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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아웃사이더 갔다가...퍼온 글입니다. 사실 따지자면, 단지 팩트의 나열일 뿐인데.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
후우... 씨발, 그래 살아는 봐얄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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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재생산
녹취...김홍민
안녕하세요. 저는....
안녕하세요. 저는 ***라고 합니다. 마흔 한 살이구 교도소에서 21년 6개월 살다 출소한 지 한 달쯤 됐네요.
약속 시간에 좀 늦었는데 실은 오다가 조그만 사고가 있었어요. 그 교통카드 있잖아요. 저는 그거 다 쓰면 버리는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지하철 역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신부님께 전화해 보니까 충전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부랴부랴 아까 그 역으로 돌아가 쓰레기통을 뒤져 찾아오느라고요.
죄송합니다.
예? 감옥에서의, 아, 예, 감옥이....범죄를 막는 게 아니라 왜 다시 범죄를 하게 만드냐는...그런 거 말씀하시나보다. 글쎄요. 제일 큰 건 주거문제 같아요.
아무리 벌면 뭐합니까? 제가 오늘 8만원 벌었는데 집이 없으면 여관비 내고, 요새 여관비 3만원, 5만원 한다고 하던데 여관비 내고 밥 먹으면 없어요.
물론 일자리는 많죠. 저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일자리도 있고 살아가기 좋은 곳이라는 걸 느껴요.
하지만 안정적으로 몸을 둘 곳이 없으면 다 소용없거든요. 그래서 그래요. 그러니까 교도소 들어오는 친구들이 대부분 가족문제이라고 보시면 될 거예요.
부모를 잃었다던가 고아라던가 가족사항에 문제가 많은 친구들이요. 가정이 파탄나서 어렸을 때 가정을 떠나게 되고 결국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나쁜 짓을 하게 되는 거죠.
이렇게 말하고 보니까 우습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진짜예요. 처음에 교도소에 들어갔을 때도 돌봐주는 가족이 없는데, 당장 나오면 걔들이 어디로 가겠어요.
그 사람들 나와서 찾아갈 데라고는 옛날 같이 범죄했던 친구들이나 술집이에요.
저라고 뭐...
저라고 뭐 달랐겠어요? 처음에...그러니까 국민학교 5학년 때...어머님이 약을 드시구 자살을 하셨어요.
아버님은 집을 나가시구. 형제들도 각자 뿔뿔이 흩어졌지요. 국민학교 5학년 때 사회에 나와 가지고 밑바닥 생활, 신문팔이, 껌팔이 뭐 안 해본 게 없었어요.
그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사람이 없어요. 춥고 배고프니까 밤에 잠자는 사람들 주머니 털고, 안 그러면 굶어야 되니까. 그렇게 어울려서 생활을 하다가 남의 집 담을 넘게 되고, 그러다가 잡혀서 소년원에 가고.
그런데 막상 소년원에 가면 배우는 거 아무 것도 없거든요. 그런 데서 듣고 배우는 건 순 범죄기술, 어떻게 집을 털고, 어떻게 사람들을 속였는지, 그런 무용담, 그런 것밖에 없어요.
맨 그런 얘기만 하다가 서로 친해지고, 그래서 소년원을 출소하고 나가면 친구들, 그 곳에 있을 때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 다시 찾아가게 되요.
딱히 갈 데가 없거든요. 그 친구들도 뭐 가정이 있고 그런 건 아니니까 안정된 생활이 안되지요. 그렇게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술 한 잔 먹고, 그러면 휴, 이런 고생해 뭐하냐 결국은 다시 강도하고.
저두 그래요. 소년원 살구 나와서 참 갈 때가 없더라구요. 그 때 제가 있던 곳이 불광동에 서울 소년원이었는데, 지금은 안양으로 옮겼나?
아무튼 77년인가 76년쯤인 것 같아요. 거기서 2년 6개월을 살고 출소했는데, 그것도 남들은 1년이나 6개월이면 나오는데 가족이 없으니까 저만 그렇게 오래 있었던 거지요.
나와서 오갈 데도 없고 그래서 제가 간 곳이 ‘양동이’라는, 지금은 다 없어졌어요. 서울역 앞에 옛날에 ‘양동’이란 곳이 있었어요.
지금은 번화가로 변했는데 거기가 옛날에... 지금으로 치면 창녀촌이에요. 제가 소년원에 들어가기 전에 내내 거기 있었거든요. 그 때 당시만 해도 다 빨간 벽돌집이고 다 창녀촌이고, 그래도 가니까 같이 생활하던 동기들이 저 왔다구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 돈도 찔러주고 그러데요.
돈 준 얘들은 ‘떼끼’라고 하는... 남의 주머니 슬쩍슬쩍 하는 거, 그런 애들이었어요. 돈 십 만원 이십 만원씩 찔러주니 얼마나 기분이 좋겠어요.
그래서 같이 어울려서 생활했죠. 그러다가 다들 돈 떨어지니까 어떡합니까. 담 한 번 타자. 다들 그래요. 그래서 같이 전국으로 돌면서 가정집도 많이 털고.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담 넘은 데가 사당동이었어요.
부잣집이었는데 돈도 많이 나왔어요. 사실 돈만 가지고 나오려고 그랬는데 나를 잡는 바람에 사람을 내가 해쳤어요. 본의 아니게. 정말 찌를 생각은 없었어요. 4년 나오더라구요. 최종형이.
그래서 안양교도소에서 4년을 살았어요. 당시에 교도소 안에서 순화교육이란 걸 받았거든요. 정부가 만들어서, 쉽게 말하면 삼청교육대하고 똑같은 거예요.
삼청교육대 아시죠? 그런 교육을 시키는 거예요. 그 안에서. 봉 체조도 하고, 구타도 당하고. 나머지 시간이요? 주로 모여서 얘기하죠. 텔레비전도 없었으니까요.
그 때 저랑 잘 알던 친구가 하나 있었어요. 이 친구 재범이었는데 다시 들어온 이유가 아주 골 때려요. 초범 때 어떤 전문 범죄꾼하고 친하게 지냈데요.
친하게 지내다가 얘가 나갈 때가 되니까 금고 따는 거, 연장 만드는 거, 어떻게 하면 안 걸리고, 뭐뭐 필요하다는 거 다 전수를 한 거예요.
노트에 적기도 하고. 그리구 니가 한 건해라, 한 건하고 나한테 연락을 줘라, 그러면 내가 더 좋은 기술을 가르쳐 주겠다, 그러더래요. 마취제 같은 걸로 사람을 마취시키는 법 같은, 그런 거까지 가르쳐 주면서.
그래서 이 친구 석방되자마자 화양리에다 방을 얻어 그 사람이 가르쳐 준대로 화양리 일대 가정집 몇 군데를 털었다 그러더라구요. 화양리에서 턴 돈을 가지고 더 큰 장비들을 구입하고 총포상에 가서 총도 사고 그런걸 집에 갖다 놨대요.
다 준비하고 으리으리한 집을 털다가 새벽에 누가 담배피던 사람이 신고해서 잡혔나봐요. 경찰하고 싸우다가 잡혔대요. 걔는 잡히는 순간 다 털어놨나봐요.
형사들이 자취방에 가 보니까 총도 나오고 연장들도 나오고 하니까 아주 된통 걸린거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옥 안에서 범죄를 꿈꾸고 나와요. 잡힐 거라는 생각이요? 절대 안 들죠. 오히려 그 때 이렇게 하면 안 잡혔을 텐데....하고 후회해요.
저도 그랬어요. 일단 보살펴 줄 사람이 없으니까 가족도 없고 그리고 가족이 있어도 몇 번씩 들어갔다 나오면 가족들이 연락을 끊어버려요. 연락해도 외면하고 결국은 예전에 같이 사고 쳤던 아이들이나 그런 사람들이 출소기간에 맞춰서 찾아오니까 다시 거기 같이 가는 거예요.
저두 그 때 같이 생활하던 중에 먼저 나간 친구들이....걔네들이 먼저 출소해서 운동화나 속옷 같은 거를 소포로 계속 보내주고 그랬어요.
출소하는 날 왔더라구요. 차 가지고. 그 사람들은 출소하자마자 다시 범죄를 하고 있었고 저는 교도소에서 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계속 신세를 졌으니까... 또 갈 데가 없으니까... 따라갔죠.
그래서 그 사람들 하는 일에 또 끼게 됐어요. 쓰리하고 그러면 바람잡이도 해 주고. 그렇게 있다보니까는 뭐 죄의식 같은 것도 안 들더라구요. 내 자신이 죄의식을 전혀 못 느껴요.
6개월 동안 전국을 돌면서 ..그러다 거기서 최고 나이많은 형님이 그래요. 이리라는 곳이 있는데... 이리에 목촌포라는 곳이 있데요. 거기 LPG 충전소에 돈이 엄청나게 많다 그래요.
그 사람이 세 번씩이나 거기에 갔었데요. 술 먹으면서 나한테 가자 그러더라구요.
거길 털자구. 그래서 다섯 명이 갔어요. 가니까 논두렁에다가 이미 도구를 다 준비해 뒀더라구요. 아마 8월 쯤이었을 거예요. 여름에. 일요일날 저녁인데 사장하고 현장소장 가정부하고 애들 엄마하구 애들 이렇게 자고 있어요.
그 집에. 일하는 애들은 다 술 먹으러 나가구.
그거를 1시... 한 2시 정도에 털었어요. 일억삼천 만원인가. 가방에 담아서 그 집에 있는 포니엑셀, 그 차를 타고 이리 역으로 가 표를 끊었지요. 내가 인제 출소해 잘 몰랐는데 열차표가 컴퓨터로 찍혀 나오더라구요.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그걸 모르고 내가 다섯 장을 다 산 거예요. 열차표 다섯 장이 일렬번호로 나와요.
수원까지 끊었죠. 그렇게 돈가방을 딱 매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실은 제가 나올 때 다른 친구들 몰래 얘들 묶은 넥타이는 다 풀어줘버렸어요. 근데 거기에 비상벨이 있었다 그러더라구요 그 집에.
그래서 우리 인상착의하고 딱 하니까 차가 수배된 거예요. 한 사십 분만에 발견이 됐데요. 우리가 한참 평택을 지나고 있을 땐데... 잡혀서 얘기 들었어요.
수사관들한테. 수원에서 지하철 갈아타려구 내리는데 칸칸마다 총 들고 딱 서 있더라구요. 전투경찰들이. 그것도 모르고 내리려고 하는데 우리 칸을 막아요.
사실 거기서도 사람이 다쳤어요. 현장소장이 대드는 바람에. 잡혀서 참 맞기도 많이 맞았지요. 그리고 5 년 받았어요.
예? 가석방이요? 그게...사실 가석방 제도라는 것이 우리 신문이나 뉴스를 봤을 때는 엄청나잖아요. 정치가나 그런 사람들 다 쉽게 쉽게 나오는 거 같고. 근데 거기 한 1%? 1%로도 안돼요.
저 같은 경우도 일전에 안양에 있을 때 몸이 많이 안 좋아서 우리 대부님이 과천 종합청사 거기 법무 보안과에 찾아가서 탄원서 진정서 진단서 다 해가지고 가석방이 내려왔었어요.
근데 결국 안 됐어요. 가석방되는 사람은 제가 봤을 때 극소수에 불과해요. 초파일이나 성탄절에 나올 때보면 일부에 불과하고 또 그 조건이 엄청나게 불합리해요.
보호자가 있어야 하며 가족이 있어야 하며 그러니까 가정 없구 뭐 신원이 뚜렷하지 않으면 ...쉽게 말해서 없는 사람은 가석방도 안돼요. 보증이요? 에이, 누가 우리 같은 사람들 보증을 서 주나요.
그러니까 첫째 조건이 가족이 있어야 돼요. 나가서 일단 가족이 있어야 사고를 치지 않을 거다 라는 생각 때문에... 결국 저는 5년을 채우고 출소했어요. 나와선 배도 타보고 이것저것 다 했지요.
배 타봐야 한철에 한번씩 들어오면 술 먹고 뭐 밥 먹고 그러다 답답하니까는 또 다시 옛날에 알던 친구들 전화해서 모이고. 모여서 뭘 했겠어요 뻔하죠.
이번에는 상도동 사는 어떤 예편한 장군 집 담을 넘었는데 그 집에 자가용도 여섯 대나 되고 그래서 털려고 했어요.
또 그 집 아이들이 다 외국에 나가 있고 두 분만 살고 있더라구요. 들어갔는데 소리가 나니까 그 장군이란 사람이 나와서 제 칼을 잡아요.
놀래서 칼을 뺏는데 그 사람 손이 잘라질 거 아닙니까? 칼이 잘 드니까. 그 때 그 사람 나이가 예순이었는데 그 사람이 예편한 지 얼마 안된 분이에요. 그 때 돈이 엄청 많이 나왔어요.
수표로만 엄청나게 나왔어요. 10만원권, 100만원권 수표로만 엄청나게 나왔어요. 근데 그 사람들이 신고를 안 하더라구요 그 돈을 내가 종로 신한은행, 상업은행에서 다 바꿨지요.
아침에 그 앞에 가서 수표번호 불러주고 이상 없으니까 다 현찰로 바꿨어요. 나중에 알았는데, 그 장군이 알고 있던 수사관들이 몰래 우릴 추적하고 있었데요.
그 분도 뭔가 구린 게 있으니까 몰래 시켰겠지요. 언론에 알려지면 망신 당할까봐. 그래서 그걸로 징역 10년을 받았어요.
그 때 나 청송감호소에도 있었어요. 아시겠지만 옛날 삼청교육대 후신으로 돼 가지고 사람을 정신계조 시킨다는 그런 곳이 있어요. 거기서는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요.
그러다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가지고 인권위원회가 거기 들어와서 사진촬영 해가구 그러구부터 나아졌는데, 거기서 내가 1년 6개월 가까이 독거..거긴 다 독거실이예요.
혼자만 생활하게끔...독거실에서 1년동안 특별 순화교육을 받는데 저 몇 번 까무러치구 그랬어요. 그러다보니까, 첫째 사람이 혼자 있다보니까는 정신질환이 생겨요.
혼자 견디질 못하는 거라. 저 자신부터도 거기서 3개월 동안 무지 힘들었습니다. 여러 형제들이 죽어나갔어요. 그곳에서. 옆방에서 저녁에 잘 자라구 그러구 아침에 보면 죽어서 없어..그런 곳이에요.
그곳이. 지금은 없어졌다구 하는데 모르겠어요. 그 후에 이감돼서 10년 정도 사니까 이제 완전히 사고가 마비되는 거 같더라구요. 사회에 나가기도 겁나고.
사회적응 훈련이요? 그게...만기교육이라구 그래가지고 하긴해요. 갱생보호소라는 데가 있어요.
거기 가면 외부강사 불러서 강의를 하죠. 창업이라든가 나가서 뭘 할 건지. 그런 거 가르쳐줘요. 근데 노하우만 배우면 뭐해요. 그걸 할 돈이 없는데. 결국은 돈이거든요. 그리고 필요한 거는 다 돈을 내고 사야되요.
그러니까 돈이 없으면 거기서도 ‘따’를 당해요. 만약에 누가 먹을 걸 사왔는데, 다 같이 먹으니까 돈이 없는 사람은 몸으로 때우는 거예요. 돈이 없으면 거기서도 살아갈 수가 없어요.
자질구레한 칫솔이나 비누조차도 사서 써야 되거든요. 보급은 거의 구경도 못해요. 받을 수가 없어요. 저 거기서 1년동안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거 같아요.
예산도 많이 없고 교도소가 너무 포화상태다, 지급이 다 안 된다, 이거죠. 그러니까 아주 사소한 거 때문에 싸워요. 사람들 다 지능이 떨어지는 거 같아요.
김치 한 조각 때문에 싸워요. 내가 보기에는 돈 있고 힘있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도 편하게 살아요. 그러니까 아까 그 재교육 얘긴데, 실질적으로 듣는 사람이 없어요.
다 졸구 그래요. 맨날 아름다운 말만 하구. 이렇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 저렇게 하면 잘 살 수 있다. 그러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콧방귀도 안 뀌죠. 제대로 수긍하는 사람이 없어요. 자격증 뭐 이런 거 가질래두 돈이 있어야 돼요.
개인이 30만원만 가져오면 국가에서 40만원이 지원된다는데, 그럼 뭐합니까, 당장 30만원은커녕 먹구 죽을 돈도 없는데.
물론 첨 살았을 때는...
물론 첨 살았을 때는 그랬습니다. 처음에 나와서 사람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마음먹기 나름이다 이렇게 다짐해요. 물론 세상이 아무리 어렵더라고 마음먹기에 달렸는데 그런데 참 힘들어요. 정말 힘들어요. 저 핸드폰하나 샀는데 어떻게 작동하는 지 아무것도 몰라요.
어저께는 우리 신부님이 음성사서함을 남겼는데 어떻게 듣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요. 버스를 어떻게 타야 되는 지....돈을 얼마나 내야 하는 지.
그나마 저 같은 경우는 참 행운이죠. 그 곳에서 처음으로 사랑을 받아본 것은 천주교...우리 천주교에서 편지도 해주고 여러가지 많은 걸 도와줬어요.
제 대부님이, 저랑은 피도 섞이지 않은 남남인데 그런 사랑을 저에게 줬어요. 매주 한 번씩 편지를 주고 7년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저한테 줬어요. 그냥 사랑을 막 줘요.
그래서 제가 그걸 깨달았어요. 남들이 나에게 이렇게 사랑과 정을 주는데 내가 나이먹고 이게 무슨 짓인가. 두 번 다시는 그런 길을 안 걸어야겠구나. 그러면서도 나갈 때가 되니까 불안했지요.
물론 그 분이 그렇게 얘기했지만 저하고는 피도 섞이지 않은 남남인데 과연 그 분이 나 같은 자를 당신 집에다가 재워주고 할 것인가. 그게 걱정이 되더라구요.
나이도 마흔 하나 먹은 제가..근데 출소하기 두 달 전에 편지가 왔어요. 출소한 사람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이러이러한 집이 있는데 아무 걱정말구 기도나 열심히 하구 니가 그 안에서 마음먹은 데로 열심히 살아보라구.
출소하구 이 곳에 왔을 때는 정말 너무나 편했어요. 첫날 여기 와서 저 막 울었습니다.
과연 이런 곳도 있구나. 사실 이런 곳이.. 제가 볼 때는 정부에서 이런 걸 많이 만들어줘야지...여기가 내가 알기로 나라 예산 받고 운영하는 것은 아니고.. 우리 자매님들이 십시일반으로 해서 운영해 나가는데.....그러다 보니까 여기서 지냈던 형제들은 다시 사고치구 그러지 않아요.
내가 볼 때는 그래요..내가 여기 한달 됐지만 얘기 들어보면 전혀 없어요. 그러면 아무리 갱생보호소 그거 나라에서 운영하는 거 그런데다 엄청나게 예산 들여가지고 해봤자 재범율 90%이상인데 차라리 그런 돈 가지고 이런 거 운영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거지요.
갱생보호소에서도 물론 일자리 같은 거 다 마련해줘요. 하지만 거기서는 내가 볼 때는 갱생보호소라는 곳은 있을 때가 못되더라고요. 있어봤자 매일 술 먹고 떠들고 그치만 여기는 신부님이 계시고 그러니까 그런 마음이 쏙 들어가버리고 강압적이지 않고..
우리가 배고프면 끓여먹고 볶아먹고 냉장고에서 뭐 꺼내먹고 그러다보니까 다른 거 뭐 생각할 필요가 없는거죠. 내가 먹고 싶은 거 냉장고에 다 있는데 구태여 나가서 방황할 이유가 없더라구요.
물론 중간중간 무척 힘들 때도 있습니다. 마음의 갈등도 많이 생기고 유혹도 많이 생기더라구요.
뭐, 이런 얘기하면 안됐지만 옛날 마음먹고 남의 집 담 한 번 넘으면 재수좋으면 몇 천 만원씩 나오고 하는데 과연 내가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저녁 5시 반까지 막노동을 해 가면서 하루 8만원을 받는데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어요.
그 때마다 마음을 다 잡아요. 우리 신부님이 십자가를 하나 주셨어요. 그거 내가 일할 때도 항상 주머니에 간직하고 있는데 과연 이런 사람도 있는데 이런 사람도 나를 도와주고 그러는데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는데, 물론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이렇게 잠잘 데가 있고 먹고 쉴 데가 있는데 다시 옛날처럼 나쁜 짓을 하면 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요. 나는 사람이다. 나두 사람답게 살아보자. 그렇게 결심해요. 그런데 또 슬퍼요. 저만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사는 거 같아서 막 슬퍼요. 지금도, 이 추운 밤에도 저기 밖에서 갈 데가 없어서 방황하고 있는 형제들이 있을 거예요.
그 친구들 그냥 두면 안되잖아요? 그 친구들도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데, 그 친구들도 이런 데서 살아서, 그래서 사람답게 살아야 되잖아요.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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