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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4-05-21 03:20:23, Hit : 355)
씨네21_ 홍상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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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변화, 혹은 변화없음에 대한 영화평론가 허문영의 8가지 키워드 인터뷰


· 허문영 먼저 무식한 질문부터 하겠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어떤 영화인가.

· 홍상수 이전 영화보다 짧은 편이고 굳이 비유하자면 중편소설 같다고 할까. 두 남자가 오랜만에 만나서 낮술 먹다가 과거에 두 사람이 공히 알고 있는 여자 얘기가 나오고, 그 여자에 대한 각자의 회상이 있고, 술이 좀더 들어가니까 낮술의 힘을 빌려 그 여자가 사는 곳으로 찾아간다. 겨울에 일어나는 이야기고, 회상 부분은 늦여름과 가을이고.

· 허문영 줄거리만으로 보면 남자가 혹은 남자들이 자기가 현재 살던 곳에서 어딘가로 가서 여자를 만나고 그 여인과 일정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관계의 진전은 더이상 없다는 점에서 홍상수 감독의 전작 패턴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다. 전작과 다른 점이 있다면.

· 홍상수 막연하지만 전에 한 것과 다른 것을 보여줬으면 하는 맘은 항상 있다. 그렇지만 정작 영화를 만들 때가 되면 이걸 이렇게 바꿔서 그 전 것과 다르게 해야겠다는 식으로 움직이질 않는다. 한 영화가 끝나면 만든 걸 잊어버리려 하고 맘을 비운 상태에서 떠오르는 중심 상황이 있고, 그 상황을 마음에 두고 그것에 끌려서 들어오는 조각들, 디테일들이 모아가면서 한쪽에선 그 조각들을 어떻게 하나의 모양으로 할까 형태를 생각한다. 그렇게 디테일들이 충분히 쌓였다 싶으면 쓰기 시작한다. 또 촬영과정에서 배우들과의 만남도 하나의 과정인데 이런 과정이 주욱 다 지나고 나면 그때야 내가 이런 걸 만들려 했었나보다 하는 게 보인다. <여자는…>은 만든 지 얼마 안 됐고, 이게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사실 감을 잡기 어렵다. 내가 의식했던 부분들, 요소들간의 체크할 수 있는 관계, 이런 것들, 부분적인 것들을 잘 수행했는지는 체크해볼 수 있으나 영화 전체로 한 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정말 모르겠다. 몇 개월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반응을 들어보면서 이 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비로소 알기 때문에.

· 허문영 만들고 난 지금 시점에서 관객이 어떻게 봐주기를 바라는 맘이 있나.

· 홍상수 이제 만든 거고 기다리면서 관객의 반응을 들을 것이다. 지금 그냥 떠오르는 건 중편소설, 노벨라, 라고 부르는 형태? 영화를 보면서 그런 걸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으면 더 잘 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있고,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설명이 정말 필요없는 영화, 그런 게 생각난다.

· 허문영 이재용 감독이 <생활의 발견>을 보고 홍상수 영화라는 대전제에 얽매이지 않고, 작품 그 자체로 재미있게 볼 수 있어 좋았다는 취지의 소감을 전한 적이 있다. 그런 방식으로도 봐주기를 기대하나.

· 홍상수 그렇다. 외국의 한 세미나에서 만난 한 외국 관객이 나중에 인터넷 어디다 쓴 글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그거 보니까 그 사람이 내 영화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개인적으로 받아들였나를 느낀 적이 있었다. 그런 사람 생각하면 그 사람이 특별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 사람은 정말 딱 영화만 봤구나, 그래서 그런 반응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 허문영 최근 프랑스에서 인터뷰를 가졌는데, 프랑스 평론가나 저널리스트들에게 들은 말 중에 인상적인 코멘트가 있다면(홍 감독은 최근 프랑스에서 10여개의 매체와 인터뷰를 하고 돌아왔다. <여자는…>의 프랑스 개봉 시점이 칸영화제 기간 중이어서 일정을 앞당긴 것이다).

· 홍상수 글쎄. 내가 들은 얘기들을 기억하면 이렇다. “내가 변하지 않고 계속 하려는 걸 하는 것 같아서 고맙다, 또 이 영화를 수용한 칸쪽에도 고맙다, 둘 다의 용기다.” “전보다 더 슬픈 느낌이면서도 유머가 있는 게 밸런스가 좋다.” “참혹함을 지난 참혹함을 느꼈다.” “같으면서도 항상 다른 것 같다.” “영화지만 실제 자신의 삶에서 유용한 도움을 받는다.”

편집>> 의도보다 살아있는 흐름이 중요하다

· 허문영 이번에는 편집 과정에서 전작들보다 결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고민의 요점이 어떤 거였나.

· 홍상수 항상 20∼30분 정도 편집에서 잘라냈는데, 외국에 보내기 위해 서두르면서 시간적으로 압박이 있긴 했다. 그러나 전과 비교하면 이번이 특별했다기보다 당연히 거쳤어야 할 고민을 서둘러 한 정도다. 내용으로 보면 말미 부분을 가을에 미리 찍었다. 나는 찍는 방식이 있는데 매일 (시나리오를) 써서 찍는데, 쓰고 찍으면서 축적이 되어 나가는 과정이 나에게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말미를 미리 찍어놓으니까 그 직전 부분과의 페이스 변화랄까, 그게 잘 안 맞았던 것 같다. 사실 항상 그렇게 생각한다. 찍는 건 찍는 거고 편집할 때는 남이 찍어놓은 걸 내가 편집하듯 하니까. 의도가 중요한 게 아니고 의도는 핑계일 뿐이고. 찍어놓은 것 중에 워킹(working)하는 걸 골라내는 게 편집이니까. 지금 작업 과정 중에 소화되고 처리돼 없어진 부분을 말하는 건 관객에게 방해되는 것 같아 구체적으로 말하긴 좀 그렇다.

· 허문영 다 찍고 나서 순서 편집을 해봤을 때 느껴졌던 페이스랄까, 중요한 원칙은.

· 홍상수 찍은 걸 대강 붙여놔보면 의도했던 게 잘 살아나는 게 있고, 어떤 건 죽어 있거나 전체 흐름과 잘 맞지 않은 게 있는데 그런 걸 제거하고 살아 있는 걸로만 새롭게 구조를 만든다. <강원도의 힘>은 앞쪽에서 20∼30분 정도 들어냈고 <오! 수정> 때도 그 정도 들어내면서 전체 구도를 편집하면서 완전히 다 바꿨다. 맨 처음 시작했을 때의 의도가 뭔가를 약속하는 것 같지는 않고 의도는 작업을 시작할 때의 호기심이고 대강의 플랜이다. 그것으로 찍어나간 뒤 골라내고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정리하고 그걸 밖에 보여주는 거니까.

꿈>>결국 일상의 시간에서 벌어지는 것

· 허문영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는 꿈 시퀀스가 등장하는데 이건 처음이다. 비슷한 사례로 <오! 수정>이 있지만 거기서는 기억이었다. 기억은 의도가 개입하는 의식의 영역이지만 꿈은 통제가 불가능한 무의식의 영역이다. 이것은 현실의 표면을 천착해온 당신에게 매우 도전적인 시도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 홍상수 <오! 수정>에서 기억이라고 했으나 그게 그 사람에게 현재의 리얼리티로 받아들여지길 바랐기 때문에 여기서의 회상과 좀 다르다. 여기서의 회상은 영화에서 흔히 보는 전통적 의미 그대로의 회상이다. 예전에는 회상 같은 건 안 할 것 같았는데 요번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회상할 때 실제로 그 사람의 실제 시간을 잡아먹는다. 또 한번 하고 마는 게 아니라 자주 하고 긴 회상도 있고, 짧은 것도 있다. 그것도 일상의 한 부분이고 일상의 한 표면이라고 받아들이게 됐다. 꿈도 일단 무의식의 의도가 있다고 보고, 꿈도 회상과 같이 일상의 시간을 잡아먹는 행위니깐 넣어보려고 했다. 여기선 짧은 한컷짜리 백일몽인데…. 글쎄, 모르겠다. 남들이 어떻게 볼지.

· 허문영 꿈속의 인물이나 행위, 말을 구성할 때는 현실의 그것과 다른 원칙을 생각했을 것 같은데.

· 홍상수 꿈이나 회상에 대한 익숙한 구분법 같은 게 있는데 그게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똑같은 표현방식으로 처리하고 싶었다. 거기서 하는 행동이 문제지 표현방식을 다르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일상의 표면이란 동질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그랬다.

· 허문영 개인적 소감으로는 굉장히 짧은 컷인데 아주 슬픈 느낌이었다. 전적으로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 홍상수 모든 감정이 다 개인적이지. (웃음)

메모>>(남자=미래=nothing)x여자=0?

· 허문영 줄거리나 주제로 홍 감독 영화를 말하는 건 사실 큰 의미가 없는 것 같고, 이번 영화에서 어떤 메모가 참조됐는지 궁금하다. <생활의 발견> 때 이런 메모가 소개됐다. 사람들 보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라 해놓고, 놔두고 보면, 서로들 서로를 흉내내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에릭 호퍼 1902∼83)와 우리 행동의 부조리함은 거의가 다 우리가 흉내내서는 안 될 것- 그게 사람이든 뭐든- 을 흉내내려고 하는 데서 기인한다(새뮤얼 존슨 1709∼84). 이번에 많이 떠올렸던 메모가 있다면 뭐였는지 궁금하다.

· 홍상수 그런 게 없었다. 내용의 한 측면을 그럴싸하게 정리하는, 남의 말이든 내 말이든 그런 걸 가지고 할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없었다. 굳이 찾자면 제목이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라는 말이 겉으로 보면 굉장히 선언적이고 단정적이다. 아이러니로 생각하는 건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감독에게 물어올 수 있는데 나한테는 문장이 그렇게 안 느껴졌다. 남자, 여자, 미래 같은 큰 말들은 자주 사용하는 종류의 말이다. 저기 여자 지나가네, 너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거냐 등등. 그렇게 너무 커서 잘 안 와닿는 말들이 나에게는 많다. 이 세 가지 말이 다 그랬다. 내 안에서 문장을 중얼중얼 반복해도 뭘 말하는지 딱 느낌이 잡히지 않는 거다. 겉으론 선언적인데 안에서는 잡히지 않으니까 그게 희한한 게 혼돈 같고 재밌었다. 억지로 분석해보니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고, 여기 없으니 낫싱(nothing)이고, 남자 곱하기 낫싱하면 다시 제로이고. 그런데 여자가 남자의 미래라면 다시 여자도 아무것도 받지 않는 거고. 왜 구체적인 의미가 안 잡히나 하고 억지로 분석해보니 이런 건데, 어쩌면 이게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영화가 굉장히 구체적 에피소드들을 나열하는데도 그게 결과적으로 봐서 명확한 하나의 메시지나 주제의식으로 끝나는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과 제목에 대한 내 느낌이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배우>>직관에 따라 발견한다

· 허문영 배우 얘기를 좀 해보자. 홍 감독이 배우를 발견하는 방식이 늘 궁금하고 재밌다. <생활의 발견>에서 예지원을 <줄리엣의 남자>라는 TV드라마를 보고 캐스팅을 결정했는데, 최근에 케이블에서 우연히 재방송되는 <줄리엣의 남자>를 봤는데 도대체 어떻게 저 속에서 <생활의 발견>의 명숙을 떠올렸는지 의아하고 놀라왔다. <오! 수정> 때는 정보석이 드라마에 나와서 하는 말투를 보고 주인공 캐릭터를 떠올렸다고 했는데 굉장히 특이한 방식이다. 이번에 나오는 배우들은 어떤 모습에서 극중 캐릭터를 떠올렸나

· 홍상수 내가 찍을 게 구체적으로 다 정해진 상태에서 들어가는 게 아니다. 배우를 만나서 배우에게 발견하는 것과 그 전에 생각하던 것이 섞이고, 또 촬영과정에서 그날그날의 느낌이 섞이는 과정을 거치면서 영화를 만든다. 배우가 좋다고 생각하더라도 그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할 거다라고 확정지을 수 없고 계속 발견하는 과정인데, 그걸 설명할 길이 없다. 직관적이란 말이 가장 맞는 말인 거 같다.

· 허문영 어떤 느낌, 어떤 모습이 계기가 되나.

· 홍상수 성현아씨는 사람이 솔직하고 말을 잘 안 하는 편에 속하는데 일단 말을 하면 하나하나가 자기가 진짜 느끼는 것만 말하는 것 같아 듣기가 좋았다. 처음 만났을 때 이 영화를 통해서 새로운 걸 하고자 하는 의욕이 아주 강하다는 걸 느꼈다. 거기서 어떤 자신감이 생겼다. 두 남자배우도 비슷하다. 전작이 뭐였는지가 아니라 새로운 걸 하고 싶어하는 강한 욕망이 있는지. 그리고 배우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나에게 준 인상을 잡아보려고 했다. 막연히 당시에 잡아놓은 캐릭터의 관계망에서 이 사람이 잘 맞는지도 떠올려보기도 하고. 나머지는 계속되는 과정이다. 만나서 술도 마시고 내 개인 얘기도 하고 그 사람도 자기 얘기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그 배우에 대한 좀더 확고한 인상을 갖게 된다. 나의 인상이 틀린 것일지라도 상관없다. 나는 일단 감독으로서 그런 인상을 가져야 하고, 그걸 바탕으로 전에 트리트먼트에서 생각한 인물과 섞어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 허문영 다른 작품과 비교하면 기성의 이미지가 가장 강한 배우들이 캐스팅된 건데, 그건 의도한 도전 같은 거였나 아니면 자연스레 만나는 과정에서 좋은 사람을 선택한 건가.

· 홍상수 일단 영화와 맞으니까 같이 한 거고. 이런 건 있다. 제작자 중 한분이 강력하게 추천하긴 했다. 당신 영화도 사람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데 너무 작은 숫자의 사람들만 보는 게 안타깝다며 그걸 뚫어보는 방법으로 유명 배우를 써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유명이란 말도 나한테 약간 멍해지게 만드는 말이긴 한데, 하여간 그런 생각에 거부감이 컸으면 안 했을 텐데, 뭐 한번 해보죠, 했다.

· 허문영 영화에서 유지태를 보면서 놀랐다. 아주 야비하고 야만적인 기질을 확 드러내는 순간이 있는데 극 속에서도 갑작스럽지만 유지태라는 배우가 저런 기질을 드러내는 게. 개인적으로 재밌어 했던 게 경주에서 <생활의 발견> 찍을 때, 고기 구워먹고 그릇 깨고 그러는 장면에서 추상미의 대사가 연극적으로 느껴졌는데 왜 저런 톤을 그대로 두는지 의아했다. 그런데 나중에 영화를 보니까 그 연극적 특성이 그 캐릭터의 특징이구나 싶더라. 그런데 불륜이나 섹스가 홍상수 영화의 주요한 소재 중 하나인데, 그렇다고 여배우를 아름답게 그리진 않는다. 말하자면 여배우의 미모를 물신화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그런가? 참고로 <강원도의 힘>에서 비슷한 질문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너무 매력적인 이미지를 설정하면 나부터 그 이미지에 끌려가, 전체적 리듬을 놓칠까봐 걱정이 됐다. 한발 떨어져 보고 싶을 정도의 이미지가 좋다.

· 홍상수 영화라는 왜곡 속에 보여지는 거니까 뭐든 그 안에서 어울리면 된다. 여자배우 중에 진짜 예쁜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을 어느 정도 영화 안에서 현실적으로 수용해야 할 것 같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극장 매표원(조은숙)을 두고 일부러 얼굴값 한다는 대사를 넣은 게 실제로 예쁘니까 딴 남자도 사실적으로 반응하는 걸 넣고 싶었던 거다. 그러면서도 거기에 완전히 매달릴 수는 없다. 내가 생각했던 이야기를 인물의 행동으로 끌고 가야 하니까. 그래서 중간 지점쯤에 선을 긋는 거 같다.

· 허문영 배우들도 기성 이미지가 강하지만 김형구 촬영감독, 이강산 조명감독 라인이 지금 충무로에서 맹활약 중이고 주류영화를 많이 찍는 사람들인데 혹시 촬영 스탭의 경우는 이 영화의 어떤 특별한 점 때문에 필요했던 건지.

· 홍상수 그런 건 아니고 배우의 경우처럼 그 전에 뭘했는지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떤 이유로든 지금 그 사람과 하고 싶은 맘이 더 중요하다. 전에 학교(영상원)에 있었을 때 밥 먹으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김형구 선생과 다음에 영화 한번 하자는 말이 오간 적이 있다. 이번에 그게 생각이 나서 말을 꺼냈는데 뭐 보여준 것 하나 없는데도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주류 뭐 이런 거 떠나서 사람이 정말 좋고, 편안하게 찍도록 도움을 많이 줘서 고맙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3]

카메라·구성>>염도를 맞추듯, 영화요소의 합 맞추기

· 허문영 영화를 보면 카메라의 움직임이 전작들에 비해 많다는 게 눈에 띈다. 사소한 차이일 수 있는데 이전 작품들이 공간과 인물이 서로 소외시키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의 무빙숏들이 공간과 인물이 친숙해진다는 느낌을 준다.

· 홍상수 그 전에는 공간과 인물이 떠 있다고 생각한 건지.

· 허문영 떠 있는 게 아니라 인물이 공간 속에서 주체성을 전혀 발휘할 수 없다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좀 친근해졌다는 느낌이다.

· 홍상수 왜 그렇게 했냐고 하면 역시 재미없는 대답이 될 텐데. 첫 영화 첫 컷 찍을 때 그냥 그렇게 해야될 것 같아서 찍어놓고 보니 (카메라가) 가만히 있는 거였고, 그러다보니 계속 가만히 있게 됐다. 나중에 합리화한 게 고정된 숏에 사람들을 끼워넣어서 신을 만들 때 일어나는 저항, 힘듦 이런 걸 즐겁게 생각하는 거구나 하는 거였다. 이번에는 그걸 해봤으니까 다른 걸 해봐야지 하는 거고. 처음에 김형구 감독이랑 줌인 연습을 많이 했는데 한컷도 안 쓰니까 줌인 안 해요, 우리? 하고 묻더라. (웃음) 줌인은 다음에 해보고 이번에는 팬을 해보고 싶어서 많이 했다.

· 허문영 예고편에서 중국집 장면이 나오는데 두 남자가 번갈아서 여종업원에게 수작거는 장면이 나온다. 그건 아주 명백하게 조작적으로 대비시키는 장면인데, 이런 것도 처음이다. 이전에는 가능한 연출의 손길이 안 느껴지게 했다면 이건 고의적으로 연출의 손길을 드러나는 방식이다. 뜻밖의 선택인 것 같은데.

· 홍상수 영화 찍을 때 그 안의 여러 요소가 있는데 그 요소의 합이 만들어내는 수치에 대한 내 이상치가 있다. 뭐 물속의 염도 같이. 내러티브의 흐름, 디테일의 끈적끈적함, 연기의 패턴, 구성이 갖는 인위성 등 여러 요소들이 합쳐서 내가 바라는 그 수치에 이르면 된다. 이전 영화는 구성 자체가 인위성이 보이는데, 다시 반복을 시킨다든지 하는 거. 그런데 이번에 그런 게 없으니까 단선적 흐름에서 약간 양식적인 걸 넣어도 될 것 같았다. 그래도 그 수치가 나오겠다고 봤다.

· 허문영 그러고보면 이 영화는 단락으로 영화를 나누지 않은 첫 영화라고 볼 수 있다.

· 홍상수 그렇다. 어떻게 생각하나.

· 허문영 좋다고 생각한다. (웃음) 어차피 난 그게 일종의 트릭이라고 보니까. 단락 나눈 것에 열심히 신경쓰는 사람들을 은근히 비웃고 싶어하는.

· 홍상수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웃음)

· 허문영 <돼지가…>에서 음악이 이화(異化) 작용을 했다면 이번 음악은 동화(同化)적이다. <오! 수정> 때부터 뚜렷해지긴 했으나.

· 홍상수 전에는 음악을 쓰고 싶은 마음과 안 써도 된다는 마음이 다 있었는데 준비 기간이 짧기도 해서 결과적으로 미니멀하게 음악을 썼고 그게 좋았다. 이번에는 음악을 더 넣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촬영 전에 음악감독과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눴고, 결국 둘 다 좋아하는 걸 발견해서 그걸 중심으로 많이 썼다. 나도 궁금하다. 그 음악들에 대한 반응이.

· 허문영 무빙숏에서 공간과 인물이 가까워진 것 같은 것이 음악에서도 느껴진다.

· 홍상수 프랑스 기자들에게도 음악 얘기를 좀 들었는데 전처럼 음악이 없는 게 더 좋다는 이도 있고, 이번 음악이 아주 좋다는 얘기도 들었다.

홍상수의 영화>> 부정의 텍스트? 긍정의 부분도 생기고 있다

· 허문영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만 하고 전반적 이야기를 좀 하자면 홍 감독의 영화는 <강원도의 힘> 때 썼듯이 부정의 텍스트라고 생각한다. 관습적 서사와 주체를 지워나가는 영화. 그래서 서사의 관습이나 주체성의 통념으로 지탱되던 이데올로기나 허위의식이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그게 <오! 수정> 때부터 조금씩 달라져 간다는 느낌이다. 쉽게 말하면 주인공이 더 추해지진 않고 오히려 조금씩 귀여워진다. 그렇다고 관습이나 통념적인 주체성으로 돌아가진 않지만 현실에서 계속 동반자를 찾으려는 느낌이다. 이제 뭔가를 지워가는 게 아니라 조금씩 만들어가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 홍상수 관념적으로 영화가 나의 반영이니까. 한 개인으로서 일상에서 구체적 상황이 주어지면 그 속에서 나를 지배하는 틀들, 예컨대 이데올로기나 도덕성을 직면하게 되고 그것을 사용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판단하면서 지우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걸 잘하게 됐다고 해서 내가 대안으로 시스템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안처럼 시스템이 되는 순간 다시 나에게 부정될 테니까. 다만 그 부정하는 능력, 순간순간 빨리빨리 하면서 자신에게나 상대방에게 피해를 덜 주자는 게 개인적인 목표인데. 그게 영화에도 있는 것 같다. 디테일의 처리에서 부정의 방식이 자동적으로 소멸시키는 게 있지만, 영화라는 게 또 어떤 입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 영화의 경우는 그 입장이 하나로 딱 떨어지는 메시지나 모럴리티 같은 건 아니고, 난 다만 나의 영화가 미학적으로 감성적으로나 형식적으로 하나의 완결된 어떤 물건이 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걸로 자기를 쳐다보게 한다든가 평소에 안 하던 질문을 하게 한다든가 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게 생긴다. 부정들을 해오다 보니까 반복적으로 긍정하는 부분이 조금씩 생기니까 그걸 좀더 부각시키고 싶기도 하다. 또 개인으로 나이가 들면서 평생 가봐야 이건 부정하지 않을 것 같다는 내용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좀더 자신있게 말하고 부각시킬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게 어떤 시스템은 아니고 조각들인데 그것들을 영화 속에서 좀더 자신감 있게 강하게 표현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허문영 그런 작은 변화가 개인의 인생의 변화와 연관이 있나.

· 홍상수 구체적으로 뭐라고 딱 집어 말하긴 곤란할 거 같고. 20대 초반에 그런 생각을 시작했고 결혼하면서 좀더 심해졌고 영화를 만들면서 더 심해졌다. 지금은 내가 어떤 대안을 만든다거나 어떤 사람의 것을 통째로 받아들여 내 삶의 대안으로 삼는 건 완전히 포기했고. 순간순간 어떤 사람 만났을 때 내 속으로 확 들어오는 게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만 판단한다. 이게 맞냐 틀리냐, 사용하느냐 마느냐. 가능한 그게 더 빠르고 정확해서 나 자신과 그 앞에 있는 사람에게 해를 덜 끼치고 나도 자유로워지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굳이 입장이랄까 하는 건 나의 그런 순간의 행위들의 총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홍상수와 영화>>매혹적이지만 매혹되지 않는다

· 허문영 엉뚱한 질문인데 혹시 노인이 된 자기 모습을 상상해보나.

· 홍상수 자주는 아니고. 워낙 현실적인 면이 있어서. 과거에 대한 연연함이나, 가능성이 그렇게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대해 꿈꾸고 그러는 것 같은 거에 대해선 내 안에서 저항하는 게 있다. 확실한 건 지금 여기서 잘 살아야 하지 않나 생각이고 미래에 대해 곰곰이, 반복적으로 상상하는 건 잘 안 한다.

· 허문영 왜 물어봤냐 하면 전작들에서 다 그렇지만 주인공이 현재라는 시간에 갇혀 있다. 특히 <생활의 발견>에선 시간에 갇혀 있다는 느낌, 도저히 뚫고 나갈 수 없는. 긴 시간의 관념이 들어설 수 없다. 극중 캐릭터에는 감독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녹아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 홍상수 사실 우리가 많이 훈련받고 산다. 현재를 살면서, 방금 표현을 빌리면, 긴 시간의 관념의 틀로 자신의 현재를 해석하거나 불만을 해소하거나 계획과 목표를 세우거나. 나는 그런 방식이 잘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사람에 따라 다른 듯하다. 굉장히 잘 맞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고. 큰 시간의 이미지로 반복적으로 되놰도 나를 감동시키지 못하고 움직이게 하지 않는다. 젊었을 때 많이 해봤지만 그게 작동이 잘 안 되니까 방향을 바꿨다. 지금 나와 얽힌 상황 속에서의 순간적 판단능력 키우기. 쓸데 없는 이상이나 근거없는 믿음의 틀들을 순간순간 부정하고 나머지로 얻는 자유와 가슴 가벼움???? 같은 것이 중요하다.

· 허문영 다시 묻고 싶다. 60살이 된 홍상수는 어떻게 살고 있을 것 같나.

· 홍상수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욕망이 있고 꼭 지켜야 할 게 몇 가지 있는데 그건 비슷하지 않을까. 욕망을 좀더 잘 승화하고 지켜야 할 건 계속 지켜나가고 하면 좋겠다.

· 허문영 영화를 잘 안 보는 것으로 이름 났는데, <오! 수정> 때 나왔던 대사식으로 묻자면 그건 의도인가 우연인가.

· 홍상수 반반이다. 학생이었을 때부터 남의 책을 읽거나 미술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마찬가지인데 나를 압도하는 게 있으면 내가 자유롭게 느낄 때까지 소화하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좋아하는 경우에는 더 그랬고. 좋아하는 소설가가 나타나면 2, 3년 넘게 매어 있는 나를 봤고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만드는 건 뭔가에 매어서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흡수하는 양을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드는 사람으로서 다른 작품을 보고 영향받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종류별로 원류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작품을 가끔 보면 항상 신선하게 와닿고 자극을 준다. 그런 사람들의 작품을 보는 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 요즘 영화를 안 보는 건 아니고 할리우드 대작이 있다면 가서 본다. 그렇게 돈을 많이 들였다는데 7천원 주고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웃음) 그건 내 속의 어떤 다른 나인 것 같은데 그런 나를 인위적으로 없애야겠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렸을 때 봤던 식으로 영화보기, 그런 걸 다시 반복하고 싶은 건데, 그게 점점 잘 안 된다. 어렸을 때 만화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중학교 들어가서 몇년 만에 만화방에 갔는데 너무 놀란 게 만화가 재미가 없어져 있더라. 그런 거 하고 비슷한 것 같다. 할 수 없지.

· 허문영 당신이 존경하는 감독 가운데 한 사람이 로베르 브레송인데 어떤 평론가가 영화사상 브레송처럼 영화 자체에 덜 매혹된 사람은 없다고 했다. 예리한 지적인데 홍 감독의 경우도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무조건적 매혹이나 애정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 홍상수 그런 면이 있다. 그냥 영화가 뭔가 내 속에 있는 걸 드러내고 딴 사람과 공유하게 하고, 내 삶의 존재가치를 느끼게 해주고, 내 스스로건 남에 의해서건 그런 게 좋은 거 같다. 살면서 계속 부닥치고 파고파고 해도 뭔가 있는 게 영화인 것 같다.

· 허문영 홍상수의 영화를 보면 약간씩의 변화는 있다고 해도 형식과 스타일상의 일관성이 있는데, 그렇게 영화를 계속 만들다보면 파격에 대한 유혹도 가끔 느끼지 않나. 꼭 장르영화는 아니더라도 사극이나 전기물 같은.

· 홍상수 느낀다. 아주 가끔이지만. <돼지가…>를 만들었을 때 시점으로 보면 그 전의 몇년간은 굉장히 여러 옵션들이 있는 걸로 느꼈고 그것들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지내다가 첫 영화가 정해졌다. 그 긴 시간이 뭔가 나에게 중요한 걸 찾는 과정이었다고 믿기 때문에 잠시 잠깐 끌리는 게 있다고 해도 거기로 확 넘어갈 수는 없는 거 같다. 내가 또 원한다고 내가 꼭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고. 내 개인으로 살아온 걸 비춰봤을 때 내가 크게 변화하는 걸 본 경우는 대강 이렇다. 항아리가 있으면 다 찰 때까지는 얼마나 찼는지 모르면서 그냥 있다가 다 차면 갑자기 다른 항아리로 바꾸는 식이다. 의식적으로 나를 바꾸려고 하는 건 항상 성공하지 못했다. 호기심에 따라 일을 하다보면 갑자기 항아리가 다 차서 다른 항아리로 바꾸는 것 같다.

홍상수의 미래>> 계속 건강하려면 계속 영화 해야지

· 허문영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배우 개런티도 좀 높고, 스탭도 최고 수준이고, 제작비가 높을 텐데. 그게 사실 홍 감독이 원하는 것과 반대방향이어서 어떤 부담감이 있지 않나.

· 홍상수 이전 영화보다 제작비가 5억원 정도 더 든 것 같다. 막연히 항상 생각하는 건 지금까지 내 영화들이 사람이 많이 들지 않아서 제작비를 줄여야 한다는 건데 어쩌다보니 이번에 많이 들었다. 자꾸 생각을 많이 하다보면 언젠가 실천하게 될 것 같다. (웃음)

· 허문영 언제나 차기작이 궁금하긴 한데 지금까지 정확히 2년마다 한편씩 만들었다. 이번에는 좀더 빨리 다음 작품 들어가고 싶다고 말한 걸로 알고 있는데 줄거리는 아니지만 이미지 혹은 어떤 메모가 있다면.

· 홍상수 조그만 건 있는데 말하기엔 이르다. 너무 초기라서 조금은 더 자신감 있을 때 말해야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학교도 그만둬서 핑계도 없어졌고, 구상이 길면 사람이 속에서 골병이 든다고 하나 개인적으로 힘든 기간이어서 이제 좀더 적극적으로 일을 더 해야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구상 기간 오래 잡지 말아야겠다고. 메모는 있는데 별거 아니다. 진짜로.

· 허문영 혹시 여자가 중요하게 나오나.

· 홍상수 항상 중요하지. (웃음) 지금 뭐라고 얘기하면 캐스팅할 때 연기자들에게 혹시 선입견 가지게 돼서 안 된다.

· 허문영 영화 찍고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한가.

· 홍상수 제일 건강하다. 평소에는 쉬이 지치고 낮잠 자야 하고. 촬영할 때 오히려 더 건강해진다.

· 허문영 건강하게 오래오래 영화 만들어주길 바란다.

정리 이성욱 lewook@hani.co.kr·사진 정진환 terran6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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