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setta Stones
조재만展 / CHOJAEMAN / 趙在晩 / photography
2008_0521 ▶ 2008_0603

조재만_1,389,824 bits Landscape_디지털 프린트_90×90cm_2008
초대일시_2008_0521_수요일_06:00pm
Deciphering the Real version 1.5
관람시간_10:00am ~ 06:00pm
덕원갤러리_DUKWO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82.2.723.7771
www.dukwongallery.co.kr
Rosetta Stones - Deciphering the Real version 1.5 ● ‘소통’이라는 주제를 새롭게 통찰해 본 조재만 개인전 『Rosetta Stones - Deciphering the Real version 1.5』가 5월 21일부터 6월 3일까지 14일간 인사동 덕원 갤러리에서 전시된다. 서로 다른 공간의 존재들을 소통하게 만드는 도구는 바로 ‘언어’이다. 사람들은 언어를 번역해 전혀 다른 두 문화를 이해한다. 번역의 세계는 두 공간을 잇는 소통의 역할을 한다. 한편 발터 벤야민은 번역이 그 자체만으로 새로운 창조영역을 빚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차원에서 조재만 작가가 주시한 것은 현실세계와 디지털 환경이 만든 가상공간이다. 조재만 작가는 현실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디지털 환경으로 가져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찾는 노력을 보여준다.

조재만_1,116,048 bits Landscape_디지털 프린트_90×90cm_2008
이번 전시 『Rosetta Stones』는 두 공간간의 소통을 위해서 출발했다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미디어를 디지털 환경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관람 포인트는 디지털 환경으로의 번역과정이 또 하나의 세계로 어떻게 재창조 되는가? 일 것이다. 조재만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다.
“우리는 현실 세계를 언어와 시각으로서 듣고 보고 이해한다. 인간은 디지털 환경 또한 인간을 위해 시뮬레이션 된 인간의 언어와 인간의 시지각적 미디어에 의해 인지한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을 인간의 눈과 인간의 언어가 아닌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눈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0, 1’, ‘신호가 있고, 없고’의 두 가지 정보 즉 바이너리 코드에 의해 읽혀지고 정의 내려지며, 표현되고, 인식된다. 지극히 그들의 언어인 코드를 이용해서 드러내고,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이 작업은 진행되었다. 이 전시 속에서 등장하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언어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우리는 더 이상 인식할 필요가 없는 바이너리 코드를 관객에게 던져 주는 것으로 드러난다. 또한 디지털 환경에서 가능한 미디어의 변환, 음악이 그림이 되고, 문자가 이미지가 되고, 이미지가 다시 문자가 되는 일련의 과정들(remediation)이 인간의 시각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는 가능성을 시험한다. 이러한 과정은 번역과도 동일한 작업이다. 바이너리 코드를 읽어서 나에 의해 정의된 syntax에 의해 다른 미디어로의 재해석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을 통해서 이미지는 ‘0, 1’로 이루어진 Text가 되고, 그 Text는 다시 시각적 기호가 된다. 또한 글자가 픽셀이 되고, 소설이 이미지가 되어 인간의 시지각으로써 인식되어진다. 나는 이 전시에서 이러한 행동을 변역이라 지칭한다.” ■ 태은경

조재만_640,284 bits Landscape_디지털 프린트_147.3×45.7cm_2005_왼쪽
조재만_640,284 bits Landscape_디지털 프린트_147.3×45.7cm_2005_부분_오른쪽
번역은 두 가지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빠르고 편리한 방법이다. 또한 번역은 두 가지 다른 세상끼리의 소통에 관한 문제이고, 번역을 통한 소통은 소통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창조 과정이다. (Walter Benjamin, 「The Task of the Translator」)
● 현시점에서 보여지는 디지털 환경의 변화는 단순한 정보 전달과 공유를 넘어서, 현실과 비현실, 실제공간과 가상공간 사이에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으며, 새로운 소통가능성에 대한 연구와, 문화와 물질,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의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변화 가능한 번역의 필요성을 대두시켰다. 그리고 인간은 아날로그 시점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도구 - 언어에서 벗어나 디지털 환경에서 보여 지는 가상현실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현실을 이미지로 재현해 내듯 현실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을 디지털 환경 안으로 가져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가능성을 찾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조재만_906,688 bits Landscape_디지털 프린트_90×90cm_2008
이 전시『Rosetta Stones』는 두 공간간의 소통을 위해서 출발했다. 우리는 현실 세계를 언어와 시각으로서 듣고 보고 이해한다. 인간은, 디지털 환경 또한 인간을 위해 시뮬레이션 된 인간의 언어와 인간의 시지각적 Media에 의해 인지한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을 인간의 눈과 인간의 언어가 아닌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눈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 0, 1 ", "신호가 있고, 없고"의 두 가지 정보 즉 바이너리 코드에 의해 읽혀지고 정의 내려지며, 표현되고, 인식된다. 지극히 그들의 언어인 코드를 이용해서 드러내고,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이 작업은 진행되었다.

조재만_Newspaper Ⅱ_디지털 프린트_152.4×50.8cm_2006
조재만_Newspaper Ⅲ_디지털 프린트_152.4×50.8cm_2006
조재만_Newspaper Ⅴ_디지털 프린트_152.4×50.8cm_2006
이 전시 속에서 등장하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언어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우리는 더 이상 인식할 필요가 없는 바이너리 코드를 관객에게 던져 주는 것으로 드러난다. 또한 디지털 환경에서 가능한 미디어의 변환, 음악이 그림이 되고, 문자가 이미지가 되고, 이미지가 다시 문자가 되는 일련의 과정들(remediation)이 인간의 시각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는 가능성을 시험한다. 이러한 과정은 번역과도 동일한 작업이다. 바이너리 코드를 읽어서 나에 의해 정의된 syntax에 의해 다른 미디어로의 재해석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을 통해서 이미지는 "0, 1"로 이루어진 Text가 되고, 그 Text는 다시 시각적 기호가 된다. 또한 글자가 픽셀이 되고, 소설이 이미지가 되어 인간의 시지각으로써 인식되어진다.

조재만_Rosetta Stone I, II, III, V
나는 이 전시에서 이러한 행동을 변역이라 지칭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나온 산물은 번역 가능성에 의해 창조된 새로운 mediation, 즉 remediation이라 부른다. 현실 세계에서의 언어와 디지털 환경에서의 언어, 이미지라는 언어와 글자라는 언어, 음악이란 언어와 이미지라는 언어를 번역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현재 동시에 살고 있는 두 가지 세상, 현실 세상과 사이버 세상을 잇는 소통의 통로로 시각적 표현을 이용하고자 한다. ■ 조재만
-----------------------------------
工場_Factory
2008_0516 ▶ 2008_0817 / 월요일 휴관
구성수_울산시 용연동_디지털 프린트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일민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515_목요일_05:00pm참여작가 강상훈_구성수_백승철_이정록_장용근
관람시간_화~일_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관람료_일반 2000원 / 청소년 1000원
일민미술관 1, 2 전시실 ILMIN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세종로 139번지 Tel.
+82.2.2020.2055 www.ilmin.org
「일민시각문화」는 한국
시각문화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일민문화재단이 발간하는 시각문화총서입니다. 도시공간에서 애니메이션까지 시각문화의 정체성과 의미에 대해
총체적으로 되짚어 본 1권 『이미지가 산다』, 한국 근대 건축, 문화, 공간에 나타난 한국 근대의 정체성을 다룬 2권 『새마을』에 이어, 3권은
한국 산업현장을 시각적 이미지로 대상화한 시각문화서입니다. 이 시각문화서는 강상훈, 구성수, 백승철, 이정록, 장용근 등 5명의 사진작가들이
대중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 가내공장, 제조공장, 산업단지 등을 방문하여 찍은 900여 컷의 산업풍경을 담았습니다. 아울러 『工場』발간을 기해서
사진작업 일부를 보이는 전시를 마련합니다. 이번 『工場』발간과 전시는 공장지대의 시각이미지화를 시도합니다. ■ 일민미술관

강상훈_닭
도축가공공장_디지털 프린트_2007
시장골목 한 모퉁이에 자리한 닭 잡는 가게에서 파닥거리는 날갯짓 소리를 듣는
경험은 먼 추억 속의 일이 되어버렸다. 동네 방앗간 앞을 지나면서 맡았던 고소한 참기름 냄새도 이젠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번듯한 수퍼마켓에
가서 멋지게 포장된 상품을 선택하면 되는 환경으로 우리의 삶은 변화했다.

이정록_전방
광주공장_디지털 프린트_2007
농작물이나 묘목을 키우거나 물고기를 잡는 농어업이라든가 석탄을 캐는 광업이
우리생활의 중요한 경제생산 기반이었음에도 이것을 딱히 산업이라 칭하지는 않았다. 생활의 한 방편이자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대화시기에
들어서 경제발전의 필요성이 점차 확대되면서 일련의 생산시스템이 기계화, 대량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일정한 공동체들이 모인 산업단지, 화학단지
등이 형성되고 산업의 가속화가 이루어졌다.

장용근_마산제과_사진인화_2007
이를 흔히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이전이라 말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생산성 증가, 경제적 성취, 과학기술의
발전 등 많은 것을 얻었으나 한편으론 삶의 체취가 사라져가는 아쉬움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백승철_인천항 부두_디지털 프린트_2007
일민시각문화 2권 『새마을』이 건축물 중심의 근대생활이미지를 담았다면, 세 번째 일민시각문화 『工場』은 우리의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산업현장의 이미지들을 다루는 프로젝트이다. 이 작업은 내적인 의미만 담은 것이 아니라 미적인 가치를 지닌 산업풍경의
이미지들을 염두에 두고 이뤄졌다. 급변하는 산업현장 속에서 삶의 흔적을 찾는 것, 이는 곧 우리 자신을 알아가는 또 하나의 길이기도 하다. ■
김희령
------------------------------------
라이트드로잉_Light Drawing
박관택展 / PARKKWANTAECK / 朴寬澤 / drawing
2008_0515 ▶ 2008_0601 / 월요일 휴관

박관택_A subway_110분 노출_라이트 패널에 디지털 프린트_176×223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라이트박스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515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_02:00pm~08: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라이트박스_LIGHTBOX GALLERY
서울 마포구 상수동 93-29번지 지층
Tel. +82.2.6408.8011
www.light-box.kr
라이트 드로잉 (light drawing) 을 보기 위하여 갤러리를 찾은 관람객의 발걸음을 따라가 보자. 화창한 5월의 바깥 풍경을 뒤로 한 채, 지하로 향하는 서늘한 계단을 내려온다. 갤러리 라이트박스의 전시실은 깊은 어둠에 잠겨있다. 오랜만에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전시를 관람하게 된다. 벽면에 설치된 라이트패널에서는 불타오를 것 같은 실내의 풍경들이 붉은 빛을 내뿜고 있다. 그 이미지들은 시각적인 충격과 심리적 압박을 불러일으킨다. 박관택의 작품 역시도 홍보 자료에 실리는 작품사진만으로는, 전시장에서 직접 체험하게 되는 이미지의 강렬함을 전달하기 어렵다. 라이트 드로잉은 암흑 속에서 춤추듯이 움직인 불꽃의 흔적을 기록한 작품이다. 유쾌하기보다는 숭고하며, 물신적이기 보다는 제의적이다. 전시실의 어둠 속에서 그 화면을 마주하면, 강하게 자극받은 감성과 상상력을 통해 화면 속의 시공간으로 몰입되는 효과를 느낄 수 있다.

박관택_A classroom_90분 노출_라이트 패널에 디지털 프린트_105×135cm_2008
이미지가 일으키는 심리적 소용돌이에 휘말렸다가 풀려난 후에는 호기심들이 고개를 든다.
라이트 드로잉은 속임수가 공개되면 신비감이 사라지는 마술 상자가 아니다. 오히려 작업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때에, 그 과정에 개념들과 상상력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일단 라이트 드로잉을 감행할 특정 시간과 장소를 물색한다. 라이트 드로잉이 가능한 상황적 조건이 확보되면, 적당한 위치에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조리개를 연다. 필름에 긴 시간 동안의 빛의 흔적이 남도록 장 노출 (Long time exposure)을 이용한다. 광학적 요소는 별사진이나 야경사진과 다를 바가 없이 단순하다. 문제는 정해진 노출 시간 동안에 작가가 직접 라이터를 들고 움직이면서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박관택_A chapel_90분 노출_라이트 패널에 디지털 프린트_100×123cm_2008
라이트 드로잉이 회화적 재현이라는 점에 감안하여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에 치중하여 읽고자 할 때에, 여타의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는 달리 작가가 재현 대상들의 공간으로 직접 들어가서 작업을 행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비약적으로 말하자면, 마치 가상현실에서처럼 기존과는 다른 차원 속으로 뛰어 들어가듯이 시공간의 벽을 건너간다. ● 완성된 이미지로서의 작품은 분명한 재현 대상을 갖고 있다. 교실의 책상과 의자, 형광등과 칠판 등이 실제의 모습과 유사하게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 2차원적 재현과 환영의 오랜 미술사적 논의들을 언급할 수도 있다.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가 숙명처럼 지니고 이러한 고민들은 충분히 흥미롭지만 이 글에서는 길게 서술하지 않겠다. ● 쉽고 단순하게 이것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보통의 경우에 화가는 캔버스 뒤에 서서 화면 건너편에 위치한 대상을 그린다. 사진가도 마찬가지로 카메라 뒤쪽에서 렌즈 너머에 보이는 대상을 찍는다. 박관택이 라이터를 들고 그림을 그릴 때에는 렌즈 앞에 놓인 대상의 공간, 즉 화면 속으로 작가의 신체가 직접 껴들어 간다. 물론 작가의 몸은 어둠 속에 묻혀서 이미지 속에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곳에 작가가 있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 작가노트에서는, 이러한 속성을 대상, 작가, 화면이라는 3가지 요소의 “공간적 합일” 이라고 표현한다. 기획자의 입장에서 말해 보자면, 이는 3가지 요소의 공간적 합일일 뿐만 아니라 회화의 개념적 삼위일체라는 추정까지도 가능하다.

박관택_A hospital_30분 노출_라이트 패널에 디지털 프린트_100×123cm_2008
최근의 구상회화의 복귀라고 명명되는 현상들은 단순히 난해한 추상에 대한 반발만은 아닐 것이다. 재현의 대상을 선택하는 것은 무엇을 그리느냐라는 원론적 고민에 대한 응답이다.
박관택이 채택한 공간은 지하철, 중고등학교의 교실, 교회, 병원과 같은 공공의 장소들이다. 대부분 밝은 낮 시간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지만, 깊은 밤중에는 인적이 끊긴 채로 폐쇄되어 있는 곳이다. 박관택은 그 장소에 숨겨진 이면을 극적으로 연출해 보여준다. 익숙한 대상에게서 낯설고 기이한 면모를 발견하면 강렬한 심리적 반응이 일어난다. 생경함, 혹은 언캐니 (uncanny) 라는 단어로 형용되는 이런 감정 작용은 현대미술이 추구한 독특한 미감 중의 하나이다. 박관택은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재고”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기묘하게 아름다운 형식으로 전달되는 시각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무의식을 파고들어 동요시킨다. ● 그러한 동요에 크게 한몫을 거드는 것이 바로 드로잉의 표현적인 성격이다. 불꽃의 강약과 선의 유동적인 흐름은 드로잉 특유의 자유분방함을 지니고 있다. 드로잉이라는 행위는 기계적인 재현과는 달리 작가의 고유한 제스처가 한껏 포함된다. 르네상스에서 아카데미로 이어지는 시기에 수공예적인 노동과는 다른 회화의 인문학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강조되었던 것이 바로 드로잉이다. 사람들은 드로잉에 작가의 정신성과 표현력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왔으며, 그것은 그림을 그린다는 자의식의 신화로 연결된다. 박관택의 라이트 드로잉 또한 우연과 즉흥과 같이 조절할 수 없는 변수들을 수용하며, 다듬어지지 않은 매력을 분출한다.

박관택_A kindergarten_70분 노출_라이트 패널에 디지털 프린트_32×40cm_2008
라이트 드로잉이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결과를 남겼다는 점에 착안하여 읽고자 할 때에, 이 작품이 지니는 지표(index)적 성격에 대해 거론할 수 있겠다. 이러한 시도를 라이트 드로잉이라는 작품을 미술 분야 중의 하나인 사진이라는 장르로 한정 짓겠다는 의도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은 재현 대상을 표상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며, 기록된 시공간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80년대 이후 비평계에서는 사진 매체는 대상을 매개하는 방식 자체 언어적 텍스트나 재현적 회화와는 다르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큰 호응을 얻는다. 미술의 기호학자 찰스 퍼스의 분류체계에서 물질적인 현존의 흔적으로 남겨지는 지표에 대한 관심이 부각된다. 빛의 흔적으로서 남겨지는 사진은 모닥불의 자취로서 남겨진 연기, 걸어간 사람의 존재를 증명하는 발자국 등과 같이 대상의 존재를 보증하는 물질적인 관계를 지닌다.

박관택_A bus_70분 노출_라이트 패널에 디지털 프린트_32×40cm_2008
라이트 드로잉은 텅 빈 백지 위에 의자들과 유사한 형태의 선들을 그려나가는 드로잉과는 달리, 현실의 시공간에 존재하는 의자들의 윤곽선을 따라서 더듬어간 흔적이다. 비록 필름 위에 남겨진 빛의 흔적 자체가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환영이긴 하지만, 대상과의 관계가 외양적 유사성보다 더욱 직접적인 물질적인 접촉 관계를 토대로 하고 있다. 의자를 극사실적으로 그려낸 회화와 카메라로 찍어낸 사진을 비교해보면, 결과물은 서로 비슷할 수 있으나 의도나 작업과정을 포함한 여러 가지 차원에서는 확연히 다르다. 라이트 드로잉은 그러한 차이 사이로 틈입하여 개념의 유희를 펼친다. ● 라이트 드로잉은 그 시간, 그 장소가 존재했음을 기록하며, 동시에 그러한 시공간 속에서 드로잉을 행한 작가의 존재를 증명 한다. 작가는 밀폐된 암흑의 공간을 무대 삼아서 1인극을 펼치는 배우처럼 움직여나간다. 박관택은 이 과정을 “어둠 속에서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탐험의 과정이며, 공공 공간을 잠시나마 사유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경험”이라고 고백한다. 결과물로 남겨진 한 장의 이미지는 작가의 신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일종의 퍼포먼스의 흔적이다. 라이트 드로잉은 입체도 아니고 동영상도 아니지만, 그것을 통하여 실존하였던 공간과 시간과 물질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다.

박관택_A studio_90분 노출_라이트 박스에 디지털 프린트_104.2×129.6cm_2007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의 강렬한 시각적 인상은 정서적으로도 강한 호소력을 지니지만, 단지 지금 눈에 보이는 것 외에도 생각해볼 거리가 많다. 박관택이 다양한 개념의 교차로의 한 가운데에 자신의 위치를 점하고서 작업을 진행해 간다. 갤러리 라이트 박스라는 이름은 인화에 앞서서 필름을 라이트박스 위에 올려놓고 보듯이, 자기 작업을 시작하는 단계의 작가들을 미리보기 해보자는 취지를 지니고 있다. 이번에는 박관택의 작품을 맞이하여 블랙박스가 되는 셈이다. 기대되는 작가와 함께 하기에, 빛상자는 기꺼이 암흑상자가 될 것이다. ■ 갤러리 라이트박스
-----------------------------------
Reflective surface
이지현展 / LEEJIHYUN / 李智玹 / painting
2008_0515 ▶ 2008_0612

이지현_Erecthion+Jeju Studio_캔버스에 유채_227.3×182cm, 227.3×146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60630b | 이지현 회화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515_목요일_06:00pm
아라리오 서울_ARARIO SEOUL
서울 종로구 소격동 149-2번지
Tel. +82.2.723.6190
www.ararioseoul.com
아라리오 서울에서는 전속작가 이지현의 개인전 『Reflective surface』를 준비하였다. 성신여대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이지현은 선컨템포러리 갤러리(2006), 아라리오 베이징(2006), 두아트 갤러리(2005)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으며 이번 아라리오 서울 전시는 그의 여섯 번째 개인전이다. 이지현은 유명 특정 장소와 사적인 사물, 공간을 결합시켜 뛰어난 색채 감각과 공간 구성의 기량으로 평면 위에 의식의 서사구조를 만들어 낸다. 이번 전시는 시원한 구성, 색감에 더하여 시선과 공간의 확장을 꾀하는 페인팅과 설치, 드로잉이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이지현_Smithsonian+Rm 4_캔버스에 유채_182×227.3cm_2007

이지현_Smithsonian+Rm 2_캔버스에 유채_162×200cm_2007
이지현의 페인팅에는 어디선가 본듯한 익숙한 공공 장소가 사적인 사물 혹은 공간들과 섞여 드러난다. 고대 그리스 신전에는 제주도의 풍광이 펼쳐지고 스미소니언 박물관에는 화려한 장신구와 코끼리가 출연하는가 하면, 모마 미술관의 벽은 어느새 작가의 작업실로 뒤바뀌고 아라리오 서울 공간은 가정집 거실로 이어진다. 특정 공간의 아우라로 기억된 잔상은 익숙한 주변 사물 혹은 풍경과 얽혀 불현듯 기억을 쓸어버린 듯한 느낌을 주는데, 다층적 시공간의 얽힘은 논리 정연하지 않은 파편적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고는 마침내 자연스러운 시선과 의식의 흐름에 동조되어 기억의 아우라가 분열될 즈음 바라보는 자의 시선에 의문을 던진다. 당신은 펼쳐진 기억속 풍경의 당사자인가 아니면 갤러리 속 거실의 주인공인가? 시선의 주체인가 혹은 주변인인가?

이지현_MoMA+Rm 3_캔버스에 유채_200×162cm_2008
이지현의 작품이 이끄는 이러한 시선 게임은 자연스럽게 시공간을 넘나들며 무심히 펼쳐지는 공간 속 공간 구조에서 비롯된다. 편집된 다중의 풍경에 동조되어 그림 속 주체가 되려는 순간 관람객은 그림 밖 타자가 되어 겹쳐진 공간 어딘가에서 한없이 소급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지현은 자신만의 노련한 시각기호를 평면 위에 구성하여 바라보는 관람객의 시선을 무덤덤하고도 세련된 제스츄어로 반사한다. 그리고 아주 간단히 주체와 객체의 줄타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그 과정의 귀추는 이번 전시 제목인 『Reflective surface』의 중성적 암시처럼 관람객의 몫으로 맡겨진다.

이지현_MoMA+Studio 5_캔버스에 유채_200×162cm_2008
이지현은 시원한 색감각과 뎃생력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뚜렷이 드러내는가 하면, 때로는 은밀하고 사적인 일기장처럼 숨길 줄도 안다. 이번 아라리오 서울 전시에는 탄탄하게 정제된 회화작품이 과감한 의식의 서사를 엮어가는 한편, 전혀 다른 스타일의 빠른 붓터치의 캔버스 드로잉과 설치가 은유적으로 작품세계를 연결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끝없이 펼쳐지는 시선과 공간의 게임 속에서 평면회화만이 제시할 수 있는 ‘보는 것’의 확장과 그곳에서 파생된 ‘보는 방식’의 세련된 표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 아라리오 서울

이지현_Colosseum+Dressing Table 3_캔버스에 유채_162×227.3cm_2007

이지현_Café CeciCela+Rm 1_캔버스에 유채_130.3×193.3cm_2007
---------------------------

---------------------------------
박정흠 展
'Shallow
river'

지도에 없는 강 - 사진, 디지털 인화 2008
2008년 5월
14일 ~ 5월 19일
갤러리 PICI
[약도보기]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122-22 전화 547-9569 팩스 3443-5649
www.galeriepici.com

지도에 없는 강 - 사진, 디지털 인화 2008
Shallow River : 흔적들, 틈들, 우리 사회의 간극(間隙)에 대한 사유
작가 박정흠의 현재의 테제는 '흔적'을 통한 '간극(間隙)에 대한 사유하기'라 할 것이다. 그는 대지를 관통하며
흐르는 수많은 강들을 대지의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주목하는 이 '흔적'은 우리의 삶의 터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콘크리트, 대리석,
유리 구조물 등 치밀한 법칙에 의해 구축된 이 육중한 덩어리들의 '균열'들 역시 포함하고 있다. 그의 '흔적'들에는 사적인 아픔과 사회 비판적
정신이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기쁨의 환호성과 아픔의 눈물을 간직하고 흐르는 저 강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통한 사유이며, 두 번째는 우리사회의
모순적 태도와 행위들에 대한 비판의식들로 개발지상주의에 함몰되어 경제발전과 환경파괴 사이를 비례관계로 파악하는 이 사회의 이해관계에 대한
비판의식이다.
작가의 이전 작업은 사물과 그 틈을 모두 하나의 덩어리로 묶어 보여주는 형식이었다. 입체물로서 공간을 점유하며
물질공간과 비물질공간과의 상호 긴밀한 교섭관계를 보이려는, 다시 말해 인위적으로 파괴시킴으로써 틈을 형성시킨 후 파편화된 물질들 틈새의 각기
다른 조형적 특성을 가시화시키면서 그 파편화된 물질의 형태와 틈이 형성된 상황을 모두 재현해 보이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현재 작가의 작품은
선조형적 작품과 비인위적인 자연적 균열 상태에 안료를 채워 넣음으로써 공간을 구성하는 작품을 병행하고 있다. 그의 방식은 물질공간의 최소점유를
통해 비물질 공간을 더욱 더 적극적으로 끌어내어 조각의 적극적 요소로 기능하게 하며, 비물질공간의 재현적 조각 또는 추상 조각의 범주를 벗어나
있는, 환경과 작품이 하나로 융합하는 장소-특정적, 장소-특수성(site-specific)의 조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의 조각은 환경의
상황에 따라 가변적으로 형성되는 환경조각처럼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곳의 상황에 따라 그의 행위는 차이를 보이며, 공간을 새롭게 구성하여 우리의
공간인식을 새롭게 한다.

1단계 - 철판에 스케치

2단계 - 플라즈마로 절단 후

만남 - 철 아크릴, 투명코팅, 130×86cm 2008

역사는 흐른다 - 철, 금박, 에나멜페인트, 125×113cm
2008
작가는 지도에서 캡처한 강줄기들을 철판 위에 새긴 후 플라즈마로 드로잉하듯 오려내어 강의 이미지를 얻어내거나 또는 대지를 뒤덮은 굳센
아스팔트 표면, 시멘트 표면의 균열들에 안료를 흘려 넣음으로써 새로운 강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오려낸 형태 위에 채색을 한 후 상징물을
중심으로 강 이미지를 재배치한다. 작가는 가는 강줄기를 사회의 상부구조, 굵은 줄기를 하부구조에 비유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가 차용하는
십자가와 숭례문의 상징은 하부구조에서 상부구조로 또는 그 역으로의 이념의 확산과정에 대한 표현으로, 국가통치이념의 수직적 전파의 시간보다 신앙의
수평적 확산의 속도는 통치의 억압에서 벗어나고픈 민초들의 열망만큼 더욱 빠르게 퍼져나갔음에 대한 상징이다. 그리고 작품 <화합>은
남북한의 하류가 먼저 만나 상류로 흐르며 하나의 거대한 강줄기를 이루는 형상이다. 이 형상이 뜻하는 바는 세계정세의 변화에 따라 남북한의
긴장관계는 극단적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하류의 염원은 변함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철강(鐵江) - RED - 슬라이드 센서 설치 2008

Cross - New Heart - 철, 금박, 에나멜페인트, 132×115cm
2008

New Heart - 철, 차량도색, 70×70×70cm
2008

River story - 철, 금박, 에나멜페인트, 82×88×196cm
2008

riverside - 철, 에나멜페인트, 91×60cm
2008

shallow river - 사진, 디지털 인화 2007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다시 되돌아보는 것들이 있다. 지금 우리의 터전은 시멘트블록과 아스팔트 덩어리들로 뒤덮여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있다.
쾌감을 만끽하기위한 공간은 점점 늘어나 생활공간자체가 놀이공간으로 대체되는 이 환경에 잠깐이라도 안식과 평온을 찾으려는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들은
갈 곳을 잃어버리고 개발이 제한된 깊은 산과 강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때서야 우리는 언제나 우리를 굽어보는 산과 유유히 흘러가는 저 도도한 강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거대하고 도도하게 흐르는 저 산하는 그저 묵묵히 대지의 모든 것들이 움트고 생장하며 이내 사라져가는, 존재의 순환과
유한성의 법칙을 바라보며 우리 곁에 늘 있어왔으리라. 우리의 삶의 방식을 가르치면서. 그가 작품을 통해서 전하는 메시지를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필요이상의 개발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르게 됨을 강의 역사, 자연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왔음을 상기해야한다는 것. 둘째로 이제 상부구조로부터 이뤄진 모든 계획들에 의해 하부구조가 결정되어야 한다는 의식은 쓸모없는 과거의
유산이다. 개선된 미래를 위해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는 하나의 긴밀하게 짜여진 수평적구조로 변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조화가 깨지는 그 때, 우리는
또 다시 역사의 강(江)이 일으켜짐을 지켜보게 될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 황찬연(CUBEspace 큐레이터)
--------------------------------------
그곳에선 가능한 일들
The Other Side of the Moon
책임기획_곽현정
2008_0509 ▶
2008_0601
그곳에선 가능한 일들 The Other Side of the Moon - 이유진_최원정_허정은展
초대일시_2008_0509_금요일_06:00pm오프닝
퍼포먼스_2008_0509_금요일_07:00pm
참여작가 이유진_최원정_허정은
주최_갤러리
팩토리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_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팩토리_GALLERY FACTORY 서울 종로구 창성동 127-3번지 Tel. +82.2.733.4883 www.factory483.org
5월 9일부터 6월 1일까지 갤러리 팩토리에서 열리는 〈그곳에선 가능한 일들〉전은 1990년대 이후 오랫동안 미술계의
가장 큰 화두였던 ‘일상’의 틀에서 약간 비켜나 익숙한 일상의 이면에 숨겨진 개인적 감성들을 마술적인 분위기와 초현실적인 이미지들로 풀어낸 세
명의 젊은 작가들을 소개한다. 전시에 참여한 이유진, 최원정, 허정은은 각각 회화와 설치, 영상이라는 매체를 사용하여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풍부한 상상력과 평범한 일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닌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
1990년대 이후
미술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다루어진 화두 중 하나는 ‘일상’이다. 어떤 이는 이를 모더니즘의 실험정신이 예술의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결과로 해석을 하고 어떤 이는 거대하지만 공허한 담론들에 대한 반발로 사적인 영역의 풍경 속에서 삶의 가치를 재인식하려 했던 예술가들의 시도로
설명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예술의 주제가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어떤 것들로부터 손에 잡히고 눈으로 확인되는 지금 이 순간, 여기 이곳으로까지
경계를 넓혀 안착했다는 사실이다. ● 달의 저편,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그리움 생활 속의 익숙하고 사소한 이미지들을 통해 예술적 의미를
생산해내는 일상성의 매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그런데 그 일상이나 현실의 이면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갤러리 팩토리의 본 전시는 일상적인 삶의 그늘
속에 깃들어있는 개인적인 감성들을 마술적인 분위기와 초현실적인 이미지들로 풀어낸 젊은 세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의 작업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어떤 특정한 사건이나 상황에 기반하고 있기 보다는 기억이나 꿈과 같이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하는 지점의 심리적 풍경들을 그려낸다. ●
그러나 이들 작가들이 내면 세계의 표출에 대한 과다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거나 현실과 완전히 괴리된 어떤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작품은 작가 개인이 일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며, 현실적 소재에 더해진 풍부한
예술적 상상력으로 현실과 초현실의 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일상 속에 무뎌진 감각들을 일깨우는데 주의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진_Landscape_캔버스에
유채_116×90cm_2006

이유진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90×116cm_2007

이유진_Portrait of two
children_캔버스에 유채_72×50cm_2008
이유진은 유화라는 가장 전통적인 매체를 통해 현실과 상상이
교묘하게 얽혀있는 마술적 사실주의를 보여준다. 그의 작업 방식은 어떠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거나 드로잉 과정을 거치지 않고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당시의 감정과 기분에 몰입한 채 떠올려진 이미지들을 형상화하고 지우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조합해나가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화면 속 공간은 지극히 구체적으로 묘사된 사물과 풍경들로 채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어젯밤 꾸었던 꿈 속처럼 아득하다. 그러므로 작품에서의
새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작가에게 묻거나 해석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이성의 법칙이 통하는 보편적인 가치와 의미들에서
벗어난 그 모호함을 통해 작가는 개인적인 기억, 감정들을 관객 스스로 환기시키게 하고 이를 통해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 작업 방식에
있어서는 허정은 역시 이유진과 유사한 점이 있는데 그는 붓이나 연필로 직접 그린 이미지들과 오래된 잡지, 과학책이나 의학 서적 같은 데에서
발견한 그래프, 사진 등을 수집한 후 그 이미지들을 컴퓨터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자르고 붙이고 섞는 콜라주 작업을 통해 작품을 완성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인 꿈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꿈 꾼 후의 잔영들을 묘사한 노트를 만들 만큼 그에게 있어 ‘꿈’은 중요한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다. 상관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서로 부딪히고 화합하며 이루어내는 뜻밖의 상황들을 통해 꿈 속의 공간을
형상화하는 것이다.

최원정_당신이 기다리는 동안_디지털 애니메이션,
거울설치_가변크기_2008_스틸컷 부분
영상 설치를 선보이는 최원정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간의 흐름이
멈춰진 ‘정지’의 상황이다. 그는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 보았음직한 그러한 마술적 장치 속에서 언제나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일상의 시간
속에 희석된 개인의 기억, 억압된 정서 등을 일상의 사물들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화면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얼핏 시간 속에 박제된 것처럼
보이나 우리가 지켜보지 않는 사이 슬금슬금 자리를 옮기거나 느린 속도로 호흡하고 있다. 영상의 이미지가 투영된 바닥과 벽면의 거울들은 영상 속
가상 공간의 연장인 동시에 전시장의 공간이 되어 현실과 비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형성한다.

허정은_Untitled_디지털
프린트_가변크기_2008

허정은_Untitled_디지털
프린트_가변크기_2008

허정은_Untitled_디지털
프린트_가변크기_2007
사람들은 지구에서는 영원히 볼 수 없는 달의 반대편에 대한 환상을 품어왔다. 아폴로
우주선이 가져온 사진 한 장으로 그 환상은 깨진 지가 오래되어버렸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감성 속에 존재한다.
환상에 대한 기대를 망상이라 단순히 매도할 수 없는 까닭은 우리가 그것이 환상임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초현실적인, 마술과 같은 일들이 매력적인 까닭은 그것들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현실 세계에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
가치에 매몰된 현대사회에서 예술적 상상력이 갖는 의미는 그런 의미에서 다시금 되새겨볼 만하다. 달은 뒷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오늘 밤도 그
자리에 떠 있다. ■ 곽현정
-----------------------------------
들판에서_On the Plain
손영호展 / SONYOUNGHO / 孫英鎬 / photography
2008_0515 ▶ 2008_0528

손영호_들판에서_디지털 프린트_16×12inch_2008
초대일시_2008_0515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_01:00pm ~ 06:00pm
대안공간 건희
ALTERNATIVE SPACE GEONHI
서울 종로구 종로6가 43-3번지
Tel. +82.2.554.7332
www.geonhi.com
봄이 시작하는 시간. 자연 풍경은 얼마나 아름답고 풋풋한지 모릅니다. 겨우내 잠들어있던 들판에서 고개를 내미는 형형색색의 꽃들은 우리의 잠들었던 시선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화려한 생동의 시기. 작가는 인고의 시간 동안 퍼석하게 말라있던 식물들과 차디찬 공기를 묵묵히 버텨낸 돌멩이들을 보여줍니다. 눈길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했던 소재들을 향해 작가는 새로운 생명의 시선을 던졌습니다. 하나하나를 선택하고 조명을 비춤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그들에게 심어놓은 것 입니다. 오랜 시간 광고 디지털 사진을 연구해온 작가의 바라봄은 참아야만 했던 하찮은 존재를 통해 새로운 사유를 권유합니다. 이제 일상의 보석이 보여질까요? ■ 대안공간 건희

손영호_들판에서_디지털 프린트_16×12inch_2008
1. 2007년 겨울 아파트에 대통령후보들의 얼굴이 붙었다. 굳이 여론조사 따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누가 대통령이 될지는 뻔한 일인데도 연일 뉴스에는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후보들 사진에 겨울 햇살이 비추고 무심하게 지나는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왜 출마했느냐고... 혹시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승산이 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는 나와 그들은 서로에게 잠시 연민의 감정을 가진 듯 했다.

손영호_들판에서_디지털 프린트_16×12inch_2008
2. 원판 불변의 법칙! ... 이른바 출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3월에 접어들면서 여기저기 꽃소식을 따라 촬영을 다닌다. 예쁜 꽃들은 대충 찍어도 아름답다.

손영호_들판에서_디지털 프린트_16×12inch_2008

손영호_들판에서_디지털 프린트_16×12inch_2008
3. 자유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오는 중 제법 넓은 들판위로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 풍경을 담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마른 겨울 풀들이 쓰레기처럼 쌓여 있었다. 결국 저녁노을을 등지고 말라비틀어진 호박을 찍기 시작했다. ■ 손영호
-----------------------------------
복수할거야_I'll take revenge
구명선展 / KUMYUNGSUN / 具明宣 / painting
2008_0514 ▶ 2008_0601 / 월요일 휴관

구명선_복수할거야_종이에 연필_43×31cm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175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51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_화~일_12:00pm ~ 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175_GALLERY 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번지 안국빌딩 B1
Tel. +82.2.720.9282
blog.knua.ac.kr/gallery175
少女-되기 ● 성년이 되고나서도 미성년의 얼굴을 하고 있는 종족들이 있다. 그런 종족들은 대개‘나’라는 밀폐된 방이 보장하는 보호고치(protective cocoon) 속에서만 유영하고, 친구와 공유하는 균질화된 감정적 공간에서 닫힌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할 뿐, 그 이상의 인간관계는 배제한다. 검고 긴 머리카락, 가느다란 목선, 움푹 패인 쇄골, 그리고 별처럼 부서지는 눈동자. 사각사각, 종이 위를 스치는 연필촉에 의해 탄생된 구명선의 소녀들은 아름답지만, 무심한 표정으로 〈복수할거야〉라고 중얼거리는 독기(毒氣)를 품고 있다. 주민등록증을 취득한 지 한참 지난 합법적인 성인임에도,“나는 탐미적인 소녀감성으로 살고 있는 보통의 소녀이며 스스로 자신을 만들지 못하고 수많은 소녀들 사이에서 나의 색깔을 갖고 있지 않은 평범하고 보편적인 인간형이다”라고, 스스로를‘소녀’로 위치지우는 구명선은 망가 속의‘少女-되기’놀이를 통해 자기상을 그려왔다. 생리학적 의미에서‘소녀’는 인류이래로 있어 왔지만, 유럽에서‘어린이’라는 개념이 18세기의 산물이듯이, 사회적인 의미에서‘소녀’는 근대에 탄생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일본의 소비문화를‘소녀’라는 기호를 통해 계통적으로 분석한 오츠카 에이지 大塚英志는 1970년대 이후의‘소녀’를 근대 오락문화의 대두와 더불어 출현한 사회적 카테고리로 해석한다. 생산형 사회에서 소비형 사회로 전환한 근대 이후, 여성도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열렸고, 월경을 맞이하여 어른의 단계에 오를 권리를 얻은 뒤에도 어른이 될 수 없는‘소녀’가 탄생한 것이다.‘소녀’는 성인여성이 되기까지의 모라토리움(moratorium) 기간을 갖는 기한한정의 존재이기 때문에 매혹적이다.

구명선_당신의목을조르고있는손을놓지마세요_종이에 연필_150×89cm_2008
유치원 시절 낙서에서 시작된 구명선의 망가취향은 소녀망가 탐닉으로 이어졌다. 구명선의 노트북을 본 사람이라면, 자판 하나하나에 종이를 붙여 갖가지 표정을 입힌 그 귀여운 소녀취향이 다소 병적인 것을 눈치챌 수 있다. 학부시절 작업한 〈너의 눈은 반짝이는 별같아〉(2004), 〈대일밴드〉(2004), 〈봄날은 간다〉(2004〉 등은 인물의 표정에 대한 집착이 유별난데, 마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인물을 가져오는 느낌마저 든다. 유화나 아크릴을 사용한 이 시기 작업에서는 아니메, 망가, 소녀용품 등에서 귀여운 이미지나 스타일을 차용하여 우리안의 어린애성에 대한 집단적인 소망을 체현했던 무라카미 다카시, 나라 요시토모 등의 영향이 짙게 나타난다. 소녀의 개방밀실은 성역이고, 그 속에서‘소녀’는 세계에서 격리되어 귀여운 것들과 스스로를 일체화하고‘귀엽고 순진무구한 나’라는 이미지에 대한 자기투영을 추구하게 된다. 구명선의‘소녀-되기’의 초기과정은‘귀여운 나’라는 망가 속의 소녀와의 동일화에 빠져 있는 상태인데, 푸른색으로 이중자아를 그린 〈연기〉(2004)에서 자아분열증적 징후를 드러낸 이후, 구명선의 소녀들은 웃지 않는다.

구명선_누군가날보고있어_종이에 연필_43×31cm_2006
캐릭터의 발명 ● 구명선은 2006년부터 자신의 정체성이‘少女-되기’에 연루되어 있음을 의식하며, 자신이 경험한 현실 속의 상황에 걸맞는 모델을 자신의 사적 서사 속에 배치하여 자신만의‘少女考’를 장면화한다. 작가는 잡지나 인터넷 게임, 카달로그에서 샘플링한 여성 이미지를 컷업하여 자신의 감정에 가장 잘 부합되는 망가 속 소녀 이미지로 덧코드화(overcoding)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캐릭터를 생성시킨다. 사회학자 미야다이 신지 宮台眞司는 고도정보 사회로 진입하면 소녀문화가 젊은이 문화로 흡수되면서 소녀적 질서는 쇠퇴하고‘소녀’라는 말도‘젊은이로서의 여자아이’라는 말로 대체되며, 소녀를 일탈한 여자 아이들은‘나다운 나찾기’를 지향하는 태도를 보인다고 말한다. 이러한‘나찾기’는 자신이나 자신을 둘러싼 주위의 모든 것을‘~와 같은’일정한 주관적 색채에 의해 통일적으로 물들이며,‘자신과 세계의 낭만화’를 추구하는데, 이와 같은 낭만 지향성은 소녀망가에서 차용한 나다운 나의 모델을 자신으로 치환하여 수용하는, 이른바 관계성 모델찾기로 변형된다.

구명선_엄허!1_종이에 연필_79×41cm_2008
구명선의‘소녀-되기’는‘망가소녀와 같은 나찾기’라는 자기발견적인 의식 행위이다. 무수한 선긋기와 지우기, 문지르기를 반복하는 입시 소묘기법으로 흑백사진의 미드톤, 섀도우, 하이라이트 효과를 낸 연필 드로잉 기법은 작가의 신체에 깃든 감정이 화면 속의 소녀의 신체에 스며들어 감정적 밀도를 고양시키는 효과가 있다. 특히, 어두운 바탕 위에 미디엄 샷으로 드러낸 소녀의 신체를 에워싼 희미한 영기(靈氣)는 불안정하고 유약한 소녀의 부유감과 하나의 장면을 위해 태어난 가상존재로서의 환상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내가 걷는 게 걷는 게 아니야〉(2007), 〈난 아직도 어린가봐〉(2007), 〈태양을 피하고 싶었어〉(2007) 등은 노랫말에서 따온 시적인 대사로, 적요한 슬픔, 실연의 상실감에 휘청이는 애처로움, 기약없는 그리움, 서글픈 자기연민, 잊혀지지 않는 옛사랑의 기억 등 작가자신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감정상태를 전달하고 있다. 망가소녀 캐릭터들은 그날의 장면에 맞는 의상을 걸치고 그날의 감정에 어울리는 표정을 짓고서 극적인 순간에 처한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

구명선_돈좀있어?_종이에 연필_43×31cm_2006
구명선의 소녀 캐릭터가 일본 서브컬처 계열의 소녀와 다른 점은 단순히 맑고 순수한 이미지의 소녀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가장 잘 담아내는 서정적 기호로써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상처받기 쉬움, 혼자 버려진 듯한 고립감, 상실감과 그리움에 침윤되는 시기인 소녀(소년)기에 우리는 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감정적 상태에 예민해지고 자기자신과 가장 가까워진다. 어쩌면 구명선의‘소녀-되기’는 자기다움을 잃고 사회시스템에 맞춰 기능적 인간으로 변모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치열한 경쟁사회의 어른-되기를 의도적으로 지연하는 나름의 변신술인지도 모른다.

구명선_아직도 밖은 어두운 밤인가봐_종이에 연필_79×54cm_2007
단지 사소한 감정 ● 미디어믹스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영화나 드라마, 뉴스, 인터넷, 잡지 등에서 자신이 매력을 느끼는 캐릭터를 소비하고 그 캐릭터의 단편적 씬을 수용하여 자신의 관계성 모델을 설정한다. 망가, 아니메, 게임 등의 캐릭터 또는 인기 연예인 등을 향한 허구적인 욕망을 지칭하는‘모에 萌え’현상은 일본문화의 포스트모던적 풍경만은 아니니다. 특정한 캐릭터에‘열광하는 萌える’사람들은 모에욕망을 환기시키는 요소들을 조합한‘모에요소’에 매료되어 감정이입을 한다. 구명선 역시 망가소녀적 모에요소(흩날리는 긴 머리카락, 가냘픈 목선, 새침한 입매, 오만한 턱선)를 감정을 발현할 장치로써 전유하여, 일상에서 건져 올린 감각적인 제목으로 자신의 감정을 극화한다.

구명선_용감해질꺼야_종이에 연필_79×54cm_2008
구명선의 망가소녀 캐릭터(시뮬라크르)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커다란 이야기가 사라진 이후, 단지 사소한 감정이입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병리적 징후를 반영한다. 등 뒤에 꽂히는 시선을 온몸으로 감지하는 소녀 〈누군가 날 엿보고 있어〉(2006), 자신을 야리는 시선을 정면으로 맞받는 소녀 〈질 수 없어〉(2006), 가느다란 담배 한 대로 상대를 조소하는 소녀 〈돈 좀 있어?〉(2006). 자신의 미성숙한 자아를 전면화하는 구명선의 소녀들은 허위자아들(pseudo-selves)의 가면을 빌어 다중인격체로서 개인의 상을 연출하며 사회시스템에 복속되기를 주저한다. 타인에게 끊임없이 전시중에on display 있는 삶을 살아가는 지금의 개인들은 다중인격적인 분열적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반짝!〉(2007), 〈훌쩍...〉(2007), 〈엄허!〉(2008) 등에서 보호본능을 한껏 자극하고 있는 연약한 캐릭터는 눈물을 모아 만든 인형처럼 타자의존적이면서도 병적으로 자기도취적이다. 크리스토퍼 래쉬에 따르면, 자기도취는 병리적인 것이지만 현대적 자아가 현대 세계의 위협적 본질에 적응하는 하나의 방어기제이다. 구명선의 자기도취적 캐릭터는 우리 시대의 음울한 상황에 대한 방어기제로써 자신만의 은신처에 도피하는 현대인의 자아상일 수 있다. 단지 사소한 감정‘속’에서만 서식하는 구명선의 캐릭터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당신, 〈당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그 손을 놓지 마세요〉 ■ 김정복
--------------------------------------------------
욕망의 주체로서의 살
이유진展 / LEEYOUJIN / 李有珍 / sculpture
2008_0507 ▶ 2008_0521 / 월요일 휴관

이유진_A Deadly Weapon_황동에 합성수지 채색_50×147×54cm_2008
초대일시_2008_0507_수요일_06:00pm
갤러리 스케이프 기획展
관람시간_월~금_10:00am∼07:00pm / 토~일_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스케이프_GALLERY skape
서울 종로구 가회동 72-1번지
Tel. +82.2.747.4675
www.skape.co.kr
욕망의 주체로서의 살 ● 이유진은 그간 〈변성하는 살〉이라는 타이틀로 인체와 금속의 접목을 독특한 조형적 미감으로 선보여 왔다. 매끈하고 부드러운 몸에서 도출된 날카로운 금속 뿔과 피부에 들러붙은 대형 금속 파리 등 그의 조각에서 두드러지는 금속성은 몸의 경계를 파괴하며, 몸을 이질화한다. 등에 돋은 뿔은 위협적이고 커다란 파리는 혐오스럽지만 이유진의 조각은 전체적으로 매혹적인 분위기를 낸다. 이는 섬뜩하고 위협적인 요소가 여성의 몸과 결합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이유진_A Deadly Weapon_황동에 합성수지 채색_50×147×54cm
이질성이 융화될 수 있는 장소인 여성성에 대하여는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공격적이고 강인한 모습의 여주인공은 몸속에 있던 괴물의 유충으로 인해 ‘에이리언’을 출산한다. 그 후 그의 몸은 괴물의 유전자를 일부 가지게 되면서 금속을 몸속으로 녹이는 등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 〈에이리언〉은 힘, 권력, 시선 등으로부터 약자인 여성이 전사로 등장하고, 공포의 대상인 이질적 존재를 생산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여성에 부여된 존재론적 한계를 무너뜨린다.

이유진_An Oriental Orchid with a Fly_황동에 합성수지 채색_136×60×80cm_2008
이는 이유진의 작품과도 연계가 된다. 금속 재료와 흉기 형태가 환기하는 위협성은 여성의 몸에서 다룸으로써 더욱 강화된다. 이것은 여성적 몸이라는 축소화되고, 폐쇄화된 몸으로부터 도출되어 나온 ‘욕망’의 파편으로 성, 자연, 규범, 경계를 가로지르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질성의 출현은 파괴함과 동시에 불가능한 영역을 생성하는 극도의 ‘쾌락’을 수반한다.

이유진_A Springtime Fantasy_황동에 합성수지 채색_45×167×60cm_2008
세 점의 여성 조각(붉은 조각, 흰 조각, 검은 조각)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는 도출된 욕망으로부터 사유하는 몸을 볼 수 있다. 작가는 몸과 관련한 타자의 관음증적 시선을 촉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타자로 인해 규정되는 욕망을 몸으로부터, 특히 터부시되는 여성의 성기에 날카로운 금속(붉은 조각)을 돋아나게 해 관음증으로 인한 대상화를 좌절시킨다. 다른 조각을 살펴보면, 손을 벽에 대고 선 인물(흰 조각)의 등에는 날카로운 뿔 대신 난이 돋아나고 파리가 사뿐히 앉아 있다. 바닥에 엎드려 누운 천진난만한 여인(검은 조각)은 자신의 손바닥에 각각 쓰인 ‘춘(春)’자와 ‘몽(夢)’자를 바라본다. 누운 몸을 따라 시선을 움직여 보면 하늘로 향한 발바닥에서 멈추는데, 거기엔 각각 ‘몽(夢)’자와 ‘파(破)’자가 새겨져 있다. 손바닥을 보며 꿈을 꾸고, 발바닥에서는 그 꿈에서 깨어난다. 이는 이유진의 작품을 대변하는 어구이기도 하다. 인생의 덧없음을 몸에서 깨치는 것이다. ■ 심소미
-------------------------------------
K's finger
김창영展 / KIMCHANGYOUNG / 金昌泳 / sculpture.installation
2008_0514 ▶ 2008_0520

김창영_K's finger-묻다_나왕목, 도자_275×150×203cm_2008
초대일시_2008_051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_10:00am~06:30pm
성보갤러리_SUNGBO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4번지
Tel. +82.2.730.8478
낯선 식물- 부조리한 신체 ● 이번 김창영의 작업은 인간들이 생산해 낸 권력과 규율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인 교육제도, 학습과 재생산 이라는 관점에서 권력은 어떻게 인간들을 통제하고 교화시켜왔는지에 대한 고찰이며, 규율이라는 통제수단 안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진화되어 가는지에 대한 해석이다.

김창영_K's finger-꽃Ⅰ_혼합재료에 디지털 프린트_120×120×6cm_2008
이번 전시를 통하여 김창영의 작품에 등장하는 변형된 신체의 이미지가 미셀 푸코의 권력구조 이론과 어떻게 연관되어 지는지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은 일종의 흥미로운 작업일 것이다. 최근에 복제의 기술로 인간 고유의 정체성 논란이 세상의 관심사가 되었다. 주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또 다른 ‘나’가 거리를 활보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이렇듯 혼종적 괴물 또는 돌연변이에 가까운 괴물들의 출현이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김창영_K's finger-묻다_부분 / 김창영_K's finger-꽃Ⅰ_부분
푸코는 규율은 어떤 제도와도, 또한 어떤 기구와도 동일시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것은 권력의 한 형태이고 일체의 도구이며, 기술, 방식, 적용범위, 목표를 갖고 있는 권력 행사의 한 양식으로 보았다. 규율은 권력의 ‘물리학’, 혹은 ‘해부학’ 이고 하나의 기술이라고 보았다. 또한 규율의 책임은 전문화한 기관이거나 소정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그것을 기본수단으로 이용하는 기관(교육 기관, 병원 등), 혹은 권력의 내부적 메커니즘을 강화 하거나 재편성 하기위한 수단을 찾으려는 기존의 여러 결정 기관들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김창영_K's finger-꽃Ⅱ_혼합재료에 디지털 프린트_120×120×6cm_2008
미술작품에서 변용된 신체의 일부가 사용되어진 예는 무수히 많은데, 신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성으로 인하여 단순한 재현의 범주를 넘어서는 어떤 당위적인 이유가 있는 듯하다. 김창영은 신체의 부위 중에서 손가락에 관심을 보이는데, 그에게 손가락은 그 특유의 자유로움으로 인하여 문명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며,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는 보조 수단으로서도 손색이 없는 도구였던 것이다. 또한 그들의 욕망을 끝없이 도와주는 학습을 용이하게 해주는 기록의 주체로서도 훌륭하게 역할을 소화해 내고 있는 것이다.

김창영_K's finger-꽃Ⅲ_혼합재료에 디지털 프린트_120×120×6cm_2008
김창영의 작품에 등장하는 손은 아이러니 하게도 화분에서 사육 되어 지고 있다. 그것도 절단되어지고 일그러진 형상이 되어 돌아와 있는 것이다. 욕망은 인간으로부터 시작하여 결국 식물처럼 마디마디 자라나 끝없는 확장의 개념으로 전이가 됨을 작가는 화분이라는 형태를 빌어 이야기 하는 것이다. 화분들은 정교하게 제작된 목조형 건축물위에 질서 있게 놓여지게 되는데, 블록 형태로 만들어진 구조물을 통해서 작가는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권력 구조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 구조물들은 최소의 지지대를 가지고 있는데, 작가는 그의 성전(?)을 오염된 사회와 격리시키기 위하여 최소한의 접촉만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규율 중심의 기관인 학교의 공간배치 규정인 폐쇄성의 원칙에서 작가의 공간 개념은 개방형 자유공간을 지향한다.

김창영_K's finger-꽃Ⅳ_혼합재료에 디지털 프린트_120×120×6cm_2008
작가는 인간 활동의 모든 행동들과 생산 활동까지도 권력을 생산, 유지하기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는 듯한데, 그의 그러한 사회 구조적 피해의식의 결과는 무수히 많이 제작된 손가락 그림 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억압된 환경에서 상실된 자아를 찾으려고 하는 듯 아우성인 수 천 개의 손가락들을 작가는 꽃이라는 메타언어를 통하여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김창영_K's finger-브로콜리_합성수지, 철_121×117×127cm_2008
우리는 보이지 않는 틀 속에서 사육되어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데이빗 길모어와 로저 워터스가 그렇게 선생님들께 절규하던 목소리를 상기해 보라.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또 다른 규율과 권력의 탄생을 지켜보아야 하며 이 시대를 살아야 하는 고단함을 김창영은 부조리한 그의 언어를 통하여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 이종호
----------------------------
Moments of monotony
최용호展 / CHOIYONGHO / 崔容豪 / photography
2008_0514 ▶ 2008_0523

최용호_Moments Monotony No.3_잉크젯 프린트_35×40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아트비트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514_수요일_07:00pm
관람시간_월~목_10:00am~07:00pm / 금,토_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아트비트갤러리_ARTBIT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6번지 성보빌딩 301호
Tel. +82.2.722.8749
www.artbit.kr
사진전문갤러리 ‘아트비트’에서 ‘내 인생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전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두 명의 작가를 특별히 선정하여 릴레이 개인전형식으로 진행한다. 최용호는 10년 전의 포트폴리오를 다시 꺼내었고, 노상익은 그야말로 인생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를 보여준다. 첫 사랑, 첫 만남 등 모든 ‘처음’에는 설레임과 순수한 열정, 맑은 힘으로 가득 차 있고, 작가에게 첫 번째 포트폴리오는 새롭고 특별한 감성과 시각을 재확인시켜준다. 작가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를 관람하는 관객에게는 이른 아침의 쏟아지는 햇살 속을 걷는 듯한 명쾌함을 선사한다. 그리하여 첫 번째 포트폴리오는 때로 감추고 싶은 비밀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열정이 고스란히 다음 작업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작업이 풀리지 않는 시점에 어김없이 거슬러 올라가게 하는 자기반성의 시간에 시원의 스승역할을 하기도 한다.

최용호_Moments Monotony No.4_잉크젯 프린트_35×40cm_2008

최용호_Moments Monotony No.5_잉크젯 프린트_35×40cm_2008

최용호_Moments Monotony No.1_잉크젯 프린트_35×40cm_2008

최용호_Moments Monotony No.12_잉크젯 프린트_40×35cm_2008
최용호의 「Moments of Monotony」는 10여 년 전의 포트폴리오이다. 놀랍게도 이 사진들은 유학시절 열 평짜리 작가의 방안에서 대형카메라와 흑백필름으로 촬영한 것이다. 단조롭고 소소하기 이를 데 없는 자기 방의 천장 모퉁이, 벽지, 커튼, 바닥 등 집안에 있으면서도 별 눈길을 주지 않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인 작가는 이 작은 것들이 사진을 통해 거대한 우주로 변모되는 과정을 마치 ‘매혹적인 모험’과 같다고 말한다. 그의 사진에는 작고 하잘 것 없는 사물 속에서도 공간과 시간이 무한한 넓이로 펼쳐져 관람객을 홀연히 우주로 회귀하게 하는 신비로움이 있다. 모호하고 추상적이고 몽환적인 이미지여서 현실과는 유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현실 속에서 끝없이 고뇌하는 작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무한한 바다와 무한한 하늘 사이를 떠도는 예언자의 시각으로 때론 단순하고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어린 아이의 시각으로 변화한다. 최용호는 첫 작업에서부터 사진이어야 하는, 사진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입하면서 열 평짜리 자기 방이 넓은 바다로, 때론 우주의 광활한 시공간으로 무한 확대되는 시간에 도달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