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오후라는 커뮤니티를 안 것은 프리첼에 가입하고 일년인가...뒤였던 것같다. 그곳에서 이러저러 한 것들을 퍼올리면서, 글에도 프레임을 씌워 테이킹을 할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곳의 쥔장이 퍼 올린 글들은, 앗....이란 생각이 들 정도 였다. 자료가 많을 수록 핵심은 멀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이 많을 수록 핵심에 가까워 질 수도 있다는 예제를 보여준 곳이.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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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림에 대한 태도, 인간에 대한 태도 면에서 나는 나처럼 생각하는 게 다행스럽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별난 것도 없고 특별한 것도 없는데 영화판에 와서 항상 검증 받는다. '너, 세상을 너무 어둡게 보지 않느냐? 네가 말하는 낙관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 관객을 불편하게 하지 않느냐?' 나한테는 별난 것도 없는 자연스런 일이다. 관객이 현실에서 경험하는 불편함에 비하면 내가 만든 영화에서 경험하는 것쯤이야 기본적인 것 아닌가. 내가 다른 동네에서 놀다와서 이런 터무니없는 소리하는지 모르지만 그 불편함을 못 참는 게 문제다. 낙관 또는 희망이란 것도 쉽게 쓸 수 없는 단어다. 흔히 희망을 갖고 있느냐고 묻는데 난 그 말을 그렇게 쉽게 못 꺼낸다. 그건 그냥 느끼고 이심전심 나누는 것이다. 나는 역사에 대해 희망을 갖고 있어, 인간에 대해 낙관해, 그렇게 얘기해버리는 순간, 이상해진다. 영화 매체가 너무 대중적인 매체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자꾸 강요하는 듯하다. 그 강요가 나한테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좀 얼떨떨해지는 것뿐이다. 뭘 이야기해야 더 낙관적이고 희망적이고 해피 엔딩이 되는 걸까. 관객이 원하는 결말을 보여주면 낙관적인가. 그건 아니다. 내가 잘못 생각하는 건가. (웃음) ]
[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형식이나 문법이나 내용이나 기본적으로 농담이다. 세상에 대해 농담하는 것이다. 원래 그의 직업도 농담꾼이다. 형식적인 측면을 봐도 농담의 느닷없음이라고 할까, 상황에 맞지 않는 것을 들이대면서 사람을 웃긴다. 그 사람이 폭력을 사용하는 방식도 농담 소재로 한다. 세상에 대해 그 남자는 농담을 하고 나는 진담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담하는 사람은 싫잖아.(웃음) 90년대 넘어와서 진담하면 썰렁해진다. 사람들이 모르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모른 체 하는데 저 혼자서 아는 듯이 얘기하니까. 80년대에는 진담하는 것이 나름대로 가치가 있었다. 90년대 넘어와서는 사람들이 진담을 못 받아들인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 진담을 하고 있으니 이것 참, 갑갑한 노릇인 걸.(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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