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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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8-04-02 21:42:32, Hit : 390)
전시 4.2



UNMONUMENT

이재훈展 / LEEJAEHOON / 李哉勳 / painting

2008_0403 ▶ 2008_0427



이재훈_Unmonument-다들잘하고있습니까_프레스코_210×150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금호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403_목요일_05:00pm

금호미술관 영아티스트 기획展

관람시간_10:00am ~ 06:00pm /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1층 전시실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Tel. +82.2.720.5114
www.kumhomuseum.com






버려야할 것들에 대한 기념비 ● 아트포럼뉴게이트에서의 지난 개인전 ‘Face to Face’에서 이재훈은 가면과 같은 익명적인 얼굴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당신의 얼굴은 무엇입니까?”라는 제목으로 관람자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물음은 진정한 개인의 얼굴을 차단한 채 피상적으로 맺고 있는 현대인의 소통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2년만의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서 이재훈은 한층 더 진화된 어법으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최근 작 속에는 ‘gloomy generation’이라는 말이 종종 등장한다. 타인과 교류하지 않고 홀로 행동하는 ‘나홀로족’을 지칭하는 용어이지만, 작품 속에서는 작가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gloomy generation’으로서 이재훈이 모색하고 있는 방식은 다름 아닌 소통에 대한 것이다. 그는 사회의 형식적 틀 너머에 존재하는 진실한 얼굴들과 소통하기를 희망하면서, 그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소통의 벽을 향해 딴지를 걸고 있다.




이재훈_Unmonument-다들잘하고_있습니까_프레스코_145.5×112.1cm_2007



이재훈_Unmonument-다들_잘하고_있습니까_프레스코_110×80cm_2007


제목을 통해 관람자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는 전작들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지만, 이재훈의 신작들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사회적 통념들을 일정한 형태들로 표상화하여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전작들에서 나타났던 표피적이고 익명적인 얼굴들은 보다 실체화된 상(像)들로 변화되었고, 각각의 상들은 ‘인생상’, ‘백수상’, ‘미인상’, ‘선생상’ 등 사회 속에서 특정하게 스테레오타입화된 개념들을 지시하고 있다. 이러한 상들은 모두 다리가 없는 반신상의 형태로 그려져 있으며, 대부분 눈이 가려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반신상들은 동양화 재료와 프레스코 화법을 혼합시킨 기법으로 구현된 석상(石像)과 같은 질감, 형태가 암시하는 부동성(不動性)으로 인하여 생명력이 탈각된 박제와도 같이 느껴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반신상들이 각각 사회적 통념들에 대한 기념비(monument)들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훈_Unmonument-이것이_현실입니까_프레스코_360×225cm_2008


기념비는 그 공공적인 특성으로 인하여 종종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측면 보다는 집단적인 이상을 반영하는 언어적 기능을 한다. 대부분의 기념비들은 사회를 조직하는 특정한 제도적 규범 내에서 통용되며 집단의 사회적 역할을 이상화한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정치언어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거기에는 인간의 감정, 정신성, 개인의 개성이 개입되기 어려운 사회제도로서의 영역만이 존재한다. 이재훈은 이러한 기념비들이 안고 있는 피상적 특성과 표면적 기호로서 존재하는 기능을 활용하여, 그가 직면하고자하는 소통의 벽에 대한 상징물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기념비들에 ‘비(非)기념비(unmonument)’라는 신조어를 붙였다. 이와 같은 표현은 사회적 관념들에 대한 지시와 표식 그 자체의 기능만을 가질 뿐 본질적인 의미를 상실한 기념비의 역할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기념비 자체가 아니라, 기념비화된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재훈_Unmonument-이것이_현실입니까_프레스코_150×110cm_2007


사회적 통념의 유형들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 보이지 않는 모뉴멘트로 세워질 만큼 확고한 제도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실상 그것이 차지하고 있는 정신적인 기능은 왜소하기 그지없다. 개인의 삶 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정치사회적 윤리, 무수히 반복재현되는 규범을 위한 규범들, 영혼이 살지 않는 껍데기들이 차지하고 있는 그 우상들의 자리를 이재훈은 신랄하게 꼬집는다. 실상 무엇의 기념비라는 것은 그 무엇에 대한 대치물 기능을 하는 것이기에, 기념비는 존재 자체로 실체의 부재를 지시하는 역설을 안고 있다. 이 기념비들을 통하여 이재훈은 본질과의 접촉을 상실한 채 단지 기호로서만 존재하는 가치체계들의 허위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작업은 내면적 진실과 외면적 형식 사이의 간극에 대해 작가 스스로 느꼈던 괴리감에서 출발한 것이다. 문제의식을 가시화하기 위해 이재훈이 사용하고 있는 독특한 방법은 오로지 유형화된 형식들로만 구성된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개인이 하나의 사회적 타이틀로, 일정한 집단의 상징물로 대치되어 버린 세계, 진정한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허식들의 세계를 구현함으로써 관람자들을 그 허망함 앞에 직면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재훈_Unmonument-당신은 누구입니까_프레스코_120×90cm_2007


이재훈의 작품 속에 종종 등장하는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이나 ‘바르게 살자’와 같은 급훈은 학교 내의 제도적 규범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들이다. 과정이나 동기가 생략된 채 결과에 의해서만 평가되는 옳고 그름과 윤리적 강령에 대해 그는 ‘다들 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참 잘했어요’라는 문구와 〈다들 잘하고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충돌은 단도직입적이고 솔직하다. 벌판 위에 홀로 서 있는 오래된 석상의 기념비적 아우라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굳어져 화석화되어가고 있는 버려야할 규준들을 되돌아 보게 한다. 이재훈은 이러한 표현법에 대해 “찰라에 보여지는 무수한 모호한 상들 뒤에 오버랩되는 그 진상(眞像)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다분히 불교적인 성찰이 엿보이는 이 대목에서, 눈이 가리워진 반신상들이 결국 보고도 보지 못하는 중생들의 삶에 대한 메타포를 함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재훈_Unmonument-당신은_무엇입니까_프레스코_150×110cm_2007


이재훈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한쪽 벽면에 채워진 대형 작품이 맨 먼저 눈에 들어왔었다. 폐허와 같은 무상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이 작업은 소위 ‘상아탑’으로 불리워지는 대학의 모습을 다룬 것이다. 이 작업은 거대한 스케일, 상들이 집적되어 있는 형태, 프레스코 기법으로 구현한 돌 같은 질감으로 인해 그 자체가 실제의 모뉴멘트처럼 느껴진다. 형식적 기호를 지시하는 기호 자체를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형태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특별하다. 실체와 언어 사이의 괴리를 회화언어로서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공부, 급훈, 상장, 선생상, 학생상, 백수상, 정복자상과 같이 학교제도와 얽혀져 있는 여러 관념들을 대표하고 있는 각각의 상들은 언듯 코믹하게 보이지만, 전체적 분위기는 어둡고 묵시적이다. 그 피상적인 관념들의 상들은 마치 들판 위의 낡은 집처럼, 오래된 유령탑처럼 생명 없이 존재하는 것들 특유의 서늘한 느낌을 안겨준다. 이러한 이미지는 관람자로 하여금 실체 없는 허상으로 서 있는 상아탑에 대해 다시금 명료하고도 육중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것이 현실입니까?”.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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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and Aruond

이정민展 / LEEJUNGMIN / 李政珉 / animation

2008_0403 ▶ 2008_0427



이정민_서교동_파워포인트 애니메이션_영상설치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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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0403_목요일_05:00pm

금호미술관 영아티스트 기획展

관람시간_10:00am ~ 06:00pm /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2층 전시실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Tel. +82.2.720.5114
www.kumhomuseum.com






The incident_주관적 시간 속에서 특별하게 인식된 사물 ● 시간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속도로 흐르고 있지만, 실제로 각자 느끼는 속도는 다르다.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어떤 사람은 빨리, 어떤 사람은 느리게 시간이 흐른다고 느끼게 되고, 또 각자의 시간속도 안에서도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는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런 시간의 흐름은 실제로 볼 수도 없다. 우리는 시계, 지나가는 자동차, 서서히 지는 해 등 사물화 된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평소에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 인식하고 있지 않다가, 사물을 통해 사적인 시간의 흐름을 경험하게 된다.




이정민_상수역_파워포인트 애니메이션_2008



이정민_한강_파워포인트 애니메이션_2008


잠이 오지 않는 새벽 4시, 혼자 방안에 있으니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흘렀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더니 싱크대 쪽 창문이 평소와 같이 정면에 보였다, 오랫동안 집중해서 보게 되었는데. 갑자기 창문이 스르륵 열리는 것 같았다. 그때 나의 시간은 멈춘듯했고 오로지 사물에만 시간이 흐르고 있는 순간이었다.




이정민_My room_파워포인트 애니메이션_2008


위의 경험은 평소와 달라진 것 없는 나의 방에서 오로지 사물의 특별한 인식 순간으로 인해서 그 이전과 다른 시간, 공간을 느끼게 되는 사건이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나의 주변에서 흐르는 주관적 시간과 사물이 특별하게 인식된 순간을 영상으로 보여주게 된다. 화면에는 검은 선으로 공간과 사물이 그려지고, 마지막에 사진이미지가 등장한다. 자주 경험하는 일상은 뚜렷한 형태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안에서 순간적으로 인식된 사물은 더욱 특별하게 보이게 되는데, 그 과정을 검은 선과 사진의 대비를 통해 표현한다. 공간이 완성된 뒤 사진 이미지의 사물들은 내가 인식한 시간차에 따라 다양한 속도로 우르르 등장하게 된다.




이정민_Stodio series_파워포인트 애니메이션_2007



이정민_Stodio series_파워포인트 애니메이션_2008



이정민_Stodio series_파워포인트 애니메이션_2008


내가 경험한 주관적인 시간은 시계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그래서 정확한 타임라인보다는 ‘빠르다.’‘너무느리다’와 같이 상대적인 시간표현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프로그램이 파워포인트이다. Powerpoint 프로그램 안에는 애니메이션 기능이 있는데, 속도를 지정하는 방법이 기본적으로 ‘매우빠르게’부터 ‘매우느리게’ 까지 5단계로 되어있다. 이런 애매모호한 지칭명령을 가지고 객체의 속도를 조절하여 내가 느꼈던 개인적인 느낌과 경험을 최대한 그대로 보여주고자 한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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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st intervention

조종성展 / JOJONGSUNG / 曺宗成 / mixed media

2008_0403 ▶ 2008_0427



조종성_Architecture against space 1_제품케이스, 건축모형지_24.3×18.9×6.8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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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0403_목요일_05:00pm

금호미술관 영아티스트 기획展

관람시간_10:00am ~ 06:00pm /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3층 전시실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Tel. +82.2.720.5114
www.kumhomuseum.com






개입에 대하여_against Intervention
관조(觀照)라는 ‘한 눈 팔기’ ● 조종성의 평면작업은 한마디로 ‘중국의 관념 산수화 속에서 산을 둘러보다 잠시 머무는 집에서 바라보던 풍경을 마음에 담아 그린 것’이다. 이는 관념 산수화의 연장선에 있으며 관람자들이 작품을 눈으로 만 보지 말고 그림 속에서 상상력으로 체험하기를 넌지시 권하고 있다. 화가 자신 역시 관조(觀照)속에 이동하는 정중동(靜中動)의 감상법을 거쳐 작품을 제작한다.




조종성_Architecture against space 2_제품케이스, 석고_9.4×7.2×4.3cm_2007


즉 관람자들이 산수화를 두 개의 곡면인 망막을 통해 감상하는 동안 그는 마치 그가 즐겨 쓰는 표현대로, 초능력을 가진 도사처럼 가상공간인 그림 속으로 산책하듯 걸어 들어가 체험한 것을 마음에 담아 또 하나의 관념 산수화를 제작한다. 오늘날 컴퓨터를 통해 게임을 하고 가상 카페에서 동호인들을 만나고 가상의 집인 블로그를 방문하기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대인들조차 그림이라는 가상공간에 출입한다는 것은 어지간히 부지런하거나 예민하지 않으면 관람들에게 기대하기 힘들다. 이것이 민첩한 상상력에 기초한 부지런한 ‘한 눈 팔기’며 따라서 그의 ‘삐딱하게 보기’의 방식은 ‘산만한 한 눈 팔기’가 아닌 ‘엉뚱한 한 눈 팔기’라 할 수 있다. 나아가 그런 그의 상상력이 제공한 ‘엉뚱한 한 눈 팔기’식 보는 습성은 그림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방식에도 확장시켜 적용하기를 가늠한다.




조종성_Architecture against space 3_제품케이스, 건축모형지_22.8×6.3×1.5cm_2005


그림에서 나온 집에서 나온 집 ● 화가의 시점이란 원래 2차원의 세계에 관한 것이다. 화가는 ‘어떻게 보는가’ 뿐 아니라 2차원인 평면에 그림을 그리면서 ‘어떻게 보이게 하는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그 결과 서양화에서는 원근법이란 투시법이 탄탄한 이론을 구성했다면 동양화가들은 삼원법으로 풍경을 표현했는데 이를 통해 두 세계의 관념적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간혹 고개지의 그림 〈여사잠도〉나 종병의 이론서 〈화산수결〉을 빌려 동양화에도 원근법을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동양의 산수화는 〈임천고지〉를 지은 중국 북송의 산수화가겸 이론가인 곽희에 의해 알려진 고원법, 심원법, 평원법이라는 삼원법을 활용해 그들의 자연관을 표현해왔다.




조종성_Architecture against space 4_제품케이스, 건축모형지_32×19.7×4cm_2005


조종성은 고정시점을 이동시점으로 전환한 작업을 2차원에서 실현하는 화가의 규율을 깨고 구지 3차원에서 실현시키는 무모함을 즐긴다. 뿐만 아니라 이동시점에서 3차원으로 환골탈퇴(換骨脫退)한 ‘무모한 집’은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불편한 집’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 웰빙을 컨셉으로 동선을 늘임으로써 의도적으로 불편한 집을 디자인한 실험적인 사례는 조종성의 ‘불편한 집’이 시사하는 ‘무모함’과 공동의 가치를 생산한다. 동시에 모형이긴 하지만 조종성의 ‘이동시점으로 본 (불편한) 집’은 반듯한 집만을 찾아다니는 생활인의 강박증을 해소해 주며 동시에 시각적인 쾌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동시점으로 본 ‘불편한 집’을 돌아보다 보면 간과할 수 없는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상기시키는데 그것은 서구 원근법의 영향을 받기 이전의 러시아 화가들이 회화에서 표현했던 역원근법의 컨벤션(convention)에 관한 것이다. 서양의 원근법적 시각에서 보면 그들의 그림은 어눌하고 미숙한 단계로 보이지만 러시아의 역원근법은 그들 고유의 논리와 투시법의 체계에 의해 제작되었기 때문에 러시아 사람들 눈에는 결코 미숙하거나 어눌해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이렇듯 ‘어떻게 보는가’의 문제는 화가에게 투시법의 영역과 관련 있는데 그 속에는 시공간에 대한 그 문화권 사람들의 관념이 반영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가령 시공간에 대해 자연 과학적인 입장에 근거한 것이 서양 원근법이라면 러시아 회화에서 나타나는 역원근법에는 일상적인 지각과 세계관이 스며있다.




조종성_Architecture against space 5_제품케이스, 건축모형지_26×19.5×13.7cm_2007


이와 관련해 한동안 동양인들의 시각을 길들였던 원근법이란 불가항력 속에 ‘숨겨진 화가의 시점을 찾아서’ 라는 조종성의 지난 전시와 이번 전시의 주제인 ‘개입에 대하여(against intervention)’ 역시 이와 문맥을 같이한다. 거시적으로 볼 때 이는 러시아의 사례를 포함해서 동양의 문제일 뿐 아니라 세계 강국, 혹은 경제 대국의 참을 수 없는 거센 문화논리에 대해 비서구권에서 자국의 또는 지역의 문화를 사수하는 목소리로 확대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젊은 화가는 자신이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추적해 온 작품들이 이 거창한 주제를 건드린다는 사실을 숙지해야 한다. 그러니 민첩한 상상력과 적당한 손재주만으로 감당할 수도 이어질 수도 없는 작품임을 인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와중에 미시적으로는 세상을 보는 내 안의 ‘고정된 시점’을 지우고 ‘이동 시점을 찾는 일’만으로도 화가로서 자족할 수 있다. 다만 그렇게 제작된 작품의 울림이 세상을 향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조종성_이동시점으로 본 집 2_건축모형지_가변설치_2007


불편한 집의 다중코드‘작가는 이 형식적 틀이나 가상의 제약을 어쩌면 투명한 플라스틱 케이스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투명 플라스틱 제품 케이스 안에 있는 건축물은 안정되고 편안한 공간속(in space)에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틀과 제약을 뿌리치고(against space) 싶은 것이다.’? ■ 조종성 작가의 표현처럼 케이스는 곧 실제의 건축 조건과 제약을 지시하기도 하는데 이때 케이스는 조건과 제약을 넘어 건축에 대한 ‘개입 (介入)’으로 비약된다. 도시계획과 건축법과 같이 인간의 공존이라는 명분이 감수해야 하는 조건들 외에도 기본적인 안전수칙 및 자본주의가 자산과 부동산이라는 이름으로 변질시킨 건축에 대한 필요충분조건들과 환경에 대한 선행조건 들을 ‘투명 케이스’는 통틀어 함축한다. 하지만 작가는 조건과 제약으로서의 숙명 같은 투명 케이스에 순응하거나 길들여지기보다 투명케이스에 갇힌 집처럼 질식할 것 같은 침묵으로 저항하고 있다. 평면작업에서 산수를 담은 ‘프레임으로서의 집’과 입체로 환원된 ‘이동시점으로 본 집’ 역시 외관상은 시점이라는 지극히 미술적인 문제로 보인다. 하지만 ‘이동시점’이라는 지역적인 문화적 코드와 특정 지역인들의 시지각적 컨벤션의 차원에서 원근법이라는 투시법과 관련된 서양미술사의 절대적인 영향을 ‘개입’이라는 정치적인 용어로 선택함으로써, 강자의 논리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힐난하고 강대국의 문화적 우월감에 저항하는 정치적인 색채가 이면에 덧칠해져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하물며 그가 ‘케이스 속의 집’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도시 속에 난무하는 무허가 건축이 아님은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조종성_이동시점으로 본 풍경_장지 위에 먹_165×165cm_2007


개입에 대한 개입 ● 또 하나의 관점에서 보자면, 조종성의 세 개의 집은 결과적으로 실용적인 측면에서 불편한 집이다. 첫 번째 집은 집 외부에 펼쳐져야 할 풍경이 집이라는 프레임 내부에 가득 차 있으니 한마디로 ‘도치(倒置)성 패러독스’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실용적 관점에서 불편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집 역시, 미관상 즐거움을 줄지언정 삐딱삐딱한 집을 실제로 짓는다면 낭비를 예상해야 할 것이고 그 집에서 생활한다면 적응기간 동안을 수행이라 각오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전제하에 두 번째 집인 ‘이동시점으로 본 집’을 들여다보면 첫 번째 집인 ‘산수화를 담은 집’과 세 번째 집인 ‘케이스 속의 건축 모형’의 성격이 모두 내재되어 있으며 ‘미학적인 집’에서 ‘실용적인 집’으로 변이의 분기점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케이스 속의 집을 ‘건축 모형’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건축 모형을 덮고 있는 투명케이스는 내용물을 보호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이면에 건축물의 성격에 “개입’하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 그래서 “건축 모형이라는 공간이 저항하는 저 투명케이스는 도시에서 건축에 대한 여러 제한 조건과 법규들이다” 라고 세 번째 집인 건축 모형들은 작가의 입을 빌어 불편을 호소한다. 그러나 ‘개입’이라는 맥락에서 보자면, 원근법이라는 고정시점은 화가의 보는 방법론의 다양성에 대한 ‘개입’이었고 세 번째 집의 사례처럼 투명 케이스는 건축에 대한 부정적이거나 혹은 긍정적인 개입이었다. 그런데 이율배반적이게도 우리들은 ‘개입에 대항(against intervention)하기 위해 개입한다.’ 평면 작업인 산수화의 프레임으로서 집이라는 틀 역시, 산수화의 구도에 ‘개입’하고 있고 이동시점으로 본 집이 나오기 전 과정인, 중국 관념 산수화속 집을 지우는 작업 역시, 젊은 화가가 중국 산수화에 ‘개입’한 흔적이다. 그리고 언어로 타자의 그림에 여백을 채우려는 이 글 역시, 조종성 작품에 대한 명백한 개입이다. ■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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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 - Road

박영길展 / PARKYOUNGGIL / 朴永吉 / painting

2008_0326 ▶ 2008_0407 / 화요일 휴관



박영길_wind-road_순지에 수간채색_49×69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60424d | 박영길 수간채색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326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_10:00am∼07:00pm / 화요일 휴관




통인옥션갤러리_Tong I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6번지 통인빌딩 5층
Tel. +82.2.733.4867
www.tongingallery.com






풍경속으로 들어가 풍경읽기 ● 박영길의 작품은 풍경과 마주친 다양한 인간행렬의 포즈를 붉은 톤의 화면에 보여주면서 풍경속의 현실을 바라본다. 화면에 나타난 인물은 아이와 함께 소요하거나, 맘모스 혹은 코뿔소와 같은 알 수 없는 물체형상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작가의 감정을 비유적으로 등장시킨다. 초본식물의 거대한 위용은 위협적인 모습으로 번성하지만 현실의 행렬은 지극히 평화롭고 정관적이다. 대지의 영기를 느끼고 돌아보는 인물군은 때론 코끼리와 같은 바위를 보며 감탄하고 코뿔소처럼 생긴 수풀더미의 무심히 바라보지만 행렬은 이어서 계속된다.




박영길_wind-road_순지에 수간채색_42×74cm_2008



박영길_wind-road_순지에 수간채색_73.5×135cm_2008


이전 작품에서 연속으로 이어진 장대한 행렬의 인간군상은 연속성에 대한 작가의 집착을 반영한 것이라며 금번 작품에서 보이는 풍경속의 인물군상은 거대한 자연속의 대기감, 바람의 느낌, 햇볕의 양감이 자연스럽게 부각된 가운데 보다 자유로운 인물의 배치, 공간속에서의 현실감을 이상화하였다. 이런 이상화된 현실공간에 대한 세부묘사는 현실의 풍경을 보다 섬세하게 세분화하여 묘사하고 주변의 인물을 배치하면서 관념을 재조정한다. 여기서 나타난 풍경은 산수준법의 형성에 의한 관념을 최대한 가라앉히면서 현실의 공간감을 심미적 풍경으로 전환시킨다.




박영길_춘풍행락도_순지에 수간채색_85×310cm_2008



박영길_춘풍행락도_순지에 수간채색_85×310cm_2008_부분


작품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전체적인 붉은 색조 때문인데 대지의 황토색 정감이 전체화면을 감싸면서 시공을 일원화했다는데 있다. 박영길이 선택한 화면은 동양화의 시공을 현재로 일원화하고 섬세한 감각으로 풍경을 들여다본 후 이 풍경을 거닐 적절한 인물을 재배치하여 현실경이면서 이상경을 만들어 놓는데 있다. 실제로 그러한 곳에 살면서 거리와 보폭, 시간의 움직임을 가시화하면서 현실의 소요경을 만들어 빈 공간을 활보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이상향이 되겠지만 그 어떤 불완전한 공간이라도 비약시킬 상상력이 있기에 공간은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는 시간이다. 박영길이 보여주는 상상력은 현실의 필터로 걸러진 시공간, 현실의 보폭으로 거니는 시간과 공간속의 인물이다.




박영길_wind-road_순지에 수간채색_73×117cm_2008


관념산수가 매력적이었던 것은 인간이 다가설 수 없는 장소와 경지를 포함한 특정의 사고들이었다고 한다면 그러한 관념들은 축적된 오래된 문화적 관습의 기호를 갖고 있기에 현실이면서 현실을 뛰어넘기는 힘들다. 박영길은 관습의 기호를 평면화 시키면서 좀 더 세밀한 산수 형태, 들판, 숲속, 오솔길을 재현하면서 현실이 개입된 시공간속에 인물들을 배치하여 산수에 대한 신비감을 현재로 이동시킨다.




박영길_wind-road_순지에 수간채색_37×31cm_2008


박영길은 사물이 가지고 있는 골격의 구조를 전통이 부여한 준법의 필치로 보다 충실히 따르면서 보다 세분하게 분할하여 치밀하게 묘사하고 공간을 일원화 하여 선조와 공간을 살려낸다. 고요한 자연에 이종의 관념을 상기시키는 육중한 무게를 가진 형상도 그의 풍경속에서 소요경의 균형을 이룬다. 이러한 안정된 화면 연출은 풍경 속으로 들어가 풍경을 읽으며 현실의 관념을 전개하고자 하는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기에 당분간 이 풍경은 지속될 것이다. ■ 류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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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인사_The kind greetings

정유미展 / CHUNGYUMI / 鄭唯美 / Painting

2008_0329 ▶ 2008_0417 / 월요일 휴관



정유미_김 치~_Kimchi~_장지에 먹, 아크릴, 채색_185×185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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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0329_토요일_06:00pm

2008 갤러리킹 공모 선정展

관람시간_화~일_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킹_GALLERY KING
서울 마포구 서교동 327-15번지 2층
Tel. +82.2.6085.1805
www.galleryking.co.kr






인사는 국가마다 매우 다양한 방식들로 존재한다.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문화적 차이점을 외시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글로벌화 되어 가는 오늘날의 사회 속에서 차이점은 획일성 아래 닫혀 지고, 개인은 물신화된 이데올로기의 그늘 아래 소외된 타자로 존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이라는 사회·문화적 특수성은 현대의 개인과 전통적인 전형 사이에 복잡 미묘한 충돌의 지점을 형성하고 있다. 이번 〈친절한 인사〉전은 이러한 문화의 한 양상으로서 인사를 둘러싼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하여 무겁지 않고 유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일상적으로 쉽게 접하게 되는 아파트 경비원과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를 대상으로 취한다. 이들에게서 발견된 ‘친절’이라는 행위 과정에서 보이는 어색한 부분들, 특히 어색한 웃음에 주목하며, 이에 대한 작가로서의 섬세한 관찰이 작품 전반에 드러나고 있다. 이를 위해 작가는 부분적인 아크릴과 분채를 진하게 채색함으로써 먹과의 색채 대비를 통해 어색한 웃음에 대한 이질감을 더하고 있다.




정유미_다 같이 김 치~_Say Kimchi~_장지에 먹, 아크릴, 채색_100×205cm_2008


“활짝 웃는 모습도 아니고 무표정도 아닌 어색한 표정을 포착하고 이를 평면회화에서 극대화시킴으로써, 우리 현실 속에서 너무나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인 무언가 온전하지 못한 '어정쩡함, 어색함'을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 정유미 작가 노트에서 보이듯이 작가(개인)를 둘러싼 일상으로부터 화면 가득한 인물과 그를 둘러싼 소품들은 실재를 과장되게 보이도록 한다. 그런데 거대한 실재 앞에서 막막함 보다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은 작가에 의해 표현된 어색한 웃음과 소재들-모자(문양, 텍스트), 안경, 금니 등-의 낯설고 이질적인 느낌에서 기인한다. 또한 그러한 느낌은 소통의 단절, 즉 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것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양상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작가에 의해 표현된 인물(소품)들은 이 시대의 표상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관객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함으로써 소통의 막다른 길과 맞닿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절절하지 않다. 오히려 해학적인 표현은 그러한 충돌에서 빚어진 모순된 사회 이데올로기로부터 단절된 소통의 언어를 찾는데 더욱 용이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개인과 사회의 충돌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 온전하지 못한’ 것에 문제점이 있다는 인식을 관객에게 건네주고 있다. 이렇듯 이번 〈친절한 인사〉전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 내재해 있는 예의의 한 부분으로서 인사가 갖는 소통의 불편한 지점들을 해학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 너머의 사회적 재문제로까지 인식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 갤러리 킹












정유미_저 이래 뵈도 반장경비입니다_I'm not just your average security guard
장지에 채색_50×45cm_2008


Greeting takes diverse forms, varied across countries. In a way, it is a point of convergence where cultural differences are condensed and manifested. However, in current era of globalization, uniformity dominates divergence and individuals exist as alienated under the shadow of fetishized ideology. Moreover, the distinct social and cultural characteristics of Korea create complex and delicate point where individuals in modern society clash with traditional value. The exhibition "The Kind Greetings" displays, in a light and humorous way, the relationship between individual and the society surrounding the greetings, which is an aspect of the culture. ● The artist targets bus drivers and security guards of apartment buildings whom people easily encounter in everyday life. Focused on awkwardness shown during the acts of ‘kindness’, especially on the awkward smiles, the delicate observation of the artist emerges in all pieces. To accomplish her purpose, the artist painted deep colors of boon-chae(oriental powdered ink) and acrylic in part, to emphasize the disparateness of awkward smile by contrasting Chinese ink with colors. ● "I wanted to capture awkward looks, neither with big smiles nor expressionless, and maximize their effects in painting to illustrate ‘awkwardness’ and ‘uneasiness,’ which are somewhat incomplete and much commonly observed in our reality, through the pieces." ● As explained in the note of the artist above, people and objects from the artist’s (individual’s) everyday life, which are overflowing the pictures, exaggerate the reality. However, it generates curiosity rather than boundlessness to face the immense reality, because of the unfamiliar and disparate feeling generated by the awkward smiles and objects such as hat (pattern and text), glasses and gold tooth, expressed by the artist. That feeling is also created by the interruption of communication or the clash of relationships. The pieces also reveals the pattern of relationship between individuals and society because the persons (or object) expressed by the artist functions as representations of the current times. The paintings make the audience experience the dead-end of communication by letting them face the inevitable reality. However, it is not desperate. On the contrary, the humorous expression assists to effectively find the language to be used in communication, which is severed from the contradictive social ideology caused by those clashes. Through this, the artist does not propose a solution to the clash between the individual and the society but delivers to the audience the idea that there is a problem in ‘being some what incomplete.’ ● Therefore, the exhibition ‘The Kind Greetings’ provides the audience with the opportunity to extend the scope of recognition to all social problems by humorously showing inconvenient aspects of the greetings, which is a part of etiquette inhering in current Korean society. ■ by GALLERY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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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현대미술 - 일상에서 상상까지展

Modern Indian Art - From the everyday to the imagined

2008_0214 ▶ 2008_0425 / 일요일, 국공일 휴관



인도현대미술 - 일상에서 상상까지展_서울대학교미술관 모아(MoA)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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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0214_목요일_02:00pm

참여작가
A. 라마찬드란_K.G. 수브라마니안_M.F. 후세인_S.H. 라자 등
인도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들

관람시간_10:00am-6:00pm / 입장마감_05:30pm / 일요일, 국공일 휴관
도슨트 전시 설명_11am / 2, 3, 4, 5pm
관람요금_3000원 / 관악구민, 단체20명_2000원
서울대학교 학생 및 교직원_무료





서울대학교미술관 모아(MoA)
MoA Museum of Art Seoul National University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56-1
Tel. +82.2.880.9504~5
www.snumoa.org






본 전시의 테마는 작가들의 삶과 경험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작가의 개인적 삶은 물론 그들의 비범한 예술 여정은 현실 세계와 상상의 세계에 걸쳐져 있다. 어떤 면에서 작가들 중 일부는 모더니티라는 개념을 탐구하였고, 인도 현대사에서 가장 심한 정치적 격동기라고 할 수 있는 한 시기에 직면하면서 그러한 사회현실과 관련하여 혹은 관계없이 작가마다의 개인적 설(說)을 작품으로 구체화하고자 했다. 그들의 삶은 일부는 현실로 일부는 환상으로 읽혀진다.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점진적으로 조화시켜감으로써 작가들은 인도 고유의 문화와 집적된 역사, 국가의 새로운 경제·정치 현상을 나타내 주는 “Indian-ness"라는 하나의 새로운 개념을 정의내리고 그것을 확립시키는 데 기여했다.

K.G. 수브라마니안 K.G Subramanyan (1924~) ● 올해 84세인 수브라마니안은 인도 현대 미술사에 있어서 르네상스형 예술가의 아이콘인 작가이다. 화가면서 철학자이며, 동시에 뛰어난 문학가이기도 한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현대 인도 미술가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독창적인 리버스 페인팅 (Reverse Painting) 5점과 더불어, 시와 드로잉이 결합된 그의 작품 ‘의자들’을 감상할 수 있다.




K.G. 수브라마니안 K.G Subramanyan_Studio Table
Reverse painting in gouache and il on acrylic sheet_189×129cm_1998


수브라마니안이 1980년대에 들어 투명 아크릴 유리라는 새로운 매체를 이용하여 새롭게 시도한 리버스 페인팅 (Reverse Painting) 연작 중 한 점이다. 작가는 먼저 단색의 투명한 수채물감으로 형태를 상세하게 채색한다. 그 후 반투명한 수성물감과 불투명한 오일의 다양한 선들을 그 위에 겹쳐 그린다. 그리고 나면 유리의 그려지지 않은 반대쪽 면에서 완성된 그림이 나타난다. 이러한 리버스 페인팅은 반전 순서와 상세한 마무리 손질법, 작품의 배경에 대한 계획을 미리 가지고 작업에 임해야 하는 특징이 있다. 수브라마니안은 이러한 리버스 페인팅을 제작할 때 많은 경우 사람들을 그 주제로 삼았다. 〈작업실 테이블〉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소통하지 않는 사람들의 초상화이다. 작품 전경에 보이는 커플의 몸짓은 어느 정도 친밀감을 담고 있는 듯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멍하니 전면을 응시할 뿐이다. 화면 위쪽의 사람들의 얼굴들도 서로 조금은 자연스럽고 조금은 충돌되게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의도적인 배치를 통하여 관객들은 이상과 대조되는 삶, 그리고 삶과 대조되는 이상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추탄 라마찬드란 A. Ramachandran (1935~) ● K.G. 수브라마니안 과 더불어 이번 전시의 중심 작가이다. 인도 현대미술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산티니케탄(Santiniketan)에서 수학하였으며, 그 영향으로 인도 전통의 장식적인 요소, 벽화 전통을 자신의 작품에서 적극 활용하였다.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특성은 인도 신화와 도상학, 문학 작품들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된 것이 다수이며 이 모든 것들을 벽화 형식으로 재탄생시킨 작가이다.




아추탄 라마찬드란 A. Ramachandran_팔라쉬 나무의 탄생 Birth of Palash Tree
캔버스에 유채_210×620cm_1992


화면 속에서 나방과 나비들은 물론, 헤집고 다니는 원숭이들, 녹색 앵무새, 다람쥐들, 풍뎅이들은 팔라시 나무의 선명한 호박색 꽃들과 과장된 클로버 모양 이파리 사이사이로 조화롭게 공존한다. 타오르는 듯한 오렌지색 머리를 한 키나라(반은 사람이고 반은새인 전설의 존재)로 그려진 예술가 자신은 손에 붓을 들고 자세를 잡고 있는데, 그는 이 꿈의 세계가 그의 창작물이며 따라서 창조자로서 그는 이 자아도취적인 여성 키나라와 평범한 원숭이들을 비롯한 그의 자연적인 환경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음을 분명하게 내보인다. 이것은 반은 인간적이고 반은 상상적인, 신화적인 판타지적 세계의 이원성에 더욱 깊이 기여한다. 여기서, 예술가는 사실의 발견자이자 사회 개량자와는 반대로 신화 창조자, 그리고 마술가이다.

M. F. 후세인 M.F. Husain (1915~) ● M.F. Husain은 현대 인도 미술작가 중 가장 높은 국제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는 전설적인 아티스트다. 회화와 뉴미디어, 영화, 설치 등 매체와 형태에 대한 폭넓은 실험을 통해 후세인은 근대화된 인도의 일상의 리얼리티를 포착해 왔다. 그의 작품에는 음악가와 무용가를 포함한 평범한 거리의 사람들과 여성,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 소작농, 마을사람들 등의 그의 사회적 지인들뿐만 아니라 Jawaehalal Nehru, Mohendas Gandhi와 같은 정치인들을 포함한 유명 인사들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M. F. 후세인 M.F. Husain_네루 측면상_Profile of Nehru
캔버스에 유채_114.5×117cm_1970


네루의 세 개의 반신상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네루의 동의 하에 인도 정부가 위탁하여 제작되었다. 네루는 푸르나 스와라지(purna swaraj 간디 등이 주창한 인도의 정신적, 정치적 독립운동)를 끊임없이 선전한 급진주의자였다. 모든 분야에서 정부의 개입을 전적으로 신봉하는 그는 뉴델리에 National Gallery of Modern Art 설립을 불과 인도 독립 후 6년 안에 이루어냈을 정도로 인도의 예술 정책에 있어서도 혁신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강력한 감정적 예민함과 지적 열정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후세인의 대범한 검은 필치는 군중 속의 고독한 삶을 산 깊고 복잡한 생각이 많은 인물로서의 이 위대한 정치가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S.H. 라자 Sayed Haider Raza (1922~) ● 점진적 미술가 단체(Progressive Artist Group)의 설립 멤버 중 한 명인 라자는 70년대 후반 기본 원형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원은 얀트라(yantra)와 만다라(mandalas) 에서 명상의 도구로서 자주 사용되는데 라자는 인도 철학에서 원이 갖는 이러한 폭넓은 연관성 뿐만 아니라 상징적으로 제로, 씨앗, 또는 ‘에너지가 강력하게 집중되는 지점일 뿐만 아니라 가능성, 발상, 기원, 한 방울’로도 볼 수 있는 원의 의미의 복수성과 병치의 성격에도 매력을 느꼈다. 라자에게 원은 그의 창조과정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강하게 집중되어 있는 원들로 인식된 라자의 빈두는 이도 철학에서 현실의 궁국적인 근원으로 여겨진다.




S.H. 라자 Sayed Haider Raza_빈두_Bindu_캔버스에 유채_120×60cm_1992


80년대부터 그의 회화적 언어는 원과사각형(하늘과 땅의 고대상징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상과 선들로 된(직선과 곡선이 모두 밀도있게 패턴화 되어 있다) 사각형도 포함했다. 각각의 기하학적 수열은 중요 요소들인 흙, 바람, 물, 불로 이루어진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상호 역학들을 형상화하는 무한대의 방법 중 하나로 읽혀질 수 있었다. 원색들은 본질적으로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와 세계 제 1차대전 이후의 미술가들이 추구했던 바, 즉 과도기적인 것으로부터의 자유, 보편적, 추상적, 정신적인 것들을 향유를 찾고 모든 형체의 생명들의 최초의 상호관계를 표현하는 그의 철학적 성향에 생생한 광채를 준다. 달미아는 라자의 작품세계가 에꼴 드 파리의 형식들 뿐만 아니라 반 고흐와 세잔, 그리고 그 이후의 한스 호프만, 마크 로드코와 잭슨폴록, 샘 프란시스와 같은여러 미술 운동과 미술가의 영향을 받은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라자스타니(Rajasthani)와 자인(Jain) 미니어처들을 다시보는 한편 라자는 큐비즘, 추상주의, 추상 표현주의를 차례로 탐구했다.

굴라무하마드 셰이크 Gulammohammed Sheikh (1937~) ● 바로다Baroda의 내러티브 회화 학교의 선구자인 셰이크Sheikh는 의식적으로 서구 모더니즘과의 단절을 추구했고, 인도 전통내에서 새로운 시각 언어를 추구해 왔다. 저명한 교수로서 그는 현대미술의 서술적 구성 경향을 전하는 데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굴라무하마드 셰이크 Gulammohammed Sheikh_기다림과 방랑에 관하여
About Waiting and Wandering_캔버스에 유채_137.6×114.7cm_1981


이 작품은 사람을 좀먹는, 의미없지는 않다 하더라도 세속적인 존재의 지루함에 조용히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림의 중심에서 우리는 한 외로운 영혼이 활기없는 밤을 헤맬 때, 그와 분리된 부분에서 존재로부터 추방된 밤의 아가씨들의 반복되는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이 외로운 방랑자는 사실 개인적인 정서적 여행을 떠난 예술가 자신이다.

인도현대미술 Boom
인도현대미술이 여러 국제 비엔날레와 아트 페어 등에서 주목받으며 국제 미술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중국현대미술이 급속한 경제 성장과 더불어 1990년대 초 세계 미술시장에서 급부상한 이후 그 흐름을 인도현대미술이 잇고 있다. 이는 인도의 경제 발전을 배경으로 컬렉터 층이 확대되는 한편 국제 미술시장에서 아시아 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인기 상승 추세와 더불어 인도현대미술에 대한 수요도 크게 늘어나 데 따른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2000년 설립된 인도 최초의 경매회사인 오시안(Osian)의 인도 근현대 미술품 경매 규모는 2004년 213만 달러에서 2005년 505만 달러로 늘어나 데 이어 2006년 상반기에는 960만 달러를 넘겼다. 해외 경매시장에서도 인도 미술품 판매 규모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크리스티의 인도 미술품 매출 규모는 2004년 437만 달러에서 2006년 상반기에 1560만 달러를 넘어섰고, 소더비에서도 2004년 190만 달러에서 2005년 1050만 달러의 판매규모의 성장을 나타냈다. 이번 《인도현대미술-일상에서 상상까지》에 포함된 작가 중 한 명인 M.F. 후세인의 경우 2006년 3월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그의 작품 〈시타 하누만(Sita Hanuman)〉(1979)이 50만 달러를 기록하였고, S.H. 라자의 〈타포반(Tapovan)〉(1972)은 130만 달러를 기록하였다.

Reading List 읽을거리
·Marcella C. Sirhandi, 'Modern Indian Works on Paper', Arts of Asia, 2006.
Nov-Dec, vol.36 no.6, pp. 128-138.
·Andrew L. Cohen, 'Contemporary Indian Art', art journal, fall 1999, pp. 7-9.
·R. Siva Kumar, 'Modern Indian Art: A Brief Overview', art journal, fall 1999, pp. 14-21.
·Ajay J. Sinha, 'Comtemporary Indian Art: A Question of Method', art journal, fall 1999, pp. 31-39.
·「(특집)인도 현대미술 보고서」, 『아트인컬처』, 2006. 9월호, pp. 97-123.
·「인도 현대미술 보고서」, 서울 아트 옥션 트렌드 리포트
http://www.seoulauction.com/inside/trand_01.asp)_2006

참고 사이트
·싱가포르 미술관
http://www.nhb.gov.sg/SAM/From+the+Everyday+to+the+Imagined.htm
싱가포르미술관과 서울대학교미술관이 공동기획한 《인도현대미술-일상에서 상상까지》전은 2007. 11. 17부터 2008. 1.16까지 싱가포르 미술관에서 전시되었다.
·아시아 소사이어티
http://www.asiasociety.org/arts/edgedesire/
대표적인 인도현대미술 전시로 꼽히는 《욕망의 경계-최근 인도미술》(2005)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다. 2005년 뉴욕 아시아 소사이어티(Asia Society, New york)에서 전시된 이후 퀸즈 미술관, UC 버클리 미술관, 멕시코 타마요 미술관 등에서 순회 전시되었다.

인도관련 전시동향
인도현대미술이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인도 내에서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크고 작은 인도현대미술 전시가 개최되고 있다. 아래는 작년(2007)부터 현재까지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유럽은 물론 일본, 싱가포르, 타이 등 아시아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진 대표적인 인도현대미술 전시들이다. 인도의 풍부한 종교·철학적 전통과 문화를 기반으로 급속한 경제발전과 더불어 세계화의 길을 걷고 있는 현대 인도의 여러 목소리들을 반영한 기획 전시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 서울대학교미술관 모아(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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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근원적 형상_A Tree, Inherent Forms

이길래展 / LEEGILRAE / 李吉來 / sculpture

2008_0319 ▶ 2008_0420



이길래_三根木 1_동파이프 산소용접_386×165×245cm_2007_왼쪽
LEEGILRAE_Pine tree with three roots 1_Copper welding_386×165×245cm2007_left
이길래_나이테 1_동파이프 산소용접_247×247×4cm_2007_오른쪽
LEEGILRAE_Annual ring 1_Copper welding_247×247×4cm_2007_right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사비나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319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_동절기_10:00am~06:30pm / 하절기_10:00am~07:00pm
동절기_06:00pm / 하절기_06:30pm





사비나미술관_SAVINA Museum
서울 종로구 안국동 159번지
Tel. +82.2.736.4371
www.savinamuseum.com






나무, 근원적 형상과 자연의 원형 ● 이길래의 작업은 노동집약적인 직조(直彫)라는 전통적인 조각의 미덕을 견지하면서도, 동시에 탈조각의 가능성을 띠고 있다. 그러니까 매스를 결여한 형태나 안과 밖이 서로 통하는 구조 그리고 특히 조각이면서도 회화적인 상황의 연출로써 전통적인 조각과의 이중적인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의 작업만이 갖는 특질이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유래한다. 그 주제를 볼라치면, 대략 잃어버린 성, 고고학적 발굴, 생성과 응집, 그리고 근작에서의 나무 시리즈 작업에 이르기까지 근원적 형상이나 자연의 원형을 일관되게 추구해오고 있다.




이길래_나이테 1_동파이프 산소용접_247×247×4cm_2007
LEEGILRAE_Annual ring 1_Copper welding_247×247×4cm_2007


잃어버린 성 ● 이길래의 초기 조각 〈잃어버린 성〉 시리즈는 문명사회의 폐허화된 잔해를 떠올리게 한다. 그 발상이나 인상이 고도로 문명화된 삶을 향유하다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것으로 알려진 전설의 섬 아틀란티스나, 고전주의자들을 열광케 한 고대 로마의 폼페이 유적을 떠올리게 하며, 이로써 삶보다 죽음과 더 친숙한 삶을 살았던 낭만주의자들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주지하다시피 낭만주의자는 현재보다는 과거에, 일상보다는 이상에, 삶보다는 죽음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무덤이나 폐허화된 장소 같은 문명의 흔적에 열광한다. 그들이 삶 자체가 아닌 삶의 흔적에 열광하는 것은 단순히 고대 문명에로의 회귀의식에 대한 반영이기보다는, 그것이 잃어버린 것들, 상실한 것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 흔적으로부터 일종의 결여와 결핍에 바탕을 둔 존재론적 자의식마저 끌어내는 것에서는 유미주의 내지는 탐미주의자로서의 자질마저 엿보게 한다. 미학이 아니면 삶은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는 니체의 말마따나 예술적인 삶을 살았던 그들이기에, 비현실적 비전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이기는커녕 오히려 예술의 이유이며 현실적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계기였던 것이다. ● 이길래의 의식은 이처럼 현실적 삶보다는 과거를 향해있다. 〈잃어버린 성〉에서 성은 작가의 유년시절을 상징하며, 작가가 자신의 내부로부터 축조해낸 유토피아를 상징하며, 짓고 허물기를 반복했던 모래성과도 같은 작가의 상상력이 만든 공상도시를 상징한다. 그 신기루와 함께 자신을 유년시절로 되돌려놓는 한편, 자신의 또 다른 분신과 만나는 것이다. 이로써 단순히 현실에 대한 부정의식이나 도피행각을 넘어 보다 본질적인 자기 반성적 사유의 일면을 드러낸다. 도대체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 혹은 아예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에 대한(주지하다시피 성은 집이 변형된 것이며, 집은 정체성을 상징한다).




이길래_老松 1_동파이프 산소용접_262.5×116×294cm_2008
LEEGILRAE_Old pine tree 1_Copper welding_262.5×116×294cm_2008


고고학적 발굴 ● 아득한 전설 저편으로 사라진 문명의 폐허화된 잔해에 경도된 작가는 그 잔해를 재현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예 발굴 개념 자체를 도입한다. 땅을 파낸 후 그 파낸 땅의 형(形)을 따라 폴리코트를 부어 덧바르고 재차 흙으로 파묻기도 하고, 미리 만들어 둔 형상을 땅에 묻기도 한다. 그리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연후에 그 형상을 발굴한다. 이때 그 대략적인 형상을 상상정도 할 뿐, 작가 자신조차도 최종적으로 완성된 형태를 알지는 못한다. 폴리코트가 굳으면서 땅의 지세와 상호 작용하는 과정을 통해 형상과 땅의 표면질감이 일체화된 그 형상은 말하자면 우연한 형상, 예기치 못한 형상, 반쯤은 자연(땅)이 만든 형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형상이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계기야 작가가 제공했지만, 그 최종적인 형상만큼은 땅의 생리와 재료 자체의 내적 원리에 의해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의식적인 개입을 최소화함으로써 형상이 저절로 드러나도록 돕는 작가의 태도는 작업에 대한 방관자적 태도이기는커녕 오히려 자연이 원래 품고 있었을 형상(근원적 혹은 원형적 형상)을 모방하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출인 것이다. ●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흙 혹은 땅의 질감을 그대로 빼닮은 형상이 만들어진다. 그 형상이 영락없는 부장품의 생리와 표면질감을 떠올리게 하지만, 결정적인 형태(예컨대 기물이나 제기와 같은)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여느 부장품과는 다르다. 마치 발굴 현장에서 막 출토된 부장품을 보는 듯한 알 수 없는 형상들이 땅의 지세를 발하고, 자연의 응축된 에너지를 내뿜는다. 여기에 거대한 스케일마저 더해진 기묘한 덩어리들이 기념비적 인상을 불러일으키면서, 우뚝 서 있는 고대의 거석문화의 유적(예컨대 스톤헨지나 고인돌)을 보는 듯하다. 보기에 따라선 세 개의 발이 달린 제기나 거대한 남근석 혹은 이도저도 아니면 마구 엉겨 붙은 거목의 뿌리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인상은 말 그대로 연상에 지나지 않으며, 기본적으론 비결정적이고 가역적인 형상, 우연적인 형상들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아마도 인간의 인식을 넘어선 불가지적 형상, 근원적이고 절대적인 형상, 형상 자체로 부를 만한 원형적 형상을 겨냥하고 있는 듯싶다. 이처럼 땅의 본성, 흙의 본성, 궁극적으론 자연의 본성에 자기를 일치시키는 과정을 통해 근원적 형상을 발굴해내려는 작가의 의지는 영락없이 역사학자나 고고학자의 생리를 닮아있다. 그리고 그 자체 예술 혹은 미술과 여타 인문학과의 연접 내지는 이접 가능성을 모색하는 최근의 학제간 연구방식(이를테면 미술과 고고학과의 만남으로 나타난)을 선취한 것이다.




이길래_老松 1_동파이프 산소용접_262.5×116×294cm_2008_부분
LEEGILRAE_Old pine tree 1_Copper welding_262.5×116×294cm_2008_detail


생성과 응집 ● 땅의 본성, 흙의 본성, 자연의 본성을 겨냥하는 이길래의 의식은 자연스레 자연적인 소재에 미친다. 나무나 철 그리고 석재와 같은 조각과 관련한 전통적인 재료는 물론이거니와, 조개껍질, 석화(굴)껍질, 다슬기껍질, 그리고 옹기 파편과 같은 자연소재 등이 도입된다. 공교롭게도 옹기 파편을 제외한 모든 재료들이 바다로부터 유래한 것인데, 아마도 이는 작가의 내면에 무의식으로 각인된 유년시절의 추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친화적인 형상을 겨냥한 작가의 의식이나, 자연으로부터 채집된 소재가 자연의 본성을 더 잘 형상화할 수 있으리라는 일말의 기대감과 함께, 일종의 생리적 동화현상이나 끌림 현상 같은 것이 작용했었을 것이다. ● 작가는 이 자연소재들을 폴리코트 등의 조각 재료와 함께 덧붙여나가는 식의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전체적인 형상을 구축한다. 그 형상을 보면, 대체로 원형이거나 변형사각형 그리고 세로로 서 있는 기둥 형상으로서, 군더더기가 제거된 최소한의 기하학적 형상들이다. 이로부터 미니멀리즘에 바탕을 둔 환원주의적 의식이 엿보인다. 이를테면 모든 형상의 근원인 원형적 형상이나 절대형상을 지향하는 경향성과 함께, 특히 형상을 최소한의 구조로 한정하려는 태도로부터는 구조주의(모든 불투명한 현상의 이면에는 그 현상을 투명하게 설명하게 해주는 구조가 놓여져 있다는, 문학으로 치자면 난해한 텍스트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에 해당하는)에 대한 공감마저 느껴진다. 이처럼 기하학적이고 형식적이고 관념적인 형상들이 정작 자연으로부터 채집된, 유기적인 소재들로 축조된 것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러니까 표면적으론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관념적인 형상과 유기적인 소재가 서로 어우러져서 일종의 내적 울림을, 내적 에너지를, 내적 생명력을 응축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길래의 작업에 있어서 형상과 소재와의 관계는 단순한 재료 이상의 의미론적인 차원(이를테면 순수관념과 자연의 생명력이 만나는 접점을 겨냥한)을 향해 열려 있는 것이다. ● 한편, 작가는 이러한 자연소재들과 함께 단추나 기계 부속품 등의 기성 오브제들마저 소재로 차용하고 있다. 나무와 철 등의 전통적인 조각재료와 조개껍질이나 옹기 편과 같은 자연재료, 그리고 일상적 소재인 레디메이드마저 재료로 도입함으로써 조각적 소재로 사용하지 못할 재료가 없는 것 같다. 이 플라스틱 소재나 스테인리스스틸 소재의 인공의 오브제들을 집적해 만든 형상들은 현저하게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데, 그 인상이 작가의 여느 작업들에서의 원시적이고 질박한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여느 작업들의 생리가 자연의 본성을 닮았다고 한다면, 현저하게 문명의 본성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작업들은 그 이면에서 일상성 담론에의 공감을 자아낸다. 이를테면 문명의 잔해와 원형의 탐색에 맞춰졌던 작가의 관심이 마침내 주변의 일상적 소재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일상성에의 공감에 대해 말하자면 단순히 소재의 범위가 확장된 정도를 넘어 작가의 의식이 원형으로 대변되는 이상성 혹은 이상주의와 더불어 현실인식에 바탕을 둔 일상성 혹은 일상주의마저 아우르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 그리고 이 일련의 작업들에서는 부분과 전체와의 유기적인 관계에 대한 인식이 느껴진다. 즉 각 부분들이 개체적 특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전체 형상과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부분들이 모여 전체형상을 일궈낸다는 발상 자체는 세계나 우주의 기원론 혹은 발생론과도 통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체형상이 최소한의 단위원소인 조개껍질이나 옹기 편 그리고 단추 하나하나의 집합으로써 구조화돼 있다는 사실에의 인식은 최초의 입자, 모나드, 단자들의 유기적인 집합으로써 축조된 세계와 우주의 생성원리에 대한 유비적 표현처럼 읽힌다. ● 이러한 인식 즉 부분과 전체와의 유기적인 관계에 대한 인식은 동 파이프를 소재로 한 작업에서 상대적으로 더 선명해지고 정형화된 형식을 획득한다. 이 일련의 작업들에서 작가는 동 파이프를 일정한 간격으로 자른 연후에, 그 둥근 형태를 단위원소 삼아 반복적으로 덧붙여나가는데, 그 형태나 크기가 균일한 탓에 다소간 비정형적인 자연소재를 재료로 한 작업들에 비해 부분과 전체와의 유기적인 관계가 더 뚜렷하게 드러나 보이는 편이다. ● 이렇게 축조된 최종적인 형상 역시 다른 작업들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자연소재를 재료로 한 작업들이 미니멀리즘을 연상시킬 만큼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상을 통해 순수관념의 형식으로 응축된 자연의 생명력을 표상하고 있다면, 동 파이프를 소재로 한 작업들은 한눈에도 그 구체적인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재현의 논리, 모방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그 형상이 때로 거대한 크기로 증대된 전구도 있지만, 대개는 호박, 고추, 마늘, 양파, 조롱박, 메론, 감, 앵두, 버섯 등의 과일이나 채소류들이다. 이처럼 소재가 암시적이고 추상적인 데서 재현적인 것으로 변화한 것에 대해서는 우선은 이상적인 것에서 일상적인 것에로 작가의 관심이 미친 경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생활환경(작가는 실제로 작업 틈틈이 텃밭을 가꾸기도 한다)에 따른 생활철학의 변화로부터 자연스레 가능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여하튼 이로부터는 단순한 환경적 요인 이상의 생명에 대한 경외감마저 감지된다. 즉 부분이 모여 전체적인 형상을 빗어내는 동 파이프 절편 하나하나가 자연형상을 일궈내는 생명의 최소단위원소, 생명의 씨앗, 소우주, 세포와 의미론적으로 동일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길래_三根木 3_동파이프 산소용접_122×95×208cm_2008_왼쪽
LEEGILRAE_Pine tree with three roots 3_Copper welding_122×95×208cm_2008_left
이길래_松 4_동파이프 산소용접_178×79.5×6.5cm_2007_오른쪽
LEEGILRAE_Pine tree 4_Copper welding_178×79.5×6.5cm_2007_right
이길래_松 3_동파이프 산소용접_185×83×7.5cm_2007_오른쪽
LEEGILRAE_Pine tree 3_Copper welding_185×83×7.5cm_2007_right


나무 ● 자연에 대한 이길래의 관심은 자연에 응축된 내적 생명력과 자연의 감각적 형태가 서로 결합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그러니까 암시적이고 관념적인 형상을 빌려 자연에 내재된 에너지를 표현하던 것(여기서 자연은 다만 표상의 형식 즉 상징형식으로서만 암시되고 드러난다)에서 마침내 감각적 닮은꼴을 통해서도 똑같은 강도로 자연의 생명력을, 그 생성원리를 표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대략적인 과정이나 방법은 과일을 소재로 한 전작에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동 파이프를 일정한 간격으로 잘게 자른 연후에 그 단면에 나타난 원형을 그대로 사용하는 대신에 그 측면을 눌러 옆으로 긴 타원형을 만든다. 이 타원형을 단위원소 삼아 용접으로 덧붙여나가는 과정을 통해 나무 형상을 축조해나간다. 이렇게 타원형의 입자들이 모여 빗어낸 나무 형상은 놀랍게도 실제 나무의 표면질감을 그대로 닮아있다. 우뚝 솟은 것이 있는가하면, 자연스레 휘어진 것도 있고, 우람한 것이 있는가하면 가녀린 것도 있다. 나무 중에서도 특히 소나무를 연상시키는 이 형상들은 세월과 풍화가 만들어준, 자연스럽게 왜곡된 형태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 왜 나무인가. 전작에서 과일과 채소류를 경유해온 작가가 자연스레 정박한 소재일 수도 있지만, 이처럼 나무를 소재로 선택한 이면에는 보다 본질적인 의미가 내장돼 있다. 즉 작가의 관심은 시종일관 원형적 형상에 맞춰져왔으며, 그 문제의식이 자연스레 자연의 원형에 해당할 만한 존재를 탐색하던 중 그 연장선에서 나무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길래의 근작에서의 나무는 단순한 감각적 닮은꼴 이상의 원형적 형상(모든 형상이 유래한 근원적 형상)이나 자연의 원형(자연성 즉 감각적 닮은꼴 내부에 응축된 자연의 생명력)에 대한 은유적 표현인 것이다. 이로써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나무 형상은 세계의 중심, 세계의 배꼽(옴파로스), 오벨리스크, 토템폴, 솟대, 세계수, 우주목의 상징적 의미와 겹친다. 그 자체 기념비적 인상이 강한 이 직립형상으로써 하늘과 땅을 이어주고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제의적이고 주술적인 염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밤에 나무 형상의 아래쪽에 장착된 조명으로부터 발해지는 은근한 불빛은 이런 제의적이고 주술적인 의미를 강화하는 한편, 일종의 신령스런 기운마저 자아낸다. ● 그런가하면 이 일련의 나무 형상들은 하나같이 매스를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속이 꽉 찬 양감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조각과는 구별된다. 노동집약적인 직조로서의 전통적인 조각의 방법을 유지하면서도, 한편으론 이와 차별화되는 탈조각의 가능성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형상들은 이처럼 매스를 결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안과 밖이 서로 통하는 통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로부터 경계 혹은 탈경계에 대한 인식이 엿보이기도 한다.




이길래_나이테 3_동파이프 산소용접_196×54×40cm_2007
LEEGILRAE_Annual ring 3_Copper welding_196×54×40cm_2007


이와 더불어 작가의 작업이 전통적인 조각과는 다른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보다도 회화적인 경향성을 들 수 있다. 이길래의 작업은 조각이면서도 회화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회화적인 조각으로 부를 만하다. 그린 것 같은 형상은 물론이거니와 동 파이프 조각이 반복적으로 집적된 형태가 마치 드로잉에서의 선묘를 연상케 한다. 작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회화적인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는데, 보다 의식적인 차원에서 그 상황을 이해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를테면 그림처럼 나무 형상을 벽면에 걸어 설치하는가 하면, 때론 형상의 가장자리를 따라 테를 두르기도 하는데, 그 형태가 영락없이 그림에서의 액자를 상기시킨다. 심지어는 그림에서의 낙관을 그대로 모방해서 형상 속에 장착하기도 한다. ● 그렇다고 이런 일련의 시도들이 단순히 회화를 흉내 내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이길래의 작업은 조각과 회화의 경계에 대한 인식을 넘어 공간설치 혹은 공간연출에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먹으로 그린 전통 산수화에서의 구조와 생리 그대로를 공간에다 풀어놓고 있는 것이다. 벽면에다 직접 그린 듯 설치된 나무 형상들로 인해 마치 산수화 속에 들어와 거닐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전시공간이 그대로 일종의 입체적인 산수화, 공간적인 산수화로 탈바꿈한 것이다. 설치작업에다 공간연출마저 더해진, 재현적인 상황과 공간 자체의 구조적 성질이 일체화된 이 일련의 작업들은 전통적인 조각, 회화, 심지어는 보다 적극적으로 공간을 활용하는 설치작업과도 전혀 다른 지점을 예시해준다. ● 주지하다시피 전통적인 산수화에서는 비록 그림에 사람이 그려져 있지 않더라도 그 존재가 암시되고 있음을 느낀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여백을 빈 공간으로 보지 않는 것만큼이나 사람의 실체는 부재의 형식으로써 그림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궁극적으론 산수를 벗 삼고 향유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를 노자의 논법으로 말하자면 소요유의 경지가 될 것이고, 질 들뢰즈의 화법으로는 사유의 유목이 될 것이다. 어느 경우이든 스스로의 상상력의 도움으로 겨우 암시되는 욕망, 산수화 속을 거닐고 싶다는 이 욕망을 작가는 실제로 실현시켜준다. 이로써 이길래의 작업은 공간을 사용하는, 그리고 욕망을 실현하는 전혀 다른 방법을 예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 고충환




이길래_소나무 11 & 소나무 12_동파이프 산소용접_가변설치_2007
LEEGILRAE_Pine tree 11 & Pine tree 12_Copper welding_Changeable installation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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