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홍경택은 300호, 500호 대형 캔바스에 세밀하게 그려나가고 또 덧칠해나가는 유화작업을 해왔다. 전업작가인 그는 날마다 8시간 정도 작업하지만 하나의 작품이 수년씩 걸리기도 하고 일년에 몇 작품 그려내지도 못한다고 한다. 이렇듯 철저하게 그리기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 홍경택을 만나러 가면서 ‘그리기’에 대해 생각해보니 아련한 ‘향수’ 마저 느껴졌다.
참 이상한 일이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작가들 대다수가 ‘그리기’에 열중하지 않았던가. ‘그리기’가 사회적 관심에서 소외되면서 작가층이 얇아졌다는 생각도 든다. 이전에는 그리기를 익히면서 작가가 되고, 또 잠시 쉬더라도 다시 그리기 시작하면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작가층이 넓었다면, 오늘날에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매체의 변화에 대한 적응이 쉽지 않고, 생활과 작업을 병행하기도 어려워서 작가로서 생존하는 것이 더욱 어렵게 된 듯 싶다. 미디어, 설치 미술이 참으로 급격하게 발전해왔고, 이로 인해 회화쟝르는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는데, 과연 향후에는 어떻게 될까. 집요하게 그리기를 지속하는 젊은 작가를 통해 어렴풋한 해답이라도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의 작업실을 향했다.
김유숙 : 안녕하세요? 우선 그간의 작업 전반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홍경택 : 네, 제가 일상적인 대상을 소재로 작품구상을 하게 된 것은 대학 재학 시였습니다. 대학 3학년때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제가 공산품과 같은 일상적인 소재를 택한 이유는, 우선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과 화려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작업은 그러한 일상적인 물건들 안에서 화면을 구성하면서 환타지를 창출하는 것이었죠. 여기서의 환타지라는 것은 그냥 자극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나오는 힘, 리얼리티가 있어야하기 때문에 일상하고 연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유숙 : 그렇다면 보는 사람이 홍경택씨 작품을 통해 어떤 환타지를 일구어내길 바라는 건가요, 아니면 그 그림을 통해서 환타지에 빠져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홍경택 : 일단 내 자신이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일단 내 나름대로 그것에 빠져들지 않으면 작업할 수가 없거든요. 작업 규모도 굉장히 크고 그리는 방식도 오랜 시간을 요하는 일이라.. 내 자신이 푹 빠져들지 않으면 작품을 지속할 수가 없습니다. 관객은 그 다음 문제지요.
김유숙 : 다른 활동을 거의 안하시고 작업만 하시는데 그런 삶을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누구나 불안함을 느끼잖아요. 작가로 성공해서 보상받을 수도 있겠지만요.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계신지요?

홍경택 : 아마 자기 인생이 소진되게 내버려두는 사람은 별로 없을 꺼예요. 틀림없이 조금은 기대를 하겠죠. 기대는 있고 그 기대가 없으면 살아남기도 힘들겁니다. 오픈아트 인터뷰를 보다가 보니.. 박이소 선생님께서 재밌는 말씀을 하셨더군요. 미술이라는 영역을 일종의 '양호실'이라고 비유를 하셨는데, 저도 그 말씀에 동감입니다.
저도 어떤 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든, 그렇기 때문에 나가서 부딪히고 싸우는 것 보다는, 저 혼자 이렇게 작업하고 이러는게 저한테는 최대의 만족일꺼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그런 면에서 많이 박탈감, 소외감을 느끼지만, 자유를 얻었다는 생각이 이를 보상해주는 것이죠.
김유숙 : 작품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도 있겠죠.
홍경택 : 글쎄요.. 저의 작품은 매우 대중적이면서 사실 유통은 안되고 있습니다.(웃음) 저는 상업적인 측면과 대중적인 측면, 그리고 소위 예술적인 측면 등 사실 그런 것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목표로 두고 있는 것,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은 소수 엘리트만 이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중들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것 아닐까요.
김유숙 : 제 생각에는 우리나라 컬렉터들이 그림에 대해서 요구하는 것이 일종의 ‘아우라’인데요, 홍경택씨 작업은 그런 것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홍경택 :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컬렉션 시장에서는 상품의 색깔이 모노톤으로 된 얌전한 그림들을 좋아하죠. 그림이 자기한테 말을 건다거나 시끄럽거나 하면 싫어합니다. (웃음)
김유숙 : 하하. 재밌는 표현입니다. 지금의 작업실은 작업하기에 매우 적절해보입니다. 언제부터 이 작업실을 사용하셨나요?
홍경택 : 처음에는 축사에서 작업을 했어요. 친구들과 함께 경기도의 축사를 빌려서 사용했죠. 좀 멀었는데 매일 출퇴근하면서 했었죠. 그 이후에 8평짜리 방에서 작업했고, 사실은 거의 대부분의 작업을 그곳에서 했어요. 여기로 옮긴 건 3년쯤 되었는데, 이 곳에 와서야 그 큰 그림들을 처음 펼쳐봤어요. (웃음)
김유숙 : 전업작가이시고, 매일 일정 시간동안 작업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모한 질문 같지만... 작업이 즐거우신가요?

홍경택 : 늘상 즐겁다하면 거짓말일테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요. 그러나 대체로 작품을 그려나가는 데에 희열을 느끼고, 작업과정이 굉장히 재미있어요. 내가 어떤 소재를 선택하고 어떤 색을 입힌다는 것 자체가 즐겁습니다. 저는 색이라는 걸 굉장히 중요시 하는데, 그림의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색을 입힌다는 것이 굉장히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김유숙 : 그렇군요. 그런데 오늘 작업실에 와 보니 이전의 책, 연필 등의 소재가 활자로 바뀌었네요. 올해 들어서 바뀌신거죠? 통속적이면서 가요나 팝에서 즐겨 들을 수 있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홍경택 : 아주 정확히 보셨습니다. 대부분이 노래 제목과 가사에서 따온거고 좀 과격한 내용도 있는데, 저쪽에 숨겨놨습니다.(웃음) 일상적인 내용 뿐만 아니라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때로는 정치적인 내용도 있습니다.
김유숙 : 이 단어들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죠?
홍경택 : 내가 가장 잘 알고 많이 접하는 것, 그리고 나에게 가장 영향을 주는 것이 대중음악이어서 그 안에서 소재를 택한 것이죠. 우리가 노래를 듣다보면 가슴에 와닿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부분을 이미지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DMSR이라는 저 작품은 댄스, 뮤직, 섹스, 로맨스의 약자로 노래제목입니다. 그 제목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제 작업을 굉장히 잘 설명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중음악은 사람들의 변화하는 정서를 발빠르게 대변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를 다양한 선율과 리듬에 담을 수 있죠. 저는 그 의미에 이미지와 색깔을 입히는 것입니다.
김유숙 : 네, 그렇군요. 색채도 이전보다 더 현란하고, 어떻게 보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시게 된 것 아닌가요? 혹시 지금까지 수년간의 ‘그리기’에 지치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웃음)
홍경택 : 아마 그런 요소도 있을 겁니다. 어찌보면 제가 작업을 길게 유지하기 위한, 지치지 않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습니다. 계속해서 묘사 위주의 작업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쳐서 그림을 오래 못할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그리고 새로운 작업에 대한 갈망도 있었구요.
그림이라는 것은 설치작업 보다 쌓여가는 것을 무시 못한다는 것, 그림을 그리다보면 자기가 처음 의도했던 것 보다 많이 바뀌게 되고 또 자기가 의도하지 않았던 전혀 다른 상황도 펼쳐지게 되죠. 그런 것이 묘미인 것 같습니다.
김유숙 : 다른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현란한 색깔과 복잡한 형태들, 그런 표현들이 이제는 대형출력으로 충분히 가능해졌쟎아요. 물론 사람의 손으로 그려진 것과는 차이가 있지만, 몇 년간의 노력이나 인생의 많은 부분을 담을 만큼 그 차이가 크고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홍경택 : 그런 질문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런 그림은 출력할 수 있는 것이다, 컴퓨터 상으로도 얼마든지 작업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작업은 크기 때문에 차라리 그리는게 더 저렴할꺼야... 하는 이야기까지 말이죠.(웃음) 사실 제 작품은 현대적으로 보이면서도 유화라는 아주 고전적인 매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 작품이 출력물과 다른 지점이 무엇인가 하면요, 출력물들에는 오차라는 것이 있을 수 없고 일률적이지만, 제 작업은 사람이 한 것이기 때문에 오차가 있을 수 있고 실수라는 것이 허용된다는, 그리고 거기서 느껴지는 수공예적인 매력 그런것들은 절대로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것에 대한 향수가 짙어지고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최대 목표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제대로 살리는 것이라 들었습니다.
김유숙 : 그렇다면 일부러 그런 실수.. 같은 장치를 작품에 넣으시나요?
홍경택 : 네, 저는 작품이 평면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원근법 그대로 색감을 낸다고 해서 그것이 실제처럼 보일까요? 그것은 사진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림처럼 보이지는 않겠지요. 전 일부러 원근법도 색감으로 배치합니다. 예를 들면 바로 앞에 있는 것과 뒤에 있는 것이 색깔은 똑같게 그려집니다. 똑같은 색인데, 뒤의 사물은 그 크기만 작아진 것이죠. 그렇게 하다보면 전체적으로 평면적인 요소가 입체감 보다 더 두드러질 수 있습니다. 거기서 저는 전체적으로 완벽하지 못한 언밸런스한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전 그림에서 사진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페인팅을 한다는 것이 사실은 어떻게 보면은 제 자신도 힘들 때가 많습니다. 오늘날 변화의 속도라는 것이 엄청나잖아요. 산업혁명 그것보다 정보사회로 진입하는 지금의 변화속도가 사람들에게 더욱 혼란을 준다고 하는데, 전 거의 중세의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죠. 회화라는 쟝르가 거의 폐기 처분되는... 그런 이야기들이 아직도 떠돌고 이런 상황들이 저를 힘들게 합니다.
보통 회화가 구색 맟추기의 한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회화, 형상미술이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제대로 논의된 적이 한번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유숙 : 80년대에 민중 미술에서의 형상성에 대해서 논의들을 했었죠.
홍경택 : 민중미술의 형상성이라는 건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었죠. 80년대라는 정치상황이 굉장히 암울했다고 해서, 그러한 정치적인 상황만이 강조되었으니까요. 저는 그 당시의 정치상황 이외에, 정말 대중적인 부분이 완전히 거세되었다고 봅니다. 요즘 영화를 보면 80년대의 감수성들이 부활되어서 호응을 얻고 있는데, 어찌 보면 그런 맥락하고 비슷한거죠. 제가 중, 고등학교 때의 문화들은 현 대중문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으며 제 감수성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민중미술의 원색과는 달리 TV나 매체를 통한 80년대의 화려한 원색들을 기억합니다. 고등학교때 유행했던 음악, 쇼 프로그램들도 거리 정치상황을 대중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화려하게 포장해서 등장했었죠. 가볍고 화려한 것들의 등장이었다고 봅니다.
김유숙 : 말씀을 듣고보니 그 당시의 새로운 쇼 프로의 등장이 떠오릅니다. 홍경택씨의 작업을 일상성과의 연관성에서만 이해를 했었는데, 그러한 시대적인 반영과 향수가 있었군요.
새로이 시작하시는 문자 작업들을 즐겁게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설명 (위에서 부터)
- 작업실에서의 작가
- <연필그림2>-부분, Oil on Canvas, 387.8X390.9cm, 1999
- <해골이 있는 풍경>, Oil on Canvas, 130X162cm, 1993
- <책상>, Oil on Canvas, 130X162m, 1995
- 작가 홍경택씨의 작업 중인 작품 1
- 작가 홍경택씨의 작업 중인 작품 2
- 작가 홍경택씨의 작업 중인 작품 3
- <화장대>, Oil on Canvas, 130X162cm, 1993
인터뷰, 정리 / 김유숙(오픈아트 디렉터)
출처 : 오픈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