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상 대설이었다. 올들어 처음 서울의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기도 했고.
바람이 많이 불고 유리 파편 마냥 날카로운 공기 탓에 내복과 털옷을
최대한 챙겨입었는데도 잔뜩 웅크리고 걷게 된다. 어차피 백화점에 볼
일이 있어 집을 나서는 김에 인사동엘 들렀다. 덕원의 3,4,5층에서 뭔가
잔뜩 늘어놓고 전시를 하고 있긴 한데 너무도 허접하고 유치하고 엉성해서
건성건성 둘러보기만 했다. 전시를 둘러 본 것이 아니라 공간을 둘러봤다는
말이 더 적확한 말이겠지. 누가 설계한 건물인지는 알지못하지만 , 그리고
어떤 의도를 담고 증축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관객이 느끼기엔 엘리베이터나
전시 공간이나 찻집이나 왠지 짓다가 만 듯, 마무리를 안한 듯 삭막한 느낌이다.
벽도, 바닥도, 엘리베리터도 시멘트를 바른 상태 그대로여서, 저 엘리베리터에
몸을 실어도 무사할까 라는 두려움도 준다. 공간 컨셉이 '황막함의 미' 였다면
그래도 수긍은 간다. 그래 수긍을 할 수 밖에는 달리 길은 없다.
<Into The Ancient city> , 룩스, 김종욱.
내가 여러 매체(기행문, 소설, 그림, 사진...)들을 통해서 보고 느끼고 알아왔던
기존의 경주와는 사뭇 다른 느낌. 이전의 것들이 경주에 대한 단편적인 느낌들만
전해준다면 김종욱의 경주는 총체적으로 그 시원부터 현재, 미래를 하나의 프레임
안에 보여주고 있다. 신라 천년의 기운을 간직한 유적지이자, 경주를 터전으로 살아
가는 사람들에겐 여가의 공간이고, 탈출을 꿈꾸는 이방인에겐 관광지가 될 수 밖에
없는 그 도시를 ,다중노출 기법으로 잡아낸 형상들은 3가지의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럽
게 , 불필요하고 잡다한 설명없이 바로 와 닿는다. 눈 앞에 보이는 내가 결코 영원한
내가 아니듯 찰나의 삶에 대한 성찰이 불교적 행태들 속에서, 혹은 두번 세번의 노출로
유령처럼 흐릿하게 흐르는 모습들속에서 영겁의 시간을 느끼게 한다. 작품들을 여러번
꼼꼼이 보고 있으려니 작가가 먼저 말을 걸어온다. 참 선하고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이다.
60년생, 늦깍이 대학생이었고 경주에서 살며 작업을 하는,
작가는 계속 이것 저것 말을 해주고 싶어하지만 김영섭을 먼저 다녀와서 다시 보자는 마음에
일단 인사를 드리고 나왔는데, 나중에 다시 가보니 안계셔서 아쉬웠다.
명함이라도 하나 받아두는 건데...아니..강석경의 <능으로 가는 길>때문에 각별했던 경주가
김종욱이란 작가로 하여 더 깊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게 아쉽다.
사진이 참 맘에 와 닿네요 라는 말에 그간 고생했던 시간들을 보상받는 것 같고, 예상치 못했던
기운이 막 솟는다며 좋아하던 모습에서 카메라를 들고 섰던 막막함들이 그대로 전해져서 잠시
경건해지기도 했었는데......
< 현일영.서순삼.박필호 탄생 100주년 기념전>, 김영섭화랑
우리나라에서 누구누구 탄생, 혹은 서거 몇주년 기념 행사들이 그리 흔한 일들은
아니여서 일순, 반가웠고 그것도 그 어떤 분야보다도 척박한 사진계의 기념 행사
여서 의미가 남달랐다. 전시장 안에 들어서면서 갱지를 연상케하는 누런 종이에
붙여진 프로필을 먼저 꼼꼼이 봤다. 모두 1903년 생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누렸
을 전성기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이겠지.그렇다면 일제 식민치하의 20-30년대의
고난한 시절들이었을 거고. 아니나 다를까 박필호만 빼고 모두 일본에서 공부하고
거기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전력이 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이런 모던한 작품들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국내파 박필호는 딱 2점, 아내의 자화상과 손에 시계가 들린
풍경말고는 없다. 단적으로 짐작되는 국내 상황이다. 이런 저런 계산과 잠작으로
때려맞추며 전시를 봐야 할 만큼 작품들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냥 걸려있었다.
도우미 학생에게 이것 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는데 빈티지 프린트가 아니고
3사람의 특성을 모두 잘 알고 있는 주**선생이 일괄적으로 전시를 위해 새로 작업했고
에디션은 10장. 가격은 300만원, 중대 캠퍼스 전시때 이미 모든 작품들이 각 5장씩은
팔렸다는 얘기까지 귀찮아 하지 않고 잘 설명해 주었다. 사진 공부하는 학생이라니
자신도 재미는 있었겠지.
필름의 보관상태가 나빴는지 잡티도 많고 프린트 상태도 안좋고 다만, '그 당시에도...'
에만 의미가 있었다. 호소에 에이꼬보다 먼저 필름 솔라리제이션 기법을 이미 사용했다던,
서순삼씨의 작품은 보는 재미가 의외로 쏠쏠했다. 그 물리적 방법들이야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사진이 주는 느낌은 마치 아이들 그림책에서 흔히 보는 , 한지를 오려 형상
을 만들고 다시 사진 촬영을 하여 인쇄한 것 같은 느낌. 차이라면 아이들 책은 알록달록 온갖
색이 있지만 그의 사진은 흑과 백의 오묘한 조화가 있었다. 그래서 오래오래 들여다 보면서도
질리지 않고 볼 때마다 새롭고 그래서 오래 머물렀다. 평일만 아니라면 3작가들에 대한 심포
지엄도 듣고 싶은데...그랬다면 더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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