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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네 사이트에서 가져온 글.
가장 무의식적으로 아무렇게 사용하는 것중 하나가 언어가 아닐까 생각된다는. 소통의 효용성이나 객관적인 글쓰기를 심각하게 고찰한다면, 한국어에 대한 거리두기도 반드시 필요하리란 생각.
대화의 폭력은 거개가, 언어에 대한 무신경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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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우수성 VS 한국어의 복잡다단함
인니에서는 인니 사람들, 그것도 대학생들에게 주로 한글을 가르쳤었던 것에 비해 요즘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는 중국, 프랑스, 인도, 일본, 브라질 사람으로 이루어진 '다국적'군을 가르친다. 게다가 이들은 매우 똑똑한 사람들이다. 인니에 있었던 대학 역시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급에 해당하는 곳이니 일반 대학생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또이또이한 학생들이었으나, 교육 현장의 분위기 자체가 우리 나라 70년대 분위기와 비슷하여 교수자의 권위가 꽤 높은 편이었다. 그러니 공부 안 한다고 호통을 치면 다들 고양이 앞의 쥐가 되어 발발 떨고, 수업 시간에 깝죽대는 학생이 있어서 나가라고 하면 정말 고개 푹 숙이고 나가는 광경이 가능했던 것이었겠지만.
학생들의 구성뿐 아니라 두 교육 상황은 매우 다르다. 인니의 학생들은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의 학생들은 '제 2 언어'로서 한국어를 배운다. 전자를 KFL 이라 하고 후자를 KSL 이라 하는데, 이 두 가지가 다르다는 걸 이론상으로야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정말' 다르다. 당연한 말이지만 후자의 학생들이 더 호기심이 많고, 질문도 많으며 그 종류도 다양하다. 전자의 학생들에게는 수업 시간만이 한국어가 입력되는 시간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수업 시간이 아니더라도 여기저기에서 듣거나 보는 것 등의, 수업 외적인 언어 입력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질문을 할 때 나는 언제나 긴장하게 된다. 내가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것들이 질문으로 나왔다 해도, 대답 못하면 망신살 뻗치니까. -_-;;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드는 생각은, 다른 나라의 언어에 비해 확실히 한국어는 어렵다는 것이다. 흔히들 어떤 언어는 웃으면서 시작해서 울면서 끝나고, 어떤 언어는 울면서 시작해서 웃으면서 끝난다고 한다. 물론 한국어도 시작은 비교적 쉽지만, 그 '쉬운 시기'는 정말 너무나 짧다.
시작 단계에서 자모음의 음가를 가르치는 것은 쉽다. 'ㄱ'의 음가와 'ㅏ'의 음가를 가르치고 '가'를 제시하면서 '읽어 보세요~'하면 거의 열이면 열, '가'라고 읽는다. 이 단계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그 이후의 과정에 비하면 매우 행복하다. 한글은 역시 과학적이야!! 하는 자부심도 생긴다. 학생들도 한국어를 그다지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생긴 대로 읽기만 하면 되는 거구나! 라는 것이 처음 드는 생각이니까.
그러나 슬슬 상황은 바뀐다. 어쩌면 처음의 시작이 너무 쉬워서 생기는 부작용일 수도 있겠는데, 글자 하나하나를 읽을 때는 몰랐던 변이음의 세계를 알게 되면서부터 학생들의 혼란은 시작된다. '감기'의 두 'ㄱ', '바보'의 두 'ㅂ' 은 한국인에게는 같은 음성으로 인식되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엄연히 다른 소리다. 첫 번째의 ㄱ과 ㅂ은 무성음이고 두 번째의 ㄱ과 ㅂ은 유성음인 탓이다. 한국어에서는 유/무성음의 구별이 의미가 없으나 대부분의 언어에서는 유/무성음의 구별이 유의미하다. 연음을 배우는 단계의 학생들이라면 이미 ㄱ/ㄲ/ㅋ, ㄷ/ㄸ/ㅌ, ㅂ/ㅃ/ㅍ, ㅈ/ㅉ/ㅊ 등의 자음쌍은 배웠고, 그것만으로도 일단은 한국어 발음체계가 자신들의 모국어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 그런데 자신은 도통 구별하기도 어렵고 올바른 발음을 하기란 더 어렵다는 점에 머리를 한 번쯤 싸맸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에 덧붙여서, 자기 귀에는 엄연히 다른 소리인 무성음 /k/과 유성음 /g/를 똑같이 'ㄱ'으로 써야 한다니 혼란스러움이 가중되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어의 단어 철자야 외우면 그만이지만 제대로 발음하거나, 발음을 듣고 글자로 쓰기란 정말 어렵다고 계속 하소연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 사람에게 '유성음 ㄱ'과 '무성음 ㄱ'을 구별하여 발음하고 받아 쓰는 법을 연습하라고 하면 느껴지는 고통과 대충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뭐, 학생들이 이럴 징징거릴 때의 내 반응은 매우 간단하다. "테이프 듣고 연습해라." 라는. 정말 '올바른 발음'에 관한 것은 연습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이건 어느 언어나 마찬가지다. 다만, 며칠 전 포스트에서 말했듯이 나는 소리에 민감하여 발음 틀리는 것을 참고 넘어가지 않는 편이라 학생들이 더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다른 건 몰라도 틀린 발음이 화석화되어버리면 정말 고치기 어렵기 때문에 초반에 잡아야 한다는 게 내 신조(?)기 때문이다. 그렇게 깐깐하게 해도 제대로 하는 학생은 한두 명 건질까 말까다.
그래도, 발음 가르치는 시간은 문법 가르치는 시간에 비하면 또 행복하다. 일본인 학습자를 제외하고, 학습자들이 '조사'라는 개념에 익숙해지는 것 또한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단어 외우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거기에 주-술-목 구조가 아닌 주-목-술 구조인 데다가, 맞는 조사까지 제대로 붙이려면 아마 머리가 터질 게다. 게다가 '은/는'과 '이/가'의 차이 - '철수가 학교에 갑니다'와 '철수는 학교에 갑니다' 의 두 문장의 차이가 뭔지 도통 알기 어렵고, 설명을 들으면 이해는 가지만 막상 문장을 만들 때에는 응용하기 어려우니 답답하기도 할 것이다. 일본인 학습자들은 그런 면에서 매우 유리하다. 한국인이 일본어를 배울 때 상대적으로 유리한 것처럼.
다 읊을 수는 없으나 이 다음에도 주구장창 어려운 것들 천지다. 형용사가 서술어의 자리에 올 수 있다는 것, 각종 불규칙 용언들, 각종 높임법 등등.. 가르치는 입장에서야 내 언어를 배우겠다는 학생들이 기특하고 내 스스로는 자부심도 느껴지지만, 가끔은 이 어려운 언어를 배우겠다고 끙끙대고 있는 학생들이 안타깝기도 하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어쨌든 ******님 댁의 포스팅을 보며 생각한 것은....
1) 확실히 '한글' 자체만 놓고 본다면 접근하여 이해하기 쉬운 우수한 '문자 체계'임에는 분명하다는 것 (특히 중국어에 비하면, 오오~~~!!)
2) 그러나 그에 비해 다른 언어적 요소들 - 발음, 문법, 어법 등 - 의 체계가 매.우. 복잡하고 (그나마 중국어나 베트남어에 있는 성조가 없어서 다행이다) 처음 접하는 개념도 많기 때문에 글자를 배우는 시기 이후에는 학습자들이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해 나가는 것이 매우 느리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도 포기자도 많은 듯 싶고.
p.s.
* 요즘의 내 학생들은 몇몇 조사(은/는, 이/가, 을/를, 에, 에서, 부터, 까지)의 사용과 함께 용언의 기본형을 가지고 '-요'체를 만드는 것을 연습 중이다. 머릿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터지기 일보직전인 게 보인다. 그래도 문장 만들어 내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고 있어서 내심 뿌듯하다.
* 이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았는데, 중국인 학습자의 발음을 교정하기는 너무너무 어렵다. 특히 중국어의 권설음(혀를 뒤쪽으로 말아 내는 r 발음)을 한국어의 ㄹ 발음으로 바꾸게 해 주는, 뭔가 특별한 교수법을 발명해 내야 하지 싶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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