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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4-05-20 21:50:50, Hit : 405)
조갯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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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바다 제2학생공작실에서 발췌.





1.

오늘도 조개는 흐르는 땀을 주체할 길이 없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부드러운 관자머리 부분에 고여있는 땀은 이젠 오히려 정겨울 정도다. 부드러운 조갯살은 조개의 생명. 오늘도 조개는 바닷물이 아닌 자신의 땀으로 조갯살에 염분을 더해 부드러움을 더한다. 어디 조개의 매력이 매끈한 피부 뿐이랴마는.

조개는 오늘 한가한 오전을 맞아 모처럼 모래사장에 나왔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인 덕분에 양지바른 곳 바위 위에 자릴 잡을 수 있었다. 따스한 햇살. 살랑이는 바닷바람.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오늘 조개는 기분이 무척 좋다. 하늘은 유난히 파랗고, 물은 그에 대답하듯 깊고 푸르르다. 날아가는 갈매기들이 조개를 내려다본다. 갈매기들도 이런 조개의 휴식을 방해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조개에게 있어 아침은 중요하다. 자칫 무르기 쉬운 조갯살을 햇볕에 쪼이는 것은 햇살이 강하지 않은 아침이 적격이다. 거기에 수분이 적은 아침 바다 공기는 조개의 피부에 그만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새벽잠을 조금 설치는 한이 있더라도, 조개는 굳이 일어나 이 아침의 한가로움을 즐기러 모래사장으로 기어나오는 것이다. 오늘같은 아침이라면 햇볕아래서 한숨 잠을 청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 조개는 껍질을 쫘악 벌린 채로 눈을 감았다.

2.

오늘 저녁으론 엄마가 무얼 해줄까? 어제 먹은, 약간 매운맛이 나는 오징어 요리도 괜챦았는데... 그치만 오늘은 왠지 새콤한게 먹고 싶다... 약간의 와사비를 넣은 쟁반국수는 어떨까... 아니면 연탄불에 살짝 구운 야들야들한 소갈비도 괜챦지... 한쪽은 바짝 굽고 다른 쪽은 익히지 않으면 그맛이 그만일텐데.... 하는 달콤한 생각을 하던 중 조개는 번쩍 눈을 떴다. 햇볕이 머리 꼭대기에서 내려쬐고 있었다. 눈이 부셔 몇초간은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뭘 굽는 냄새가 나는 듯 싶었는데, 아니 왠걸, 조갯살의 한쪽 구탱이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몸에 전혀 수분이 느껴지질 않았다. 껍질과 맛닿아있는 등어리에 모래알이 들어갔는지 움직일 때마다 따가왔다. 너무 오래 잔 것이다! 말랑말랑하던 아침햇살은 광자력 비임처럼 조갯살을 파고들었고, 찌는 듯한 더위는 숨통을 막히게 할 지경이었다. 일단은 급한 불부터 끄고 볼 일이었다. 이건 마치 돋보기로 빛을 모아 종이를 태우는 듯한 직사광선이다. 자세히 보니 한쪽부분이 완전히 검게 타 있었고, 그곳을 기점으로 탄 부분이 점점 번져가고 있었다. 몸이 마비된 듯 움직여지질 않았다. 울고싶은 조개는 걱정이 앞섰다. 구운 조개 냄새를 맡고 짐승들이 나오지는 않을까? 이대로 여기서 바짝 말라 타죽는건 아닐까?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가 미친듯이 그리워졌다.

3.

그때였다. 조개는 조개 특유의 동물적 육감으로 무언가가 자신에게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조개는 우선 열려져 있던 자신의 껍질을 닫았다. 그리고는 마치 죽은 조개인양 움직임없이 바위 위에 붙어있었다. 미친 놈처럼 심장이 뛰었지만 조개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쪽 다리가 뜨거워왔지만 조개는 움직이지 않았다.

조개는 자신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가족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밖에선 무슨 일이 있는것일까? 고릴라가 능숙한 솜씨로 삼촌의 껍질을 재껴 속살을 발라먹던 어린 시절의 충격이 되살아 났다. 가족들 중에서 유난히 몸집이 크셨던 삼촌은 조카들을 살리려 자신의 껍질을 벌린 채 고릴라를 유인했었다. 그 틈을 타서 우리들은 바위 아래로 굴러 바닷물에 빠져들었는데, 강한 파열음과 함께 삼촌의 등껍질이 뜯겨져 나가는걸 조개는 보고 있었건 것이었다. 조개에게 있어 껍질은 생명이다. 껍질없는 조개는 갓구운 크림빵을 길거리에 놓아두는 것 만큼이나 위험한 것이라고 엄마는 누누히 말씀하시고 하셨다. 그러기에 오늘 조개는 뚜껑을 더욱 굳게 닫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껍질 안은 온통 눈물로 가득찼다. 숨을 쉬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뚜껑을 열 수도 없었다. 밖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밖에선 그 어떤 자그마한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껍질 안이 더워왔다. 땀과 눈물이 뒤범벅이 되어있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4.

생각해보면 조개는 지금 죽을 수 없다. 벌써 죽기에는 별로 해놓은 것이 없다. 그 맛좋다는 꿀산자도 못멋어봤다. 그 재밌다는 동물원에도 못가봤다. 그 아름답다던 오로라도 구경못했고, 4년후면 다시 돌아올 헬리혜성도 봐야한다. 아직 엄마한테 잘해드리지도 못했고, 조개에게도 떳떳한 여자친구가 되어주질 못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조개의 가슴 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짓다만 모래성이었다. 이제 2주만 있으면 완성될 그 모래성은 조개의 비밀공간에 있다. 3년 7개월이라는 엄청난 시간과 40키로그람이라는 막대한 원자재를 쏟아부어 거의 끝을 보고 있는 조개의 모래성. 누군가가 그곳을 알고 있다면 차라리 이렇게 막막하지는 않을텐데... 이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이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조개는 눈물과 땀으로 숨쉬기 조차 힘든 자신의 껍질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5.

뚜껑을 조금 열어보니 밖에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껍질 속을 가득해우던 체액이 한꺼번에 공중으로 흩어졌다. 뚜껑을 15도 정도 연 채로 조개는 밖의 풍경을 살폈다. 눈 앞에 펼쳐진 황금빛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갈매기들이 퍼득거리는 날개소리가 들렸다. 조개는 뚜껑을 30도 정도로 벌렸다. 살이 진물러있음을 느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껍질사이로 들어와 조갯살을 간지럽힌다. 조개는 뚜겅을 45도로 60도로 90도로 그리고 결국에는 270도로 벌렸다.

"이제 일어났니?"

엄마의 목소리였다. 돌아보니 옆에 엄마가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엄마!!"

조개는 몸을 돌려 엄마를 바라봤다. 다 말라버린 줄 았았던 눈물이 다시 쏟아졌다.

"이런, 무서운 꿈을 꾸었나보구나"

엄마가 조개 곁으로 다가왔다. 조개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엄마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2002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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