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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든지.
장인의 심도깊은 손길은 감동을 동반하는 법. 쓰신 분의 문장도 잼나지만, 어떤 새로운 지평을 열어받는 기분은 정말 뭐라 할 수 없는 감사함이란.(__) 순수한 행복이란게 있다면, 음악을 듣는 것도 포함될 듯.
사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단독으로 완성될 수 없다. 연주가 그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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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슈타인
written by anachroid
바흐의 평균율이 피아노의 구약성서라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가 신약성서라는 한스 폰 뵐로의 말은 지금까지도 널리 인용되는 유명한 클리셰입니다. 베토벤이 피아노 음악을 완성시켰다는 사실은 그만큼 분명한 팩트가 되었죠. 특히 그가 피아노 소나타에서 구사했던 대위법의 진풍경은 바흐 이래 가장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악곡의 형식적 긴장과 해소, 선율 하나하나가 담지하고 있는 무한한 화성적 가능성과 피아노라는 악기가 구현할 수 있는 극한의 면모들을 보여주는 베토벤의 소나타는 악곡의 측면에서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찬란합니다.
그만큼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녹음했지만 최근에 폴리니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전곡 싸이클을 제외하면 사람들의 추천은 한결같았습니다. 길렐스, 아라우, 브렌델의 삼파전이죠. 길렐스가 사망하는 바람에 5곡을 빠트린 것을 빼면 이들은 모두 전곡을 녹음했습니다. 특히 길렐스가 32번을 녹음하지 못하고 사망한 것은 베토벤조차 땅을 칠 일이라는 사람들이 많았죠.
브렌델역시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 프로젝트에 무려 세 차례나 도전했습니다. 몇몇 서정적인 작품에서 그가 보여준 연주역시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을만한 명연이었죠. 쉽게 구할 수 있는 필립스의 듀오 시리즈가 그의 두번째 녹음을 대중화시켰지만 역시 그의 최고작은 만년에 녹음했던 세번째 도전이었습니다. 아라우는 평소 그의 말년 리스트 녹음 때문에 많이 지적됐던 테크닉 상의 난점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에서만큼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발트슈타인을 비롯한 몇몇 작품들에서는 단연 최고의 연주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였으니까요.
전곡집의 특성상 모두 고른 연주를 기대하기도 어렵거니와 청자의 취향에 따라 개별곡들에 대한 평가는 모두 제각각입니다. 특히 학구적인 연주자로 알려진 브렌델이 베토벤 소나타에서만큼은 달콤함의 대명사로 꼽히고 있을 지경이니까요. 길렐스와 아라우는 모두 베토벤 피아니즘의 핵심에 도달한 연주를 들려주면서도 동시에 서로 전혀 다른 길을 갑니다. 길렐스의 '강철타건'이란 별명의 논거가 된 베토벤 소나타들은 한결같이 놀라운 구축력과 진정한 대가만이 구현할 수 있는 굵직한 선으로 베토벤 피아니즘의 정수를 드러냅니다. 그의 연주는 베토벤의 감성적 선율조차 얼마나 웅혼한 영혼을 지녔는지를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가득합니다. 명징하지만 극단을 피한 명암의 대비로 보여주는 발트슈타인이나 23번 같은 곡은 지정주의적 경건함으로 충만합니다. 반면 아라우는 특유의 아티큘레이션과 진지한 상상력으로 화성적 긴장과 해소의 굽이굽이를 유유히 유영하며 고뇌의 음표들에 전혀 다른 질감을 부여합니다. 물론 그의 특기인 느린 템포도 여전하고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들은 생각과는 달리 장조곡, 특히 E플랫 장조곡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이조악기가 많은 관악기들을 위한 곡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가 E플랫 장조 피아노곡을 많이 작곡한 이유는 당시 포르테 피아노의 톤 때문이라는 저의 용감한 추정이 맞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건 E플랫 장조인 4번, 13번, 18번, 26번은 유난히 아름다운 주제선율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그는 주로 장조를 이용하면서 화성의 구조를 다양하게 운용하려는 목표들을 관철시켰습니다. 단조곡들은 그 조성 특징상 스케일의 표현이 장조에 비해 다양합니다. 물론 그 다양성 때문에 도리어 더 선율의 움직임이 단조로울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 듣는 21번 발트슈타인이 다장조라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훌륭한 작곡가였는지를 보여줍니다. 다장조 곡이 이토록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전 이 곡을 듣고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들었던 최고의 발트슈타인은 길렐스의 연주입니다. 특히 3악장만큼은 아라우의 팬들조차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죠. 물론 폴리니의 발트슈타인은 녹음도 그렇거니와 가히 21세기의 베토벤 소나타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경이롭습니다만 저는 아무래도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친구였던 길렐스의 연주가 더 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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