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1360  3/68   회원가입 회원로그인
  View Articles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8-07-02 14:57:02, Hit : 963)
전시 7.2



NOSTALGIA

최윤정展 / CHOIYUNJUNG / 崔允禎 / painting

2008_0701 ▶ 2008_0710



최윤정_Nostalgia_캔버스에 유채_34×130cm_2008




초대일시_2008_0701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월~금요일_09:00am ~ 06:00pm / 토~일요일, 공휴일_10:00am ~ 05:00pm




한전프라자 갤러리
서울 서초구 서초동 1355번지 한전아트센터 1층
Tel. +82.2.2105.8190
www.Kepco.co.kr






마음의 노스탤지어를 비추는 그림 ● 최윤정의 그림을 아우라의 개념에 기대어 보면 그림의 깊숙한 곳까지 다다를 수 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아우라는 분위기라는 말과 다르다는 점이다. 분위기는 이미지와 관련 있는 것으로, 롤랑 바르트가「이미지의 수사학」에서 밝혔듯이 다분히 ‘상투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상투성이란, 말 그대로 상투적이고 진부한, 일반적으로 코드화 되었다고 말하는 어떤 형식의 문제이며, 크고 무겁게 보면 정서적 이데올로기이다. 따라서 분위기는, 분위기에 휩싸인 코드화된 주체의 코드 풀기와 다름이 없다. ● 그러나 아우라는 코드화나 이데올로기와 관계없이 하나의 힘으로 작용한다. 아우라는 분위기에 휩싸인 주체의 상태에 전혀 개의치 않고 다가와 아우라만의 빛으로 주체를 밝힌다.




최윤정_Nostalgia_캔버스에 유채_34×130cm_2008



최윤정_Nostalgia_캔버스에 유채_34×130cm_2008


최윤정의 그림을 보면 이러한 사실들이 잘 드러나 있다. 먼저 파노라마 형식의 그림을 보자. 이젠 대중화된 파노라마 사진의 보급으로 이런 형식의 기형적인 장방형 프레임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라도, 이 그림들 앞에서는 불편함을 호소할 수밖에 없다. 분위기 자체는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위기일 뿐이다 ; 원근법과는 관계없이 넓게 조망되기만 하는 풍경, 애매하게 활용되고 있는 색채, 비현실적인 장면, 상징적인 오브제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전해주는 코드화된 분위기. 우리는 이를 쉽게 ‘몽환적인 분위기’라고 말할 수 있고,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 그러나 이것은 하나하나 분석했을 때의 상황이다. 한 눈에 통제되는 그림을 전체적으로 보면 시선을 어디에 고정해야 하고, 그래서 어디에서 어디로 옮겨가며 해석해야 하는지 모르는 불안함 때문에 낯선 장면으로만 비춰진다. 다시 말해 시각적으로는 가로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음에도, 심리적으로는 분절되어 보이는 것이다. 원근법으로 설명되는 듯 하면서도 평면성으로 막혀 버리고, 색채는 경계를 구분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순간에 흐려버리고, 현실적인 것 같지만 비현실적이고, 오브제를 통해 무언가 해석이 되는 듯하지만 더 이상의 의미는 생성이 안 되는, 이런 불편함의 연속이다. ● 실내의 모습을 360도로 한 바퀴 돌며 묘사한 전형적인 장방형 그림도 마찬가지이다. 앞서 설명한 파노라마 형식의 그림보다는 눈에 잘 들어오고 좀 더 단정하게 정리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 느낌 역시 ‘분위기의 전형 - 실내의 전형, 오브제의 전형, 친숙한 것의 전형’- 일 뿐이다. 사실 안정되고 차분한 색채로 그려져 잘 마무리되었다는 느낌만 날 뿐이지 그림의 구성 자체는 여전히 불안함을 내포한다. 시선을 어디에 두고 무엇을 봐야할지, 초점은 계속 흔들리기만 한다. 뿐만 아니라 친숙한 실내와 오브제 후면의 파란색 바다와 초록색으로 단조롭게 표현된 풍경은 시선과, 더 나아가 그림 자체를 분절시키며 파노라마 형식의 그림처럼 불편함을 준다.




최윤정_Nostalgia_캔버스에 유채_34×130cm_2008


최윤정의 그림은 바로 이 불편함에서 시작된다. ● 그림이 주는 불편함은 불쾌감과는 다르다. 그 불편함은 흔히 데자부(déjà vu)라고 말하는 기시감(旣視感)을 준다. 다시 말해 그림 속에 그려진 장면은 어디서 많이 본 듯 낯익지만(이 표현이 형식적인 유사성을 표현하는 말이 아니라는 점은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생각해 보면 결코 접한 적이 없는 장면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또 반대로 결코 접한 적이 없는 풍경임은 분명한데, 어딘지 낯익은 풍경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익숙한 분위기를 파악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불현듯 - 이 부사가 굉장히 중요하다 - 익숙한 분위기를 떠올리게 해 준다. 이러한 표현에 가장 적합한 용어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아우라이다. 개개인에게 빛으로 비춰지는, 개개인의 마음을 빛으로 비추는 그것.




최윤정_Nostalgia_캔버스에 유채_34×130cm_2008


나는 최윤정의 그림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잠재된 노스탤지어(nostalgia)를 비추고 있다고 본다. 노스탤지어는 좁은 의미로는 고향이나 지난 시절의 그리움을 뜻하는 것이겠지만, 넓게는 인간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그리움’, 그리고 그곳으로 향하는 마음을 뜻한다. 최윤정의 그림은 일상적이지만 어긋나고 엇갈린 그림의 코드와 평범하지만 결코 눈에 쉽게 소화되지 않는 시각적 장치들을 이용하여, 그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며, 왜 가려고 하는지도 모른 채 ‘막연히’ 가고 싶어 하는 향수를 어렵지 않게 끌어내는 동시에 그 근본적인 그리움으로 향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최윤정의 그림이 갖는 아우라이고, 그 아우라의 빛 한 가운데 최윤정의 그림이 있다.




최윤정_Nostalgia_캔버스에 유채_34×130cm_2008


과거 종교의 시대에 사람들은 성화를 ‘본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성인이나 천사의 머리에서 동그랗게 빛나는 빛으로, 그래서 그림 자체에서 나오는 빛으로 오히려 자기 자신의 모습이 비춰진다고 생각했다. 성화는, 그림은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을 위로하고, 절망하는 인간에게는 희망을 주고, 궁극적으로는 어둠 속에 한없이 놓여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를 환하게 밝혀주는 빛이었다. 그 빛을 보고 느꼈기 때문에 눈에 익을 대로 익은 그림이지만 그 앞에서 꼼짝 없이 사로잡혀 그림을 응시할 뿐인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도 이 빛-아우라는 그 모습을 바꿨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질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최윤정의 그림들은, 화면 속의 친숙한 기호와 어떻게 보면 대중적인 코드에 기댄 듯한 형식적인 친근함에도 불구하고, 눈에 쉽게 소비되지 않는다. 휙휙 지나가며 볼 것 같은데, 그림 앞에 꼼짝 없이 서서 한동안 말없이 응시하게 된다. 아마도 우리 마음 속 어딘가에 아련히 존재하는 막연한 그리움, 그 노스탤지어를 환하게 비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아우라를 우리들은 주저 없이 향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 정한조

------------------------------------


幻想의 Epiphany

이수철展 / LEESOOCHUL / 李樹喆 / photography

2008_0702 ▶ 2008_0715 / 월요일 휴관



이수철_幻想의 Epiphany-8_디지털 프린트_125×125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Vol.061010f | 이수철 사진展 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702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_10:00am ~ 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온_GALLERY ON
서울 종로구 사간동 69번지 영정빌딩 B1
Tel. +82.2.733.8295
www.galleryon.co.kr






별을 헤는 밤 ● 오늘날의 도시인에게 이런 센티멘털이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혹시나 있다면, 이제는 아득해서 신화처럼 되어버린, 저 먼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떠돌 것이다. 이미 다 말라버렸겠지만 봉인 된 기억을 뜯고 잠시 동안‘별’이란 정감어린 말과 연상되는 단어를 입술에 올려, 울림의 동심원을 만들어 보자.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 시, 어머니 같은 시인 윤동주의 시어들이 멀리 멀리 퍼져 나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 별 하나의 추억 / 별 하나의 사랑 / 별 하나의 쓸쓸함...... 그것을 아울러 보듬으면 동심과 고향이 된다. 해맑은 순수함이고, 끝없는 동경으로 간다. 우리 또한 별 하나 하나에 이름을 지어주고, 사연을 만들었던 시절이 왜 없었겠는가? 그 많고 많은 별들 중에서, 어떤 별 하나가 우리 마음을 내려 다 보고 있었고, 밤이 깊을수록 별들은 더욱 찬란해졌고, 정다운 사연을 만들어 갔던 것이다. ● 어느 날 문득, 사진가는 어린 딸의 손목을 쥐고 어둠에 포박 된 언덕을 오른다. 하 많은 별빛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많던 별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밤이 깊어가도 별빛은 도시의 휘황찬란한 불빛 아래 풀이 죽어, 좀처럼 제 몸빛을 드러내지 못한다. 딸에게 보여 줄 수 없는 별빛! ● 이 사진전을 가능하게 한 힘은, 도시에서 성장하고 있는 어린 딸에게 별을 따주고 싶은 아빠의 사랑이다. 그러나 사진가인 아빠는 서울의 하늘 밑에서 풍요로운 유년의 기억을 있는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아니다. 사진가는 유년 시절에 보았던 별보다도 더 아름답고 찬란한 별빛을 딸의 가슴에 가득 안겨주고 싶었다. 그 꿈의, 상상력의 추출물이 이번 사진전이다. 미학과 사진의 가치를 논하기 전에 딸에 대한 아빠의 사랑 문제가 먼저 이야기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 파노라마 시각으로 별을 찍은 사진들은 그동안 많이 봤다. 별을 별 그대로 복원하려는 이러한 서술형 사진은 진부하다. 이 사진들이 눈길을 붙잡고 서성이게 만든 까닭은 묘사적이고 풍요로운 표현성 때문 일 것이다. 아름답고 시적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다. 짱짱한 아름다움 속에 이미지의 아포리즘이라고 할 만큼 도시인들의 삶을 통찰하면서 중층적 의미를 두텁게 쌓아올렸다. 직접 별들을 찍지 않음으로 보는 자들에게 사유의 공간을 활짝 열어놓기를 요구한다.




이수철_Hello Thomas-1_디지털 프린트_180×120cm_2007


첫 번 검토한 작품은 ‘헬로 토마스’연작에 나오는 별 사진이다. 사진가의 별은 독일의 사진가 토마스 루프의 사진에 등장하는 그 ‘별’이다. 작가는 작품의 제목에서 그것을 밝힘으로 치밀한 계산 하에 제작 된 것임을 암시한다. 즉 토마스 루프의 사진을 스캔해서 차용 한 것이다. 토마스 루프도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별 역시, 그가 찍은 것이 아니라, 천문대의 우주 관측용 과학 사진을 통째로 차용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찍은 것이 본인인양 작가 사인을 남겼다. 그러니 일종의 가짜 사진인 셈이다. ● 사진가는 그 주인 없는 사진을 원본 삼아 다시 차용해서 쓴다. 차용의 차용인 셈이다. 이처럼 남의 것 베끼기 혹은 훔치기는 현대 미술의 주요한 전략으로, 1980년대 이후 미술에 등장한 개념이다. 발견 된 이미지로서‘새로운 콜라주’를 만드는 것에 대응한 새로운 전략이 2 차원적 이미지로서의 차용 전략이다. 그동안 슬쩍슬쩍 베꼈는데 요즘은 드러내놓고 베낀다. 모더니즘적 독창성과 원본성에 딴죽을 거는 것이다.● 사진 매체를 활용하여 견고한 모더니티에 시니컬한 반응을 보인 작가로는 리차드 프린스 혹은 셰리 레빈 같은 작가들이 있다. 물론 토마스 루프의 별들도 그 베낀다는 울타리의 범주에 있다. 그 중 가장 노골적인 사람은 셰리 레빈이다. 에드워드 웨스턴, 워커 에반스, 알렉산더 로드첸코의 사진을 있는 그대로 찍어서 보여주었다. 제목을‘워커 에반스를 따라’로 붙이면서 원본과 복사본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아니 진본보다 더욱 중요한 복사예술을 만든 것이다. ● 제작 방식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예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다. 만화의 한 컷 만을 선택한 후 거대한 캔버스에 유화로 다시 베끼는 것이다. 이 때 세리 레빈처럼 있는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에 따라 이미지의 변형이 이루어진다. ● 사진가의 작품 제작 방식(헬로 토마스 연작)만을 놓고 본다면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친족관계를 이룬다. 토마스 루프의 별을 차용했지만, 그 별들은 모니터에서 변형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미지 하단에 보이는 다리, 황량한 들판은 직접 촬영한 이미지다. 작품은 사진가의 것과 차용 된 이미지가 삼투되어 하나를 이룬다. 이렇게 재구성 된 사진은 언급 된 현대 미술의 차용 전략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결과처럼 이해된다.




이수철_The Space for Renovation-2_디지털 프린트_180×120cm_2007



이수철_The Space for Renovation-3_디지털 프린트_180×120cm_2007


눈을 들어 밤하늘을 보아도 별을 볼 수 없다. 천문대의 특수 장비의 도움으로 별을 보는 세상이 된 것이다. 적어도 도시에서는 그렇다고 말 할 수밖에 없다. 강에 걸린 다리를 찍은 사진에 쏟아지는 별똥도, 먼 우주의 풍경도 모두 재구성 된 이 사진들. 그러니까 그의 별은 객관적 사실(fact)에 기초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사진가의 욕망과 기억에 따라 컴퓨터의 모니터 속에서 아름답게 다듬어지고 변형 된 허구적 구성물로서의 별인 것이다.




이수철_幻想의 Epiphany-4_디지털 프린트_60×60cm_2008


그의 두 번째 관심은 지상의 별이다. 이 진짜 풍경은 밤이 새도록 빛을 잃지 않은, 도시 빌딩 숲에서 분출하는 빛이다. 그것은 땅의 별빛이다. 아니면 연말연시의 장식을 위해 나무에서 불 밝힌 작은 장식용 색 전구가 하늘의 별빛을 대체한다. ● 어쩌면 도시인이 꿈꾸는 별은 하늘의 별이 아니라 지상의 별 일지도 모른다. 욕망의 별, 쾌락의 불빛에 열광하는 것이다. 밤마다 부나비처럼 그 빛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사진가는 땅의 별빛을 어떻게 볼까? 전시 된 사진 중 또 다른 사진, 불꽃놀이에서 은연 중 속내를 보인다. 일순에 찬란히 밤하늘을 밝히다 사라지는 불꽃놀이를 보며, 인간의 빛은 덧없는 빛이고, 사라질 허망한 빛이라는 것을 암시 하는 것은 아닌지.




이수철_幻想의 Epiphany-6_디지털 프린트_50×150cm_2008



이수철_幻想의 Epiphany-2_디지털 프린트_100×100cm_2008


그의 사진은 하늘의 별과 지상의 별이라는 두 개의 시선을 유지 하면서 별이 있는 풍경들을 길항 시킨다. 하나는 과거로 회귀하는, 기억의 프리즘을 통과하는 시선의 퍼스펙티브를 갖는다. 아마도 딸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유년의 신화적 시선 일 것이다. 또 다른 것은 어른이 보는 오늘의 시선이다. 새로운 현실은 이 땅에 새로운 수많은 별들을 만들 수도, 지울 수도 있는 지상에서 꽃피우는 문명화 된 별들이다. ● 사진가는 아름다운 이미지 속에 어린이의 눈으로 과거를, 도시인의 욕망의 눈으로 현재를 함께 버무린다. 그 과정에서 현대 미술의 예민한 성감대를 슬쩍 건들고, 문명 비판적 시선을 보여주는 종횡무진을 감행한다. 그러니 그것이 이미지 아포리즘이 아닌가? 문득 ‘별을 헤는’ 죽은 시인이 그립다. 그는 저 찬란한 지상의 별들에서 어떤 말들을 호명해 낼 것인가? ■ 최건수

-----------------------------


지배구조속의 갈등과 조화

이성영展 / LEESUNGYOUNG / 李星映 / painting

2008_0703 ▶ 2008_0709



이성영_청소기가 있는 풍경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성영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월~금요일_10:00am ~ 09:00pm / 토요일_10:00am ~ 07:00pm
일요일_12:00am ~ 07:00pm





경향갤러리_KYUNGHYANG GALLERY
서울 중구 정동 22번지 경향신문사 별관 1층
Tel. +82.2.6731.6751
www.khgallery.net






이번 ‘지배구조속의 갈등과 조화’라는 전시 제목 안에는 ‘자연과 인간’과 ‘인간과 인간’이라는 두 파트로 나뉘어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어찌 갈등이 없겠는가? 어찌 보면 갈등은 조화를 위한 전단계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의 갈등이라면 그 존재 이유는 충분히 인정할 만하겠지만 그 갈등의 중심에 있는 대상은 투쟁과 같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안에는 무수히 많은 지배구조가 존재한다. 구지 권력의 앞에선 이들만이 그 지배구조의 꼭대기에서 비웃는 것이 아닌, 나 역시도 때론 자연 앞에서, 때론 누군가의 앞에서 그런 구조를 만들지 않았을까? ● 나는 기계의 유익함이나 유해함을 말 하거나 권력에 대한 조롱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반성과 상호존중의 선행으로 조화로운 삶! 조화로운 환경을 꿈꾸고 싶은 것이다.




이성영_k-200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08



이성영_탱크_캔버스에 유채_97×145.5cm_2008


이불속에서 옷을 4겹은 입은 체 나갈까 말까를 망설이기를 30분! 힘겹게 일어났다. 어김없이 옆구리에 톱 한 자루 들고 아침운동을 하러 가야할 판이다. 숨이 턱밑까지 밀려오고 몇 겹을 껴입은 옷을 한 꺼풀씩 벗다 보면, 해는 어느덧 내 그림자를 축구공만 하게 만들고 만다. 이렇게 한 아침운동의 결과는 내게 하루의 온기를 준다.




이성영_지구 그 아름다움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07



이성영_전구에 핀 꽃_캔버스에 유채_72.7×91cm_2007


1월 24일 - 오토바이 소리마냥 가히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거늘 이놈 참 대단한 놈이다. 내게 일주일의 온기를 반나절도 안되는 시간으로 해결해 주었다. 고놈 참 기특한 놈일세~




이성영_꽃을든 남자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05



이성영_파리사냥_캔버스에 유채_116×91cm_2007


엔진톱! 절심함을 모를 때 그 기계는 내게 차갑고, 날카롭게 그리고 파괴적인, 뭐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엔진톱은 나에게 고마움의 대상!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자 만든 기계가 아닌 내게 온기를 주는 그런 고마운 친구가 된 것이다. ■ 이성영

--------------------------------------------------


house of THE HUNTED

김여운展 / KIMYEOWOON / 金여운 / painting

2008_0703 ▶ 2008_0710



김여운_Sam_캔버스에 벽지와 유채_80×80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여운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703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갤러리 정_GALLERY JUNG
서울 종로구 내수동 110-36번지
Tel. +82.2.733.1911
www.artjungwon.co.kr






당신은 그녀의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보는가? ● 그녀의 "집"의 실내를 채우고 있는 문ㆍ나비 표본ㆍ박제ㆍ상자 등의 작품들은 예쁘고 아기자기한 외견을 지니고 있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평소의 그녀의 취향도 그녀의 이 작품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나는 그 속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본다. 소름이 끼칠 정도의 끔찍한 고통과 깊은 어둠이 그것이다. ● 그녀의 "표본실" 시리즈를 보자. 가장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Celebrity들의 사진이 예쁘게 액자화되어 있는 작품들로 보인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라. 그들은 산 채로 핀에 꽂혀 건조화되어 만들어지는 "나비 표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녀는 나비에게 행해지는 잔인한 행위에 분노한다. 나비는 예쁜 날개를 가졌다는 이유로 인간의 소유욕에 의해 사냥당하고 산 채로 박제화된다. 그녀는 바로 인간들을 그렇게 만들어, 인간들로 하여금 그들의 행위를 反省하게 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녀는 인간들을 표본화하는 것을 통해, 인간이 서로에게 하고 있는 짓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은 자신의 탐욕과 이기심에 의해, 다른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근원적인 가치가 아닌 어떤 2차적인 가치로 파악하고 억압하고 희생시킨다. 당신 또한 누군가를 희생시켜 "표본"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당신 또한 누군가에게 희생당해 "표본"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김여운_Dave_캔버스에 벽지와 유채_116.8×91cm_2008


"박제" 시리즈 역시 동물과 인간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하여 말하는 작품들이다. 인간은 살아있는 동물을 죽여서 건조한 후 벽에 전시한다. 인간이 행하는 그 잔인한 殺傷은, 다른 동물들처럼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행위인 것도 아니다. "유희"를 위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박제된 동물들은 인간의 이름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박제"는, 인간이 동물에게 하는 행위인 것만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하는 행위로 확장된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수단화ㆍ도구화ㆍ대상화ㆍ사물화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그녀는 고발한다. ● "상자들"에는 작고 예쁜 동물들이 들어있다. 그러나 여기에 역시 그녀의 모순과 고통이 들어있다. 표본과 박제들을 애도하면서, 그녀는 또 동물들 작은 유리 상자에 가두는 잔인한 짓을 행한다. 그것도 자신보다 약하고 어린 존재들만을 가둠으로써,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잔인한 인간의 비열한 속성에서 자신 역시 자유롭지 못함을 고백한다. 상자들의 이름은 번호로 불린다. 至上의 존엄한 가치인 "생명"이 들어있지만, 1번이라는 번호가 붙은 상자에는 "1번 상자"의 의미 밖에는 없다.




김여운_Steve_캔버스에 벽지와 유채_108×62cm_2008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그림들을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문" 시리즈는 절망과 고통으로 채워진 그녀의 방에 마치 그 출구인 것처럼 전시되어 있다. 문의 그 밖은 그녀의 집을 채우고 있는 고통들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문들이 희망을 더하고 있는지 절망을 더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문들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손잡이가 없는 문을 보라. 혹은, 그것들은 정말 문인가? ("이것은 문이 아니다") 우리는 이 절망의 공간 속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인가? ■ 임준형




김여운_상자들_캔버스에 유채_15.8×22.7cm, 14×18cm, 25.8×17.9cm, 15.8×22.7cm, 31×21cm_2008


나비 표본들과 박제된 동물들을 보면서 그 안에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보았다. 사냥당하고 먹히는 것은 비단 동물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 속 약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생존’의 문제이다. 작품들을 통해 이러한 이야기를 타인의 이야기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느껴볼 수 있도록 우리 일상의 공간인 집을 선택하여 문, 박제 표본 등의 소재들로 채워 재구성해 보았다. 단, "사냥당한 것들"의 집이다. ● 캔버스를 문으로 둔갑시키거나, 박제된 동물들을 벽지가 덧대어진 캔버스 위에 그려 집 내부를 표현하고 있다. 박제 그림의 밑에는 모차르트의 진혼곡의 일부가 적혀있어 동물의 혼을 애도한다. 이와는 반대로 나의 "상자들"에는 살아있는 작고 약한 동물들이 가두어져 있다. 인간은 언제나 강자 앞에서 약하고 약자 앞에서 군림하려는 존재이기에 나의 상자 안에는 나보다 약하고 어린 존재들만이 가두어져 있다. 표본들에서는 이상적인 외형을 지닌 인간들의 모습이 나비 표본으로 만들어져 있다.




김여운_표본들_혼합재료_16×16×4.5cm, 18×18×4.5cm, 20×25×7cm_2008


사냥당한 동물들이나 표본들의 존재는 그들을 사냥하고 채집한 이의 존재를 암시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약자는 강자에게 사냥 당한다. 그것은 인간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동물의 세계처럼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인간 사회 역시 능력·존재·이미지 그리고 개개인의 가치가 강자에 의해 사냥당하고 희생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강자에 의해 정해진 기준에 의해 각각의 필요성과 존재 의의를 부여받는다. 우리는 매일 치열한 경쟁 속에서 보다 강자에게 희생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며 산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희생시키는 이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우리는 우리가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대가로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그 희생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자들을 오히려 사회부적응자라고 부른다.




김여운_오래된 문_캔버스에 유채_198×90cm_2008


치열한 사회 속에서 박제가 되어버린 우리들, 혹은 누군가의 표본이 되어버린 우리들, 아니면 누군가를 아무렇지 않게 희생시키고 또 희생을 강요하는 우리들의 모습, 그러한 사회 속에서의 탈출구를 제시하는 문들로 이번 전시를 꾸며 보았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엄숙히 흐르는 나의 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 ■ 김여운

--------------------------


Lightscape-光景

칼리 아이든展 / Cally Iden / photography

2008_0703 ▶ 2008_0724 / 월요일 휴관



칼리 아이든_Lightscape I_C-프린트_75×100cm_2007




초대일시_2008_0703_목요일_06:00pm

작가와의 대화_2008_0710_목요일_02:00pm

갤러리 정미소 New Face Artists 기획초대展
협찬 및 후원_월간 객석_운생동 건축사무소_한국문화예술위원회_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_11:00am~08:00pm / 월요일휴관





갤러리 정미소_GALLERY JUNGMISO
서울 종로구 동숭동199-17번지 객석빌딩 2층
Tel. +82.2.743.5378
www.galleryjungmiso.com






결여로서의 현실 ● 칼리 아이든은 자신의 포토그램 작업과 핀홀 작업을 설명함에 있어서, 사진에 있어서 완벽한 대상, 완벽한 구성 등의 절대절명의 순간을 보여주는 특성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이 작업들은 사진이라는 과정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는 작업들이다. 이들 사진작업의 강조성은 작가의 고유한 어떤 선택과 변화 과정에서 또한 엿볼 수 있다. ● 그녀는 매우 일상적인 것들(가령 한 개인의 기억이나 추억을 연상시키는 오브제들-보물들) 혹은 일상이 지속되는 장소(집, 수영장, 잔디밭과 같은 장소나 시내 거리와 같은 불특정 장소)들을 갖고 핀홀 작업이나 프로젝트를 실행하거나, 그 장면들을 포토그램 작업화 한다. ● 이들 작업의 과정과 그 도큐멘트 장면들을 통해서 우리가 보게 되는 이미지는 어떤 정서를 담고 있는 이미지들이다. 작가 또한 이 장면들을 ‘사진’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미지’라고 부르고 있다. 이 이미지들은 대부분 정확한 초점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찍은 것 같은 사진이 아니다. 대부분의 이미지들은 현실의 단서를 갖고 있지만, 이미지 자체가 깨져있거나, 분열되어 있거나, 역상이거나, 어둡기도 하고, 때로 대상을 분간하기 어렵기도 하다. 즉 이들 이미지는 ‘사진’의 결과에 걸려있는 어떤 내기, 즉 무엇인 실재이고, 무엇이 환영이며, 무엇이 상상적 결과인가 하는 것의 내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칼리 아이든_Vase_디지털 프린트_50×60cm_2007


그런데 때로 이 이미지들로부터 우리는 무엇인가 연상할 수 있다. 때로 그 정서는 그리움, 두려움, 낯섦, 친숙함 등등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아마도 낯섦이란 용어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적인 것들이 낯선 풍경으로 우리 앞에 전시되면서, 일상적 오브제들과 공간들에 스며있는 우리 자신의 삶 자체의 낯선 측면들을 엿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심지어 어떤 환영일 수도 있다. 그러한 낯선 측면들이, 현실의 불완전함을 강조하는 사진작업을 통해서 우리 앞에 현시되는 것이다.




칼리 아이든_홍제천 공공미술프로젝트 05_디지털 프린트_20×30cm_2008



칼리 아이든_홍제천 공공미술프로젝트 03_디지털 프린트_50×60cm_2008


현실의 리얼리티라는 것은, 우리의 정서, 즉 심리적이거나 정서적인 어떤 덧붙임, 즉 환영을 통해서 재구성되는 것일 것이다. 때로 그 효과를 대상과 공간을 둘러싼 어떤 아우라라고도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칼리 아이든의 작업에 있어서 주목할 것은, 그녀가 사진의 과정을 중요하게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작업은 일상의 낯선 귀환, 현실의 불완전한 귀환 속에서, 잠재되어있던 우리의 환영과 상상이 보충과 과잉으로 그리고 결여 자체로 전시된다는 것이다. ■ 이병희




칼리 아이든_국제바늘구멍사진 프로젝트_디지털 프린트_50×60cm _2008


나는 지금껏 사물과 사물의 이미지를 통해 실재와 허상의 관계를 탐구해왔다. 두말 할 나위 없이 사물의 형상은 빛과 어둠 그리고 그 사물 그 자체로 이루어진다. 사진은 빛과 어둠을 통해 사물의 형상을 옮긴다는 점에서 내게 매우 중요한 매체이다. ● 카메라는 사진의 핵심이다. 이 말에 모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지만, 우리는 이것을 손에 쥐고 셔터를 눌러 이미지를 얻는다는 극히 단순하고도 제한적인 방식으로만 사용한다. 정작 중요한 일은 카메라 내부의 어둠 속에서 일어나지만, 그것에 우리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 ● 하지만, 그 안에 걸어 들어갈 수 있다면?_카메라옵스큐라. / 카메라가 작업의 도구가 아니라 작업의 결과라면?_핀홀카메라. / 심지어 카메라 없이 직접 인화지위에 빛과 사물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다면?_포토그램. ● 카메라옵스큐라, 핀홀카메라, 포토그램. 이 세가지 사진기법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사진술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우선,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작업들이라는 점이다. 둘째로, 그렇기 때문에 이 사진들은 "시간의 흔적"을 찍는 것이지,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로, 암실에서 중요한 작업의 대부분이 이루어지고, 그렇기 때문에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물을 사진의 영역에 직접 끌어들여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 어두운 암실에서 인화지 위에 사물을 직접대고 빛을 비춰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든지(포토그램), 깡통, 담배갑, 짜장면통 등의 실재 사물을 카메라로 이용한다든지(핀홀카메라), 또는 거대한 저택을, 컨테이너를 통째로 카메라로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 사진을 찍는다든지(카메라옵스큐라) 하는 작업이 가능한 것이다. ● 이런 방법들을 통해 대상을 어둠 속에서 오래 두고 바라보며 그것이 나와 함께 보낸 시간의 흔적 얻는다. 이렇게 얻어진 친근한 사물들의 시적 이미지는 우리를 둘러싼 빛, 그 눈부신 빛의 풍경에 다름 아니며, 그 광경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빛과 어둠이라는 근원적인 요소를 환기시키는 것이 내 작업의 한 지향이다. ■ 칼리 아이든_Cally Iden

----------------------------------------------


동대문시장유물전

홍성용展 / sculpture.painting

2008_0703 ▶ 2008_0712 / 일요일 휴관



홍성용_조명주칠발렌시아가합_罩明朱漆BANENCIAGA盒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홍성용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703_목요일_05:00pm

후원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트포럼 뉴게이트
ARTFORUM NEWGATE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1-38번지 내자빌딩 1층
Tel. +82.2.737.9011
www.forumnewgate.co.kr






사사로움, 그리고 서술적 가능성 ● 가상의 박물관으로 꾸며진 전시장에 케빈 클라인 팬티를 입은 남자, 울트라맨, 코카콜라 병, 장난감 칼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상들이 그야말로 고고한 유물로 전시된다(2007년 개인전). 더불어 가상의 다큐멘터리는 이를 천연덕스럽게 뒷받침한다. 이처럼 옻칠로 본뜨거나, 캐스팅한 후 옻칠을 입혀 놓은 이른바 ‘조작된 유물’들은 현재를 먼 과거 혹은 시간이 정지된 다른 차원으로 치환시킨다. 그리고 이는 관람자로 하여금 유쾌한 혼동을 부추긴다. 이렇듯 홍성용의 최근 작업 경향은 작가의 관점에서 주변의 특정 대상들을 선택하고 유물화하는 것이다. 지난해의 전시가 국제교환작가로 머물렀던 중국 심천을 배경으로 했다면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주목하는 곳은 동대문 시장이다.




홍성용_조주칠NIKE인입상_罩朱漆NIKE人立像_163cm_2008


작가는 시장의 골목골목을 돌며 영상에 담아내고, 또 그곳에서 작업의 직접적인 소재들을 취한다. 하지만 정작 장소 선택에 있어, 그곳이 우리의 삶이 영위되고 있는 많은 장소들 중의 한 곳이라는 것 외에 다른 필연적인 이유는 없는 듯하다. 이번 전시를 위해 그 곳에서 선택된 대상들인 신발이나 가방, 그리고 어느 젊은 남녀의 모습 또한 실제로 동대문 시장의 어떤 차별적인 상징성을 대변하지 않을뿐더러, 굳이 그러고자 애쓰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들이 우리 주변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거나 물건들이라는 점에서 지극히 몰개성적이다. 그렇데 이렇듯 평범하다 못해 지루하기까지 한 대상들이 작가의 손을 거치면서 더 없이 특별하며, 고혹적인 유물로 가장되고 제시되며, 영상은 이의 현장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홍성용_금칠ADIDAS리_金漆ADIDAS履_ 25cm_2008


작가가 가장 핵심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기법은 옻칠이다. 작가는 수년 전 옻칠에 매료된 후 지금까지 옻칠을 자신의 작업에 지속적으로 접목시켜오고 있다. 작가의 이러한 시도는 동양화를 전공한 그의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거기에는 전통 재료의 현재적 가능성 모색이라는 작가의 의지 혹은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한편 그는 옻칠의 전통적이며, 장식적인 공예의 차원과는 다른 관점, 즉 현대미술 안에서 이의 활용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러면서도 작품을 제작하는 동안 옻칠 작업의 실제 진행과정을 가능한 철저히 준수함으로써 그 본질을 퇴색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 그렇다면 이제 일상적 사물이나 인물들을 상당한 시간과 숙련된 노력이 요구되는 옻칠 기법으로 유물화함으로써 작가가 궁극적으로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 볼 차례다. 우선 거기에는 단순히 전통적 기법의 현대적 차용 이상의 다른 무엇이 담겨있다. 무엇보다 작업 자체는 그에게 주변의 세계와 교감하는 중요한 매개다. 아울러 작가의 행위를 통해 몰개성의 무미건조했던 대상들은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된다. 그렇게 본다면 선택 단계에서 대상들이 지니는 의미 혹은 상징적인 위상의 높이는 크게 고려될 필요가 없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작업과정을 통해 부여되는 새로운 의미와 상징성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라의 위장에서 발견된 참외 씨는 그 특수한 시간성 및 장소성 때문에 다른 무수한 참외 씨들과는 구별되는 중요한 유물로서의 예외적인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작가에 의해 시도되는 유물화의 과정도 사사로운 대상에 인위적인 예외성 혹은 특수성을 부여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홍성용_녹칠PUMA문인입상_綠漆PUMA紋人立像_170cm_2008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듯 예외성과 특수성이 사사로움에 부여됐을 때 원래의 의미는 이제 다양한 맥락으로 전이되고 확장된다. 그런 점에서 존 버거(John Berger)적 의미의 ‘서술된 시간’, 즉 대상 자체에 내포된 사건 혹은 시간뿐 아니라 그 외의 인위적으로 첨가될 수 있는 서술적 가능성을 시도하는 것이 곧 홍성용 작업의 요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사사로움의 극치를 달리는 대상일지라도 새로운 맥락의 사회적 기억과 행위의 성격을 포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역사적 시간 혹은 사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대상에 대한 보다 철저한 밀착과 관찰이 전제될 때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미적 동력을 얻게 된다. ● 별달리 기대할 것이 없는 대상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거기에 새로운 예외성을 담아내는 것은 동시대 예술가라면 누구나가 간절히 바라고, 매달려 온 미학적 화두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예외성은 예술의 자체의 역사로서 이미 증명된 바 있듯이 언제나 우리의 삶 안으로 다시 포용될 수 있는 것일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그랬을 때라야 만이 비로소 그 행위가 현실의 무료한 반복재생산이 아니라 창조적 재생산을 담보하는 미적 행위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것은 예술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홍성용의 작업세계가 동시에 안고 있는 양면, 즉 넘어야 할 과제와 새로운 가능성이 교차하고 있는 곳도 바로 이 지점이다. ■ 윤두현




한 발짝만 앞으로

비정규직 기금마련展

2008_0704 ▶ 2008_0709



한 발짝만 앞으로展 포스터_2008





초대일시_2008_0704_금요일_06:30pm

부대행사 / 비정규 연대단위 인사_기륭_KTX_뉴코아-이랜드_코스콤 등
여는 시_송경동 / 축하 노래1_김성만 / 축하 노래2_이수진
비정규 영상 상영 / 연대 말씀_민변_민교협_종교계 등
축하 노래3_연영석 / 떡 나누기

참여작가_비정규직 철폐를 지지하는 예술가들_60인
강성봉_구본주_고창수_김진호_김기호_김성건_김주철_김재석_김윤기
김용덕_김용태_김인순_김천일_김상섭_김미혜_나종희_나규환_도지성
류연복_배인석_박야일_박영균_박은태_박영조_박흥순_박충의_방정아
손문상_서수경_성효숙_성낙중_신학철_신은영_안성금_안인숙_여운
유성환_유성종_유양옥_윤석남_이인_이인철_이영학_이진우_이종구
이종희_이철재_이윤엽_이원석_이구영_위종만_전진경_전미영
정세학_정평한_정정엽_주재환_최호철_홍선웅_허용철





갤러리 눈 창덕궁점_GALLERY NOON
서울 종로구 와룡동 5-14번지
Tel. +82.2.747.7277
www.110011.co.kr






정규직 노조도 외면…“우리는 오늘 또 삭발합니다” ● “이제 또 삭발을 합니다. 흔하고 흔한 것이 삭발이고 단식인데 무어 그리 대단할 것입니까? 차라리 총칼을 들고 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버티는 자본의 심장을 후비고 싶지만, 구속에 단식을 하고도 그저 죄 없는 머리칼만 또 자르고 있습니다….”




구본주_당신_브론즈_50×40×20cm



리광성(김용태소장)_금강산의 구름안개_한지에 수묵채색_45×52cm


파업 967일…고공농성…노동자연대 희망 감감. 비정규직 고통은 배가 “언제 쳐다봐 줄 건가요” ● 불법 파견에 맞서 싸운 지 967일째인 지난 16일, 금속노조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은 다시 또 삭발하고 단식에 들어갔다. 노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해고 통고를 받았다. 이제 곧 1000일, 그 1000일이 되기 전에 일터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박충의_되새김질_목판화_48×40cm



손문상_레퀴엠_장지에 디지털 프린트_60×110cm



신학철_아침_아크릴채색_45×53cm


감옥 문처럼 육중한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안 기륭전자의 철문 앞, 농성 천막은 지난해 여름 찾았을 때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200명으로 시작한 파업에 남은 조합원은 20명도 안 된다. 머리칼이 잘려나가는 모습에 조합원들은 소리죽여 눈물을 훔쳤고 주위는 처연해졌다. “머리카락이 잘립니다. 우리의 설움이, 저 더러운 자본의 탐욕이 저렇게 싹둑 잘려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비정규직의 고통이 잘리고, 노동자 농민 민중을 억압하는 저 더러운 것이 뿌리까지 싹둑 잘렸으면 좋겠습니다.”




유성종_생활옹기_20×25×14cm



윤석남_999_나무에 아크릴채색_30cm


고속철도(KTX) 여승무원들의 싸움이 공기업 비정규직의 최장기 투쟁이라면, 기륭전자는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최장기 투쟁 현장이다.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은 17일 파업 투쟁 300일을 맞았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랜드 그룹과 싸워 이기지 못하면 민주노총 깃발을 내리겠다”고 호언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 의식을 찾기 어렵다면, 민주노총도 종이호랑이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 자본과 정권에게 “강성 노조 때문에 투자하기 어렵고 투자를 못하니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는다”는 따위의 빌미를 주는 그 ‘강성 노조’의 속살을, 이랜드 투쟁은 아프게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이인철_달러가 있는 정물_디지털 프린트_16×31cm



정세학_비행_수묵채색_45×53cm


인천 부평구청역 지엠대우 공장 앞에는 또 다른 천막이 있다. 지엠대우 비정규지회 노동자들의 농성 천막이다. 지난해 9월2일 비정규 노조를 설립한 지 일주일 만에 여지없이 징계와 해고를 당했다. 지엠대우의 비정규직 2300여명 가운데 100여명이 조직되었으나 지금은 30명 가량만 남았다. 박현상 조직부장은 교통관제 탑에서 65일을 버텼다. 다리를 펴고 잘 수 없는 공간이다. 음식과 배설물은 가는 줄로 연결된 밑의 조합원이 조달하고 처리했다. 지금은 이대우 지회장이 고공농성 48일째이고, 이용우 연대사업부장은 단식 중이다. 한강대교, 마포대교에서도 고공농성을 벌였지만 회사는 움쩍도 하지 않는다.




정정엽_신호등_유채_41×32cm



정평한_'05학교 낡은 초상_슬리퍼_폼보드에 아크릴채색_35×52cm


정규직 노조의 연대 의지가 정규직 조합원들의 연대 의식을 반영한다면, 지엠대우의 그것은 초라하다. 7년 전 대우차에서 정리해고 됐던 1750명의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 ‘폭력’ 사건을 기억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그 노동자 가운데 대부분이 복직돼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들조차 거의 나서지 않는다. 황호인 비정규 부지회장은 말했다. “정리해고 됐던 경험이 움츠러들게 하겠지요. 이젠 나이도 마흔을 넘었고 자식들도 대학 보내야 하고….” ● 하지만 그들조차 모른 체한다면 과연 누구에게 연대를 기대할 것인가? ■ 홍세화

■ 전시개요

주관_민족미술인협회  cafe.naver.com/sminart/517

주최_기륭여성비정규 투쟁 승리를 위한 공대위  cafe.naver.com/kiryung
       [지역단체] 서울남부민중연대 / 서울남부금속지회 / 민주노총 서울남부지구협 / 전교조서울남부지회
       민주노동당서울시당 / 진보신당 구로추진
       [사회단체] 불완정노동철폐연대 / 사회진보연대 / 실천불교전국승가회 / 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연합 / 인권단체연석회의 / 한국작가회의 / 문화연대 / 리얼리스트100
       전국학생행진 /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 스크린쿼터문화연대

후원_갤러리 눈 / 민중의소리 / 참세상 / 레디앙 / 한겨례신문 / 경향신문
       * 조성된 연대 기금은 비정규직 투쟁사업장에 전달됩니다.



------------------------------------


PHOTO ON PHOTOGRAPH

금호미술관 사진 기획전

2008_0704 ▶ 2008_0817 / 월요일 휴관



PHOTO ON PHOTOGRAPH_2008






초대일시_2008_0704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도균_박현두_박형근_백승우_원성원_이명호_정연두

기획_금호미술관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Tel. +82.2.720.5114
www.kumhomuseum.com






오늘날 독자적인 예술 장르로 자리 잡은 사진은 시각예술의 중심매체로, 미술에서도 그 영향력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금호미술관에서 기획한 『PHOTO ON PHOTOGRAPH』展은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7인의 작가(김도균, 박현두, 박형근, 백승우, 원성원, 이명호, 정연두)들을 통해서 우리 미술에서 동시대 사진예술의 진행형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이다.




김도균_sf[1].D-9_디지털 프린트_2005



박현두_Goodbye Stranger #04_디지털 프린트



박형근_Tenseless #16 Fallen cherries_디지털 프린트_2006


정연두를 비롯해서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국제적인 활동 베이스를 가지고, 사진 장르의 틀을 넘어 동시대 미술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사진의 패러다임에 충실한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은 지난 10년간 한국 사진계에서 주를 이루었다 할 수 있는 독일식 사진과는 다른 감성과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한국 사진의 새로운 지형도를 만들어가고 있는 작가들이다. 또한 이전의 사진 세대들과는 다른 메이킹 포토는 새로운 크리틱의 기준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관람객 또한 사진의 다양한 표현가능성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이번 전시 『PHOTO ON PHOTOGRAPH』에는 이들의 작품 중에서도 공간과 장소에 집중한 작품들로 구성되며, 현실과 사진적 재현의 경계에서 다양한 시각적 내러티브가 만들어지는 작품들이 등장한다.




백승우_Real World 02-67_디지털 프린트_2008



원성원_Dreamroom-Joerg_Lightjet_디지털 프린트_2002


『PHOTO ON PHOTOGRAPH』展에서는 마치 영화제작처럼 장소를 로케이션하고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정연두, 이질적인 환경에서 아웃사이더인 자신을 등장시키는 박현두, 은밀하게 감추어진 내러티브에서 알 수 없는 긴장감으로 관람객을 상상의 세계로 유도하는 박형근, 이상과 현실이 뒤섞인 세상 속에서 개인과 사회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백승우, 주변 인물들의 희망의 가상공간을 포토샵으로 합성하는 원성원, 실상의 공간을 가상의 장면으로 변화해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김도균, 사진의 재현행위와 매개물에 관한 관계를 담은 이명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명호_Tree #11_종이에 잉크젯 프린트_2005



정연두_Location 14_디지털 프린트__2006


이제 단순히 찍는 사진에서 벗어나 다양한 메이킹의 방법들이 등장한 사진들은 현대미술로서 사진의 표현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이번 전시에서는 국제적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선보이고 있는 한국의 젊은 아티스트들의 다양한 내러티브와 시각적 긴장감이 주는 새로운 사진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금호미술관

번호별로 보기
여러개의 게시물 정리 제목별로 보기 이름별로 보기 날짜별로 보기 조회별로 보기
1320     [re] 전시 9.7 2008/09/18 808
1319   전시 9.7 2008/09/07 983
1318     [re] 전시 8.31 2008/08/31 941
1317   전시 8.27 2008/08/27 1069
1316     [re] 전시 8.14 2008/08/16 641
1315   전시 8.14 2008/08/14 971
1314     [re] 전시 7.28 2008/08/08 710
1313   전시 7.28 2008/07/28 928
1312     [re] 전시 7.23 2008/07/23 690
1311   전시 7.19 2008/07/23 1048
1310     [re] 전시 7.11 2008/07/13 870
1309   전시 7.11 2008/07/11 1357
1308     전시 7.10 2008/07/04 816
  전시 7.2 2008/07/02 963
1306     [re] 전시 6.27 2008/06/28 667
1305   전시 6.27 2008/06/27 1098
1304   전시 2008/06/27 771
1303   전시 6.4 2008/06/03 961
1302   전시 5.14 [4] 2008/05/13 866
1301   전시 5.8 2008/05/07 935
  [1][2] 3 [4][5][6][7][8][9][10]..[68] ▶ 
Copyright 1999-2026 Zeroboard / skin by u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