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의 골목길 사진에 대한 평가가 될 수 있는 글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자료"가 될 수 있는(그것도 여러가지 감정선에 좌우되는) 글이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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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이야기 2
골목은 살아 있다 / 김형국(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사진작가 김기찬에겐 이 책이 세 번째 골목사진집이다. 『김기찬 사진집 골목안 풍경, 1972-1988』은 흑백사진 모음이고, 두 번째 사진집은 역시 같은 제목으로, 1984년에서 1990년 사이에 칼라로 찍은 골목사진 모음이다. 1987년 이후 서울 중림동, 도화동, 행촌동 일대의 현장을 담은 이 책 또한 골목사진집이니 같은 성격의 사진집만 세 권이 된다. 그러니 그의 명함은 골목사진 전문가라 함이 가장 합당하게 되었다.
그의 분신인 세 번째 책에 실린 골목 풍경사진들을 들여다 본다. 사진은 무엇이며 사진에 비친 골목은 어떤 존재요 현상인지 따져 보고 싶은 생각이 대뜸 앞선다. 먼저 사진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생각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사진을 대할 때면 나는 잘 찍은 사진을 보고 싶어하고 또 가지고 싶어한다. 어떤 사진이 잘 찍은 사진일까. ‘잘’이란 우리말이 묘한 말이다. “시계가 잘 간다”하면, 시계가 정확하게 간다는 말이지만 시계가 빨리 간다는 뜻도 된다. ‘잘 찍은 사진’이란 말도 묘한 뜻을 함축한다. 사실이 사실답게 나타난 것도 잘된 사진이지만, 사실보다 미화된 것도 잘된 사진이다. 사실 그대로는 현실의 인정이고, 미화된 것을 바라는 것은 이상에 대한 기대이다.
사실의 인정과 이상에 대한 기대는 서로 대립된다. 전자는 객관적이고 후자는 주관적이며, 전자는 차가운 머리의 대상이며 후자는 따뜻한 마음의 산물인 점에서. 그러나 사실의 인정과 이상에 대한 희구는 통합될 수 없을 정도로 상치되지 않는다. 아니, 상치를 거부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사실을 인정하는 한편 그걸 토대로 우리는 이상을 접목시키려 한다. 현실의 인정도 인간의 조건이고, 이상의 실현도 인간의 방식이다. 현실에서 출발하여 우리는 이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한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이상이 비치는 현장의 사진이 가능하다. 사실의 묘사가 일차적 소임인 사진에서 공감대가 넓은 희구와 바람이 보는 사람에게 느껴진다면, 그런 사진을 일컬어 우리는 진실된 사진이라 할 것이다. 김기찬의 사진에서 나는 그런 진실의 모습을 본다.
그의 골목사진은 먼저 현실의 인정에서 그 출발점을 잡고 있다. 현대화되고 있는 도시 풍경의 뒷그늘에는 골목이란 전통적 공간유산이 엄존해 있음을 목소리 높여 우리에게 생생하게 알려 주고 있다. 현장기록이란 사진의 일차적 소임을 다하고 있다 하겠다. 하지만 작가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진하게 깔려 있다. 그 골목의 현실이 점차 사라지고 있고, 골목의 정겨운 풍경이 우리의 마음에서 점차 잊혀지고 있음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골목의 사라짐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김기찬의 시각은 정당하다.
우리는 지금 골목이 사라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시대는 도시화의 시대인데, 가속되는 도시화는 골목을 몰아내고 있다. 사람이 한반도 땅에 정착해서 집단 취락을 이룬 이후 줄곧 이어져 온 유구한 역사의 공간양식인 골목이 도시화가 전면적으로 확산되자 이 땅에서 퇴색되고 퇴화되고 있다. 도시화에 부응한다는 도시계획은 일단의 도시 땅을 허물고 크고 높은 건물을 세우는 노릇인데, 그 과정에서 골목길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골목이 전근대적 공간방식임은 틀림없는 말이다. 골목은 자동차시대가 열리기 전의 도시 취락에서 혈관 구실을 했다. 무엇보다 인간 정주가 거의 전적으로 도보교통에 의존하고 있을 때는 골목이 바로 교통망의 근간이었다.
골목은 직선이기보다는 꾸불꾸불한 것이 보통이다. 능률성이랄까 경제성 같은 특성은 아주 약하다. 오가고자 하는 두 지점을 잇는 길일 경우, 경제적이고 능률적인 길은 두 지점을 잇는 직선의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골목길은 직선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왜 골목은 꾸불꾸불한 것이 속성이 되었을까. 전통시대의 인간 취락은 땅의 지형지세에 적응하는 방식에서 출발했다. 특히 이 한반도 땅처럼 산간 지방이 대종을 이루는 지형에서는 반듯한 땅은 많지 않다. 따라서 자연의 장애를 피해 마련한 집터가 반듯반듯할 리 없고, 그 때문에 집과 집을 잇는 골목길은 지세지형의 자연에 순응하다보니 꾸불꾸불할 수밖에 없었다. 경지 정리되기 전의 논두렁 길이 꼬부랑길이었듯이.
골목은 좁은 것이 숙명이다. 골목은 공용(公用)의 장소이고, 골목으로 이어지는 집터는 사용처(私用處)이다. 사용에 대한 집착이 많은 것이 사람의 방식이고 보면, 더 많은 집터 확보는 좁은 골목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좁은 골목의 이점은 확인된다. 집과 집 사이를 왕래하는 데 필요한 길이 좁은 만큼 왕래의 거리가 짧아지고 그만큼 왕래의 빈도가 높아진다. 그래서 집과 집은 다닥다닥 붙어 있고 길은 좁은 것이 필연이었다.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서울 사람’ 김기찬의 경우만이 아니고 지방도시 출신인 나에게도 골목의 정경은 진한 향수로 남아 있다. 오동동이라 하면 금방 마산 오동동을 떠올릴 사람들이 많을 것인데, 그 마산이 내 고향이다. 타지 사람들은 술집이 몰려 있는 곳으로 많이 알고 있다. 골목이 좁기로는 오동동 골목만한 데도 흔치 않을 것이다. 골목의 폭은 두 사람이 서로 스쳐가면 어깨가 부닥칠 정도다. 한 사람은 서 있고 다른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게 그 골목의 통행방식이다. 좁은 것이 흉은 못 된다. 오히려 사람의 체취가 느껴지는 미덕이 있다. 현대의 건축학이 신주처럼 받드는 개념 ‘휴먼 스케일(human scale)’이 거기서 발견된다.
골목은 어디서나 좁디좁은 공간이 아니다. 골목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란 소임 못지않게 머무름과 쉼과 놀이의 장소다. 그런 용도가 가미된 골목은 통용 전용의 골목에 견주어 다소 폭을 누린다. 도심의 골목이 그런 곳이다. 사람들의 왕래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 오가는 사람을 구경하고 만날 사람을 기다리며 진귀하고 새로운 물건이 진열되어 있는지 상점을 기웃기웃거리는 놀이의 현장이다. 명동이 그렇고 관철동이 그렇다. 하지만 오늘의 명동이나 관철동 골목은 전통시대에서 볼 수 있던 전형적인 골목이 아니다. 차가 다닐 수 있는 앞길 대로 뒤에 다소곳이 자리잡은 소로의 뒷길이다. 자동차의 출입도 심심치 않다.
도시화가 대세이고 도시계획이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는 이제 골목의 전형을 보자면 우리는 달동네를 찾아야 한다. 도심의 골목이 도시의 역사적 유물처럼 뒷전으로 밀린 채 남아 있는 존재라면, 당국에서는 영세민 주거 지역이라 부르고 보통사람들은 흔히 판자촌이라 부르는 달동네의 골목은 가난한 삶의 전면에서 전방위적(全方位的) 현장으로 오늘에도 생생하게 그리고 실감나게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달동네의 골목은 통용의 기능은 물론이고, 서민들의 휴식처요 놀이터요 여유공간이다. 때로는 서민들의 생업터전도 된다. 거기처럼 골목길이 제구실과 여러 구실을 하는 데가 없다. 그 구실의 모습을 김기찬의 사진이 진지하고 친절하게 보여준다. 이를테면 리어카장수가 지나가고 구두닦이, 굴뚝치는 사람, 메밀묵 파는 사람이 목청을 높이고 있다. 한편 좁디좁은 집안에서 치르기가 불편한 가사생활을 용납하는 다목적성도 발휘한다. 아낙네들이 고사리를 다듬고 송편을 빚는가 하면, 아이들은 골목길 바닥에 엎드려 숙제를 하고 있다. 가족과 친지들이 모인 생일잔치판도 배설(排設)되니 화투치기판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골목은 사람만이 주인이 아님도 작가는 놓치지 않고 있다. 사람을 따르는 애완동물도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고양이는 담장 위에서 졸고 있고, 삶의 현장에 에로스가 없을 수 없음을 말해 주기라도 하는 양 개들은 주책없이 교미에 열중한다.
그렇게 살아 있는 도시의 현장이, 중산층이 득세하는 도시의 중심에서 비켜서고 말았다. 살 만한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진 지가 오래인 것이다. 달동네는 텔레비전의 인기 드라마 때문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이 사진집에도 바로 달동네를 소재로 잡은 텔레비전 드라마를 찍는 장면의 사진이 있다. 바로 달동네란 이름이 텔레비전을 탔던 경위를 증언하고 있다. 거기에 달동네를 소재로 삼아 온 작가의 내력도 담겨 있다. 국가발전을 지상주의로 삼는 정부 당국은 달동네를 꼭 감추어야 할 치부로 알았다. 그래서 달동네를 달락거리면서 사진을 찍는 것을 당국은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던 세월이 오래였다. 그건 달동네 문제를 주요 연구과제로 삼고 있는 나도 직접 알고 있는 일. 정부 당국은 오랫동안 달동네의 실태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니 작가의 달동네 출입도 언제든지 제지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십여 년 달동네 사진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달동네를 드라마 소재로 삼기도 하는 방송국에서 일하는, 성분이 확실한 사람으로 인지되었기 때문이다. 당국의 뜻과는 달리, 결과는 당국이 그렇게 숨기려 했던 현실을 생생하게 담은 귀중한 사진기록이 축적된 것이다.
나라에서 도심지에 산재했던 판자집을 철거하고 거기에 살던 사람들을 도시의 변두리에다 옮겨 놓고는 천막을 치고 살게 한 것은 1960년대에 많았던 관행이다. 천막을 치고 잠자리를 마련해 놓고 보니 밤중에는 천막의 구멍을 통해 달도 보이고 별도 보였다. 그래서 그때 신문에서는 그런 동네를 일컬어 달나라 천막촌 또는 별나라 천막촌이라 불렀다. 그게 말의 뿌리가 되어 달동네라는 말이 생겨났다.
달동네는 퍽 상징적인 말이다. 달나라처럼 아득해서 웬만한 사람들은 가 본 적도 없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달동네 사람들도 우리의 이웃이다. 함께 이 땅을 살아가는 시민이다. 전문가들의 추정에 따르면 작게는 백만 명 많게는 이백만 명 정도의 서울 시민이 달동네에서 살고 있다. 때문에 주의 깊고 의식있는 예술가들은 그 현장을 놓칠 리 없다. 진작부터 그곳 삶의 애환을 눈여겨보고 그들의 작품세계에 담았다. 이정환, 박경리, 박경수 같은 작가가 문학으로 옮겼고, 흔치 않은 숫자이지만 최종태, 김종학 같은 화가는 화폭에 옮겨 놓고 있다. 그런 예술가 대열에 사진작가도 빠질 수 없다. 비록 가난하지만 우리 이웃인 그들의 삶의 애환을 김기찬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김기찬의 사진에 보이는 달동네는 다른 곳이 아닌 서울의 달동네이다. 작가는 오늘의 달동네 골목에서 어린날 그의 눈에 익숙했던 정경을 기억할 수 있다고 했다. 하기야 골목의 생활인 점에서 그의 관찰은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가 어린날 보았던 골목과 오늘날 달동네의 골목과는 공간적인 세팅이 다르고 삶의 주인공도 다르다.
오십대의 그가 어린날 보았던 골목은 서울의 후미진 공간이 아니었다. 옛날은 골목이 서울의 도시생활을 기능케 하는, 거의 동맥에 버금가는 길이었고 어울림의 터전이었다. 그때 골목에서 어우러지던 삶은 바로 서울의 보통사람의 생활이었다. 그리고 이북 사투리가 섞이긴 했어도 서울의 표준말을 예사로 들을 수 있던 곳이었다.
오늘의 달동네 골목 사정은 다르다. 경제적으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도시 활력의 주된 흐름에서 한발 비켜선 채 살아가는 곳이다. 달동네의 골목은 번듯한 자동차대로 뒤에 숨어서 자리잡은 후미진 공간이며 폭도 모세혈관처럼 가늘다. 그리고 그곳은 서울말 대신, 지방 사투리가 목소리를 돋우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럼에도 예나 지금이나 골목은 변하지 않는 속성과 모습을 갖고 있다. 작가가 포착한 것처럼 삶의 모습이 비슷하다. 무엇보다 공동체적 방식이 잔존해 있고, 생활의 다양한 모습이 모두 발견된다는 점이다.
골목의 삶은 공동체의 삶이다. 옆집에 누가 살고 그 집에 숟가락 몽둥이가 몇인지도 알고 있다. 부부싸움이 나면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웃이 어려움을 당하면 내남없이 나서서 돕는다. 파출부나 막일 같은 일자리도 거기서 사는 사람들끼리 다리를 놓아 구한다.
동네 바깥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품팔이를 하는 곳도 달동네 골목안의 정경이다. 봉투만들기, 구슬백의 구슬꿰기 같은 일은 동네 한귀퉁이에서 이루어진다. 공터 어디에 병아리 몇마리 사다 놓고 키워도 탓할 사람은 없다. 삶의 유대가 끈적끈적하게 남아 있는 곳이기에 시집살이처럼 눈치코치를 봐야 하는 고달픔도 따른다. 미운살이 박힌 날엔 “방 빼”라는 불벼락을 받을지 몰라 일자리에 나간 주인집의 빨래나 허드렛일을 세입자의 아낙네는 감수해야만 한다.
달동네의 골목은 영세민들의 삶에는 일자리이자 잠자리이며 놀이터이자 생필품을 구하는 장터가 되기도 한다. 행상들이 지나가고 월부장수들이 드나든다. 몇 발자국만 나서면 생활의 일상적 요구가 모두 해결될 수 있다. 이발소도 미장원도 있고, 만사가 여의치 않아 심사가 불편하면 손쉽게 찾아갈 수 있는 점집도 바로 이웃에 있다.
그곳 골목은 특히 아이들에겐 더없이 좋은 놀이터다. 자동차가 달려들 위험도 없다. 동네를 뛰어다니고 놀아 보았자 보호자의 감각권내에 있기 때문에 아이 키우기가 안심이다. 거꾸로 1960년대 말 달동네를 개발한답시고 시민아파트를 지었을 때, 영세민들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은 아이들 보호문제였다. 땅집이 아닌 하늘에 매달린 아파트 생활은 아이들을 체감권내에 둘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달동네는 생존본능의 치열함이 합리를 낳고 있는 곳이다. 전문가의 치밀한 분석에 따르면 달동네의 골목은 남북(南北)으로 난 것보다 동서(東西)로 난 것이 넓다고 한다. 그것은 필연이다. 해는 동에서 뜨고 서로 지니 그 방향을 적극 이용해야 햇빛을 많이 오래 누릴 수 있고, 북풍의 찬 기운을 막자면 남북의 골목은 상대적으로 좁을 수밖에 없다.
달동네 삶의 치열함은 또한 무심한 경지의 아름다움도 연출한다. 견고하게 구축된 가파른 골목길이 그렇다. 비탈길을 돌계단이나 시멘트로 단단하게 만들 수 없는 형편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방도는 쓰잘데없는 조그마한 잡석이나마 빈틈없이 차곡차곡 쌓는 것이다. 거기엔 한치의 오차도 없다. 오로지 살아 남고자 하는 생존의 본능이 작용한 결과다.
생존은 가장 본질에 다가간 사람의 존재방식이다. 생명에겐 생존은 정당하고 또 그 자체로 진실이다. 겨울의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이른 봄날의 산길에 피어난 제비꽃이나 나뭇가지 위에 매달린 까치집이 그렇듯이, 치밀하게 잡석을 쌓아올린 경지는 사심(私心)이 없는 무심(無心)의 경지다. 무심은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낳을 수 있는 조건이다. 강한 바람을 막고자 막돌을 쌓은 제주도의 돌담이 빚는 아름다움이 그러하지 않은가.
김기찬의 사진이 서울 달동네의 골목사진인 점에서 작가나 독자의 안타까움이 크다. 이 나라 어디보다 세차게 도시화의 바람을 타고 도시계획의 위력이 넘쳐나는 곳이 서울이니, 서울의 골목은 이 나라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니 사라지기에 앞서 달동네 골목도 벌써 예전 같지 않다. 달동네 골목에까지도 자가용이 마구 끼어들고 있다. 주차장이 돼 버린 골목길에서 주차문제로 멱살을 잡는 광경도 빈번해졌다. 그러나 그 존재는 비록 사라질 운명일지라도 골목이 갖던 정서마저 사라질 수 없다. 골목은 무엇보다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고, 또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곳이다. 그 얼굴과 체온은 아무리 거대도시일지라도 우리가 재음미하고 재발견해야 할 대상이다.
우리가 현대사에서 가꾸어 온 도시는 일차적으로는 ‘경제도시(econopolis)’였다. 어떻게 하면 능률적으로 오가면서 생산을 올릴 수 있을까가 절대 관심이었다. 도시를 하나의 생산적인 기계로 여겼다.
이제 우리는 경제도시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경제적 동물로서만 살아 가기를 우리가 거부하기 때문이다. 달콤한 대기와 맑은 물 그리고 햇빛이 따사롭고 푸르름이 넘치는 쾌적한 도시에서 살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경제로 축적된 자본과 기술을 얼마큼 그 방향으로 쏟고 있다. ‘기술도시(technopolis)’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 정도에서 자족하지 않는다. 도시의 주인이 사람이기를 요구한다. 자동차가 도시의 한복판을 마음대로 헤집고 다니는 도시가 아니기를 바라고 있다. 이른바 ‘인간의 도시(humanopolis)’를 요구하는 것이다.
‘인간의 도시’를 꾸미기 위한 노력과 시도는 이미 구미(歐美)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차량통행을 금지하는 도심 구역을 확대하고 있음도 그런 시도의 하나다. 사람이 주인이 되어 한가롭게 거닐기도 하고 어울릴 수 있는 곳이다. 가설무대에서 놀이도 즐기고 맛있는 음료로 목을 축일 수 있는 곳이다. 골목이 옛적에 갖고 있던 인간 얼굴의 재현이다.
골목이 사라지기 전에 보존대책도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도시의 역사적 특성이 잘 보존된 가장 개성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서울 도심이나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주거 지역을 가보면 삭막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개성이 보이질 않는다. 도심 지구만 해도 서울이나 도쿄나 뉴욕이 다를 바 없다. 도쿄나 뉴욕의 수퍼마켓을 가보면 역시 서울의 수퍼마켓하고 다를 바 없다. 그 때문에 한국의 풍물을 실감하고 싶은 의식있는 관광객은 재래시장을 즐겨 찾는다. 마찬가지로 서울의 개성과 역사를 알고 싶은 외국 관광객들은 서울의 골목을 구경하고자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뉴욕의 거리를 걷다 보면 도대체 인간의 체취를 찾을 길 이 없다. 대신 마드리드의 뒷골목이나 멕시코 외곽 오래 된 도읍의 골목길에서 마주쳤던 흥미진진한 이색 풍물이 그 나라의 진정한 얼굴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러니 골목의 미덕은 오늘에도 재발견되어야 한다. 그 문제의식은 골목의 현장이 사라지기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김기찬의 사진 발언이다. 달동네에서 바라본 도심의 장면, 고층아파트의 광경이 달동네 풍경과 대조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또 달동네 골목 너머로 죽순처럼 다투어 솟고 있는 아파트군을 한 노인이 맥빠진 듯이 바라보고 있는 장면의 사진도 있다. 사람으로 치면 달동네는 노인이고 아파트는 원기왕성한 청년처럼 대조를 보인다. 바로 그렇다. 이 세상은 청년들의 무대이기도 하지만 노인들의 안식처도 마련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아파트도 필요하지만 골목도 살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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