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쓰여진 곳에서 퍼온 글이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설대를 비하...등속과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미리 밝혀둔다. 다시 밝히자면, 이 글의 안쪽은 정신이상자에 대한 글이 아니라, 삶의 착찹함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상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말자는 이야기이다. 속지 말고 살자던지, 그런 유형의 사회생활 보존의 원칙에 따르란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좌표를 잃지 말자는 것이다. 나침판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알콜과 카드빚에 젖어 썩어가는 해골을 걷어차줄 구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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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이상자임을 규정할, 명확한 정의(定義)의 선을 어디 즈음에 긋느냐에 관해서라면, 또 한 차례의 말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고 ‘좀 특이한 사람’으로 묶어서 얘기하기엔 너무 특이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을 일단 정신 이상자라고 분류하는 것은 잘못은 아닐 것 같다.
중앙도서관 주위를 배회하는 이름 모를 정신이상자들이 줄잡아 7명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아마도 이들의 정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없어 보이며, 짐작컨대 많은 학생들이 이들의 존재에 호기심을 갖고 있으나, 그것도 이들의 낯익은 행태를 마주치게 되곤 하는 그 ‘순간’에서 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는 아니다. 나처럼 집중력이 떨어지고 주의력이 산만한데다가 하물며 하는 일이 없어서, 심심해 죽는 ‘소수정예’의 학생들을 제외하면 그럴 것이라는 얘기이다. 나 역시 지속적인 관심의 끈을 탱탱하게 잡아 댕기고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여느 학생들보다는 그들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 뿐!
이야기를 전개함에 앞서서,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이들의 프로파일을 나열하면...
(이름을 알 도리가 없어서, 일단 특징에서 유추한 호칭을 달아봤다.)
1. 거지대왕 : 말이 필요 없는 서울대 정신이상자의 터줏대감이요, 아이콘이다. 나의 경우 대학원 입학하던 98년초부터 그를 목격했으나, 내 측근에 따르면, 입학(학부 94학번)과 동시 그를 목격했다고 한다. 당시의 목격담을 축약하면 “아 예수님이다.” 였다고... 그렇다. 몇 해 전부터 단정하게 머리를 자르고 다니곤 있지만, 실은 내가 입학하던 당시에도 그의 헤어 스타일은 산발(散髮) 그 자체. 그의 활동 무대는 중앙도서관 전역(全域)이며,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그를 볼 수 있다. 그는 터줏대감답게, 제법 나이 찬 고시생들과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기 까지 해서, 정신이상과 정상 사이를 종종 헷갈리게 한다.
2. 스마일 브라더 : 항상 웃음을 잊지 않는다고 하여, 스마일 브라더라고 이름 붙여봤다. 그의 활동무대는 중앙도서관 3열 입구쪽에 위치한 책상이다. 그는 공부를 한다. 항상 웃으면서. 여기까지 들은 사람은 좀 유별난 학생인 걸로 오해할 것 같아서, 토를 달면, 그는 학생인 듯하지는 않다. 나이도 거의 40은 되 보이며, 공부를 한다기 보다는 탁자 위에 여러 가지 책들을 쌓아놓고, 다른 데를 쳐다보며, 이러쿵 저러쿵 혼잣말을 옹알거린다.
3. 스마일 브라더 2.(혹은 ‘전도사’) : 신예다. 스마일 브라더 못지않게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다. 아니 계속 웃는다고 봐야한다. 그는 중앙도서관 층계에서 주로 큰 소리로 설교를 한다. 자신의 집안 내력을 말할 때가 많아 보인다. 멀쭉하니 양복을 차려입고 왔다갔다하며 적지 않은 볼륨으로 떠들어대는 그의 모습을 멀찍이서 보노라면 자칫 광신 개신교도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4. 루드비히 함박스택(혹은 ‘베 교수’) : (방금 전 내 뒤에 앉아 있다가 자리를 털고, 밖으로 나갔다.) 그 역시 도서관 일대가 활동 무대이며, 다른 이들과는 달리, 주로 후미진 곳에 죽치고 앉아서 행인들을 예의 주시하는 것이 특징. 어째서 ‘루드비히’여야 하는가에 대해선 긴 말 않겠다. 머리가 특유에 베토벤 산발이기에. 그를 교수로 오해한 초짜 학생들이 꽤 된다. 늘 정장 차림에 머리는 희끗희끗한 베토벤, 한 손엔 서류 가방. 그리고 천천히 교정을 거닌다. 교수가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5. 강아지 언니 : 학생 회관 일대 및 봉천동, 신림동 전역이 그녀(라고 부르기엔 넘 나이든 아줌마)의 활동무대. 옷을 나름대로 단정하게 입고 다니며, 늘 강아지를 동반시킨다. 비교적 강아지를 사랑하는 것 같아 맘에 든다.
6. 오리엔탈 애꾸눈 : 외관상으로 볼 적에, 게주에 가장 증세가 심한 양반이다. 그가 서울대에 나타난 지는 3년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 역시 아침 일찍부터 교내를 배회한다. 그리고 한쪽 눈엔 거의 항상 안대를 하고 있고, 한손은 지휘를 하는 지 계산을 하는 지, 좌우간 계속 허공을 휘휘 젓는다. 내 기억이 온전하다면 새벽 7시 경 밤샘 후, 귀가하는 길에도 그를 목격한 적이 몇 차례 있다. 처음엔 항상 붉은 자켓을 걸쳤지만, 가끔은 정장을 입고 나타나기도 한다. 그는 전형적인 고시생처럼 생겼다. 나이도 30대 중반은 훨씬 넘어 보인다. 그런 외관상의 편견 탓인지, 내 눈에는 이 양반이야말로 고시에 수차례 미끄러져 정신이상자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인상을 받게 한다.
이외에도 더 많은 정신 이상 언니오빠들이 있지만, 이 정도로 해둔다.
내가 갑자기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아까 입사 지원서를 내볼 요량으로 내게 어울리지 않아보이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골몰해서 작성하고 있는데, 도서관 출입구에서 ‘베 교수’가 성큼 성큼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그를 목격한 순간,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찰나적으로 했더랬다. 일요일 이미 졸업한 학교 도서관에 나와 앉아서, 생계 때문에 어쩔 도리 없이 이력서를 근사하게 작성하면서 전에는 꿈에도 생각 없었던 입사(入社)를 위해 고심하는 나의 현재 처지와, 또 다른 한편에선 여전히 좋건 그르건 주어진 사회의 틀에 맞게 살아가는 삶과 안정된 직장을 도외시한 채, 짧디 짧은 인생을 좀 남다른 방식으로 설계하려는 내 고집 사이의 갈등. 그런 와중에 ‘베 교수’와의 찰나적 마주침.
내가 한편 오랫동안 염두에 두고 있었던 ‘사회를 다소간 등진 채 소소한 재미들을 채집하며 이 세상 돌아가는 원리나 공부하며 살아가려 했던 매우 괴상한 삶의 유형’이 위에서 나열한 서울대를 배회하는 정신이상자들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를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경력도 없이 방관하고 있다가, 이제와서 생계 해결을 위해, 이력서를 끄적거리는 내 모습은 마치 사회로부터 등 동려진 저들처럼 되지 않으려는 모진 안간힘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지금 몹시 착찹하다. 매번 제대로 결단 내리지 못하는 내 본래적 한계와 무능력이 밉고, 그로 인해 속상하다. 아니 내가 착잡해 하는 것은 어쩌면 내가 내심 추구해왔던 사회의 질서와 간섭을 등진 삶이란 것이 애초에 나처럼 무능한 인간들의 몫은 아니었을 거라는 자각에서 온다. 세상을 의롭게 등지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축은 분명 존재 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다만 그들의 유별난 인생은 혹은 대다수의 평범한 인생은 혹은 나의 지금의 안절부절한 인생은, 그들 스스로에 의해 ‘선택’된 것이 아니라, 다만 이미 ‘결정되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힘겹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점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허둥대게 만든다.
요 며칠 사이 내게는 모처럼 힘겨운 시간들이다. 생계에의 불안과 초조, 내가 내재적으로 안고 있는 무력감과 무능력에 매번 실망을 반복하지만, 해법이 보이질 않는다. 그것 역시 전적으로 이미 ‘결정된’ 것인 듯. 조속히 내게 ‘결정된’ 삶에 대해 깨달아야 할 텐데. 흠... 그러고 보니 그 마저도 내 선택권 밖에 놓여져 있겠구만...
서울대 배회 정신이상자들을 관찰 하다가, 내 신세타령을 한 사발 쏟아놓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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