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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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8-02-27 18:50:06, Hit : 431)
전시 2.27



뮌 비디오 설치 & 사진전/관객의 방백

가나포럼스페이스(02-720-1020)
2008-02-25 ~ 2008-03-05

전시 관객의 방백 (Aside of Audience) 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이 전시에서 보여지는 작업들은 현시대 군중을 관객(觀客.Audience)이라는 위상(位相)에 위치시켜 놓고 그들의 방백(傍白)의 모습을 보여준다. 첫 번째 작업은 스크린 앞에 무대가 설치 되어있는 비디오 설치 작업 ‘관객의 방백 (Aside of Audience)’이다. 전시장을 들어선 관객은 무대를 은유하는 위치에서 스크린 속의 비디오 작업을 바라보게 된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미술에 대해 질문을 받게 되는데, 수집된 다수의 개인적인 의견들은 작가들이 시도하게 되는 의견들의 차이의 해석과, 그것들의 교점의 재배치를 통해서 보는 이에게 제시된다. 다수의 사람들의 보편성과, 개인들의 개인지각의 차이, 그리고 개인들이 교차되면서 생겨나는 소통에 대한 의심의 결과를 추적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또 다른 관객인 작업을 보는 이에게 새롭게 제시한다.

두 번째 작업은 사진작업 “High Density Portrait”시리즈이다. 사진 작업에 등장하는 공간 속의 인물은, 정면에 위치한 모니터(TV, 컴퓨터모니터)의 빛을 주시하고 있고, 그 부드러운 빛의 근원(가상세계)에 몰입해 있는 듯 보인다. 사진 속 인물에게 모니터 속의 세계는 그대로 현실이 되기 때문에 감정적으로는 완전히 그 세계와 동화된다. 이런 상황 그대로를 사진 속의 인물이 바라보는 모니터의 비율과 같은 사진으로 제작함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사진 속 인물이 다시 모니터 속의 가상세계의 인물로 변이되는 것이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있는 듯한 사진 속 인물은 보는 이에게도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의문을 제시한다.

글 / 뮌(mi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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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앤장 VS 이앤박展_Kim&Jang VS Lee&Park

2008_0227 ▶ 2008_0304



김제민_Fair Game_에칭_33×45cm_2007




초대일시_2008_0227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_10:00am~07:00pm

참여작가_김제민_박종호_이철진_장유경





갤러리31_GALLERY31
서울 종로구 관훈동 31번지
Tel. +82.2732.1290






행복을 꿈꾸며 우리는 현재를 산다. 개개인이 삶 속에서 행복을 좇는 이정표는 곳곳에 널려 있다. 교과서, 그리고 광고와 같은 각종 미디어를 통해 주입된 장밋빛 미래에 대한 환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인류의 역사 속에 일반으로 자리매김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이상은 개개인의 일상에서 강제성마저 띤다. 결과적으로 거의 모든 인간이 겪게 되는 순환적인 삶의 구조는 마치 시지푸스에게 가해진, 끝나지 않을 형벌을 연상시킨다. 즉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고역을 계속해야 하는 필연은, 문화와 관습적 체제 안에서 이미 설정된 지표를 따르는 우리네 삶의 동기로 설명될 수 있다.




박종호_Pineapple I_디지털 프린트_119×82cm_2008
박종호_Pineapple II_디지털 프린트_119×82cm_2008


짝을 짓고 후세를 생산하며 경제적인 활동을 하는 등 모범적인 패턴을 따르는 성실함은 개개인의 내밀한 욕구를 무시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요컨대, 삶의 행복을 조건으로 내건 ‘합리적 이상’은 때로 오히려 진정으로 바라는 것에 대한 인식도, 열정도 없이 그저 이어지는 일상 속으로 개인들을 내몬다.




이철진_어느 노무현 지지자의 일상에 생긴 환영I_디지털 프린트_16.8×29.7cm_2008



이철진_어느 노무현 지지자의 일상에 생긴 환영II_디지털 프린트_16.8×29.7cm_2008


“김앤장vs.이앤박”이란 타이틀에서 얼핏, 편을 갈라 서로를 향한 듯 보이는 공격성은 실상 그 밖을 향한다. 사회는 그 구성원의 쓸모를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되는 이상을 만들어내며 또한 구성원들간의 경쟁을 조장해 낸다. 개인들의 삶 속에서 사회가 만들어낸 ‘합리적 이상’의 환상을 단숨에 걷어내기란 쉽지 않다. 사회가 개인들을 다루는 규제의 양상은 너무나 오랫동안, 그리고 아주 교묘한 경로를 통해 우리의 삶 속에 침투하고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온전한 개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미 구축된 거대한 환상의 시스템 속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장유경_즐거운 나의 집I _캔버스에 유채_105×75cm_2008
장유경_즐거운 나의 집II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08


잘 짜여진 규칙이 동선을 제한하는 데서 느끼는 무기력함, 반면 시스템이 강요하는 단순한 부속품으로서의 성격에 대한 반발과 저항이 바로 이번 “김앤장vs.이앤박”展의 시작점이 된다. 그 안에는 행복에 대한 열정의 과잉이 만든 ‘이상적인’ 풍경화가 있는가 하면, 문명화된 풍경을 이루는 소재들이 잃어가는 야성을 전면에 드러내는 거친 몸짓이 있다. 또한 현대 문명이 찍어낸 공산품이 만드는 자화상과 함께 물질적 조건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고민이 있으며, 제초제에 굴하지 않고 체력을 단련하면서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나가려는 잡초의 눈물겨운 스토리가 있다. ■ 장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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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_Cube

정혜진展 / CHUNGHYEJIN / 鄭慧振 / painting

2008_0227 ▶ 2008_0307



정혜진_cube_100×81cm_채색장지위에 타공_2008_부분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도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227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_10:30am~06:30pm / 일요일, 공휴일_11:30am~06:30pm




갤러리 도올_GALLERY DOLL
서울 종로구 팔판동 27-6번지
Tel. +82.2.739.1405
www.gallerydoll.com






정혜진의 큐브, 빛의 씨앗을 낳는 시공간 ● “나의 작업은 ‘자연과의 교감’이라는 화두로 일관해오고 있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 시간의 연속성과 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는 우리의 호흡과도 같은 것이다. 일상세계에서 접한 서정적이고 인상적인 다양한 느낌, 기억 등을 함축한 의미들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숨 쉬는 존재의미 자체로써 의미부여를 시도하는 것이다.”




정혜진_cube_100×81cm_채색장지위에 타공_2008
정혜진_cube_100×81cm_채색장지위에 타공_2008
정혜진_cube_100×81cm_채색장지위에 타공_2008


첫 만남 ● 정혜진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2004년 6월이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있었던 ‘아트서울’이란 아트페어였다. 당시 이 아트페어의 캐치프레이즈는 ‘주요 미술대학의 젊고 유망한 작가를 한 자리에 초대한 부스 군집개인전’이었으며, 정혜진 역시 학교를 대표해 추천된 초대작가였다. 돌이켜보면 정혜진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깊은 인상으로 남는다. 블랙 앤 화이트 아니면 간혹 연한 카키색이 기본 바탕색이었다. 주로 흑백의 명도대비가 뚜렷한 화면의 표면에선 오톨도톨 티눈 솟듯 가지런한 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저 멀리 보이는 녹차 밭이거나 방금 가지런히 갈아놓은 밭이랑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살펴봤을 때 비로소 그 오톨도톨한 정체가 뚫린 수많은 점들임을 발견했다. 위에 작가의 말처럼 거의 추상화에 가까운 화면에서 자연의 냄새를 확인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마도 작품의 모티브를 작가 유년시절의 기억에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한 번 쯤은 간직할 법한 어린 시절의 추억. 방학 때마다 찾았던 시골의 정취가 바로 그것이다. 작가에겐 다행히 청년기인 대학생활까지도 친숙한 자연환경의 혜택은 이어진다. 통학 길에 마주치던 밭이랑은 바로 잠시 잊었던 소중한 지난 어린 시절의 향수를 되살려 주었고, 그것은 그대로 작품 속에 녹아들게 된 것이다.“그림을 통해 제 자신이 농부가 된 마음으로 씨앗을 심고 시간과 빛을 더해 한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정혜진_cube_채색장지위에 타공_100×100cm_2008
정혜진_cube_채색장지위에 타공_100×100cm_2008


작품제목 ● 작품의 제목은 작가의 생각을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단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목의 뉘앙스나 제목이 변화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작가의 생각이나 시각이 어떻게 변모해가고 있는가를 유추해볼 수 있다. 정혜진의 경우 역시 지난 개인전에서 사용했던 작품제목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2004년 개인전에 사용한 작품제목은 ‘전(田)’이었다. 위에서도 얘기했듯 이 시기는 처음 자신의 생각을 내보이는 첫 개인전 이어서인지 직설적인 화법이다. 자신이 경험한 기억을 꾸밈없이 가장 편안한 표현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2005년 2회 개인전에선 시각이 좀 더 광의적이고 거시적으로 확장된다. ‘illusion’이란 제목은 단지 환영이라는 의미 이상의 뜻을 내포하게 된다. 자연의 지엽적인 부분이 아니라, 좀 더 확장된 전체를 관망함으로써 한결 넓어진 시야를 보여준다. 2006년의 ‘monologue’라는 대목에선 ‘내면적인 독백’을 보여주기에 이른다. 밭이랑의 형태는 상징적인 역할만 할 뿐 화면은 훨씬 자유로워지며, 안정적이면서도 과감해진다. 이에 반해 이번 2008년 ‘cube’는 다소 변화된 형식이다. 이전의 화법이 밭이랑이라는 조형적인 시각요소에 주목했다면, 지금은 그 밭이랑에 심긴 씨앗을 상징하고 있다고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구체화되고 상징적이며 함축적으로 축약된 조형어법이다. 작품의 주요 테마가 자연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첫 개인전부터 이번 네 번째 개인전까지 일관된 요소이다. 비록 이번전시의 ‘큐브(cube)’란 제목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더라도 결국 그 이면엔 그동안의 주제의식이 더욱 농익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의 작품제작과정인 구멍을 뚫는 행위가 곧 씨앗을 심는 농부이며, 오방색의 다양한 색조는 시간의 흐름과 계절로, 타공된 구멍으로 비춰지는 조명의 빛은 대기의 자연 빛, 최종적으로 드러나는 큐브의 형상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이번전시의 작품들은 그동안 품어온 자연에 대한 향수를 가장 적절하고 구체적으로 결집해놓은 것으로 여겨진다. “반복하여 뚫는 행위는 일종의 무위(無爲)상태에 접근하여 선(禪)을 행하듯이 마음을 비워내어 심적 평정상태에 이르게 한다. 결국 의식의 집중과 몰입으로 유도되어 고요한 마음을 갖게 하고 무념(無念)의 상태는 내면의 깊이와 공간 확대를 가져와 외부로 향하였던 의식을 안으로 집중시켜준다. 이렇듯 반복되는 행위는 무의식적 상념들을 넘나들다가 어떤 진공(眞空) 상태를 경험하고, 무아(無我)의 세계를 체험하게 한다.”




정혜진_cube_채색장지위에 타공_130×130cm_2008
정혜진_cube_채색장지위에 타공_130×130cm_2008


점의 의미 ● 불교의 정신수행법에 절을 하는 행위를 으뜸으로 삼는다. 단순히 육체적인 노동의 결과로써 운동효과를 얘기하기도 하지만, 진정한 묘미는 수없이 반복되는 행위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 때문일 것이다. 흔히 108배 내지 1천 배까진 경험한 이가 많다. 하지만 3천, 6천 혹은 1만 배까지 이른 경우는 매우 드물다. 보통 절을 하면서 육체적인 고통의 한계는 2천 배를 넘어서는 순간이다. 하지만 3천 배를 넘게 되면 육체는 무감각해지고, 5천 배가 넘어서면 육체와 정신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7천 배를 넘어서는 내면의 자아를 관조하는 단계에 이른다. 정혜진의 점 역시 불교의 정신수행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점은 이미 공간이 응축된 소우주이며, 시작이고, 출발이다. 또한 그 미세한 통로를 지나면 한없이 펼쳐진 확장된 공간을 만나게 된다. 완벽을 지향하면서도 동시에 자연스런 손맛을 살리는 독창적인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정혜진의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점을 만들어내는 방편이다. 작가는 화면의 앞쪽에서 뒤쪽으로 붓으로 점을 찍듯 뚫는 것이 아니라, 뒷면에서 앞쪽을 향해 송곳같이 예리한 도구로 밀어내며 구멍을 낸다. 이는 마치 동양화의 전통 채색기법인 배채법을 연상시킨다. 이 채색법은 종이 밑면에서 앞면으로 배어나오게 채색하는 방법으로써, 작가의 인위적인 행위에 화면의 자연스런 응대를 함께 조율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방향성은 지난 과거로부터 출발해 현재를 관통하여 끝없는 미래로 확장하는 것과도 비교될 수 있겠다. 따라서 화면의 뒤쪽에서 밀어내듯 뚫어낸 구멍들은 비록 평면이란 한계를 지닌 화면이지만 그 타공을 통해 또 다른 3차원적인 공간을 재생성하는 것과 같다. 표면에 요철로 두드러진 제각각의 점들은 준법으로 비유하자면 미점(米點)준에 가깝다. 흔히 미점준은 쌀알을 화면에 톡톡 올려놓거나 쌓아가는 것처럼 조그만 점들을 반복해서 찍는 행위를 말한다. 그렇게 볼 때 정혜진의 점들은 이미 심겨진 씨앗들이 굳은 땅을 비집고 또렷하게 새싹을 틔우고 있는 형국이다. 마치 점점이 흩어진 씨앗들이 뿌리를 내리고 창공에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순간들을 보는 듯하다. “이번 전시주제는 ‘큐브’이다. 큐브의 공간에는 결코 안과 밖이 없으며 입구 또한 출구이고 출구 또한 입구이다. 겉으로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결코 그렇지 않다. 각 조각의 모양을 자세히 관찰하고 조각 상호간의 관계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입체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하며, 그 조각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결합해보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과정에서 제2의 이미지가 재구성되고 생성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정혜진_cube_채색장지위에 타공_90×140cm_2008_부분


점과 큐브 정혜진의 이번 개인전에 출품된 작품들은 큐브의 형상을 담고 있다. 기본적인 패턴은 작은 원형이 반복되고 있지만, 그 원점을 관통한 무형의 선들은 서로 만나 정육면체의 큐브 입방체를 만들게 된다. 다시 말해 모든 기본적인 도형은 점으로 시작해 선을 만들고 면이 되며, 그 면은 모여 입방체를 만든다. 또한 자연의 모든 물상은 거시적으로 볼 때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따라서 아무리 다양한 형상을 지녔다 하더라도 결국 하나의 점으로 환원되고야 만다. 정혜진의 이번 큐브 작품들은 이러한 자연의 순리를 아주 간결하면서도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정혜진의 점들은 점차 입체화 되고, 시각 또한 자신의 내면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각각의 도형들은 아주 작은 공간의 집합체이다. 2차원적인 평면이면서도 다차원적인 무한공간으로 향한 수많은 소실점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결국 정혜진의 ‘큐브(cube)’는 회귀이자 순환이다. 또한 그녀의 큐브는 지난 시간의 흔적이나 기억을 담은 캡슐이며, 마음의 방점이다. 그리고 그 방점은 비쳐진 빛으로 비로소 완성된다. 빛의 기운을 발산하면서 큐브의 진정한 매력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 김윤섭




정혜진_cube_채색장지위에 타공_160×60cm_2008
정혜진_cube_채색장지위에 타공_160×60cm_2008


Chung Hye-jin's Cube, A Poetic Space Bringing Forth The Seed of Light ● "The topic of my works has been consistently the sympathy with nature'. This sympathy is not restricted by time and space in everyday life, like our endless breathing. This sympathy connotes a variety of lyrical and impressive feelings and memories in everyday life. In other words, this is an attempt to provide an existential meaning to human beings who are breathing and living."
First Encounter ● It was June 2004 when I first encountered with Chung Hye-jin's work. It was an art fair―'Art Seoul'―held in an art center, Hangaram Design Museum. The catch phrase of the fair was 'an assembled booth-based private invitatory exhibition of young and promising artists at major art colleges.' Chung Hye-jin was one of the invited artists. In retrospect, her works were very impressive. Her basic colors were black & white, or light khaki. I met some rugged corn-like well-arranged lines on the surface of canvas of which black & white luminosity was in stark contrast at that time. That reminded me of a green tea patch far away or furrows fresh plowed. When I looked into them more closely, they were turned out to be numerous dots punctured. As her sayings at the outset, it was not difficult to find out the aroma of nature on the abstract painting-like canvas. It was seemingly because she derived her motives of work from her childhood memories. It can be a treasured memory of childhood, everyone may cherish, or a rural mood experienced in every vacation. Fortunately, she has enjoyed the benevolent influence of nature even to the time of university student. The furrows she encountered on the wayside of school route were enough to vivify the memory of her nostalgic childhood, thus being melted in her artistic works. "By way of paintings, I want to express the process of birth of life by sowing seed with a farmer-like mind and adding time and light to it."




정혜진_cube_채색장지위에 타공_164×36cm_2008
정혜진_cube-circle_채색장지위에 타공_80×160cm_2008


Titles of Works ● The title of works implies an artist's way of thinking. Therefore, the changes of title nuance or title itself can reveal the changes of an artist's thinking or sight. In case of Chung Hye-jin, the title of works has been gradually changed as well. The title of her 2004 private exhibition was 'A Field'. As mentioned above, this title of her first private exhibition was a rather outspoken expression of her way of thinking. She narrated her experience in a most frank and easy way of expression. However, the title of her second private exhibition in 2005―'Illusion'―was rather comprehensive and macroscopic. This title connoted more than the simple meaning of a phantom. By observing not the minor details of nature but a more complete whole of it, her sight became more extensive. With the title of her 2006 exhibition―'Monologue, she even expressed her 'interior soliloquy'. The pattern of furrows was playing a mere symbolic role, thus making canvas not only unrestraint but also stable and daring. On the other hand, the title of 2008 exhibition―'Cube'―is a somewhat changed one. If her former art of drawing paid attention to the formative visual element of furrows, now it symbolizes the seed sowed in the furrows. Thus, her art of drawing has been changed into a formative language that is concrete, symbolic and connotatively compressed. ● However, that the starting point of the themes of her artistic works is nature has been unchanged in her four private exhibitions. Although the title 'Cube' is seemingly strange, it implies a matured thematic consciousness of childhood. Her acts of punching a canvas imply a farmer's sowing of seed. A variety of shades of five-direction colors can be compared to the flow of time and season; the light shone through the punched holes can be compared to atmospheric natural light; and the final form of cube can be compared to the birth of new life. Thus, the works of this exhibition can be regarded as a most appropriate/concrete/concentrated nostalgia of nature she has cherished in the heart all the while. ● "Repetitive acts of puncturing make me access to a sort of inactivity, empty out the heart as if one studying and practicing the Zen meditation, and arrive at the mental state of composure. The acts induce conscious concentration and immersion, thus making get along with serene mind. In addition, the freedom from all ideas and thoughts intensifies the inner depth and space, resulting in the internal concentration of outward consciousness. Therefore, these repetitive acts make one experience an ecstatic world and a vacuum state in and around unconscious conceptions"




정혜진_cube-circle_채색장지위에 타공_160×60cm2008_부분


The Meaning of Dots ● Buddhists regard bowing as a most important ascetic exercise. Although some say that there is an exercise effect in bowing down, its true effect is seemingly in that it can achieve the oneness of the ego and the non-ego through endlessly repetitive acts. There are many who practice 108 or even 1,000 bows in a row. However, there are few who practice 3,000, 6,000 or 10,000 bows in a row. Physical pain usually reaches the limits of patience with 2,000 bows. However, with some 3,000 bows, human body feels numbness. When it reaches some 5,000 bows, the boundary between body and mind is destroyed. In addition, with some 7,000 bows, one can reach the stage of observing his or her interior self. Chung Hye-jin's dot is not much different from Buddhists' ascetic exercise. Her dot is a small universe of condensed space, a starting point, or beginning. Upon passing by the narrow passage of dots, one can encounter an endless space enlarged. Thus, she commands a unique art of drawing that pursues both perfection and natural touches. ● One of the unique features of Chung Hye-jin's works is the means of producing dots. She punctures canvas not from the front to the rear, but from the rear to the front, with sharp-edged tools such as an awl. This reminds me of the rear side coloration, one of traditional coloring techniques of Oriental painting. With this technique, canvas is soaked with oozing-out colors from the rear to the front, thus tuning an artist's artificial act to canvas' natural response. In addition, this directivity, namely from the rear to the front, can be compared to the expansion toward endless future via the past and the present. In this vein, although the dots punctured from the rear to the front have the limit of plane canvas, they can reproduce a three-dimensional space. ● The rugged dots on the surface of canvas are close to the brush technique of rice-grain dot. This technique means to make tiny repetitive dots on canvas with a rice-grain putting or stacking method. In this regard, Chung Hye-jin's dots are similar to the germinating seeds distinctly popping out from the hardened earth. It looks like the moment when the sowed and dotted seed takes roots and brings forth new life in the sky. ● "The theme of this exhibition is 'Cube'. There is no inside, nor outside nor an entrance nor an exit in the space of Cube. An entrance can be an exit, and vice versa. It seems very complicate, but it is not in reality. By closely observing each fragment and examining the relationship between them, one can realize cubic thinking. And by focusing on the process of combining each fragment in a variety of ways, one can compose and generate a different image."
Dots and a Cube ● Chung Hye-jin's works in this private exhibition bear the shape of cube. Although the basic pattern is the repetition of small circles, the formless lines that penetrate the circles meet and make a square cube. In other words, all the basic figures in her works start with dots. Dots make a line and lines make a side and sides make a cube. In this vein, all the natural objects can macroscopically be a mere dot. Therefore, even a complicate object that bears a variety of shapes ultimately converges to a dot. Chung Hye-jin's cubic works in this exhibition express this law of nature in a very simple but shrewd manner. Chung Hye-jin's dots in this exhibition have become more cubical and closer to her interior self. Every outward shape is an assembly of tiny spaces. Although the shape is a two-dimensional plane, it bears numerous vanishing points that head for an endless space. At long last, Chung Hye-jin's cube is recurrence and circulation. In addition, her cube is a time capsule that bears traces and memories in the past, and a side dot of mind. The side dot of mind realizes its completion by way of light shone. As it emits the force of light, her cube reveals its true attractiveness. ■ bu KIMYUNS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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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 제현_再現 ,製現

한성필展 / HANSUNGPIL / 韓盛弼 / photography

2008_0228 ▶ 2008_0313 / 일요일휴관



한성필_움직이는 박물관 1 Ph_Chromogenic Prints_170×122cm_2007_좌
한성필_움직이는 박물관 1 Re_Chromogenic Prints_170×122cm_2007_우
한성필_움직이는 박물관 2 Ph_Chromogenic Prints_170×122cm_2007_좌
한성필_움직이는 박물관 2 Re_Chromogenic Prints_170×122cm_2007_우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세오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228_목요일_05:00pm

2008 세오 1st 영 아티스트 기획초대展

관람시간
월요일-토요일_10:00am-07:00pm
목요일_10:00am-09:00pm





세오갤러리_SEO GALLERY
서울 서초구 서초1동 1666-12번지 꿈을 꾸는 세오빌딩 2층
Tel. +82.2.522.5618
www.seogallery.com






이미지의 본성을 찾아서-재현(再現)과 제현(製現) ● 한성필의 사진은 세계 각국을 여행 다니면서 만나게 되는 풍경과 건물에서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까지 담은 순간을 포착하고 그 시공간사이의 독특한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미술은 사실적이며 시각적 재현에서 발견과 오브제의 제시를 거쳐 상황을 제시하는 설치와 개념의 해체까지 정신과 물질에서 자유롭게 벗어나며 매체의 자유로운 이동의 포스트모던까지 온 상태다. 한성필은 역사적으로 작가들이 늘 고민해온 재현과 제시, 실재와 환영의 관계를 사진으로 규명해 보고자 한다.




한성필_사진적 데칼코마니_Chromogenic Prints_150×122cm_2007_좌
한성필_회화적 데칼코마니_Chromogenic Prints_2007_150×122cm_2007_우


그는 2004년부터 파사드 프로젝트(facade project)를 진행해 왔다. 여행 중 각 나라에서 만나게 되는 기념비적 건물의 재 건축과정에서 실재건물의 실사를 그대로 그렸거나 프린트 한 방진막을 공사장에 설치한 것을 발견하고 찍은 사진들이다. 밤과 낮의 경계에서 실재의 빛과 인공조명을 적절히 사용하고 사람의 형태는 없고 흔적만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이용해 분위기를 만들어낸 실제의 건축풍경사진은 사실적 재현을 뛰어넘어 예술로 승화된다. 사진은 일종의 기억-이미지라는 앙리 베르그송의 말처럼 늘 지나간 과거의 기억이지만 한성필의 사진은 사실적 재현이란 현재와 복원 후 어떻게 보일 것인가의 미래까지도 담아내는 시간의 틈을 표현하고 있다.




한성필_막다른 골목_Chromogenic Prints_150×122cm_2007



한성필_더 비치_Chromogenic Prints_122×150cm_2007


이번 세오갤러리에서 선보일 작업들은 지금까지의 건물표면만이 아니라 밖에서 보여 지는 공간 내부의 모습을 포착한 사진과 그 내부를 똑같이 미니어처로 만들어낸 설치작업, 또 다시 그 것을 찍은 사진을 함께 제시해 관찰자와 경험자로서 이미지의 구성과 실체를 정확히 탐구하고자 한다. 그리고 광주에 위치한 구 전남 도청사 로비사진은 도청이 이전하기 전 무안의 새로운 청사 건축도감 사진을 로비에 걸어두었던 장면의 사진과 다시 사진으로 찍어 그 장소에 바꿔 걸었던 상황을 다시 찍은 사진을 함께 선보인다. 사진으로 실재를 재현(再現)하고 동시에 실재를 만들어 낸다는 제현(製現)으로서의 의미라고 작가는 말한다.




한성필_사라진 벽_Chromogenic Prints_2007 122×150cm_2007



한성필_일루젼_Chromogenic Prints_150×122cm_2007


매스미디어 세계에서 이미지가 범람하고 있는 현 시대의 현실의 실제에 대한 규명은 쉽지 않다. 기호와 기표의 그물망 속에서 장 보드리야르의 현실자체가 사라진 현실이나 롤랑 바르트의 육체가 없는 눈만 가진 인간의 사회라고 말한 시대에서의 작가의 실험적 탐구다. 한성필의 사진은 안과 밖, 시간과 공간, 관찰자와 제작자, 재현과 이미지, 사실과 연극적 상황 등 그 문제들을 드러나게 제시하면서도 조합시킨 진지한 작업이다. 한성필의 풍부한 개념과 색채, 형태를 포용한 풍요로운 조형언어는 결과적으로 매우 시각적인 아름다운 사진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은 인공과 자연의 빛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바람을 이용해 자칫 딱딱하게 보이기 쉬운 장면에 생동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성필_스페인식 광장_Chromogenic Prints_162×122cm_2006



한성필_페이드 인 & 아웃_Chromogenic Prints_122×150cm_2007


그의 사진은 많은 개념의 유희와 겹겹이 쌓인 감각의 층이란 조화로운 리듬으로 세련되고 안정적인 미를 함께 전달해 준다. 한성필은 아카이브를 위한 기록적인 사진, 번뜩이는 감성과 함께 하는 발견이라는 예술, 내면적 접근 등의 미술사적인 단계를 진지하게 실험하며 발전하는 작가며 앞으로 새로운 예술을 제시할 역량 있는 작가로 기대된다.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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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의 기술_Technique of Deviation

2008_0221 ▶ 2008_0320



김시연_집에서_디지털 프린트_110×165cm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221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기라_김수영_김시연_김태중_이명호_이윤진
이종명_이중근_주상연_천성명_최승훈+박선민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INTERALIA ART COMPANY
서울 강남구 삼성동 147-17번지 레베쌍트빌딩
Tel. +82.2.3479.0114
www.interalia.co.kr






『일탈의 기술』展에 부쳐 ● ‘일탈’이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감각적인 연상 작용을 일으킨다. 흔하게 찾아오지 않는 어떤 순간을 포착하여 실행했을 때의 짜릿한 쾌감을 만끽할 수 있음에 은밀한 기쁨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일탈의 순간은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것이지만 타이밍이 나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 일탈을 결정할 때는 가장 과감해져야 하면서 동시에 가장 위축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김기라_버드와이져 맥주가 있는 정물_캔버스에 유채_97×145.5cm_2007

『일탈의 기술』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시의 개최지인 ‘인터알리아’라는 곳을 먼저 설명해야 한다. 인터알리아는 KLS(Korea Lottery Service)라는 자본력을 갖춘 사업체를 모기업으로 하여 2007년 중반부터 전시, 세일즈, 옥션, 컬렉션 등의 사업을 위한 약 8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서 그 시작을 『일탈의 기술』이라는 전시로 런칭하게 되는 아트컴퍼니이다. 인터알리아는 그 기반이 전혀 미술과 상관이 없었다가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는 과정에서 미술시장의 구태의연한 시스템을 감지했다. 마케팅 전문기업을 모태로 한 인터알리아는 이러한 미술시장을 보다 안정적인 모습으로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의욕을 가지게 되었고 미술시장의 형태에 대한 리서치를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최근 미술시장의 열풍에 비해 시스템이 그다지 체계적이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미술시장의 약점은 기업의 형태로서 미술시장의 시스템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인터알리아로서는 오히려 강점을 지닌 회사로 우뚝 설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는 감을 잡게 되었을 터이다. 이리하여 KLS로서는 아무런 연고도 없었던 미술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이 이 회사로의 첫 번째 일탈이다.




김수영_라팔미르 서민주택_캔버스에 유채_210×195cm_2007



김태중_3sou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30.3cm_2008

첫 번째 전시인 『일탈의 기술』展을 실현하기까지도 인터알리아는 과감한 결정이 필요했고, 위축된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참여 작가 리스트로는 옥션 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되는 작가들 이름은 보이지 않고 좋은 작가라는 말을 대책 없이 믿어야 하는 것이 회사로서는 답답한 노릇임에 틀림없다. 상업시스템에서 할 수 있는 전시인지도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다. 전시를 기획한 본인도 “잘 팔리는 작가입니다.”라는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알리아는 다시 과감한 일탈을 저지른다.




이명호_Tree #2_디지털 프린트_100×80cm_2006



이윤진_Still-Life Nr.73_디지털 프린트_190×127cm_2007

이 전시가 과연 저 400평의 전시 공간에 앞으로 어떤 성격의 전시들이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소시켜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미술시장에 아직 활발하게 프로모션 되지 않은 작가들에 대해 이 공간 속에서 그들의 시장성에 대한 가능성을 검증 받고 실험해 보는 자리로서 활용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있는 전시이다. 그래서 이 전시는 미래지향적이다. 그런 와중에도 작가들의 상업성을 의식한 것은 국내외의 앞서가는 감각의 컬렉터들이 선호하고 구입하는 작가들을 한자리에 모아보았다는 점이다. 갑작스러운 미술시장의 호황에 대한 우려를 전시기획자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흐름에 함께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시장성의 가능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거나 이미 미술시장에서 검증 받았으나 스스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작가들을 모았다. 작가로서의 진지한 태도와 결과물인 작품의 프로페셔널리즘이 살아있는 작가들이기도 하다.




이종명_Stadttor_디지털 프린트_120×90cm_1998

현대 미술의 중심이 비평가에서 큐레이터, 그리고 지금은 컬렉터에게 좌지우지 되고 있는 흐름을 눈치채고 있다면, 그리고 조금 더 앞서 관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이 흐름은 멈추지 않고 계속 순환고리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사실 이 모든 경향이 공존하고 있으나 대중을 향해 부각되는 강도에 따라 마치 중심이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는 것도 벌써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시류 속에서 굳이 돈의 흐름에 중심을 두지 않고 심지를 굳히고자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일탈의 기술이다. 즉 여기 참여한 작가들이 자신만의 관심사에 시선을 고정하여 그 내면의 진실성(reality)을 끊임 없이 모색하는 꿋꿋한 시선을 고집하는 것처럼. 그리고 인터알리아가 미술계의 호황의 급물결에 곧장 뛰어들지 않고 신중하고 치밀하게 준비기간을 가지고 있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이중근_You are my angel_디지털 프린트_Φ120×6cm_2008



주상연_「Wonder on Parnassus」series_디지털 프린트_46×46cm_2007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을 일탈이라는 큰 테두리에 묶을 수 있었던 공통점은 그들이 ‘그림이 어떠해야 하며, 사진이 어떠해야 한다’는 전통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술의 역할이 이데올로기적 관점, 사회적 맥락이라는 틀에 끼워진 채 해석되었던 경향이나, 대중의 구미에 맞추어진 생산품의 미술이나, 전통의 화풍을 충실하게 이어받은 작품 등과는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작가들은 개인적인 관심사에 치중하고 있고,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고 있는 물건이나 풍경, 인물 등을 낯선 어떤 것으로 환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전통과 기성 작가들이 다루어 온 권위적인 형식이나 사상들을 탈피하고자 하는, 새로운 미술 형식기반을 다지고 있는 세대의 옐로우칩 작가들이면서 미래의 블루칩 작가들이다.(중략)




천성명_그림자를 삼키다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8



최승훈+박선민_BIGPLANTSsmallpeople_디지털 프린트_40×56cm_2004

‘일탈’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다는 가능성을 전재로 한 단어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탈이 즐거웠다면 또 다른 일탈을 꿈꾸어 볼 수도 있겠다.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이 전시를 개최한 인터알리아, 그리고 관람객들에게 그들이 꿈꾸는 「일탈의 기술」이 어떤 것인지 이 전시가 단초를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작가들은 과연 특별한 재주가 있지 않은가. 이토록 소소한 것들을 통해서도 ‘일탈’행위를 하고 있으니. ■ 김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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