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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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8-03-09 13:30:25, Hit : 438)
전시 3.9



음식상상展

2008_0314 ▶ 2008_0330 / 월요일 휴관



음식상상展_갤러리 빔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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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0314_금요일_06:00pm

오픈파티_갤러리 빔 뒤 한옥마당

참여작가
Yoko Ohashi_Marisa Torres_안세은_오미아_이주은_주영신_최원정_황인선

관람시간_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빔
서울 종로구 화동 39번지
Tel. 02_723_8574
www.biim.net






“당신이 먹은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18세기 말을 풍미했던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 Brillat-Savarin) 의 명언이다. 그만큼 음식은 단지 허기진 배를 채우고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양식이라는 개념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음식은 사회, 문화, 예술이 주는 모든 기쁨을 농축해 놓은 것이며 경제 수준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이주은_Magic Lamp_천에 디지털 프린트_가변설치_2008



주영신_Digestive system_종이에 혼합재료_38×57cm_2008



최원정_촛대가 있는 정물_애니메이션_가변설치_2008



황인선_기념비적 김치_한지캐스팅, 염색_210×158×160cm_2008



Yoko Ohashi_Rice Thumb_사진인화_50×40cm_2007



Marisa Torres_Banana_바닥에 비닐테이프_가변설치_2008



안세은_Sweet Cookies_혼합재료, 아크릴채색_2007



오미아_Untitled_종이에 드로잉_25×25cm×2_2007


또한 음식은 인간의 삶에 있어 즐거움의 원천이기도 한데, 맛의 감수성과 음식에 관한 상상력이 문학과 대중문화의 소재로 종종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음식상상’ 展은 매일 가족과 자신을 위해 식재료를 구입하고 요리하는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다. 여덟 명의 작가가 각기 다른 재료와 양념으로 굽고, 끓이고, 찌고, 뛰기고, 볶아 미술이라는 그릇에 담아내는 요리의 맛은 어떨까? ■ 안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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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전설_Urban Legend

박은선展 / PARKEUNSEON / 朴恩宣 / painting. drawing. installation

2008_0312 ▶ 2008_0427 / 월요일 휴관



박은선_도시의 구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08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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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0319_수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화
2008_0329_토요일_03:00pm
2008_0330_일요일_03:00pm

관람시간_12:00pm ~ 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벨벳_GALLERY VELVET
서울 종로구 팔판동 39번지
Tel. +82.2.736.7023
www.velvet.or.kr






물개가 자기 해구신을 잘라 바치고, 개가 보신탕 속에서 거수경례를 붙이는 등의 이른바 ‘보양식’ 채색 소상(塑像) 시리즈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박은선이 오랜만에 페인팅으로 돌아왔다. 또한 작년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드로잉 작업 및 설치 작업들까지 어우러진 이번 전시는, 갤러리 벨벳 1, 2층 전시 공간의 차별화된 특색을 십분 활용한 독특한 디스플레이로 작가의 작업 주제를 더욱 뚜렷이 드러내줄 것이다.




박은선_장님 잉어들_종이에 연필_75×113cm_2008


박은선의 모든 작업 내용은 “강자를 살찌우기 위해 약자가 희생되는 권력구조, 그것을 그럴듯한 명분으로 덮어버리는 프로파간다의 위선, 그 사실을 알면서도 속수무책인 자신”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테마는 구체적 작업들 속에서 미묘하게 변주되어 왔다. 첫 개인전 『안티고네 콤플렉스』(2003)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입대한 오빠에 대한 마음이라는 지극히 개인적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경제성장의 혜택과 무관한 도시 빈민층의 삶의 고통 및 오빠가 있는 곳에 자신을 ‘그려 넣는’ 방식으로 밖에 그 희생을 갚을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나타낸다. 강대국의 이익 증대를 위한 무의미한 전쟁으로 죽어가는 이라크 어린이들, 그리고 그러한 전쟁에 차출된 약소국 군인들을 위한 진혼곡을 담은 『즐거운 공포 Delightful Horror』(2003)를 거치면서 그 테마는 점차 객관화되고, 가진 자를 더 살찌우기 위한 ‘보양식’의 개념에 착안하여 강자의 탐욕을 고발하고 약자의 희생을 기리는 『희생』(2005)에 이르러서는 무거운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희화화된 작가 특유의 표현 형식 또한 개발된다. 근자의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 연작에서는 제목에서 암시되듯 과학기술문명의 자연 지배와 제국주의가 맞물리며 강자들의 ‘실험과 조작’에 따른 약자들의 희생 구조를 고발한다.




박은선_도시의 구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08_부분


이번 개인전 『도시전설 Urban Legend』는 도시의 발전과 번영의 그늘진 이면을 들여다본다. 박은선의 지속적 테마인 예의 권력구조가 모름지기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만큼, 도시 삶의 이중성은 우리가 그 권력구조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모델일 것이다.




박은선_도시의 구조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8_부분


연작 「도시의 구조」를 보자. 한 작품 하단부에는 와인이 흘러내리고 있는 글라스 피라미드가 그려져 있다. 축하 피로연에서 종종 연출되곤 하는, 영롱히 빛나는 유리잔 피라미드 위로 넘쳐 내리는 샴페인은 풍요와 행복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상단부를 보면,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그 붉은 와인의 정체가 드러난다. 또 다른 작품의 상단부에는 알록달록한 천막 지붕이 덮인 회전목마 세트가 보인다. 동그랗게 부푼 하얀 고양이 모형의 목마들이 돌아가고 있는데, 그 하단부를 보면 각양각색의 길고양이들이 그 목마를 회전시키는 노역을 하고 있다. 지식과 자본의 ‘빛’이 환히 밝혀지고 있는데, 그 전력은 어디서 제공되는 것일까? 화려한 기구가 높이 떠 있는데, 그것은 과연 자체 부력으로 떠오르는 것일까? 개구쟁이 천사 같은 어린아이들이 오줌을 싸는 모습의 분수대는 여유 있고 평화로운 도시 삶의 표징이지만, 이 아이들이 싸는 오줌 분수의 바닥에는 무엇이 있을까?




박은선_도시의 구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08


‘도시전설(Urban Legend)’이란 흔히 ‘괴담’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실체 없는 소문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세련된 건축물과 아름다운 조경, 각종 전자·통신 기기들로 편리하기 이를 데 없는 생활 등 드높은 ‘삶의 질’을 광고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프로파간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도시 삶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한갓 떠도는 ‘괴담’일 뿐이다; 실상, 반복 선전되는 우아하고 풍족한 삶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고, 어두운 그림자는 엄연한 현실인데도 말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박은선은 이번 전시에서 우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품들은 마치 한 폭 한 폭 도시전설들을 재현하는 듯하지만, 역설적으로 실제 ‘도시의 구조’를 까발려 보여 주는 것이다. ■ 전예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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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ster Park

김동현展 / KIMDONGHYUN / 金東炫 / painting

2008_0310 ▶ 2008_0319 / 월요일 휴관



김동현_boiled octopus_캔버스에 혼합재료_125×125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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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0315_토요일_06:00pm



GALLERY YOUNG 기획 작가공모展

관람시간_화~금_10:00am~06:00pm / 토,일_11:00am~06:30pm / 월요일, 구정연휴 휴관





갤러리 영_GALLERY YOUNG
서울 종로구 삼청동 140번지 2층
Tel. +82.2.720.3939
blog.naver.com/7203939






나는 신이 어떻게 이 세계를 창조하였는지를 알고 싶다. 이런저런 현상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신의 생각을 알고 싶은 것이다. 나머지는 지엽적인 것에 불과하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_Albert Einstein




김동현_E=mc2_캔버스에 혼합재료_120×120cm_2007

모든 인간은 바라보는 대상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끊임없이 환경 및 공간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은 변형되어 지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다양한 방식의 사회 안에서 인간은 학습, 경험되어 지며 관계를 가지고 이를 통해 성장하기도 쇠퇴하기도 한다. 자아와 타자를 분리, 혹은 혼합하는 과정을 통해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물리적으로 규명 지을 수 있을까? 주목할 만한 것은 가장 흡수와 전이가 빠른 것이 폭력성이란 것이다. 인간은 어떠한 형태의 폭력이든 그것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행동으로 옮길 때는 반드시 경험되어지거나 학습되어진 것만 타인에게 전달 할 수 있다. 자신의 내부에 있는 폭력성을 인지할 수 있을까? 그것은 타인에게 반추되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 가능하다.




김동현_E=mc2_캔버스에 혼합재료_84×164cm_2007

폭력성의 전이는 에너지 교류의 한 단면이다. 주변의 세계는 힘을 행사하거나 영향을 받는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어떤 물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때 밀거나 당길 수도 있고, 또 흔들고 물체를 변형시킬 수도 있다. 이것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가 사는 우주는 엄청나게 복잡한 다중 차원의 미로가 서로 정신없이 얽혀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모든 운동은 상대적이다. 절대적인 시공간과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대상의 운동이든 기준 삼을 다른 어떤 대상을 필요로 한다.또한 동일한 속도로 돌아가는 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정확한 주기운동을 수행하는 시계라는 기계장치가 있을 뿐이다. 지구 위에서 제각각의 속도로 이동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고유한 시공간을 경험한다. 이것은 다시 말해 관점이 다르면 눈에 보이는 현상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김동현_Frankly Speaking_캔버스에 혼합재료_97×130.3cm_2008

모든 만물은 다른 모든 것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힘(중력)을 행사하고 있다. 중력은 그것을 실어 나르는 어떠한 매개체의 의해 작용하는데 이것은 형이상학적 존재일까 아니면 물질적 존재일까? 진정한 의미의 절대운동은 인간의 지적능력을 넘어서 있다. 시공간(Spacetime)은 중력에 의해 뒤틀리고 구부러져 있다. 이것자체가 중력을 의미하며 모든 각 주체가 가지고 있는 질량에 의해 시공간이 왜곡되면서 중력은 전달된다. 이러한 중력은 우주의 무도회에서 춤의 리듬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물체의 질량은 중력에 비례하며 인간에게도 각자의 고유한 질량이 존재한다. 우주를 구성하는 다양한 입자들은 모두 진동하는 끈의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바이올린이나 피아노의 줄이 각기 고유의 공명 진동수를 갖고 있는 것처럼, 인간을 이루는 끈 역시 다양한 형태의 진동 모드를 가지고 있다.




김동현_Lipple_캔버스에 혼합재료_112×162cm_2008

이러한 에너지의 율동과 흐름을 현실과의 여러 관련성과 세계의 신비성에 대한 나의 작은 통찰을 ‘몬스터’를 통해 말하고자 한다. 인간 역시 여러 개의 현을 가진 악기처럼 풍성한 음량과 율동을 펼쳐야한다. 모든 율동은 시간 속에서 뛰어다니고 인간은 그 율동 속에서 스스로에게 어떤 감흥을 일으킨다. 이러한 불안하지만 살아있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평화이다. 평화는 자라나고 생성하는 과정 속에 있다. 멈추어 있는 정체는 평화가 아니다. 성장은 움직임 속에서만 가능하며 모든 자연의 격렬함은 여정중의 순환을 의미한다. 순수한 불일치가 극적인 발견을 유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순환가운데 인간은 그 고유의 절대성을 경험하며 절대성은 모든 인간에게 진정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준다. 그리고 각자의 몸짓이 다른 이들의 삶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그 거대한 인과관계의 그물망을 보여준다.




김동현_SUM-OVER-PATH_캔버스에 혼합재료_120×120cm_2008

시공간과 에너지의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우주의 거대한 춤이 진행되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각 개인안에 고유하게 꿈틀대는 ‘그것’이 되고자 해야 한다.‘그것’은 빛의 속도로 이동한다. 빛은 어디에나 있으며 어떠한 물체든 빛보다 빠르게 달릴 수는 없다. 인간이 아무리 빛을 뒤쫓는다 해도, 빛이 다가오거나 멀어져 가는 속도를 따라 잡을 수 없다. 모든 부정을 통한 순수한 단 하나의 긍정만이 꽃을 피워낼 수 있다. 그러니 네 안의 있는 빛이 어둠이 아닌지 잘 살펴보아라(루가 11:35)




김동현_The Tachon Dragon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3×162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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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made-scapes & Still Life

신미혜展 / SHINMIHE / 申美惠 / photography

Man-made-scapes / 2008_0306 ▶ 2008_0330
Still Life / 2008_0403 ▶ 2008_0427



신미혜_Man-made-scapes 02_디지털 프린트_40×60inch_199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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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0306_목요일_05:00pm




트렁크갤러리
서울 종로구 소격동 128-3번지
Tel. +82.2.3210.1233
www.trunkgallery.com






사라지는 것에 대한 미학 ● 신미혜의 사진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미학이다. 작가는 아름다운 꽃이 소멸하는 시점을 사진으로 포착하고, 현대 자본주의가 생산해내는 대규모의 쓰레기 더미에 그녀의 시선을 멈춘다. 또한 산업 사회가 배출하고 소모한 투명한 유리병을 미적으로 단장하고 재구성해서 사진의 대상으로 승화시킨다. 작가는 왜 소멸하는 것에 대해 애착을 갖는 것일까? 그리고 왜 사라지는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는 것일까? 신미혜가 자신의 표현 매체로 사진을 선택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 매체는 사실 아이러니컬한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사진은 순간을 화석화해서 죽음화 시키는 과정(Mise-a-mort)과 그 순간을 사진을 통해 영원히 간직하려는 과정(사진 물성이 갖고 있는 시간성 안에서의 영원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래서 모든 사진 속에는 죽음과 부활이 공존하고 있다.




신미혜_Man-made-scapes 27_디지털 프린트_180×270cm_1996~2000


신미혜의 "Man-made-scapes"사진 시리즈에는 이런 사진의 속성 자체를 내포하고 있다. 후기 산업주의가 만들어내는 생산성에 비례해서 버려지고 폐기되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죽음)를 사진 앵글에 담아 하나의 조형적인 이미지로 재생산(부활)해내는 그녀의 사진은 아름답다. 그녀의 "Man-made-scapes"을 처음 보았을 때 혹시 그림을 그리지 않았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이 사진 이미지들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듯이 색감이나 면 분할이 회화적이다. 분홍색 보자기로 싸인 보따리 사진은 쓰레기 더미로 보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색감을 지니고 있다. 버려져서 널브러진 합판 더미의 구성 또한 미니멀 아트의 한 조각 작품을 연상케 할 정도로 단순미와 선의 아름다움이 살아있다. 죽어 있는 사물을 사진 매체를 통해서 재구성하는 그녀 특유의 감성은 아름답고 슬프기까지 하다.




신미혜_Man-made-scapes 33_디지털 프린트_40×60inch_1996~2000


신미혜의 ‘정물 시리즈’는 폐기 처분될 운명을 가진 소모품을 재구성하고 사진화한 작품들이다. 작가는 현대 물질 사회가 사용하고 버린 투명한 유리병을 선택해서 그 안에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의 액체를 다양한 방법으로 채워 넣는다. 아름답게 단장된 병들은 하나의 이미지를 위해서 배치되고 구성되면서 그녀만의 조형 감각을 통해서 다시 살아난다. 작가의 시선 앞에서 쓸모없던 사물은 이미지의 대상이 되므로 부활한다. 그녀의 이미지는 회화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과 면, 색감의 구성을 과감하게 차용하고 있다. 사진 이미지에 나타나는 선과 색은 선명하면서 흐릿하고, 가까워지면서 멀어지는 회화적 유희를 자유롭게 펼쳐 보인다. 특히 그녀의 정물 사진에서 표현되는 중첩적인 색조의 섬세함과 미묘함은 대상의 한계를 뛰어넘어 서정적인 회화 양식으로 다가온다. 또한 그녀의 이 ‘정물 시리즈’를 보면서 이태리 정물화의 대가 ‘모란디’를 쉽게 떠올린다. ‘모란디’는 병, 항아리, 상자를 단순하게 그린 20세기 초의 대표적인 정물화가다. 그는 미술에 대한 명상적인 접근 방식을 개발했고 세련된 감수성으로 소박한 그 특유의 정물화를 그려냈다. 그의 정물화는 그릴 대상을 그대로 재현한 작품이 아니라 명상의 시간을 작품화한 것이다. 그래서 똑같은 대상을 여러 번 그려내는 반복의 시간은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명상’의 시간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정물화의 태생은 네덜란드에서 17세기 초에 꽃을 피운 정물화의 양식 ‘바니타스’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신미혜_Still Lifes : bottles 17-0_디지털 프린트_120×150cm_2004~2006


‘바니타스’는 라틴어로 ‘덧없음’을 의미한다. 죽음의 불가피성과 쾌락의 덧없음과 무의미함을 상징하는 소재들을 주로 다루었던 ‘바니타스’ 그림은 보는 사람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임을 일깨워 준다. 일부 ‘바니타스’ 그림에는 인물도 묘사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몇 가지 전형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진 순수 정물화다. ‘바니타스’ 그림의 기본적인 요소는 예술과 학문을 상징하는 책, 지도와 부를 상징하는 보석, 그리고 쾌락을 상징하는 술잔, 담배 파이프와 죽음이나 덧없음을 상징하는 해골, 시계, 꽃 등이다. 때로는 부활과 영생을 상징하는 담쟁이와 월계수 가지가 포함되기도 한다. 이렇게 ‘모란디’의 작품과 ‘바니타스’를 상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신미혜 사진 작품과 두 작품들과의 연결고리가 밀접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 소재가 다분히 사물의 ‘덧없음’을 예고하고 있고, 그 ‘사라짐의 미학’은 우리네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명상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전시될 "Man-made-scapes" 와 "Still Life"는 사색적인 장을 열어줄 작품들이다. 버려지고 사라지는 모든 사물의 운명이 다만 사물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운명을 예견한 듯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의 사진 이미지 앞에서 오랜 시간 머물게 된다.




신미혜_Still Lifes : vasebox 10-2_디지털 프린트_120×150cm_2004~2006


또한 신미혜의 작품을 대량생산이 가능한 복제 기술로서의 사진 매체와 비교하지 않고 순수 회화와 비교하는 데는 그녀의 사진 작품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회화성’과 아우라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 작품에 있어서 매체의 복제성은 본질적인 갈등을 안고 있다. 그러나 21세기의 현대미술의 담론에서 사진이 아우라가 없는 예술이란 논제는 이미 그 의미를 잃고 있다. 오늘날, 사진 예술은 미술의 하나의 장르요, 독립된 표현 양식으로 확고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사진 매체가 갖고 있는 특성인 ‘찍는다’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질문을 해본다. 장 클레르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서문에서 “마치 승려들이 경전함을 돌리듯이, 보지도 않고 기관총을 발사하듯 찍어대는 사진 찍기는 기록을 통해 매 순간의 세상 모습을 지탱하면서 보장해준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신미혜의 사진 찍기는 그와는 다르다. 작가는 카메라 앞의 대상을 기록하기보다는 오랜 사색의 축적물로 이미지를 보여준다. 어찌 보면 신미혜의 작품은 사진의 속성인 ‘찍는다’라는 순간성과 다른 이율배반적인 시간성을 갖고 있다. 마치 화가가 오랜 숙고 끝에 캔버스에 한 획을 긋듯이 신미혜의 사진 작품은 강렬한 순간들의 연장선이다. 작가는 사진만의 갖고 있는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사물 너머의 '이야기'로 승화시켰다. 또한 21세기를 위협하고 있는 환경오염과 그에 따른 인간 상실 문제를 서정적인 표현 방법으로 경고하고 있다. 그녀의 작업은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실상의 이미지가 아니라 사물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존재론적이고 명상적인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 만남이 기대된다. ■ 신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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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행진

방효진展 / BANGHYOJIN / 方孝珍 / illustration

2008_0307 ▶ 2008_0331



방효진_찬란한 행진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쌈지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_11:00am ~ 09:00pm




쌈지 일러팝_SSAMSIE ILLUPOP
서울 중구 명동2가 54-37 명동안나수이 3층
Tel. +82.2.773.2775
www.ssamzie.com






일러스트와 팝아트를 접목하여 신선하고 크리에이티브한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공간 쌈지 일러팝에서 오는 3월7일부터 3월31일까지 아티스트 방효진의 [찬란한 행진]展을 전시한다. 방효진은 일러스트 작업을 입체적인 설치 작업과 결합시켜 독창적인 작품을 완성한다. 단편적인 조각들의 나열로 이루어진 방효진의 거대한 작품은 마치 무한 번식하는 그로테스크한 생물과도 같은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거대 생물은 도시 혹은 하나의 세계를 의미하고 있으며 그 위에는 수많은 군중들이 자리하고 있다.




방효진_찬란한 행진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8



방효진_찬란한 행진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8


작가는 작품을 통해 세계 속에 존재하는 인간은 오로지 군중일 때에만 호기롭게 움직이는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르는 채 전진하는 일상의 사람들은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처럼 군중 속의 개인은 인간성을 논하고 자존을 열변하지만 사실 바로 앞의 사람의 머리를 놓치면 당장 갈 길을 잃어버리는 습성을 가진 나약한 존재다.




방효진_찬란한 행진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8



방효진_찬란한 행진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8


애니메이션과도 같은 설정, 과장된 분위기, 모호한 대사, 수필 같은 텍스트 등을 바탕으로 하는 방효진의 입체적인 작업은 평면의 그것과는 또 다른 생명력을 전달하고 있다. 걷고, 이야기를 나누고, 자고, 사랑하고, 퇴근을 하는 일상적인 삶을 살면서 서서히 길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찬란한 행진’은 허구이면서도 현실적인 세계를 갤러리 안에 펼쳐 놓는다. ■ 쌈지 일러팝




방효진_찬란한 행진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8


배는 물을 가르며 속도를 높인다. 배 안에는 나와 네가, 그리고 우리가 타고 있다. 우리가 가는 곳은 미래이며 찬란한 꿈이다. 배는 너와 나를 천상으로 데려다 줄 것이라 약속한다. 지금은 비록 심한 멀미와 구역질, 사소한 말싸움으로 지쳤더라도 너와 나는 최상의 선택을 한 것임을 의심하지 말자. 시끄러움을 참고 귀를 막자. 눈을 고정하자. 무서워하거나 떨지 마라. 우리는 모두 함께 있고 이 배 안은 요새처럼 안전하다. 이 심한 일렁임에서도 이전의 경우처럼 우리는 안전할 것이 분명하다. 뒤돌아보지 말자. 나와 너는 이 배를 선택했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나는 안다. ■ 방효진

■ 일러스트와 팝아트를 만날 수 있는 일러스트 전문전시장 쌈지 일러팝에서 함께 전시할 작가를 모집한다. 작품이 ‘액자’속에 갇혀야 하는 고정관념을 갖지않고 마음대로 색을 입힐 수 있는 일러팝은 국내 역량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특색 있는 공간으로 차별화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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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표적

김기태展 / KIMKITAE / 金起泰 / photography

2008_0307 ▶ 2008_0406 / 월요일 휴관



김기태_마음속의 표적_디지털 프린트_51×41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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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0307_금요일_07:00pm






게이트갤러리_GATE GALLERY
서울 종로구 가회동 1-5번지 경남빌라 제상가동 1층
Tel. +82.2.3673.1006
www.gategallery.kr






가회동에 위치한 GATE 갤러리가 기획한 김기태의 『마음속의 표적』이 개관기념전으로 3월 7일부터 4월 6일까지 열린다. 작가는 수년 동안 일기 형식으로 진행한 작업을 풀어내면서 상식과 의문이 섞인 질문을 관객에게 도리어 던지고 있다. 그의 작업은 생활 속에서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에 어떠한 확신도 답도 없다고 전하는 작가는 그러한 확신이 부정되거나 곧 사라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김기태의 작품은 작가 자신과 그 밖의 세계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대면하는 것, 그러한 경계를 재구성하는 선상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보는 이들의 몫이다. ■ 게이트갤러리




김기태_마음속의 표적_디지털 프린트_28×36cm_2007


앨리스는 무엇을 보았을까? ● 사람들이 이 속에다 고개를 디밀고 “얘야, 어서 올라와!” 해도 그냥 올려다보면서, ‘내가 누군데요? 그걸 먼저 말해줘요. 내가 당신이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올라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른 누군가가 될 때까지 여기 이 아래서 살 거예요.’ 하고 대답해야지. 하지만, 아!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김기태_마음속의 표적_디지털 프린트_28×36cm_2007


떨어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땅속 저 끝으로 떨어진 앨리스가 마주한 세상은 지금까지 알아 온 것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로 가득한 ‘이상한 나라’였다. 그러나 ‘이상한 나라’에서 오히려 이상한 앨리스. 이상한 것과 이상하지 않은 것, 상식과 의문이 뒤섞인 그곳에서 앨리스가 선택한 것은, ‘물음’이다. 그 모든 물음의 끝에는 정답이 없다. 옳고 그름이 없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림이 없다. 단, 앨리스가 잊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은 ‘나는 누구인가?’하는 것이었다.




김기태_마음속의 표적_디지털 프린트_51×41cm_2007


깨어 있는 생활 속에서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 느끼는 것. 그 어느 것에도 확신이 없다. 곧 어느 다른 한 순간, 확신은 부정되고, 거절되고, 사라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세계는 순간 순간의 확신으로 시간을 지속하는 세계일지도 모른다. 답은 없다. 내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수밖에. 내가 살아 숨쉬는 그 순간으로 파고 들어가 그 순간의 나를 확신하는 수밖에 없다.




김기태_마음속의 표적_디지털 프린트_51×41cm_2007


『마음의 표적』은 김기태가 그 자신에게로, 그가 마주한 세계의 한 순간, 그 끝으로 파고드는 자취의 흔적이다. 그 자취는 ‘이것은 무엇이다’라고, ‘이것은 이러하다’ 고 주장하지 않는다. 되려 그런 확신 가득한 주장들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깨어 있는 생활, 의식의 한편에서 이해할 수 없는 혹은 이해의 필요성을 느낄 수 없는 하찮은 것들에 대한 물음이다. 그러나 그것이 하찮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우리가 그것에 대한 답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기태_마음속의 표적_디지털 프린트_51×41cm_2007


비겁함과 두려움은 그곳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설렘과 용기 또한 그곳에서 시작한다. 자신과 세계 사이의 얇은 막을 들춰내고, 그 안으로 파고든다. 안의 것과 밖의 것, 가지고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지킬 수 있는 것과 지킬 수 없는 것의 경계는 그 얇은 막의 두께마냥 모호하다. 벽 하나, 창 하나, 막 하나를 걸치고 그 경계를 바라보는 것이 모호함에서 비롯하는 비겁함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일지도 모른다. 나와 나, 나와 세계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대면하는 것. 그는 한 순간, 한 장면에서 가까이 있는 것보다 멀리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안과 밖 또는 어둠과 밝음의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한 줄기 빛에 주목하고, 어긋난 장면들의 경계를 이어 붙여 세계를 재구성하며 자신 안으로 파고든다. 그것은 날카로운 칼 끝처럼 불안한, 부서진 상처와 같이 아린, 이유를 알 수 없이 먹먹한 가슴을 품는 것과도 같다.




김기태_마음속의 표적_디지털 프린트_51×41cm_2007


언덕 위에서 잠든 앨리스가 눈을 뜬다. 그 순간 땅속 저 깊은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는 꿈속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그와 우리의 이야기는 눈을 떠도 끝나지 않는다. 이건 꿈속 이야기가 아니라 깨어 있는 이 순간, 이 세계 속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이야기에 당혹스러워한다면 방법은 두 가지. 다시 눈을 감거나 혹은 눈을 더 크게 뜨고 정면대결 하는 것!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내 몫이다. 그리고 그것은 살아가느냐 아니면 살아지느냐를 결정하는 힘겨운 수많은 선택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 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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