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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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4-11-07 17:28:06, Hit : 392)
엄마에 대한 기억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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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꺼번에 삼백잔은 마셔야 된다" http://blog.empas.com/niftysoo
감사(__).   피붙이와의 관계가 워낙 뜨악한 심성인 나로서는 천만번 수긍할 수 밖에 없는 글.   문장도 맛깔스러워서 해피하게 읽힌다는^0^
확실히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들은 내용에 상응하는 디테일이 있을때 엄청난 사실성을 획득한다는.
예를 들어, 비.녀.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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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엄마에 대한 기억 몇 가지 (上)




쪽 진 머리에 금비녀의 그녀

마흔이 되기 전의 엄마는 긴 머리를 쪽져 비녀를 꼽고 있었다. 한올의 머리카락도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동백기름을 바르고 참빗으로 곱게 머리를 빗었다. 월남 전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월남치마를 입고, 화장품이 가득 담긴 플라스틱 대야를 안고, 볕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화장을 하던 엄마의 모습은 늘 볼 수 있었다.

나는 엄마가 화장하는 것을 지켜보기 좋아했다. 장난감이 흔치 않던 시절이었고 티브이도 없었으며, 언니 오빠들은 모두 학교에 가버려 하루종일 무료했던 내게 그것은 즐거운 구경거리였다. 엄마가 립스틱을 바를 때는 앞에서 보고 있던 나도 입을 반쯤 벌려 입술 꼬리를 양쪽으로 잡아 당겨 립스틱을 바르기 좋은 입모양을 만들었다. 보고 있으면 저절로 그리 되었다. 엄마랑 눈이 부딪히면 엄마는 립브러쉬로 입술을 그리다가 빙그레 웃어주곤 했다. 나도 어서어서 커서 화장을 했으면 싶었다.


엄마에게는 엷은 미색에 수가 놓여진 양산이 있었는데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후까시 넣은 고대머리를 하고 양산을 멋스럽게 쓰고 아버지랑 잔디밭에서 찍은 사진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그때 엄마는 내가 자라면 닮고 싶은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막걸리 마시던 그녀

마흔의 해를 넘기지 못하고 과부가 된 엄마를 사람들은 청상이라고 했다. 어렸지만 그 뉘앙스로 보건데 젊은 과부라는 뜻이란 걸 알 수있었다. 큰언니는 여고를 졸업하고 디자인 학교를 나와 양장점에서 자칭 디자이너를 하고 있었는데 멋쟁이 언니 옆에 있는 엄마는 전혀 젊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는 늘 곱게 화장을 했다. 줄줄이 먹여살려야 하는 자식들 앞에서 여전히 곱고싶은 엄마에게 반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삶이 외롭고 지긋지긋하며, 그럼에도 늙어가는 것이 통탄스러웠던, 사십대의 과부, 나는 이제 막 삶의 비밀스런 장막을 벗겨내던 십대 소녀, 둘 사이의 팽팽한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나는 니이체를 읽고 엄마는 막걸리를 마셨다. 나는 좀 큰 도시로 고교 진학을 시켜달라 엄마에게 요구(!)했고, 엄마는 상업학교에 진학하여 반듯한 유니포옴을 입는 은행원이 되라 했다. 책상위에 엎드려 하얗게 밤을 새우다 학교로 가던 날이 많아졌다. 나는 밤에 잠을 잃기 시작했다.

엄마는 연애를 시작했고, 나는 학교 갔다오는 길에도, 심부름 갔다 오는 길에도 까까머리 남학생들이 꼬이기 시작하던 열 여섯의 소녀였다. 엄마는 비녀를 녹여 팔찌를 만들었고, 머리칼을 잘라내고 뽀글뽀글 파마를 했다. 나는 엄마가 화장을 하는 모습을 지켜볼 만큼 더 이상 심심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어느날 학교에 갔다오니 엄마는 위궤양 수술을 받고 병원 입원실에 누워있었는데 그때의 엄마의 얼굴은 생각나지 않지만 병실에 수북히 쌓였던 복숭아 넥타는 지금도 선명히 기억에 남아 있다. 다음날 나는 학교 가는 길에 병실에 들러 잠든 엄마의 머리맡에서 두개의 넥타를 마셨다. 역시 잠든 엄마를 두고 슬금슬금 병실을 빠져 나왔다. 초등학교 사학년때의 일이다.


두루마리 휴지를 배고 누운 그녀

막내인 내가 고향의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엄마는 일손을 놓았다. 일손을 놓자 엄마는 졸지에 십년 쯤 늙어버렸다. 나는 더 이상 엄마에게 용돈을 타쓰지 않았다. 나는 시를 써서 새로 부임한 국어 선생님께 가지고 갔다. 국어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내가 쓴 시를 칠판에 적어 실랄하게 비평을 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의 시가 아니란 게 주된 지적사항이었다. 시는 아파트 육층에서 내려다 본 밤바다에 관한 것이었다. 어스름 해가지면 불밝혀져 새벽이면 점멸하는 어선에 대한 것이었지만 노총각 국어 선생은 그렇게 읽은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다시는 시를 쓰지 않았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티브이를 보다가 두루마리 휴지를 배고 잠든 그녀를 보곤 했다. 손만 뻗으면 푹신한 배게가 있는데도 두루마리 휴지를 배고 자는 엄마의 무신경이 나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 즈음 밥상에는 플라스틱 김치통이 그대로 올라오기도 했고, 찌게가 양은 냄비째 올라와 있기도 했다. 플라스틱 막걸리 병이 부엌에 줄을 섰다.

딸 키우는 엄마의 자세로는 썩 지혜롭지 못하다는 객관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도 커피를 좋아했는데 장식장 깊숙이 박힌 장미가 그려지고 금테가 살짤 둘린 커피잔에 받침대 까지 받쳐서 커피를 마시며, 폴 싸이먼과 블랙 사바스와 크리스 더 버거와 스모키를 들었다. 두루마리 휴지를 배고 자는 엄마는 내삶의 남루한 현실을 되새겨 주는 불만스러운 소품이자, 어슴푸레 불안한 미래를 구체적으로 제한하는 원하지 않는 예고편이었다. 소풍 때마다 찰밥을 싸주어 나를 창피하게 만드는 엄마에게 더 이상 소풍 날짜를 알려주지 않았다. 김밥을 쌀줄 모르는 엄마가 꼭 소풍 날짜를 알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 이유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음흉한 가학의 취미가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그녀가 만으로 쉰이 되던 해에 나는 대학에 합격했다. 혼자 합격여부를 보러 첫차를 탔던 내가 디디디 시외전화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을 때, 엄마는 "우짜겠노, 뭐하로 붙었노..."했다. 그 말은 그 이후로 십 년 쯤 나에게 방황의 빌미를 제공했는데 그건 정말이지 내 가학 취미가 만들어낸 음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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