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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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8-03-24 21:44:18, Hit : 428)
전시 3.25



내면풍경_innerscape

박상희_윤상윤展 / painting

2008_0328 ▶ 2008_0419



윤상윤_Rejection_캔버스에 유채_175×200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리나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328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_10:00am~06:00pm




리나갤러리_Lina Gallery
서울 강남구 논현동 229-26번지 해광빌딩 1층
Tel. +82.2.544.0286
www.linaart.co.kr






현대인의 일상에 나타나는 고독의 풍경 ●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온갖 욕망의 구조로 엉켜있다. 인간 내면의 욕망은 개별된 자아의 과잉보호를 위해 파괴적이며, 권력적인 행동도 서슴없이 일삼는 이기주의를 낳게 되었다. 본능으로부터 출발한 다양한 문제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이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데, 이는 현대인들의 정신적인 영역에서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상태에 대한 위기감을 조성하는 원인이 되었고, 결국 공허와 허무만이 가득한 정신의 빈곤은 인간에게 소소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아름다움을 냉소적으로 묵살하면서 무의미하게 살아가도록 하고 있다. 이번 '내면풍경:innerscape'전시는 인간관계(Human Connection)의 유대감 상실과 자기소외로 인한 감정의 인상(impression)을 회화작품에서 어떻게 은유적으로 재현(representation)해 내는지 살펴보고자 기획되었다.




박상희_야외수영장_캔버스에 유채_65×91cm_2008_왼쪽
박상희_공장_캔버스에 유채_89.4×130cm_2008_오른쪽


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에 따르면 인간이 시대를 지배하는 세계관이 부재하기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집 없는 시대'가 오늘날의 현대사회라고 한다.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자각(self-reflection)하게 되고, 마치 몸과 마음을 함께 둘 곳이 없는 사람이 황야를 헤매는 것처럼 고독하고 불안하다는 것이다. '집 없는 시대'의 특징은 한마디로 고독이라 할 수 있으며, 이 고독 속에서 인간은 자신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과 반성을 가짐으로써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윤상윤과 박상희의 작품을 통해서 각기 다른 고독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박상희_오렌지스카이_orange sky_캔버스에 유채_65.1×90.9cm_2007



윤상윤_Friend to all is a friend to none_종이에 수채_135×155cm_2007


박상희는 평범한 사람들 중 불특정 인물 하나만을 캔버스 화면에 분리시킴으로써 이야기 구성의 연결고리를 단절시킨다. 작가의 이런 거리두기는 타자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의 불안감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갖게 하고, 이를 다시 화폭에 담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익숙함을 도리어 낯섦으로 전환 하는 새로움을 제공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수영하는 사람들 중 주로 어린아이들 그렸는데, 화면의 중심에서 벗어나게 배치시켜 현대인의 미성숙한 자아 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표현했다. 과감한 공간 분할과 색의 사용은 지극히 독립적이며 파편화된 개인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는 본성으로부터 점차 무뎌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단절의 심상을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 반면, 현재 영국에 유학 중인 윤상윤은 그곳에서 이방인으로 겪어야 하는 고독의 상황을 화면구성의 직접적인 요소로 연출하여 재구성한다.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광장의 분주한 사람들 속에, 거리에 세워진 수많은 자전거 사이에, 수업중인 학생들 앞에서 작가자신이 관찰의 대상이 된다. 캔버스 중앙에 놓여진 작가의 마음은 익명화된 주변 인물들과 함께 자신도 덩달아 안정적인 사회적 노선에 위치하고픈 갈망(渴望)으로 드러난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작가는 때때로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치는 좌절을 겪게 되는데, 이때 작가는 다소 엉뚱함을 발휘해 뜻밖의 인물들을 배치시킴으로써 자신이 처한 상황을 환기시키려 하기도 한다.




윤상윤_Rejection or rejected_캔버스에 유채_135×155cm_2007_왼쪽
윤상윤_Be neither intimate nor distant with the hero_캔버스에 유채_135×155cm_2007_오른쪽


박상희와 윤상윤은 갈수록 발전하는 테크놀로지시대의 경향을 따르지 않고 본질적인 태도로써 노동집약적인 회화 매체를 선택했다는 접점이 있다. 캔버스 위에 겹쳐진 수많은 텍스트 사이로 보이는 그 무엇은 관람자에게 아련한 연민 내지는 동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며, 나아가 현대사회에 만연한 짙은 고립감은 분명 ‘나 뿐 아니라 당신에게도 적용됨’이라는 경각심을 은연중에 내비치기도 한다. 개인 혹은 집단 간의 관계를 끊임없이 구축함으로써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사회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실상 그런 관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 고독과 외로움을 굴레처럼 지니고 있다. 또한 이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위상과 입지를 강화하고자 몸부림칠수록 오히려 더욱 짙어진다. 이번 '내면풍경:innerscape'전시에서 만이 아니라 오늘날 현대미술의 화두로 자리 잡은 이러한 정신적 현상의 풍경은 앞으로 더욱 고조되어 나타나지 않을까. ■ 김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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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a silent of landscape

서울. 침묵의 풍경

안세권展 / AHNSEKWEON / 安世權 / video.photography

2008_0328 ▶ 2008_0420



안세권_봄 비, 2007년 서울 월곡동_라이트젯 프린트_250×280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80110c | 안세권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328_금요일_06:00pm

후원_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_10:30am ~ 07:00pm





청계창작스튜디오 갤러리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137번지 관수교 센츄럴관광호텔 1F
(종로3가역 13번출구, 을지로 3가역 5번출구)
Tel. +82.2.2285.3382






재개발의 땅에 핀 푸른 꽃
서울의 빛, 서울의 침묵 ● 기억하라! 기억하라! 청계천, 월곡동 뉴타운, 한강과 역삼동, 잠실 재건축 아파트단지, 구룡산에서 본 도곡동, 봉천동. 안세권의 카메라는 할머니 엉덩이 같은 도시의 얼굴들을 필름의 레이어에 차곡차곡 그려낸다. 그의 사진에는 사라지는 것과 기원이 되는 것, 변형되는 것과 전환된 것 모두가 공존한다. 현실 같은 과거와 지속된 현실. 토지의 용도가 요란하게 바뀌는 과정 속에 침묵의 무대가 되어버린 도시풍경. 끊임없이 사라져도 다시 출몰하는 유령 같은 환영들. 잔인하게 아름다운 푸른 꽃. 아름다운 시체.




안세권_서울 뉴타운 풍경 2004~2007, 서울 월곡동_라이트 패널, 와이드 인화_180×230cm_2007



안세권_서울 뉴타운 풍경 2007년, 서울 월곡동_150×540cm_2008


느린 속도의 프리즈 컷 ● 사진의 생산. 서울의 어두운 밤의 빛을 죄다 모으면 어떻게 될까? 지나가는 시간 속에 환한 낯빛으로도 보지 못한 모습들, 시간이 침묵한 잃어버린 순간의 속살이 드러난다. 왜 침묵일까? 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은 소리에 팔려 정신이 없고 눈은 맹목처럼 움직이게 된다. 안세권은 새소리가 나면 사진 찍기를 그만두고 그 소리를 즐긴다. 오직 소리가 멈춘 순간, 시간의 빛으로만 볼 수 있는 실감나는 현장을 기록한다. 맨 눈으로 볼 수 없는 현장을 몇 시간의 밤의 노출을 통해 멈춘 순간들의 합을 필름에 모은다. 순간 이미지들의 합은 슬로우 모션처럼 느린 속도로 숨은 순간들을 드러내지만 영원을 간직한 한 장면의 프리즈 컷이다. 여러 순간들을 한꺼번에 붙잡아둔 숨 막히는 유예기간이다. 거대한 카메라 장비들을 보고 놀란 공사관리인들의 저지를 받았을 때도 안세권은 지나가는 순간들을 놓치기 않기 위해 전시 리플렛으로 그들의 입을 막고 작업을 계속한다. ‘고발’ 아닌 ‘고발’을 한다.




안세권_청계Scape_라이트젯 프린트_180×260cm_2006



안세권_청계Scape 2001~2006_필름, 단채널 비디오_2006


롱 테이크 클로즈-업 ● 생산 테크놀로지. 안세권의 정영상 작업은 골목길이 드러난 도시의 골격뿐만 아니라 이파리의 윤기와 세금, 눈 입자까지 잡아내는 극사실을 보여준다. 한 장의 파노라마 대신 망원의 8x10 대형카메라 세대를 붙여 망원 파노라마를 구사한다. 극사실주의 망원 파노라마는 긴 노출을 통해 잡아낸 짧은 순간들의 심리를 드러낸다. 그가 빛으로 그리는 시간-이미지는 비열한 거리와 끔직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작가의 카메라가 서 있는 곳은 빛의 시간이 예술이 되는 곳이다. 사람들은 없지만 행위는 벌어지고 주체 없는 혁명은 계속된다. 실낱같은 빛이 지속되어 만든 기억 이미지는 이렇게 해서 발견의 미학을 가능케 한다. 이것이 작가의 기술이다.




안세권_월곡동의 마지막 겨울, 서울 뉴타운 풍경_라이트젯프린트_238×738cm_2006


파는 작품 아닌 보여주는 장치 ● 유통과정. 작업의 생산과정이 이러하다면 유통과정은 어떠할까? 작가는 작품을 팔기 위해 액자를 걸지 않는다. 대부분은 전시 벽면을 채우거나 라이트패널을 사용하거나 동영상을 보여줌으로써 작품의 매매단가 추정을 불가능하게 한다. 침묵의 무대와 같은 사진은 다시 전시장을 무대로 만들고 사진 자체는 무대장치가 된다. 마치 파노라마관 전시장의 대형 랜드스케이프가 원통형으로 관객을 둘러치고 있듯이 이번에는 시티스케이프가 장관을 이룬다. 관객의 시선은 작품의 액자 테두리와 상관없이 도시풍경의 한 가운데에 푹 빠진다. 하지만 인공적으로 조성되는 모든 풍경이 이미 있었던 것처럼 익숙하게 만드는 '자연화 과정'(naturalisation)을 거치는 반면 안세권의 작업은 자연스런 풍경을 낯설게 하는 '탈자연화 과정'(de-naturalisation)을 거친다. 사라짐의 정치학을 통해 그냥 지나치게 되는 일상의 풍경들이 노출되면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졌던 풍경의 기억을 회상하게 만들고 왠지 와본 것 같은 기시감(deja-vu)과 처음 보는 것 같은 미시감(jamais-vu)을 교차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4월이 잔인한 까닭을 깨닫게 해준다. 다시 말해서 서로 다른, 심지어 모순되는 극점들을 한 프레임에 포착하는 작가의 작업들은 폐허와 화려함, 어두움과 빛, 냉정과 열정, 회한과 희망, 잔인한 아름다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변증법적 이미지’의 결정체다.




안세권_서울 뉴타운 풍경_부분


발광에 대응하는 발견하는 눈 ● 소비과정. 안세권의 정영상 작업이 극사실주의 망원 파노라마에 해당한다면 동영상 작업은 차창으로 보이는 익숙한 풍경에 현실 같은 과거와 과거 같은 미래의 기억-이미지가 포개어 지는 일련의 로드무비다. 한편 영상방의 라이트패널 작업은 관객으로 하여금 여러 시간 작품을 뜯어보게 한다. 확대경 루페(lupe)를 들고 실마리 찾듯 범죄의 현장 같은 느와르 공간을 탐색케 한다. 라이트패널은 쓰레기가 쌓인 어두운 현장에 빛을 준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암울한 암흑으로부터 스스로 빛이 발광하게 만든다. 근대 이전, 본다는 것은 사물의 발광하는 빛이 안구에 전달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발광체 앞에서 관객들은 사건이 벌어지게 만든 공간의 세팅을 루페로 샅샅이 찾는 탐정이 된다. 다르게 말하면 관객들은 시간을 거슬러 빛의 유적을 발굴하는 고고학자가 된다. 실낱같이 희미한 빛의 실마리를 부여잡고 붓으로 유적지를 쓸어내듯 파고들면 드러나는 끔직한 세목들을 보게 된다. 깃털 하나하나를 들춰보면 오래된 상처와 지속되는 삶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공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게 하고 다른 경우에는 적나라한 환타지를 통해 신화의 원죄를 목도하게 한다. ■ 류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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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UNHEE

김선희展 / KIMSUNHEE / 金宣希 / sculpture

2008_0326 ▶ 2008_0401



김선희_room of memory_미송, 홍송_가변설치_2007_부분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관훈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326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_10:30am~06:30pm




관훈갤러리_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본관 3층
Tel. +82.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내가 아닌 사람이 바로 나일 수 있고 내 삶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속성을 지닐 수 있는 것은 기억 덕분이라고 할 수 있으며 기억을 떠올려 스스로를 재인식하는 것은 자기 이해와 반성을 도울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이러한 기억의 특성 때문에 나는 외부의 사건으로 인해 불안정한 심리상태에 놓이게 되면 기억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곤 했다.




김선희_memory 9_미송, 애쉬, 느티나무_14×9×16cm_2008


나는 기억을 돌이켜봄으로써 내면의 혼란과 무질서 상태를 만든 원인을 인식하고 이와 관련이 있는 사물들, 즉, 어린 시절과 삶 속의 경험을 상징하는 대상물들을 깎고, 갈아내기를 하면서 작업을 진행 하였다. 작품속의 사물들은 본래의 용도와는 상관없이 외로움, 쓸쓸함, 불안 등과 같은 경험 속의 정서와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으며 기억과 함께 나의 본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김선희_memory 2_미송, 느티나무_가변설치_2007



김선희_memory 2_미송, 느티나무_가변설치_2007_부분


작업은 나무를 깎거나 끊임없이 갈아내는 행위의 반복이었다. 그 과정에서의 지속적인 반복의 행위는 내면의 산란한 생각이나 감정을 모두 한곳으로 집중시켜 몰입하게 만들었다. 오랜 시간 수행하듯 회상, 문제인식, 표현, 몰입, 승화와 다시 회상을 오가며 응어리와 같았던 과거의 사건은 되풀이 되는 상기로 인해 자극됨으로써 오히려 서서히 무뎌져 내면에 자리 잡고 정돈 되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정리 행위는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다듬는 일과 같은 긴 과정이 필요하다.




김선희_room of memory_미송, 홍송, 느티나무, 애쉬_가변설치_2008


과거 사건의 궤적을 마치 손때 혹은 흠집이나 흔적과 같은 얼룩들로 표현하기 위해 연마가 끝난 후 표면에 농도를 달리하여 수차례에 걸쳐 물들이기 하였다. 이는 과거의 기억이 고정된 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해석이나 다른 경험을 거치며 그 의미가 변화될 수 있음을 나타낸다.




김선희_memory 6_미송_40×30×30cm_2007


텍스트를 전사하는 작업은 내면의 문제들을 정리하는 마지막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자전적 삶을 대변하는 기록물들을 편집하여 표면에 전사함으로써 억압되었던 내면의 부분들을 재구성하게 된다. 이는 나에게 혼란을 주었던 정서적 고착이 풀려 내면과 외부세계가 연결됨을 의미한다.




김선희_memory 3_미송_6×21×7cm_2007


작업은 일시적인 성찰과 소통을 떠나 그 의미를 깊이 음미하는데 효과적이었으며 이와 같은 과정은 자신을 이해하고 내면세계의 안정과 심리적 균형을 찾아가는 여정과 같은 것이었다. ■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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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리

나유리展 / NAYURI / 羅裕俐 / painting

2008_0326 ▶ 2008_0401



나유리_둥_종이에 채색_102×102cm_2008




초대일시_2008_0326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_10:30am~06:30pm




관훈갤러리_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본관 2층
Tel. +82.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때로는 ‘안다’는 바로 그 생각 때문에 눈앞에 있는 진실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태도야 말로 이번 전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언뜻 보기에 중국 작가들에게서 많이 본 듯한 인물표현에 사로잡혀 그 이상으로 작품이 말하는 바를 읽어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작품의 일차적인 이미지에 사로잡혀 작품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을 보았던 터이다. 표면적인 그 사실 한 가지 빼고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으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고맙게도 이번 경우에는 이러한 경험이 작품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어주었다.




나유리_트로이목마 전술_종이에 채색_210×426cm_2008


자크 라깡이 우리에게 깨우쳐줬던 한 가지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우리가 가진 수많은 욕망들은 흔히 ‘주체로서의 나’가 갈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러한 ‘나’란 주변 사람들의 기대나 내가 속한 사회의 질서, 상징계의 법칙 등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며, 그렇게 사회에 나를 맞춰가는 과정에서 욕망도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타자의 욕망이 곧 나의 욕망에 다름 아니다. 불행하게도 인간은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생명체가 아니라서,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만 나의 모습을 확인받게 된다. 하지만 모든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작가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눈을 감고 있다. 타자를 통해 나 자신을 확인받게 된다는 점에서 인물들의 시선은 외부로 향해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맹목적인 욕망에 대한 비판인가, 아니면 ‘자, 이제 그대 안으로 눈을 돌려보라’는 작가의 회유인가.




나유리_무딘 동행_종이에 채색_201.5×142cm_2008



나유리_빗나간 키_종이에 채색_201.5×142cm_2008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요소는 긴장된 상태의 에너지다. 우선 위에서 언급했듯이 응시에서 비롯되는 현실적인 욕망과 외부로 향한 시선을 다시 내부로 잡아끌려는 작가의 설득 사이에서 생겨나는 심리적 긴장감을 찾아볼 수 있다. 또 한 종류는 눈을 감고 있는 인물들을 통해 드러나는데 ‘더 이상은 주변에서 불어넣는 욕망에 이끌려 살기 싫다’고 몸부림치는 목소리와, 인간 피라미드 맨 위에 까치발로 서서(그 나마 한발은 살짝 들어 올려) 엉거주춤 균형을 잡고 있는 인물에서 알 수 있듯이 추한 면을 해학적으로 만들어 웃음으로 수용하려는 현실적인 태도 사이의 긴장이다. 아직 해결되지 못한 긴장 사이에서 갈등하는 작가의 모습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나유리_치유의 비행_종이에 채색_145×204cm_2007



나유리_허영의 걸음_종이에 채색_146×330cm_2008


또 다른 종류의 긴장감은 구성에서 비롯되는데, 그 중 하나의 요소가 배경인 ‘하늘’이다. 작품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푸른하늘은 단순히 관람자의 미감을 자극하는 장식적 요소가 아니라 인위적인 인간사회와 대비되는 자연의 순수한 공간을 의미하며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정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한편 하늘과 반대되는 소재이자 개별적인 에너지가 모여 있는 또 다른 부분은 인물의 움직임이다. 작품〈Sudden Attack〉에서는 4-5명이 모여 공격의 의미를 지니는 손동작들을 흉내 내고 있는데, 적이 가시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으며 이들이 눈마저도 감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공격적’이라기보다는 ‘방어적’이라고 해야 한다. 또 허리를 굽힌 채 수직으로 인간 피라미드를 위태롭게 쌓고 있는 작품 〈무딘 동행 〉에서처럼, 뚜렷한 목적의식이 부재한 상태에서도 함께 공통의 과제를 풀어나가기도 한다. 이처럼 맑고 푸른하늘과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는 인물들 사이의 대비, 부조화가 관람자로 하여금 작가의 작품에 시선을 머물게 만든다.




나유리_붕_종이에 채색_102×102cm_2008


작품〈허영의 걸음〉는 미국작가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서로를 짓밟고 또 짓밟히며 어디론가 꾸역꾸역 기어오르는 줄무늬 애벌레들을 생각나게 한다. 책에서 아름다운 나비를 보기 위해 필사적인 애벌레들은 ‘문득’ 자기 자신이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이때가 바로 외부로 향하던 시선이 내부로 향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은 아직 자기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상태에 처해 있으며, 현실에서 어떤 이들은 평생 그 상태 그대로 살기도 한다. 그들에게 작가의 작품이 그 ‘문득’ 의 계기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 이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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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의 변증법에 대한 명상

김윤아展 / KIMYUNAH / 金倫我 / sculpture.installation

2008_0326 ▶ 2008_0401



김윤아_웅크린 아이_스텐봉, 체인_100×80×80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덕원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326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_10:00am~06:00pm




덕원갤러리_DUKWO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82.2.723.7771~2
www.dukwongallery.co.kr






“공간과 공간을 잇는 또는 형상을 이루기 위한 실들의 반복과 집합은 우리의 관계를 의미하며 그로인해 보여지고 생성되는 형상 또는 이미지는 인간, 사물의 존재이다. 이렇게 우리는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인식을 독립된 그 자체가 아닌 그것이 놓여진 관계 안에서 해석하고 인식하며 인간의 자유롭고자하는 고고한 의지 또한 이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그렇게 보여지고 생각되어지고 만들어지는 존재이다.” ■ 김윤아




김윤아_Metamorphose_아크릴, 체인_50×37×37cm_2008


제어된 욕망의 변증법 ● 인간은 실타래처럼 얽인 관계들로 구성된 사회라는 시스템 속에 내던져진 존재이다. 나라는 사람은 수많은 관계들 간에 형성되어진 존재, 자아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포착되고 규정되는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도 인간은 소외와 격리를 경험하는 모순된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자신의 입장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만은 않는다. 자신을 주체화하고자 하는 의지는 이러한 관계들 안에서 더욱 힘을 발하며 이를 통하여 추동력을 획득한다. 조각가 김윤아가 주목하는 것은 이 점이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고, 아름답게 보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속성일 것이다. 따라서 무한한 욕망주체인 인간은 인정받기 위하여 부단히 자신을 연마하고 좌절은 딛고 일어서며 과오를 반성하고 더 잘 하고자 노력한다. 이렇듯 관계 안에서 형성되어진 존재간의 얽힘, 그 얽힘 속에서 자신을 비동일화 하고자하는 의지, 이의 성취에 담보되는 노력, 이 모든 것들은 실존적 인간이 맞닥트려야 할 숙명적 여건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한다. 김윤아는 인간의 가능성을 이러한 여건과 관계성에서 찾는다.




김윤아_What are you becoming_낚시줄, 아크릴, 조명_162×72×62cm_2007



김윤아_What are you becoming_낚시줄, 아크릴, 조명_162×72×62cm_2007_부분


김윤아가 그 관계성의 지표로 선택한 조각재료는 실이다. 통상적인 조각의 형태에서 공감을 얻지 못한 젊은 조각가는 실이라는 재료의 가능성과 의미에 주목한 것이다. 흔히 우리가 “의식주”라고 칭하듯이 실은 우리 인간의 삶에서 밥과 집보다도 우선되는 중요한 물품이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베틀과 생로병사를 함께했다. 고금의 신화를 보더라도 실은 여성성의 상징이자 인내와 노동, 그리고 욕망의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아라크네의 비극을 통하여 예술적 욕망과 좌절을,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통하여 한줄기 빛(a thread of light)을 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페넬로페’만 하더라도 끊임없이 실을 잣고 푸는 과정에서 욕망을 거부하는 창조성을 들어낸다. 끝이 안 보이는 지난한 노동,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 과정의 현상학, 필자는 김윤아의 작품에서 이 점을 목도한다.




김윤아_나비_스텐봉, 합성사_120×90×160cm_2008


페넬로페의 옷감 짜기 ● 그의 작품 〈나비〉는 이 꽃 저 꽃 옮겨 다니는 사랑의 전령사가 아니라 마치 이카루스처럼 허공을 맴돌다 어떤 가공할 폭력에 의해 추락을 강요당한 상처받은 영혼처럼 보인다. 날개와 몸체는 생기를 잃었고 나비의 발은 땅에 고착되어 다시는 땅을 박차고 날아오를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조각가의 진한 노동의 흔적과 좌절된 욕망을 추체험 하게 된다. 동시에 우리는 그의 조각에서 실이라는 재료의 가능성과 한계를 본다. 그 가느다란 실은 프레임을 교차하며 얽히고설켜 예기치 않은 미감을 발산하지만 “조각적”이라는 고착된 시선에서 본다면 성과는 미미해 보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주객의 구분이 미분화된 상태에서 궁극적인 실재를 발견하고자 하는 욕구로 인하여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없이 예술의 지나친 관념화, 그로 인한 예술의 현실분리와 신비주의에의 매몰과 같은 부정적 요인이 드러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김윤아_혼자.. 시리즈 - 자화상_철봉, 면사_210×160×190cm_2005


“한 올 한 올, 내가 보여지기엔 실들은 너무 가느다랗다. 속은 허하고 팔은 무겁고 난 허공만 보는구나...” 그의 “혼자..시리즈” 중 〈자화상〉에 대한 작가의 푸념 섞인 독백이다. 이 섬세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형상은 예쁘게 만들고자하는 작가의 의식작용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작가의 미감은 천성적으로 미의 보편적 범주와는 거리가 멀다. 이번에 전시되는 일련의 작품들은 사실 통상적인 “예쁜 조각”과는 차별성을 가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작가는 여성성의 숨결을 가진 작가적 의식으로 그로테스크를 신비로움으로 전이시키는 새로운 미적 가치를 창안해 냈다. 작가의 시각은 진부함을 적대하고 있어야만 한다. 여기에서 다시 필자는 그의 작업과정을 ‘페넬로페의 옷감 짜기’라는 여성적 작업과정의 아우라를 상기한다. 남편을 기다리는 페넬로페는 옷감을 짜고 풀고를 반복했다. 보편적 가치와 타협을 거부하기 위한 방법적 수단으로서의 지난한 노동, 다시 말하면 타성을 거부한 노동의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성적 순결성과 작가적 자존심을 발견하게 된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일정 부분 여성적 미감으로 점유된 경향, 즉 지극히 세밀하고 형식 논리적이나 그 수법에 있어서는 대단한 완벽성, 정교성을 보이는 작업 성향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나는 이 작품 안에서 끝없는 재창조를 발견할 수 있다.




김윤아_The Hole_철봉, 면사, MDF_250×130×50cm_2006


관계성의 총체 ● 작가는 대상과 나란한 높이와 그 안의 세계를 세심하게 바라 볼 수 있는 영롱한 눈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 눈빛이 성실한 통찰력에 기반 할 때 비로소 작가의 역할이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윤아는 대상과 물질을 타자화 하지 않고 자신에 육화시키는 진정성으로 예기치 않은 조각적 가능성을 이루어 냈다. 그가 선택한 실이라는 재료는 미묘한 빛을 발하며 형태를 이루고 관객과 조우하면서 조각의 영역을 3차원적 공간에 머물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What are you becoming?〉라는 작품을 보자. 이 등신대의 조각은 아크릴판을 지지대로 낚싯줄을 얽어 만든 형상이다. 형태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작가는 광선을 이용하여 대상에 신비감을 부가한다. 빛을 머금은 대상은 경직된 자세에도 불구하고 마치 유기체처럼 변신한다. 그리고 작가는 뭇는다. 너는 누구냐고…. 존재하면서 존재를 묻는 역설, 그래서 하이데거는 존재를 무(無)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유, 탐구, 관찰 등 이성의 무기들은 존재가 있어야 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는 인식론의 영역에서 구사되는 것이지 존재의 존재방식을 묻는 존재론 입장에서는 효용성이 없다. 그러나 인식은 스스로 완전무결한 실체 같은 것이 아니라, 결핍되어 있어 항상 어떤 외부대상과 관계하는 한에서만 규정되는 미완성의 것이다. 미완성이 완성되려면 무언가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 결국 김윤아의 인식이 외부대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 바로 그의 작품이 된다. 이제 작가의 인식과 외부대상은 서로 분리되어 일방적으로 다른 한쪽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 한데 묶여 총체적인 관계성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실이라는 재료에 대한 가능성의 탐구와 욕망과 좌절의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 그의 실험적 형태들은 그 자체로서 완결된 것이라기보다는 탄생과 소멸이라는 자연계의 질서 어느 지점에서 하늘거리는 부나비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 이경모







Urban Scape


이효연展 / LEEHYOYEON / 李孝燕 / painting


2008_0403 ▶ 2008_0418






이효연_urbanscape 2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프라이어스 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403_목요일_06:00pm











프라이어스 갤러리_PRIORS GALLERY

서울 강남구 신사동 564-8 가람빌딩 3층

Tel. +82.2.545.4702

www.priors.co.kr









『Urban Scape』라는 주제로 이효연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이 프라이어스 갤러리에서 선보여 진다. 이번 전시회는 홍익 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스웨덴의 왕립 미술 학교(The Royal University College of Fine Arts (KKH))에서 2년 동안 수학한 이효연 작가가 한국으로 돌아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1회 개인전이다. 이효연 작가는 일상적인 도시의 풍경을 작가만의 독특한 시선과 구도를 통해 들여다 보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외로움과 낯선 감정을 포착하여 그림으로 표현한다.







이효연_urbanscape 4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08





이효연_urbanscape 5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08




익숙하지 않은 공간과 대상을 처음 접하게 될 때 우리는 때때로 우리 자신을 ‘이방인’으로 떠밀어 버리게 된다. 때론 존재의 허무함을 느끼게 만드는 실존주의적 자아로 허탈해하기도 하며, 때론 낯선 호기심과 생소한 궁금증들을 바탕으로 거친 삶을 건너뛰게 만드는 유희(遊戱)적 에너지원으로 삼기도 한다. 우리가 부딪히는 현대 사회의 낯선 풍경들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등장하는 주인공 ‘뫼르소’처럼, 사회에서 소외된 ‘비극적 인간상’은 아닐지라도 종종 무한하고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효연 작가의 그림은 바로 이러한 낯선 환경 속에서 만나게 되는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효연_stairs 1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07




먼 이국의 텅 빈 거리에서 아무 의미 없이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홀로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낯선 이의 뒷모습과 같이 그들에게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한 순간들이지만 작가의 색다른 시선과 구도로 재현된다. 이것은 다시 ‘이방인’으로써의 낯선 풍경으로 다가오며 ‘이방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익숙한’ 상상의 이야기로 또 다른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이효연_urbanscape 1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07





이효연_window 1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07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타인의 존재는 이웃인 동시에 이방인이다. 우리만의 공간과 익명성에 익숙해 버린 도시인들에게는 낯섦과 외로움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그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림 속의 이방인들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다가오는 고독함, 인간으로써 때때로 느끼는 감정을 비추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들이 삭막하고 차갑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우리 안에 숨겨져 있던 이야기들, 현대를 살아가면서 부딪칠 수 밖에 없는 감정이 잔잔히 밀려오게 만든다. 우리는 타인의 뒷모습과 낯선 풍경 속에서 우리의 자리를 다시금 확인하고, 스스로의 삶을 위로하게 된다. ■ 프라이어스 갤러리


  2008/03/30   
리심

김선희님 것 괜찮았음...

  2008/03/31   

흑 못봐서 슬퍼요.ㅜㅜ

  2008/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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