 수 없게 되었다.




박종호_Narcissism-아이는 자라서 나를 닮겠지_캔버스에 유채_97×145cm_2007



박종호_Last Scene-그래도 마지막엔 웃자_캔버스에 유채_97×145cm_2007


근대이후 계몽은 인류를 길들이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동류의 인간에게 부여하였다. 그것에 있어서 가장 우선시 된 것은 진리를 추구함으로써 얻는 만족감이 아니라 이윤을 위한 조작, 즉 효율적인 처리방식이었다. 대중은 이러한 기준아래 최대한의 다수가 견딜만한 정도로 구속되고 통제된다. 또한 욕망이 서로 부딪히는 과정에서 조직과 그 안의 개인들이 만드는 체제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자유의 영역을 보다 넓히기 위해 상대적으로 타자의 영역을 제한할 것을 열렬히 원하므로 서로를 구속하는 얽혀진 그물 속에서 대중은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교묘한 그물망 속에서 착각과 환영이 진정한 자유와 철학, 이상향을 대체해 왔고, 경계의 대상이었던 자본 숭배와 물신주의는 결국 극단에 도달하고 말았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세상이 우리 스스로가 원하던 세상일까. 내가 생각하는 이 시대의  현실은 부정적인 것(긍정하기 싫음)과 가까우며, 절대적인 것(거부할 수 없음)과도 가까운 것이다. 현실에서의 불행과 현실이 지닌 반항할 수 없는 절대성으로 인해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해 가지만, 짐승도 아니고 자신이 알아왔던 존엄한 인간도 아닌 나는 자신이 속한 무리 안에서 고개를 들고-숙이기를 계속하며, 자신에 대한 경멸을 초라한 나르시시즘으로 대체하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박종호_우리가 병들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_캔버스에 유채_112×145cm_2008



박종호_鏡_Mirror_디지털 프린트_73×94cm_2005


  ‘돼지’라는 소재는 자신도 모르게 울타리에 갇혀버린  대중을 상징한다. 그것은 기성의 체제에 의해 사육의 대상으로 몰락해버린 생(生) 자체가 서글픈 존재다. 무리 속에서 홀로 눈을 뜨고 있는 돼지는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외부의 본질을 자각하고 그것을 직시함으로써  개인의 무력감과 상실감, 더 나아가서는 자기 경멸과 내적 저항의식을 표출한다. 이것은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며, 스스로에 대한 철저한 경멸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지탱해주는 슬픈 나르시시즘에 대한 이야기이다. ■ 박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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